吉驗篇
凡人稟貴命於天,必有吉驗見於地。見於地,故有天命也。驗見非一,或以人物,或以禎祥,或以光氣。
무릇 사람이 귀한 명을 하늘에서 받으면 반드시 좋은 조짐이 땅에 나타난다. 땅에 나타나므로 하늘의 명이 있는 줄을 안다.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 한 가지가 아니어서, 사람이나 물건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상서로운 일로 나타나기도 하고, 빛과 기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傳言黃帝妊二十月而生,生而神靈,弱而能言。長大率諸侯,諸侯歸之。教熊、羆戰,以伐炎帝,炎帝敗績。性與人異,故在母之身留多十月;命當為帝,故能教物,物為之使。堯體就之如日,望之若雲。洪水滔天,蛇龍為害,堯使禹治水,驅蛇龍,水治東流,蛇龍潛處。有殊奇之骨,故有詭異之驗;有神靈之命,故有驗物之效;天命當貴,故從唐侯入嗣帝后之位。
전해 오는 말에 황제는 스무 달을 배어 났고, 나면서 신령하여 어리면서도 말을 할 줄 알았다 한다. 자라서는 제후를 거느리니 제후가 그에게 돌아왔다. 곰과 말곰을 가르쳐 싸우게 하여 염제를 치니 염제가 크게 졌다. 바탕이 남과 달랐으므로 어미의 몸에 열 달을 더 머물렀고, 명이 임금이 될 것이었으므로 짐승을 가르칠 수 있어 짐승이 그를 위해 부려졌다.
요는 가까이 나아가 보면 해 같고 멀리 바라보면 구름 같았다. 큰물이 하늘에 닿고 뱀과 용이 해를 끼치자 요가 우를 시켜 물을 다스리고 뱀과 용을 몰아내게 하니, 물은 다스려져 동으로 흐르고 뱀과 용은 숨어 살았다. 남다른 뼈대가 있었으므로 기이한 조짐이 있었고, 신령한 명이 있었으므로 물건에 나타나는 보람이 있었으며, 하늘의 명이 귀할 것이었으므로 당(唐)의 제후에서 들어가 임금의 자리를 이었다.
舜未逢堯,鰥在側陋。瞽瞍與象,謀欲殺之:使之完廩,火燔其下;令之浚井,土掩其上。舜得下廩,不被火災;穿井旁出,不觸土害。堯聞征用,試之於職。官治職修,事無廢亂;使入大麓之野,虎狼不搏,蝮蛇不噬;逢烈風疾雨,行不迷惑。夫人欲殺之,不能害之;毒螫之野,禽蟲不能傷,卒受帝命,踐天子祚。
순은 요를 만나기 전에 홀아비로 낮고 좁은 데 있었다. 고수와 상이 그를 죽이려 꾀하였다. 곳간을 손보게 하고는 그 밑에 불을 놓았고, 우물을 치게 하고는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순은 곳간에서 내려올 수 있어 불에 타지 않았고, 우물을 옆으로 뚫고 나와 흙에 묻히지 않았다.
요가 듣고 불러 써서 벼슬로 시험하니, 벼슬이 다스려지고 맡은 일이 닦여 그르치거나 어지러운 일이 없었다. 큰 산기슭 들에 들어가게 하니 범과 이리가 덤비지 않고 살무사가 물지 않았으며, 모진 바람과 사나운 비를 만나도 길을 잃지 않았다. 무릇 사람이 죽이려 하여도 해치지 못하고, 독한 것이 우글거리는 들에서도 짐승과 벌레가 상하게 하지 못하더니, 마침내 임금의 명을 받아 천자의 자리를 밟았다.
后稷之(時)〔母〕,履大人跡,或言衣帝嚳之服,坐息帝嚳之處,妊身;怪而棄之隘巷,牛馬不敢踐之,置之冰上,鳥以翼覆之,慶集其身。母知其神怪,乃收養之。長大佐堯,位至司馬。烏孫王號昆莫,匈奴攻殺其父,而昆莫生,棄於野,烏銜肉往食之。單于怪之,以為神而收長。及壯,使兵,數有功。單于乃復以其父之民予昆莫,命令長守於西城。
후직의 어미는 큰사람의 발자국을 밟았다 하고, 더러는 제곡의 옷을 입고 제곡이 쉬던 자리에 앉았다가 아이를 배었다고도 한다. 괴이하게 여겨 좁은 골목에 버렸더니 소와 말이 감히 밟지 않았고, 얼음 위에 두었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고 그 몸에 모여들었다. 어미가 신령하고 괴이한 줄 알고 거두어 길렀다. 자라서 요를 도와 벼슬이 사마에 이르렀다.
오손의 왕은 곤막이라 불렀다. 흉노가 그 아비를 쳐 죽였는데 곤막이 태어나자 들에 버렸더니 까마귀가 고기를 물어다 먹였다. 선우가 괴이하게 여겨 신령하다 하고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자 군사를 부리게 하니 여러 번 공을 세웠다. 선우가 이에 그 아비의 백성을 다시 곤막에게 주고 서쪽 성을 길이 지키라 명하였다.
夫后稷不當棄,故牛馬不踐,鳥以羽翼覆愛其身。昆莫不當死,故烏銜肉就而食之。
무릇 후직은 버려질 것이 아니었으므로 소와 말이 밟지 않았고 새가 날개로 그 몸을 덮어 아꼈다. 곤막은 죽을 것이 아니었으므로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와서 먹였다.
北夷橐離國王侍婢有娠,王欲殺之。婢對曰:「有氣大如雞子,從天而下,我故有娠」。後產子,捐於豬溷中,豬以口氣噓之,不死;復徙置馬欄中,欲使馬藉殺之,馬復以口氣噓之,不死。王疑以為天子,令其母收取,奴畜之,名東明,令牧牛馬。東明善射,王恐奪其國也,欲殺之。東明走,南至掩淲水,以弓擊水,魚鱉浮為橋,東明得渡。魚鱉解散,追兵不得渡。因都王夫餘,故北夷有夫餘國焉。東明之母初妊時,見氣從天下。及生,棄之,豬馬以氣吁之而生之。長大,王欲殺之,以弓擊水,魚鱉為橋。天命不當死,故有豬馬之救;命當都王夫餘,故有魚鱉為橋之助也。
북쪽 오랑캐 탁리국 왕의 시비가 아이를 배자 왕이 죽이려 하였다. 시비가 대답하였다. 「기운이 있어 크기가 달걀만 한데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배었습니다.」
뒤에 아이를 낳자 돼지우리에 버렸는데 돼지가 입김을 불어 주어 죽지 않았다. 다시 옮겨 마구간에 두고 말이 밟아 죽이게 하려 하였으나 말이 또 입김을 불어 주어 죽지 않았다. 왕이 하늘의 아들인가 의심하여 그 어미에게 거두게 하고 종으로 기르며 이름을 동명이라 하고 소와 말을 치게 하였다.
동명이 활을 잘 쏘니 왕은 제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 죽이려 하였다. 동명이 달아나 남쪽으로 엄호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가 되어 동명이 건널 수 있었다. 고기와 자라가 흩어지니 뒤쫓던 군사는 건너지 못하였다. 이에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되었으니, 북쪽 오랑캐에 부여국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명의 어미가 처음 아이를 밸 때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낳아서 버리자 돼지와 말이 기운을 불어 살렸으며, 자라서 왕이 죽이려 하자 활로 물을 쳐 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었다. 하늘의 명이 죽을 것이 아니었으므로 돼지와 말의 구원이 있었고, 명이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될 것이었으므로 고기와 자라가 다리가 되어 주는 도움이 있었다.
협주 6
孫曰:藝文類聚九、白孔六帖九引竝作「高麗」,與魏志東夷傳注作「槀離」同。後漢書作「索離」,注云:「索或作橐。」又與今本論衡同。疑論衡原文作「槀離」,故彙書引作「高麗」,校者或據後漢書改作「橐離」耳。劉先生曰:御覽七三引亦作「高離」。暉按:初學記七引亦作「高離」。
손이양이 말하였다. 「예문유취」 권9와 「백공육첩」 권9가 인용한 데는 모두 「고려(高麗)」로 되어 있으니, 「위지」 동이전 주에 「고리(槀離)」로 된 것과 같다. 「후한서」에는 「색리(索離)」로 되어 있고 주에 「색(索)은 탁(橐)으로도 쓴다」 하였으니, 이는 또 지금 「논형」 판본과 같다. 「논형」의 본디 글은 「고리(槀離)」였는데, 그래서 여러 책이 인용할 때 「고려」로 적었고 교정한 이가 「후한서」에 따라 「탁리(橐離)」로 고쳤을 뿐인 듯하다. 유 선생이 말하였다. 「태평어람」 권73이 인용한 데도 「고리(高離)」로 되어 있다. 황휘가 살핀다. 「초학기」 권7이 인용한 데도 「고리(高離)」로 되어 있다.
初學記七引作「有氣如鷄子來,吞之」。疑此文「下」下有「吞之」二字,於義方足。御覽七三引作「有氣如鷄子來下之」。類聚九、白帖九引並作「有氣如鷄子來下」。三國志魏志東夷傳注引魏略文同。又後漢書東夷傳作「前見天上有氣大如鷄子來降,我因以有身」。與論衡文同。「娠」,類聚、白帖、初學記引並作「身」。
「초학기」 권7이 인용한 데는 「기운이 달걀 같은 것이 오기에 그것을 삼켰다(有氣如鷄子來,吞之)」로 되어 있다. 이 글의 「하(下)」 아래에 「탄지(吞之)」 두 자가 있어야 뜻이 갖추어질 듯하다. 「태평어람」 권73이 인용한 데는 「有氣如鷄子來下之」로 되어 있고, 「예문유취」 권9와 「백공육첩」 권9가 인용한 데는 모두 「有氣如鷄子來下」로 되어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주가 인용한 「위략」의 글도 같다. 또 「후한서」 동이전에는 「앞서 하늘 위에 기운이 있어 크기가 달걀만 한 것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로 말미암아 아이를 배었다(前見天上有氣大如鷄子來降,我因以有身)」로 되어 있는데 「논형」의 글과 같다. 「신(娠)」은 「예문유취」·「백공육첩」·「초학기」가 인용한 데는 모두 「신(身)」으로 되어 있다.
隋書百濟傳曰:「以爲神。」
「수서」 백제전에는 「신령하다고 여겼다(以爲神)」로 되어 있다.
類聚、白帖、御覽引「奪」並作「害」,魏志注引魏略與此文同。
「예문유취」·「백공육첩」·「태평어람」이 인용한 데는 「탈(奪)」이 모두 「해(害)」로 되어 있고, 「위지」 주가 인용한 「위략」은 이 글과 같다.
孫曰:「淲」字當從後漢書東夷傳作「㴲」。李注云:「今高麗中有葢斯水,疑此水是也。」「斯」、「㴲」音近。魏志注作「施掩水」,當作「掩施水」,文誤倒也。隋書百濟傳作「掩水」。暉按:白帖引作「淹水」,類聚、御覽引作「掩水」,並無「㴲」字。搜神記作「施掩水」,與魏志誤同。盼遂案:「淲」當爲「㴲」,形之誤也。後漢書東夷傳作「掩㴲水」。魏志注引魏略作「掩施水」,今本誤作「施掩水」。梁書高句麗傳、隋書百濟傳、北史百濟傳作「淹滯水」,「施」、「滯」皆與「㴲」聲近也。傳世晉義熙時高麗好大王碑作「夫餘奄利大水」,「利」亦與「㴲」音近。足證「淲」字爲失。
손이양이 말하였다. 「호(淲)」 자는 마땅히 「후한서」 동이전을 따라 「사(㴲)」로 하여야 한다. 이현의 주에 「지금 고구려 안에 개사수(葢斯水)가 있으니 이 물인 듯하다」 하였는데, 「사(斯)」와 「사(㴲)」는 소리가 가깝다. 「위지」 주에는 「시엄수(施掩水)」로 되어 있으나 마땅히 「엄시수(掩施水)」여야 하니 글자가 잘못 뒤집힌 것이다. 「수서」 백제전에는 「엄수(掩水)」로 되어 있다.
황휘가 살핀다. 「백공육첩」이 인용한 데는 「엄수(淹水)」로,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이 인용한 데는 「엄수(掩水)」로 되어 있고 다 「사(㴲)」 자가 없다. 「수신기」에는 「시엄수(施掩水)」로 되어 있어 「위지」의 잘못과 같다.
유반수가 살핀다. 「호(淲)」는 마땅히 「사(㴲)」여야 하니 꼴이 잘못된 것이다. 「후한서」 동이전에는 「엄사수(掩㴲水)」로 되어 있다. 「위지」 주가 인용한 「위략」에는 「엄시수(掩施水)」로 되어 있는데 지금 판본이 「시엄수(施掩水)」로 잘못 적었다. 「양서」 고구려전과 「수서」 백제전과 「북사」 백제전에는 「엄체수(淹滯水)」로 되어 있으니, 「시(施)」와 「체(滯)」가 다 「사(㴲)」와 소리가 가깝다. 세상에 전하는, 진나라 의희 연간에 세운 고구려 호대왕 비에는 「부여 엄리대수(奄利大水)」로 되어 있으니 「리(利)」 또한 「사(㴲)」와 소리가 가깝다. 「호(淲)」 자가 잘못임을 넉넉히 증명한다.
後漢書東夷傳:「夫餘國在玄菟北千里,南與高句驪,東與挹婁,西與鮮卑接,北有弱水,地方二千里,本濊地也。」盼遂案:此段魏略全録其文,見三國魏志夫餘傳注。惟彼文槖離國作槀離國是也。此作「橐」,非。槀離卽高麗之同音字。梁書高句麗傳亦寫作「橐」。後漢書扶餘傳誤作「索」,皆坐不知其爲高麗之音而致耳。又按:東明之事,正史外國傳述各族之始祖往往雷同,惟晉安帝義熙十年高麗所立之廣開土好大王紀功碑,及魏書高句麗傳之説爲至奇,且足與論衡互校。今迻録之如次。碑云:「惟昔始祖鄒牟之創基也,出自北夫餘天帝之子。母河伯女郎,刮卵降出,生子有聖才。□□□□□命駕巡車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王臨津言曰:『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郎鄒牟王,爲我連□浮龜』。應聲卽爲連□浮龜。然後造渡于沸流谷,忽本西城山上而建都焉。永東□位,因遣黄龍下來速王。王子忽本東𡶩,黄龍負升天」云云。魏書云:「高句麗者,出於夫餘,自言先祖朱蒙。朱蒙,母河伯女,爲夫餘王閉於室中,爲日所照,引身避之,日影又逐。既而有孕,生一卵,大如五升。夫餘王棄之與犬,犬不食。棄之與豕,豕又不食。棄之於路,牛馬避之。後棄之野,衆鳥以毛茹之。夫餘王割剖之,不能破,遂還其母。以物裹之,置於暖處,有一男破殼而出。及其長也,字之曰朱蒙,其俗言『朱蒙』者,善射也。夫餘人以朱蒙非人所生,將有異志,請除之,王不聽。夫餘之臣又謀殺之。朱蒙母陰知,告朱蒙曰:『國將害汝,以汝才略,宜遠適四方』。朱蒙乃棄夫餘,東南走。中道遇一大水,欲濟無梁,夫餘人追之甚急。朱蒙告水曰:『我是日子,河伯外孫,今日逃走,追兵垂及,如何得濟?』於是魚鱉並浮,爲之成橋,朱蒙得渡,魚鱉乃解,追騎不得渡。朱蒙遂至普述水,遇見三人,其一人著麻衣,一人著納衣,一人著水藻衣,與朱蒙至紇升骨城,遂居焉,號曰高句麗,因以爲氏焉。」
「후한서」 동이전에 「부여국은 현도 북쪽 천 리에 있다. 남으로 고구려와, 동으로 읍루와, 서로 선비와 접하고, 북에는 약수가 있다. 땅은 사방 이천 리이고 본디 예(濊)의 땅이다」 하였다.
유반수가 살핀다. 이 대목은 「위략」이 그 글을 온전히 옮겨 적었으니 「삼국지」 위지 부여전 주에 보인다. 다만 그 글에 탁리국을 고리국(槀離國)으로 적은 것이 옳다. 여기 「탁(橐)」으로 적은 것은 그르다. 「고리(槀離)」는 곧 「고려(高麗)」와 소리가 같은 글자다. 「양서」 고구려전에도 「탁(橐)」으로 적었다. 「후한서」 부여전은 「색(索)」으로 잘못 적었으니, 다 그것이 고려의 소리인 줄 몰라서 그리된 것일 뿐이다.
또 살핀다. 동명의 일은 정사의 외국전이 여러 겨레의 시조를 적을 때 흔히 서로 같으나, 오직 진 안제 의희 십년에 고구려가 세운 광개토호대왕 기공비와 「위서」 고구려전의 말이 매우 기이하고 또 「논형」과 서로 맞대어 보기에 넉넉하다. 이제 다음과 같이 옮겨 적는다.
비에 이르기를 「옛적 시조 추모왕이 터를 여신 것은, 북부여에서 나오신 천제의 아들이시다.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인데 알을 갈라 내려 낳으시니 그 아들에게 성스러운 재주가 있었다. □□□□□ 수레에 멍에하여 남쪽으로 내려가시는데 길이 부여 엄리대수를 지났다. 왕이 나루에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황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을 잇고 거북을 띄우라』 하시니, 소리에 응하여 곧 □을 잇고 거북을 띄웠다. 그런 뒤에 건너 비류곡 홀본 서쪽 성 산 위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셨다. 영동□위(永東□位)하시매 이에 황룡을 보내어 내려와 왕을 맞게 하였다. 왕은 홀본 동쪽 언덕에서 황룡의 등에 업혀 하늘로 오르셨다」 운운하였다.
「위서」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는데 스스로 선조를 주몽이라 한다.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의 딸인데 부여왕이 방 안에 가두었더니 해가 비추므로 몸을 끌어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좇았다. 이윽고 아이를 배어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들이만 하였다. 부여왕이 그것을 버려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버려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고, 길에 버렸으나 소와 말이 피하였다. 뒤에 들에 버렸더니 뭇 새가 털로 감쌌다. 부여왕이 갈라 쪼개려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데 두었더니 사내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자라매 자를 주몽이라 하였으니, 그 나라 말에 『주몽』이란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부여 사람들은 주몽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 장차 다른 뜻을 품으리라 하여 없애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부여의 신하들이 또 죽이기를 꾀하였다. 주몽의 어미가 몰래 알고 주몽에게 일러 말하였다. 『나라가 장차 너를 해치려 하니, 네 재주와 꾀로 마땅히 멀리 사방으로 가라.』 주몽이 이에 부여를 버리고 동남쪽으로 달아났다. 도중에 큰물 하나를 만나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고 부여 사람들이 매우 급히 뒤쫓았다. 주몽이 물에 고하여 말하였다. 『나는 해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달아나는데 뒤쫓는 군사가 곧 미치겠으니 어찌하면 건널 수 있겠는가?』 이에 고기와 자라가 함께 떠올라 다리를 이루어 주니 주몽이 건널 수 있었고, 고기와 자라가 이내 흩어지매 뒤쫓던 기병은 건너지 못하였다. 주몽이 마침내 보술수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는데, 하나는 삼베옷을 입었고 하나는 기운옷을 입었고 하나는 마름옷을 입었다. 주몽과 함께 흘승골성에 이르러 마침내 거기 살며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이로써 씨를 삼았다」 하였다.
伊尹且生之時,其母夢人謂已曰:「臼出水,疾東走。」母顧明旦視臼出水,即東走十里,顧其鄉皆為水矣。伊尹命不當沒,故其母感夢而走。推此以論,歷陽之都,其策命若伊尹之類,必有先時感動在他地之效。
이윤이 태어나려 할 때 그 어미의 꿈에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절구에서 물이 나오거든 빨리 동쪽으로 달아나라」 하였다. 어미가 이튿날 아침에 보니 절구에서 물이 나오므로 곧 동쪽으로 십 리를 달아났는데, 돌아보니 그 고을이 다 물이 되어 있었다. 이윤은 명이 빠져 죽을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어미가 꿈에 느껴 달아났다. 이로 미루어 논하면, 역양이 도읍째 가라앉을 때에도 이윤 같은 명을 받은 이가 있었다면 반드시 그보다 앞서 느껴 움직여 다른 데 가 있는 보람이 있었을 것이다.
齊襄公之難,桓公為公子,與子糾爭立。管仲輔子糾,鮑叔佐桓公。管仲與桓公爭,引弓射之,中其帶鉤。夫人身長七尺,帶約其要,鉤挂於帶,在身所掩不過一寸之內,既微小難中,又滑澤靡,鋒刃中鉤者,莫不蹉跌。管仲射之,正中其鉤中,矢觸因落,不跌中旁肉。命當富貴,有神靈之助,故有射鉤不中之驗。楚共王有五子:子招、子圉、子干、子晰、棄疾。五人皆有寵,共王無適立,乃望祭山川,請神決之。乃與巴姬埋璧於太室之庭,令五子齊而入拜。康王跨之;子圉肘加焉;子干、子晰皆遠之;棄疾弱,抱而入,再拜皆壓紐。故共王死,招為康王,至子失之;圉為靈王,及身而弒;子干為王,十有餘日;子晰不立,又懼誅死,皆絕無後。棄疾後立,竟續楚祀,如其神符。其王日之長短,與拜去璧遠近相應也。夫璧在地中,五子不知,相隨入拜,遠近不同,壓紐若神將教跽之矣。晉屠岸賈作難,誅趙盾之子朔死,其妻有遺腹子。
제 양공의 난에 환공은 공자로서 자규와 임금 자리를 다투었다. 관중은 자규를 돕고 포숙은 환공을 도왔다. 관중이 환공과 다투다가 활을 당겨 쏘아 그 띠고리를 맞혔다.
무릇 사람의 키가 일곱 자인데 띠가 그 허리를 두르고 고리가 띠에 걸리니, 몸에서 가리는 데가 한 치 안에 지나지 않는다. 작아서 맞히기 어려운 데다 미끄럽고 반드러워 날붙이가 고리에 닿으면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 없다. 관중이 쏜 것이 바로 그 고리 한가운데를 맞혀 화살이 부딪고는 떨어졌고, 미끄러져 곁의 살을 맞히지 않았다. 명이 부귀할 것이었고 신령의 도움이 있었으므로, 고리를 쏘고도 몸은 맞히지 못한 조짐이 있었던 것이다.
초 공왕에게 아들 다섯이 있었으니 자초·자어·자간·자석·기질이다. 다섯이 다 사랑을 받아 공왕이 세울 이를 정하지 못하고, 이에 산천에 바라보아 제사하며 신에게 가려 달라 청하였다. 파희와 함께 구슬을 태실 뜰에 묻고 다섯 아들에게 재계하고 들어가 절하게 하였다. 강왕은 그것을 타넘었고, 자어는 팔꿈치가 그 위에 놓였고, 자간과 자석은 다 멀었고, 기질은 어려서 안겨 들어갔는데 두 번 절하는 데 다 구슬 끈을 눌렀다.
그러므로 공왕이 죽자 초는 강왕이 되었으나 아들 대에 이르러 잃었고, 어는 영왕이 되었으나 제 몸에 이르러 시해되었고, 자간은 임금이 된 지 열흘 남짓이었고, 자석은 즉위하지 못하고 또 죽임을 두려워하여 죽어 다 뒤가 끊겼다. 기질이 뒤에 즉위하여 마침내 초나라 제사를 이었으니 그 신의 표와 같았다. 그 임금 노릇 한 날의 길고 짧음이 절할 때 구슬에서 떨어진 멀고 가까움과 서로 맞았다. 무릇 구슬은 땅속에 있어 다섯 아들이 알지 못하고 서로 따라 들어가 절하였는데 멀고 가까움이 같지 않았으니, 끈을 누른 것은 신이 무릎 꿇을 자리를 가르쳐 준 것 같다.
진나라 도안고가 난을 일으켜 조돈의 아들 삭을 죽이니, 그 아내에게 유복자가 있었다.
及岸賈聞之,索於宮,母置兒於褲中,祝曰:「趙氏宗滅乎,若當啼。即不滅,若無聲。」
안고가 듣고 궁에서 찾자 어미가 아이를 고의 속에 넣고 빌었다. 「조씨의 종가가 망할 것이면 너는 마땅히 울어라. 망하지 않을 것이면 너는 소리를 내지 마라.」
及索之而終不啼,遂脫得活。程嬰(齊)〔齎〕負之,匿於山中。至景公時,韓厥言於景公。景公乃與韓厥共立趙孤,續趙氏祀,是為文子。當趙孤之無聲,若有掩其口者矣。由此言之,趙文子立,命也。
찾을 때에 끝내 울지 않아 마침내 벗어나 살았다. 정영이 지고 가서 산속에 숨겼다. 경공 때에 이르러 한궐이 경공에게 말하니, 경공이 이에 한궐과 함께 조씨의 고아를 세워 조씨의 제사를 잇게 하였다. 이가 문자다. 조씨의 고아가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그 입을 가려 준 이가 있는 것 같았다. 이로써 말하면 조 문자가 선 것은 명이다.
高皇帝母曰劉媼,嘗息大澤之陂,夢與神遇。是時,雷電晦冥,蛟龍在上。及生而有美。性好用酒,嘗從王媼、武負貰酒,飲醉,止臥,媼、負見其身常有神怪。每留飲醉,酒售數倍。後行澤中,手嶄大蛇,一嫗當道而哭,云:「赤帝子殺吾子。」此驗既著聞矣。秦始皇帝常曰:「東南有天子氣」。於是東游以厭當之。高祖之(氣)〔起〕也,與呂后隱於芒、山澤間。呂后與人求之,見其上常有氣直起,往求輒得其處。後與項羽約:先入秦關王之。高祖先至,項羽怨恨,范增曰:「吾令人望其氣,氣皆為龍,成五采,此皆天子之氣也。急擊之」。高祖往謝項羽。羽與亞父謀殺高祖,使項莊拔劍起舞。項伯知之,因與項莊俱起。每劍加高祖之上,項伯輒以身覆高祖之身,劍遂不得下,殺勢不得成。會有張良、樊噲之救,卒得免脫,遂王天下。初妊身有蛟龍之神;既生,酒舍見雲氣之怪;夜行斬蛇,蛇嫗悲哭;始皇、呂后,望見光氣;項羽謀殺,項伯為蔽,謀遂不成,遭得良、噲,蓋富貴之驗,氣見而物應、人助輔援也。竇太后弟名曰廣國,年四五歲,家貧,為人所掠賣。其家不知其所在,傳賣十餘家。至宜陽,為其主人入山作炭。暮寒,臥炭下,百餘人炭崩盡壓死,廣國獨得脫。自卜數日當為侯,從其家之長安,聞竇皇后新立,家在清河觀津,乃上書自陳。竇(太)〔皇〕后言於(景)〔文〕帝,召見問其故,果是,乃厚賜之。(文)〔景〕帝立,拜廣國為章武侯。夫積炭崩,百餘人皆死,廣國獨脫,命當富貴,非徒得活,又封為侯。虞子大,陳留東(莞)〔昏〕人也,其生時以夜,適免母身,母見其上若一匹練狀,經上天。明以問人,人皆曰:「吉,貴。」氣與天通,長大仕宦,位至司徒公。廣文伯河東蒲阪人也,其生亦以夜半時,適生,有人從門呼其父名。父出應之,不見人,有一木杖植其門側,好善異於眾,其父持杖入門以示人,人占曰:「吉」。文伯長大學宦,位至廣漢太守。文伯當富貴,故父得賜杖。其占者若曰:「杖當子力矣。」
고황제의 어미는 유온이라 한다. 일찍이 큰 못 둑에서 쉬다가 꿈에 신과 만났다. 이때 우레와 번개로 어두컴컴하고 교룡이 그 위에 있었다. 낳으니 아름다움이 있었다. 성품이 술을 즐겨 일찍이 왕온과 무부에게서 외상으로 술을 마셨는데, 취하여 누우면 온과 부가 그 몸에 늘 신령하고 괴이한 것이 있음을 보았다. 그가 머물러 취해 마실 때마다 술이 몇 곱절씩 팔렸다. 뒤에 못 가운데를 가다가 손으로 큰 뱀을 베었는데, 한 노파가 길을 막고 울며 말하였다. 「붉은 임금의 아들이 내 아들을 죽였다.」 이 조짐은 이미 드러나 알려진 것이다.
진 시황제가 늘 말하기를 「동남쪽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 하였다. 이에 동쪽으로 놀러 가 그것을 눌러 막으려 하였다. 고조가 일어날 때에 여후와 함께 망(芒)의 산과 못 사이에 숨었다. 여후가 사람들과 그를 찾을 때 그 위에 늘 기운이 곧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가서 찾으면 곧 그 자리를 얻었다.
뒤에 항우와 약속하기를 먼저 진나라 관에 드는 이가 그곳의 왕이 되기로 하였다. 고조가 먼저 이르니 항우가 원망하였다. 범증이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시켜 그 기운을 바라보게 하니 기운이 다 용이 되고 다섯 빛깔을 이루었소. 이는 다 천자의 기운이오. 급히 치시오.」 고조가 가서 항우에게 사과하였다. 항우가 아부와 더불어 고조를 죽이려 꾀하여 항장에게 칼을 뽑아 일어나 춤추게 하였다. 항백이 이를 알고 항장과 함께 일어났다. 칼이 고조의 위에 더해질 때마다 항백이 곧 제 몸으로 고조의 몸을 덮으니, 칼이 마침내 내려오지 못하고 죽이려는 형세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마침 장량과 번쾌의 구원이 있어 끝내 벗어나 마침내 천하의 왕이 되었다.
처음 아이를 밸 때 교룡의 신령함이 있었고, 나서는 술집에서 구름 기운의 괴이함이 보였고, 밤길에 뱀을 베자 뱀의 노파가 슬피 울었고, 시황과 여후가 빛과 기운을 바라보았고, 항우가 죽이려 꾀하자 항백이 가려 주어 꾀가 마침내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장량과 번쾌를 만나 얻었다. 다 부귀할 조짐이니, 기운이 나타나면 물건이 응하고 사람이 도와 붙들어 주는 것이다.
두태후의 아우는 이름이 광국인데 네댓 살 때 집이 가난하여 남에게 붙잡혀 팔렸다. 그 집에서는 있는 곳을 알지 못하였고 열 몇 집에 옮겨 팔렸다. 의양에 이르러 그 주인을 위해 산에 들어가 숯을 구웠다. 저물어 추우므로 숯 아래 누웠는데 백여 사람이 숯이 무너져 다 눌려 죽고 광국만 홀로 벗어났다. 스스로 점쳐 며칠 뒤에 마땅히 제후가 되리라 하고, 그 집을 따라 장안에 가서 두황후가 새로 책봉되었고 집이 청하 관진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에 글을 올려 스스로 아뢰었다. 두황후가 문제에게 말하니 불러 보고 그 까닭을 물었는데 과연 맞으므로 이에 두터이 내렸다. 경제가 즉위하여 광국을 장무후로 삼았다. 무릇 쌓은 숯이 무너져 백여 사람이 다 죽었는데 광국만 홀로 벗어났으니, 명이 부귀할 것이어서 다만 살았을 뿐 아니라 또 봉해져 제후가 되었다.
우자대는 진류 동혼 사람이다. 그가 날 때는 밤이었는데 어미의 몸에서 막 벗어나자 어미가 그 위에 한 필 명주 같은 것이 하늘로 뻗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날이 밝아 남에게 물으니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길하다, 귀하다」 하였다. 기운이 하늘과 통한 것이다. 자라서 벼슬하여 자리가 사도공에 이르렀다.
광문백은 하동 포판 사람이다. 그가 난 것도 밤중이었는데 막 나자 어떤 사람이 문에서 그 아비의 이름을 불렀다. 아비가 나가 대답하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무 지팡이 하나가 그 문 곁에 세워져 있었는데 좋고 아름다움이 뭇 것과 달랐다. 그 아비가 지팡이를 들고 문에 들어가 남에게 보이니 점치는 이가 말하기를 「길하다」 하였다. 문백은 자라서 배워 벼슬하여 자리가 광한 태수에 이르렀다. 문백이 부귀할 것이었으므로 아비가 지팡이를 받은 것이다. 그 점치는 이는 「지팡이는 아들의 힘을 맡을 것이다」라고 말한 셈이다.
光武帝建平元年十二月甲子生於濟陽宮後殿第二內中,皇考為濟陽令,時夜無火,室內自明。皇考怪之,即召功曹吏充蘭,使出問卜工。蘭與馬下卒蘇永俱之卜王長孫所。長孫卜,謂永、蘭曰:「此吉事也。毋多言。」是歲,有禾生景天備火中,三本一莖九穗,長於禾一二尺,蓋嘉禾也。元帝之初,有鳳凰下濟陽宮,故今濟陽宮有鳳凰廬。始與李父等俱起,到柴界中,遇賊兵,惶惑走濟陽舊廬。比到,見光若火正赤,在舊廬道南,光耀憧憧上屬天,有頃不見。王莽時,謁者蘇伯阿能望氣,使過(春)〔舂〕陵,城郭鬱鬱蔥蔥。及光武到河北,與伯阿見,問曰:「卿前過(春)〔舂〕陵,何用知其氣佳也?」伯阿對曰:「見其鬱鬱蔥蔥耳。」蓋天命當興,聖王當出,前後氣驗,照察明著。繼體守文,因據前基,稟天光氣,驗不足言。創業龍興,由微賤起於顛沛;若高祖、光武者,曷嘗無天人神怪光顯之驗乎!
광무제는 건평 원년 십이월 갑자에 제양궁 뒷전 둘째 안채에서 났다. 아버지가 제양의 수령이었는데 그때 밤에 불이 없는데도 방 안이 절로 밝았다. 아버지가 괴이하게 여겨 곧 공조리 충란을 불러 나가서 점치는 이에게 묻게 하였다. 난은 마하졸 소영과 함께 점치는 왕장손이 있는 데로 갔다. 장손이 점치고 영과 난에게 말하였다. 「이는 길한 일이오. 말을 많이 하지 마시오.」
그해에 벼가 경천비화(景天備火) 가운데 났는데 세 뿌리에 한 줄기로 이삭이 아홉이고 보통 벼보다 한두 자가 길었으니 상서로운 벼일 것이다. 원제 초년에 봉황이 제양궁에 내렸으므로 지금 제양궁에 봉황려가 있다.
처음 이씨 어른들과 함께 일어나 시(柴) 땅 경계에 이르러 도적의 군사를 만나 두려워 어쩔 줄 모르고 제양의 옛집으로 달아났다. 이르러 보니 빛이 불같이 아주 붉은데 옛집 길 남쪽에 있어 빛이 어른거리며 위로 하늘에 닿았다가 얼마 뒤 보이지 않았다.
왕망 때 알자 소백아가 기운을 바라볼 줄 알았는데, 사신으로 용릉을 지나다가 성곽이 울울총총한 것을 보았다. 광무가 하북에 이르러 백아를 보고 물었다. 「경이 전에 용릉을 지날 때 무엇으로 그 기운이 아름다운 줄 알았소?」 백아가 대답하였다. 「그 울울총총한 것을 보았을 따름입니다.」
아마 하늘의 명이 일어날 것이고 성스러운 임금이 나올 것이어서 앞뒤의 기운과 조짐이 밝게 드러나 살펴진 것이다. 자리를 이어 지키는 임금은 앞선 터에 기대는 것이라 하늘의 빛과 기운을 받는 조짐은 말할 것이 못 된다. 업을 처음 일으켜 용처럼 흥한 이는 낮고 천한 데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가운데 일어난다. 고조나 광무 같은 이에게 어찌 하늘과 사람의 신령하고 괴이하며 빛나 드러나는 조짐이 없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