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虛篇
世信虛妄之書,以為載於竹帛上者,皆賢聖所傳,無不然之事,故信而是之,諷而讀之。睹真是之傳與虛妄之書相違,則并謂短書,不可信用。夫幽冥之實尚可知,沈隱之情尚可定,顯文露書,是非易見,籠總并傳非實事,用精不專,無思於事也。
세상은 헛되고 망령된 책을 믿어, 죽간과 비단에 실린 것은 다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전한 것이라 그렇지 않은 일이 없다 하여 믿고 옳다 하며 외고 읽는다. 참으로 옳은 전이 헛되고 망령된 책과 서로 어긋나는 것을 보면 아울러 짧은 글이라 하여 믿고 쓸 수 없다 한다. 무릇 그윽하고 어두운 실상도 오히려 알 수 있고 깊이 숨은 정도 오히려 정할 수 있거늘, 드러난 글과 나타난 책은 옳고 그름이 쉬이 보이는데 뭉뚱그려 아울러 전하며 실상이 아닌 일을 그대로 두는 것은 정신을 오로지 쓰지 않아 일에 생각이 없어서다.
夫世間傳書諸子之語,多欲立奇造異,作驚目之論,以駭世俗之人;為譎詭之書,以著殊異之名。傳書言:延陵季子出游,見路有遺金。當夏五月,有披裘而薪者曰:「取彼地金來!」薪者投鐮於地,目拂手而言曰:「何子居之高,視之下,儀貌之壯,語言之野也!吾當夏五月,披裘而薪,豈取金者哉?」季子謝之,請問姓字。薪者曰:「子皮相之士也,何足語姓名!」遂去不顧。世以為然,殆虛言也。夫季子恥吳之亂,吳欲共立以為主,終不肯受,去之延陵,終身不還,廉讓之行,終始若一。許由讓天下,不嫌貪封侯。伯夷委國飢死,不嫌貪刀鉤。廉讓之行,大可以況小,小難以況大。季子能讓吳位,何嫌貪地遺金?季子使於上國,道過徐。徐君好其寶劍,未之即予。還而徐君死,解劍帶冢樹而去。廉讓之心,恥負其前志也。季子不負死者,棄其寶劍,何嫌一叱生人取金於地?季子未去吳乎,公子也;已去吳乎,延陵君也。公子與君,出有前後,車有附從,不能空行於塗,明矣。既不恥取金,何難使左右,而煩披裘者?
무릇 세상에 전하는 책과 제자의 말은 흔히 기이함을 세우고 다름을 지어 눈을 놀라게 하는 논을 만들어 세속 사람을 놀라게 하고, 괴이한 책을 지어 남다른 이름을 드러내려 한다.
전하는 책에 이르기를, 연릉계자가 나가 노닐다가 길에 떨어진 금이 있는 것을 보았다. 때는 여름 오월인데 갖옷을 걸치고 나무하는 이가 있어 「저 땅의 금을 집어 오라!」 하니, 나무꾼이 낫을 땅에 던지고 눈을 부릅뜨고 손을 뿌리치며 말하였다. 「어찌 그대는 사는 데는 높으면서 보는 데는 낮고, 겉모양은 씩씩하면서 말은 거친가! 나는 여름 오월에 갖옷을 걸치고 나무하는 사람이니 어찌 금을 집는 이겠는가?」 계자가 사과하고 성과 자를 물으니 나무꾼이 말하였다. 「그대는 겉만 보는 선비니 어찌 성명을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마침내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한다. 세상은 그렇다 여기나 아마 헛말일 것이다.
무릇 계자는 오나라의 어지러움을 부끄러워하여 오나라가 함께 세워 임금을 삼으려 하였으나 끝내 받으려 하지 않고 연릉으로 떠나 종신토록 돌아오지 않았으니, 청렴하고 사양하는 행실이 처음과 끝이 한결같았다. 허유가 천하를 사양하였으니 후에 봉해지기를 탐한다는 혐의가 없고, 백이가 나라를 버리고 굶어 죽었으니 칼과 갈고리를 탐한다는 혐의가 없다. 청렴하고 사양하는 행실은 큰 것으로 작은 것을 견줄 수 있으나 작은 것으로 큰 것을 견주기는 어렵다. 계자가 오나라의 자리를 사양할 수 있었는데 어찌 땅에 떨어진 금을 탐한다는 혐의가 있겠는가.
계자가 상국에 사신 가는데 길이 서나라를 지났다. 서나라 임금이 그 보검을 좋아하였으나 곧 주지는 않았다. 돌아올 때 서나라 임금이 죽었으므로 칼을 풀어 무덤 나무에 걸고 떠났다. 청렴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그 앞의 뜻을 저버림을 부끄러워한 것이다. 계자가 죽은 이를 저버리지 않아 그 보검을 버렸는데 어찌 산 사람에게 소리쳐 땅의 금을 집게 한다는 혐의가 있겠는가. 계자가 아직 오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공자요, 이미 오나라를 떠났다면 연릉의 임금이다. 공자와 임금은 나갈 때 앞뒤가 있고 수레에 따르는 이가 있어 길을 홀로 갈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미 금을 집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 어찌 곁의 사람을 시키기 어려워 갖옷 입은 이를 번거롭게 하였겠는가.
世稱柳下惠之行,言其能以幽冥自修潔也。賢者同操,故千歲交志。置季子於冥昧之處,尚不取金,況以白日,前後備具,取金於路,非季子之操也。或時季子實見遺金,怜披裘薪者欲以益之;或時言取彼地金,欲以予薪者,不自取也。世俗傳言,則言季子取遺金也。
세상이 유하혜의 행실을 일컬어 그윽하고 어두운 데서도 스스로 닦아 깨끗이 할 수 있었다 한다. 어진 이는 몸가짐이 같으므로 천 년을 두고 뜻이 사귄다. 계자를 어둡고 캄캄한 데 두어도 오히려 금을 집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밝은 낮에 앞뒤가 갖추어진 채 길에서 금을 집는 것은 계자의 몸가짐이 아니다. 아마 계자가 실로 떨어진 금을 보고 갖옷 입고 나무하는 이를 가엾이 여겨 그에게 보태 주려 한 것이거나, 저 땅의 금을 집으라 말한 것이 나무꾼에게 주려 함이었지 제가 가지려 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속이 전하는 말은 곧 계자가 떨어진 금을 가졌다 한다.
傳書或言顏淵與孔子俱上魯太山,孔子東南望吳(閶)〔昌〕門外有繫白馬,引顏淵指以示之曰:「若見吳昌門乎?」顏淵曰:「見之。」孔子曰:「門外何有?」曰「有如繫練之狀。」
전하는 책에 더러 이르기를, 안연이 공자와 함께 노나라 태산에 올랐는데 공자가 동남쪽으로 오나라 도성의 성문인 창문(昌門) 밖에 흰 말이 매여 있는 것을 바라보고 안연을 끌어 가리켜 보이며 말하였다. 「너는 오나라 창문 성문이 보이느냐?」 안연이 「보입니다」 하니 공자가 「문 밖에 무엇이 있느냐?」 하였다. 「누인 명주를 매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이 있습니다」 하였다.
孔子撫其目而正之,因與俱下。下而顏淵髪白齒落,遂以病死。蓋以精神不能若孔子,強力自極,精華竭盡,故早夭死。世俗聞之,皆以為然。如實論之,殆虛言也。案《論語》之文,不見此言。考《六經》之傳,亦無此語。夫顏淵能見千里之外,與聖人同,孔子諸子何諱不言?蓋人目之所見,不過十里。過此不見,非所明察,遠也。傳曰:「太山之高巍然,去之百里,不見螺,遠也。」案魯去吳,千有餘里,使離朱望之,終不能見,況使顏淵,何能審之?如才庶幾者,明目異於人,則世宜稱亞聖,不宜言離朱。人目之視也,物大者易察,小者難審。使顏淵處昌門之外,望太山之形,終不能見。況從太山之上,察白馬之色,色不能見,明矣。非顏淵不能見,孔子亦不能見也。何以驗之?耳目之用,均也。目不能見百里,則耳亦不能聞也。陸賈曰:「離婁之明,不能察帷薄之內;師曠之聰,不能聞百里之外。」昌門之與太山,非直帷薄之內、百里之外也。秦武王與孟說舉鼎不任,絕脈而死。舉鼎用力,力由筋脈,筋脈不堪,絕傷而死,道理宜也。今顏淵用目望遠,望遠目睛不任,宜盲眇,髪白齒落,非其致也。髪白齒落,用精於學,勤力不休,氣力竭盡,故至於死。
공자가 그 눈을 어루만져 바로잡고 함께 내려왔다. 내려오자 안연은 머리가 세고 이가 빠져 마침내 병으로 죽었다. 정신이 공자만 못한데 힘을 다해 스스로 끝까지 가서 정화가 다 말랐으므로 일찍 죽었다는 것이다. 세속이 이를 듣고 다 그렇다 여긴다. 실상대로 논하면 아마 헛말일 것이다.
「논어」의 글을 살피면 이 말이 보이지 않는다. 「육경」의 전을 살펴도 이 말이 없다. 무릇 안연이 천 리 밖을 볼 수 있어 성인과 같았다면 공자의 제자들이 어찌 꺼려 말하지 않았겠는가. 사람의 눈이 보는 것은 십 리를 넘지 못한다. 이를 넘으면 보이지 않으니 밝게 살필 바가 아니라 먼 것이다. 전에 이르기를 「태산의 높이가 우뚝하나 백 리를 떠나면 소라만큼도 보이지 않으니 멀기 때문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노나라에서 오나라까지는 천 리 남짓이라 이주에게 바라보게 하여도 끝내 볼 수 없는데, 하물며 안연이 어찌 살필 수 있겠는가. 재주가 성인에 가까운 이가 밝은 눈이 남과 다르다면 세상이 마땅히 아성이라 일컬을 것이지 이주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눈이 보는 데는 물건이 큰 것은 살피기 쉽고 작은 것은 살피기 어렵다. 안연을 창문 성문 밖에 두고 태산의 꼴을 바라보게 하여도 끝내 볼 수 없다. 하물며 태산 위에서 흰 말의 빛깔을 살핌에랴, 빛깔을 볼 수 없음이 분명하다. 안연만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공자도 볼 수 없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귀와 눈의 쓰임은 고르다. 눈이 백 리를 볼 수 없으면 귀도 들을 수 없다. 육가가 말하였다. 「이루의 밝음도 휘장 안을 살필 수 없고 사광의 밝은 귀도 백 리 밖을 들을 수 없다.」 창문 성문과 태산은 다만 휘장 안이나 백 리 밖이 아니다.
진 무왕이 맹열과 솥을 들다가 견디지 못하고 힘줄이 끊어져 죽었다. 솥을 드는 데 힘을 쓰고 힘은 힘줄에 말미암으니 힘줄이 견디지 못해 끊어져 상하여 죽은 것은 도리에 마땅하다. 이제 안연이 눈으로 멀리 바라보아 멀리 바라봄에 눈동자가 견디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눈이 멀었을 것이지 머리가 세고 이가 빠지는 것은 그것이 이룬 바가 아니다. 머리가 세고 이가 빠진 것은 배움에 정신을 쓰고 부지런히 힘써 쉬지 않아 기력이 다하였으므로 죽음에 이른 것이다.
伯奇放流,首髪早白。《詩》云:「惟憂用老。」伯奇用憂,而顏淵用睛,暫望倉卒,安能致此?
백기가 내쫓겨 떠돌자 머리털이 일찍 세었다. 「시」에 이르기를 「오직 근심으로 늙는다」 하였다. 백기는 근심을 썼고 안연은 눈동자를 썼는데, 잠깐 바라보는 창졸간에 어찌 이런 데 이를 수 있겠는가.
儒書言:舜葬於蒼梧、禹葬於會稽者,巡狩年老,道死邊土。聖人以天下為家,不別遠近,不殊內外,故遂止葬。夫言舜、禹,實也;言其巡狩,虛也。舜之與堯,俱帝者也。共五千里之境,同四海之內。二帝之道,相因不殊。
유자의 책에 이르기를, 순이 창오에 장사 지내지고 우가 회계에 장사 지내진 것은 순수하다가 나이 늙어 길에서 변경 땅에서 죽었기 때문이라 한다. 성인은 천하를 집으로 삼아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안팎을 달리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그곳에 장사 지냈다는 것이다. 무릇 순과 우를 말한 것은 실상이나 그 순수를 말한 것은 헛되다. 순과 요는 다 임금이다. 오천 리의 지경을 함께하고 사해의 안을 같이하였다. 두 임금의 도는 서로 이어 다르지 않았다.
《堯典》之篇,舜巡狩東至岱宗,南至霍山,西至太華,北至恆山。以為四岳者,四方之中,諸侯之來,并會岳下,幽深遠近,無不見者,聖人舉事求其宜適也。禹王如舜,事無所改,巡狩所至,以復如舜。舜至蒼梧,禹到會稽,非其實也。實舜、禹之時,鴻水未治,堯傳於舜,舜受為帝,與禹分部,行治鴻水。堯崩之後,舜老,亦以傳於禹。舜南治水,死於蒼梧;禹東治水,死於會嵇。賢聖家天下,故因葬焉。
「요전」 편에 순이 순수하여 동으로 대종에 이르고 남으로 곽산에 이르고 서로 태화에 이르고 북으로 항산에 이르렀다 하였다. 사악(四岳)이란 네 방위의 가운데로, 제후가 와서 함께 산 아래 모이면 깊고 멀고 가까운 곳까지 보이지 않는 것이 없으니 성인이 일을 일으킴에 그 마땅함을 구한 것이다. 우가 왕 노릇 하기를 순같이 하여 일에 고친 바가 없었으니 순수하여 이른 곳도 다시 순과 같았을 것이다. 순이 창오에 이르고 우가 회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 실상이 아니다.
실은 순과 우의 때에 큰물이 아직 다스려지지 않아 요가 순에게 전하고 순이 받아 임금이 되자 우와 부를 나누어 다니며 큰물을 다스렸다. 요가 돌아간 뒤에 순이 늙어 또한 우에게 전하였다. 순은 남쪽에서 물을 다스리다 창오에서 죽었고 우는 동쪽에서 물을 다스리다 회계에서 죽었다. 어질고 성스러운 이는 천하를 집으로 삼으므로 그대로 장사 지낸 것이다.
吳君高說:「會稽本山名,夏禹巡守,會計於此山,因以名郡,故曰會稽。」夫言因山名郡可也,言禹巡狩會計於此山,虛也。巡狩本不至會稽,安得會計於此山?宜聽君高之說,誠會稽為會計,禹到南方,何所會計?如禹始東死於會稽,舜亦巡狩至於蒼梧,安所會計?百王治定則出巡,巡則輒會計,是則四方之山皆會計也。百王太平,升封太山。太山之上,封可見者七十有二,紛綸湮滅者,不可勝數。如審帝王巡狩輒會計,會計之地如太山封者,四方宜多。夫郡國成名,猶萬物之名,不可說也。獨為會稽立歟?周時舊名吳越也,為吳越立名,從何往哉?六國立名,狀當如何?天下郡國且百餘,縣邑出萬,鄉亭聚里皆有號名,賢聖之才莫能說。君高能說會稽,不能辨定方名。會計之說,未可從也。巡狩考正法度,禹時,吳為裸國,斷髪文身,考之無用,會計如何?
오군고가 말하였다. 「회계는 본디 산 이름인데 하나라 우가 순수하다가 이 산에서 회계(會計)하였으므로 이로써 군 이름을 삼아 회계라 한다.」 무릇 산으로 인해 군 이름을 삼았다 함은 옳으나 우가 순수하여 이 산에서 회계하였다 함은 헛되다. 순수는 본디 회계에 이르지 않았는데 어찌 이 산에서 회계하였겠는가. 군고의 말을 따라 참으로 회계가 회계(會計)라면 우가 남방에 이르러 무엇을 회계하였는가. 우가 비로소 동쪽으로 가서 회계에서 죽었고 순도 순수하여 창오에 이르렀다면 어디서 회계하였는가.
온갖 왕이 다스림이 정해지면 나가 순수하고 순수하면 곧 회계하였다면 네 방위의 산이 다 회계다. 온갖 왕이 태평하면 태산에 올라 봉하였다. 태산 위에 봉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일흔둘이고 어지러이 없어진 것은 이루 셀 수 없다. 참으로 제왕이 순수하면 곧 회계하였다면 회계한 땅이 태산에 봉한 것같이 네 방위에 마땅히 많을 것이다. 무릇 군과 나라의 이름이 이루어진 것은 만물의 이름과 같아 풀이할 수 없다. 유독 회계만을 위해 세웠겠는가. 주나라 때 옛 이름은 오와 월인데 오와 월을 위해 이름을 세운 것은 무엇을 좇았는가. 여섯 나라가 이름을 세운 모양은 마땅히 어떠하였는가. 천하의 군과 나라가 백 남짓이요 현과 읍이 만을 넘고 향과 정과 취와 리가 다 이름이 있으니 어질고 성스러운 재주로도 풀이할 수 없다. 군고가 회계를 풀이할 수 있으나 여러 이름을 가려 정하지는 못한다. 회계(會計)의 말은 따를 수 없다. 순수는 법도를 살펴 바로잡는 것인데 우 때에 오는 벌거벗은 나라로 머리를 자르고 몸에 문신하였으니 살펴도 쓸모가 없는데 회계는 어찌하였겠는가.
傳書言:舜葬於蒼梧,象為之耕;禹葬會稽,烏為之田。蓋以聖德所致,天使鳥獸報佑之也。
전하는 책에 이르기를, 순을 창오에 장사 지내니 코끼리가 그를 위해 밭을 갈았고 우를 회계에 장사 지내니 새가 그를 위해 밭을 매었다 한다. 성스러운 덕이 이룬 것이라 하늘이 새와 짐승을 시켜 갚아 도왔다는 것이다.
世莫不然。考實之,殆虛言也。夫舜、禹之德不能過堯,堯葬於冀州,或言葬於崇山,冀州鳥獸不耕,而鳥獸獨為舜、禹耕,何天恩之偏駁也?或曰:「舜、禹,治水,不得宁處,故舜死於蒼梧,禹死於會稽。勤苦有功,故天報之;遠離中國,故天痛之。」夫天報舜、禹,使鳥田象耕,何益舜、禹?天欲報舜、禹,宜使蒼梧、會稽常祭祀之。
세상이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실상을 살피면 아마 헛말일 것이다. 무릇 순과 우의 덕이 요를 넘지 못하는데, 요는 기주에 장사 지내졌고 더러는 숭산에 장사 지내졌다 하는데 기주의 새와 짐승은 밭을 갈지 않았다. 그런데 새와 짐승이 유독 순과 우를 위해 밭을 갈았다면 어찌 하늘의 은혜가 치우치고 어지러운가. 어떤 이가 말한다. 「순과 우는 물을 다스리느라 편히 있을 수 없었으므로 순은 창오에서 죽고 우는 회계에서 죽었다. 부지런히 애써 공이 있었으므로 하늘이 갚았고 중국에서 멀리 떠났으므로 하늘이 아파한 것이다.」 무릇 하늘이 순과 우를 갚아 새가 밭을 매고 코끼리가 밭을 갈게 한들 순과 우에게 무슨 보탬이 있는가. 하늘이 순과 우를 갚으려 하였다면 마땅히 창오와 회계 사람들이 늘 제사 지내게 하였을 것이다.
使鳥獸田耕,不能使人祭。祭加舜、禹之墓,田施人民之家,天之報佑聖人,何其拙也,且無益哉!由此言之,鳥田象耕,報佑舜、禹,非其實也。實者,蒼梧多象之地,會稽眾鳥所居。《禹貢》曰:「彭蠡既瀦,陽鳥攸居。」天地之情,鳥獸之行也。象自蹈土,鳥自食蘋。土蹶草盡,若耕田狀,壤靡泥易,人隨種之,世俗則謂為舜、禹田。海陵麋田,若象耕狀,何嘗帝王葬海陵者邪?
새와 짐승이 밭을 매고 갈게 하면서 사람이 제사 지내게 하지는 못하였다. 제사는 순과 우의 무덤에 더해지고 밭은 백성의 집에 베풀어지니 하늘이 성인을 갚아 도움이 어찌 그리 서투르고 또 보탬이 없는가. 이로써 말하면 새가 밭을 매고 코끼리가 밭을 갈아 순과 우를 갚아 도왔다는 것은 실상이 아니다. 실상은 창오가 코끼리가 많은 땅이요 회계가 뭇 새가 사는 데라는 것이다. 「우공」에 이르기를 「팽려가 이미 모이니 양조(陽鳥)가 사는 데다」 하였다. 하늘과 땅의 정이요 새와 짐승의 행실이다. 코끼리는 절로 흙을 밟고 새는 절로 개구리밥을 먹는다. 흙이 파이고 풀이 다하여 밭을 간 모양 같고 흙이 부드럽고 진흙이 갈리니 사람이 따라 심으면 세속이 곧 순과 우의 밭이라 한다. 해릉의 고라니 밭이 코끼리가 간 모양 같으나 어느 제왕이 해릉에 장사 지내졌던가.
傳書言:吳王夫差殺伍子胥,煮之於鑊,乃以鴟夷橐投之於江。子胥恚恨,驅水為濤,以溺殺人。今時會稽、丹徒大江、錢塘浙江,皆立子胥之廟。蓋欲慰其恨心,止其猛濤也。夫言吳王殺子胥投之於江,實也;言其恨恚驅水為濤者,虛也。
전하는 책에 이르기를, 오왕 부차가 오자서를 죽여 가마솥에 삶고 가죽 부대에 넣어 강에 던졌다. 자서가 원한을 품고 물을 몰아 물결을 일으켜 사람을 빠뜨려 죽인다. 지금 회계와 단도의 대강과 전당의 절강에 다 자서의 사당을 세웠다. 그 한스러운 마음을 달래고 그 사나운 물결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한다. 무릇 오왕이 자서를 죽여 강에 던졌다는 것은 실상이나 그가 원한으로 물을 몰아 물결을 일으킨다는 것은 헛되다.
屈原懷恨,自投湘江,湘江不為濤;申徒狄蹈河而死,河水不為濤。世人必曰屈原、申徒狄不能勇猛,力怒不如子胥。夫衛菹子路而漢烹彭越,子胥勇猛不過子路、彭越。然二士不能發怒於鼎鑊之中,以烹湯菹汁?〔〕旁人。
굴원이 한을 품고 스스로 상강에 몸을 던졌으나 상강은 물결을 일으키지 않고, 신도적이 하수에 몸을 던져 죽었으나 하수는 물결을 일으키지 않는다. 세상 사람은 반드시 굴원과 신도적이 용맹하지 못하여 힘과 노여움이 자서만 못하였다 할 것이다. 무릇 위나라는 자로를 젓 담그고 한나라는 팽월을 삶았는데 자서의 용맹이 자로와 팽월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두 선비는 솥 가운데서 노여움을 일으켜 끓는 물과 젓국으로 곁의 사람에게 어찌하지 못하였는가.
子胥亦自先入鑊,〔後〕乃入江;在鑊中之時,其神安居?豈怯於鑊湯,勇於江水哉!何其怒氣前後不相副也?且投於江中,何江也?有丹徒大江,有錢唐浙江,有吳通陵江。或言投於丹徒大江,無濤,欲言投於錢唐浙江。浙江、山陰江、上虞江皆有濤,三江有濤,豈分橐中之體,散置三江中乎?人若恨恚也,仇讎未死,子孫遺在,可也。今吳國已滅,夫差無類,吳為會稽,立置太守,子胥之神,復何怨苦,為濤不止,欲何求索?吳、越在時,分會稽郡,越治山陰,吳都今吳,餘暨以南屬越,錢唐以北屬吳。錢唐之江,兩國界也。山陰、上虞在越界中,子胥入吳之江,為濤當自上吳界中,何為入越之地?怨恚吳王、發怒越江,違失道理,無神之驗也。且夫水難驅而人易從也。生任筋力,死用精魂。子胥之生,不能從生人營衛其身,自令身死,筋力消絕,精魂飛散,安能為濤?使子胥之類數百千人,乘船渡江,不能越水。一子胥之身,煮湯鑊之中,骨肉糜爛,成為羹菹,何能有害也?周宣王殺其臣杜伯,(趙簡子)〔燕簡公〕殺其臣庄子義。其後杜伯射宣王,庄子義害簡(子)〔公〕,事理似然,猶為虛言。今子胥不能完體,為杜伯、子義之事以報吳王,而驅水往來,豈報仇之義、有知之驗哉!俗語不實,成為丹青;丹青之文,賢聖惑焉。夫地之有百川也,猶人之有血脈也。血脈流行,泛揚動靜,自有節度。百川亦然,其朝夕往來,猶人之呼吸氣出入也。天地之性,上古有之,《經》曰:「江、漢朝宗於海。」
자서도 스스로 먼저 가마솥에 들어가고 뒤에 강에 들어갔다. 가마솥 가운데 있을 때 그 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어찌 가마솥의 끓는 물에는 겁내고 강물에는 용맹하였는가. 어찌 그 노여운 기운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가.
또 강 가운데 던졌다니 어느 강인가. 단도의 대강이 있고 전당의 절강이 있고 오의 통릉강이 있다. 더러는 단도의 대강에 던졌다 하나 물결이 없으니 전당의 절강에 던졌다 하려 한다. 절강과 산음강과 상우강에 다 물결이 있으니 세 강에 물결이 있다면 어찌 부대 속의 몸을 나누어 세 강에 흩어 두었겠는가. 사람이 원한을 품는 것은 원수가 아직 죽지 않고 자손이 남아 있어야 옳다. 이제 오나라는 이미 망하고 부차는 씨가 없으며 오가 회계가 되어 태수를 두었으니, 자서의 신은 다시 무엇을 원망하고 괴로워하여 물결 일으키기를 그치지 않으며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
오와 월이 있을 때 회계군을 나누어 월은 산음에 도읍하고 오는 지금의 오에 도읍하여 여기 남쪽은 월에 속하고 전당 북쪽은 오에 속하였다. 전당의 강은 두 나라의 경계다. 산음과 상우는 월의 경계 안에 있으니, 자서가 오나라의 강에 들어갔다면 물결을 일으키는 것도 마땅히 오의 경계 안에서일 것인데 어찌 월의 땅에 들어갔는가. 오왕을 원망하면서 월의 강에서 노여움을 내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니 신이 없다는 증험이다.
또 물은 몰기 어렵고 사람은 따르기 쉽다. 살아서는 힘줄과 힘에 맡기고 죽어서는 정신과 넋을 쓴다. 자서가 살았을 때 산 사람을 따르게 하여 제 몸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몸이 죽게 하였는데, 힘줄과 힘이 스러지고 정신과 넋이 흩어진 뒤에 어찌 물결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자서 같은 이 수백 수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도 물을 넘지 못한다. 자서 한 몸이 끓는 가마솥 가운데 삶겨 뼈와 살이 문드러져 국과 젓이 되었는데 어찌 해칠 수 있겠는가.
주 선왕이 그 신하 두백을 죽이고 연 간공이 그 신하 장자의를 죽였다. 그 뒤에 두백이 선왕을 쏘고 장자의가 간공을 해쳤다 하는데 일의 이치가 그럴듯하나 오히려 헛말이다. 이제 자서가 몸을 온전히 하지 못하여 두백과 자의의 일로 오왕에게 갚지 못하면서 물을 몰아 오가니, 어찌 원수를 갚는 옳음이며 앎이 있다는 증험이겠는가. 속된 말이 실답지 못한데 단청이 되고, 단청의 글에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홀린다.
무릇 땅에 온갖 내가 있는 것은 사람에게 혈맥이 있는 것과 같다. 혈맥이 흘러 뜨고 오르고 움직이고 고요함에 절로 마디가 있다. 온갖 내도 그러하니 그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것은 사람이 숨 쉬어 기운이 드나드는 것과 같다. 하늘과 땅의 성품이라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으니 「경」에 이르기를 「강과 한수가 바다에 조회한다」 하였다.
唐、虞之前也,其發海中之時,漾馳而已;入三江之中,殆小淺狹,水激沸起,故騰為濤。廣陵曲江有濤,文人賦之。大江浩洋,曲江有濤,竟以隘狹也。吳殺其身,為濤廣陵,子胥之神,竟無知也。溪谷之深,流者安洋,淺多沙石,激揚為瀨。夫濤瀨,一也。謂子胥為濤,誰居溪谷為瀨者乎?案濤入三江,岸沸踊,中央無聲。必以子胥為濤,子胥之身聚岸也。濤之起也,隨月盛衰,小大滿損不齊同。如子胥為濤,子胥之怒,以月為節也。三江時風,揚疾之波亦溺殺人,子胥之神,復為風也?秦始皇渡湘水,遭風,問湘山何祠?左右對曰:「堯之女,舜之妻也。」
당과 우보다 앞서다. 그것이 바다 가운데서 일어날 때는 넘실거리며 달릴 뿐이나 세 강 가운데 들면 작고 얕고 좁아져 물이 부딪쳐 끓어오르므로 솟구쳐 물결이 된다. 광릉의 곡강에 물결이 있어 문인이 부를 지었다. 대강은 넓고 아득한데 곡강에 물결이 있는 것은 끝내 좁기 때문이다. 오나라가 그 몸을 죽였는데 광릉에서 물결을 일으키니 자서의 신은 끝내 앎이 없는 것이다. 골짜기가 깊으면 흐르는 것이 편안하고 넓으며, 얕고 모래와 돌이 많으면 부딪쳐 올라 여울이 된다. 무릇 물결과 여울은 한가지다. 자서가 물결을 일으킨다 한다면 누가 골짜기에 살며 여울을 일으키는가. 살피건대 물결이 세 강에 들면 언덕이 끓고 뛰는데 가운데는 소리가 없다. 반드시 자서가 물결을 일으킨다면 자서의 몸이 언덕에 모인 것이다. 물결이 일어나는 것은 달의 차고 이지러짐을 따라 크고 작고 차고 덜함이 고르지 않다. 자서가 물결을 일으킨다면 자서의 노여움이 달로 마디를 삼는 것이다. 세 강에 때때로 바람이 불어 일으키는 빠른 물결도 사람을 빠뜨려 죽이니 자서의 신이 다시 바람도 되는가. 진 시황이 상수를 건너다 바람을 만나 상산이 무슨 사당이냐 물으니 곁의 사람이 대답하였다. 「요의 딸이요 순의 아내입니다.」
始皇太怒,使刑徒三千人斬湘山之樹而履之。夫謂子胥之神為濤,猶謂二女之精為風也。
시황이 크게 노하여 형도 삼천 명을 시켜 상산의 나무를 베고 밟게 하였다. 무릇 자서의 신이 물결을 일으킨다 함은 두 여인의 정기가 바람을 일으킨다 하는 것과 같다.
傳書言:孔子當泗水(之)〔而〕葬,泗水為之卻流。此言孔子之德,能使水卻,不湍其墓也。世人信之。是故儒者稱論,皆言孔子之後當封,以泗水卻流為証。如原省之,殆虛言也。夫孔子死,孰與其生?生能操行,慎道應天,死操行絕。天佑至德,故五帝、三王招致瑞應,皆以生存,不以死亡。孔子生時推排不容,故嘆曰:「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生時無佑,死反有報乎?孔子之死,五帝、三王之死也。五帝、三王無佑,孔子之死獨有天報,是孔子之魂聖,五帝之精不能神也。泗水無知,為孔子卻流,天神使之。然則,孔子生時,天神不使人尊敬。如泗水卻流,天欲封孔子之後,孔子生時,功德應天,天不封其身,乃欲封其後乎?是蓋水偶自卻流。江河之流,有回復之處;百川之行,或易道更路,與卻流無以異。則泗水卻流,不為神怪也。
전하는 책에 이르기를, 공자가 사수를 마주하여 장사 지내지니 사수가 그를 위해 물러 흘렀다 한다. 이는 공자의 덕이 물을 물러가게 하여 그 무덤에 부딪지 않게 하였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이 믿는다. 그러므로 유자가 논하며 다 공자의 후손이 마땅히 봉해지리라 하고 사수가 물러 흐른 것을 증거로 삼는다. 근원을 살피면 아마 헛말일 것이다.
무릇 공자가 죽은 것이 살았을 때와 어떠한가. 살아서는 몸가짐을 할 수 있어 도를 삼가 하늘에 응하였으나 죽으면 몸가짐이 끊긴다. 하늘이 지극한 덕을 돕는 것이니 오제와 삼왕이 상서로운 응함을 불러들인 것은 다 살아 있을 때지 죽은 뒤가 아니다. 공자가 살았을 때 밀려나 용납되지 못하였으므로 탄식하기를 「봉황이 이르지 않고 하수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도다!」 하였다. 살았을 때 도움이 없었는데 죽어서 도리어 갚음이 있겠는가. 공자의 죽음은 오제와 삼왕의 죽음이다. 오제와 삼왕에게 도움이 없었는데 공자의 죽음에만 하늘의 갚음이 있다면, 이는 공자의 넋은 성스럽고 오제의 정기는 신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수는 앎이 없으니 공자를 위해 물러 흐른 것은 하늘의 신이 시킨 것이다. 그러면 공자가 살았을 때 하늘의 신은 사람들이 존경하게 하지 않았다. 사수가 물러 흐른 것이 하늘이 공자의 후손을 봉하려 함이라면, 공자가 살았을 때 공과 덕이 하늘에 응하였는데 하늘이 그 몸을 봉하지 않고 그 후손을 봉하려 하였겠는가. 이는 물이 우연히 절로 물러 흐른 것이다. 강과 하수의 흐름에 돌아오는 데가 있고 온갖 내의 감에 더러 길을 바꾸니 물러 흐름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사수가 물러 흐른 것은 신령하고 괴이한 것이 아니다.
傳書稱:魏公子之德,仁惠下士,兼及鳥獸。方與客飲,有擊鳩。鳩走,巡於公子案下。追擊,殺於公子之前,公子恥之,即使人多設羅,得數十枚,責讓以擊鳩之罪。擊鳩之,低頭不敢仰視,公子乃殺之。世稱之曰:「魏公子為鳩報仇。」此虛言也。夫物也,情心不同,音語不通。聖人不能使鳥獸為義理之行,公子何人,能使低頭自責?鳥為者以千萬數,向擊鳩蜚去,安可復得?能低頭自責,是聖鳥也。曉公子之言,則知公子之行矣。知公子之行,則不擊鳩於其前。人猶不能改過,鳥與人異,謂之能悔,世俗之語,失物類之實也。或時公子實捕,得。人持其頭,變折其頸,疾痛低垂,不能仰視。緣公子惠義之人,則因褒稱,言?服過。蓋言語之次,空生虛妄之美;功名之下,常有非實之加。
전하는 책에 일컫기를, 위나라 공자의 덕이 어질고 은혜로워 선비에게 낮추고 새와 짐승에게까지 미쳤다 한다. 바야흐로 손과 술을 마시는데 새매가 비둘기를 쳤다. 비둘기가 달아나 공자의 책상 아래로 돌았는데 새매가 뒤쫓아 쳐서 공자 앞에서 죽였다. 공자가 부끄러워하여 곧 사람을 시켜 그물을 많이 쳐 수십 마리를 잡아 비둘기를 친 죄를 꾸짖었다. 비둘기를 친 새매가 머리를 숙이고 감히 우러러보지 못하자 공자가 이에 죽였다. 세상이 일컬어 「위나라 공자가 비둘기를 위해 원수를 갚았다」 한다. 이는 헛말이다.
무릇 물건은 정과 마음이 같지 않고 소리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성인도 새와 짐승에게 의리의 행실을 하게 할 수 없거늘 공자가 어떤 사람이기에 머리를 숙이고 스스로 꾸짖게 할 수 있었겠는가. 새 가운데 새매인 것이 천만을 헤아리는데 아까 비둘기를 치고 날아간 것을 어찌 다시 잡겠는가. 머리를 숙이고 스스로 꾸짖을 수 있다면 이는 성스러운 새다. 공자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공자의 행실을 알았을 것이요, 공자의 행실을 알았다면 그 앞에서 비둘기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도 오히려 허물을 고치지 못하는데 새는 사람과 다르니 뉘우칠 수 있다 함은 세속의 말이 물건의 실상을 잃은 것이다. 아마 공자가 실로 새매를 잡아 얻었을 것이다. 사람이 그 머리를 잡고 그 목을 꺾으니 아파서 낮게 늘어져 우러러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공자가 은혜롭고 옳은 사람이므로 이로 인해 기려 일컬어 새매가 허물에 복종하였다 말한 것이다. 말하는 사이에 헛되이 망령된 아름다움이 생기고 공과 이름 아래에 늘 실상 아닌 것이 더해진다.
傳書言齊桓公妻姑姊妹七人,此言虛也。夫亂骨肉,犯親戚,無上下之序者,禽獸之性,則亂不知倫理。案桓公九合諸侯,一(正)〔匡〕天下,道之以德,將之以威,以故諸侯服從,莫敢不率,非內亂懷鳥獸之性者所能為也。夫率諸侯朝事王室,恥上無勢而下無禮也。外恥禮之不存,內何犯禮而自坏?外內不相副,則功無成而威不立矣。世稱桀、紂之惡,不言淫於親戚。實論者謂夫桀、紂惡微於亡秦,亡秦過泊於王莽,無淫亂之言。桓公妻姑姊七人,惡浮於桀、紂,而過重於秦、莽也。《春秋》采毫毛之美,貶纖芥之惡。桓公惡大,不貶何哉?魯文姜,齊襄公之妹也,襄公通焉。《春秋》經曰:「庄二年冬,夫人姜氏會齊侯於郜。」《春秋》何尤於襄公,而書其奸;何宥於桓公,隱而不譏?如《經》失之,傳家左丘明、公羊、谷梁何諱不言?案桓公之過多內寵,內嬖如夫人者六,有五公子爭立,齊亂,公薨三月乃訃。世聞內嬖六人,嫡庶無別,則言亂於姑姊妹七人矣。
전하는 책에 제 환공이 고모와 누이 일곱을 아내로 삼았다 하니 이 말은 헛되다. 무릇 골육을 어지럽히고 친척을 범하여 위아래의 차례가 없는 것은 새와 짐승의 성품이니 어지러워 윤리를 모르는 것이다. 살피건대 환공은 제후를 아홉 번 모으고 천하를 한 번 바로잡아 덕으로 이끌고 위엄으로 거느렸으므로 제후가 복종하여 감히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안으로 어지러워 새와 짐승의 성품을 품은 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릇 제후를 거느려 왕실을 조회하고 섬긴 것은 위에 권세가 없고 아래에 예가 없음을 부끄러워해서다. 밖으로 예가 없음을 부끄러워하면서 안으로 어찌 예를 범하여 스스로 무너뜨렸겠는가. 안팎이 서로 맞지 않으면 공이 이루어지지 않고 위엄이 서지 않는다.
세상이 걸과 주의 악을 일컬으나 친척에게 음란하였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실상을 논하는 이는 걸과 주의 악이 망한 진나라보다 작고 망한 진나라의 허물이 왕망보다 엷다 하나 음란하였다는 말은 없다. 환공이 고모와 누이 일곱을 아내로 삼았다면 악이 걸과 주보다 크고 허물이 진나라와 왕망보다 무겁다. 「춘추」는 터럭만 한 아름다움도 캐고 티끌만 한 악도 깎았다. 환공의 악이 큰데 깎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노나라 문강은 제 양공의 누이인데 양공이 사통하였다. 「춘추」 경에 이르기를 「장공 이년 겨울에 부인 강씨가 제나라 임금을 고에서 만났다」 하였다. 「춘추」가 어찌 양공은 탓하여 그 간통을 적으면서 환공은 용서하여 숨기고 나무라지 않았는가. 「경」이 빠뜨렸다면 전을 지은 좌구명·공양·곡량이 어찌 꺼려 말하지 않았는가. 살피건대 환공의 허물은 안에 총애가 많은 것이라 안에서 사랑받아 부인 같은 이가 여섯이요 다섯 공자가 서기를 다투어 제나라가 어지러워 공이 죽은 지 석 달 만에 부고하였다. 세상이 안에서 사랑받은 여섯 사람에 적서의 구별이 없었다는 것을 듣고 고모와 누이 일곱에게 어지러웠다 말한 것이다.
傳書言,齊桓公負婦人而朝諸侯,此言桓公之淫亂無禮甚也。夫桓公大朝之時,負婦人於背,其游宴之時,何以加此?方修士禮,崇歷肅敬,負婦人於背,何以能率諸侯朝事王室?葵丘之會,桓公驕矜,當時諸侯畔者九國。睚眥不得,九國畔去,況負婦人淫亂之行,何以肯留?或曰:「管仲告諸侯:吾君背有疽創,不得婦人,瘡不衰愈。諸侯信管仲,故無畔者。」夫十室之邑,必有忠信若孔子。當時諸侯千人以上,必知方朮,治疽不用婦人。管仲為君諱也,諸侯知仲為君諱而欺己,必恚怒而畔去,何以能久統會諸侯,成功於霸?或曰:「桓公實無道,任賢相管仲,故能霸天下。」夫無道之人,與狂無異,信讒遠賢,反害仁義,安能任管仲,能養人,令之成事?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無道之君莫能用賢,使管仲賢,桓公不能用;用管仲,故知桓公無亂行也。有賢明之君,故有貞良之臣。臣賢,君明之驗,奈何謂之有亂?
전하는 책에 제 환공이 부인을 업고 제후를 조회하였다 하니 이 말은 환공의 음란하고 무례함이 심하다는 것이다. 무릇 환공이 큰 조회 때 부인을 등에 업었다면 그 놀고 잔치할 때는 무엇을 이보다 더하였겠는가. 바야흐로 선비의 예를 닦고 엄숙히 공경함을 높이는 자리에 부인을 등에 업고 어찌 제후를 거느려 왕실을 조회하고 섬길 수 있었겠는가. 규구의 모임에서 환공이 교만하매 그때 제후 가운데 배반한 이가 아홉 나라였다. 눈흘김 하나에도 아홉 나라가 배반하여 떠났는데 하물며 부인을 업는 음란한 행실에 어찌 머물려 하였겠는가.
어떤 이가 말한다. 「관중이 제후에게 고하기를, 우리 임금은 등에 종기가 있어 부인을 얻지 못하면 헌데가 낫지 않는다 하였다. 제후가 관중을 믿었으므로 배반한 이가 없었다.」 무릇 열 집 고을에도 반드시 공자 같은 충성과 믿음이 있다. 그때 제후가 천 사람 이상이니 반드시 처방과 술법을 아는 이가 있어 종기 다스리는 데 부인을 쓰지 않음을 알았을 것이다. 관중이 임금을 위해 숨긴 것인데 제후가 관중이 임금을 위해 숨기며 저를 속인 줄 알았다면 반드시 성내어 배반하여 떠났을 것이니, 어찌 오래 제후를 거느려 모아 패자의 공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어떤 이가 말한다. 「환공이 실로 무도하였으나 어진 재상 관중에게 맡겼으므로 천하에 패자가 될 수 있었다.」 무릇 무도한 사람은 미친 이와 다름이 없어 참소를 믿고 어진 이를 멀리하여 도리어 인의를 해치는데, 어찌 관중에게 맡겨 사람을 기르고 일을 이루게 할 수 있었겠는가. 걸은 관룡봉을 죽이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으니 무도한 임금은 어진 이를 쓸 수 없다. 관중이 어질었다면 환공이 쓸 수 없었을 것이요, 관중을 썼으므로 환공에게 어지러운 행실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어질고 밝은 임금이 있으므로 곧고 어진 신하가 있다. 신하가 어진 것은 임금이 밝다는 증험인데 어찌 어지러움이 있다 하는가.
難曰:「衛靈公無道之君,時知賢臣。管仲為輔,何明桓公不為亂也?」夫靈公無道,任用三臣,僅以不喪,非有功行也。桓公尊九九之人,拔甯戚於車下,責苞茅不貢,運兵功楚,九合諸侯,一匡天下,千世一出之主也。而云負婦人於背,虛矣。說《尚書》者曰:「周公居攝,帶天子之綬,戴天子之冠,負南面而朝諸侯。」
따져 말한다. 「위 영공은 무도한 임금인데 때로 어진 신하를 알아보았다. 관중이 보좌하였다 하여 어찌 환공이 어지럽지 않았음을 밝히는가.」 무릇 영공은 무도하나 세 신하를 써서 겨우 망하지 않았을 뿐 공과 행실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환공은 구구단을 아는 사람을 높이고 영척을 수레 아래에서 뽑고 포모를 바치지 않음을 꾸짖어 군사를 몰아 초나라를 쳤으며 제후를 아홉 번 모으고 천하를 한 번 바로잡았으니 천 대에 한 번 나오는 임금이다. 그런데 부인을 등에 업었다 하니 헛되다. 「상서」를 풀이하는 이가 말한다. 「주공이 섭정하며 천자의 인끈을 띠고 천자의 관을 쓰고 남면을 등지고 제후를 조회하였다.」
戶牖之間曰,南面之坐位也。負南面鄉坐,在後也。桓公朝諸侯之時,或南面坐,婦人立於後也。世俗傳云,則曰負婦人於背矣。此則夔一足、宋丁公鑿井得一人之語也。唐虞時,夔為大夫,性知音樂,調聲悲善。當時人曰:「調樂如夔一足矣。」世俗傳言,夔一足。
문과 창 사이를 의(扆)라 하니 남면하는 앉는 자리다. 병풍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앉으면 병풍이 뒤에 있다. 환공이 제후를 조회할 때 더러 남면하여 앉고 부인이 뒤에 서 있었을 것이다. 세속이 전하여 말하기를 부인을 등에 업었다 한 것이다. 이는 기가 발이 하나였다는 것과 송나라 정공이 우물을 파서 사람 하나를 얻었다는 말과 같다. 당우 때에 기가 대부였는데 성품이 음악을 알아 소리를 고르는 것이 슬프고 좋았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음악을 고르는 데는 기 같은 이 하나면 족하다(一足)」 하였다. 세속이 전하여 기는 발이 하나(一足)라 한다.
案秩宗官缺,帝舜博求,眾稱伯夷,伯夷稽首讓於夔龍。秩宗卿官,漢之宗正也。斷足,(足)非其理也。
살피건대 질종의 벼슬이 비어 순 임금이 널리 구하니 뭇사람이 백이를 일컬었고 백이가 머리를 조아려 기와 용에게 사양하였다. 질종은 경의 벼슬이니 한나라의 종정이다. 발이 잘렸다면 그 이치가 아니다.
且一足之人,何用行也?夏後孔甲田於東山,天雨晦冥,入於民家,主人方乳,或曰:「後來之子必貴。」或曰:「不勝之子必賤。」孔甲曰:「為餘子,孰能賤之?」遂載以歸,析繚,斧斬其足,卒為守者。孔甲之欲貴之子,有餘力矣,斷足無宜,故為守者。今夔一足,無因趨步,坐調音樂,可也。秩宗之官,不宜一足,猶守者斷足,不可貴也。孔甲不得貴之子,伯夷不得讓於夔焉。宋丁公者,宋人也。未鑿井時,常有寄汲,計之,日去一人作。自鑿井後,不復寄汲,計之,日得一人之作。故曰:「宋丁公鑿井得一人。」俗傳言曰:「丁公鑿井得一人於井中。」夫人生於人,非生於土也。穿土鑿井,無為得人。推此以論,負婦人之語,猶此類也。負婦人而坐,則云婦人在背。知婦人在背非道,則生管仲以婦人治疽之言矣。使桓公用婦人徹胤服,婦人於背,女氣〔愈〕瘡,可(去)〔云〕以婦人治疽。方朝諸侯,桓公重衣,婦人襲裳,女氣分隔,負之何益?桓公思土,作庭燎而夜坐,以思致土,反以白日負婦人見諸侯乎?
또 발이 하나인 사람이 무엇으로 다니는가. 하후 공갑이 동산에서 사냥하다가 하늘이 비를 내려 어두컴컴하여 백성의 집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마침 아이를 낳았다. 어떤 이는 「임금이 오셨으니 이 아이는 반드시 귀할 것이다」 하고 어떤 이는 「감당하지 못하니 이 아이는 반드시 천할 것이다」 하였다. 공갑이 말하였다. 「내 아들로 삼는데 누가 천하게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싣고 돌아왔는데 장막을 가르다가 도끼로 그 발을 베어 마침내 문지기가 되었다. 공갑이 귀하게 하려던 아이는 힘이 남았으나 발이 잘려 마땅하지 않았으므로 문지기가 되었다. 이제 기가 발이 하나라면 걸어 다닐 길이 없으니 앉아서 음악을 고르는 것은 좋다. 질종의 벼슬은 발이 하나여서는 마땅하지 않으니 문지기가 발이 잘려 귀해질 수 없는 것과 같다. 공갑이 아이를 귀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백이가 기에게 사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송나라 정공은 송나라 사람이다. 아직 우물을 파지 않았을 때 늘 남에게 물을 길어 오게 하였는데 셈하면 날마다 한 사람의 일이 나갔다. 우물을 판 뒤로 다시 남에게 물을 길어 오게 하지 않으니 셈하면 날마다 한 사람의 일을 얻었다. 그러므로 「송나라 정공이 우물을 파서 사람 하나를 얻었다」 하였다. 세속이 전하여 말하기를 「정공이 우물을 파서 우물 속에서 사람 하나를 얻었다」 한다. 무릇 사람은 사람에게서 나지 흙에서 나지 않는다. 흙을 뚫어 우물을 판다고 사람을 얻을 리 없다. 이로 미루어 논하면 부인을 업었다는 말도 이 무리와 같다.
부인을 등지고 앉은 것을 부인이 등에 있다 한 것이다. 부인이 등에 있는 것이 도가 아닌 줄 알므로 관중이 부인으로 종기를 다스린다 하였다는 말이 생겼다. 환공이 부인을 써서 옷을 벗고 부인을 등에 대어 여인의 기운으로 헌데를 낫게 하였다면 부인으로 종기를 다스린다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제후를 조회하는데 환공은 옷을 겹겹이 입고 부인은 치마를 껴입어 여인의 기운이 나뉘어 막혔으니 업은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환공이 선비를 생각하여 뜰에 횃불을 밝히고 밤에 앉아 선비를 이르게 하려 하였는데, 도리어 밝은 낮에 부인을 업고 제후를 보았겠는가.
傳書言聶正為嚴翁仲刺殺韓王,此虛也。夫聶政之時,韓列侯也。列侯之三年,聶政刺韓相俠累。十二年,列侯卒。與聶政殺俠累,相去十七年。而言聶政刺殺韓王,短書小傳,竟虛不可信也。
전하는 책에 섭정이 엄옹중을 위해 한나라 왕을 찔러 죽였다 하니 이는 헛되다. 무릇 섭정의 때는 한 열후다. 열후 삼년에 섭정이 한나라 재상 협루를 찔렀다. 십이년에 열후가 죽었다. 섭정이 협루를 죽인 때와 열일곱 해 떨어져 있다. 그런데 섭정이 한나라 왕을 찔러 죽였다 하니 짧은 글과 작은 전은 끝내 헛되어 믿을 수 없다.
傳書又言:燕太子丹使刺客荊軻刺秦王不得,誅死。後高漸麗復以擊筑見秦王,秦王說之,知燕太子之客,乃冒其眼,使之擊筑。漸麗乃置鉛於筑中以為重。當擊筑,秦王膝進,不能自禁。漸麗以筑擊秦王顙,秦王病傷三月而死。夫言到高漸麗以筑擊秦王,實也;言中秦王病傷三月而死,虛也。夫秦王者,秦始皇帝也。始皇二十年,燕太子丹使荊軻刺始皇,始皇殺軻明矣。二十一年,使將軍王翦功燕,得太子首。二十五年,遂伐燕而虜燕王嘉。後不審何年,高漸麗以筑擊始皇不中,誅漸麗。當二十七年,游天下,到會稽,至琅邪,北至勞、盛山,并海,西至平原津而病,到沙丘平台,始皇崩。夫讖書言始皇還,到沙丘而亡;傳書又言病筑瘡三月而死於秦。一始皇之身,世或言死於沙丘,或言死於秦,其死言恆病瘡。傳書之言多失其實,世俗之人不能定也。
전하는 책에 또 이르기를, 연나라 태자 단이 자객 형가를 시켜 진왕을 찌르게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뒤에 고점리가 다시 축을 치는 것으로 진왕을 뵈니 진왕이 기뻐하였는데, 연나라 태자의 손인 줄 알고 그 눈을 멀게 하고 축을 치게 하였다. 점리가 이에 납을 축 속에 넣어 무겁게 하였다. 축을 칠 때 진왕이 무릎으로 다가와 스스로 그치지 못하였다. 점리가 축으로 진왕의 이마를 치니 진왕이 상처로 앓다가 석 달 만에 죽었다 한다.
무릇 고점리가 축으로 진왕을 쳤다는 데까지는 실상이나 진왕을 맞혀 상처로 앓다가 석 달 만에 죽었다 함은 헛되다. 무릇 진왕이란 진 시황제다. 시황 이십년에 연나라 태자 단이 형가를 시켜 시황을 찌르게 하였고 시황이 형가를 죽인 것이 분명하다. 이십일년에 장군 왕전을 시켜 연나라를 쳐 태자의 머리를 얻었다. 이십오년에 마침내 연나라를 쳐서 연왕 희를 사로잡았다. 뒤에 어느 해인지 알 수 없으나 고점리가 축으로 시황을 쳤다가 맞히지 못하여 점리를 죽였다. 이십칠년에 천하를 노닐어 회계에 이르고 낭야에 이르고 북으로 노산과 성산에 이르러 바다를 끼고 서쪽으로 평원진에 이르러 병들어 사구의 평대에 이르러 시황이 돌아갔다. 무릇 참서는 시황이 돌아오다 사구에 이르러 죽었다 하고, 전하는 책은 또 축에 맞은 상처로 앓다가 석 달 만에 진나라에서 죽었다 한다. 시황 한 몸을 세상이 더러는 사구에서 죽었다 하고 더러는 진나라에서 죽었다 하며 그 죽음을 오래 상처로 앓았다 한다. 전하는 책의 말이 흔히 그 실상을 잃으니 세속 사람이 정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