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變虛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0 · 한자 2,599자 · 낭독 10.4분

「논형」 변허편 「變虛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傳書曰:宋景公之時,熒惑守心,公懼,召子韋而問之曰:「熒惑在心,何也?」子韋曰:「熒惑,天罰也,心,宋分野也,禍當君。雖然,可移於宰相。」公曰:「宰相所使治國家也,而移死焉,不祥。」子韋曰:「可移於民。」公曰:「民死,寡人將誰為也?宁獨死耳。」子韋曰:「可移於歲。」公曰:「民飢,必死。為人君而欲殺其民以自活也,其誰以我為君者乎?是寡人命固盡也,子毋復言。」子韋退走,北面再拜曰:「臣敢賀君。天之處高而耳卑,君有君人之言三,天必三賞君。今夕星必徙三舍,君延命二十一年。」公曰:「奚知之?」

전하는 책에 이르기를, 송 경공 때에 형혹성이 심수(心宿)에 머물러 공이 두려워하여 자위를 불러 물었다. 「형혹이 심수에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자위가 말하였다. 「형혹은 하늘의 벌이요 심수는 송나라의 분야이니 화가 임금께 닿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상에게 옮길 수 있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재상은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이인데 죽음을 옮기면 상서롭지 못하다.」 자위가 말하였다. 「백성에게 옮길 수 있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백성이 죽으면 과인이 장차 누구를 위해 임금 노릇 하겠는가. 차라리 홀로 죽겠다.」 자위가 말하였다. 「해(歲)에 옮길 수 있습니다.」 공이 말하였다. 「백성이 굶주리면 반드시 죽는다. 임금이 되어 그 백성을 죽여 스스로 살려 한다면 그 누가 나를 임금으로 삼겠는가. 이는 과인의 명이 본디 다한 것이니 그대는 다시 말하지 마라.」 자위가 물러나 달려가 북면하여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신이 감히 임금께 하례드립니다. 하늘은 높은 데 있어도 귀는 낮은 데 있으니, 임금께 임금다운 말이 셋 있었으므로 하늘이 반드시 세 번 임금께 상을 줄 것입니다. 오늘 저녁 별이 반드시 세 자리를 옮기고 임금의 명이 스물한 해 늘 것입니다.」 공이 말하였다. 「어찌 아는가?」

對曰:「君有三善,故有三賞,星必三徙。(三)徙行七星,星當一年,三七二十一,故君命延二十一歲。臣請伏於殿下以伺之,星必不徙,臣請死耳。」是夕也,火星果徙三舍。如子韋之言,則延年審得二十一歲矣。星徙審則延命,延命明則景公為善,天佑之也。則夫世間人能為景公之行者,則必得景公佑矣。此言虛也。何則?

대답하였다. 「임금께 세 가지 착함이 있으므로 세 가지 상이 있어 별이 반드시 세 번 옮길 것입니다. 한 번 옮기면 일곱 별을 지나고 별 하나가 한 해에 해당하니 삼칠은 이십일이라 임금의 명이 스물한 해 늘 것입니다. 신이 전 아래 엎드려 살피기를 청하니 별이 옮기지 않으면 신이 죽기를 청합니다.」 이날 저녁에 화성이 과연 세 자리를 옮겼다. 자위의 말대로라면 늘어난 해가 참으로 스물한 해다. 별이 옮긴 것이 참이면 명이 늘고, 명이 는 것이 분명하면 경공이 착하여 하늘이 도운 것이다. 그러면 세상 사람 가운데 경공의 행실을 할 수 있는 이는 반드시 경공의 도움을 얻을 것이다. 이 말은 헛되다. 어째서인가.

皇天遷怒,使熒惑本景公身為有惡而守心,則雖聽子韋言,猶無益也。使其不為景公,則雖不聽子韋之言,亦無損也。

하늘이 노여움을 옮겨 형혹으로 하여금 본디 경공의 몸에 악이 있어 심수에 머물게 한 것이라면, 비록 자위의 말을 들었어도 오히려 보탬이 없다. 경공 때문이 아니라면 비록 자위의 말을 듣지 않았어도 또한 손해가 없다.

齊景公時有彗星,使人禳之。晏子曰:「無益也,只取誣焉。天道不暗,不貳其命,若之何禳之也?且天之有彗,以除穢也。君無穢德,又何禳焉?若德之穢,禳之何益?《詩》曰:「惟此文王,小心翼翼,昭事上帝,聿懷多福;厥德不回,以受方國。」君無回德,方國將至,何患於彗?《詩》曰:我無所監,夏後及商,用亂之故,民卒流亡。若德回亂,民將流亡,祝史之為,我能補也。公說,乃止。齊君欲禳彗星之凶,猶子韋欲移熒惑之禍也。宋君不聽,猶晏子不肯從也。則齊君為子韋,晏子為宋君也。

제 경공 때 혜성이 있어 사람을 시켜 빌어 물리치게 하였다. 안자가 말하였다. 「보탬이 없고 다만 속임만 취할 뿐입니다. 하늘의 도는 어둡지 않아 그 명을 둘로 하지 않으니 어찌 빌어 물리치겠습니까. 또 하늘에 혜성이 있는 것은 더러움을 없애려 함입니다. 임금께 더러운 덕이 없으면 또 무엇을 빌겠습니까. 덕이 더럽다면 빌어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시」에 이르기를 「오직 이 문왕이 조심하고 삼가 밝게 상제를 섬겨 많은 복을 품었으니, 그 덕이 어긋나지 않아 사방 나라를 받았다」 하였습니다. 임금께 어긋난 덕이 없으면 사방 나라가 장차 이를 터인데 어찌 혜성을 근심하겠습니까. 「시」에 이르기를 「내 거울 삼을 데가 없으랴, 하후와 상이 어지러움 때문에 백성이 마침내 흘러 망하였다」 하였습니다. 덕이 어긋나고 어지러우면 백성이 장차 흘러 망할 터인데 축과 사(史)가 하는 일이 무엇을 기울 수 있겠습니까.」 공이 기뻐하여 이에 그만두었다. 제나라 임금이 혜성의 흉함을 빌어 물리치려 한 것은 자위가 형혹의 화를 옮기려 한 것과 같다. 송나라 임금이 듣지 않은 것은 안자가 따르려 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니 제나라 임금이 자위가 되고 안자가 송나라 임금이 된 셈이다.

同變共禍,一事二人。天猶賢宋君,使熒惑徙三舍,延二十一年,獨不多(一作為。)晏子使彗消而增其壽,何天佑善偏駁之齊一也?人君有善行〔善言〕,善行動於心,善言出於意,同由共本,一氣不異。宋景公出三善言,則其先三善言之前,必有善行也。有善行,必有善政,政善則嘉瑞臻,福祥至;熒惑之星無為守心也。使景公有失誤之行,以致惡政,惡政發,則妖異見,熒〔惑〕之守心,〔猶〕桑谷不生朝。高宗消桑谷之變,以政不以言;景公卻熒惑之異,亦宜以行。景公有惡行,故熒惑守心。不改政修行,坐出三善言,安能動天!天安肯應!何以效之?使景公出三惡言,能使熒惑守心乎?夫三惡言不能使熒惑守心,三善言安能使熒惑退徙三舍?以三善言獲二十一年,如有百善言,得千歲之壽乎?非天佑善之意,應誠為福之實也。

같은 변고와 같은 화에 한 일이 두 사람이다. 하늘이 오히려 송나라 임금을 어질다 하여 형혹이 세 자리를 옮기고 스물한 해를 늘려 주었으면서, 유독 안자에게는 혜성을 사라지게 하여 그 수를 더해 주지 않았으니 어찌 하늘이 착함을 돕는 것이 치우쳐 가지런하지 않은가.

임금에게 착한 행실과 착한 말이 있는데 착한 행실은 마음에서 움직이고 착한 말은 뜻에서 나오니, 같은 데 말미암고 근본을 함께하여 한 기운으로 다르지 않다. 송 경공이 세 착한 말을 내었다면 그 세 착한 말보다 앞서 반드시 착한 행실이 있었을 것이다. 착한 행실이 있으면 반드시 착한 정사가 있고 정사가 착하면 아름다운 상서가 이르고 복이 이르니 형혹성이 심수에 머물 까닭이 없다. 경공에게 그릇된 행실이 있어 악한 정사에 이르고 악한 정사가 일어나 요사한 이변이 나타났다면, 형혹이 심수에 머문 것은 뽕나무와 닥나무가 조정에 난 것과 같다. 고종은 뽕나무와 닥나무의 변고를 정사로 없앴지 말로 없애지 않았으니, 경공이 형혹의 이변을 물리치는 것도 마땅히 행실로 하였어야 한다. 경공에게 악한 행실이 있었으므로 형혹이 심수에 머물렀다. 정사를 고치고 행실을 닦지 않고 앉아서 세 착한 말을 내었다고 어찌 하늘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하늘이 어찌 응하려 하겠는가.

무엇으로 살피는가. 경공이 세 악한 말을 내었다면 형혹이 심수에 머물게 할 수 있었겠는가. 무릇 세 악한 말이 형혹을 심수에 머물게 할 수 없다면 세 착한 말이 어찌 형혹을 세 자리 물러 옮기게 할 수 있겠는가. 세 착한 말로 스물한 해를 얻었다면 백 착한 말이 있으면 천 년의 수를 얻겠는가. 하늘이 착함을 돕는 뜻도 아니요 정성에 응하여 복을 내리는 실상도 아니다.

子韋之言:「天處高而聽卑,君有君人之言三,天必三賞君。」夫天體也,與地無異。諸有體者,耳咸附於首。體與耳殊,未之有也。天之去人,高數萬里,使耳附天,聽數萬里之語,弗能聞也。人坐樓台之上,察地之螻蟻,尚不見其體,安能聞其聲。何則?螻蟻之體細,不若人形大,聲音孔氣不能達也。今天之崇高非直樓台,人體比於天,非若螻蟻於人也。謂天聞人言,隨善惡為吉凶,誤矣。四夷入諸夏,因譯而通。同形均氣,語不相曉。雖五帝三王不能去譯獨曉四夷,況天與人異體、音與人殊乎?人不曉天所為,天安能知人所行。使天體乎,耳高不能聞人言;使天氣乎,氣若雲煙,安能聽人辭?說災變之家曰:「人在天地之間,猶魚在水中矣。其能以行動天地,猶魚鼓而振水也,魚動而水蕩氣變。」此非實事也。假使真然,不能至天。魚長一尺,動於水中,振旁側之水,不過數尺,大若不過與人同,所振蕩者不過百步,而一里之外淡然澄靜,離之遠也。今人操行變氣遠近,宜與魚等;氣應而變,宜與水均。以七尺之細形,形中之微氣,不過與一鼎之蒸火同。從下地上變皇天,何其高也!且景公賢者也。賢者操行,上不及聖〔人〕,下不過惡人。世間聖人莫不堯、舜,惡人莫不桀、紂。堯、舜操行多善,無移熒惑之效;桀、紂之政多惡,(有)反〔有〕景公脫禍之驗。景公出三善言,延年二十一歲,是則堯、舜宜獲千歲,桀紂宜為殤子。今則不然,各隨年壽,堯、舜、桀、紂皆近百載。是竟子韋之言妄,延年之語虛也。且子韋之言曰:「熒惑,天使也;心,宋分野也。禍當君。」若是者,天使熒惑加禍於景公也,如何可移於將相、若歲與國民乎?天之有熒惑也,猶王者之有方伯也。諸侯有當死之罪,使方伯圍守其國,國君問罪於臣,臣明罪在君。雖然,可移於臣子與人民。設國君(計)〔許〕其言,令其臣歸罪於國〔人〕,方伯聞之,肯聽其言,釋國君之罪,更移以付國人乎?方伯不聽者,自國君之罪,非國人之辜也。方伯不聽(自國君之罪)〔非國人之辜〕,熒惑安肯移禍於國人!若此,子韋之言妄也。曰景公〔不〕聽乎言、庸何能動天?使諸侯不聽其臣言,引過自予,方伯聞其言,釋其罪委之去乎?方伯不釋諸侯之罪,熒惑安肯徙去三舍!夫聽與不聽,皆無福善,星徙之實,未可信用。天人同道,好惡不殊。人道不然,則知天無驗矣。

자위의 말에 「하늘은 높은 데 있어도 낮은 데를 들으니, 임금께 임금다운 말이 셋 있었으므로 하늘이 반드시 세 번 임금께 상을 줄 것입니다」 하였다. 무릇 하늘은 몸이니 땅과 다름이 없다. 모든 몸이 있는 것은 귀가 다 머리에 붙어 있다. 몸과 귀가 따로 있는 것은 있지 않다. 하늘이 사람에게서 떨어진 것이 높이 수만 리라, 귀가 하늘에 붙어 있다 하여도 수만 리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사람이 누대 위에 앉아 땅의 땅강아지와 개미를 살피면 그 몸조차 보지 못하는데 어찌 그 소리를 듣겠는가. 어째서인가. 땅강아지와 개미의 몸이 가늘어 사람의 몸처럼 크지 않으니 소리와 구멍의 기운이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하늘의 높음은 다만 누대 정도가 아니요 사람의 몸을 하늘에 견주면 땅강아지와 개미를 사람에 견주는 것만도 못하다. 하늘이 사람의 말을 듣고 착하고 악함을 따라 길흉을 내린다 함은 그르다.

사방 오랑캐가 중국에 들어오면 통역으로 말미암아 통한다. 꼴이 같고 기운이 고른데도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오제와 삼왕이라도 통역 없이 홀로 사방 오랑캐의 말을 알 수 없거늘, 하물며 하늘은 사람과 몸이 다르고 소리도 사람과 다름에랴. 사람이 하늘이 하는 바를 모르는데 하늘이 어찌 사람이 하는 바를 알겠는가. 하늘이 몸이라면 귀가 높아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고, 하늘이 기운이라면 기운은 구름과 연기 같으니 어찌 사람의 말을 듣겠는가.

재변을 말하는 이는 말한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물고기가 물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 행실로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쳐 물을 흔드는 것과 같으니, 물고기가 움직이면 물이 출렁이고 기운이 변한다.」 이는 실제 일이 아니다. 가령 참으로 그렇다 하여도 하늘에 이를 수 없다. 물고기가 길이 한 자로 물 가운데서 움직이면 곁의 물을 흔드는 것이 몇 자를 넘지 못하고, 크기가 사람과 같다 하여도 흔드는 것이 백 걸음을 넘지 못하며 한 리 밖은 담담히 맑고 고요하니 떨어진 것이 멀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의 몸가짐이 기운을 변하게 하는 멀고 가까움은 마땅히 물고기와 같고 기운이 응하여 변하는 것은 마땅히 물과 같다. 일곱 자의 가는 몸과 몸속의 미미한 기운은 한 솥의 김과 불과 같은 데 지나지 않는다. 아래 땅에서 위로 하늘을 변하게 한다니 어찌 그리 높은가.

또 경공은 어진 이다. 어진 이의 몸가짐은 위로 성인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 악한 사람을 넘지 않는다. 세상의 성인은 요와 순만 한 이가 없고 악한 사람은 걸과 주만 한 이가 없다. 요와 순의 몸가짐은 착함이 많았으나 형혹을 옮긴 보람이 없고, 걸과 주의 정사는 악함이 많았으나 도리어 경공이 화를 벗어난 것 같은 증험이 있다. 경공이 세 착한 말을 내어 해를 스물한 해 늘렸다면 요와 순은 마땅히 천 해를 얻고 걸과 주는 마땅히 어려서 죽었어야 한다. 이제는 그렇지 않아 저마다 해와 수를 따라 요·순·걸·주가 다 백 해에 가까웠다. 이는 끝내 자위의 말이 망령되고 해를 늘렸다는 말이 헛되다는 것이다.

또 자위의 말에 「형혹은 하늘의 사자요 심수는 송나라의 분야이니 화가 임금께 닿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러하다면 하늘이 형혹을 시켜 경공에게 화를 더한 것인데 어찌 장수와 재상이나 해와 백성에게 옮길 수 있겠는가. 하늘에 형혹이 있는 것은 왕에게 방백이 있는 것과 같다. 제후에게 마땅히 죽을 죄가 있어 방백을 시켜 그 나라를 에워싸 지키게 하였는데,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물으니 신하가 죄가 임금께 있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신하와 백성에게 옮길 수 있다 한다 하자. 임금이 그 말을 허락하여 그 신하에게 죄를 백성에게 돌리게 하면, 방백이 이를 듣고 그 말을 들어 임금의 죄를 풀고 다시 옮겨 백성에게 붙이려 하겠는가. 방백이 듣지 않는 것은 본디 임금의 죄지 백성의 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백이 백성의 허물이 아니라 하여 듣지 않는데 형혹이 어찌 화를 백성에게 옮기려 하겠는가. 이러하니 자위의 말은 망령되다. 경공이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어찌 하늘을 움직일 수 있었겠는가. 제후가 그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허물을 끌어 스스로 지면, 방백이 그 말을 듣고 그 죄를 풀고 버려두고 떠나겠는가. 방백이 제후의 죄를 풀지 않는데 형혹이 어찌 세 자리를 옮겨 가려 하겠는가. 무릇 듣고 듣지 않음에 다 복과 착함이 없으니 별이 옮겼다는 실상은 믿고 쓸 수 없다. 하늘과 사람은 도가 같아 좋아하고 미워함이 다르지 않다. 사람의 도가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증험이 없음을 알 수 있다.

宋、衛、陳、鄭之俱災也,氣變見天。梓慎知之,請於子產有以除之,子產不聽。天道當然,人事不能卻也。使子產聽梓慎,四國能無災乎?堯遭鴻水時,臣必有梓慎、子韋之知矣。然而不卻除者,堯與子產同心也。案子韋之言曰:「熒惑,天使也;心,宋分野也。禍當君。」審如此言,禍不可除,星不可卻也。若夫寒溫失和,風雨不時,政事之家,謂之失誤所致,可以善政賢行變而復也。

송·위·진·정이 함께 불이 났을 때 기운의 변화가 하늘에 나타났다. 재신이 알고 자산에게 없앨 방도가 있다고 청하였으나 자산이 듣지 않았다. 하늘의 도가 마땅히 그러하니 사람의 일로 물리칠 수 없다. 자산이 재신의 말을 들었다면 네 나라가 재앙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요가 큰물을 만났을 때 신하 가운데 반드시 재신과 자위의 앎이 있는 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물리쳐 없애지 않은 것은 요가 자산과 마음이 같아서다. 살피건대 자위의 말에 「형혹은 하늘의 사자요 심수는 송나라의 분야이니 화가 임금께 닿을 것입니다」 하였다. 참으로 이 말대로라면 화를 없앨 수 없고 별을 물리칠 수 없다. 춥고 더움이 고르지 못하고 바람과 비가 때에 맞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정사를 말하는 이는 그릇된 정사가 이룬 것이라 하니 착한 정사와 어진 행실로 변하여 되돌릴 수 있다.

若熒惑守心,若必死猶亡,禍安可除?修政改行,安能卻之?善政賢行,尚不能卻,出虛華之三言,謂星卻而禍除,增壽延年,享長久之福,誤矣。觀子韋之言景公,言熒惑之禍,非寒暑風雨之類,身死命終之祥也。國且亡,身且死,祆氣見於天,容色見於面。面有容色,雖善操行不能滅,死徵已見也。在體之色,不可以言行滅;在天之妖,安可以治除乎?人病且死,色見於面,人或謂之曰:「此必死之徵也。雖然,可移於五鄰,若移於奴役。」當死之人正言不可,容色肯為善言之故滅,而當死之命肯為之長乎?氣不可滅,命不可長。然則熒惑安可卻,景公之年安可增乎?由此言之,熒惑守心,未知所為,故景公不死也。

형혹이 심수에 머무는 것이 반드시 죽고 망하는 것이라면 화를 어찌 없앨 수 있겠는가. 정사를 닦고 행실을 고친들 어찌 물리칠 수 있겠는가. 착한 정사와 어진 행실로도 오히려 물리칠 수 없는데, 헛되고 화려한 세 마디 말을 내어 별이 물러가고 화가 없어지며 수가 더해지고 해가 늘어 길고 오랜 복을 누린다 하니 그르다. 자위가 경공에게 한 말을 보면 형혹의 화는 춥고 덥고 바람 불고 비 오는 무리가 아니라 몸이 죽고 명이 마치는 조짐이다. 나라가 장차 망하고 몸이 장차 죽으면 요사한 기운이 하늘에 나타나고 얼굴빛이 낯에 나타난다. 낯에 얼굴빛이 있으면 비록 착한 몸가짐으로도 없앨 수 없으니 죽을 징조가 이미 나타난 것이다. 몸에 있는 빛도 말과 행실로 없앨 수 없는데 하늘에 있는 요사함을 어찌 다스려 없앨 수 있겠는가. 사람이 병들어 장차 죽으면 빛이 낯에 나타나는데 누가 그에게 「이는 반드시 죽을 징조다. 그러나 다섯 이웃에게 옮기거나 종에게 옮길 수 있다」 한다 하자. 죽을 사람이 바른말로 안 된다 하면 얼굴빛이 착한 말 때문에 없어지고 죽을 명이 그 때문에 길어지겠는가. 기운은 없앨 수 없고 명은 길게 할 수 없다. 그러니 형혹을 어찌 물리치며 경공의 해를 어찌 더하겠는가. 이로써 말하면 형혹이 심수에 머문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으므로 경공이 죽지 않은 것이다.

且言星徙三舍者,何謂也?星三徙於一舍乎?一徙歷於三舍也?案子韋之言曰:「君有君人之言三,天必三賞君,今夕星必徙三舍。」若此星竟徙三舍也。夫景公一坐有三善言,星徙三舍,知有十善言,星徙十舍乎?熒惑守心,為善言卻,如景公復出三惡言,熒惑食心乎?為善言卻,為惡言進,無善無惡,熒惑安居不行動乎?

또 별이 세 자리를 옮겼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별이 한 자리에서 세 번 옮긴 것인가, 한 번 옮겨 세 자리를 지난 것인가. 살피건대 자위의 말에 「임금께 임금다운 말이 셋 있었으므로 하늘이 반드시 세 번 임금께 상을 줄 것이니 오늘 저녁 별이 반드시 세 자리를 옮길 것입니다」 하였으니, 이러하면 별이 끝내 세 자리를 옮긴 것이다. 무릇 경공이 한자리에서 세 착한 말을 하여 별이 세 자리를 옮겼다면, 열 착한 말이 있으면 별이 열 자리를 옮기겠는가. 형혹이 심수에 머물다가 착한 말 때문에 물러났다면, 경공이 다시 세 악한 말을 내면 형혹이 심수를 먹겠는가. 착한 말 때문에 물러나고 악한 말 때문에 나아간다면, 착함도 악함도 없으면 형혹이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않겠는가.

或時熒惑守心為旱災,不為君薨。子韋不知,以為死禍。信俗至誠之感,熒惑(之)〔去〕處,星必偶自當去,景公自不死,世則謂子韋之言審,景公之誠感天矣。亦或時子韋知星行度適自去,自以著己之知,明君臣推讓之所致;見星之數七,因言星七舍,復得二十一年,因以星舍計年之數。是與齊太卜無以異也。齊景公問太卜曰:「子之道何能?」對曰:「能動地。」晏子往見公,公曰:「寡人問太卜曰:「子道何能?」對曰:「能動地。」地固可動乎?」晏子嘿然不對,出見太卜曰:「昔吾見鉤星在房、心之間,地其動乎?」太卜曰:「然。」晏子出,太卜走見公:「臣非能動地,地固將自動。」夫子韋言星徙,猶太卜言地動也。地固且自動,太卜言己能動之。星固將自徙,子韋言君能徙之。使晏子不言鉤星在房、心,則太卜之奸對不覺。宋無晏子之知臣,故子韋之一言,遂為其是。案《子韋書錄序(秦)〔奏〕》亦言子韋曰「君出三善言,熒惑宜有動。於是候之,果徙舍。」不言三。或時星當自去,子韋以為驗,實動離舍,世增言三。既空增三舍之數,又虛生二十一年之壽也。

아마 형혹이 심수에 머문 것은 가뭄의 재앙 때문이지 임금이 죽을 것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위가 모르고 죽을 화라 여겼다. 세속의 지극한 정성이 감동시킨다는 것을 믿었으나, 형혹이 가고 머무는 것은 별이 반드시 우연히 절로 마땅히 갈 것이었고 경공은 절로 죽지 않을 것이었는데, 세상은 자위의 말이 살펴 맞고 경공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다 한다. 또 아마 자위는 별이 도수를 가다가 마침 절로 갈 줄 알고 스스로 제 앎을 드러내려 임금과 신하가 밀고 사양한 것이 이룬 바라 밝힌 것이다. 별의 수가 일곱인 것을 보고 이로 인해 별이 일곱 자리라 말하고 다시 스물한 해를 얻었으니, 별자리로 해의 수를 셈한 것이다. 이는 제나라 태복과 다를 것이 없다.

제 경공이 태복에게 물었다. 「그대의 도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답하였다. 「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안자가 가서 공을 뵈니 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태복에게 그대의 도는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물으니 땅을 움직일 수 있다 대답하였다. 땅을 참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안자가 잠자코 대답하지 않고 나와 태복을 보고 말하였다. 「지난번에 내가 구성이 방수와 심수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땅이 움직이겠는가?」 태복이 「그렇습니다」 하였다. 안자가 나가자 태복이 달려가 공을 뵈었다. 「신이 땅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 본디 장차 절로 움직일 것입니다.」 무릇 자위가 별이 옮긴다 말한 것은 태복이 땅이 움직인다 말한 것과 같다. 땅이 본디 절로 움직일 것인데 태복은 제가 움직일 수 있다 하였다. 별이 본디 절로 옮길 것인데 자위는 임금이 옮길 수 있다 하였다. 안자가 구성이 방수와 심수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태복의 간사한 대답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송나라에 안자 같은 아는 신하가 없었으므로 자위의 한마디가 마침내 옳은 것이 되었다.

살피건대 「자위서록서주」에도 자위가 「임금께서 세 착한 말을 내셨으니 형혹이 마땅히 움직임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살피니 과연 자리를 옮겼다」 하였다고만 하고 셋이라 말하지 않았다. 아마 별이 마땅히 절로 갈 것이었는데 자위가 증험이라 여겼고, 실로 움직여 자리를 떠난 것을 세상이 셋이라 보탰다. 이미 세 자리의 수를 헛되이 보태고 또 스물한 해의 수를 헛되이 지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