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骨相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0 · 한자 2,305자 · 낭독 9.2분

「논형」 골상편 「骨相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人曰命難知。命甚易知。知之何用?用之骨體。人命稟於天,則有表候以知體。察表候以知命,猶察斗斛以知容矣。表候者,骨法之謂也。傳言黃帝龍顏,顓頊戴午,帝嚳駢齒,堯眉八采,舜目重瞳,禹耳三漏,湯臂再肘,文王四乳,武王望陽,周公背僂,皋陶馬口,孔子反羽。斯十二聖者,皆在帝王之位,或輔主憂世,世所共聞,儒所共說,在經傳者較著可信。若夫短書俗記、竹帛胤文,非儒者所見,眾多非一。蒼頡四目,為黃帝史。晉公子重耳仳脅,為諸侯霸。蘇秦骨鼻,為六國相。張儀仳脅,亦相秦、魏。項羽重瞳,云虞舜之後。與高祖分王天下。

사람들은 명을 알기 어렵다 한다. 명은 매우 알기 쉽다. 무엇으로 아는가. 뼈와 몸으로 안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서 받으니 겉의 조짐이 있어 몸으로 알 수 있다. 겉의 조짐을 살펴 명을 아는 것은 말과 되를 살펴 담기는 양을 아는 것과 같다. 겉의 조짐이란 뼈의 법을 이른다.

전하는 말에 황제는 용의 얼굴이요, 전욱은 이마에 오(午) 자가 있고, 제곡은 이가 나란히 붙었고, 요는 눈썹이 여덟 빛깔이요, 순은 눈에 눈동자가 둘이요, 우는 귀에 구멍이 셋이요, 탕은 팔에 팔꿈치가 둘이요, 문왕은 젖이 넷이요, 무왕은 눈이 위로 치켜 보고, 주공은 등이 굽었고, 고요는 말의 입이요, 공자는 머리가 뒤집힌 지붕 같다. 이 열두 성인은 다 임금의 자리에 있었거나 임금을 도와 세상을 근심한 이들이니, 세상이 함께 듣고 유자가 함께 말하는 바로 경과 전에 있는 것이라 뚜렷하여 믿을 만하다.

짧은 글과 세속의 기록, 죽간과 비단의 잇따른 글은 유자가 보는 바가 아니나 많아서 하나가 아니다. 창힐은 눈이 넷이어서 황제의 사관이 되었다. 진(晉)나라 공자 중이는 갈비뼈가 붙어 제후의 패자가 되었다. 소진은 코뼈가 솟아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장의는 갈비뼈가 붙어 또한 진(秦)과 위의 재상이 되었다. 항우는 눈동자가 둘이라 우순의 후손이라 하였고 고조와 천하를 나누어 왕 노릇 하였다.

陳平貧而飲食之足,貌體佼好,而眾人怪之,曰:「平何食而肥?」及韓信為滕公所鑒,免於質,亦以面狀有異。面狀肥佼,亦一相也。高祖隆准、龍顏、美須,左股有七十二黑子。單父呂公善相,見高祖狀貌,奇之,因以其女妻高祖,呂后是也,卒生孝惠(王)〔帝〕、魯元公主。高祖為泗上亭長,當去歸之田,與呂后及兩子居田。有一老公過,請飲,因相呂后曰:「夫人,天下貴人也。」令相兩子,見孝惠曰:「夫人所以貴者,乃此男也。」相魯元,曰:「皆貴。」老公去,高祖從外來,呂后言於高祖。高祖追及老公,止使自相。老公曰:「鄉者夫人嬰兒相皆似君,君相不可言也。」後高祖得天下,如老公言。推此以況,一室之人,皆有富貴之相矣。

진평은 가난한데도 먹고 마심이 넉넉하고 얼굴과 몸이 곱고 좋아 뭇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였다. 「평은 무엇을 먹었기에 살졌는가?」 한신이 등공에게 알아보여져 죽음을 면한 것도 얼굴 모양에 남다른 데가 있어서였다. 얼굴 모양이 살지고 고운 것도 한 상이다.

고조는 콧마루가 높고 용의 얼굴에 수염이 아름다웠으며 왼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일흔둘 있었다. 선보의 여공이 관상을 잘 보았는데 고조의 생김새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그 딸을 고조에게 시집보내니 여후가 그이요, 마침내 효혜제와 노원공주를 낳았다.

고조가 사상의 정장이었을 때 휴가를 얻어 밭으로 돌아가 여후와 두 아이와 함께 밭에 있었다. 한 늙은이가 지나다가 마실 것을 청하고 이어 여후의 상을 보고 말하였다. 「부인은 천하의 귀인이오.」 두 아이의 상을 보게 하니 효혜를 보고 말하였다. 「부인이 귀하게 될 까닭은 곧 이 사내아이요.」 노원의 상을 보고 말하였다. 「다 귀하오.」 늙은이가 떠나고 고조가 밖에서 오자 여후가 고조에게 말하였다. 고조가 늙은이를 뒤쫓아 따라잡아 세워 제 상을 보게 하였다. 늙은이가 말하였다. 「아까 부인과 아이들의 상이 다 그대와 닮았으니 그대의 상은 말로 다 할 수 없소.」 뒤에 고조가 천하를 얻은 것이 늙은이의 말과 같았다. 이로 미루어 견주면 한집안 사람이 다 넉넉하고 귀한 상을 지녔던 것이다.

類同氣鈞,性體法相固自相似。異氣殊類,亦兩相遇。富貴之男娶得富貴之妻,女亦得富貴之男。夫二相不鈞而相遇,則有立死;若未相適,有豫亡之禍也。

무리가 같고 기운이 고르면 성품과 몸과 뼈의 상이 본디 절로 서로 비슷하다. 기운이 다르고 무리가 달라도 또한 둘이 서로 만난다. 넉넉하고 귀한 사내는 넉넉하고 귀한 아내를 얻고 여자도 넉넉하고 귀한 사내를 얻는다. 무릇 두 상이 고르지 않은데 서로 만나면 곧 죽는 일이 있고, 아직 서로 맞지 않았으면 미리 죽는 화가 있다.

王莽姑正君許嫁,至期當行時,夫輒死。如此者再,乃獻之趙王,趙王未取,又薨。清河南宮大有與正君父稚君善者遇,相君曰:「貴為天下母。」是時,宣帝世,元帝為太子,稚君乃因魏郡都尉納之太子,太子幸之,生子君上。宣帝崩,太子立,正君為皇后,君上為太子。元帝崩,太子立,是為成帝,正君為皇太后,竟為天下母,夫正君之相當為天下母,而前所許二家及趙王為無天下父之相,故未行而二夫死,趙王薨。是則二夫、趙王無帝王大命,而正君不當與三家相遇之驗也。丞相黃次公故為陽夏游徼,與善相者同車俱行,見一婦人年十七八,相者指之曰:「此婦人當大富貴,為封侯者夫人。」次公止車,審視之,相者曰:「今此婦人不富貴,卜書不用也。」次公問之,乃其旁里人巫家子也,即娶以為妻。其後,次公果大富貴,位至丞相,封為列侯。夫次公富貴,婦人當配之,故果相遇,遂俱富貴。使次公命賤,不得婦人為偶,不宜為夫婦之時,則有二夫、趙王之禍。夫舉家皆富貴之命,然後乃任富貴之事。骨法形體,有不應者,擇必別離死亡,不得久享介福。故富貴之家,役使奴僮,育養牛馬,必有與眾不同者矣。僮奴則有不死亡之相,牛馬則有數字乳之性,田則有種孽速熟之谷,商則有居善疾售之貨。是故知命之人,見富貴於貧賤,睹貧賤於富貴。

왕망의 고모 정군이 시집가기로 허락하였는데 때가 되어 가려 할 때마다 지아비가 곧 죽었다. 이런 일이 두 번이어서 이에 조왕에게 바치니 조왕이 아직 맞이하기 전에 또 죽었다. 청하 남궁의 대유가 정군의 아비 치군과 사이가 좋았는데 정군의 상을 보고 말하였다. 「귀하기가 천하의 어머니가 될 것이오.」 이때는 선제의 세상으로 원제가 태자였는데, 치군이 이에 위군 도위를 통해 태자에게 들이니 태자가 사랑하여 아들 군상을 낳았다. 선제가 돌아가고 태자가 즉위하매 정군은 황후가 되고 군상은 태자가 되었다. 원제가 돌아가고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성제요, 정군은 황태후가 되어 마침내 천하의 어머니가 되었다. 무릇 정군의 상이 마땅히 천하의 어머니가 될 것이었는데 앞서 허락한 두 집과 조왕은 천하의 아비가 될 상이 없었으므로 시집가기 전에 두 지아비가 죽고 조왕이 죽은 것이다. 이는 두 지아비와 조왕에게 제왕의 큰 명이 없었고 정군이 세 집과 서로 만날 것이 아니었다는 증험이다.

승상 황차공이 예전에 양하의 유요였을 때 관상 잘 보는 이와 수레를 같이 타고 가다가 나이 열일고여덟 된 부인 하나를 보았는데, 관상 보는 이가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부인은 마땅히 크게 넉넉하고 귀하여 후에 봉해질 이의 부인이 될 것이오.」 차공이 수레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관상 보는 이가 말하였다. 「이제 이 부인이 넉넉하고 귀해지지 않으면 점치는 글은 쓸 것이 못 되오.」 차공이 물으니 곧 그 곁 마을 무당 집 딸이었다. 곧 맞아 아내로 삼았다. 그 뒤에 차공이 과연 크게 넉넉하고 귀해져 자리가 승상에 이르고 열후에 봉해졌다. 무릇 차공이 넉넉하고 귀할 것이어서 부인이 마땅히 그와 짝할 것이었으므로 과연 서로 만나 마침내 함께 넉넉하고 귀해졌다. 차공의 명이 천하여 부인을 짝으로 얻지 못할 것이었다면, 부부가 될 때가 아니어서 두 지아비와 조왕의 화가 있었을 것이다.

무릇 온 집안이 다 넉넉하고 귀한 명이라야 넉넉하고 귀한 일을 맡는다. 뼈의 법과 몸에 응하지 않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갈라져 떠나거나 죽어 큰 복을 오래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넉넉하고 귀한 집은 부리는 종과 기르는 소와 말에 반드시 뭇 것과 다른 데가 있다. 종에게는 죽지 않을 상이 있고 소와 말에게는 자주 새끼 치는 성품이 있으며 밭에는 심으면 빨리 익는 곡식이 있고 장사에는 지니면 잘 팔리는 물건이 있다. 그러므로 명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한 데서 넉넉하고 귀함을 보고 넉넉하고 귀한 데서 가난하고 천함을 본다.

案骨節之法,察皮膚之理,以審人之性命,無不應者。趙簡子使姑布子卿相諸子,莫吉,至翟婢之子無恤,而以為貴。無恤最賢,又有貴相,簡子後廢太子而立無恤,卒為諸侯,襄子是矣。相工相黥布當先刑而乃王,後竟被刑乃封王。衛青父鄭季與楊信公主家僮衛媼通,生青,在建章宮時,鉗徒相之,曰:「貴至封侯。」青曰:「人奴之道,得不笞罵足矣!安敢望封侯?」其後青為軍吏,戰數有功,超封增官,遂為大將軍,封為萬戶侯。周亞夫未封侯之時,許負相之,曰:「君後三歲而入將相,持國秉,貴重矣,於人臣無兩。其後九歲而君餓死。」亞夫笑曰:「臣之兄已代侯矣,有如父卒子當代,亞夫何說侯乎?然既巳貴,如負言,又何說餓死?指示我!」許負指其口,有縱理入口,曰:「此餓死法也。」居三歲,其兄絳侯勝有罪,文帝擇絳侯子賢者,推亞夫,乃封條侯,續絳侯後。文帝之後六年,匈奴入邊,乃以亞夫為將軍。至景帝之時,亞夫為丞相,後以疾免。其子為亞夫買工官尚方甲盾五百被可以為葬者,取庸苦之,不與錢。庸知其盜買官器,怨而上告其子。景帝下吏責問,因之食五日,嘔血而死。當鄧通之幸文帝也,貴在公卿之上,賞賜億萬,與上齊體。相工相之曰:「當貧賤餓死。」

뼈마디의 법을 살피고 살갗의 결을 살펴 사람의 성품과 명을 헤아리면 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조 간자가 고포자경에게 여러 아들의 상을 보게 하니 길한 이가 없었는데, 적 땅 여종의 아들 무휼에 이르러 귀하다 하였다. 무휼이 가장 어질고 또 귀한 상이 있어 간자가 뒤에 태자를 폐하고 무휼을 세우니 마침내 제후가 되었다. 양자가 그이다. 관상쟁이가 경포의 상을 보고 먼저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된다 하였는데, 뒤에 마침내 형벌을 받고서 왕에 봉해졌다.

위청의 아비 정계가 양신공주 집 여종 위온과 사통하여 위청을 낳았는데, 건장궁에 있을 때 목에 칼을 쓴 죄수가 그 상을 보고 말하였다. 「귀하기가 후에 봉해지기에 이르리라.」 위청이 말하였다. 「남의 종 된 처지에 매질과 욕을 안 당하면 족하지 어찌 감히 후에 봉해지기를 바라겠소?」 그 뒤에 위청이 군리가 되어 싸움에 여러 번 공을 세워 뛰어넘어 봉해지고 벼슬이 더해져 마침내 대장군이 되고 만호후에 봉해졌다.

주아부가 아직 후에 봉해지기 전에 허부가 그 상을 보고 말하였다. 「그대는 세 해 뒤에 장수와 재상이 되어 나라의 권세를 잡아 귀하고 무거움이 신하 가운데 둘이 없을 것이오. 그 뒤 아홉 해 만에 그대는 굶어 죽을 것이오.」 아부가 웃으며 말하였다. 「내 형이 이미 후를 이었고 아비가 죽으면 아들이 마땅히 잇는 법인데 아부가 어찌 후가 되겠소? 그러나 이미 귀해진다면 그대 말대로인데 또 어찌 굶어 죽는다 하오? 짚어 보시오!」 허부가 그 입을 가리켜 세로 주름이 입으로 들어간 것을 보이며 말하였다. 「이것이 굶어 죽을 법이오.」 세 해가 지나 그 형 강후 승이 죄를 지으니 문제가 강후의 아들 가운데 어진 이를 가려 아부를 밀어 조후에 봉하고 강후의 뒤를 잇게 하였다. 문제 후 육년에 흉노가 변경에 들어오니 이에 아부를 장군으로 삼았다. 경제 때에 이르러 아부가 승상이 되었다가 뒤에 병으로 면직되었다. 그 아들이 아부를 위해 공관 상방의 갑옷과 방패 오백 벌을 사서 장사에 쓰려 하였는데, 품꾼을 부려 고생시키고 돈을 주지 않았다. 품꾼이 관가의 기물을 몰래 산 줄 알고 원망하여 그 아들을 고발하였다. 경제가 아전에게 내려 캐물으니 이로 인해 닷새를 먹지 않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등통이 문제에게 사랑받을 때 귀하기가 공경 위에 있고 상으로 받은 것이 억만이며 임금과 몸을 가지런히 하였다. 관상쟁이가 그 상을 보고 말하였다. 「마땅히 가난하고 천하여 굶어 죽을 것이오.」

文帝崩,景帝立,通有盜鑄錢之罪,景帝考驗,通亡,寄死人家,之名一錢。韓太傅為諸生時,借相工五十錢,與之俱入璧雍之中,相璧雍弟子誰當貴者。相工指倪寬曰:「彼生當貴,秩至三公。」韓生謝遣相工,通刺倪寬,結膠漆之交,盡筋力之敬,徙舍從寬,深自附納之。寬嘗甚病,韓生養視如仆狀,恩深逾於骨肉。後名聞於天下。倪寬位至御史大夫,州郡丞旨召請,擢用舉在本朝,遂至太傅。夫鉗徒、許負及相鄧通、倪寬之工,可謂知命之工矣。故知命之工,察骨體之証,睹富貴貧賤,猶人見盤盂之器,知所設用也。善器必用貴人,惡器必施賤者;尊鼎不在陪廁之側,匏瓜不在殿堂之上,明矣。富貴之骨,不遇貧賤之苦;貧賤之相,不遭富貴之樂,亦猶此也。器之盛物,有斗石之量,猶人爵有高下之差也。器過其量,物溢棄遺;爵過其差,死亡不存。論命者如比之於器,以察骨體之法,則命在於身形定矣。

문제가 돌아가고 경제가 즉위하매 등통에게 몰래 돈을 주조한 죄가 있어 경제가 조사하니 등통이 달아나 남의 집에 붙어 죽었는데 이름에 한 푼도 없었다.

한 태부가 서생이었을 때 관상쟁이에게 오십 전을 꾸어 주고 함께 벽옹 안에 들어가 벽옹의 제자 가운데 누가 귀해질지 상을 보게 하였다. 관상쟁이가 예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 서생이 마땅히 귀하여 벼슬이 삼공에 이를 것이오.」 한생이 관상쟁이를 사례하여 보내고 예관에게 명함을 통하여 아교와 옻 같은 사귐을 맺고 힘줄과 힘의 공경을 다하여, 집을 옮겨 예관을 따르며 깊이 스스로 붙어 들었다. 예관이 일찍이 병이 심하매 한생이 돌보기를 종처럼 하여 은혜가 골육보다 깊었다. 뒤에 이름이 천하에 들렸다. 예관의 자리가 어사대부에 이르자 주와 군의 승이 뜻을 받들어 불러 청하고 뽑아 써서 조정에 천거하니 마침내 태부에 이르렀다.

무릇 목에 칼을 쓴 죄수와 허부와 등통과 예관의 상을 본 관상쟁이는 명을 아는 이라 할 만하다. 그러므로 명을 아는 이는 뼈와 몸의 증거를 살펴 넉넉하고 귀함과 가난하고 천함을 보니, 사람이 쟁반과 사발의 그릇을 보고 어디에 쓸지 아는 것과 같다. 좋은 그릇은 반드시 귀한 사람에게 쓰이고 나쁜 그릇은 반드시 천한 이에게 베풀어지며, 준과 정은 뒷간 곁에 있지 않고 박은 전당 위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넉넉하고 귀한 뼈는 가난하고 천한 괴로움을 만나지 않고 가난하고 천한 상은 넉넉하고 귀한 즐거움을 만나지 않는 것도 이와 같다. 그릇이 물건을 담는 데 말과 섬의 양이 있는 것은 사람의 벼슬에 높고 낮은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그릇이 그 양을 넘으면 물건이 넘쳐 버려지고 벼슬이 그 차이를 넘으면 죽어 남지 못한다. 명을 논하는 이가 그릇에 견주어 뼈와 몸의 법을 살피면 명이 몸에 정해져 있음을 알 것이다.

非徒富貴貧賤有骨體也,而操行清濁亦有法理。貴賤貧富,命也。操行清濁,性也。非徒命有骨法,性亦有骨法。唯知命有明相,莫知性有骨法,此見命之表証,不見性之符驗也。范蠡去越,自齊遺大夫種書曰:「飛鳥盡,良弓藏,狡兔死,走犬烹。越王為人長頸鳥喙,可與共患難,不可與共容樂。子何不去?」大夫種不能去,稱病不朝,賜劍而死。大梁人尉繚說秦始皇以并天下之計,始皇從其冊,與人亢禮,衣服飲食與之齊同。繚曰:「秦王為人,隆准長目,鷙膺豺聲,少恩,虎視狼心,居約易以下人,得志亦輕視人。我布衣也,然見我,常身自下我。誠使秦王須得志天下,皆為虜矣。不可與交游。」乃亡去。故范蠡、尉繚見性行之証,而以定處來事之實,實有其效,如其法相。

넉넉하고 귀하고 가난하고 천함에만 뼈와 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의 맑고 흐림에도 법과 이치가 있다. 귀하고 천하고 가난하고 넉넉함은 명이요 몸가짐의 맑고 흐림은 성품이다. 명에만 뼈의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품에도 뼈의 법이 있다. 다만 명에 밝은 상이 있는 줄만 알고 성품에 뼈의 법이 있는 줄은 모르니, 이는 명의 겉 증거는 보고 성품의 부험은 못 보는 것이다.

범려가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에서 대부 종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나는 새가 다하면 좋은 활을 감추고 약은 토끼가 죽으면 달리던 개를 삶소. 월왕의 사람됨이 목이 길고 부리가 새 같으니 어려움은 함께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소. 그대는 어찌 떠나지 않소?」 대부 종이 떠나지 못하고 병을 핑계로 조회하지 않다가 칼을 받고 죽었다.

대량 사람 위료가 진 시황에게 천하를 아우를 계책을 말하니 시황이 그 꾀를 따르고 그와 맞먹는 예로 대하여 옷과 음식을 그와 같이 하였다. 위료가 말하였다. 「진왕의 사람됨은 콧마루가 높고 눈이 길며 가슴은 매 같고 소리는 승냥이 같아 은혜가 적고, 범처럼 노려보고 이리의 마음을 지녔다. 궁할 때는 쉬이 남에게 낮추나 뜻을 얻으면 또한 사람을 가벼이 본다. 나는 베옷 입은 이인데 나를 보면 늘 몸소 내게 낮춘다. 참으로 진왕이 천하에 뜻을 얻게 되면 다 사로잡힐 것이다. 함께 사귈 수 없다.」 이에 달아났다. 그러므로 범려와 위료는 성품과 행실의 증거를 보고 그것으로 앞일의 실상을 정하였는데 실로 그 보람이 있었으니 그 법의 상과 같았다.

由此言之,性命繫於形體明矣。以尺書所載,世所共見,准況古今,不聞者必眾多非一,皆有其實。

이로써 말하면 성품과 명이 몸에 매여 있음이 분명하다. 책에 실린 것과 세상이 함께 보는 것으로 예와 이제를 견주어 헤아리면 듣지 못한 것이 반드시 많아 하나가 아닐 것이니, 다 그 실상이 있다.

稟氣於天,立形於地,察在地之形,以知在天之命,莫不得其實也。有傳孔子相澹台子羽,唐舉占蔡澤不驗之文,此失之不審,何隱匿微妙之表也?

기운을 하늘에서 받고 몸을 땅에 세우니, 땅에 있는 몸을 살펴 하늘에 있는 명을 알면 그 실상을 얻지 못하는 일이 없다. 공자가 담대자우의 상을 보고 당거가 채택을 점친 것이 맞지 않았다는 글이 전하는데, 이는 살피지 못하여 잃은 것이니 어찌 은미하고 묘한 겉이 숨었겠는가.

相或在內,或在外,或在形體,或在聲氣,察外者遺其內,在形體者亡其聲氣。孔子適鄭,與弟子相失,孔子獨立鄭東門。鄭人或問子貢曰:「東門有人,其頭似堯,其項若皋陶,肩類子產。然自腰以下,不及禹三寸,若喪家之狗。」子貢以告孔子,孔子欣然笑曰:「形狀未也。如喪家狗,然哉!然哉!」夫孔子之相,鄭人失其實。鄭人不明,法術淺也。孔子之失子羽,唐舉惑於蔡澤,猶鄭人相孔子,不能具見形狀之實也。以貌取人,失於子羽;以言取人,失於宰予也。

상은 더러 안에 있고 더러 밖에 있으며 더러 몸에 있고 더러 소리와 기운에 있으니, 밖을 살피는 이는 그 안을 빠뜨리고 몸에서 보는 이는 그 소리와 기운을 놓친다. 공자가 정나라에 가서 제자들과 서로 잃고 홀로 정나라 동문에 서 있었다. 정나라 사람이 자공에게 물어 말하였다. 「동문에 사람이 있는데 그 머리는 요 같고 그 목은 고요 같고 어깨는 자산과 비슷하오. 그러나 허리 아래로는 우에 세 치가 못 미치고 상갓집 개 같소.」 자공이 공자에게 고하니 공자가 기꺼이 웃으며 말하였다. 「생김새는 아니다. 상갓집 개 같다는 것은 그렇다! 그렇다!」 무릇 공자의 상을 정나라 사람은 그 실상을 잃었다. 정나라 사람이 밝지 못하고 법술이 얕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자우에게서 잃고 당거가 채택에게 홀린 것은 정나라 사람이 공자의 상을 본 것과 같아 생김새의 실상을 갖추어 보지 못한 것이다. 얼굴로 사람을 취하다가 자우에게서 잃었고 말로 사람을 취하다가 재여에게서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