李生窺牆傳
松都有李生者,居駱駝橋之側。年十八,風韻淸邁,天資英秀。常詣國學,讀詩路傍。善竹里,有巨室處崔氏,年可十五六,態度艶麗,工於刺繡,而長於詩賦。世稱:「風流李氏子。窈窕崔家娘。才色若可餐,可以療飢腸。」
송도에 이생(李生)이라는 이가 있어 낙타교 곁에 살았다. 나이 열여덟에 풍운이 맑고 뛰어났으며 타고난 바탕이 빼어났다. 늘 국학에 다니며 길가에서 시를 읽었다.
선죽리에 큰 집안의 처녀 최씨가 있었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쯤이요 자태가 곱고 아름다우며 수놓기에 공교롭고 시와 부에 뛰어났다. 세상에서 일컫기를,
풍류로운 이씨네 아들 아리따운 최씨네 아가씨. 재주와 아름다움을 먹을 수 있다면 주린 창자를 고칠 만하다.
李生嘗挾冊詣學,常過崔氏之家,北牆外,垂楊裊裊,數十株環列,李生憩於其下。一日窺牆內,名花盛開,蜂鳥爭喧,傍有小樓,隱映於花叢之間,株簾半掩,羅幃低垂。有一美人,倦繡停針,支頥而吟曰:
이생이 일찍이 책을 끼고 학교에 다닐 때 늘 최씨의 집을 지났다. 북쪽 담 밖에 수양버들이 하늘하늘 수십 그루 둘러섰는데, 이생이 그 아래서 쉬었다.
하루는 담 안을 엿보니 이름난 꽃이 활짝 피고 벌과 새가 다투어 지저귀며, 곁에 작은 누각이 있어 꽃떨기 사이로 은은히 비쳤다. 구슬발이 반쯤 가리고 비단 휘장이 낮게 드리웠는데, 한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수놓기에 지쳐 바늘을 멈추고 턱을 괴고 읊었다.
獨倚紗窓刺繡遲,百花叢裏囀黃鸝。無端暗結東風怨,不語停針有所思。
홀로 사창에 기대어 수놓기가 더딘데 온갖 꽃떨기 속에 꾀꼬리가 지저귀네. 까닭 없이 가만히 봄바람의 원망을 맺어 말없이 바늘을 멈추고 생각하는 바가 있네.
路上誰家白面郞,靑衿大帶映垂楊。何方可化堂中燕,低掠珠簾斜度墻。
길 위의 뉘 집 흰 얼굴 젊은이인가 푸른 깃 넓은 띠가 수양버들에 비치네. 어찌하면 집 안의 제비가 되어 구슬발을 낮게 스치고 담을 비껴 넘으랴.
生聞之,不勝技癢,然其門戶高峻,庭闈深邃,但怏怏而去。還時以白紙一幅,作詩三首,繫瓦礫投之曰:
이생이 듣고 재주가 근질거림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그 집 문호가 높고 안뜰이 깊어 다만 서운히 갔다. 돌아올 때 흰 종이 한 폭에 시 세 수를 지어 기왓조각에 매어 던졌다.
巫山六六霧重回,半露尖峰紫翠堆。惱却襄王孤枕夢,肯爲雲雨下陽臺。
무산 서른여섯 봉우리에 안개가 겹겹이 도는데 뾰족한 봉우리가 반쯤 드러나 자줏빛 푸름이 쌓였네. 양왕(襄王)의 외로운 베개의 꿈을 괴롭히니 즐거이 구름과 비 되어 양대(陽臺)에 내리려는가.
相如欲挑卓文君,多少情懷已十分。紅粉墻頭桃李艶,隨風何處落繽紛。
사마상여가 탁문군을 꾀려 하매 얼마쯤의 정회가 이미 열에 이르렀네. 붉은 분 담장 머리의 복사와 오얏이 고우니 바람 따라 어디로 어지러이 떨어지려는가.
好因緣邪惡因緣,空把愁腸日抵年。二十八字媒已就,藍橋何日遇神仙。
좋은 인연인가 궂은 인연인가 부질없이 시름겨운 창자를 잡고 하루를 한 해로 여기네. 스물여덟 자로 중매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남교(藍橋)에서 어느 날 신선을 만나랴.
崔氏,命侍婢香兒,往取見之,卽李生詩也。披讀再三,心自喜之。以片簡,又書八字,投之曰:「將子無疑,昏以爲期。」生如其言,乘昏而往,忽見桃花一枝,過墻而有搖裊之影。往視之則以鞦韆絨索,繫竹兜下垂。生攀緣而踰,會月上東山,花影在地,淸香可愛。生意謂已入仙境,心雖竊喜,而情密事秘,毛髮盡竪,回眄左右,女已在花叢裏,與香兒,折花相戴,鋪罽僻地,見生微笑,口占二句,先唱曰:
최씨가 시중드는 계집종 향아에게 명하여 가서 가져와 보게 하니 곧 이생의 시였다. 두세 번 헤쳐 읽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쪽지에 또 여덟 자를 써서 던졌다.
「그대는 의심하지 마시고 저물녘을 기약으로 삼으십시오.」
이생이 그 말대로 저물녘을 타고 가니, 홀연 복사꽃 한 가지가 담을 넘어와 하늘거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가서 보니 그넷줄에 대바구니를 매어 늘어뜨린 것이었다. 이생이 붙잡고 넘으니 마침 달이 동산에 오르고 꽃 그림자가 땅에 있어 맑은 향기가 사랑스러웠다.
이생은 이미 신선의 지경에 들었다 여겨 마음에 가만히 기뻤으나, 정이 은밀하고 일이 비밀스러워 털이 다 곤두섰다. 좌우를 돌아보니 여인이 이미 꽃떨기 속에 있어 향아와 더불어 꽃을 꺾어 서로 머리에 꽂고 있었다. 외진 곳에 담요를 펴 놓고 이생을 보고 살포시 웃으며 입으로 두 구를 지어 먼저 읊었다.
桃李枝間花富貴,鴛鴦枕上月嬋娟。
복사와 오얏 가지 사이에 꽃이 부귀하고 원앙 베개 위에 달이 곱네.
生續吟曰:
이생이 이어 읊었다.
他時漏洩春消息,風雨無情亦可憐。
다른 날 봄소식이 새어 나가면 바람과 비가 무정하니 또한 가엾으리.
女變色而言曰:「本欲與君,終奉箕帚,永結歡娛,郞何言之若是遽也?妾雖女類,心意泰然,丈夫意氣,肯作此語乎?他日閨中事洩,親庭譴責,妾以身當之。香兒可於房中,賫酒果以進。」兒如命而往,四座寂寥,闃無人聲,生問曰:「此是何處?"
여인이 낯빛을 바꾸어 말하였다.
「본디 그대와 더불어 끝내 키와 비를 받들어 길이 즐거움을 맺으려 하였는데, 낭군은 어찌 말씀이 이리 급하십니까. 제가 비록 여자의 무리이나 마음이 태연한데, 장부의 의기로 즐거이 이런 말을 하시겠습니까. 다른 날 규방의 일이 새어 어버이께 꾸중을 들으면 제가 몸으로 감당하겠습니다.
향아야, 방에서 술과 과일을 가져다 올려라.」
아이가 명대로 가니 사방이 고요하여 사람 소리 하나 없었다.
이생이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女曰:「此是北園中小樓下也。父母以我一女,情鍾甚篤,別構此樓于芙蓉池畔,方春時,名花盛開,欲使從侍兒遨遊耳。親闈之居,閨閤深邃,雖笑語啞咿,亦不能卒爾相聞也。」女酌綠蟻一巵,口占古風一篇曰:
여인이 말하였다.
「여기는 북쪽 동산 가운데 작은 누각 아래입니다. 부모가 저 하나뿐인 딸이라 정을 쏟음이 매우 도타워, 따로 이 누각을 부용 못 가에 지어 주셨습니다. 바야흐로 봄이 되어 이름난 꽃이 활짝 피면 시중드는 아이를 데리고 노닐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버이 계신 곳은 규방이 깊어, 비록 웃고 떠들어도 갑자기 서로 들리지 않습니다.」
여인이 초록빛 술 한 잔을 따르고 입으로 고풍 한 편을 지었다.
曲欄下壓芙蓉池,池上花叢人共語。香霧霏霏春融融,製出新詞歌白紵。月轉花陰入氍毹,共挽長條落紅雨。風攪淸香香襲衣,賈女初踏春陽舞。羅衫輕拂海棠枝,驚起花間宿鸚鵡。
굽은 난간이 부용 못을 눌렀는데 못 위 꽃떨기에서 사람이 함께 말하네. 향기로운 안개가 자욱하고 봄이 무르녹아 새 노래를 지어 「백저(白紵)」를 부르네. 달이 꽃 그늘을 돌아 담요에 드니 함께 긴 가지를 당겨 붉은 비를 떨어뜨리네. 바람이 맑은 향기를 흔들어 향이 옷에 배니 가씨네 딸이 처음 봄볕을 밟고 춤추네. 비단 적삼이 가벼이 해당화 가지를 스치니 꽃 사이에 자던 앵무를 놀라 일으키네.
生卽和之曰:
이생이 곧 화답하였다.
誤入桃源花爛熳,多少情懷不能語。翠鬟雙綰金▩低,楚楚春衫裁綠紵。東風初拆竝帶花,莫使繁枝戰風雨。飄飄仙袂影婆婆,叢桂陰中素娥舞。勝事未了愁必隨,莫製新詞敎鸚鵡。
잘못 도원(桃源)에 들어 꽃이 흐드러진데 얼마쯤의 정회를 말하지 못하네. 푸른 쪽을 둘로 지어 금 □을 낮추고 곱디고운 봄 적삼은 푸른 모시로 지었네. 동풍이 처음 나란한 꼭지의 꽃을 터뜨리니 번성한 가지가 비바람과 싸우게 하지 말라. 나부끼는 신선의 소매 그림자가 하늘거리니 떨기 계수 그늘 속에 흰 항아가 춤추네. 좋은 일이 끝나기 전에 시름이 반드시 따르니 새 노래를 지어 앵무에게 가르치지 말라.
〔「금(金)」 다음 한 글자가 저본에 빠져 있다.〕
吟罷,女謂生曰:「今日之事,必非小綠,郞須尾我,以遂情款。」言訖,女從北窓入,生隨之,樓梯在房中。綠梯而昇,果其樓也。文房几案,極其濟楚。一壁展煙江疊嶂圖,幽篁古木圖,皆名畵也。題詩其上,詩不知何人所作。其一曰:
읊기를 마치자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오늘 일은 반드시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낭군은 모름지기 저를 따라오시어 정다운 뜻을 이루십시오.」
말을 마치고 여인이 북쪽 창으로 들어가니 이생이 따랐다. 누각의 사다리가 방 안에 있어 사다리를 밟고 오르니 과연 그 누각이었다.
글방의 안석과 책상이 지극히 정결하였다. 한쪽 벽에는 「연강첩장도(煙江疊嶂圖)」와 「유황고목도(幽篁古木圖)」를 펴 두었는데 다 이름난 그림이었다. 그 위에 시를 제하였는데 누가 지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 하나에 이르기를,
何人筆端有餘力,寫此江心千疊山。壯哉方壺三萬丈,半出縹緲烟雲間。遠勢微茫幾百里,近見崒嵂靑螺鬟。滄波淼淼浮遠空,日暮遙望愁鄕關。對此令人意蕭索,疑泛湘江風雨灣。
어떤 사람의 붓끝에 남은 힘이 있어 이 강 가운데 천 겹의 산을 그렸는가. 장하구나, 방호(方壺)의 삼만 길이 아득한 안개구름 사이로 반쯤 솟았네. 먼 형세는 아득하여 몇백 리인가 가까이 보니 우뚝하여 푸른 소라 쪽 같네. 푸른 물결이 넘실넘실 먼 하늘에 떠 있고 해 저물어 멀리 바라보니 고향이 시름겹네. 이를 마주하니 사람의 뜻이 쓸쓸해져 상강(湘江)의 비바람 이는 물굽이에 뜬 듯하네.
其二曰:
그 둘에 이르기를,
幽篁蕭颯如有聲,古木偃蹇如有情。狂根盤屈惹苺苔,老幹夭矯排風雷。胸中自有造化窟,妙處豈與傍人說。韋偃與可已爲鬼,漏洩天機知有幾。晴窓嗒然淡相對,愛看幻墨神三昧。
그윽한 대숲이 쓸쓸히 소리가 있는 듯하고 늙은 나무가 굽어 정이 있는 듯하네. 미친 뿌리는 서리고 굽어 이끼를 끌어당기고 늙은 줄기는 굽이쳐 바람과 우레를 밀치네. 가슴속에 절로 조화의 굴이 있으니 묘한 곳을 어찌 곁 사람에게 말하랴. 위언(韋偃)과 문여가(文與可)는 이미 귀신이 되었으니 하늘의 기밀을 새어 낸 이가 몇이나 되는지 아는가. 갠 창가에 멍하니 담담히 마주하여 홀린 먹의 신묘한 삼매를 즐겨 보네.
一壁貼四時景,各四首,亦不知爲何人所作。其筆,則摹松雪眞字,體極精姸。其一幅曰:
한쪽 벽에는 네 철의 경치를 붙여 두었는데 저마다 네 수씩이었고, 또한 누가 지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 글씨는 송설(松雪)의 진서(眞字)를 본떴는데 체가 지극히 정묘하고 고왔다. 그 첫째 폭에 이르기를,
芙蓉帳暖香如縷,窓外霏霏紅杏雨。樓頭殘夢五更鐘,百舌啼在辛夷塢。燕子日長閨閤深,懶來無語停金針。花底雙雙飛蝶蛺,爭趰落花庭院陰。嫩寒輕透綠羅裳,空對春風暗斷腸。脉脉此情誰料得,百花叢裏舞鴛鴦。春色深藏黃四家,深紅淺綠映窓紗。一庭芳草春心苦,輕揭珠簾看落花。
부용 장막이 따스하고 향이 실 같은데 창 밖에 붉은 살구 비가 부슬부슬. 누각 머리 남은 꿈에 오경의 종소리 지빠귀가 목련 핀 언덕에서 우네.
제비 오는 날은 길고 규방은 깊은데 게을러 말없이 금바늘을 멈추네. 꽃 아래 쌍쌍이 나비가 날며 지는 꽃 그늘진 뜰을 다투어 좇네.
여린 추위가 가벼이 푸른 비단 치마에 스미니 부질없이 봄바람을 마주해 가만히 애를 끊네. 말없는 이 정을 누가 헤아리랴 온갖 꽃떨기 속에 원앙이 춤추네.
봄빛이 황씨네 넷째 집에 깊이 감추어져 짙은 붉음과 옅은 푸름이 창 사(紗)에 비치네. 한 뜰의 꽃다운 풀에 봄 마음이 괴로워 구슬발을 가벼이 걷고 지는 꽃을 보네.
其二幅曰:
그 둘째 폭에 이르기를,
小麥初胎乳燕斜,南園開遍石榴花。綠窓工女幷刀饗,擬試紅裙剪紫霞。黃梅時節雨簾纖,鸎囀槐陰燕入簾。又是一年風景老,棟花零落笋生尖。手拈靑杏打鸎兒,風過南軒日影遲。荷葉已香池水滿,碧波深處浴鸕鶿。藤牀筠簟浪波紋,屛畵瀟湘一抹雲。懶慢不堪醒午夢,半窓斜日欲西曛。
밀이 처음 배고 새끼 제비가 비껴 나는데 남쪽 동산에 석류꽃이 두루 피었네. 푸른 창의 길쌈하는 여인이 가위를 놀려 붉은 치마를 지으려 자줏빛 노을을 마름질하네.
누런 매실 철에 비가 발처럼 가늘고 꾀꼬리가 홰나무 그늘에서 울고 제비가 발로 드네. 또 한 해의 풍경이 늙어 가니 멀구슬꽃이 지고 죽순이 뾰족이 나네.
손에 푸른 살구를 집어 꾀꼬리를 때리는데 바람이 남쪽 마루를 지나 해 그림자가 더디네. 연잎이 이미 향기롭고 못물이 가득하니 푸른 물결 깊은 곳에 가마우지가 목욕하네.
등나무 평상 대자리에 물결무늬가 일고 병풍에 그린 소상(瀟湘)에 한 자락 구름. 게을러 낮꿈에서 깨기 어려운데 반쯤 열린 창의 비낀 해가 서쪽으로 저물려 하네.
其三幅曰:
그 셋째 폭에 이르기를,
秋風策策秋露凝,秋月娟娟秋水碧。一聲二聲鴻雁歸,更聽金井梧桐葉。床下百蟲鳴喞喞,床上佳人珠淚滴。良人萬里事征戰,今夜玉門關月白。新衣欲裁剪刀冷,低喚丫兒呼熨斗。熨斗火銷全未省,細撥秦箏又搔首。小池荷盡芭蕉黃,鴛鴦瓦上粘新霜。舊愁新恨不能禁,況聞蟋蟀鳴洞房。
가을바람이 설렁설렁 가을 이슬이 엉기고 가을 달이 곱디곱고 가을 물이 푸르네. 한 소리 두 소리 기러기가 돌아가고 다시 금 우물의 오동잎 소리를 듣네.
평상 아래 온갖 벌레가 찌륵찌륵 울고 평상 위 아름다운 이는 구슬 눈물을 떨구네. 낭군은 만 리 밖에서 싸움을 일삼으니 오늘 밤 옥문관에 달이 희겠지.
새 옷을 지으려 하나 가위가 차가워 나직이 계집아이를 불러 다리미를 찾네. 다리미의 불이 꺼진 것도 도무지 모른 채 가만히 진쟁(秦箏)을 뜯다가 또 머리를 긁네.
작은 못에 연이 지고 파초가 누레지니 원앙 기와 위에 새 서리가 앉네. 묵은 시름 새 한을 견디지 못하는데 하물며 귀뚜라미가 골방에서 우는 것을 들음이랴.
其四幅曰:
그 넷째 폭에 이르기를,
一枝梅影向窓橫,風緊西廊月色明。爐火未銷金筋撥,旋呼丫髻換茶鐺。林葉頻驚半夜霜,回風飄雪入長廊。無端一夜相思夢,都在氷河古戰場。滿窓紅日似春溫,愁鎖眉峰著睡痕。膽甁小梅腮半吐,含羞不語繡雙鴛。剪剪霜風掠北林,寒鳥啼月正關心。燈前爲有思人淚,滴在穿絲小挫針。
한 가지 매화 그림자가 창을 향해 비끼고 바람이 세찬 서쪽 행랑에 달빛이 밝네. 화로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아 금 젓가락으로 헤치고 얼른 계집아이를 불러 찻솥을 바꾸게 하네.
숲의 잎이 한밤중 서리에 자주 놀라고 회오리바람이 눈을 날려 긴 행랑에 드네. 까닭 없이 하룻밤 그리는 꿈이 모두 얼음 강 옛 싸움터에 있네.
창에 가득한 붉은 해가 봄처럼 따스한데 시름이 눈썹 봉우리를 잠가 조는 자국이 남았네. 담병(膽甁)의 작은 매화가 뺨을 반쯤 벌리는데 부끄러움을 머금고 말없이 원앙 한 쌍을 수놓네.
싹둑싹둑 서릿바람이 북쪽 숲을 스치고 찬 새가 달을 보고 우니 참으로 마음에 걸리네. 등불 앞에 사람 그리는 눈물이 있어 실 꿴 작은 바늘에 방울져 떨어지네.
一傍,別有小室一區,帳褥衾枕,亦甚整麗。帳外爇麝臍,燃蘭膏,熒煌映徹,恍如白晝。生與女,極其情歡,遂留數日,生謂女曰:「先聖有言,父母在。遊必有方,而今我定省。已過三日,親必倚閭而望,非人子之道也。」女惻然而頷之,踰垣而遣之。生自是以後,無已不往。
한쪽에 따로 작은 방 한 칸이 있었는데 휘장과 요와 이불과 베개가 또한 몹시 가지런하고 고왔다. 휘장 밖에는 사향을 사르고 난초 기름을 태워, 반짝이는 빛이 환히 비쳐 대낮인 듯하였다.
이생이 여인과 더불어 정과 즐거움을 다하며 마침내 며칠을 머물렀다. 이생이 여인에게 말하였다.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가 계시면 노닒에 반드시 가는 곳을 알린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아침저녁 문안을 드리지 못한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니 어버이가 반드시 마을 어귀에 기대어 기다리실 것입니다. 자식 된 도리가 아닙니다.」
여인이 서글피 고개를 끄덕이고 담을 넘어 보냈다. 이생은 이로부터 가지 않는 저녁이 없었다.
一夕,李生之父,問曰:「汝朝出而暮還者,將以學先聖仁義之格言,昏出而曉還,當爲何事?必作輕薄子,踰垣牆,折樹壇耳。事如彰露,人皆譴我敎子之不嚴,而如其女,定是高門右族,則必以爾之狂狡,穢彼門戶,獲戾人家,其事不小,速去嶺南,率奴隷監農,勿得復還。」卽於翌日,謫送蔚州。
어느 저녁 이생의 아버지가 물었다.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장차 옛 성인의 어질고 옳은 말씀을 배우려는 것이다. 그런데 저물녘에 나가 새벽에 돌아오니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 반드시 경박한 자가 되어 담을 넘고 남의 집 나무를 꺾는 것이겠지.
일이 만약 드러나면 사람들이 다 내가 자식 가르치기를 엄히 하지 않았다고 나무랄 것이다. 게다가 그 여자가 정녕 높은 문벌의 이름난 겨레라면, 반드시 네 미친 짓으로 저 집 문호를 더럽혀 남의 집에 죄를 얻을 것이니 그 일이 작지 않다.
빨리 영남으로 가서 종들을 데리고 농사를 살피고 다시 돌아오지 말라.」
곧 이튿날 울주로 내쳐 보냈다.
女每夕,於花園待之,數月不還。女意其得病,命香兒,密問於李生之鄰,鄰人曰:「李郞,得罪於家君,去嶺南,已數月矣。」女聞之,臥疾在床,轉轉不起,水醬不入於口,言語支離,肌膚憔悴,父母怪之,問其病狀,喑喑不言。搜其箱篋,得李生前日唱和詩,擊節驚訝曰:「幾乎失我女子矣。」問曰:「李生誰耶?」至是,女不能復隱,細語在咽中,告父母曰:「父親母親,鞠育恩深,不能相匿。竊念男女相感,人情至重。是以,摽梅迨吉,咏於周南,咸腓之凶,刑於羲易。自將蒲柳之質,不念桑落之詩,行露沾衣,竊被傍人之嗤。絲蘿托木,已作渭兒之行。罪已貫盈,累及門戶。然而彼狡童兮,一偸賈香,千生喬怨,以眇眇之弱軀,忍悄悄之獨處,情念日深,沈痾日篤,濱於死地,將化窮鬼。父母如從我願,終保餘生,倘違情款,斃而有已。當與李生,重遊黃壞之下,誓不登他門也。」
여인은 저녁마다 꽃동산에서 기다렸으나 몇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여인은 그가 병을 얻었나 여겨 향아에게 명하여 이생의 이웃에게 가만히 묻게 하였다. 이웃 사람이 말하였다. 「이 낭군은 아버님께 죄를 얻어 영남으로 간 지 이미 몇 달입니다.」
여인이 이를 듣고 병들어 평상에 누워 뒤척이며 일어나지 못하였다. 물과 미음이 입에 들어가지 않고 말이 흐트러지며 살결이 시들었다.
부모가 괴이하게 여겨 그 병의 모양을 물었으나 잠잠히 말하지 않았다. 상자를 뒤져 이생과 앞서 주고받은 시를 얻고는 무릎을 치고 놀라 말하였다. 「하마터면 내 딸을 잃을 뻔하였구나.」
물었다. 「이생이 누구냐.」
이에 이르러 여인이 다시 숨기지 못하고 가는 소리로 목 안에서 부모에게 아뢰었다.
「아버님 어머님, 길러 주신 은혜가 깊으니 서로 숨기지 못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남녀가 서로 느끼는 것은 사람의 정에 지극히 무거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매실이 떨어질 제 좋은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 「주남(周南)」에 읊어졌고, 장딴지가 움직이는 흉함이 「주역」에 본보기로 적혔습니다.
갯버들 같은 몸으로 뽕잎 지는 시를 생각하지 않고, 길 이슬에 옷을 적셔 가만히 곁 사람의 비웃음을 입었습니다. 새삼덩굴이 나무에 붙듯 이미 위수 가 여인의 걸음을 하였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허물이 문호에 미쳤습니다.
그러나 저 교활한 아이가 한 번 향을 훔친 뒤로 천 가지 원망이 생겼습니다. 가냘픈 약한 몸으로 쓸쓸히 홀로 지냄을 견디자니 정과 그리움이 날로 깊어지고 깊은 병이 날로 위중해져, 죽을 땅에 가까워 궁한 귀신이 되려 합니다.
부모께서 만약 제 바람을 따라 주시면 끝내 남은 목숨을 보전하겠고, 만약 정다운 뜻을 어기시면 죽을 뿐입니다. 마땅히 이생과 더불어 누런 흙 아래에서 다시 노닐지언정 맹세코 다른 집 문에 오르지 않겠습니다.」
於是,父母已知其志,不復問病,且警且誘,以寬其心,復修媒妁之禮,問于李家。李氏問崔家門戶優劣曰:「吾家豚犬,雖年少風狂,學問精通,身彩似人,所冀捷龍頭於異日,占鳳鳴於他年,不願速求婚媾也。」媒者,以言返告,崔氏復遣曰:「一時朋伴,皆稱令嗣才華邁人,今雖蟠屈,豈是池中之物。宜速定嘉會之晨,以合二姓之好。」媒者,又以其言,返告李生之父,父曰:「吾亦自少,把冊窮經,年老無成。奴僕逋逃,親戚寡助,生涯疎闊,家計伶俜,而況巨家大族,豈以一人寒儒,留意爲贅郞乎。是必好事者,過譽吾家,以誣高門也。」媒,又告崔家,崔家曰:「納采之禮,漿束之事,吾盡辨矣。宜差穀旦,以定花燭之期。」媒者,又返告之。李家至是,稍回其意,卽遣人,召生問之。生喜不自勝,乃作詩曰:
이에 부모가 이미 그 뜻을 알고 다시 병을 묻지 않았다. 한편 타이르고 한편 달래어 그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다시 중매의 예를 갖추어 이씨 집에 물었다.
이씨가 최씨 집 문호의 낫고 못함을 물어보고 말하였다.
「우리 집 자식이 비록 나이 젊어 바람기가 있으나 학문이 정통하고 몸가짐이 사람 같으니, 바라기는 다른 날 용두를 잡고 뒷날 봉황의 울음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서둘러 혼인을 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중매가 그 말로 돌아가 알리니 최씨가 다시 보내어 말하였다.
「한때의 벗들이 다 아드님의 재화가 남보다 뛰어나다 일컫습니다. 이제 비록 서리어 굽혀 있으나 어찌 못 가운데 있을 물건이겠습니까. 마땅히 빨리 좋은 모임의 날을 정하여 두 성의 좋은 일을 합하시지요.」
중매가 또 그 말로 이생의 아버지에게 돌아가 알리니 아버지가 말하였다.
「나도 또한 젊어서부터 책을 잡고 경서를 궁구하였으나 나이 늙도록 이룬 것이 없소. 종들은 달아나고 친척은 도움이 적어 살아갈 길이 성기고 집 살림이 외롭소. 하물며 큰 집 큰 겨레가 어찌 한 사람 가난한 선비를 마음에 두어 데릴사위로 삼겠소. 이는 반드시 일 좋아하는 이가 우리 집을 지나치게 기려 높은 문호를 속인 것이오.」
중매가 또 최씨 집에 알리니 최씨 집이 말하였다. 「납채의 예와 옷감 보내는 일은 우리가 다 마련하겠습니다. 마땅히 좋은 날을 가려 화촉의 기약을 정하시지요.」
중매가 또 돌아가 알렸다. 이씨 집이 이에 이르러 조금 그 뜻을 돌려 곧 사람을 보내어 이생을 불러 물었다. 이생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시를 지었다.
破鏡重圓會有時,天津烏鵲助佳期。從今月老纏繩去,莫向東風怨子規。
깨진 거울이 다시 둥글어지는 데 때가 있으니 하늘 나루의 까막까치가 좋은 기약을 돕네. 이제부터 달 늙은이가 실을 얽어 가리니 동풍을 향해 두견을 원망하지 말라.
女聞之,病亦稍愈,又作詩曰:
여인이 이를 듣고 병이 또한 조금 나아 또 시를 지었다.
惡因緣是好因緣,盟語終須到底圓。共輓鹿車何日是,倩人扶起理花鈿。
궂은 인연이 곧 좋은 인연이니 맹세한 말이 마침내 끝내 둥글어졌네. 함께 사슴 수레를 끄는 것이 어느 날인가 사람을 청해 부축해 일어나 꽃비녀를 매만지네.
於是,擇吉日,遂定婚禮,而續其絃焉。自同牢之後,夫婦愛而敬之,相待如賓,雖鴻光鮑桓,不足言其節義也。生翌年,捷高科,登顯仕,聲價聞于朝著。
이에 좋은 날을 가려 마침내 혼례를 정하고 끊어진 줄을 다시 이었다. 한 상에서 밥을 나눈 뒤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여 손님처럼 대하니, 비록 양홍과 맹광, 포선과 환소군이라도 그 절의를 말할 것이 못 되었다.
이듬해 이생이 높은 과거에 붙어 벼슬에 올라 이름값이 조정에 들렸다.
辛丑年,紅賊據京城,王移福州。賊焚蕩室廬,臠炙人畜。夫婦親戚,不能相保,東奔西竄,各自逃生。生挈家,隱匿窮崖。有一賊,拔劍而逐。生奔走得脫,女爲賊所虜,欲逼之,女大罵曰:「虎鬼殺啗我,寧死葬於豺狼之腹中,安能作狗彘之匹乎?」賊怒,殺而剮之。
신축년에 홍건적이 서울을 차지하여 임금이 복주로 옮겼다. 도적이 집을 불사르고 사람과 짐승을 저며 구웠다. 부부와 친척이 서로 지키지 못하고 동으로 달아나고 서로 숨어 저마다 살길을 찾았다.
이생이 집안을 이끌고 궁벽한 벼랑에 숨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뽑아 쫓았다. 이생은 달아나 벗어났으나 여인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도적이 겁탈하려 하자 여인이 크게 꾸짖었다.
「범 같고 귀신 같은 놈아, 나를 죽여 먹어라. 차라리 죽어 승냥이와 이리의 뱃속에 묻힐지언정 어찌 개돼지의 짝이 되겠느냐.」
도적이 노하여 죽이고 살을 저몄다.
生竄于荒野,僅保餘軀。聞賊已滅,遂尋父母舊居,其家已爲兵火所焚。又至女家,廊廡荒凉,鼠喞鳥喧。悲不自勝,登于小樓,收淚長噓。奄至日暮,塊然獨坐,佇思前遊,宛如一夢。
이생은 거친 들에 숨어 겨우 남은 몸을 보전하였다. 도적이 이미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부모의 옛집을 찾으니 그 집은 이미 병화에 불탔다. 또 여인의 집에 이르니 행랑이 거칠고 쓸쓸하여 쥐가 찍찍대고 새가 지저귈 뿐이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작은 누각에 올라 눈물을 거두고 길게 한숨지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멍하니 홀로 앉아 지난날의 노닒을 우두커니 생각하니 완연히 한 꿈 같았다.
將及二更,月色微吐,光照屋梁。漸聞廊下,有跫然之音,自遠而近,至則崔氏也。生雖知已死,愛之甚篤,不復疑訝。遽問曰:「避於何處,全其軀命?」女執生手,慟哭一聲。乃敍情曰:「妾本良族,幼承庭訓,工刺繡裁縫之事,學詩書仁義之方,但識閨門之治,豈解境外之修。然而一窺紅杏之墻,自獻碧海之珠。花前一笑,恩結平生,帳裏重遘,情愈百年。言至於此,悲慙曷勝。將謂偕老而歸居,豈意橫折而顚溝,終不委身於豺虎,自取磔肉於泥沙,固天性之自然,匪人情之可忍。却恨一別於窮崖,竟作分飛之匹鳥。家亡親沒,傷殢魄之無依,義重命輕,幸殘軀之免辱。誰憐寸寸之灰心,徒結斷斷之腐腸,骨骸暴野,肝膽塗地。細料昔時之歡娛,適爲當日之愁寃。今則鄒律已吹於幽谷,倩女再返於陽閒。蓬萊一紀之約綢繆,聚窟三生之香芬郁,重契闊於此時,期不負乎前盟,如或不忘,終以爲好,李郞其許之乎?」生喜且感曰:「固所願也。」相與款曲抒情。言及家産被寇掠有無,女曰:「一分不失,埋於某山某谷也。」又問:「兩家父母骸骨安在?」女曰:「暴棄某處。」敍情罷,同寢極歡如昔。
이경이 되려 할 때 달빛이 어스름히 토하여 빛이 들보를 비추었다. 점점 행랑 아래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멀리서 가까워졌다. 이르러 보니 최씨였다.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줄 알았으나 사랑함이 매우 도타워 다시 의심하지 않고 급히 물었다. 「어디에 피하여 몸과 목숨을 온전히 하였소.」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한 소리 통곡하였다. 이에 정을 폈다.
「저는 본디 좋은 겨레로 어려서 집안의 가르침을 받아 수놓고 마름질하는 일에 공교로웠고 시와 글과 어질고 옳은 방도를 배웠습니다. 다만 규문의 다스림만 알았지 어찌 바깥의 닦음을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한 번 붉은 살구 담장을 엿보고 스스로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쳤습니다. 꽃 앞의 한 번 웃음에 은혜가 한평생에 맺혔고, 휘장 안에서 거듭 만나 정이 백 년보다 더하였습니다. 말이 여기에 이르니 슬픔과 부끄러움을 어이 이기겠습니까.
장차 함께 늙어 돌아가 살리라 여겼는데 어찌 가로질러 꺾여 도랑에 넘어질 줄 알았겠습니까. 끝내 승냥이와 범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진흙과 모래에 살이 찢기기를 취하였으니, 진실로 천성의 저절로 그러함이요 사람의 정으로 참을 수 있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한스러운 것은 궁벽한 벼랑에서 한 번 헤어져 마침내 흩어져 나는 짝새가 된 것입니다. 집이 망하고 어버이가 돌아가시매 머무는 넋이 의지할 데 없음이 서럽고, 의리가 무겁고 목숨이 가벼워 다행히 남은 몸이 욕됨을 면하였습니다.
누가 마디마디 재가 된 마음을 가엾이 여기겠습니까. 부질없이 끊어지고 끊어진 썩은 창자만 맺혔고, 뼈는 들에 드러나고 간과 쓸개는 땅에 발렸습니다. 지난날의 즐거움을 곰곰이 헤아리면 그것이 곧 오늘의 시름과 원한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추연(鄒衍)의 피리가 이미 그윽한 골짜기에 불렸고 천녀(倩女)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습니다. 봉래의 열두 해 언약이 얽히었고 취굴주(聚窟洲) 삼생의 향이 향기롭습니다. 이때에 거듭 만남을 무겁게 하여 앞서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기를 기약하니, 만약 잊지 않으시고 끝내 좋게 여기신다면 낭군께서 허락하시겠습니까.」
이생이 기뻐하고 또 느꺼워 말하였다. 「진실로 바라던 바요.」
서로 더불어 곡진히 정을 폈다. 말이 집안 재산이 도적에게 노략된 것이 있는지 없는지에 미치자 여인이 말하였다. 「하나도 잃지 않고 아무 산 아무 골에 묻었습니다.」
또 물었다. 「두 집 부모의 뼈는 어디에 있소.」
여인이 말하였다. 「아무 곳에 드러나 버려져 있습니다.」
정을 펴기를 마치고 함께 자며 즐거움을 다하는 것이 예와 같았다.
明日,與生俱往尋瘞處,果得金銀數錠及財物若干。又得收拾兩家父母骸骨。貿金賣財,各合葬於五冠山麓,封樹祭獻,皆盡其禮。其後,生亦不求仕官,與崔氏居焉。幹僕之逃生者,亦自來赴。生自是以後,懶於人事,雖親戚賓客賀弔,杜門不出,常與崔氏,或酬或和,琴瑟偕和,荏苒數年。
이튿날 이생과 함께 가서 묻은 곳을 찾으니 과연 금과 은 몇 덩이와 재물 얼마를 얻었다. 또 두 집 부모의 뼈를 거두어 모았다. 금을 팔고 재물을 팔아 저마다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고, 봉분을 짓고 나무를 심고 제사를 올려 다 그 예를 다하였다.
그 뒤에 이생은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씨와 함께 살았다. 달아났던 종들도 또한 스스로 찾아왔다. 이생은 이로부터 사람의 일에 게을러, 비록 친척과 손님의 하례와 조문이 있어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늘 최씨와 더불어 시를 주고받으며 거문고와 비파처럼 어울려 몇 해가 흘렀다.
一夕,女謂生曰:「三遇佳期,世事蹉跎,歡娛不厭,哀別遽至。」遂嗚咽,生驚問曰:「何故至此?」女曰:「冥數不可躱也,天帝以妾與生,緣分未斷,又無罪障,假以幻體,與生暫割愁腸,非久留人世,以惑陽人。」命婢兒進酒,歌玉樓春一闋,以侑生,歌曰:
어느 저녁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 좋은 때를 만났으나 세상일이 어그러져, 즐거움이 싫지 않은데 슬픈 이별이 문득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목메어 울었다.
이생이 놀라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소.」
여인이 말하였다. 「저승의 셈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늘 임금께서 저와 낭군이 인연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또 죄의 업장이 없다 하시어, 헛된 몸을 빌려 낭군과 잠시 시름겨운 창자를 나누게 하신 것입니다. 오래 사람 세상에 머물러 산 사람을 홀리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계집종에게 명하여 술을 올리게 하고 「옥루춘(玉樓春)」 한 가락을 불러 이생에게 권하며 노래하였다.
干戈滿目交揮處,玉碎花飛鴛失侶。殘骸狼籍竟誰埋,血汚遊魂無與語。高唐一下巫山女,破鏡重分心慘楚。從玆一別兩茫茫,天上人間音信阻。
방패와 창이 눈에 가득 서로 휘두르던 곳 옥이 부서지고 꽃이 날아 원앙이 짝을 잃었네. 흩어진 뼈를 마침내 누가 묻어 주랴 피 묻은 떠도는 넋은 함께 말할 이가 없네. 고당(高唐)에 한 번 내려온 무산의 여인이여 깨진 거울이 거듭 갈리니 마음이 참담하네. 이로부터 한 번 헤어지면 둘 다 아득하여 하늘 위와 사람 세상에 소식이 막히리라.
每歌一聲,飮泣數下,殆不成腔。生亦悽惋不已曰:「寧與娘子,同入九泉,豈可無聊獨保殘生。向者,傷亂之後,親戚僮僕,各相亂離,亡親骸狼籍原野,儻非娘子,誰能奠埋。古人云: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盡在娘子,天性之純孝,人情之篤厚也。感激無已,自愧可勝。願娘子,淹留人世,百年之後,同作塵土。」女曰:「李郞之壽,剩有餘紀,妾已載鬼籙,不能久視。若固眷戀人間,違犯條令,非唯罪我,兼亦累及於君。但妾之遺骸,散於某處,倘若垂恩,勿暴風日。」相視泣下數行云:「李郞珍重。」言訖漸滅,了無踪迹。
한 소리를 노래할 때마다 눈물을 몇 줄기 삼켜 거의 가락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생 또한 서글퍼 마지않으며 말하였다.
「차라리 낭자와 함께 구천에 들지언정 어찌 하염없이 홀로 남은 목숨을 지키겠소. 지난날 난리를 겪은 뒤에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흩어지고 돌아가신 어버이의 뼈가 들에 흩어져 있었는데, 만약 낭자가 아니었다면 누가 능히 제사 지내고 묻을 수 있었겠소.
옛사람이 이르기를 『살아서는 예로써 섬기고 죽어서는 예로써 장사 지낸다』 하였는데 그것이 다 낭자에게 있었소. 천성의 순수한 효도요 사람 정의 도타움이오. 느껍고 벅차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길 수 없소. 원컨대 낭자는 사람 세상에 오래 머물다가 백 년 뒤에 함께 티끌과 흙이 됩시다.」
여인이 말하였다.
「낭군의 목숨은 아직 남은 해가 넉넉하나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에 올라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만약 굳이 인간에 마음을 두어 매달리면 조목과 명령을 어기는 것이니, 저에게 죄가 될 뿐 아니라 아울러 낭군에게도 허물이 미칩니다.
다만 저의 남은 뼈가 아무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드리우시려거든 바람과 볕에 드러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몇 줄기 흘리고 이르기를, 「낭군이여, 부디 몸 보중하십시오.」
말을 마치자 점점 스러져 자취가 조금도 없었다.
生拾骨,附葬于親墓傍。旣葬,生亦以追念之故,得病數月而卒。聞者莫不傷歎,而慕其義焉。
이생이 뼈를 거두어 어버이 무덤 곁에 붙여 묻었다. 장사를 마치고 이생 또한 그리워하는 까닭으로 병을 얻어 몇 달 만에 죽었다. 듣는 이가 서러워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 의로움을 사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