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雷虛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9 · 한자 3,824자 · 낭독 15.3분

「논형」 뇌허편 「雷虛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盛夏之時,雷電迅疾,擊折樹木,壞敗室屋,時犯殺人。世俗以為擊折樹木、壞敗室屋者,天取龍;其犯殺人也,謂之〔有〕陰過,飲食人以不潔淨,天怒,擊而殺之。隆隆之聲,天怒之音,若人之吁矣。世無愚智,莫謂不然。推人道以論之,虛妄之言也。

한여름에 우레와 번개가 빠르고 급하여 나무를 쳐서 꺾고 집을 부수며 때로 사람을 죽인다. 세속은 나무를 쳐서 꺾고 집을 부수는 것은 하늘이 용을 취하는 것이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숨은 허물이 있어 사람에게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여 하늘이 노하여 쳐서 죽이는 것이라 한다. 우르릉하는 소리는 하늘이 노한 소리로 사람이 성내어 소리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리석고 슬기로움을 가리지 않고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사람의 도를 미루어 논하면 헛되고 망령된 말이다.

夫雷之發動,一氣一聲也,折木坏屋亦犯殺人,犯殺人時亦折木壞屋。獨謂折木壞屋者,天取龍;犯殺人,罰陰過,與取龍吉凶不同,并時共聲,非道也。論者以為隆隆者,天怒吁之聲也。此便於罰過,不宜於取龍。罰過,天怒可也。

무릇 우레가 일어나는 것은 한 기운 한 소리라 나무를 꺾고 집을 부술 때 또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죽일 때 또한 나무를 꺾고 집을 부순다. 홀로 나무를 꺾고 집을 부수는 것은 하늘이 용을 취하는 것이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숨은 허물을 벌하는 것이라 하면, 용을 취하는 것과 길흉이 같지 않은데 같은 때 같은 소리이니 도가 아니다. 논하는 이는 우르릉하는 것이 하늘이 노하여 소리치는 소리라 한다. 이는 허물을 벌하는 데는 알맞으나 용을 취하는 데는 마땅하지 않다. 허물을 벌하는데 하늘이 노하는 것은 옳다.

取龍,龍何過而怒之?如龍神,天取之,不宜怒。如龍有過,與人同罪,(龍)殺而已,何為取也?殺人,怒可也。取龍,龍何過而怒之?殺人,不取;殺龍,取之。人龍之罪何別,而其殺之何異?然則取龍之說既不可聽,罰過之言復不可從。

용을 취하는데 용이 무슨 허물이 있어 노하는가. 용이 신령하여 하늘이 취한다면 노할 것이 없다. 용에게 허물이 있어 사람과 죄가 같다면 죽일 뿐이지 어찌 취하는가. 사람을 죽이는데 노하는 것은 옳다. 용을 취하는데 용이 무슨 허물이 있어 노하는가. 사람을 죽이고는 취하지 않고 용을 죽이고는 취한다. 사람과 용의 죄가 무엇이 다르고 그 죽임이 무엇이 다른가. 그러니 용을 취한다는 말은 이미 들을 수 없고 허물을 벌한다는 말도 다시 따를 수 없다.

何以效之?案雷之聲迅疾之時,人仆死於地,隆隆之聲臨人首上,故得殺人。審隆隆者天怒乎?怒用口之怒氣殺人也。口之怒氣,安能殺人?人為雷所殺,詢其身體,若燔灼之狀也。如天用口怒,口怒生火乎?且口著乎體,口之動與體俱。當擊折之時,聲著於地;其衰也,聲著於天。夫如是,聲著地之時,口至地,體亦宜然。當雷迅疾之時,仰視天,不見天之下,不見天之下,則夫隆隆之聲者,非天怒也。天之怒與人無異。人怒,身近人則聲疾,遠人則聲微。今天聲近,其體遠,非怒之實也。且雷聲迅疾之時,聲東西或南北,如天怒體動,口東西南北,仰視天亦宜東西南北。或曰:「天已東西南北矣,雲雨冥晦,人不能見耳。」

무엇으로 살피는가. 살피건대 우렛소리가 빠르고 급할 때 사람이 땅에 엎어져 죽으니 우르릉하는 소리가 사람 머리 위에 임하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참으로 우르릉하는 것이 하늘의 노여움인가. 노여움은 입의 노한 기운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입의 노한 기운이 어찌 사람을 죽이겠는가. 사람이 우레에 죽으면 그 몸을 살펴보면 불에 탄 모양 같다. 하늘이 입으로 노한다면 입의 노여움이 불을 낳는가. 또 입은 몸에 붙어 있어 입의 움직임은 몸과 함께한다. 쳐서 꺾을 때 소리가 땅에 붙고 그것이 잦아들면 소리가 하늘에 붙는다. 이러하면 소리가 땅에 붙을 때 입이 땅에 이르니 몸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우레가 빠르고 급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면 하늘이 내려온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늘이 내려온 것을 보지 못하면 우르릉하는 소리는 하늘의 노여움이 아니다. 하늘의 노여움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 사람이 노하면 몸이 사람과 가까우면 소리가 급하고 사람과 멀면 소리가 작다. 이제 하늘의 소리는 가까운데 그 몸은 머니 노여움의 실상이 아니다. 또 우렛소리가 빠르고 급할 때 소리가 동서로 혹은 남북으로 가니, 하늘이 노하여 몸이 움직여 입이 동서남북으로 간다면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마땅히 동서남북으로 갈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하늘이 이미 동서남북으로 갔는데 구름과 비로 어두워 사람이 볼 수 없을 뿐이다.」

夫千里不同風,百里不共雷。《易》曰:「震驚百里。」雷電之地,(雷)〔雲〕雨晦冥,百里之外無雨之處,宜見天之東西南北也。口著於天,天宜隨口,口一移普天皆移,非獨雷雨之地,天隨口動也。且所謂怒者,誰也?天神邪?蒼蒼之天也?如謂天神,神怒無聲;如謂蒼蒼之天,天者體不怒,怒用口。且天地相與,夫婦也,其即民父母也。子有過,父怒,笞之致死,而母不哭乎?今天怒殺人,地宜哭之。獨聞天之怒,不聞地之哭。如地不能哭,則天亦不能怒。且有怒則有喜。人有陰過,亦有陰善。有陰過,天怒殺之;如有陰善,天亦宜以(善)〔喜〕賞之。隆隆之聲謂天之怒,如天之喜亦哂然而笑。

무릇 천 리에 바람이 같지 않고 백 리에 우레를 함께하지 않는다. 「역」에 이르기를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한다」 하였다. 우레와 번개 치는 땅은 구름과 비로 어두우나 백 리 밖 비 오지 않는 곳에서는 마땅히 하늘이 동서남북으로 가는 것을 보아야 한다. 입이 하늘에 붙어 있으니 하늘이 마땅히 입을 따르고 입이 한 번 옮기면 온 하늘이 다 옮길 것이니, 우레와 비의 땅에서만 하늘이 입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또 이른바 노한다는 것은 누구인가. 하늘의 신인가, 푸르고 푸른 하늘인가. 하늘의 신이라면 신의 노여움은 소리가 없고, 푸르고 푸른 하늘이라면 하늘은 몸이라 노하지 않고 노여움은 입을 쓴다. 또 하늘과 땅이 서로 어울림은 부부이니 곧 백성의 어버이다. 자식에게 허물이 있어 아비가 노하여 매질하여 죽게 하면 어미가 울지 않겠는가. 이제 하늘이 노하여 사람을 죽이면 땅이 마땅히 울어야 한다. 홀로 하늘의 노여움만 듣고 땅의 울음은 듣지 못한다. 땅이 울 수 없다면 하늘도 노할 수 없다. 또 노여움이 있으면 기쁨이 있다. 사람에게 숨은 허물이 있으면 또한 숨은 착함도 있다. 숨은 허물이 있으면 하늘이 노하여 죽인다면 숨은 착함이 있으면 하늘도 마땅히 기뻐하여 상 줄 것이다. 우르릉하는 소리를 하늘의 노여움이라 한다면 하늘의 기쁨도 빙그레 웃어야 한다.

人有喜怒,故謂天喜怒、推人以知天,知天本於人。如人不怒,則亦無緣謂天怒也。緣人以知天,宜盡人之性。人性怒則吁,喜則歌笑。比聞天之怒,希聞天之喜;比見天之罰,希見天之賞。豈天怒、不喜,貪於罰、希於賞哉?何怒罰有效,喜賞無驗也?

사람에게 기쁨과 노여움이 있으므로 하늘에 기쁨과 노여움이 있다 하니, 사람을 미루어 하늘을 아는 것이라 하늘을 아는 것이 사람에 근본한다. 사람이 노하지 않는다면 또한 하늘이 노한다 할 까닭이 없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안다면 마땅히 사람의 성품을 다해야 한다. 사람의 성품은 노하면 소리치고 기쁘면 노래하고 웃는다. 하늘의 노여움은 자주 듣는데 하늘의 기쁨은 드물게 듣고, 하늘의 벌은 자주 보는데 하늘의 상은 드물게 본다. 어찌 하늘이 노하고 기뻐하지 않으며 벌은 탐하고 상은 드물게 하는가. 어찌 노여움과 벌은 보람이 있고 기쁨과 상은 증험이 없는가.

且雷之擊也,折木坏屋,時犯殺人,以為天怒。時或徒雷,無所折敗,亦不殺人,天空怒乎?人君不空喜怒,喜怒必有賞罰。無所罰而空怒,是天妄也。妄則失威,非天行也。政事之家,以寒溫之氣為喜怒之候,人君喜即天溫,(即)〔怒〕則天寒。雷電之日,天必寒也。高祖之先劉媼,曾息大澤之陂,夢與神遇,此時雷電晦冥。天方施氣,宜喜之時也,何怒而雷?如用擊折者為怒,不擊折者為喜,則夫隆隆之聲,不宜同音。人怒喜異聲,天怒喜同音,與人乖異,則人何緣謂之天怒?

또 우레가 칠 때 나무를 꺾고 집을 부수며 때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하늘의 노여움이라 한다. 때로 헛되이 우레만 치고 꺾고 부순 바가 없으며 사람도 죽이지 않으면 하늘이 헛되이 노한 것인가. 임금은 헛되이 기뻐하고 노하지 않으니 기쁨과 노여움에 반드시 상과 벌이 있다. 벌할 바가 없는데 헛되이 노한다면 이는 하늘이 망령된 것이다. 망령되면 위엄을 잃으니 하늘의 행실이 아니다. 정사를 말하는 이는 춥고 따뜻한 기운으로 기쁨과 노여움의 조짐을 삼아 임금이 기쁘면 하늘이 따뜻하고 노하면 하늘이 춥다 한다. 우레와 번개 치는 날은 하늘이 반드시 추워야 한다. 고조의 어버이 유온이 일찍이 큰 못 둑에서 쉬다가 꿈에 신과 만났는데 이때 우레와 번개로 어두컴컴하였다. 하늘이 바야흐로 기운을 베푸니 마땅히 기쁠 때인데 어찌 노하여 우레를 쳤는가. 쳐서 꺾는 것을 노여움으로 삼고 쳐서 꺾지 않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다면 우르릉하는 소리가 같은 음이어서는 마땅하지 않다. 사람은 노여움과 기쁨에 소리가 다른데 하늘은 노여움과 기쁨에 음이 같다면 사람과 어긋나니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하늘의 노여움이라 하겠는가.

且飲食人以不潔淨,小過也。以至尊之身,親罰小過,非尊者之宜也。尊不親罰過,故王不誅罪。天尊於王,親罰小過,是天德劣於王也。且天之用心,猶人之用意。人君罪惡,初聞之時,怒以非之;及其誅之,哀以怜之。故《論語》曰:「如得其情,則哀怜而勿喜。」紂至惡也,武王將誅,哀而怜之。故《尚書》曰:「予惟率夷怜爾。」人君誅惡,怜而殺之;天之罰過,怒而擊之。是天少恩而人多惠也。說雨者以為天施氣。天施氣,氣渥為雨,故雨潤萬物,名曰澍。人不喜,不施恩。天不說,不降雨。謂雷,天怒;雨者,天喜也。雷起常與雨俱,如論之言,天怒且喜也。人君賞罰不同日,天之怒喜不殊時,天人相違,賞罰乖也。且怒喜具形,亂也。惡人為亂,怒罰其過;罰之以亂,非天行也。冬雷人謂之陽氣泄,春雷謂之陽氣發。夏雷不謂陽氣盛,謂之天怒,竟虛言也。

또 사람에게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이는 것은 작은 허물이다. 지극히 높은 몸으로 몸소 작은 허물을 벌하는 것은 높은 이의 마땅함이 아니다. 높은 이는 몸소 허물을 벌하지 않으므로 왕은 죄를 베지 않는다. 하늘은 왕보다 높은데 몸소 작은 허물을 벌한다면 이는 하늘의 덕이 왕보다 못한 것이다. 또 하늘의 마음 씀은 사람의 뜻 씀과 같다. 임금이 죄악을 처음 들을 때는 노하여 그르다 하고 그것을 벨 때에 이르러는 슬퍼하며 가엾이 여긴다. 그러므로 「논어」에 이르기를 「그 정을 알면 슬퍼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지 마라」 하였다. 주(紂)는 지극히 악하였으나 무왕이 장차 베려 할 때 슬퍼하며 가엾이 여겼다. 그러므로 「상서」에 이르기를 「나는 오직 다 너희를 가엾이 여긴다」 하였다. 임금이 악을 벨 때는 가엾이 여기며 죽이고 하늘이 허물을 벌할 때는 노하여 친다면 이는 하늘은 은혜가 적고 사람은 은혜가 많은 것이다.

비를 말하는 이는 하늘이 기운을 베푸는 것이라 한다. 하늘이 기운을 베풀어 기운이 두터우면 비가 되므로 비가 만물을 적시니 이름하여 단비라 한다. 사람은 기쁘지 않으면 은혜를 베풀지 않고 하늘은 기쁘지 않으면 비를 내리지 않는다. 우레는 하늘의 노여움이요 비는 하늘의 기쁨이라 한다. 우레가 일어나면 늘 비와 함께하니 논하는 이의 말대로라면 하늘이 노하면서 기뻐하는 것이다. 임금의 상과 벌은 같은 날에 하지 않는데 하늘의 노여움과 기쁨은 때가 다르지 않다면 하늘과 사람이 서로 어긋나 상과 벌이 어그러진 것이다. 또 노여움과 기쁨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어지러움이다. 악한 사람이 어지럽히면 노하여 그 허물을 벌하는데 어지러움으로 벌한다면 하늘의 행실이 아니다. 겨울 우레를 사람들은 양의 기운이 새는 것이라 하고 봄 우레를 양의 기운이 피는 것이라 한다. 여름 우레는 양의 기운이 성한 것이라 하지 않고 하늘의 노여움이라 하니 끝내 헛말이다.

人在天地之間,物也。物,亦物也。物之飲食,天不能知。人之飲食,天獨知之。萬物於天,皆子也;父母於子,恩德一也。豈為貴賢加意,賤愚不察乎?何其察人之明,省物之暗也!犬豕食人腐臭,食之天不殺也。如以人貴而獨禁之,則鼠人飲食,人不知,誤而食之,天不殺也。如天能原鼠,則亦能原人,人誤以不潔淨飲食人,人不知而食之耳,豈故舉腐臭以予之哉?如故予之,人亦不肯食。呂后斷戚夫人手,去其眼,置於廁中,以為人豕。呼人示之,人皆傷心;惠帝見之,病臥不起。呂后故為,天不罰也。人誤不知,天輒殺之,不能原誤失而責故,天治悖也。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으니 물건이다. 물건도 또한 물건이다. 물건의 먹고 마심은 하늘이 알 수 없는데 사람의 먹고 마심만 하늘이 홀로 안다는 것이다. 만물은 하늘에 대해 다 자식이요 어버이는 자식에 대해 은혜와 덕이 하나다. 어찌 귀하고 어진 이에게는 뜻을 더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이는 살피지 않겠는가. 어찌 그리 사람을 살핌은 밝고 물건을 살핌은 어두운가. 개와 돼지가 사람의 썩고 냄새나는 것을 먹는데 먹어도 하늘이 죽이지 않는다. 사람이 귀하다 하여 홀로 금한다면, 쥐가 사람의 먹을 것에 오줌을 누어 사람이 모르고 잘못 먹어도 하늘이 죽이지 않는다. 하늘이 쥐를 용서할 수 있다면 또한 사람도 용서할 수 있으니, 사람이 잘못하여 깨끗하지 않은 것을 사람에게 먹이고 사람이 모르고 먹었을 뿐이지 어찌 일부러 썩고 냄새나는 것을 들어 주었겠는가. 일부러 주었다면 사람도 먹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후가 척부인의 손을 자르고 그 눈을 빼고 뒷간에 두어 사람 돼지로 삼았다. 사람을 불러 보이니 사람들이 다 마음 아파하였고 혜제가 보고 병들어 누워 일어나지 못하였다. 여후가 일부러 하였으나 하늘이 벌하지 않았다. 사람이 잘못하여 모르고 한 것을 하늘이 곧 죽이니, 잘못한 것을 용서하지 않고 일부러 한 것을 꾸짖지 않으면 하늘의 다스림이 어그러진 것이다.

夫人食不淨之物,口不知有其也;如食已,知之,名曰腸。戚夫人入廁,身體辱之,與何以別?腸之與體何以異?為腸不為體,傷不病辱,非天意也。且人聞人食不清之物,心平如故,觀戚夫人者,莫不傷心。人傷,天意悲矣。夫悲戚夫人則怨呂后,案呂后之崩,未必遇雷也。道士劉春熒惑楚王英,使食不清。春死,未必遇雷也。建初四年夏六月,雷擊殺會稽(靳專日食)〔鄞縣〕羊五頭皆死。夫羊何陰過而雷殺之?舟人溪上流,人飲下流,舟人不雷死。

무릇 사람이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먹으면 입은 그 더러움이 있는 줄 모른다. 먹고 난 뒤에 알면 이름하여 창자를 더럽혔다 한다. 척부인이 뒷간에 들어가 몸이 욕을 당한 것과 더럽힘이 무엇이 다른가. 창자와 몸이 무엇이 다른가. 창자는 벌하고 몸은 벌하지 않으며 상함은 병 주고 욕됨은 병 주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다. 또 사람이 남이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먹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예전처럼 평온하나 척부인을 본 이는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람이 아파하면 하늘의 뜻도 슬플 것이다. 무릇 척부인을 슬퍼하면 여후를 원망할 것인데, 살피건대 여후가 죽은 것이 반드시 우레를 만난 것이 아니다. 도사 유춘이 초왕 영을 홀려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게 하였다. 춘이 죽은 것이 반드시 우레를 만난 것이 아니다. 건초 사년 여름 유월에 우레가 회계 은현의 양 다섯 마리를 쳐서 다 죽였다. 무릇 양이 무슨 숨은 허물이 있어 우레가 죽였는가. 뱃사람이 시내 상류에 오줌을 누고 사람이 하류에서 마시는데 뱃사람이 우레에 죽지 않는다.

天神之處天,猶王者之居也。王者居重關之內,則天之神宜在隱匿之中。王者居宮室之內,則天亦有太微、紫宮、軒轅、文昌之坐。王者與人相遠,不知人之陰惡。天神在四宮之內,何能見人暗過?王者聞人進,以人知。天知人惡,亦宜因鬼。使天問過於鬼神,則其誅之,宜使鬼神。如使鬼神,則天怒,鬼神也,非天也。

하늘의 신이 하늘에 있는 것은 왕이 사는 것과 같다. 왕이 겹겹의 관문 안에 살면 하늘의 신도 마땅히 숨은 가운데 있을 것이다. 왕이 궁실 안에 살면 하늘에도 태미·자궁·헌원·문창의 자리가 있다. 왕은 사람과 서로 멀어 사람의 숨은 악을 모른다. 하늘의 신이 네 궁 안에 있으면 어찌 사람의 어두운 허물을 보겠는가. 왕은 사람이 나아와 아뢰는 것을 듣고 사람으로 안다. 하늘이 사람의 악을 아는 것도 마땅히 귀신으로 말미암을 것이다. 하늘이 허물을 귀신에게 묻는다면 그것을 베는 것도 마땅히 귀신을 시킬 것이다. 귀신을 시킨다면 하늘이 노한 것이 귀신이지 하늘이 아니다.

且王斷刑以秋,天之殺用夏,此王者用刑違天時。奉天而行,其誅殺也,宜法象上天。天殺用夏,王誅以秋,天人相違,非奉天之義也。或論曰:「飲食〔人〕不潔淨,天之大惡也。殺大惡,不須時。」王者大惡,謀反大逆無道也。天之大惡,飲食人不潔清。天(之)〔人〕所惡,小大不均等也。如小大同,王者宜法天,制飲食人不潔清之法為死刑也。聖王有天下,制刑不備此法,聖王闕略,有遺失也?或論曰:「鬼神治陰,王者治陽。陰過暗昧,人不能覺,故使鬼神主之。」曰:「陰過非一也,何不盡殺?案一過,非治陰之義也。天怒不旋日,人怨不旋踵。人有陰過,或時有用冬,未必專用夏也。以冬過誤,不輒擊殺,遠至於夏,非不旋日之意也。

또 왕은 형벌을 가을에 결단하는데 하늘은 죽임을 여름에 쓰니 이는 왕이 형벌을 쓰는 것이 하늘의 때를 어긴 것이다. 하늘을 받들어 행한다면 그 죽임도 마땅히 하늘을 본받아야 한다. 하늘은 죽임을 여름에 쓰고 왕은 벰을 가을에 하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어긋나 하늘을 받드는 뜻이 아니다. 어떤 이가 논한다. 「사람에게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이는 것은 하늘이 크게 미워하는 것이다. 크게 미워하는 것을 죽이는 데는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왕이 크게 미워하는 것은 모반과 대역과 무도다. 하늘이 크게 미워하는 것은 사람에게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이는 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미워하는 바가 크고 작음이 고르지 않다. 크고 작음이 같다면 왕은 마땅히 하늘을 본받아 사람에게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이는 법을 사형으로 정해야 한다. 성스러운 왕이 천하를 가지고 형벌을 정하며 이 법을 갖추지 않았으니 성스러운 왕이 빠뜨려 잃은 것이 있는가. 어떤 이가 논한다. 「귀신은 음을 다스리고 왕은 양을 다스린다. 숨은 허물은 어두워 사람이 깨닫지 못하므로 귀신에게 맡긴다.」 답한다. 「숨은 허물이 하나가 아닌데 어찌 다 죽이지 않는가. 한 허물만 살피는 것은 음을 다스리는 뜻이 아니다. 하늘의 노여움은 날을 돌리지 않고 사람의 원망은 발꿈치를 돌리지 않는다. 사람에게 숨은 허물이 있으면 더러 겨울에 있으니 반드시 여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울의 허물과 잘못을 곧 쳐서 죽이지 않고 멀리 여름에 이르러 하는 것은 날을 돌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圖畫之工,圖雷之狀,累累如連鼓之形;又圖一人,若力士之容,謂之雷公,使之左手引連鼓,右手推椎,若擊之狀。其意以為雷聲隆隆者,連鼓相扣擊之(意)〔音〕也;其魄然若敝裂者,椎所擊之聲也;其殺人也,引連鼓相椎,并擊之矣。

그림 그리는 장인이 우레의 모양을 그리는데 주렁주렁 이어진 북의 꼴 같고, 또 한 사람을 그리는데 역사의 모습 같아 뇌공이라 하며 왼손으로 이어진 북을 끌고 오른손으로 망치를 밀어 치는 모양 같게 한다. 그 뜻은 우렛소리가 우르릉하는 것은 이어진 북이 서로 두드려 치는 소리요, 그 쩍 하고 찢어지는 것 같은 것은 망치로 치는 소리요,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이어진 북을 끌어 서로 망치질하여 함께 친 것이라는 것이다.

世又信之,莫謂不然。如復原之,虛妄之象也。夫雷,非聲則氣也。聲與氣,安可推引而為連鼓之形乎?如審可推引,則是物也。相扣而音鳴者,非鼓即鍾也。夫隆隆之聲,鼓與鍾邪?如審是也,鍾鼓(而)不〔而〕空懸,須有,然後能安,然後能鳴。今鍾鼓無所懸著,雷公之足無所蹈履,安得而為雷?或曰:「如此固為神。如必有所懸著,足有所履,然後而為雷,是與人等也,何以為神?」曰:神者,恍惚無形,出入無門,上下無〔垠〕,故謂之神。今雷公有形,雷聲有器,安得為神?如無形,不得為之圖象;如有形,不得謂之神。謂之神龍升天,實事者謂之不然,以人時或見龍之形也。

세상이 또 그것을 믿어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다시 캐면 헛되고 망령된 상이다. 무릇 우레는 소리가 아니면 기운이다. 소리와 기운을 어찌 밀고 끌어 이어진 북의 꼴로 만들겠는가. 참으로 밀고 끌 수 있다면 이는 물건이다. 서로 두드려 소리가 울리는 것은 북 아니면 종이다. 무릇 우르릉하는 소리가 북과 종인가. 참으로 그렇다면 종과 북은 헛되이 매달릴 수 없고 틀이 있어야 편안할 수 있고 그런 뒤에 울릴 수 있다. 이제 종과 북이 매달릴 데가 없고 뇌공의 발이 밟을 데가 없는데 어찌 우레가 되겠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이러하니 본디 신이다. 반드시 매달릴 데가 있고 발이 밟을 데가 있은 뒤에 우레가 된다면 이는 사람과 같으니 어찌 신이겠는가.」 답한다. 신이란 황홀하여 꼴이 없고 드나듦에 문이 없고 오르내림에 끝이 없으므로 신이라 한다. 이제 뇌공은 꼴이 있고 우렛소리는 기구가 있으니 어찌 신이 되겠는가. 꼴이 없으면 그림으로 그릴 수 없고 꼴이 있으면 신이라 할 수 없다. 신령한 용이 하늘에 오른다 하는 것을 실상을 아는 이는 그렇지 않다 하니, 사람이 때로 용의 꼴을 보기 때문이다.

以其形見,故圖畫升龍之形也;以其可畫,故有不神之實。

그 꼴이 보이므로 오르는 용의 꼴을 그리고, 그릴 수 있으므로 신령하지 않은 실상이 있다.

難曰:「人亦見鬼之形,鬼復神乎?」曰:「人時見鬼,有見雷公者乎?」鬼名曰神,其行蹈地,與人相似。雷公頭不懸於天,足不蹈於地,安能為雷公?飛者皆有翼,物無翼而飛,謂仙人。畫仙人之形,為之作翼。如雷公與仙人同,宜復著翼。使雷公不飛,圖雷家言其飛,非也。使實飛,不為著翼,又非也。夫如是,圖雷之家畫雷之狀,皆虛妄也。且說雷之家,謂雷,天怒吁也;圖雷之家,謂之雷公怒引連鼓也。審如說雷之家,則圖雷之家非;審如圖雷之家,則說雷之家誤。二家相違也,并而是之,無是非之分。無是非之分,故無是非之實。無以定疑論,故虛妄之論勝也。

따져 말한다. 「사람도 귀신의 꼴을 보는데 귀신은 또 신령한가?」 답한다. 「사람이 때로 귀신을 보지만 뇌공을 본 이가 있는가?」 귀신을 신이라 이름하나 그 다니며 땅을 밟는 것이 사람과 서로 비슷하다. 뇌공은 머리가 하늘에 매달리지 않고 발이 땅을 밟지 않으니 어찌 뇌공이 될 수 있겠는가. 나는 것은 다 날개가 있고 물건이 날개 없이 나는 것을 신선이라 한다. 신선의 꼴을 그리면 날개를 만들어 준다. 뇌공이 신선과 같다면 마땅히 또 날개를 붙여야 한다. 뇌공이 날지 않는다면 우레를 그리는 이가 난다 말하는 것이 그르다. 실로 난다면 날개를 붙이지 않은 것이 또 그르다. 이러하니 우레를 그리는 이가 우레의 모양을 그린 것은 다 헛되고 망령되다. 또 우레를 말하는 이는 우레를 하늘이 노하여 소리치는 것이라 하고, 우레를 그리는 이는 뇌공이 노하여 이어진 북을 끄는 것이라 한다. 참으로 우레를 말하는 이의 말대로라면 우레를 그리는 이가 그르고, 참으로 우레를 그리는 이의 말대로라면 우레를 말하는 이가 그르다. 두 집이 서로 어긋나는데 아울러 옳다 하니 옳고 그름의 나뉨이 없다. 옳고 그름의 나뉨이 없으므로 옳고 그름의 실상이 없다. 의심스러운 논을 정할 길이 없으므로 헛되고 망령된 논이 이긴다.

《禮》曰:「刻尊為雷之形,一出一入,一屈一伸,為相校軫則鳴。」校軫之狀,郁律壘之類也,此象類之矣。氣相校軫分裂,則隆隆之聲,校軫之音也。魄然若裂者,氣射之聲也。氣射中人,人則死矣。實說,雷者太陽之激氣也。何以明之?正月陽動,故正月始雷。五月陽盛,故五月雷迅。秋冬陽衰,故秋冬雷潛。盛夏之時,太陽用事,陰氣乘之。陰陽分(事)〔爭〕,則相校軫。校軫則激射。激射為毒,中人輒死,中木木折,中屋屋坏。人在木下屋間,偶中而死矣。何以驗之?試以一斗水灌冶鑄之火,氣激裂,若雷之音矣。或近之,必灼人體。天地為爐大矣,陽氣為火猛矣,雲雨為水多矣,分爭激射,安得不迅?中傷人身,安得不死?當冶工之消鐵也,以士為形,燥則鐵下,不則躍溢而射。射中人身,則皮膚灼剝。陽氣之熱,非直消鐵之烈也;陰氣激之,非直土泥之濕也;陽氣中人,非直灼剝之痛也。

「예」에 이르기를 「준(尊)에 우레의 꼴을 새기는데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가며 한 번 굽고 한 번 펴져 서로 얽혀 부딪치면 울린다」 하였다. 얽혀 부딪치는 모양은 우르릉 겹겹이 쌓인 무리니 이는 그 무리를 본뜬 것이다. 기운이 서로 얽혀 부딪쳐 갈라지면 우르릉하는 소리이니 얽혀 부딪치는 소리다. 쩍 하고 찢어지는 것 같은 것은 기운이 쏘는 소리다. 기운이 쏘아 사람을 맞히면 사람이 곧 죽는다. 실상을 말하면 우레는 태양의 격한 기운이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정월에 양이 움직이므로 정월에 우레가 비롯되고, 오월에 양이 성하므로 오월에 우레가 빠르며, 가을과 겨울에 양이 쇠하므로 가을과 겨울에 우레가 숨는다. 한여름에 태양이 일을 맡는데 음의 기운이 그것을 탄다. 음과 양이 나뉘어 다투면 서로 얽혀 부딪친다. 얽혀 부딪치면 격하게 쏜다. 격하게 쏘면 독이 되어 사람을 맞히면 곧 죽고 나무를 맞히면 나무가 꺾이고 집을 맞히면 집이 무너진다. 사람이 나무 아래나 집 사이에 있다가 우연히 맞아 죽는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시험 삼아 한 말 물을 쇠 녹이는 불에 부으면 기운이 격하게 갈라져 우레 소리 같다. 더러 가까이 가면 반드시 사람의 몸을 데인다. 하늘과 땅이 화로가 되니 크고, 양의 기운이 불이 되니 사나우며, 구름과 비가 물이 되니 많으니, 나뉘어 다투며 격하게 쏘는 것이 어찌 빠르지 않겠는가. 사람의 몸을 맞혀 상하게 하니 어찌 죽지 않겠는가. 대장장이가 쇠를 녹일 때 흙으로 틀을 만드는데 마르면 쇠가 내려가고 그렇지 않으면 뛰어 넘쳐 쏜다. 쏘아 사람의 몸을 맞히면 살갗이 데어 벗겨진다. 양의 기운의 뜨거움은 다만 쇠를 녹이는 매서움 정도가 아니요, 음의 기운이 부딪는 것은 다만 흙과 진흙의 축축함 정도가 아니요, 양의 기운이 사람을 맞히는 것은 다만 데어 벗겨지는 아픔 정도가 아니다.

夫雷,火也。〔火〕氣剡人,人不得無跡。如炙處狀似文字,人見之,謂天記書其過,以示百姓。是復虛妄也。使人盡有過,天用雷殺人。殺人當彰其惡,以懲其後,明著其文字,不當暗昧。圖出於河,書出於洛。《河圖》、《洛書》,天地所為,人讀知之。今雷死之書,亦天所為也,何故難知?如以(一)〔殪〕人皮不可書,魯惠公夫人仲子,宁武公女也,生而有文在掌,曰「為魯夫人」,文明可知,故仲子歸魯。雷書不著,故難以懲後。地如是,火剡之跡,非天所刻畫也。或頗有而增其語,或無有而空生其言,虛妄之俗,好造怪奇。何以驗之?雷者火也,以人中雷而死,即詢其身,中頭則鬚髪燒,中身則皮膚灼,臨其尸上聞火氣,一驗也。道朮之家,以為雷燒石色赤,投於井中,石井寒,激聲大鳴,若雷之狀,二驗也。人傷於寒,寒所入腹,腹中素溫,溫寒分爭,激氣雷鳴,三驗也。當雷之時,電光時見,大若火之耀,四驗也。當雷之擊,時或燔人室屋及地草木,五驗也。夫論雷之為火有五驗,言雷為天怒無一效。然則雷為天怒,虛妄之言。

무릇 우레는 불이다. 불의 기운이 사람을 깎으면 사람에게 자취가 없을 수 없다. 데인 데의 모양이 글자 같으면 사람이 보고 하늘이 그 허물을 적어 백성에게 보인다 한다. 이 또한 헛되고 망령되다. 사람에게 다 허물이 있어 하늘이 우레로 사람을 죽인다면, 사람을 죽일 때 마땅히 그 악을 드러내어 그 뒤를 징계해야 하니 그 글자를 밝게 드러내야지 어두워서는 안 된다. 그림이 하수에서 나오고 글이 낙수에서 나왔다. 「하도」와 「낙서」는 하늘과 땅이 만든 것인데 사람이 읽어 안다. 이제 우레에 죽은 이의 글도 하늘이 만든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알기 어려운가. 죽은 사람의 살갗에는 글을 쓸 수 없다 한다면, 노 혜공의 부인 중자는 송 무공의 딸인데 나면서 손바닥에 글이 있어 「노나라 부인이 된다」 하였으니 글이 밝아 알 수 있었으므로 중자가 노나라로 시집갔다. 우레의 글은 드러나지 않으므로 뒤를 징계하기 어렵다. 이러하니 불이 깎은 자취는 하늘이 새겨 그린 것이 아니다. 더러는 조금 있는 것에 그 말을 보태고 더러는 없는 것에 헛되이 그 말을 낳으니 헛되고 망령된 세속은 괴이하고 기이한 것 짓기를 좋아한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우레는 불이니 사람이 우레에 맞아 죽으면 곧 그 몸을 살피면 머리를 맞으면 수염과 머리털이 타고 몸을 맞으면 살갗이 데며 그 주검에 다가서면 불 냄새가 나니 첫째 증험이다. 도술을 하는 이는 돌을 태워 붉게 달구어 우물 가운데 던지는데 뜨거운 돌과 찬 우물이 부딪쳐 격한 소리가 크게 울려 우레 모양 같다 하니 둘째 증험이다. 사람이 추위에 상하면 추위가 배에 들어가는데 배 속은 본디 따뜻하여 따뜻함과 추위가 나뉘어 다투어 격한 기운이 우레처럼 울리니 셋째 증험이다. 우레가 칠 때 번갯불이 때때로 보이는데 크기가 불이 빛나는 것 같으니 넷째 증험이다. 우레가 칠 때 때로 사람의 집과 땅의 풀과 나무를 태우니 다섯째 증험이다. 무릇 우레가 불이라 논함에 다섯 증험이 있고 우레가 하늘의 노여움이라 말함에 한 보람도 없다. 그러니 우레가 하늘의 노여움이라 함은 헛되고 망령된 말이다.

(雖)〔難〕曰:「《論語》云:『迅雷風烈必變。』《禮記》曰:『有疾風迅雷甚雨則必變,雖夜必興,衣服、冠而坐。』懼天怒,畏罰及己也。如雷不為天怒,其擊不為罰過,則君子何為為雷變動朝服而正坐(子)〔乎〕?」曰:天之與人猶父子,有父為之變,子安能忽?故天變,己亦宜變,順天時,示己不違也。人聞犬聲於外,莫不驚駭,竦身側耳以審聽之。況聞天變異常之聲,軒迅疾之音乎?《論語》所指,《禮記》所謂,皆君子也。君子重慎,自知無過,如日月之蝕,無陰暗食人以不潔清之事,內省不懼,何畏於雷?審如不畏雷,則其變動不足以效天怒何則?不為己也。如審畏雷,亦不足以效罰陰過。何則?雷之所擊,多無過之人。君子恐偶遇之,故恐懼變動。夫如是,君子變動,不能明雷為天怒,而反著雷之妄擊也。妄擊不罰過,故人畏之。如審罰有過,小人乃當懼耳,君子之人無為恐也。宋王問唐鞅曰:「寡人所殺戮者眾矣,而群臣不畏,其故何也?」唐鞅曰:「王之所罪,盡不善者也。罰不善,善者胡為畏?王欲群臣之畏也,不若毋辨其善與不善而時罪之,斯群臣畏矣。」宋王行其言,群臣畏懼,(宋王大怒)〔宋國大恐〕。夫宋王妄刑,故宋國大恐。懼雷電妄擊,故君子變動。君子變動,寧國大恐之類也。

따져 말한다. 「「논어」에 『빠른 우레와 사나운 바람에는 반드시 낯빛을 고쳤다』 하였고, 「예기」에 『빠른 바람과 빠른 우레와 심한 비가 있으면 반드시 낯빛을 고치고 비록 밤이라도 반드시 일어나 옷을 입고 관을 쓰고 앉는다』 하였다. 하늘의 노여움을 두려워하고 벌이 제게 미칠까 두려워한 것이다. 우레가 하늘의 노여움이 아니고 그 침이 허물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면 군자는 무엇 때문에 우레 때문에 낯빛을 고치고 조복을 입고 바르게 앉는가?」 답한다. 하늘과 사람은 아비와 자식 같으니 아비가 낯빛을 고치는데 자식이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그러므로 하늘이 변하면 저도 마땅히 변하니 하늘의 때를 따라 제가 어기지 않음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이 밖에서 개 소리를 들으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어 몸을 곧추세우고 귀를 기울여 살펴 듣는다. 하물며 하늘의 예사롭지 않은 변고의 소리와 빠르고 급한 음을 들음에랴. 「논어」가 가리킨 것과 「예기」가 이른 것은 다 군자다. 군자는 삼감을 무겁게 여겨 스스로 허물이 없음을 아니, 해와 달이 먹히는 것과 같아 어둡게 사람에게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인 일이 없어 안으로 살펴 두렵지 않은데 어찌 우레를 두려워하겠는가. 참으로 우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낯빛을 고침이 하늘의 노여움을 증험하기에 넉넉하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저를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레를 두려워한다 하여도 숨은 허물을 벌함을 증험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어째서인가. 우레가 치는 것은 흔히 허물 없는 사람이다. 군자가 우연히 만날까 두려워하므로 두려워 낯빛을 고치는 것이다. 이러하니 군자가 낯빛을 고치는 것은 우레가 하늘의 노여움임을 밝히지 못하고 도리어 우레가 함부로 침을 드러낸다. 함부로 쳐서 허물을 벌하지 않으므로 사람이 두려워한다. 참으로 허물 있는 이를 벌한다면 소인이나 마땅히 두려워할 뿐이지 군자는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송왕이 당앙에게 물었다. 「과인이 죽인 이가 많은데 뭇 신하가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당앙이 말하였다. 「왕께서 죄주신 것은 다 착하지 않은 이입니다. 착하지 않은 이를 벌하니 착한 이가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왕께서 뭇 신하가 두려워하기를 바라신다면 그 착하고 착하지 않음을 가리지 않고 때로 죄주는 것만 못하니 그러면 뭇 신하가 두려워할 것입니다.」 송왕이 그 말을 행하니 뭇 신하가 두려워하고 송나라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무릇 송왕이 함부로 형벌하므로 송나라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우레와 번개가 함부로 칠까 두려워하므로 군자가 낯빛을 고친다. 군자가 낯빛을 고치는 것은 송나라가 크게 두려워한 것과 같은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