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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偶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7 · 한자 1,243자 · 낭독 5.0분

「논형」 행우편 「幸偶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凡人操行有賢有愚,及遭禍福,有幸有不幸;舉事有是有非,及觸賞罰,有偶有不偶。并時遭兵,隱者不中。同日被霜,蔽者不傷。中傷未必惡,隱蔽未必善。隱蔽幸,中傷不幸。俱欲納忠,或賞或罰;并欲有益,或信或疑。賞而信者未必真,罰而疑者未必偽。賞、信者偶,罰、疑不偶也。

무릇 사람의 몸가짐에는 어짊과 어리석음이 있고, 화와 복을 만나는 데는 다행과 다행하지 못함이 있다. 일을 일으킴에는 옳음과 그름이 있고, 상과 벌에 닿는 데는 짝 맞음과 짝 맞지 않음이 있다.

한때에 병란을 만나도 숨은 이는 맞지 않고, 같은 날 서리를 맞아도 가려진 것은 상하지 않는다. 맞아 상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요 숨고 가려진 것이 반드시 착한 것이 아니다. 숨고 가려진 것은 다행이요 맞아 상한 것은 다행하지 못함이다. 다 같이 충성을 바치려 하여도 더러는 상 받고 더러는 벌 받으며, 다 같이 보탬이 되려 하여도 더러는 믿음받고 더러는 의심받는다. 상 받고 믿음받은 이가 반드시 참되지 않고 벌 받고 의심받은 이가 반드시 거짓되지 않다. 상 받고 믿음받은 것은 짝이 맞은 것이요, 벌 받고 의심받은 것은 짝이 맞지 않은 것이다.

孔子門徒七十有餘,顏回蚤夭。孔子曰:「不幸短命死矣!」短命稱不幸,則知長命者幸也,短命者不幸也。服聖賢之道,講仁義之業,宜蒙福佑。伯牛有疾,亦復顏回之類,俱不幸也。螻蟻行於地,人舉足而涉之。足所履,螻蟻死;足所不蹈,全活不傷。火燔野草,車轢所致,火所不燔,俗或喜之,名曰幸草。夫足所不蹈,火所不及,未必善也。〔足〕舉火行,有適然也。由是以論,癰疽之發,亦一實也。氣結閼積,聚為癰;潰為疽創,流血出膿,豈癰疽所發,身之善穴哉?營衛之行,遇之通也。蜘蛛結網,蜚虫過之,或脫或獲;獵者張羅,百獸群擾,或得或失;漁者罾江河之魚,或存或亡;或奸盜大辟而不知,或罰贖小罪而發覺:災氣加人,亦此類也。不幸遭觸而死,幸者免脫而生,不幸者不僥幸也。

공자의 문도가 일흔 남짓인데 안회가 일찍 죽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불행히 명이 짧아 죽었다!」 명이 짧은 것을 불행이라 일컬었으니 명이 긴 이는 다행이요 명이 짧은 이는 불행임을 알 수 있다. 성인과 어진 이의 도를 따르고 인의의 업을 강론하였으니 마땅히 복과 도움을 입어야 한다. 백우가 병든 것도 안회와 같은 무리니 다 불행이다.

땅강아지와 개미가 땅을 다니는데 사람이 발을 들어 지나간다. 발이 밟는 데는 땅강아지와 개미가 죽고 발이 밟지 않는 데는 온전히 살아 상하지 않는다. 불이 들풀을 태우는데 수레바퀴가 굴러간 자리는 불이 태우지 못하니, 세속이 더러 이를 기뻐하여 「다행풀」이라 이름한다. 무릇 발이 밟지 않고 불이 미치지 않은 것이 반드시 착해서가 아니다. 발을 들고 불이 가는 데에 마침 그리된 것이 있을 뿐이다.

이로 미루어 논하면 종기가 나는 것도 한가지다. 기운이 맺혀 막히고 쌓여 모여 종기가 되고 터져 헌데가 되어 피가 흐르고 고름이 나오니, 어찌 종기가 난 데가 몸의 좋은 자리겠는가. 영기와 위기가 도는 것이 마침 거기서 통한 것이다.

거미가 그물을 치면 나는 벌레가 지나다가 더러는 벗어나고 더러는 잡히며, 사냥꾼이 그물을 펴면 온갖 짐승이 떼 지어 몰리다가 더러는 잡히고 더러는 놓치며, 어부가 강과 하수의 고기를 그물질하면 더러는 남고 더러는 잡힌다. 더러는 큰 도둑질로 사형에 해당하는데도 알려지지 않고, 더러는 작은 죄를 속(贖)하면 될 것인데 발각된다. 재앙의 기운이 사람에게 더해지는 것도 이 무리다. 불행한 이는 만나 부딪쳐 죽고 다행한 이는 벗어나 사니, 불행이란 요행을 얻지 못한 것이다.

孔子曰:「人之生也直,罔之生也幸。」則夫順道而觸者為不幸矣。立岩牆之下,為坏所壓;蹈岸之上,為崩所墜,輕遇無端,故為不幸。魯城門久朽欲頓,孔子過之,趨而疾行。左右曰:「久矣。」孔子曰:「惡其久也。」孔子戒慎已甚,如過遭坏,可謂不幸也。故孔子曰:「君子有不幸而無有幸,小人有幸而無不幸。」又曰:「君子處易以俟命,小人行險以僥幸。」

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의 삶은 곧은 것이니, 곧지 않고도 사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면 무릇 도를 따르고도 부딪친 이는 불행이다. 위태로운 담 아래 섰다가 무너진 흙에 눌리고 벼랑 위를 밟았다가 무너져 떨어지는 것은 가벼이 까닭 없이 만난 것이므로 불행이다.

노나라 성문이 오래 썩어 무너지려 하는데 공자가 지나가며 종종걸음으로 빨리 갔다. 곁의 사람이 「오래된 것입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오래되었기에 싫어하는 것이다.」 공자가 경계하고 삼가기를 이미 심히 하였으니, 만일 지나다가 무너짐을 만났다면 불행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불행은 있어도 다행은 없고, 소인에게는 다행은 있어도 불행은 없다.」 또 말하였다. 「군자는 평탄한 데 처하여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험한 데를 다니며 요행을 바란다.」

佞幸之徒,閎〔孺〕、籍孺之輩,無德薄才,以色稱媚,不宜愛而受寵,不當親而得附,非道理之宜。故太史公為之作傳,邪人反道而受恩寵,與此同科,故合其名謂之佞幸。無德受恩,無過遇禍,同一實也。俱稟元氣,或獨為人,或為禽獸;并為人,或貴或賤,或貧或富;富或累金,貧或乞食,貴至封侯,賤至奴仆,非天稟施有左右也,人物受性有厚薄也。俱行道德,禍福不鈞;并為仁義,利害不同。晉文修文德,徐偃行仁義,文公以賞賜,偃王以破滅。

아첨으로 사랑받는 무리, 굉유와 적유 따위는 덕이 없고 재주가 엷은데 얼굴로 어여쁘다 일컬어져, 사랑할 것이 아닌데 총애를 받고 친할 것이 아닌데 가까이 붙었으니 도리에 마땅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그들을 위해 전을 지었다. 삿된 사람이 도를 거스르고도 은총을 받는 것이 이와 같은 등급이므로 그 이름을 합쳐 「영행(佞幸)」이라 하였다. 덕 없이 은혜를 받는 것과 허물 없이 화를 만나는 것은 한가지다.

다 같이 으뜸 기운을 받고도 더러는 홀로 사람이 되고 더러는 새와 짐승이 되며, 나란히 사람이 되고도 더러는 귀하고 더러는 천하며 더러는 가난하고 더러는 넉넉하다. 넉넉하면 더러 금을 쌓고 가난하면 더러 빌어먹으며, 귀하면 후에 봉해지고 천하면 종이 된다. 하늘이 주어 베푸는 데 치우침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과 물건이 성품을 받는 데 두텁고 엷음이 있어서다.

다 같이 도덕을 행하여도 화와 복이 고르지 않고 나란히 인의를 하여도 이롭고 해로움이 같지 않다. 진 문공은 문덕을 닦았고 서 언왕은 인의를 행하였는데, 문공은 그로써 상을 받고 언왕은 그로써 깨져 망하였다.

魯人為父報仇,安行不走,追者舍之;牛缺為盜所奪,和意不恐,盜還殺之。文德與仁義同,不走與不恐等,然文公、魯人得福,偃王、牛缺得禍者,文公、魯人幸,而偃王、牛缺不幸也。韓昭侯醉臥而寒,典冠加之以衣,覺而問之,知典冠愛己也,以越職之故,加之以罪,衛之驂乘者見御者之過,從後呼車,有救危之義,不被其罪。夫驂乘之呼車,典冠之加衣,同一意也。加衣恐主之寒,呼車恐君之危,仁惠之情,俱發於心。然而於韓有罪,於衛為忠,驂乘偶,典冠不偶也。

노나라 사람이 아비를 위해 원수를 갚고 편안히 걸어 달아나지 않으니 쫓는 이가 놓아주었고, 우결이 도적에게 빼앗기고도 온화한 마음으로 두려워하지 않으니 도적이 도리어 죽였다. 문덕과 인의가 같고 달아나지 않음과 두려워하지 않음이 같은데, 문공과 노나라 사람은 복을 얻고 언왕과 우결은 화를 얻은 것은, 문공과 노나라 사람은 다행이었고 언왕과 우결은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한 소후가 취해 누워 추운데 전관(典冠)이 옷을 덮어 주었다. 깨어 물어 전관이 저를 아낀 줄 알았으나 직분을 넘었다는 까닭으로 죄를 주었다. 위나라의 참승(驂乘)이 마부의 허물을 보고 뒤에서 수레를 부르니, 위태로움을 구한 옳음이 있어 죄를 입지 않았다. 무릇 참승이 수레를 부른 것과 전관이 옷을 덮은 것은 한 뜻이다. 옷을 덮은 것은 임금이 추울까 두려워서요 수레를 부른 것은 임금이 위태로울까 두려워서니, 어질고 은혜로운 마음이 다 속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에서는 죄가 되고 위나라에서는 충성이 되었으니, 참승은 짝이 맞았고 전관은 짝이 맞지 않은 것이다.

非唯人行,物亦有之。長數仞之竹,大連抱之木,工技之人裁而用之,或成器而見舉持,或遺材而遭廢棄。非工技之人有愛憎也,刀斧如有偶然也。蒸谷為飯,釀飯為酒。酒之成也,甘苦異味;飯之熟也,剛柔殊和。非庖廚酒人有意異也,手指之調有偶適也。調飯也殊筐而居,甘酒也異器而處,虫墮一器,酒棄不飲;鼠涉一筐,飯捐不食。夫百草之類,皆有補益,遭醫人采掇,成為良葯;或遺枯澤,為火所爍。等之金也,或為劍戟,或為鋒。同之木也,或梁於宮,或柱於橋。俱之火也,或爍脂燭,或燔枯草。均之土也,或基殿堂,或塗軒戶。皆之水也,或溉鼎釜,或澡腐臭。物善惡同,遭為人用,其不幸偶,猶可傷痛,況含精氣之徒乎!

사람의 행실만이 아니라 물건에도 그것이 있다. 길이가 몇 길 되는 대나무와 아름드리 큰 나무를 장인이 잘라 쓰는데, 더러는 그릇이 되어 들려 지니고 더러는 재목으로 남겨져 버려진다. 장인에게 사랑하고 미워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칼과 도끼에 마침 그리됨이 있는 것이다.

곡식을 쪄서 밥을 짓고 밥을 빚어 술을 만든다. 술이 되면 달고 씀이 맛이 다르고 밥이 익으면 되고 무름이 고름이 다르다. 부엌 사람과 술 빚는 이의 뜻이 달라서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고르는 데 마침 맞는 것이 있어서다. 고른 밥도 광주리를 달리하여 두고 단 술도 그릇을 달리하여 두는데, 벌레가 한 그릇에 떨어지면 그 술은 버리고 마시지 않으며 쥐가 한 광주리를 지나가면 그 밥은 버리고 먹지 않는다.

무릇 온갖 풀은 다 보탬이 있는데, 의원을 만나 뜯기면 좋은 약이 되고 더러는 못가에 버려져 말라 불에 탄다. 같은 쇠인데 더러는 칼과 창이 되고 더러는 날이 된다. 같은 나무인데 더러는 궁궐의 들보가 되고 더러는 다리의 기둥이 된다. 같은 불인데 더러는 기름 초를 녹이고 더러는 마른 풀을 태운다. 같은 흙인데 더러는 전당의 터가 되고 더러는 문에 발린다. 같은 물인데 더러는 솥을 채우고 더러는 썩은 것을 씻는다. 물건은 좋고 나쁨이 같건만 사람에게 쓰이는 데서 그 다행하지 못하고 짝 맞지 못함이 오히려 마음 아픈데, 하물며 정기를 머금은 무리야 어떠하겠는가.

虞舜聖人也,在世宜蒙全安之福。父頑母,弟象敖狂,無過見憎,不惡而得罪,不幸甚矣。孔子,舜之次也。生無尺土,周流應聘,削跡絕糧。俱以聖才,并不幸偶。舜尚遭堯受禪,孔子已死於闕里。以聖人之才,猶不幸偶,庸人之中,被不幸偶,禍必眾多矣。

우순은 성인이니 세상에 있으매 마땅히 온전하고 편안한 복을 입어야 한다. 아비는 미련하고 어미는 어리석으며 아우 상은 오만하고 사나워, 허물 없이 미움받고 악하지 않은데 죄를 얻었으니 불행이 심하다. 공자는 순의 다음가는 이다. 나서 한 자의 땅도 없이 두루 떠돌며 부름에 응하다가 자취가 깎이고 양식이 끊겼다. 다 성인의 재주로 나란히 다행하지 못하고 짝 맞지 못하였다. 순은 그래도 요를 만나 선양을 받았으나 공자는 궐리에서 죽고 말았다. 성인의 재주로도 오히려 다행하지 못하고 짝 맞지 못하니, 용렬한 사람 가운데 다행하지 못하고 짝 맞지 못함을 입는 이는 화가 반드시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