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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虛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9 · 한자 2,023자 · 낭독 8.1분

「논형」 복허편 「福虛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世論行善者福至,為惡者禍來。福禍之應,皆天也,人為之,天應之。陽恩,人君賞其行;陰惠,天地報其德。無貴賤賢愚,莫謂不然。徒見行事有其方傳,又見善人時遇福,故遂信之,謂之實然。斯言或時賢聖欲勸人為善,著必然之語,以明德報;或福時適遇者以為然。如實論之,安得福佑乎?

세상은 착함을 행하는 이는 복이 이르고 악을 하는 이는 화가 온다고 논한다. 복과 화의 응함은 다 하늘이니 사람이 하면 하늘이 응한다는 것이다. 드러난 은혜는 임금이 그 행실을 상 주고 숨은 은혜는 하늘과 땅이 그 덕을 갚는다. 귀하고 천하고 어질고 어리석음을 가리지 않고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한갓 일을 행함에 그 방책이 전하는 것을 보고 또 착한 사람이 때로 복을 만나는 것을 보므로 마침내 믿어 실로 그렇다 한다. 이 말은 아마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사람에게 착함을 권하려고 반드시 그렇다는 말을 지어 덕의 갚음을 밝힌 것이거나, 복이 때마침 만난 이가 그렇다 여긴 것이다. 실상대로 논하면 어찌 복과 도움을 얻겠는가.

禁惠王食寒而得蛭,因遂吞之,腹有疾而不能食。令尹問:「王安得此疾也?」王曰:「我食寒而得蛭,念譴之而不行其罪乎?是廢法而威不立也,非所以使國人聞之也;譴而行誅乎?則庖廚監食者法皆當死,心又不忍也。吾恐左右見之也,因遂吞之。」令尹避席再拜而賀曰:「臣聞天道無親,唯德是輔。王有仁德,天之所奉也,病不為傷。」是夕也,惠王之後而蛭出,及久患心腹之積皆愈。故天之親德也,可謂不察乎!曰:此虛言也。案惠王之吞蛭,不肖之主也。有不肖之行,天不佑也。何則?惠王不忍譴蛭,恐庖廚監食法皆誅也。一國之君,專擅賞罰;而赦,人君所為也。惠王通譴中何故有蛭,庖廚監食皆當伏法。然能終不以飲食行誅於人,赦而不罪,惠莫大焉。庖廚罪覺而不誅,自新而改後。惠王赦細而活微,身安不病。今則不然,強食害己之物,使監食之臣不聞其過,失御下之威,無御非之心,不肖一也。使庖廚監食失甘苦之和,若塵土落於中,大如虮虱,非意所能覽,非目所能見,原心定罪,不明其過,可謂惠矣。今蛭廣有分數,長有寸度,在寒中,眇目之人猶將見之,臣不畏敬,擇濯不謹,罪過至重。惠王不譴,不肖二也。中不當有蛭,不食投地;如恐左右之見,懷屏隱匿之處,足以使蛭不見,何必食之?如不可食之物,誤在中,可復隱匿而強食之,不肖三也。有不肖之行,而天佑之,是天報佑不肖人也。不忍譴蛭,世謂之賢。賢者操行,多若吞蛭之類。吞蛭天除其病,是則賢者常無病也。賢者德薄,未足以言。聖人純道,操行少非,為推不忍之行,以容人之過。必眾多矣。然而武王不豫,孔子疾病,天之佑人,何不實也?或時惠王吞蛭,蛭偶自出。食生物者無有不死,腹中熱也。初吞(蛭)時〔蛭〕未死,而腹中熱,蛭動作,故腹中痛。須臾蛭死,腹中痛亦止。蛭之性食血,惠王心腹之積,殆積血也。故食血之蟲死,而積血之病愈。猶狸之性食鼠,人有鼠病,吞狸自愈。物類相勝,方葯相使也。食蛭蟲而病愈,安得怪乎?食生物無不死,死無不出,之後蛭出,安得佑乎?令尹見惠王有不忍之德,知蛭入腹中必當死出,(臣)因再拜賀病不為傷。

초 혜왕이 찬 음식을 먹다가 거머리를 얻어 그대로 삼키니 배에 병이 나서 먹지 못하였다. 영윤이 물었다. 「왕께서 어찌하여 이 병을 얻으셨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찬 음식을 먹다가 거머리를 얻었는데, 꾸짖고 그 죄를 행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이는 법을 폐하여 위엄이 서지 않는 것이라 나라 사람이 듣게 할 바가 아니요, 꾸짖어 죽일까 하니 부엌과 음식 맡은 이가 법으로 다 죽어야 하니 마음에 또 차마 못 하겠소. 내가 곁의 사람이 볼까 두려워 그대로 삼켰소.」 영윤이 자리를 피해 두 번 절하고 하례하여 말하였다. 「신이 들으니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어 오직 덕을 돕는다 합니다. 왕께 어진 덕이 있으니 하늘이 받드는 바라 병이 상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날 저녁에 혜왕이 뒤를 보매 거머리가 나오고 오래 앓던 심장과 배의 적취가 다 나았다. 그러므로 하늘이 덕을 친히 함을 살피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답한다. 이는 헛말이다. 살피건대 혜왕이 거머리를 삼킨 것은 어질지 못한 임금이다. 어질지 못한 행실이 있으면 하늘이 돕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혜왕이 거머리를 꾸짖지 못한 것은 부엌과 음식 맡은 이가 법으로 다 죽을까 두려워서다. 한 나라의 임금은 상과 벌을 마음대로 하니 사면은 임금이 하는 것이다. 혜왕이 통렬히 꾸짖어 음식 가운데 무슨 까닭으로 거머리가 있느냐 하면 부엌과 음식 맡은 이가 다 법에 엎드려야 하나, 끝내 음식으로 남에게 벌을 행하지 않고 사면하여 죄주지 않을 수 있었다면 은혜가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부엌 사람이 죄가 드러나도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스스로 새로워져 뒤를 고칠 것이다. 혜왕이 작은 것을 사면하고 미미한 것을 살리면 몸이 편안하여 병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그렇지 않아 제 몸을 해칠 물건을 억지로 먹어 음식 맡은 신하가 그 허물을 듣지 못하게 하였으니,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위엄을 잃고 그름을 다스리는 마음이 없으니 어질지 못함의 하나다. 부엌과 음식 맡은 이가 달고 쓴 조화를 잃거나 먼지가 음식 가운데 떨어진 것이 서캐와 이만 하다면 뜻으로 살필 수 있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음을 캐어 죄를 정하되 그 허물을 밝히지 않으면 은혜라 할 만하다. 이제 거머리는 너비가 몇 푼이요 길이가 몇 치라 찬 음식 가운데 있으면 애꾸눈 사람도 볼 것이니, 신하가 두려워 공경하지 않고 가리고 씻기를 삼가지 않은 죄와 허물이 지극히 무겁다. 혜왕이 꾸짖지 않았으니 어질지 못함의 둘이다. 음식 가운데 거머리가 있어서는 안 되니 먹지 않고 땅에 던졌어야 한다. 곁의 사람이 볼까 두려웠다면 품어 가려 숨길 곳이 거머리를 보이지 않게 하기에 넉넉한데 어찌 반드시 먹었는가. 먹을 수 없는 물건이 잘못 음식 가운데 있었는데 다시 가려 숨길 수 있는 것을 억지로 먹었으니 어질지 못함의 셋이다. 어질지 못한 행실이 있는데 하늘이 도왔다면 이는 하늘이 어질지 못한 사람을 갚아 도운 것이다.

거머리를 차마 꾸짖지 못한 것을 세상은 어질다 한다. 어진 이의 몸가짐은 흔히 거머리를 삼킨 무리와 같다. 거머리를 삼키니 하늘이 그 병을 없앴다면 곧 어진 이는 늘 병이 없어야 한다. 어진 이는 덕이 엷어 말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성인은 순수한 도로 몸가짐에 그름이 적고 차마 못하는 행실을 미루어 남의 허물을 용납한 것이 반드시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무왕이 병들고 공자가 병들었으니 하늘이 사람을 도움이 어찌 실답지 못한가. 아마 혜왕이 거머리를 삼키니 거머리가 우연히 절로 나온 것이다. 산 것을 먹은 이는 죽지 않는 것이 없으니 배 속이 덥기 때문이다. 처음 삼킬 때 거머리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배 속이 더우니 거머리가 움직였으므로 배 속이 아팠다. 잠깐 사이에 거머리가 죽으니 배 속의 아픔도 그쳤다. 거머리의 성품은 피를 먹는데 혜왕의 심장과 배의 적취는 아마 쌓인 피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를 먹는 벌레가 죽으매 쌓인 피의 병이 나았다. 살쾡이의 성품이 쥐를 먹으므로 사람에게 쥐병이 있으면 살쾡이를 삼켜 절로 낫는 것과 같다. 물건의 무리가 서로 이기고 처방과 약이 서로 부리는 것이다. 거머리 벌레를 먹고 병이 나았으니 어찌 괴이할 것이 있겠는가. 산 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 것이 없고 죽으면 나오지 않는 것이 없으니 뒤를 본 뒤에 거머리가 나온 것이 어찌 도움이겠는가. 영윤이 혜왕에게 차마 못하는 덕이 있음을 보고 거머리가 배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어 나올 줄 알았으므로 두 번 절하고 병이 상함이 되지 않으리라 하례한 것이다.

著已知來之德,以喜惠王這心,是與子韋之言星徙、大卜之言地動無以異也。

제가 이미 앞일을 아는 덕을 드러내어 혜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으니, 이는 자위가 별이 옮긴다 말하고 태복이 땅이 움직인다 말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宋人有好善行者,三世不解家無故黑牛生白犢。以問孔子,孔子曰:「此吉祥也,以享鬼神。」即以犢祭。一年,其父無故而盲。牛又生白犢。其父又使其子問孔子,孔子曰:「吉祥也,以享鬼神。」復以犢祭。一年,其子無故而盲。其後楚攻宋,圍其城。當此之時,易子而食之,骸而炊之。此獨以父子俱盲之故,得毋乘城。軍罷圍解,父子俱視。此修善積行神報之效也。曰:此虛言也。夫宋人父子修善如此,神報之,何必使之先盲後視哉?不盲常視,不能護乎?此神不能護不盲之人,則亦不能以盲護人矣。使宋、楚之君,合戰頓兵,流血僵尸,戰夫禽獲,死亡不還。以盲之故,得脫不行,可謂神報之矣。今宋、楚相攻,兩軍未合,華元、子反結言而退,二軍之眾,并全而歸,兵矢之刃無頓用者。雖有乘城之役,無死亡之患。為善人報者為乘城之間乎?使時不盲,亦猶不死。盲與不盲,俱得脫免,神使之盲,何益於善!當宋國乏糧之時也,盲人之家,豈獨富哉?俱與乘城之家易子骸,反以窮厄獨盲無見,則神報佑人,失善惡之實也。宋人父子前偶自以風寒發盲,圍解之後,盲偶自愈。世見父子修善,又用二白犢祭,宋、楚相攻獨不乘城,圍解之後父子皆視,則謂修善之報、獲鬼神之佑矣。

송나라 사람 가운데 착한 행실을 좋아하는 이가 있어 삼대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집에 까닭 없이 검은 소가 흰 송아지를 낳았다.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가 「이는 길한 상서니 귀신에게 바치라」 하여 곧 송아지로 제사하였다. 한 해 만에 그 아비가 까닭 없이 눈이 멀었다. 소가 또 흰 송아지를 낳았다. 그 아비가 또 그 아들을 시켜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가 「길한 상서니 귀신에게 바치라」 하여 다시 송아지로 제사하였다. 한 해 만에 그 아들이 까닭 없이 눈이 멀었다. 그 뒤에 초나라가 송나라를 쳐 그 성을 에워쌌다. 이때에 자식을 바꾸어 먹고 뼈를 쪼개 불 땠다. 이들만 아비와 아들이 다 눈이 먼 까닭으로 성에 오르지 않을 수 있었다. 군사가 물러가고 에워쌈이 풀리자 아비와 아들이 다 보게 되었다. 이는 착함을 닦고 행실을 쌓아 신이 갚은 보람이라는 것이다.

답한다. 이는 헛말이다. 무릇 송나라 사람 아비와 아들이 착함을 닦기를 이같이 하였다면 신이 갚음에 어찌 반드시 먼저 눈이 멀게 하고 뒤에 보게 하였겠는가. 눈이 멀지 않고 늘 보아도 지켜 줄 수 없었는가. 이 신이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을 지켜 줄 수 없다면 또한 눈멀게 하여 사람을 지켜 줄 수도 없다. 송나라와 초나라 임금이 싸움을 벌여 군사를 꺾고 피 흘려 주검이 뻣뻣하고 싸우는 이가 사로잡히고 죽어 돌아오지 못하였는데 눈이 먼 까닭으로 벗어나 가지 않을 수 있었다면 신이 갚았다 할 만하다. 이제 송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치는데 두 군사가 아직 붙지 않아 화원과 자반이 말을 맺고 물러나 두 군사의 무리가 다 온전히 돌아가고 병장기와 화살의 날을 쓴 이가 없었다. 비록 성에 오르는 부역은 있었으나 죽는 근심은 없었다. 착한 사람을 위해 갚은 것이 성에 오르는 사이뿐이었겠는가. 그때 눈이 멀지 않았어도 또한 죽지 않았을 것이다. 눈이 멀고 멀지 않음에 다 벗어나 면할 수 있었는데 신이 눈멀게 하였으니 착함에 무슨 보탬이 있는가. 송나라가 양식이 모자랄 때 눈먼 사람의 집만 어찌 홀로 넉넉하였겠는가. 다 성에 오른 집과 함께 자식을 바꾸고 뼈를 쪼갰는데 도리어 궁하고 곤액한 데다 홀로 눈이 멀어 보지 못하였으니, 신이 사람을 갚아 도움이 착하고 악함의 실상을 잃은 것이다. 송나라 사람 아비와 아들은 앞서 우연히 절로 풍한으로 눈이 멀었고 에워쌈이 풀린 뒤에 눈먼 것이 우연히 절로 나았다. 세상이 아비와 아들이 착함을 닦고 또 두 흰 송아지로 제사하며 송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칠 때 홀로 성에 오르지 않고 에워쌈이 풀린 뒤에 아비와 아들이 다 보게 된 것을 보고 착함을 닦은 갚음이요 귀신의 도움을 얻은 것이라 한 것이다.

楚相孫叔敖為兒之時,見兩頭蛇,殺而埋之,歸對其母泣。母問其故,對曰:「我聞見兩頭蛇死。向者出,見兩頭蛇,恐去母死,是以泣也。」其母日:「今蛇何在?「對日:「我恐後人見之,即殺而埋之。」

초나라 재상 손숙오가 아이였을 때 머리 둘 달린 뱀을 보고 죽여 묻고 돌아와 그 어미를 마주하고 울었다. 어미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제가 들으니 머리 둘 달린 뱀을 보면 죽는다 합니다. 아까 나갔다가 머리 둘 달린 뱀을 보았으니 어머니를 떠나 죽을까 두려워 우는 것입니다.」 그 어미가 말하였다. 「이제 뱀이 어디 있느냐?」 대답하였다. 「저는 뒷사람이 볼까 두려워 곧 죽여 묻었습니다.」

其母日:「吾聞有陰德者,天必報之。汝必不死,天必報汝。」叔敖竟不死,遂為楚相。埋一蛇,獲二佑,天報善明矣。曰:此虛言矣。夫見兩頭蛇輒死者,俗言也;有陰德天報之福者,俗議也。叔敖信俗言而埋蛇,其母信俗議而必報,是謂死生無命,在一蛇之死。齊孟嘗君田文以五月五日生,其父田嬰讓其母曰:「何故舉之?」曰:「君所以不舉五月子,何也?」嬰曰:「五月子長與戶同,殺其父母。」曰:「人命在天乎?在戶乎?如在天,君何憂也;如在戶,則宜高其戶耳,誰而及之者!」後文長與一戶同,而嬰不死。是則五月舉子之忌,無效驗也。夫惡見兩頭蛇,猶五月舉子也。五月舉子,其父不死,則知見兩頭蛇者,無殃禍也。由此言之,見兩頭蛇自不死,非埋之故也。埋一蛇,獲二福,如埋十蛇,得几佑乎?埋蛇惡人復見,叔敖賢也。賢者之行,豈徒埋蛇一事哉?前埋蛇之時,多所行矣。稟天善性,動有賢行。賢行之人,宜見吉物,無為乃見殺人之蛇。豈叔敖未見蛇之時有惡,天欲殺之,見其埋蛇,除其過,天活之哉?石生而堅,蘭生而香。如謂叔敖之賢在埋蛇之時,非生而稟之也。

그 어미가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숨은 덕이 있는 이는 하늘이 반드시 갚는다 한다. 너는 반드시 죽지 않고 하늘이 반드시 너를 갚을 것이다.」 숙오가 끝내 죽지 않고 마침내 초나라 재상이 되었다. 뱀 하나를 묻고 두 도움을 얻었으니 하늘이 착함을 갚음이 밝다는 것이다.

답한다. 이는 헛말이다. 무릇 머리 둘 달린 뱀을 보면 곧 죽는다는 것은 세속의 말이요, 숨은 덕이 있으면 하늘이 복으로 갚는다는 것은 세속의 의논이다. 숙오가 세속의 말을 믿어 뱀을 묻고 그 어미가 세속의 의논을 믿어 반드시 갚으리라 하였으니, 이는 죽고 삶에 명이 없고 뱀 한 마리의 죽음에 달렸다는 것이다. 제나라 맹상군 전문이 오월 오일에 나니 그 아비 전영이 그 어미를 꾸짖었다. 「무슨 까닭으로 길렀느냐?」 「임금께서 오월의 아이를 기르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영이 말하였다. 「오월의 아이는 자라 문과 같아지면 그 어버이를 죽인다.」 「사람의 명이 하늘에 있습니까, 문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다면 임금께서 무엇을 근심하시며, 문에 있다면 마땅히 그 문을 높이면 될 뿐이니 누가 미치겠습니까!」 뒤에 전문이 자라 키가 지게문만큼 되었으나 전영은 죽지 않았다. 이는 오월에 아이를 기르는 꺼림이 증험이 없다는 것이다. 무릇 머리 둘 달린 뱀을 보기를 꺼리는 것은 오월에 아이를 기르는 것과 같다. 오월에 아이를 길러도 그 아비가 죽지 않으니 머리 둘 달린 뱀을 본 이에게 재앙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말하면 머리 둘 달린 뱀을 보아도 절로 죽지 않으니 묻은 까닭이 아니다. 뱀 하나를 묻고 두 복을 얻었다면 열 뱀을 묻으면 몇 도움을 얻겠는가. 뱀을 묻어 남이 다시 보는 것을 싫어하였으니 숙오는 어진 이다. 어진 이의 행실이 어찌 한갓 뱀을 묻은 한 가지 일뿐이겠는가. 앞서 뱀을 묻을 때 행한 바가 많았을 것이다. 하늘의 착한 성품을 받아 움직이면 어진 행실이 있다. 어진 행실의 사람은 마땅히 길한 물건을 보아야지 사람을 죽이는 뱀을 볼 까닭이 없다. 어찌 숙오가 뱀을 보기 전에 악이 있어 하늘이 죽이려 하다가 그가 뱀을 묻은 것을 보고 그 허물을 없애어 하늘이 살렸겠는가. 돌은 나면서 단단하고 난초는 나면서 향기롭다. 숙오의 어짊이 뱀을 묻을 때에 있다 한다면 나면서 받은 것이 아니게 된다.

儒家之徒董無心,墨家之役纏子,相見講道。纏子稱墨家佑鬼神,是引秦穆公有明德,上帝賜之(九十)〔十九〕年,(纏)〔董〕子難以堯、舜不賜年,桀、紂不夭死。

유가의 무리 동무심과 묵가의 부림꾼 전자가 서로 만나 도를 강론하였다. 전자가 묵가는 귀신을 돕는다 일컬으며 진 목공에게 밝은 덕이 있어 상제가 열아홉 해를 주었다는 것을 끌어오니, 동자가 요와 순은 해를 받지 않고 걸과 주는 일찍 죽지 않았다는 것으로 따졌다.

堯、舜、桀、紂猶為尚遠,且近難以秦穆公、晉文公。夫謚者行之跡也,跡生時行以為死謚。穆者誤亂之名,文者德惠之表。有誤亂之行,天賜之年;有德惠之操,天奪其命乎?案穆公之霸不過晉文,晉文之謚美於穆公。天不加晉文以命,獨賜穆公以年,是天報誤亂,與「穆公」同也。

요·순·걸·주는 오히려 멀다 하겠으니 가까이 진(秦) 목공과 진(晉) 문공으로 따지겠다. 무릇 시호는 행실의 자취니 살았을 때의 행실을 자취로 삼아 죽은 뒤 시호로 한다. 목(穆)은 그릇되고 어지러운 이름이요 문(文)은 덕과 은혜의 표다. 그릇되고 어지러운 행실이 있는데 하늘이 해를 주고, 덕과 은혜의 몸가짐이 있는데 하늘이 그 명을 빼앗겠는가. 살피건대 목공의 패업은 진(晉) 문공을 넘지 못하고 진(晉) 문공의 시호는 목공보다 아름답다. 하늘이 진 문공에게는 명을 더하지 않고 홀로 목공에게 해를 주었다면 이는 하늘이 그릇되고 어지러움을 갚은 것이니 「목공」이란 시호와 같다.

天下善人寡,惡人眾。善人順道,惡人違天。然夫惡人之命不短,善人之年不長。天不命善人常享一百載之壽,惡人為殤子惡死,何哉?

천하에 착한 사람은 적고 악한 사람은 많다. 착한 사람은 도를 따르고 악한 사람은 하늘을 어긴다. 그런데 악한 사람의 명이 짧지 않고 착한 사람의 해가 길지 않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늘 백 해의 수를 누리게 하고 악한 사람에게 어려서 죽거나 나쁘게 죽게 명하지 않으니 어째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