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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虛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2 · 한자 2,185자 · 낭독 8.7분

「논형」 용허편 「龍虛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盛夏之時,雷電擊折(破)樹木,發壞室屋,俗謂天取龍,謂龍藏於樹木之中,匿於屋室之間也。雷電擊折樹木,發壞屋室,則龍見於外。龍見,雷取以升天。世無愚智賢不肖,皆謂之然。如考實之,虛妄言也。

한여름에 우레와 번개가 나무를 쳐서 꺾고 집을 부수면 세속은 하늘이 용을 취한다 하니, 용이 나무 가운데 숨고 집 사이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레와 번개가 나무를 쳐서 꺾고 집을 부수면 용이 밖에 나타나고, 용이 나타나면 우레가 취하여 하늘에 오른다 한다. 세상에 어리석고 슬기롭고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가리지 않고 다 그렇다 한다. 실상을 살피면 헛되고 망령된 말이다.

夫天之取龍何意邪?如以龍神為天使,猶賢臣為君使也,反報有時,無為取也。如以龍遁逃不還,非神之行,天亦無用為也。如龍之性當在天,在天上者固當生子,無為復在地。如龍有升降,降龍生子於地,子長大,天取之,則世名雷電為天怒,取龍之子,無為怒也。且龍之所居,常在水澤之中,不在木中屋間。何以知之?叔向之母曰:「深山大澤,實生龍蛇。」傳曰:「山致其高,雲雨起焉。水致其深,蛟龍生焉。」傳又言:「禹渡於江,黃龍負船。荊次非渡淮,兩龍繞舟。

무릇 하늘이 용을 취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용의 신을 하늘의 사자로 삼는다면 어진 신하가 임금의 사자가 되는 것과 같아 돌아와 보고할 때가 있으니 취할 까닭이 없다. 용이 달아나 돌아오지 않는다면 신의 행실이 아니니 하늘이 또한 쓸 데가 없다. 용의 성품이 마땅히 하늘에 있어야 한다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본디 새끼를 낳을 것이니 다시 땅에 있을 까닭이 없다. 용에 오르고 내림이 있어 내린 용이 땅에서 새끼를 낳고 새끼가 자라 하늘이 취한다면, 세상이 우레와 번개를 하늘의 노여움이라 이름하는데 용의 새끼를 취하는 데 노할 까닭이 없다. 또 용이 사는 데는 늘 물과 못 가운데 있지 나무 속이나 집 사이에 있지 않다. 어떻게 아는가. 숙향의 어미가 「깊은 산과 큰 못은 실로 용과 뱀을 낳는다」 하였다. 전에 이르기를 「산이 그 높음을 다하면 구름과 비가 일어나고 물이 그 깊음을 다하면 교룡이 난다」 하였다. 전에 또 이르기를 「우가 강을 건너는데 누런 용이 배를 짊어졌다. 형나라 차비가 회수를 건너는데 두 용이 배를 감았다.

東海之上有丘欣,勇而有力,出過神淵,使御者飲馬,馬飲因沒。欣怒,拔劍入淵追馬,見兩蛟方食其馬,手劍擊殺兩蛟。」由是言之,蛟與龍常在淵水之中,不在木中屋間明矣。在淵水之中,則魚鱉之類。魚鱉之類,何為上天?天之取龍,何用為哉?如以天神乘龍而行,神恍惚無形,出入無間,無為乘龍也。如仙人騎龍,天為仙者取龍,則仙人含天精氣,形輕飛騰,若鴻鵠之狀,無為騎龍也。世稱黃帝騎龍升天,此言蓋虛,猶今謂天取龍也。

동해 가에 구흔이 있어 용맹하고 힘이 있었는데 나가서 신령한 못을 지나다가 마부에게 말에게 물을 먹이게 하니 말이 물을 마시다가 빠졌다. 흔이 노하여 칼을 뽑고 못에 들어가 말을 뒤쫓다가 두 교룡이 바야흐로 그 말을 먹는 것을 보고 손수 칼로 두 교룡을 쳐 죽였다」 하였다. 이로써 말하면 교룡과 용은 늘 못물 가운데 있지 나무 속이나 집 사이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못물 가운데 있으면 물고기와 자라의 무리다. 물고기와 자라의 무리가 무엇 때문에 하늘에 오르는가. 하늘이 용을 취하여 무엇에 쓰는가. 하늘의 신이 용을 타고 다닌다면 신은 황홀하여 꼴이 없고 드나듦에 틈이 없으니 용을 탈 까닭이 없다. 신선이 용을 탄다 하여 하늘이 신선을 위해 용을 취한다면, 신선은 하늘의 정기를 머금어 몸이 가벼워 날아오르기가 기러기와 고니 같으니 용을 탈 까닭이 없다. 세상은 황제가 용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 일컫는데 이 말은 헛되니 이제 하늘이 용을 취한다 하는 것과 같다.

且世謂龍升天者,必謂神龍。不神,不升天;升天,神之效也。天地之性人為貴,則龍賤矣。貴者不神,賤者反神乎?如龍之性有神與不神,神者升天,不神者不能。龜蛇亦有神與不神,神龜神蛇復升天乎?且龍稟何氣而獨神?天有倉龍、白虎、朱鳥、玄武之象也,地亦有龍虎鳥龜之物。四星之精,降生四獸。虎鳥與龜不神,龍何故獨神也?人為裸蟲之長,龍為鱗蟲之長。俱為物長,謂龍升天,人復升天乎?龍與人同,獨謂能升天者,謂龍神也。世或謂聖人神而先知,猶謂神龍能升天也。因謂聖人先知之明,論龍之才,謂龍升天,故其宜也。

또 세상이 용이 하늘에 오른다 하는 것은 반드시 신령한 용을 이른다. 신령하지 않으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하늘에 오름은 신령함의 보람이라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성품에 사람이 귀하니 용은 천하다. 귀한 것은 신령하지 않고 천한 것이 도리어 신령한가. 용의 성품에 신령함과 신령하지 않음이 있어 신령한 것은 하늘에 오르고 신령하지 않은 것은 못 한다면, 거북과 뱀에도 신령함과 신령하지 않음이 있으니 신령한 거북과 신령한 뱀도 하늘에 오르는가. 또 용은 무슨 기운을 받아 홀로 신령한가. 하늘에 창룡·백호·주조·현무의 상이 있고 땅에도 용·범·새·거북의 물건이 있다. 네 별의 정기가 내려와 네 짐승으로 난다. 범과 새와 거북은 신령하지 않은데 용은 무슨 까닭으로 홀로 신령한가. 사람은 털 없는 벌레의 으뜸이요 용은 비늘 있는 벌레의 으뜸이다. 다 물건의 으뜸인데 용이 하늘에 오른다 하면 사람도 하늘에 오르는가. 용이 사람과 같은데 홀로 하늘에 오를 수 있다 함은 용이 신령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더러 성인이 신령하여 앞서 안다 하니 신령한 용이 하늘에 오를 수 있다 하는 것과 같다. 이로 인해 성인의 앞서 아는 밝음으로 용의 재주를 논하여 용이 하늘에 오른다 하니 그러므로 마땅하다 하는 것이다.

天地之間,恍惚無形,寒暑風雨之氣乃為神。今龍有形,有形則行,行則食,食則物之性也。天地之性,有形體之類,能行食之物,不得為神。何以言之?龍有體也。傳言鱗蟲三百,龍為之長。龍為鱗蟲之長,安得無體?何以言之?孔子曰:「龍食於清,游於清。龜食於清,游於濁。魚食於濁,游於清。丘上不及龍,下不為魚,中止其龜與!」

하늘과 땅 사이에 황홀하여 꼴이 없는 춥고 덥고 바람 불고 비 오는 기운이 곧 신이다. 이제 용은 꼴이 있으니 꼴이 있으면 다니고 다니면 먹고 먹으면 물건의 성품이다. 하늘과 땅의 성품에 몸이 있는 무리와 다니고 먹을 수 있는 물건은 신이 될 수 없다. 어찌 그리 말하는가. 용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전하는 말에 비늘 있는 벌레 삼백 가운데 용이 으뜸이라 한다. 용이 비늘 있는 벌레의 으뜸인데 어찌 몸이 없겠는가. 어찌 그리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은 맑은 데서 먹고 맑은 데서 논다. 거북은 맑은 데서 먹고 흐린 데서 논다. 물고기는 흐린 데서 먹고 맑은 데서 논다. 구는 위로 용에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 물고기가 되지 않으니 중간에 머무는 거북인가!」

《山海經》言四海之外,有乘龍蛇之人。世俗畫龍之象,馬首蛇尾。由此言之,馬蛇之類也。慎子曰:「蜚龍乘雲,騰蛇游霧,雲罷雨霽,與蚓蟻同矣。」韓子曰:「龍之為蟲也,鳴可狎而騎也。然喉下有逆鱗尺餘,人或嬰之,必殺人矣。」比之為蚓蟻,又言蟲可狎而騎,蛇馬之類明矣。傳曰:「紂作象箸而箕子泣。」泣之者,痛其極也。夫有象箸,必有玉杯。玉杯所盈,象箸所挾,則必龍肝豹胎。夫龍肝可食,其龍難得。難得則愁下,愁下則禍生,故從而痛之。

「산해경」에 사해 밖에 용과 뱀을 타는 사람이 있다 하였다. 세속이 용의 상을 그리는데 말의 머리에 뱀의 꼬리다. 이로써 말하면 말과 뱀의 무리다. 신자가 말하였다.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오르는 뱀은 안개에서 노는데, 구름이 그치고 비가 개면 지렁이와 개미와 같다.」 한자가 말하였다. 「용이란 벌레는 길들여 탈 수 있다. 그러나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이 한 자 남짓 있어 사람이 더러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지렁이와 개미에 견주고 또 벌레라 길들여 탈 수 있다 하니 뱀과 말의 무리임이 분명하다. 전에 이르기를 「주(紂)가 상아 젓가락을 만드니 기자가 울었다」 하였다. 운 것은 그 끝을 아파한 것이다. 무릇 상아 젓가락이 있으면 반드시 옥잔이 있다. 옥잔에 담고 상아 젓가락으로 집는 것은 반드시 용의 간과 표범의 태다. 무릇 용의 간을 먹을 수 있으나 그 용은 얻기 어렵다. 얻기 어려우면 아랫사람이 근심하고 아랫사람이 근심하면 화가 생기므로 이로 인해 아파한 것이다.

如龍神,其身不可得殺,其肝何可得食?禽獸肝胎非一,稱龍肝豹胎者,人得食而知其味美也。春秋之時,龍見於絳郊。魏獻子問於蔡墨曰:「吾聞之,蟲莫智於龍,以其不生得也。謂之智,信乎?」對曰:「人實不知,非龍實智。古者畜龍,故國有豢龍氏,有御龍氏。」

용이 신령하다면 그 몸을 죽일 수 없을 터인데 그 간을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새와 짐승의 간과 태가 하나가 아닌데 용의 간과 표범의 태를 일컫는 것은 사람이 먹어 보아 그 맛이 좋은 줄 알기 때문이다. 춘추 때에 용이 강의 교외에 나타났다. 위 헌자가 채묵에게 물었다. 「내가 들으니 벌레 가운데 용보다 슬기로운 것이 없으니 산 채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슬기롭다 하는 것이 참인가?」 대답하였다. 「사람이 실로 모르는 것이지 용이 실로 슬기로운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용을 길렀으므로 나라에 환룡씨가 있고 어룡씨가 있었습니다.」

獻子曰:「是二者吾亦聞之,而不知其故。是何謂也?」對曰:「昔有叔(宋)〔安〕有裔子曰董父,實甚好龍,能求其嗜欲以飲食之,龍多歸之。乃擾畜龍,以服事舜,而錫之姓日董,氏日豢龍,封諸川,夷氏是其後也。故帝舜氏世有畜龍。及有夏,孔甲擾於帝,帝賜之乘龍,河、漢各二,各有雌雄,孔甲不能食也,而未獲豢龍氏。有陶唐氏既衰,其後有劉累學擾龍於豢龍氏,以事孔甲,能飲食龍。夏后嘉之,賜氏曰御龍,以更豕韋之後。龍一雌死,潛醢以食夏后,夏后(烹)〔享〕之。既而使求,懼而不得,遷於魯縣,范氏其後也。」獻子曰:「今何故無之?」對曰:「夫物有其官,官修其方,朝夕思之。一日失職,則死及之,失官不食。官宿其業,其物乃至。若泯棄之,物乃低伏,郁湮不育。」由此言之,龍可畜又可食也。可食之物,不能神矣。世無其官,又無董父、後劉之人,故潛藏伏匿,出見希疏;出又乘雲,與人殊路,人謂之神。如存其官而有其人,則龍,牛之類也,何神之有?以《山海經》言之,以慎子、韓子証之,以俗世之畫驗之,以箕子之泣訂之,以蔡墨之對論之,知龍不能神,不能升天,天不以雷電取龍,明矣。世俗言龍神而升天者,妄矣。

헌자가 말하였다. 「이 둘은 나도 들었으나 그 까닭은 모른다. 이는 무슨 말인가?」 대답하였다. 「옛적에 요숙안에게 후손이 있어 동보라 하였는데 실로 용을 매우 좋아하여 그 즐기는 바를 구해 먹이니 용이 많이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이에 용을 길들여 길러 순을 섬기니 성을 동이라 내리고 씨를 환룡이라 하며 종천에 봉하였으니 종이씨가 그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순 임금 때에 대대로 용을 기르는 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라에 이르러 공갑이 상제에게 순종하니 상제가 탈 용을 내려 하수와 한수에 각각 둘로 저마다 암수가 있었는데 공갑이 먹일 수 없었고 환룡씨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도당씨가 이미 쇠하였는데 그 후손에 유루가 있어 환룡씨에게 용 길들이기를 배워 공갑을 섬겨 용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하후가 가상히 여겨 씨를 어룡이라 내리고 시위의 뒤를 잇게 하였습니다. 용 한 마리 암컷이 죽자 몰래 젓을 담가 하후에게 먹이니 하후가 그것을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시 구하게 하니 두려워 얻지 못하여 노현으로 옮겼으니 범씨가 그 후손입니다.」 헌자가 말하였다. 「이제 무슨 까닭으로 없는가?」 대답하였다. 「무릇 물건에는 그 벼슬이 있어 벼슬이 그 방법을 닦아 아침저녁으로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직분을 잃으면 죽음이 미치니 벼슬을 잃으면 먹지 못합니다. 벼슬이 그 업에 머물면 그 물건이 이에 이릅니다. 그것을 없애 버리면 물건이 이에 숨어 엎드려 막히고 자라지 못합니다.」

이로써 말하면 용은 기를 수 있고 또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물건은 신령할 수 없다. 세상에 그 벼슬이 없고 또 동보와 뒤의 유루 같은 사람이 없으므로 숨어 엎드려 나타남이 드물고, 나오면 또 구름을 타서 사람과 길이 다르므로 사람이 신령하다 한다. 그 벼슬을 두고 그 사람이 있으면 용은 소의 무리니 무슨 신령함이 있겠는가. 「산해경」으로 말하고 신자와 한자로 증명하고 세속의 그림으로 증험하고 기자의 울음으로 바로잡고 채묵의 대답으로 논하면, 용이 신령할 수 없고 하늘에 오를 수 없으며 하늘이 우레와 번개로 용을 취하지 않음이 분명함을 안다. 세속이 용이 신령하여 하늘에 오른다 하는 것은 망령되다.

世俗之言,亦有緣也。短書言龍無尺木,無以升天。又曰升天,又言尺木,謂龍從木中升天也。

세속의 말도 말미암은 것이 있다. 짧은 글에 용은 한 자 나무가 없으면 하늘에 오를 수 없다 하였다. 또 하늘에 오른다 하고 또 한 자 나무를 말하니 용이 나무 속에서 하늘에 오른다는 것이다.

彼短書之家,世俗之人也。見雷電發時,龍隨而起,當雷電〔擊〕樹木(擊)之時,龍適與雷電俱在樹木之側,雷電去,龍隨而上,故謂從樹木之中升天也。實者雷龍同類,感氣相致,故《易》曰:「雲從龍,風從虎。」又言:「虎嘯谷風至,龍興景雲起。」龍與雲相招,虎與風相致,故董仲舒雩祭之法,設土龍以為感也。夫盛夏太陽用事,雲雨干之。太陽火也,雲雨水也,〔水〕火激薄則鳴而為雷。龍聞雷聲則起,起而雲至,雲至而龍乘之。雲雨感龍,龍亦起雲而升天。天極(雷)〔雲〕高,雲消復降。人見其乘雲則謂「升天」,見天為雷電則為「天取龍」。世儒讀《易》文,見傳言,皆知龍者雲之類。拘俗人之議,不能通其說;又見短書為証,故遂謂「天取龍」。

저 짧은 글을 짓는 이는 세속의 사람이다. 우레와 번개가 일어날 때 용이 따라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우레와 번개가 나무를 칠 때 용이 마침 우레와 번개와 함께 나무 곁에 있다가 우레와 번개가 가면 용이 따라 오르므로 나무 속에서 하늘에 오른다 한 것이다. 실상은 우레와 용이 같은 무리라 기운에 느껴 서로 이르게 하니, 그러므로 「역」에 이르기를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범이 울면 골바람이 이르고 용이 일어나면 빛나는 구름이 일어난다」 하였다. 용과 구름이 서로 부르고 범과 바람이 서로 이르게 하므로 동중서의 기우제 법에 흙 용을 두어 감동시키려 한 것이다. 무릇 한여름에 태양이 일을 맡는데 구름과 비가 그것을 범한다. 태양은 불이요 구름과 비는 물이니 물과 불이 부딪쳐 밀치면 울려 우레가 된다. 용이 우렛소리를 들으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구름이 이르고 구름이 이르면 용이 그것을 탄다. 구름과 비가 용을 감동시키고 용도 구름을 일으켜 하늘에 오른다. 하늘은 지극히 높은데 구름이 사라지면 다시 내려온다. 사람이 그것이 구름을 타는 것을 보고 「하늘에 오른다」 하고 하늘이 우레와 번개를 치는 것을 보고 「하늘이 용을 취한다」 한다. 세상 유자는 「역」의 글을 읽고 전하는 말을 보아 다 용이 구름의 무리인 줄 안다. 그러나 속인의 의논에 얽매여 그 말을 통하지 못하고 또 짧은 글을 보아 증거로 삼으므로 마침내 「하늘이 용을 취한다」 한다.

天不取龍,龍不升天。當丘欣之殺兩蛟也,手把其尾,拽而出之至淵之外,雷電擊之。蛟則龍之類也。蛟龍見而雲雨至,雲雨至則雷電擊。如以天實取龍,龍為天用,何以死蛟〔不〕為取之?且魚在水中,亦隨雲雨蜚,而乘雲雨非升天也。龍,魚之類也,其乘雷電猶魚之飛也。魚隨雲雨不謂之神,龍乘雷電獨謂之神。世俗之言,失其實也。物在世間,各有所乘。水蛇乘霧,龍乘雲,鳥乘風。見龍乘雲,獨謂之神,失龍之實,誣龍之能也。

하늘은 용을 취하지 않고 용은 하늘에 오르지 않는다. 구흔이 두 교룡을 죽였을 때 손으로 그 꼬리를 잡고 끌어내어 못 밖에 이르니 우레와 번개가 쳤다. 교룡은 용의 무리다. 교룡이 나타나면 구름과 비가 이르고 구름과 비가 이르면 우레와 번개가 친다. 하늘이 실로 용을 취하여 용이 하늘에 쓰인다면 어찌하여 죽은 교룡은 취하지 않았는가. 또 물고기가 물 가운데 있다가 또한 구름과 비를 따라 날지만 구름과 비를 타는 것이지 하늘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용은 물고기의 무리니 그 우레와 번개를 타는 것은 물고기가 나는 것과 같다. 물고기가 구름과 비를 따르는 것은 신령하다 하지 않으면서 용이 우레와 번개를 타는 것만 신령하다 한다. 세속의 말이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물건이 세상에 있으매 저마다 타는 바가 있다. 물뱀은 안개를 타고 용은 구름을 타고 새는 바람을 탄다. 용이 구름을 타는 것을 보고 홀로 신령하다 함은 용의 실상을 잃고 용의 재능을 속이는 것이다.

然則龍之所以為神者,以能屈伸其體,存亡其形。屈伸其體,存亡其形,未足以為神也。豫讓吞炭,漆身為厲,人不識其形。子貢滅須為婦人,人不知其狀。龍變體自匿,人亦不能覺,變化藏匿者巧也。物性亦有自然,知往,乾鵲知來,鸚鵡能言,三怪比龍,性變化也。如以巧為神,豫讓、子貢神也。孔子曰:「游者可為網,飛者可為。至於龍也,吾不知其乘風雲上升。今日見老子,其猶龍乎!」夫龍乘雲而上,雲消而下。物類可察,上下可知;而云孔子不知。以孔子之聖,尚不知龍,況俗人智淺,好奇之性,無實可之心,謂之龍神而升天,不足怪也。

그러니 용이 신령하다 하는 까닭은 그 몸을 굽히고 펴며 그 꼴을 있게 하고 없게 할 수 있어서다. 그 몸을 굽히고 펴며 그 꼴을 있게 하고 없게 하는 것은 신령하다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예양이 숯을 삼키고 몸에 옻칠하여 문둥이가 되니 사람이 그 꼴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자공이 수염을 없애고 부인이 되니 사람이 그 모양을 알지 못하였다. 용이 몸을 변하여 스스로 숨으니 사람도 깨닫지 못하는데 변화하여 숨는 것은 공교로움이다. 물건의 성품에도 절로 그러함이 있어 성성이는 지난 일을 알고 까치는 올 일을 알고 앵무새는 말을 할 수 있으니, 세 괴이함을 용에 견주면 성품이 변화하는 것이다. 공교로움을 신령하다 한다면 예양과 자공이 신령하다. 공자가 말하였다. 「헤엄치는 것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나는 것은 주살로 잡을 수 있다. 용에 이르러는 나는 그것이 바람과 구름을 타고 오르는 것을 모른다. 오늘 노자를 보니 용과 같도다!」 무릇 용은 구름을 타고 오르고 구름이 사라지면 내려온다. 물건의 무리를 살필 수 있고 오르내림을 알 수 있는데 공자가 모른다 하였다. 공자의 성스러움으로도 오히려 용을 모르거늘 하물며 속인은 슬기가 얕고 기이함을 좋아하는 성품에 실상을 살필 마음이 없으니 용이 신령하여 하늘에 오른다 하는 것이 괴이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