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累害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9 · 한자 1,787자 · 낭독 7.1분

「논형」 누해편 「累害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凡人仕宦有稽留不進,行節有毀傷不全,罪過有累積不除,聲名有暗昧不明,才非下,行非悖也;有知非昏,策非昧也;逢遭外禍,累害之也。非唯人行,凡物皆然。生動之類,咸被累害。累害自外,不由其內。夫不本累害所從生起,而徒歸責於被累害者,智不明,暗塞於理者也。物以春生,人保之;以秋成,人必不能保之。卒然牛馬踐根,刀鐮割莖,生者不育,至秋不成。不成之類,遇害不遂,不得生也。夫鼠涉飯中,捐而不食。捐飯之味,與彼不污者鈞,以鼠為害,棄而不御。君子之累害,與彼不育之物、不御之飯同一實也。俱由外來,故為累害。

무릇 사람이 벼슬살이에 막혀 나아가지 못함이 있고, 행실과 절개에 헐리어 온전하지 못함이 있고, 죄와 허물이 쌓여 없어지지 않음이 있고, 이름이 어두워 밝지 못함이 있다. 재주가 낮아서가 아니요 행실이 어그러져서가 아니며, 앎이 어두워서가 아니요 꾀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밖의 화를 만나 그것이 쌓여 해친 것이다.

사람의 행실만이 아니라 무릇 만물이 다 그렇다. 나서 움직이는 무리가 모두 쌓인 해를 입는다. 쌓인 해는 밖에서 오지 그 안에서 말미암지 않는다. 무릇 쌓인 해가 말미암아 일어난 바를 근본에서 찾지 않고 한갓 그 해를 입은 이에게 허물을 돌리는 것은, 지혜가 밝지 못하여 이치에 어둡고 막힌 것이다.

물건이 봄에 나면 사람이 지켜 주지만 가을에 여물 때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 주지 못한다. 갑자기 소와 말이 뿌리를 밟고 칼과 낫이 줄기를 베면 산 것이 자라지 못하여 가을에 이르러 여물지 않는다. 여물지 못한 무리는 해를 만나 이루지 못하여 살지 못한 것이다.

무릇 쥐가 밥 가운데를 지나가면 버리고 먹지 않는다. 버린 밥의 맛은 더럽혀지지 않은 것과 고르건만 쥐가 해를 끼쳤다 하여 버리고 쓰지 않는다. 군자가 쌓인 해를 입는 것은 저 자라지 못한 물건이나 쓰지 않는 밥과 한가지다. 다 밖에서 오므로 쌓인 해라 한다.

修身正行,不能來福;戰栗戒慎,不能避禍。禍福之至,幸不幸也。故曰:得非己力,故謂之福;來不由我,故謂之禍。不由我者,謂之何由?由鄉里與朝廷也。夫鄉里有三累,朝廷有三害。累生於鄉里,害發於朝廷,古今才洪行淑之人遇此多矣。

몸을 닦고 행실을 바로 하여도 복을 오게 하지 못하고, 두려워 떨며 삼가도 화를 피하지 못한다. 화와 복이 이르는 것은 다행과 다행하지 못함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얻은 것이 제 힘이 아니므로 복이라 하고 오는 것이 나로 말미암지 않으므로 화라 한다. 나로 말미암지 않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마을과 조정으로 말미암는다. 무릇 마을에 세 가지 쌓임이 있고 조정에 세 가지 해가 있다. 쌓임은 마을에서 생기고 해는 조정에서 일어나니, 예나 이제나 재주가 크고 행실이 맑은 사람이 이를 만난 일이 많다.

何謂三累三害?凡人操行,不能慎擇友,友同心恩篤,異心薄,薄怨恨,毀傷其行,一累也。人才高下,不能鈞同,同時并進,高者得榮,下者慚恚,毀傷其行,二累也。人之交游,不能常歡,歡則相親,忿則疏遠,遠怨恨,毀傷其行,三累也。位少人眾,仕者爭進,進者爭位,見將相毀,增加傅致,將昧不明,然納其言,一害也。將吏異好,清濁殊操,清吏增郁郁之白,舉涓涓之言,濁吏懷恚恨,徐求其過,因纖微之謗,被以罪罰,二害也。將或幸佐吏之身,納信其言,佐吏非清節,必拔人越次,迕失其意,毀之過度,清正之仕,抗行伸志,遂為所憎,毀傷於將,三害也。夫未進也身被三累,已用也身蒙三害,雖孔丘、墨翟不能自免,顏回、曾參不能全身也。

무엇을 세 가지 쌓임과 세 가지 해라 하는가.

무릇 사람의 몸가짐이 벗을 삼가 가리지 못하는데, 벗은 마음이 같으면 은혜가 두텁고 마음이 다르면 엷어지며, 엷으면 원망하여 그 행실을 헐어 상하게 하니 첫째 쌓임이다. 사람의 재주는 높낮이가 있어 고르게 같을 수 없는데, 한때에 나란히 나아가면 높은 이는 영화를 얻고 낮은 이는 부끄러워 성내어 그 행실을 헐어 상하게 하니 둘째 쌓임이다. 사람의 사귐은 늘 기쁠 수 없어 기쁘면 서로 친하고 성내면 멀어지며, 멀어지면 원망하여 그 행실을 헐어 상하게 하니 셋째 쌓임이다.

자리는 적고 사람은 많아 벼슬하는 이가 다투어 나아가고 나아간 이가 자리를 다투어, 우두머리를 뵙고 서로 헐뜯으며 보태고 얽어 갖다 붙이는데 우두머리가 어두워 밝지 못하여 그 말을 받아들이니 첫째 해다. 우두머리와 아전이 좋아함이 다르고 맑고 흐림이 몸가짐을 달리하는데, 맑은 아전은 또렷한 흰 것을 더하고 졸졸 흐르는 맑은 말을 들며, 흐린 아전은 성냄과 한을 품고 천천히 그 허물을 찾아 자잘한 헐뜯음에 말미암아 죄와 벌을 씌우니 둘째 해다. 우두머리가 더러 보좌하는 아전의 몸을 사랑하여 그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데, 보좌하는 아전이 맑은 절개가 아니면 반드시 사람을 차례를 넘어 뽑고 제 뜻을 거스르면 헐뜯기를 지나치게 한다. 맑고 바른 벼슬아치가 행실을 곧추세우고 뜻을 펴면 마침내 미움을 받아 우두머리에게 헐리니 셋째 해다.

무릇 나아가기 전에는 몸이 세 가지 쌓임을 입고 이미 쓰인 뒤에는 몸이 세 가지 해를 입으니, 비록 공구와 묵적이라도 스스로 면할 수 없고 안회와 증삼이라도 몸을 온전히 할 수 없다.

動百行,作萬事,嫉妒之人,隨而云起,枳棘鉤挂容體,蜂蠆之党,啄螫懷操,豈徒六哉!六者章章,世曾不見。夫不原士之操行有三累,仕宦有三害,身完全者謂之潔,被毀謗者謂之辱;官升進者謂之善,位廢退者謂之惡;完全升進,幸也,而稱之;毀謗廢退,不遇也,而訾之:用心若此,必為三累三害也。論者既不知〔被〕累害者行賢潔也,以塗博泥,以黑點繒,孰有知之?清受塵,白取垢,青繩所污,常在練素。處顛者危,勢丰者虧,頹墜之類,常在懸垂。屈平潔白,邑犬群吠,吠所怪也;非俊疑杰,固庸能也。偉士坐以俊杰之才,招致群吠之聲。夫如是,豈宜更勉奴下,循不肖哉!不肖奴下,非所勉也。豈宜更偶俗全身以弭謗哉!偶俗全身,則鄉原也。鄉原之人,行全無闕,非之無舉,刺之無刺也。此又孔子之所罪,孟軻之所愆也。

백 가지 행실을 움직이고 만 가지 일을 지으면 시샘하는 사람이 따라 구름처럼 일어난다. 탱자와 가시가 몸을 걸어 잡고 벌과 전갈의 무리가 품은 몸가짐을 쪼고 쏘니 어찌 여섯뿐이겠는가. 여섯 가지가 뚜렷한데도 세상은 일찍이 보지 못한다.

무릇 선비의 몸가짐에 세 가지 쌓임이 있고 벼슬에 세 가지 해가 있음을 캐지 않고, 몸이 온전한 이를 깨끗하다 하고 헐뜯김을 입은 이를 욕되다 하며, 벼슬이 오른 이를 착하다 하고 자리가 폐하여 물러난 이를 악하다 한다. 온전하여 오른 것은 다행일 뿐인데 그것을 기리고, 헐뜯겨 물러난 것은 만나지 못한 것일 뿐인데 그것을 흠잡는다. 마음 쓰기가 이러하니 반드시 세 가지 쌓임과 세 가지 해가 된다.

논하는 이가 이미 쌓인 해를 입은 이의 행실이 어질고 깨끗한 줄 모르고, 진흙에 진흙을 바르고 검은 것으로 비단에 점을 찍으니 누가 알겠는가. 맑은 것이 티끌을 받고 흰 것이 때를 타며, 쉬파리가 더럽히는 곳은 늘 누인 흰 비단이다. 꼭대기에 있는 것은 위태롭고 형세가 성한 것은 이지러지니, 무너져 떨어지는 무리는 늘 매달려 드리운 데 있다.

굴평이 깨끗하고 희매 고을 개들이 떼 지어 짖었으니, 짖는 것은 괴이하게 여기는 바에 짖는 것이다. 준수한 이를 그르다 하고 뛰어난 이를 의심하는 것은 본디 용렬한 이가 하는 짓이다. 큰 선비가 준수하고 뛰어난 재주 때문에 떼 지어 짖는 소리를 불러들인다.

무릇 이러하다 하여 어찌 다시 종처럼 낮아지기를 힘쓰고 어질지 못함을 좇겠는가. 어질지 못하고 종처럼 낮은 것은 힘쓸 바가 아니다. 어찌 다시 세속에 짝하여 몸을 온전히 하고 헐뜯음을 그치게 하겠는가. 세속에 짝하여 몸을 온전히 하면 곧 향원이다. 향원인 사람은 행실이 온전하여 이지러진 데가 없고 그르다 하려 해도 들 것이 없으며 찌르려 해도 찌를 데가 없다. 이 또한 공자가 죄로 여긴 바요 맹가가 허물로 여긴 바다.

古賢美極,無以衛身。故循性行以俟累害者,果賢潔之人也,極累害之謗,而賢潔之實見焉。立賢潔之跡,毀謗之塵安得之生?弦者思折伯牙之指,御者願摧王良之手。何則?欲專良善之名,惡彼之勝己也。是故魏女色艷,鄭袖(鼻)〔劓〕之;朝吳忠貞,無忌逐之。戚施彌妒,蘧除多佞。是故濕堂不灑塵,卑屋不蔽風;風衝之物不得育,水湍之岸不得峭。如是,牖里、陳蔡可得知,而沉江蹈河也。以軼才取容媚於俗,求全功名於將,不遭鄧析之禍,取子胥之誅,幸矣。孟賁之尸,人不刃者,氣絕也。死灰百斛,人不沃者,光滅也。動身章智,顯光氣於世;奮志敖党,立卓異於俗,固常通人所讒妒也。以方心偶俗之累,求益反損。蓋孔子所以憂心,孟軻所以惆悵也。

옛 어진 이는 아름다움이 지극하였으나 몸을 지킬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성품을 좇아 행하며 쌓인 해를 기다린 이라야 참으로 어질고 깨끗한 사람이니, 쌓인 해의 헐뜯음이 다하는 데서 어질고 깨끗한 실상이 드러난다. 어질고 깨끗한 자취를 세우는데 헐뜯는 티끌이 어찌 생기지 않겠는가.

거문고 타는 이는 백아의 손가락을 꺾고 싶어 하고 말 모는 이는 왕량의 손을 부러뜨리기를 바란다. 어째서인가. 좋고 착하다는 이름을 혼자 차지하려 하고 저가 제 위에 있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나라 여인이 얼굴이 고우매 정수가 그 코를 베었고, 조오가 충성되고 곧으매 비무기가 그를 쫓아냈다. 등이 굽은 이는 더욱 시샘하고 몸이 굽은 이는 아첨이 많다.

그러므로 축축한 마루는 티끌이 일지 않고 낮은 집은 바람을 가리지 못하며, 바람이 부딪는 물건은 자라지 못하고 물이 여울지는 언덕은 가파를 수 없다. 이와 같으니 유리와 진채의 일을 알 만하고 강에 빠지고 하수를 밟은 일도 알 만하다. 뛰어난 재주로 세속에 곱게 보이기를 취하고 우두머리에게 공과 이름을 온전히 하기를 구하고서, 등석의 화를 만나지 않고 자서의 죽임을 받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맹분의 주검을 사람이 칼질하지 않는 것은 기운이 끊겼기 때문이요, 죽은 재가 백 섬이라도 사람이 물을 붓지 않는 것은 빛이 꺼졌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여 지혜를 드러내어 빛과 기운을 세상에 나타내고 뜻을 떨쳐 무리에 뛰어나 세속에 우뚝 다름을 세우는 것은, 본디 늘 두루 아는 이들이 참소하고 시샘하는 바다. 모난 마음으로 세속에 짝하려는 쌓임 때문에 보탬을 구하다가 도리어 덜린다. 공자가 마음을 근심한 까닭이요 맹가가 서글퍼한 까닭이다.

德鴻者招謗,為士者多口。

덕이 큰 이는 헐뜯음을 부르고 선비 된 이는 말이 많다.

以休熾之聲,彌口舌之患,求無危傾之害,遠矣。臧倉之毀,未嘗絕也;公伯寮之溯,未嘗滅也。垤成丘山,污為江河矣。夫如是市虎之訛,投杼之誤不足怪,則玉變為石,珠化為礫,不足詭也。何則?昧心冥冥之知使之然也。文王所以為糞土,而惡來所以為金玉也。非紂憎聖而好惡也,心知惑蔽,蔽惑不能審,則微子十去,比干五剖,未足痛也。故三監讒聖人,周公奔楚;後母毀孝子,伯奇放流。當時周世孰有不惑乎?後鴟作而黍離興,諷詠之者,乃悲傷之。故無雷風之變,周公之惡不滅;當夏不隕霜,鄒(行)〔衍〕之罪不除。德不能感天,誠不能動變,君子篤信審己也,安能遏累害於人?聖賢不治名,害至不免辟,形章墨短,掩匿白長;不理身冤,不弭流言,受垢取毀,不求潔完。故惡見而善不彰,行缺而跡不顯。邪偽之人,治身以巧俗,修詐以偶眾。猶漆盤盂之工,穿牆不見;弄丸劍之倡,手指不知也。世不見短,故共稱之;將不聞惡,故顯用之。夫如是,世俗之所謂賢潔者,未必非惡;所謂邪污者,未必非善也。

아름답고 성한 소리로 입과 혀의 근심을 그치게 하고 위태로이 기울어지는 해가 없기를 구하는 것은 아득한 일이다. 장창의 헐뜯음은 일찍이 끊긴 적이 없고 공백료의 참소는 일찍이 없어진 적이 없다. 개미둑이 언덕과 산이 되고 웅덩이가 강과 하수가 된다. 무릇 이러하니 저자에 범이 났다는 헛말과 북을 던지고 달아났다는 그릇됨이 괴이할 것 없고, 옥이 돌로 바뀌고 구슬이 조약돌이 되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어째서인가. 어두운 마음과 깜깜한 앎이 그리 만든 것이다. 문왕이 거름흙이 되고 악래가 금과 옥이 된 까닭이다. 주(紂)가 성인을 미워하고 악한 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마음과 앎이 홀려 가려진 것이다. 가려지고 홀려 살피지 못한다면 미자가 열 번 떠나고 비간이 다섯 번 가슴을 갈리어도 아파할 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삼감이 성인을 참소하매 주공이 초나라로 달아났고, 뒷어미가 효자를 헐뜯으매 백기가 내쫓겨 떠돌았다. 그때 주나라 세상에 누가 홀리지 않았겠는가. 뒤에 「치효」가 지어지고 「서리」가 일어나니 외어 읊는 이들이 이에 슬퍼하였다. 그러므로 우레와 바람의 변고가 없었다면 주공의 악명이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요, 여름에 서리가 내리지 않았다면 추연의 죄가 벗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덕이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정성이 변고를 움직이지 못하니, 군자는 도탑게 믿고 제 몸을 살필 뿐이다. 어찌 남에게서 오는 쌓인 해를 막을 수 있겠는가. 성인과 어진 이는 이름을 꾸미지 않아 해가 이르러도 벗어나지 못한다. 검은 짧음은 드러나 밝고 흰 긺은 가려 숨는다. 몸의 억울함을 다스리지 않고 떠도는 말을 그치게 하지 않으며, 때를 받고 헐뜯음을 취할 뿐 깨끗하고 온전하기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은 드러나고 선은 밝지 않으며 행실은 이지러진 듯하고 자취는 나타나지 않는다.

삿되고 거짓된 사람은 몸 다스리기를 세속에 공교롭게 하고 거짓을 닦아 뭇 사람에게 짝한다. 쟁반과 사발에 옻칠하는 장인이 벽을 뚫어도 보이지 않고, 방울과 칼을 놀리는 광대의 손가락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세상이 그 짧음을 보지 못하므로 함께 기리고, 우두머리가 그 악함을 듣지 못하므로 드러내어 쓴다. 무릇 이러하니 세속이 이른바 어질고 깨끗하다는 이가 반드시 악하지 않은 것이 아니요, 이른바 삿되고 더럽다는 이가 반드시 착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或曰:「言有招患,行有召恥,所在常由小人。」夫小人性患恥者也,含邪而生,懷偽而游,沐浴累害之中,何招召之有?故夫火生者不傷(濕)〔燥〕,水居者無溺患。火不苦熱,水不痛寒,氣性自然焉,招之?

어떤 이가 말한다. 「말에는 근심을 부르는 것이 있고 행실에는 부끄러움을 부르는 것이 있으니, 있는 곳마다 늘 소인에게서 말미암는다.」

무릇 소인은 성품이 근심과 부끄러움을 지닌 자다. 삿됨을 머금고 나서 거짓을 품고 다니며 쌓인 해 가운데 목욕하고 있으니 무엇을 부르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불에서 사는 것은 마름에 상하지 않고 물에 사는 것은 빠지는 근심이 없다. 불은 뜨거움을 괴로워하지 않고 물은 참을 아파하지 않으니, 기운과 성품이 절로 그러할 뿐이다. 무엇을 부른다 하겠는가.

君子也,以忠言招患,以高行招恥,何世不然!然而太山之惡,君子不得名;毫髪之善,小人不得有也。以玷污言之,清受塵而白取垢;以毀謗言之,貞良見妒,高奇見噪;以遇罪言之,忠言招患,高行招恥;以不純言之,玉有瑕而珠有毀。(焦)陳留〔焦〕君(兄)〔貺〕,名稱兗州,行完跡潔,無纖芥之毀;及其當為從事,刺史焦康絀而不用。夫未進也被三累,已用也蒙三害,雖孔丘、墨翟不能自免,顏回、曾參不能全身也。何則?眾好純譽之人,非真賢也。公侯已下,玉石雜糅。賢士之行,善惡相苞。夫采玉者破石拔玉,選士者棄惡取善。夫如是,累害之人負世以行,指擊之者從何往哉!

군자는 충성된 말로 근심을 부르고 높은 행실로 부끄러움을 부르니 어느 세상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나 태산 같은 악은 군자가 이름을 얻지 못하고, 터럭 끝만 한 착함은 소인이 가지지 못한다.

더럽혀짐으로 말하면 맑은 것이 티끌을 받고 흰 것이 때를 타며, 헐뜯음으로 말하면 곧고 어진 이가 시샘을 받고 높고 뛰어난 이가 시끄러움을 받으며, 죄를 만남으로 말하면 충성된 말이 근심을 부르고 높은 행실이 부끄러움을 부르며, 순수하지 못함으로 말하면 옥에 티가 있고 구슬에 흠이 있다.

진류의 초군황은 이름이 연주에 일컬어지고 행실이 온전하고 자취가 깨끗하여 티끌만 한 헐뜯음도 없었다. 그런데 종사가 되어야 할 때에 이르러 자사 초강이 물리치고 쓰지 않았다. 무릇 나아가기 전에는 세 가지 쌓임을 입고 이미 쓰인 뒤에는 세 가지 해를 입으니, 비록 공구와 묵적이라도 스스로 면할 수 없고 안회와 증삼이라도 몸을 온전히 할 수 없다.

어째서인가. 뭇 사람이 좋아하여 흠 없이 기림을 받는 사람은 참으로 어진 이가 아니다. 공후 아래로는 옥과 돌이 섞여 있고 어진 선비의 행실에도 착함과 악함이 서로 싸여 있다. 무릇 옥을 캐는 이는 돌을 깨고 옥을 뽑으며 선비를 가리는 이는 악함을 버리고 착함을 취한다. 무릇 이러하니, 쌓인 해를 입은 사람이 세상을 등지고 다닌다 한들 손가락질하여 치는 이가 어디로 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