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논형 › 솔성편

率性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1 · 한자 2,330자 · 낭독 9.3분

「논형」 솔성편 「率性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論人之性,定有善有惡。其善者,固自善矣;其惡者,故可教告率勉,以之為善。凡人君父審觀臣子之性,善則養育勸率,無令近惡;近惡則輔保禁防,令漸於惡,善漸於惡,惡化於善,成為性行。召公戒成曰:「今王初服厥命,於戲!若生子罔不在厥初生。」生子謂十五子,初生意於善,終以善;初生意於惡,終以惡。《詩》曰:「彼姝者子,何以與之?」傳言:譬猶練絲,染之藍則青,染之丹則赤。

사람의 성품을 논하면 착함이 있고 악함이 있음이 정해져 있다. 착한 이는 본디 절로 착하고, 악한 이는 가르치고 이끌고 힘쓰게 하여 착하게 할 수 있다. 무릇 임금과 아비가 신하와 자식의 성품을 살펴보아, 착하면 기르고 권하고 이끌어 악함에 가까이 가지 않게 하고, 악함에 가까이 갔으면 붙들고 지키고 금하고 막아 악에 젖지 않게 한다. 착함이 악에 젖고 악함이 착함에 변화하여 성품과 행실을 이룬다.

소공이 성왕에게 경계하여 말하였다. 「이제 왕이 처음 그 명을 받으셨으니, 아!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 그 처음 남에 달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열다섯 살 아이를 이르니, 처음 날 때 착함에 뜻을 두면 끝까지 착하고 처음 날 때 악함에 뜻을 두면 끝까지 악하다. 「시」에 이르기를 「저 어여쁜 사람에게 무엇을 주랴」 하였다. 전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누인 실 같아 쪽에 물들이면 푸르고 붉은 물감에 물들이면 붉다 하였다.

十五之子其猶絲也,其有所漸化為善惡,猶藍丹之染練絲,使之為青赤也。青赤一成,真色無異。是故揚子哭岐道,墨子哭練絲也。蓋傷離本,不可復變也。人之性,善可變為惡,惡可變為善,猶此類也。逢生麻間,不扶自直;白紗入緇,不(練)〔染〕自黑。彼蓬之性不直,紗之質不黑;麻扶緇染,使之直黑。夫人之性,猶蓬紗也,在所漸染而善惡變矣。

열다섯 살 아이는 실과 같아서 젖어 변화하여 착하고 악하게 되는 것은 쪽과 붉은 물감이 누인 실을 물들여 푸르고 붉게 하는 것과 같다. 푸름과 붉음이 한번 이루어지면 참빛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양자는 갈림길에서 울었고 묵자는 누인 실을 보고 울었다. 근본을 떠나면 다시 변할 수 없음을 슬퍼한 것이다.

사람의 성품은 착함이 변하여 악해질 수 있고 악함이 변하여 착해질 수 있으니 이 무리와 같다. 쑥이 삼밭 사이에 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절로 곧고, 흰 깁이 검은 물에 들면 물들이지 않아도 절로 검다. 저 쑥의 성품은 곧지 않고 깁의 바탕은 검지 않으나 삼이 붙들고 검은 물이 물들여 곧고 검게 한 것이다. 무릇 사람의 성품은 쑥과 깁 같아서 젖어 물드는 바에 따라 착함과 악함이 변한다.

王良、造父稱為善御,(不)能使不良為良也。如徒能御良,其不良者不能馴服,此則駔工庸師服馴技能,何奇而世稱之?故曰:王良登車,馬不罷駑;堯、舜為政,民無狂愚。傳曰:「堯、舜之民可比屋而封,桀、紂之民可比屋而誅。」斯民也,三代所以直道而行也。

왕량과 조보가 말을 잘 몬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좋지 못한 말을 좋게 만들 수 있어서다. 한갓 좋은 말만 몰 수 있고 좋지 못한 말은 길들이지 못한다면 이는 말장수나 예사 스승의 길들이는 재주니 무엇이 기이하여 세상이 일컫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왕량이 수레에 오르면 말이 지치거나 둔하지 않고 요와 순이 정사를 하면 백성이 미치거나 어리석지 않다 한다. 전에 이르기를 「요와 순의 백성은 집집이 봉할 만하고 걸과 주의 백성은 집집이 벨 만하다」 하였다. 이 백성이 삼대가 곧은 도로 행한 까닭이다.

聖主之民如彼,惡主之民如此,竟在化不在性也。聞伯夷之風者,貪夫廉而懦夫有立志;聞柳下惠之風者,薄夫敦而鄙夫寬。徒聞風名,猶或變節,況親接形面相敦告乎!孔門弟子七十之徒,皆任卿相之用,被服聖教,文才雕琢,知能十倍,教訓之功而漸漬之力也。未入孔子之門時,閭巷常庸無奇,其尤甚不率者,唯子路也。世稱子路無恆之庸人,未入孔門時,戴雞佩豚,勇猛無禮,聞誦讀之聲,搖雞奮豚,揚唇吻之音,聒賢聖之耳,惡至甚矣。孔子引而教之,漸漬磨礫,闔導牖進,猛氣消損,驕節屈折,卒能政事,序在四科。斯蓋變性使惡為善之明效也。夫肥沃,土地之本性也。肥而沃者性美,樹稼丰茂。而者性惡,深耕細鋤,厚加糞壤,勉致人功,以助地力,其樹稼與彼肥沃者相似類也。地之高下,亦如此焉。以鍤鑿地,以增下,則其下與高者齊;如復增鍤,則夫下者不徒齊者也,反更為高,而其高者反為下。使人之性有善有惡,彼地有高有下,勉致其教令之善,則將善者同之矣。善以化渥,釀其教令,變更為善。善則且更宜反過於往善,猶下地增加鍤更崇於高地也。賜不受命而貨殖焉,賜本不受天之富命所加,貨財積聚,為世富人者,得貨殖之朮也。夫得其朮,雖不受命,猶自益饒富。性惡之人,益不稟天善性,得聖人之教,志行變化。世稱利劍有千金之价。棠溪、魚腸之屬,龍泉、太阿之輩,其本鋌,山中之恆鐵也。冶工鍛煉,成為利,豈利劍之鍛與煉乃異質哉?工良師巧,煉一數至也。試取東下直一金之劍,更熟鍛煉,足其火,齊其,猶千金之劍也。夫鐵石天然,尚為鍛煉者變易故質,況人含五常之性,賢聖未之熟鍛煉耳,奚患性之不善哉?古貴良醫者,能知篤劇之病所從生起,而以針葯治而已之。如徒知病之名,而坐觀之,何以為奇?夫人有不善,則乃性命之疾也,無其教治,而欲令變更,豈不難哉!

성스러운 임금의 백성은 저러하고 악한 임금의 백성은 이러하니, 끝내 교화에 있지 성품에 있지 않다. 백이의 풍모를 들은 이는 탐하는 이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이가 뜻을 세우며, 유하혜의 풍모를 들은 이는 야박한 이가 도타워지고 비루한 이가 너그러워진다. 한갓 풍모의 이름을 듣고도 오히려 절개를 바꾸는데, 하물며 몸소 얼굴을 맞대고 서로 도타이 일러 줌에랴.

공자 문하의 일흔 제자는 다 경과 재상의 쓰임을 맡을 만하였으니, 성인의 가르침을 입고 글재주를 다듬어 앎과 재능이 열 곱절이 된 것은 가르침의 공이요 젖어 든 힘이다. 공자의 문에 들기 전에는 마을의 예사 사람이라 기이함이 없었는데 그 가운데 더욱 심하게 따르지 않은 이는 오직 자로였다. 세상이 자로를 일정함이 없는 예사 사람이라 일컬었으니, 공자 문에 들기 전에는 닭 볏을 쓰고 돼지 꼬리를 차고 사납고 무례하여,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면 닭을 흔들고 돼지를 떨치며 입술 소리를 높여 성인과 어진 이의 귀를 시끄럽게 하였으니 악함이 지극히 심하였다. 공자가 이끌어 가르쳐 젖게 하고 갈아 닦아 열어 이끌고 트여 나아가게 하니, 사나운 기운이 사라지고 교만한 절도가 꺾여 마침내 정사를 할 수 있어 차례가 사과(四科)에 들었다. 이는 성품을 변하게 하여 악함을 착하게 만든 밝은 보람이다.

무릇 기름지고 걸음은 땅의 본성이다. 기름지고 건 것은 성품이 아름다워 심은 곡식이 무성하다. 메마른 것은 성품이 나쁘나 깊이 갈고 잘게 매고 거름을 두터이 더하여 사람의 공을 힘써 들여 땅의 힘을 도우면, 그 심은 곡식이 저 기름지고 건 땅의 것과 서로 비슷하다. 땅의 높고 낮음도 이와 같다. 가래로 땅을 파서 낮은 데를 돋우면 그 낮은 데가 높은 데와 가지런해지고, 다시 가래질을 더하면 낮던 데가 다만 가지런할 뿐 아니라 도리어 더 높아지고 높던 데가 도리어 낮아진다. 사람의 성품에 착함과 악함이 있는 것이 저 땅에 높고 낮음이 있는 것 같다면, 가르침과 명령의 착함을 힘써 들이면 장차 착한 이와 같아진다. 착함으로 교화를 두터이 하고 가르침과 명령을 빚어 변하여 착해진다. 착해지면 또 도리어 지난 착함을 넘는 것이 마땅하니, 낮은 땅에 가래질을 더하여 높은 땅보다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

사(賜)는 명을 받지 않고도 재물을 불렸으니, 사는 본디 하늘의 넉넉한 명이 더해진 것을 받지 않았는데 재물을 쌓아 세상의 부자가 된 것은 재물 불리는 술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릇 그 술법을 얻으면 명을 받지 않았어도 오히려 절로 넉넉해진다. 성품이 악한 사람은 하늘의 착한 성품을 받지 못하였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얻으면 뜻과 행실이 변화한다.

세상은 날카로운 칼에 천금의 값이 있다 일컫는다. 당계와 어장의 붙이, 용천과 태아의 무리도 그 본디 쇳덩이는 산속의 예사 쇠다. 대장장이가 두드리고 달구어 날카롭게 이룬 것이니, 어찌 날카로운 칼의 두드림과 달굼이 바탕이 다르겠는가. 장인이 좋고 스승이 공교로워 달구기가 한 수에 이른 것이다. 시험 삼아 동쪽 저잣거리의 값 한 금짜리 칼을 가져다 다시 익히 두드리고 달구어 그 불을 넉넉히 하고 그 담금질을 고르게 하면 오히려 천금의 칼이 된다. 무릇 쇠와 돌은 하늘이 낸 것인데도 두드리고 달구는 이에게 옛 바탕이 바뀌거늘, 하물며 사람은 오상의 성품을 머금었는데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아직 익히 두드리고 달구지 않았을 뿐이니 어찌 성품이 착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옛날에 좋은 의원을 귀히 여긴 것은 심하고 위독한 병이 말미암아 일어난 바를 알아 침과 약으로 다스려 낫게 할 수 있어서다. 한갓 병의 이름만 알고 앉아서 보기만 한다면 무엇으로 기이하다 하겠는가. 무릇 사람에게 착하지 못함이 있으면 곧 성품과 명의 병이니, 그 가르쳐 다스림이 없이 바뀌게 하려 하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天道有真偽。真者固自與天相應,偽者人加知巧,亦與真者無以異也。何以驗之?《禹貢》曰「琳琅」者,此則土地所生,真玉珠也。

하늘의 도에는 참과 거짓이 있다. 참된 것은 본디 절로 하늘과 서로 응하고, 거짓된 것은 사람이 앎과 공교로움을 더한 것이나 또한 참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우공」에 이른 「임랑(琳琅)」이란 것은 땅이 낳은 참된 옥과 구슬이다.

然而道人消爍五石,作五色之玉,比之真玉,光不殊別,兼魚蚌之珠,與《禹貢》琳皆真玉珠也。然而隨侯以葯作珠,精耀如真,道士之教至,知巧之意加也。陽遂取火於天,五月丙午日中之時,消煉五石,鑄以為器,磨礫生光,仰以向日,則火來至。

그런데 도인이 다섯 돌을 녹여 다섯 빛깔의 옥을 만드는데 참 옥에 견주어 빛이 다르지 않다. 아울러 물고기와 조개의 구슬은 「우공」의 임과 더불어 다 참된 옥과 구슬이다. 그런데 수후가 약으로 구슬을 만드니 정한 빛이 참 같았다. 도사의 가르침이 이르고 앎과 공교로움의 뜻이 더해진 것이다. 양수(陽遂)로 하늘에서 불을 취하는데, 오월 병오일 한낮에 다섯 돌을 녹여 그릇을 부어 갈고 닦아 빛이 나게 하여 해를 우러러 향하면 불이 온다.

(比)〔此〕真取火之道也。今妄以刀劍之鉤月,摩拭朗白,仰以向日,亦得火焉。夫鉤月非陽遂也,所以耐取火者,摩拭之所致也。今夫性惡之人,使與性善者同類乎,可率勉之令其為善;使之異類乎,亦可令與道人之所鑄玉、隨侯之所作珠、人之所摩刀劍鉤月焉,教導以學,漸漬以德,亦將日有仁義之操。黃帝與炎帝爭為天子,教熊、羆、貔、虎以戰於阪泉之野,三戰得志,炎帝敗績。堯以天下讓舜,鯀為諸侯,欲得三公,而堯不聽,怒其猛獸,欲以為亂,比獸之角可以為城,舉尾以為旌,奮心盛氣,阻戰為強。夫禽獸與人殊形,猶可命戰,況人同類乎!推此以論,百獸率舞,潭魚出聽,六馬仰秣,不復疑矣。異類以殊為同,同類以鈞為異,所由不在於物,在於人也。凡含血氣者,教之所以異化也。三苗之民,或賢或不肖,堯、舜齊之,恩教加也。

이것이 참으로 불을 취하는 도다. 이제 함부로 칼과 검의 갈고리 달을 문질러 밝고 희게 하여 해를 우러러 향하여도 또한 불을 얻는다. 무릇 갈고리 달은 양수가 아닌데 불을 취할 수 있는 까닭은 문지른 것이 이룬 바다. 이제 성품이 악한 사람이 성품이 착한 이와 같은 무리라면 이끌고 힘쓰게 하여 착하게 할 수 있고, 다른 무리라 하여도 또한 도인이 부어 만든 옥, 수후가 만든 구슬, 사람이 문지른 칼과 검의 갈고리 달처럼 배움으로 가르쳐 이끌고 덕으로 젖게 하면 또한 날로 인의의 몸가짐이 있게 될 것이다.

황제가 염제와 천자가 되기를 다투어 곰과 말곰과 비휴와 범을 가르쳐 판천의 들에서 싸워 세 번 싸워 뜻을 얻으니 염제가 크게 졌다. 요가 천하를 순에게 물려주려 하니 곤이 제후로서 삼공이 되기를 바랐으나 요가 듣지 않았다. 곤이 그 사나운 짐승을 성내게 하여 난을 일으키려 하며 짐승의 뿔을 늘어세워 성을 삼고 꼬리를 들어 깃발을 삼아, 마음을 떨치고 기운을 성하게 하여 싸움을 벌여 강한 척하였다. 무릇 새와 짐승은 사람과 몸이 다른데도 오히려 싸우라 명할 수 있거늘, 하물며 사람은 같은 무리임에랴. 이로 미루어 논하면 온갖 짐승이 따라 춤추고 못의 고기가 나와 듣고 여섯 말이 꼴을 먹다 우러른 일도 다시 의심하지 않는다. 다른 무리가 다름으로써 같아지고 같은 무리가 고름으로써 달라지니, 말미암는 바가 물건에 있지 않고 사람에 있다. 무릇 피와 기운을 머금은 것은 가르침이 달리 변화시키는 까닭이다. 삼묘의 백성이 더러는 어질고 더러는 어질지 못하였으나 요와 순이 고르게 하였으니 은혜와 가르침이 더해진 것이다.

楚、越之人,處庄、岳之間,經歷歲月,變為舒緩,風俗移也。故曰:齊舒緩,秦慢易,楚促急,燕戇投。以庄、岳言之,四國之民,更相出入,久居單處,性必變易。

초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장(莊)과 악(岳) 사이에 살며 세월을 지내면 느긋하게 변하니 풍속이 옮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제나라는 느긋하고 진나라는 게으르고 초나라는 급하고 연나라는 미련하다 한다. 장과 악으로 말하면 네 나라 백성이 서로 드나들며 오래 홀로 살면 성품이 반드시 바뀐다.

夫性惡者,心比木石。木石猶為人用,況非木石?在君子之跡,庶几可見。有痴狂之疾,歌啼於路,不曉東西,不睹燥濕,不覺疾病,不知飢飽,性已毀傷,不可如何。前無所觀,卻無所畏也。是故王法不廢學校之官,不除獄理之吏,欲令凡眾見禮儀之教。學校勉其前,法禁防其後,使丹朱之志亦將可勉。何以驗之?三軍之士,非能制也;勇將率勉,視死如歸。且闔廬嘗試其士五湖之側,皆加刃於肩,血流至地。句踐亦試其士於寢宮之庭,赴火死者,不可勝數。夫刃火,非人性之所貪也,二主激率,念不顧生。是故軍之法,輕刺血。孟賁勇也,聞軍令懼。是故叔孫通制定禮儀,拔劍爭功之臣,奉禮拜伏,初驕倨而後遜順,教威德,變易性也。不患性惡,患其不服聖教,自遇而以生禍也。

무릇 성품이 악한 이는 마음이 나무와 돌에 견줄 만하다. 나무와 돌도 오히려 사람에게 쓰이는데 하물며 나무와 돌이 아님에랴. 군자의 자취에서 거의 볼 수 있다. 미친 병이 있어 길에서 노래하고 울며 동서를 모르고 마르고 젖음을 보지 못하고 병을 깨닫지 못하고 배고픔과 배부름을 모르는 이는 성품이 이미 헐어 상하여 어찌할 수 없다. 앞에 보는 바가 없고 뒤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왕의 법은 학교의 벼슬을 폐하지 않고 옥을 다스리는 아전을 없애지 않으니, 뭇사람으로 하여금 예의의 가르침을 보게 하려 함이다. 학교가 그 앞에서 힘쓰게 하고 법과 금령이 그 뒤를 막으면 단주의 뜻도 또한 힘쓰게 할 수 있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삼군의 군사는 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용맹한 장수가 이끌고 힘쓰게 하면 죽음을 돌아가듯 본다. 또 합려가 일찍이 오호 가에서 그 군사를 시험하니 다 어깨에 칼날을 대어 피가 땅에 흘렀고, 구천도 침궁의 뜰에서 그 군사를 시험하니 불에 뛰어들어 죽은 이가 이루 셀 수 없었다. 무릇 칼날과 불은 사람의 성품이 탐하는 바가 아닌데 두 임금이 격려하고 이끄니 삶을 돌아보지 않을 생각을 하였다. 그러므로 군사의 법은 피를 찌르는 것을 가벼이 여긴다. 맹분은 용맹하였으나 군령을 들으면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숙손통이 예의를 지어 정하매 칼을 뽑아 공을 다투던 신하들이 예를 받들어 절하고 엎드려 처음에는 교만하다가 뒤에는 겸손하고 순하였으니, 위엄과 덕으로 가르쳐 성품을 바꾼 것이다. 성품이 악함을 근심하지 말고 성인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여 화를 낳음을 근심하라.

豆麥之種與稻梁殊,然食能去飢。小人君子稟性異類乎?譬諸五谷皆為用,實不異而效殊者,稟氣有厚泊,故性有善惡也。殘則(授)〔受〕(不)仁之氣泊,而怒則稟勇渥也。仁泊則戾而少(愈)〔慈〕,勇渥則猛而無義,而又和氣不足,喜怒失時,計慮輕愚,妄行之人,罪故為惡。人受五常,含五髒,皆具於身。稟之泊少,故其操行不及善人,猶〔酒〕或厚或泊也。非厚與泊殊其釀也,曲孽多少使之然也。是故酒之泊厚,同一曲孽;人之善惡,共一元氣,氣有少多,鼓性有賢愚。

콩과 보리의 씨는 벼와 기장과 다르나 먹으면 배고픔을 없앨 수 있다. 소인과 군자가 받은 성품이 다른 무리인가. 비유하면 오곡이 다 쓰임이 되는데 열매가 다르지 않으면서 보람이 다른 것은, 받은 기운에 두텁고 엷음이 있으므로 성품에 착함과 악함이 있는 것이다. 잔인한 것은 어진 기운을 엷게 받은 것이요, 성내는 것은 용맹을 두텁게 받은 것이다. 어짊이 엷으면 사나워 사랑이 적고 용맹이 두터우면 사나워 옳음이 없으며, 또 고른 기운이 넉넉지 못하면 기쁨과 성냄이 때를 잃고 헤아림이 가볍고 어리석어 망령되이 행하는 사람이 되니 죄로 일부러 악을 저지른다.

사람은 오상을 받고 오장을 머금어 다 몸에 갖추었다. 받은 것이 엷고 적으므로 그 몸가짐이 착한 사람에 미치지 못하니, 술이 더러 진하고 더러 묽은 것과 같다. 진함과 묽음이 그 빚는 법이 달라서가 아니라 누룩의 많고 적음이 그리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술의 묽고 진함은 같은 한 누룩이요 사람의 착하고 악함은 같은 한 으뜸 기운이니, 기운에 적고 많음이 있으므로 성품에 어질고 어리석음이 있다.

西門豹急,佩韋以自緩;董安於緩,帶弦以自促。急之與緩,俱失中和,然而韋弦附身,成為完具之人。能納韋弦之教,補接不足,則豹、安於之名,可得參也。貧劣宅屋不具牆壁宇(達)〔闥〕,人指訾之。如財貨富愈,起屋筑牆,以自蔽鄣,為人具宅,人弗復非。魏之行田百畝,鄴獨二百,西門豹灌以漳水,成為膏腴,則畝收一鍾。夫人之質猶鄴田,道教猶漳水也。患不能化,不患人性之難率也。雒陽城中之道無水,水工激上洛中之水,日夜馳流,水工之功也。由此言之,迫近君子,而仁義之道數加於身,孟母之徙宅,蓋得其驗。人間之水污濁,在野外者清潔,俱為一水,源從天涯,或濁或清,所在之勢使之然也。南越王趙佗,本漢賢人也,化南夷之俗,背畔王制,椎髻箕坐,好之若性。陸賈說以漢德,懼以聖威,蹶然起坐,心覺改悔,奉制稱蕃,其於椎髻箕坐也,惡之若性。前則若彼,後則若此。由此言之,亦在於教,不獨在性也。

서문표는 급하여 무두질한 가죽을 차서 스스로 늦추었고, 동안우는 느려서 활시위를 띠어 스스로 재촉하였다. 급함과 느림은 다 중화를 잃은 것이나 가죽과 시위가 몸에 붙어 온전히 갖춘 사람이 되었다. 가죽과 시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모자람을 기워 이으면 서문표와 동안우의 이름에 낄 수 있다.

가난하고 초라한 집이 담과 벽과 처마와 문을 갖추지 못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흠잡는다. 재물이 넉넉해져 집을 세우고 담을 쌓아 스스로 가리고 막아 남 보기에 집을 갖추면 사람들이 다시 그르다 하지 않는다. 위나라의 밭은 백 이랑씩 나누었는데 업 땅만 이백이었다. 서문표가 장수를 끌어다 대니 기름진 땅이 되어 이랑마다 한 종을 거두었다. 무릇 사람의 바탕은 업의 밭과 같고 도의 가르침은 장수와 같다. 교화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지 사람의 성품이 이끌기 어려움을 근심할 것이 아니다.

낙양 성안의 길에 물이 없는데 물 다루는 장인이 낙수의 물을 끌어 올려 밤낮으로 달려 흐르게 하니 물 다루는 장인의 공이다. 이로써 말하면 군자를 가까이하여 인의의 도가 자주 몸에 더해지는 것이니, 맹모가 집을 옮긴 것이 그 증험을 얻은 것이다. 사람 사는 데의 물은 더럽고 흐리며 들 밖에 있는 것은 맑고 깨끗하나 다 같은 한 물이다. 근원은 하늘가에서 오는데 더러는 흐리고 더러는 맑은 것은 있는 곳의 형세가 그리 만든 것이다.

남월왕 조타는 본디 한나라의 어진 사람인데 남쪽 오랑캐의 풍속에 물들어 왕의 제도를 등지고 상투를 틀고 다리를 뻗고 앉기를 성품처럼 좋아하였다. 육가가 한나라의 덕으로 달래고 성인의 위엄으로 두렵게 하니 벌떡 일어나 앉아 마음으로 깨달아 뉘우치고 제도를 받들어 번신이라 일컬으며, 상투를 틀고 다리를 뻗고 앉는 것을 성품처럼 미워하였다. 앞에는 저러하고 뒤에는 이러하였다. 이로써 말하면 또한 가르침에 있지 성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