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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炎浮州志

금오신화 金鰲新話 · 김시습(金時習) · 1465~1470년 무렵 · 단락 42 · 한자 3,595자 · 낭독 14.4분

「금오신화」 남염부주지 「南炎浮州志」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문 소설이고, 이 서가에 드는 첫 조선 책이다. 김시습이 세상을 등지고 경주 금오산에 숨어 살며 지었다. 다섯 편이 다 산 사람과 죽은 이,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이야기다 — 부처와 저포를 던져 아내를 얻었더니 왜구에게 죽은 넋이었고(만복사 저포기), 담을 넘어 맺은 인연이 홍건적에게 끊겼다가 넋으로 돌아오며(이생규장전), 부벽루에서 만난 여인은 기자의 딸이라 하며 위만에게 나라를 잃은 일을 말한다(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는 유학자가 염라왕과 마주 앉아 귀신과 윤회를 두고 따지고, 용궁부연록은 용왕의 잔치에 불려가 상량문을 짓는다. 다섯 편의 주인공이 하나같이 벼슬길이 막힌 선비이고, 그들을 알아주는 이는 저승에만 있다.

成化初,慶州有朴生者,以儒業自勉。常補大學館,不得登一試,常怏怏有憾,而意氣高邁,見勢不屈,人以爲驕俠。然對人接話,淳愿慤厚,一鄕稱之。

성화(成化) 초에 경주에 박생(朴生)이라는 이가 있어 유학을 업으로 삼아 스스로 힘썼다. 늘 태학관에 뽑혀 있었으나 한 번도 과거에 오르지 못하여 늘 서운하고 한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뜻과 기운이 높고 뛰어나 세력을 보아도 굽히지 않으니 사람들이 교만하고 협기 있다 하였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여 말을 나누면 순박하고 미쁘고 도타워 한 고을이 일컬었다.

生嘗疑浮屠巫覡鬼神之說,猶豫未決,旣而質之中庸,參之易辭,自負不疑。而以淳厚,故與浮屠交,如韓之顚,柳之巽者,不過二三人。浮屠亦以文士交,如遠之宗雷,遁之王謝,爲莫逆友。

박생은 일찍이 부처와 무당과 귀신의 말을 의심하여 머뭇거리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중용」에 물어보고 「주역」의 말에 견주어 보고는 스스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하고 도타운 까닭에 부처를 따르는 이들과도 사귀었으니, 한유에게 태전(太顚)이 있고 유종원에게 손(巽) 상인이 있던 것과 같은 이가 두셋에 지나지 않았다. 부처를 따르는 이들도 또한 글하는 선비로 사귀었으니, 혜원(慧遠)에게 종병과 뇌차종이 있고 지둔(支遁)에게 왕희지와 사안이 있던 것처럼 막역한 벗이 되었다.

一日,因浮屠,問天堂地獄之說,復疑云:「天地一陰陽耳。那有天地之外,更有天地?必詖辭也。」問之浮屠,浮屠亦不能決答,而以罪福響應之說答之,生亦不能心服也。

하루는 부처를 따르는 이로 말미암아 천당과 지옥의 말을 묻고 다시 의심하여 말하였다. 「하늘과 땅은 하나의 음양일 뿐이다. 어찌 하늘과 땅 밖에 다시 하늘과 땅이 있겠는가. 반드시 치우친 말이다.」

부처를 따르는 이에게 물으니 그도 또한 결단하여 답하지 못하고 죄와 복이 메아리처럼 응한다는 말로 답하였다. 박생도 또한 마음으로 수긍하지 못하였다.

常著一理論,以自警,蓋不爲他岐所惑。

늘 「일리론(一理論)」 한 편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였으니, 대개 다른 갈래에 홀리지 않으려 함이었다.

其略曰:「常聞天下之理,一而已矣。一者何?無二致也。理者何?性而已矣。性者何?天之所命也。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氣以成形,理亦賦焉。所謂理者,於日用事物上,各有條理,語父子則極其親,語君臣則極其義,以至夫婦長幼,莫不各有當行之路,是則所謂道而理之具於吾心者也。循其理,則無適而不安,逆其理而拂性,則菑逮。窮理盡性,究此者也。格物致知,格此者也。蓋人之生,莫不有是心,亦莫不具是性,而天下之物,亦莫不有是理。以心之虛靈,循性之固然,卽物而窮理,因事而推源,以求至乎其極,則天下之理,無不著現明顯,而理之至極者,莫不森於方寸之內矣。以是而推之,天下國家,無不包括,無不該合,參諸天地而不悖,質諸鬼神而不惑,歷之古今而不墜,儒者之事,止於此而已矣。天下豈有二理哉?彼異端之說,吾不足信也。」

그 대략에 이르기를,

「일찍이 들으니 천하의 이치는 하나일 뿐이다. 하나란 무엇인가. 두 갈래가 없다는 것이다. 이치란 무엇인가. 성(性)일 뿐이다. 성이란 무엇인가. 하늘이 명한 바다.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지어 내니, 기운으로 꼴을 이루고 이치도 또한 부여된다. 이른바 이치란 날마다 쓰는 일과 물건 위에 저마다 조리가 있는 것이다. 아비와 자식을 말하면 그 친함을 다하고 임금과 신하를 말하면 그 의로움을 다하며, 부부와 어른과 아이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마땅히 행할 길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 곧 이른바 도(道)요, 이치가 내 마음에 갖추어진 것이다.

그 이치를 따르면 가는 데마다 편안하지 않음이 없고, 그 이치를 거슬러 성을 어기면 재앙이 미친다. 이치를 궁구하고 성을 다한다는 것이 이것을 궁구하는 것이요, 물건에 나아가 앎을 이룬다는 것이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대개 사람이 태어남에 이 마음이 있지 않은 이가 없고 또한 이 성을 갖추지 않은 이가 없으며, 천하의 물건도 또한 이 이치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마음의 비고 신령함으로 성의 본디 그러함을 따라, 물건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하고 일로 말미암아 근원을 미루어 그 지극한 데 이르기를 구하면, 천하의 이치가 드러나 밝지 않은 것이 없고 이치의 지극한 것이 마음 한 치 안에 빽빽이 서지 않은 것이 없다.

이로써 미루면 천하와 나라와 집안이 감싸이지 않음이 없고 들어맞지 않음이 없다. 하늘과 땅에 견주어도 어그러지지 않고 귀신에게 물어도 홀리지 않으며 예와 이제를 지나도 떨어지지 않으니, 유자(儒者)의 일은 여기에 그칠 뿐이다. 천하에 어찌 두 이치가 있겠는가. 저 다른 갈래의 말은 내가 믿을 것이 못 된다.」

一日,於所居室中,夜挑燈讀易,支枕假寐,忽到一國,乃洋海中一島嶼也。其地無草木沙礫,所履非銅則鐵也。晝則烈焰亘天,大地融冶,夜則凄風自西,砭人肌骨,吒波不勝。又有鐵崖如城,緣于海濱,只有一鐵門,宏壯,關鍵甚固。守門者,喙牙獰惡,執戈鎚以防外物。其中居民,以鐵爲室,晝則焦爛,夜則凍烈,唯朝暮蠢蠢,似有笑語之狀,而亦不甚苦也。生驚愕逡巡,守門者喚之。生遑遽不能違命,踧踖而進。

하루는 사는 방 안에서 밤에 등불을 돋우고 「주역」을 읽다가 베개를 괴고 잠깐 졸았는데, 홀연 한 나라에 이르렀다. 곧 큰 바다 가운데 한 섬이었다.

그 땅에는 풀과 나무와 모래와 자갈이 없고 밟는 것이 구리 아니면 쇠였다. 낮에는 사나운 불꽃이 하늘에 뻗쳐 큰 땅이 녹아 부어지는 듯하고, 밤에는 처량한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와 사람의 살과 뼈를 찔러 견딜 수 없었다.

또 쇠 벼랑이 성 같은 것이 바닷가를 둘러 있었는데 오직 쇠문 하나가 있어 크고 웅장하며 빗장이 매우 굳었다. 문을 지키는 이는 부리와 이가 사납고 모질었으며 창과 쇠몽둥이를 잡고 바깥 것을 막았다.

그 안에 사는 백성은 쇠로 집을 삼았는데, 낮에는 타서 문드러지고 밤에는 얼어 매서웠다. 오직 아침저녁으로만 꿈틀거리며 웃고 말하는 모양이 있는 듯하였고 또한 그리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박생이 놀라 머뭇거리니 문 지키는 이가 불렀다. 박생이 허둥지둥 명을 어기지 못하고 조심스레 나아갔다.

守門者,竪戈而問曰:「子何如人也?」

문 지키는 이가 창을 세우고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生慄且答曰:「某國某土某,一介迂儒,干冒靈官,罪當寬宥,法當矜恕!」

박생이 떨며 답하였다. 「아무 나라 아무 땅의 아무개는 한낱 물정 모르는 선비입니다. 신령한 벼슬아치를 범하였으니 죄는 마땅히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법은 마땅히 가엾이 여겨 주십시오.」

拜伏再三,且謝搪突([扌+突])。

두세 번 절하고 엎드려 또 함부로 부딪친 것을 사죄하였다.

守門者曰:「爲儒者,當逢威不屈,何磬折之如是?吾儕欲見識理君子久矣。我王亦欲見如君者,以一語傳白于東方。少坐!吾將告子于王。」

문 지키는 이가 말하였다. 「유자 된 이는 마땅히 위엄을 만나도 굽히지 않아야 하거늘 어찌 이처럼 몸을 꺾는가. 우리 무리는 이치를 아는 군자를 보고자 한 지 오래다. 우리 임금께서도 또한 그대 같은 이를 보시어 한마디 말을 동방에 전하고자 하신다. 잠시 앉으라. 내 장차 그대를 임금께 아뢰겠다.」

言訖,趨蹌而入,俄然出語曰:「王欲延子於便殿!子當以訏言對,不可以威厲諱,使我國人民,得聞大道之要!」

말을 마치고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나와 말하였다. 「임금께서 그대를 편전에 맞이하려 하신다. 그대는 마땅히 큰 말로 대답할 것이요, 위엄이 매섭다 하여 숨겨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백성으로 하여금 큰 도의 요체를 듣게 하라.」

有黑衣白衣二童,手把文卷而出,一黑質靑字,一白質朱字,張于生之左右以示之。生見朱字,有名姓,曰:「現住某國朴某,今生無罪,當不爲此國民。」

검은 옷 입은 아이와 흰 옷 입은 아이 둘이 손에 문서를 잡고 나왔다. 하나는 검은 바탕에 푸른 글자요 하나는 흰 바탕에 붉은 글자였는데 박생의 좌우에 펴서 보였다. 박생이 붉은 글자를 보니 이름과 성이 있어 이르기를, 「지금 아무 나라에 사는 박 아무개는 이승에 죄가 없으니 마땅히 이 나라의 백성이 되지 않는다」 하였다.

生問曰:「示不肖以文卷,何也?」

박생이 물었다. 「못난 이에게 문서를 보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童曰:「黑質者,惡簿也。白質者,善簿也。在善簿者,王當以聘士禮迎之,在惡簿者,雖不加罪,以民隸例勑之。王若見生,禮當詳悉。」

아이가 말하였다. 「검은 바탕은 악의 장부요 흰 바탕은 선의 장부입니다. 선의 장부에 있는 이는 임금께서 마땅히 선비를 맞는 예로 맞으시고, 악의 장부에 있는 이는 비록 죄를 더하지 않으나 백성이나 종의 예로 다스리십니다. 임금께서 만약 선비를 보시면 예를 마땅히 자세히 다하실 것입니다.」

言訖,持簿而入。須臾飆輪寶車,上施蓮座,嬌童彩女,執拂擎盖,武隸邏卒,揮戈喝道。生擧首望之,前有鐵城三重,宮闕嶔峩,在金山之下,火炎漲天,融融勃勃。顧視道傍人物於火燄中,履洋銅融鐵,如蹋濘泥,生之前路可數十步許,如砥而無流金烈火,蓋神力所變爾。至王城,四門豁開,池臺樓觀,一如人間。有二美姝,出拜扶携而入。王戴通天之冠,束文玉之帶,秉珪下階而迎。生俯伏在地,不能仰視。

말을 마치고 장부를 가지고 들어갔다.

이윽고 회오리 바퀴의 보배 수레에 위로 연꽃 자리를 폈고, 어여쁜 아이와 채색 옷 입은 여인이 총채를 잡고 일산을 받들었으며, 무사와 순라꾼이 창을 휘두르며 길을 외쳤다.

박생이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앞에 쇠 성이 세 겹이요 궁궐이 우뚝하여 금 산 아래 있는데, 불꽃이 하늘에 넘쳐 활활 타올랐다. 길가의 사람과 물건을 돌아보니 불꽃 가운데서 녹은 구리와 쇠를 밟는 것이 진창을 밟듯 하였다. 그런데 박생의 앞길 수십 걸음쯤은 숫돌처럼 판판하고 흐르는 쇠와 사나운 불이 없었으니, 대개 신령한 힘으로 바꾼 것이었다.

임금의 성에 이르니 네 문이 활짝 열렸는데 못과 대와 누각이 여느 사람 세상과 한가지였다. 두 아름다운 여인이 나와 절하고 부축하여 들어갔다.

임금은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무늬 옥의 띠를 매고 홀을 잡고 섬돌을 내려와 맞았다. 박생이 땅에 엎드려 우러러보지 못하였다.

王曰:「土地殊異,不相統攝,而識理君子,豈可以威勢屈其躬也?」

임금이 말하였다. 「땅이 서로 다르고 서로 거느리지 않는데, 이치를 아는 군자를 어찌 위세로 그 몸을 굽히게 하겠는가.」

挽袖而登殿上,別施一床,卽玉欄金床也。坐定,王呼侍者進茶。生側目視之,茶則融銅,果則鐵丸也。生且驚且懼,而不能避,以觀其所爲。進於前,則香茗佳果,馨香芬郁,薰于一殿。

소매를 당겨 전각 위에 오르게 하고 따로 한 상을 베푸니 곧 옥 난간에 금 평상이었다. 자리가 정해지자 임금이 시중드는 이를 불러 차를 올리게 하였다.

박생이 곁눈으로 보니 차는 녹은 구리요 과일은 쇠 탄환이었다. 박생이 한편 놀라고 한편 두려웠으나 피하지 못하고 그 하는 양을 보았다. 앞에 올려놓으니 향기로운 차와 아름다운 과일로 향내가 그윽하여 온 전각에 배었다.

茶罷,王語生曰:「士不識此地乎?所謂炎浮洲也。宮之北山,卽沃焦山也。此洲在天之南,故曰南炎浮洲,炎浮者,炎火赫赫,常浮大虛,故稱之云耳。我名燄摩,言爲燄所摩也。爲此土君師,已萬餘載矣。壽久而靈,心之所之,無不神通,志之所欲,無不適意。蒼頡作字,送吾民以哭之,瞿曇成佛,遣吾徒以護之。至於三五周孔,則以道自衛,吾不能側足於其間也。」

차를 마치자 임금이 박생에게 말하였다.

「선비는 이 땅을 알지 못하는가. 이른바 염부주(炎浮洲)다. 궁궐 북쪽 산은 곧 옥초산(沃焦山)이다. 이 섬은 하늘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염부주라 한다. 염부란 타는 불이 이글이글하여 늘 큰 허공에 떠 있으므로 그리 일컫는 것이다.

내 이름은 염마(燄摩)이니 불꽃에 문질린다는 말이다. 이 땅의 임금이요 스승이 된 지 이미 만여 해다. 목숨이 오래되어 신령하여, 마음이 가는 곳마다 신통하지 않음이 없고 뜻이 하고자 하는 바마다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다.

창힐이 글자를 만들매 내 백성을 보내어 곡하게 하였고, 구담(瞿曇)이 부처를 이루매 내 무리를 보내어 지키게 하였다. 삼황오제와 주공·공자에 이르러서는 도로써 스스로를 지켰으니 내가 그 사이에 발을 들이지 못하였다.」

生問曰:「周孔瞿曇,何如人也?」

박생이 물었다. 「주공·공자와 구담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王曰:「周孔,中華文物中之聖也。瞿曇,西域姦兇中之聖也。文物雖明,人性駁粹,周孔率之。姦兇雖昧,氣有利鈍,瞿曇警之。周孔之敎,以正去邪,瞿曇之法,設邪去邪。以正去邪,故其言正直,以邪去邪,故其言荒誕。正直故君子易從,荒誕故小人易信,其極致,則皆使君子小人,終歸於正理,未嘗惑世誣民,以異道誤之也。」

임금이 말하였다.

「주공과 공자는 중화 문물 가운데의 성인이요, 구담은 서역의 간사하고 흉한 무리 가운데의 성인이다.

문물이 비록 밝으나 사람의 성품에 잡됨과 순수함이 있으므로 주공과 공자가 거느렸다. 간사하고 흉함이 비록 어두우나 기운에 날카로움과 무딤이 있으므로 구담이 깨우쳤다.

주공과 공자의 가르침은 바름으로 그름을 없애고, 구담의 법은 그름을 베풀어 그름을 없앤다. 바름으로 그름을 없애므로 그 말이 바르고 곧으며, 그름으로 그름을 없애므로 그 말이 허황하다. 바르고 곧으므로 군자가 따르기 쉽고, 허황하므로 소인이 믿기 쉽다.

그 지극한 데 이르면 다 군자와 소인으로 하여금 마침내 바른 이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일찍이 세상을 홀리고 백성을 속여 다른 도로 그르치게 한 적이 없다.」

生又問曰:「鬼神之說,乃何?」

박생이 또 물었다. 「귀신의 말은 어떠합니까.」

王曰:「鬼者,陰之靈,神者,陽之靈,蓋造化之迹,而二氣之良能也。生則曰人物,死則曰鬼神,而其理則未嘗異也。」

임금이 말하였다. 「귀(鬼)는 음(陰)의 신령이요 신(神)은 양(陽)의 신령이니, 대개 조화의 자취요 두 기운의 좋은 능력이다. 살아서는 사람과 물건이라 하고 죽어서는 귀신이라 하나 그 이치는 일찍이 다르지 않다.」

生曰:「世有祭祀鬼神之禮,且祭祀之鬼神,與造化之鬼神,異乎?」

박생이 말하였다. 「세상에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예가 있는데, 제사 지내는 귀신과 조화의 귀신이 다릅니까.」

曰:「不異也。士豈不見乎?先儒云:‘鬼神無形無聲,然物之終始,無非陰陽合散之所爲。’且祭天地,所以謹陰陽之造化也。祀山川,所以報氣化之升降也。享祖考,所以報本,祀六神,所以免禍,皆使人致其敬也,非有形質以妄加禍福於人間,特人焄蒿悽愴,洋洋如在耳。孔子所謂,敬鬼神而遠之,正謂此也。」

말하였다.

「다르지 않다. 선비는 어찌 보지 못하였는가. 앞선 유자가 이르기를 『귀신은 꼴도 없고 소리도 없으나, 물건의 마침과 비롯함이 음양이 합하고 흩어지는 바가 아님이 없다』 하였다.

또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삼가는 것이요, 산과 내에 제사 지내는 것은 기운이 되어 오르내림을 갚는 것이요,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근본에 갚는 것이요, 여섯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화를 면하려는 것이다. 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경을 다하게 하는 것이지, 꼴과 바탕이 있어 함부로 사람 세상에 화와 복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기운이 피어올라 서글픈 느낌이 넘실넘실 곁에 있는 듯할 뿐이다.

공자가 이른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이른 것이다.」

生曰:「世有厲氣妖魅,害人惑物,此亦當言鬼神乎?」

박생이 말하였다. 「세상에 사나운 기운과 요망한 도깨비가 있어 사람을 해치고 물건을 홀리니, 이것도 또한 귀신이라 말해야 합니까.」

王曰:「鬼者,屈也。神者,伸也。屈而伸者,造化之神也。屈而不伸者,乃鬱結之妖也。合造化,故與陰陽終始而無跡,滯鬱結,故混人物寃懟而有形。山之妖曰魈,水之怪曰魊,水石之怪曰龍罔象,木石之怪曰夔魍魎,害物曰厲,惱物曰魔,依物曰妖,惑物曰魅,皆鬼也。陰陽不測之謂神,卽神也。神者,妙用之謂也,鬼者,歸根之謂也。天人一理,顯微無間,歸根曰靜,復命曰常,終始造化,而有不可知其造化之跡,是卽所謂道也。故曰:‘鬼神之德,其盛矣乎!’」

임금이 말하였다.

「귀(鬼)는 굽힘이요 신(神)은 폄이다. 굽혔다가 펴는 것은 조화의 신이요, 굽히고 펴지 못하는 것은 곧 맺혀 뭉친 요괴다.

조화에 합하므로 음양과 더불어 마치고 비롯하여 자취가 없고, 맺혀 뭉치는 데 막히므로 사람과 물건의 원한에 섞여 꼴이 있다.

산의 요괴를 소(魈)라 하고, 물의 괴이를 역(魊)이라 하고, 물과 돌의 괴이를 용망상(龍罔象)이라 하고, 나무와 돌의 괴이를 기망량(夔魍魎)이라 하고, 물건을 해치는 것을 여(厲)라 하고, 물건을 괴롭히는 것을 마(魔)라 하고, 물건에 붙는 것을 요(妖)라 하고, 물건을 홀리는 것을 매(魅)라 하니 다 귀(鬼)다.

음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하니 곧 신이다. 신이란 묘하게 쓰임을 이르고 귀란 뿌리로 돌아감을 이른다.

하늘과 사람이 한 이치요 드러남과 숨음에 틈이 없다.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함이라 하고 명을 회복함을 떳떳함이라 한다. 조화를 마치고 비롯하되 그 조화의 자취를 알 수 없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도(道)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귀신의 덕이 그 성대하도다』 하였다.」

生又問曰:「僕嘗聞於爲佛者之徒,有曰:‘天上有天堂快樂處,地下有地獄苦楚處,列冥([名])府十王,鞠十八獄囚。’有諸?且人死七日之後,供佛設齋以薦其魂,祀王燒錢以贖其罪,姦暴之人,王可寬宥否?」

박생이 또 물었다.

「제가 일찍이 부처를 따르는 무리에게 들으니 이르기를, 『하늘 위에 천당이라는 즐거운 곳이 있고 땅 아래에 지옥이라는 괴로운 곳이 있어, 저승 관부의 열 임금을 벌여 두고 열여덟 옥의 죄수를 국문한다』 하였습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까.

또 사람이 죽은 지 이레 뒤에 부처께 공양하고 재를 베풀어 그 넋을 천도하며, 왕에게 제사하고 종이돈을 살라 그 죄를 대속한다 하니, 간사하고 사나운 사람이라도 왕이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습니까.」

王驚愕曰:「是非吾所聞。古人曰:‘一陰一陽之謂道,一闢一闔之謂變。生生之謂易,無妄之謂誠。’夫如是,則豈有乾坤之外,復有乾坤,天地之外,更有天地乎?如王者,萬民所歸之名也。三代以上,億兆之主,皆曰王,而無稱異名。如夫子修春秋,立百王不易之大法,尊周室曰天王,則王者之名,不可加也。至秦滅六國一四海,自以爲德兼三皇,功高五帝,乃改王號曰皇帝。當是時,僭竊稱之者頗多,如魏梁荊楚之君,是已。自是以後,王者之名分紛如也,文武成康之尊號,已墜地矣。且流俗無知,以人情相濫,不足道。至於神道則尙嚴,安有一域之內,王者如是其多哉?士豈不聞天無二日國無二王乎?其語不足信也。至於設齋薦魂,祀王燒錢,吾不覺其所爲也。士試詳其世俗之矯妄!」

임금이 놀라 말하였다.

「이는 내가 들은 바가 아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도라 하고, 한 번 열리고 한 번 닫히는 것을 변(變)이라 한다. 낳고 낳는 것을 역(易)이라 하고, 망령됨이 없는 것을 성(誠)이라 한다』 하였다.

무릇 이와 같으니 어찌 건곤 밖에 다시 건곤이 있고 천지 밖에 다시 천지가 있겠는가.

왕이란 만백성이 돌아가는 이름이다. 삼대 이전에는 억조의 임금을 다 왕이라 하고 다른 이름을 일컬은 것이 없었다. 공자가 「춘추」를 닦아 백 왕이 바꾸지 못할 큰 법을 세우고 주나라 왕실을 높여 천왕이라 하였으니, 왕이라는 이름은 더할 수 없는 것이다.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멸하고 사해를 하나로 하매 스스로 덕이 삼황을 겸하고 공이 오제보다 높다 하여, 이에 왕의 칭호를 고쳐 황제라 하였다. 그때에 참람히 훔쳐 일컫는 자가 자못 많았으니 위·양·형·초의 임금이 그것이다.

이로부터 왕이라는 이름이 어지러워져 문왕·무왕·성왕·강왕의 높은 이름이 이미 땅에 떨어졌다.

또 흐르는 풍속이 아는 것이 없어 사람의 정으로 서로 넘치니 말할 것이 못 된다. 신의 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엄하니, 어찌 한 지경 안에 왕이라는 이가 이처럼 많겠는가. 선비는 어찌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나라에 두 왕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그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재를 베풀어 넋을 천도하고 왕에게 제사하고 종이돈을 사른다는 데 이르러서는 내가 그 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겠다. 선비는 시험 삼아 그 세속의 거짓됨을 자세히 말해 보라.」

生退席敷袵而陳曰:「世俗當父母死亡七七之日,若尊若卑,不顧喪葬之禮,專以追薦爲務。富者,糜費過度,炫燿人聽,貧者,至於賣田貿宅,貸錢賖穀,鏤紙爲旛,剪綵爲花,招衆▩爲福田,立瓌([壞])像爲導師,唱唄諷誦,鳥鳴鼠喞,曾無意謂。爲喪者,携妻率兒,援類呼朋,男女混雜,矢溺狼籍,使淨土變爲穢溷,寂場變爲鬧市,而又招所謂十王者,備饌以祭之,燒錢以贖之。爲十王者,當不顧禮義,縱貪而濫受之乎?當考其法度,循憲而重罰之乎?此不肖所以憤悱,而不敢忍言也。請爲不肖辨之!」

박생이 자리에서 물러나 옷깃을 펴고 아뢰었다.

「세속에서 부모가 돌아가신 뒤 일곱 이레 되는 날에, 높은 이나 낮은 이나 상례와 장례의 예를 돌보지 않고 오로지 천도하는 것만 일삼습니다.

넉넉한 이는 헤프게 씀이 도를 지나쳐 남의 귀를 어지럽히고, 가난한 이는 밭을 팔고 집을 팔고 돈을 꾸고 곡식을 외상으로 사기까지 합니다. 종이를 새겨 깃발을 만들고 비단을 오려 꽃을 만들며, 뭇 □을 불러 복밭으로 삼고 흙으로 빚은 상을 세워 인도하는 스승으로 삼습니다. 범패를 부르고 외는 소리가 새가 울고 쥐가 찍찍대는 것 같아 일찍이 뜻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상주 된 이는 아내를 데리고 아이를 이끌며 겨레를 부르고 벗을 불러, 남녀가 뒤섞이고 똥오줌이 낭자하여, 깨끗한 땅으로 하여금 더러운 뒷간이 되게 하고 고요한 도량으로 하여금 시끄러운 저자가 되게 합니다.

또 이른바 열 왕이라는 이를 불러 음식을 갖추어 제사하고 종이돈을 살라 대속합니다. 열 왕 된 이가 마땅히 예의를 돌보지 않고 탐욕을 놓아 함부로 받겠습니까, 아니면 마땅히 그 법도를 살펴 법을 좇아 무겁게 벌하겠습니까. 이것이 못난 제가 분하여 차마 말하지 못하던 바입니다. 청컨대 못난 이를 위해 가려 주십시오.」

〔「뭇」 다음 한 글자가 저본에 빠져 있다.〕

王曰:「噫哉!至於此極也?且人之生也,天命之以性,地養之以生,君治之以法,師敎之以道,親育之以恩。由是,五典有序,三綱不紊,順之則祥,逆之則殃,祥與殃在人生受之耳。至於死,則精氣已散,升降還源,那有復留於幽冥之內哉?且寃懟之魂,橫夭之鬼,不得其死,莫宣其氣,嗸嗸於戰場黃沙之域,啾啾於負命啣寃之家者,間或有之,或托巫以致款,或依人以辨懟,雖精神未散於當時,畢竟當歸於無朕。豈有假形於冥地,以受犴獄乎?此格物君子,所當斟酌也。至於齋佛祀王之事,則尤誕矣。且齋者,潔淨之義,所以齋不齋而致其齋也。佛者,淸淨之稱,王者,尊嚴之號。求車求金,貶於春秋,用金用綃,始於漢魏。那有以淸淨之神而享世人供養,以王者之尊而受罪人賄賂,以幽冥之鬼而縱世間刑罰乎?此亦窮理之士,所當商略也。」

임금이 말하였다.

「아아,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또 사람이 태어남에 하늘이 성(性)으로 명하고, 땅이 살아감으로 기르고, 임금이 법으로 다스리고, 스승이 도로 가르치고, 어버이가 은혜로 기른다. 이로 말미암아 다섯 떳떳함에 차례가 있고 세 벼리가 어지럽지 않다. 이를 따르면 상서롭고 거스르면 재앙이니, 상서와 재앙은 사람이 살아서 받는 데 있을 뿐이다.

죽음에 이르면 정기가 이미 흩어져 오르내리며 근원으로 돌아가니 어찌 다시 저승 안에 머무름이 있겠는가.

또 원한 맺힌 넋과 가로질러 일찍 죽은 귀신이 제 죽음을 얻지 못하고 그 기운을 펴지 못하여, 싸움터 누런 모래의 지경에서 웅성거리고 목숨을 지고 원한을 머금은 집에서 흐느끼는 일이 더러 있기는 하다. 혹 무당에 붙어 정성을 이르게 하고 혹 사람에 기대어 원한을 가리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정신이 그때에 흩어지지 않았더라도 필경에는 마땅히 자취 없는 데로 돌아간다. 어찌 저승 땅에 꼴을 빌려 옥에 갇힘을 받겠는가. 이는 물건을 궁구하는 군자가 마땅히 헤아릴 바다.

부처께 재를 올리고 왕에게 제사한다는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 허황하다.

또 재(齋)란 깨끗이 한다는 뜻이니, 가지런하지 않은 것을 가지런히 하여 그 가지런함을 이루는 것이다. 부처란 맑고 깨끗함의 이름이요 왕이란 높고 엄함의 칭호다. 수레를 구하고 금을 구하는 것은 「춘추」에서 낮추었고, 금을 쓰고 비단을 쓰는 것은 한나라와 위나라에서 비롯되었다.

어찌 맑고 깨끗한 신이 세상 사람의 공양을 받고, 왕의 높음으로 죄인의 뇌물을 받으며, 저승의 귀신이 세간의 형벌을 마음대로 하겠는가. 이 또한 이치를 궁구하는 선비가 마땅히 헤아릴 바다.」

生又問曰:「輪回不已,死此生彼之義,可問否?」

박생이 또 물었다. 「윤회가 그치지 않아 여기서 죽고 저기서 난다는 뜻은 물어도 되겠습니까.」

曰:「精靈未散,則似有輪回,然久則散而消耗矣。」

말하였다. 「정령이 아직 흩어지지 않으면 윤회가 있는 듯하나, 오래되면 흩어져 스러진다.」

生曰:「王何故居此異域而爲王者乎?」

박생이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이 다른 지경에 계시며 왕이 되셨습니까.」

曰:「我在世,盡忠於王,發憤討賊。乃誓曰:‘死當爲厲鬼,以殺賊!’餘願未殄而忠誠不滅,故托此惡鄕爲君長。今居此地而仰我者,皆前世弑逆姦兇之徒,托生於此,而爲我所制,將格其非心者也。然非正直無私,不能一日爲君長於此地也。寡人聞子正直抗志,在世不屈,眞達人也。而不得一奮其志於當世,使荊璞棄於塵野,明月沉于重淵,不遇良匠,誰知至寶?豈不惜哉?余亦時運已盡,將捐弓劒,子亦命數已窮,當瘞蓬蒿,司牧此邦,非子而誰?」

말하였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임금께 충성을 다하여 분을 내어 도적을 쳤다. 이에 맹세하기를 『죽어서 마땅히 사나운 귀신이 되어 도적을 죽이리라』 하였다. 남은 소원이 다하지 않고 충성이 스러지지 않았으므로 이 모진 고을에 붙어 임금이 된 것이다.

이제 이 땅에 살며 나를 우러르는 이들은 다 전생에 임금을 죽이고 거스른 간사하고 흉한 무리다. 여기에 붙어 태어나 나에게 다스려져 장차 그 그른 마음을 바로잡을 자들이다.

그러나 바르고 곧고 사사로움이 없지 않으면 하루도 이 땅에서 임금 노릇을 할 수 없다.

과인이 들으니 그대는 바르고 곧으며 뜻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굽히지 않았다 하니 참으로 통달한 사람이다. 그런데 한 번도 그 뜻을 당세에 떨치지 못하여, 형산의 옥이 티끌 들에 버려지고 밝은 달이 깊은 못에 잠긴 격이다. 좋은 장인을 만나지 못하면 누가 지극한 보배를 알아보겠는가. 어찌 아깝지 않은가.

나 또한 때의 운이 이미 다하여 장차 활과 칼을 버릴 것이고, 그대 또한 목숨의 셈이 이미 궁하여 마땅히 쑥대밭에 묻힐 것이다.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릴 이가 그대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乃開宴極歡,問生以三韓興亡之跡。生一一陳之。至高麗創業之由,王歎傷再三曰:「有國者,不可以暴劫民,民雖若瞿瞿以從,內懷悖逆,積日至月,則堅冰之禍起矣。有德者,不可以力進位,天雖不諄諄以語,示以行事,自始至終,而上帝之命嚴矣。蓋國者民之國,命者天之命也。天命已去,民心已離,則雖欲保身,將何爲哉?」

이에 잔치를 열어 즐거움을 다하고 박생에게 삼한이 흥하고 망한 자취를 물었다. 박생이 하나하나 폈다.

고려가 나라를 세운 까닭에 이르자 임금이 두세 번 탄식하며 슬퍼하고 말하였다.

「나라를 가진 이는 사나움으로 백성을 겁주어서는 안 된다. 백성이 비록 두려워하여 따르는 듯하나 속으로 거스르는 마음을 품고, 날이 쌓여 달에 이르면 굳은 얼음의 화가 일어난다.

덕이 있는 이는 힘으로 자리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 하늘이 비록 자상히 말해 주지 않으나 하는 일로 보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상제의 명이 엄하다.

대개 나라란 백성의 나라요 명이란 하늘의 명이다. 천명이 이미 떠나고 민심이 이미 떠나면, 비록 몸을 보전하려 한들 장차 어찌하겠는가.」

又復敍歷代帝王崇異道致妖祥之事。王便蹙額曰:「民謳謌而水旱至者,是天使人主重以戒謹也。民怨咨而祥瑞現者,是妖媚人主益以驕縱也。且歷代帝王致瑞之日,民其按堵乎?呼寃乎?」

또 다시 역대 제왕이 다른 도를 숭상하여 요망한 상서를 부른 일을 폈다. 임금이 곧 이마를 찡그리고 말하였다.

「백성이 노래하는데 물난리와 가뭄이 이르는 것은, 하늘이 임금으로 하여금 거듭 경계하고 삼가게 하는 것이다. 백성이 원망하고 탄식하는데 상서가 나타나는 것은, 요망한 것이 임금에게 아첨하여 더욱 교만하고 방자하게 하는 것이다.

또 역대 제왕이 상서를 부른 날에 백성이 제자리에 편안하였는가, 원통함을 부르짖었는가.」

曰:「姦臣蜂([逢+虫+虫])起,大亂屢作,而上之人,脅威爲善以釣名,其能安乎?」

말하였다. 「간사한 신하가 벌 떼처럼 일어나고 큰 난리가 자주 일어났는데, 위에 있는 이가 위엄으로 협박하며 선을 꾸며 이름을 낚았으니 어찌 편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王良久,歎曰:「子之言,是也。」

임금이 한참 있다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옳다.」

宴畢,王欲禪位于生,乃手制曰:「炎洲之域,實是瘴厲之鄕,禹跡之所不至,穆駿之所未窮。彤雲蔽日,毒霧障天,渴飮赫赫之洋銅,飢餐烘烘之融鐵,非夜叉羅刹,無以措其足,魑魅魍魎,莫能肆其氣。火城千里,鐵嶽萬重,民俗强悍,非正直無以辨其姦,地勢凹隆,非神威不可施其化。咨!爾東國某,正直無私,剛毅有斷,著含章之質,有發蒙之才,顯榮雖蔑於身前,綱紀實在於身後,兆民永賴,非子而誰?宜導德齊禮,冀納民於至善,躬行心得,庶躋世於雍熙。體天立極,法堯禪舜,予其作賓,嗚呼欽哉!」

잔치가 끝나자 임금이 박생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하여 이에 손수 글을 지었다.

「염주(炎洲)의 지경은 실로 장기(瘴氣)와 사나운 기운의 고을이라, 우임금의 발자취가 이르지 못하고 목왕의 준마가 다하지 못한 곳이다.

붉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독한 안개가 하늘을 막으며, 목마르면 이글이글한 녹은 구리를 마시고 주리면 활활 타는 녹은 쇠를 먹는다. 야차와 나찰이 아니면 발을 붙일 수 없고 도깨비와 망량도 그 기운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불의 성이 천 리요 쇠의 산이 만 겹이며, 백성의 풍속이 억세고 사나워 바르고 곧지 않으면 그 간사함을 가릴 수 없고, 땅의 형세가 우묵하고 솟아 신령한 위엄이 아니면 그 교화를 베풀 수 없다.

아아, 그대 동쪽 나라의 아무개여. 바르고 곧아 사사로움이 없고 굳세고 굳어 결단이 있으며, 빛을 머금은 바탕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재주가 있다. 드러난 영화가 비록 살아서는 없었으나 벼리는 실로 죽은 뒤에 있으니, 억조 백성이 길이 힘입을 이가 그대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마땅히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여 백성을 지극한 선에 들이기를 바라고,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얻어 세상을 화락하고 밝은 데로 오르게 하라. 하늘을 몸받아 지극함을 세우고,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물려주던 것을 본받으라. 나는 그 손이 되겠노라. 아아, 삼갈지어다.」

生奉詔,周旋再拜而出。王復勑臣民致賀,以儲君禮送之。又勑生曰:「不久當還,勞此一行,所陳之語,傳播人間,一掃荒唐!」

박생이 조서를 받들고 두루 돌며 두 번 절하고 나왔다. 임금이 다시 신하와 백성에게 명하여 하례하게 하고 세자의 예로 보냈다.

또 박생에게 명하였다. 「오래지 않아 마땅히 돌아올 것이니 이 한 걸음을 수고롭게 하라. 편 말들을 사람 세상에 퍼뜨려 한 번 허황함을 쓸어 내라.」

生又再拜致謝曰:「敢不對揚休命之萬一?」

박생이 또 두 번 절하고 사례하여 말하였다. 「감히 아름다우신 명의 만분의 하나라도 받들어 드날리지 않겠습니까.」

旣出門,挽車者,蹉跌覆轍,生仆地驚起而覺,乃一夢也。開目視之,書冊抛床,燈花明滅。生感訝良久,自念將死,日以處置家事爲懷。數月有疾,料必不起,却毉巫而逝。其將化之夕,夢神人告於四鄰曰:「汝鄰家某公,將爲閻羅王者」云。

문을 나서자 수레를 끄는 이가 발을 헛디뎌 수레가 엎어졌다. 박생이 땅에 넘어졌다가 놀라 일어나 깨니 곧 한 꿈이었다.

눈을 떠 보니 책이 평상에 내던져져 있고 등불 꽃이 밝았다 스러졌다 하였다.

박생이 느껍고 놀라 한참 있다가 스스로 장차 죽으리라 여기고, 날마다 집안일을 처리하는 것을 마음에 두었다. 몇 달 뒤에 병이 들자 반드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헤아리고 의원과 무당을 물리치고 죽었다.

그 죽으려는 저녁에 이웃 사람들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 알렸다. 「너희 이웃집 아무 공이 장차 염라왕이 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