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虛篇
儒書言:黃帝采首山銅,鑄鼎於荊山下。鼎既成,有龍垂胡髯下迎黃帝,黃帝上騎龍,群臣後宮從上七十餘人,龍乃上去。余小臣不得上,乃悉持龍髯。龍髯拔,墮黃帝之弓,百姓仰望黃帝既上天,乃抱其弓與龍胡髯吁號。故後世因其處曰鼎湖,其弓曰烏號。《太史公記》誄五帝亦云:黃帝封禪已,仙云。群臣朝其衣冠,因葬埋之。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황제가 수산의 구리를 캐어 형산 아래에서 솥을 부었다. 솥이 이루어지자 용이 턱수염을 드리우고 내려와 황제를 맞이하니 황제가 올라 용을 타고 뭇 신하와 후궁으로 따라 오른 이가 일흔 남짓인데 용이 이에 올라갔다. 남은 작은 신하들은 오르지 못하여 이에 다 용의 수염을 잡았다. 용의 수염이 뽑히고 황제의 활이 떨어지니 백성이 황제가 이미 하늘에 오른 것을 우러러보고 이에 그 활과 용의 턱수염을 안고 소리쳐 울었다. 그러므로 후세에 그곳을 정호라 하고 그 활을 오호라 하였다 한다. 「태사공기」가 오제를 뇌한 데도 이르기를, 황제가 봉선을 마치고 신선이 되었다 한다. 뭇 신하가 그 옷과 관을 조회하고 이로 인해 묻어 장사 지냈다 한다.
曰:此虛言也。實黃帝者何等也?號乎,謚也?如謚,臣子所誄列也。誄生時所行為之謚。黃帝好道,遂以升天,臣子誄之,宜以仙升,不當以「黃」謚。謚法曰:「靜民則法曰黃。」
답한다. 이는 헛말이다. 실로 황제란 무엇인가. 호인가, 시호인가. 시호라면 신하와 자식이 뇌하여 벌인 것이다. 살았을 때 행한 바를 뇌하여 시호로 삼는다. 황제가 도를 좋아하여 마침내 하늘에 올랐다면 신하와 자식이 뇌하되 마땅히 신선으로 올랐다 해야지 「황」을 시호로 해서는 안 된다. 시법에 이르기를 「백성을 고요히 하고 법도로 하면 황이라 한다」 하였다.
黃者,安民之謚,非得道之稱也。百王之謚,文則曰文,武則曰武。文武不失實,所以勸操行也。如黃帝之時質,未有謚乎,名之為黃帝,何世之人也?使黃帝之臣子知君,使後世之人跡其行。黃帝之世,號謚有無,雖疑未定,「黃」非升仙之稱,明矣。
황이란 백성을 편안히 한 시호지 도를 얻은 일컬음이 아니다. 백왕의 시호는 문이면 문이라 하고 무이면 무라 한다. 문과 무가 실상을 잃지 않아야 몸가짐을 권하는 바다. 황제 때는 질박하여 아직 시호가 없었다면 황제라 이름한 것은 어느 세상의 사람인가. 황제의 신하와 자식이 임금을 알게 하고 후세 사람이 그 행실을 좇게 한 것이다. 황제의 세상에 호와 시호가 있고 없음은 의심스러워 정하지 못하나 「황」이 신선으로 오른 일컬음이 아님은 분명하다.
龍不升天,黃帝騎之,乃明黃帝不升天也。龍起雲雨,因乘而行;雲散雨止,降復入淵。如實黃帝騎龍,隨溺於淵也。案黃帝葬於橋山,猶曰群臣葬其衣冠。審騎龍而升天,衣不離形;如封禪已仙去。衣冠亦不宜遺。黃帝實仙不死而升天,臣子百姓所親見也。見其升天,知其不死必也。葬不死之衣冠,與實死者無以異,非臣子實事之心,別生於死之意也。
용이 하늘에 오르지 않으니 황제가 그것을 탔다면 곧 황제가 하늘에 오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용이 구름과 비를 일으키면 이로 인해 타고 가고 구름이 흩어지고 비가 그치면 내려와 다시 못에 든다. 실로 황제가 용을 탔다면 따라 못에 빠졌을 것이다. 살피건대 황제가 교산에 묻혔는데도 오히려 뭇 신하가 그 옷과 관을 묻었다 한다. 참으로 용을 타고 하늘에 올랐다면 옷은 몸을 떠나지 않고, 봉선을 마치고 신선이 되어 갔다면 옷과 관도 남겨서는 마땅하지 않다. 황제가 실로 신선이 되어 죽지 않고 하늘에 올랐다면 신하와 자식과 백성이 몸소 본 바다. 그 하늘에 오름을 보았으면 그 죽지 않음을 반드시 안다. 죽지 않은 이의 옷과 관을 장사 지냄은 실로 죽은 이와 다를 것이 없으니, 신하와 자식이 실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삶을 죽음에서 가르는 뜻이 아니다.
載太山之上者七十有二君,皆勞情苦思,憂念王事,然後功成事立,致治太平。太平則天下和安,乃升太山而封禪焉。夫修道求仙,與憂職勤事不同。心思道則忘事,憂事則害性。世稱堯若腊,舜若,心愁憂苦,形體贏㮡。使黃帝致太平乎,則其形體宜如堯、舜。堯、舜不得道,黃帝升天,非其實也。使黃帝廢事修道,則心意調和,形體肥勁,是與堯、舜異也,異則功不同矣。功不同,天下未太平而升封,又非實也。五帝、三王皆有聖德之優者,黃帝(不)〔亦〕在上焉。如聖人皆仙,仙者非獨黃帝;如聖人不仙,黃帝何為獨仙?世見黃帝好方術,方術仙者之業,則謂帝仙矣。又見鼎湖之名,則言黃帝采首山銅鑄鼎,而龍垂胡髯迎黃帝矣。是與說會稽之山無以異也。夫山名曰會稽,即云夏禹巡狩,會計於此山上,故曰「會稽」。夫禹至會稽治水不巡狩,猶黃帝好方伎不升天也。無會計之事,猶無鑄鼎龍垂胡髯之實也。里名勝母,可謂實有子勝其母乎?邑名朝歌,可謂民朝起者歌乎?
태산 위에 오른 이가 일흔둘 임금인데 다 정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괴롭게 하며 왕의 일을 근심하고 염려한 뒤에 공을 이루고 일을 세워 태평의 다스림을 이루었다. 태평하면 천하가 화평하고 편안하니 이에 태산에 올라 봉선하였다. 무릇 도를 닦아 신선을 구함은 직분을 근심하고 일에 부지런함과 같지 않다. 마음이 도를 생각하면 일을 잊고 일을 근심하면 성품을 해친다. 세상은 요는 포 같고 순은 마른 고기 같았다 일컬으니 마음이 근심하고 괴로워 몸이 여위었다는 것이다. 황제가 태평을 이루었다면 그 몸이 마땅히 요·순과 같아야 한다. 요·순은 도를 얻지 못하였는데 황제는 하늘에 올랐다면 그 실상이 아니다. 황제가 일을 버리고 도를 닦았다면 마음과 뜻이 고르고 몸이 살지고 굳세니 이는 요·순과 다르고 다르면 공이 같지 않다. 공이 같지 않으면 천하가 태평하지 않았는데 올라 봉하였으니 또 실상이 아니다. 오제와 삼왕은 다 성스러운 덕이 뛰어난 이인데 황제도 그 위에 있다. 성인이 다 신선이 된다면 신선은 황제뿐이 아니요, 성인이 신선이 되지 않는다면 황제는 어찌 홀로 신선이 되는가. 세상은 황제가 방술을 좋아함을 보고 방술은 신선의 업이니 곧 황제가 신선이 되었다 한다. 또 정호의 이름을 보고 황제가 수산의 구리를 캐어 솥을 부으니 용이 턱수염을 드리우고 황제를 맞이하였다 한다. 이는 회계산을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무릇 산 이름이 회계라 하니 곧 하우가 순수하다가 이 산 위에서 회계하였으므로 「회계」라 한다 이른다. 무릇 우가 회계에 이른 것은 물을 다스린 것이지 순수한 것이 아니니, 황제가 방기를 좋아하였지 하늘에 오르지 않은 것과 같다. 회계한 일이 없음은 솥을 붓고 용이 턱수염을 드리운 실상이 없음과 같다. 마을 이름이 승모라 하여 실로 자식이 그 어미를 이긴 일이 있다 할 수 있는가. 고을 이름이 조가라 하여 백성이 아침에 일어나면 노래한다 할 수 있는가.
儒書言:淮南王學道,招會天下有道之人,傾一國之尊,下道術之士。是以道術之士,并會淮南,奇方異術,莫不爭出。王遂得道,舉家升天,畜產皆仙,犬吠於天上,雞鳴於雲中。此言仙葯有餘,犬雞食之,并隨王而升天也。好道學仙之人,皆謂之然。此虛言也。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회남왕이 도를 배워 천하의 도 있는 사람을 불러 모으며 한 나라의 높음을 기울여 도술의 선비에게 낮추었다. 이 때문에 도술의 선비가 회남에 모여 기이한 방술과 다른 술법이 다투어 나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왕이 마침내 도를 얻어 온 집이 하늘에 오르고 가축까지 다 신선이 되어 개는 하늘 위에서 짖고 닭은 구름 속에서 울었다 한다. 이는 신선의 약이 남아 개와 닭이 그것을 먹고 아울러 왕을 따라 하늘에 올랐다는 말이다. 도를 좋아하고 신선을 배우는 사람은 다 그렇다 한다. 이는 헛말이다.
夫人,物也,雖貴為王侯,性不異於物。物無不死,人安能仙?鳥有毛羽,能飛不能升天。人無毛羽,何用飛升?使有毛羽,不過與鳥同;況其無有,升天如何?案能飛升之物,生有毛羽之兆;能馳走之物,生有蹄足之形。馳走不能飛升,飛升不能馳走。稟性受氣,形體殊別也。今人稟馳走之性,故生無毛羽之兆,長大至老,終無奇怪。好道學仙,中生毛羽,終以飛升。使物性可變,金木水火,可革更也。蝦蟆化為鶉,雀入水為蜃蛤,稟自然之性,非學道所能為也。好道之人,恐其或若等之類,故謂人能生毛羽,毛羽備具,能升天也。且夫物之生長,無卒成暴起,皆有浸漸。為道學仙之人,能先生數寸之毛羽,從地自奮,升樓台之陛,乃可謂升天。今無小升之兆,卒有大飛之驗,何方術之學成無浸漸也?
무릇 사람은 물건이니 비록 귀하여 왕후가 되어도 성품이 물건과 다르지 않다. 물건은 죽지 않는 것이 없는데 사람이 어찌 신선이 되겠는가. 새는 털과 깃이 있어 날 수 있으나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사람은 털과 깃이 없는데 무엇으로 날아오르는가. 털과 깃이 있다 하여도 새와 같음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그것이 없으니 하늘에 오름이 어떠하겠는가. 살피건대 날아오를 수 있는 물건은 나면서 털과 깃의 조짐이 있고 달릴 수 있는 물건은 나면서 발굽과 발의 꼴이 있다. 달리는 것은 날아오르지 못하고 날아오르는 것은 달리지 못한다. 성품을 받고 기운을 받음에 몸이 서로 다르다. 이제 사람은 달리는 성품을 받았으므로 나면서 털과 깃의 조짐이 없고 자라 늙기에 이르도록 끝내 기이함이 없다. 도를 좋아하고 신선을 배워 중간에 털과 깃이 나서 마침내 날아오른다는 것이다. 물건의 성품을 바꿀 수 있다면 쇠와 나무와 물과 불도 고쳐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두꺼비가 변하여 메추라기가 되고 참새가 물에 들어가 조개가 되는 것은 절로 그러한 성품을 받은 것이지 도를 배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이 더러 이런 무리와 같을까 하여 사람이 털과 깃이 날 수 있고 털과 깃이 갖추어지면 하늘에 오를 수 있다 한다. 또 무릇 물건이 나고 자람에 갑자기 이루어지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없고 다 차츰 스며듦이 있다. 도를 닦고 신선을 배우는 사람이 먼저 몇 치의 털과 깃이 나서 땅에서 스스로 떨쳐 누대의 섬돌에 오를 수 있어야 곧 하늘에 오른다 할 수 있다. 이제 조금 오르는 조짐이 없는데 갑자기 크게 나는 증험이 있다면 어찌 방술의 배움이 이루어짐에 차츰 스며듦이 없는가.
毛羽大效,難以觀實。且以人髯髪物色少老驗之。
털과 깃의 큰 보람은 실상을 보기 어렵다. 우선 사람의 수염과 머리털과 물건의 빛깔로 젊고 늙음을 증험하자.
物生也色青,其熟也色黃。人之少也髪黑,其老也髪白。黃為物熟驗,白為人老效。物黃,人雖灌溉壅養,終不能青;髪白,雖吞葯養性,終不能黑。黑青不可復還,老衰安可復卻?黃之與白,猶肉腥炙之,魚鮮煮之熟也。不可復令腥,熟不可復令鮮。鮮腥猶少壯,熟猶衰老也。天養物,能使物暢至秋,不得延之至春。吞葯養性,能令人無病,不能壽之為仙。為仙體輕氣強,猶未能升天,令見輕強之驗,亦無毛羽之效,何用升天?天之與地,皆體也。地無下,則天無上矣。天無上升之路,何如穿天之體?人力不能入。如天之門在西北,升天之人,宜從昆侖上。淮南之國,在地東南。如審升天,宜舉家先從昆侖,乃得其階。如鼓翼邪飛,趨西北之隅,是則淮南王有羽翼也。今不言其從之昆侖,亦不言其身生羽翼,空言升天,竟虛非實也。
물건이 날 때는 빛이 푸르고 익으면 빛이 누렇다. 사람이 젊을 때는 머리털이 검고 늙으면 머리털이 희다. 누런 것은 물건이 익은 증험이요 흰 것은 사람이 늙은 보람이다. 물건이 누레지면 사람이 물을 대고 북돋아 길러도 끝내 푸르게 할 수 없고, 머리털이 희어지면 약을 삼키고 성품을 길러도 끝내 검게 할 수 없다. 검음과 푸름을 다시 돌이킬 수 없는데 늙고 쇠함을 어찌 다시 물리치겠는가. 누런 것과 흰 것은 고기가 날것인 것을 굽고 물고기가 싱싱한 것을 삶아 익힌 것과 같다. 익은 것을 다시 날것으로 할 수 없고 익은 것을 다시 싱싱하게 할 수 없다. 싱싱하고 날것인 것은 젊고 씩씩함과 같고 익은 것은 쇠하고 늙음과 같다. 하늘이 물건을 기르되 물건을 가을까지 무성하게 할 수 있으나 봄까지 늘일 수는 없다. 약을 삼키고 성품을 기르면 사람에게 병이 없게 할 수 있으나 오래 살게 하여 신선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신선이 되면 몸이 가볍고 기운이 강하나 오히려 하늘에 오를 수 없으니, 가볍고 강한 증험을 보이더라도 또한 털과 깃의 보람이 없으니 무엇으로 하늘에 오르는가. 하늘과 땅은 다 몸이다. 땅에 아래가 없으면 하늘에 위가 없다. 하늘에 오르는 길이 없으니 하늘의 몸을 뚫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사람의 힘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하늘의 문이 서북에 있다면 하늘에 오르는 사람은 마땅히 곤륜에서 올라야 한다. 회남의 나라는 땅의 동남에 있다. 참으로 하늘에 올랐다면 마땅히 온 집이 먼저 곤륜을 따라가야 그 섬돌을 얻는다. 날개를 치고 비스듬히 날아 서북 모퉁이로 달려갔다면 이는 회남왕에게 날개가 있는 것이다. 이제 그가 곤륜을 따랐다고 말하지 않고 또 그 몸에 날개가 났다고도 말하지 않으며 헛되이 하늘에 올랐다 말하니 끝내 헛되어 실상이 아니다.
案淮南王劉安,孝武皇帝之時也。父長,以罪遷蜀嚴道,至雍道死。安嗣為王,恨父徙死,懷反逆之心,招會術人,欲為大事。伍被之屬充滿殿堂,作道術之書,發怪奇之文,合景亂首。八公之(傳)〔儔〕欲示神奇若得道之狀,道終不成,效驗不立,乃與伍被謀為反事,事覺自殺,或言誅死。誅死、自殺,同一實也。世見其書深冥奇怪,又觀八公之(傳)〔儔〕似若有效,則傳稱淮南王仙而升天,失其實也。
살피건대 회남왕 유안은 효무황제 때 사람이다. 아비 장이 죄로 촉 엄도로 옮겨지다가 옹에 이르러 길에서 죽었다. 안이 이어 왕이 되었는데 아비가 옮겨져 죽은 것을 한하여 배반의 마음을 품고 술사를 불러 모아 큰일을 하려 하였다. 오피의 무리가 전당에 가득하여 도술의 책을 짓고 괴이하고 기이한 글을 내어 그림자를 모으고 머리를 어지럽혔다. 팔공의 무리가 신기하기가 도를 얻은 모양 같음을 보이려 하였으나 도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보람이 서지 않자 이에 오피와 배반을 꾀하다가 일이 드러나 스스로 죽었으니 더러는 죽임을 당하였다고도 한다. 죽임을 당함과 스스로 죽음은 한가지 실상이다. 세상은 그 책이 깊고 그윽하고 기이하고 괴이함을 보고 또 팔공의 무리가 보람이 있는 것 같음을 보고 곧 회남왕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올랐다 전하니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儒書言:盧敖游乎北海,經乎太陰,入乎玄關,至於蒙谷之上,見一士焉:深目玄准,雁頸而(戴)〔鳶〕肩,浮上而殺下,軒軒然方迎風而舞。顧見盧敖,樊然下其臂,遁逃乎碑下。敖乃視之,方卷然龜背而食合梨。盧敖仍與之語曰:「吾子唯以敖為倍俗,去群離黨,窮觀於六合之外者,非敖而己。敖幼而游,至長不(倫)〔偷〕解,周行四極,唯北陰之未窺。今卒睹夫子於是,殆可與敖為友乎?」若士者悖然而笑曰:「嘻!子中州之民也,不宜遠至此。此猶〔乎〕光日月而戴列星,四時之所行,陰陽之所生也。此其比夫不名之地,猶突兀也。若我南游乎罔浪之野,北息乎沉之鄉,西窮乎杳冥之党,而東貫須之先。此其下無地,上無天,聽焉無聞,而視焉則營;此其外猶有狀,有狀之餘,壹舉而能千萬里,吾猶未能之在。今子游始至於此,乃語窮觀,豈不亦遠哉!然子處矣。吾與汗漫期於九垓之上,吾不可久。」若士者舉臂而縱身,逐入雲中。盧敖目仰而視之,不見乃止,喜心不怠,悵若有喪,曰:「吾比夫子也,猶黃鵠之與壤蟲也,終日行而不離咫尺,而自以為遠,豈不悲哉!」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노오가 북해에 노닐다가 태음을 지나 현관에 들어 몽곡 위에 이르러 한 선비를 보았다. 눈이 깊고 코가 검으며 기러기 목에 솔개 어깨요 위는 뜨고 아래는 가늘어 헌헌하게 바야흐로 바람을 맞아 춤추고 있었다. 돌아보다 노오를 보자 어수선히 그 팔을 내리고 비석 아래로 달아나 숨었다. 오가 이에 보니 바야흐로 거북 등처럼 웅크리고 조개를 먹고 있었다. 노오가 이에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오직 오를 세속을 등지고 무리를 떠나고 당을 떠나 육합 밖까지 두루 본 이라 여길 것이니 오가 아니면 그대뿐이오. 오는 어려서부터 노닐어 자라기에 이르도록 게으르지 않고 사방 끝을 두루 다녔으나 오직 북음만 아직 엿보지 못하였소. 이제 갑자기 그대를 여기서 보았으니 아마 오와 벗이 될 수 있겠소?」 그 선비가 발끈 웃으며 말하였다. 「허! 그대는 중주의 백성이니 멀리 여기까지 옴이 마땅하지 않소. 여기도 오히려 해와 달이 비추고 뭇별을 이며 사철이 다니고 음양이 낳는 바요. 이곳을 저 이름 없는 땅에 견주면 오히려 우뚝한 것이오. 나는 남으로 망랑의 들에 노닐고 북으로 침묵의 고을에 쉬며 서로 아득한 마을을 다하고 동으로 홍몽의 앞을 꿰뚫었소. 그곳은 아래에 땅이 없고 위에 하늘이 없어 들으려 하면 들리지 않고 보려 하면 어지럽소. 그 밖에 오히려 모양이 있고 모양 있는 것의 나머지는 한 번 들면 천만 리를 갈 수 있는데 나는 오히려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하였소. 이제 그대는 노닐어 겨우 여기 이르러 곧 두루 보았다 말하니 어찌 또한 멀지 않겠소! 그러나 그대는 머무시오. 나는 한만과 구해 위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니 오래 있을 수 없소.」 그 선비가 팔을 들고 몸을 날려 마침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노오가 눈을 들어 우러러보다가 보이지 않자 이에 그치고, 기쁜 마음이 게으르지 않았으나 무엇을 잃은 듯 서운하여 말하였다. 「내가 저 선비에 견주면 누런 고니와 흙벌레 같아 종일 가도 지척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스스로 멀다 여겼으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若盧敖者,唯龍無翼者升則乘雲。盧敖言若士者有翼,言乃可信。今不言有翼,何以升雲?且凡能輕舉入雲中者,飲食與人殊之故也。龍食與蛇異,故其舉措與蛇不同。聞為道者服金玉之精,食紫芝之英,食精身輕,故能神仙。若士者食合蜊之肉,與庸民同食,無精輕之驗,安能縱體而升天?聞食氣者不食物,食物者不食氣。若士者食物如不食氣,則不能輕舉矣。
노오 같은 이는 오직 용이 날개 없이 오르면 구름을 탄다고 하였다. 노오가 그 선비에게 날개가 있다고 말하였다면 말을 믿을 수 있다. 이제 날개가 있다고 말하지 않으니 무엇으로 구름에 오르는가. 또 무릇 가볍게 들어 구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먹고 마심이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용의 먹이는 뱀과 다르므로 그 거동이 뱀과 같지 않다. 듣건대 도를 닦는 이는 금옥의 정수를 먹고 자줏빛 영지의 꽃을 먹어 정수를 먹어 몸이 가벼우므로 신선이 될 수 있다 한다. 그 선비는 조개의 살을 먹어 뭇 백성과 같이 먹으니 정수로 가벼워진 증험이 없는데 어찌 몸을 날려 하늘에 오르겠는가. 듣건대 기운을 먹는 이는 물건을 먹지 않고 물건을 먹는 이는 기운을 먹지 않는다 한다. 그 선비가 물건을 먹으니 기운을 먹지 않는다면 가볍게 들 수 없다.
或時盧敖學道求仙,游乎北海,離眾遠去,無得道之效,慚於鄉里,負於論議。自知以必然之事見責於世,則作夸誕之語,云見一士,其意以為有〔仙〕,求(仙)之未得,期數未至也。淮南王劉安坐反而死,天下并聞,當時并見,儒書尚有言其得道仙去,雞犬升天者;況盧敖一人之身,獨行絕跡之地,空造幽冥之語乎?是與河東蒲阪項曼都之語,無以異也。曼都好道學仙,委家亡去,三年而返。家問其狀,曼都曰:「去時不能自知,忽見若臥形,有仙人數人,將我上天,離月數里而止。見月上下幽冥,幽冥不知東西。居月之旁,其寒淒愴。口飢欲食,仙人輒飲我以流霞一杯,每飲一杯,數月不飢。不知去幾何年月,不知以何為過,忽然若臥,復下至此。」河東號之曰「斥仙」。
혹 노오가 도를 배우고 신선을 구하여 북해에 노닐며 무리를 떠나 멀리 갔으나 도를 얻은 보람이 없어 고을에 부끄럽고 논의에 짐이 되었을 것이다. 반드시 그러한 일로 세상에 꾸짖음을 받을 것을 스스로 알고 곧 과장되고 허탄한 말을 지어 한 선비를 보았다 하니, 그 뜻은 신선이 있으나 구하여 아직 얻지 못한 것은 기수가 아직 이르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회남왕 유안이 배반에 걸려 죽은 것은 천하가 다 듣고 당시에 다 보았는데도 유가의 책에 오히려 그가 도를 얻어 신선이 되어 가고 닭과 개가 하늘에 올랐다 말하는 이가 있다. 하물며 노오 한 사람의 몸이 자취 끊긴 땅을 홀로 다녔으니 헛되이 그윽한 말을 지어내지 않았겠는가. 이는 하동 포판 항만도의 말과 다를 것이 없다. 만도가 도를 좋아하고 신선을 배워 집을 버리고 달아났다가 세 해 만에 돌아왔다. 집에서 그 형편을 물으니 만도가 말하였다. 「갈 때는 스스로 알지 못하였는데 문득 누운 듯하더니 신선 몇 사람이 나를 데리고 하늘에 올라 달에서 몇 리 떨어져 멈추었다. 달의 위아래가 어둑한 것을 보았는데 어둑하여 동서를 알 수 없었다. 달 곁에 머무니 그 추위가 처량하였다. 입이 주려 먹고 싶으면 신선이 곧 나에게 유하 한 잔을 마시게 하였는데 한 잔 마실 때마다 몇 달 주리지 않았다. 몇 해 몇 달을 갔는지 모르고 무엇으로 허물이 되었는지 모르는데 문득 누운 듯하더니 다시 내려와 여기 이르렀다.」 하동에서 그를 「쫓겨난 신선」이라 불렀다.
實論者聞之,乃知不然。夫曼都能上天矣,何為不仙?已三年矣,何故復還?夫人去民間,升皇天之上,精氣形體,有變於故者矣。萬物變化,無復還者。復育化為蟬,羽翼既成,不能復化為復育。能升之物,皆有羽翼,升而復降,羽翼如故。見曼都之身有羽翼乎,言乃可信;身無羽翼,言虛妄也。虛則與盧敖同一實也。或時(聞)曼都好道,默委家去,周章遠方,終無所得。力倦望極,默復歸家,慚愧無言,則言上天。其意欲言道可學得,審有仙人;己殆有過,故成而復斥,升而復降。
실상을 논하는 이가 들으면 곧 그렇지 않음을 안다. 무릇 만도가 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면 어찌 신선이 되지 않았는가. 이미 세 해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다시 돌아왔는가. 무릇 사람이 민간을 떠나 황천 위에 오르면 정기와 몸이 예전에서 변함이 있다. 만물의 변화는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없다. 복육이 변하여 매미가 되면 날개가 이미 이루어져 다시 변하여 복육이 될 수 없다. 오를 수 있는 물건은 다 날개가 있어 올랐다 다시 내려와도 날개는 예전과 같다. 만도의 몸에 날개가 있음을 보았다면 말을 믿을 수 있으나 몸에 날개가 없으니 말이 헛되고 망령되다. 헛되면 노오와 한가지 실상이다. 혹 만도가 도를 좋아하여 말없이 집을 버리고 가서 먼 곳을 두루 다녔으나 끝내 얻은 바가 없었을 것이다. 힘이 지치고 바람이 다하여 말없이 다시 집에 돌아와 부끄러워 말이 없다가 곧 하늘에 올랐다 말한 것이다. 그 뜻은 도를 배워 얻을 수 있고 참으로 신선이 있으나 저에게 아마 허물이 있었으므로 이루었다가 다시 쫓겨나고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 말하려는 것이다.
儒書言:齊王疾,使人之宋迎文摯。文摯至,視王之疾,謂太子曰:「王之疾,必可已也。」雖然,王之疾已,則必殺摯也。太子曰:「何故?」文摯對曰:「非怒王,疾不可治也。王怒,則摯必死。」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제왕이 병들어 사람을 송나라에 보내 문지를 맞이하였다. 문지가 이르러 왕의 병을 보고 태자에게 말하였다. 「왕의 병은 반드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병이 나으면 반드시 지를 죽일 것이라 하였다. 태자가 말하였다. 「무슨 까닭입니까?」 문지가 대답하였다. 「왕을 노하게 하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왕이 노하면 지는 반드시 죽습니다.」
太子頓首強請曰:「苟已王之疾,臣與臣之母以死爭之於王,必幸臣之母。願先生之勿患也。」
태자가 머리를 조아리고 힘써 청하며 말하였다. 「진실로 왕의 병을 고치신다면 신과 신의 어머니가 죽음으로 왕께 다투겠으니 반드시 신의 어머니를 총애하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文摯曰:「諾,請以死為王。」與太子期,將往不至者三,齊王固已怒矣。文摯至,不解屨登床履衣,問王之疾。王怒而不與言。文摯因出辭以重王怒。王叱而起,疾乃遂已。王大怒不悅,將生烹文摯。太子與王后急爭之而不能得,果以鼎生烹文摯,爨之三日三夜,顏色不變。文摯曰:「誠欲殺我,則胡不覆之,以絕陰陽之氣。」
문지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청컨대 죽음으로 왕을 위하겠습니다.」 태자와 기약하고 가겠다 하고 이르지 않은 것이 세 번이니 제왕이 본디 이미 노하였다. 문지가 이르러 신을 벗지 않고 침상에 올라 옷을 밟고 왕의 병을 물었다. 왕이 노하여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문지가 이로 인해 말을 내어 왕의 노여움을 무겁게 하였다. 왕이 꾸짖으며 일어나니 병이 이에 마침내 나았다. 왕이 크게 노하여 기뻐하지 않고 장차 문지를 산 채로 삶으려 하였다. 태자와 왕후가 급히 다투었으나 얻지 못하여 과연 솥에 문지를 산 채로 삶아 사흘 밤낮을 불을 때었는데 낯빛이 변하지 않았다. 문지가 말하였다. 「참으로 나를 죽이려 하거든 어찌 뚜껑을 덮어 음양의 기운을 끊지 않는가.」
王使覆之,文摯乃死。夫文摯,道人也,入水不濡,入火不,故在鼎三日三夜,顏色不變。此虛言也。
왕이 덮게 하니 문지가 이에 죽었다. 무릇 문지는 도인이라 물에 들어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도 타지 않으므로 솥에 사흘 밤낮 있어도 낯빛이 변하지 않았다 한다. 이는 헛말이다.
夫文摯而烹三日三夜,顏色不變,為一覆之,故絕氣而死,非得道之驗也。諸生息之物,氣絕則死。死之物,烹之輒爛。致生息之物密器之中,覆蓋其口,漆塗其隙,中外氣隔,息不得泄,有頃死也。如置湯鑊之中,亦輒爛矣。何則?體同氣均,稟性於天,共一類也。文摯不息乎,與金石同,入湯不爛,是也。令文摯息乎,烹之不死,非也。令文摯言,言則以聲,聲以呼吸。呼吸之動,因血氣之發。血氣之發,附於骨肉。骨肉之物,烹之輒死。今言烹之不死,一虛也。既能烹煮不死,此真人也,與金石同。金石雖覆蓋,與不覆蓋者無以異也。今言文摯覆之則死,二虛也。置人寒水之中,無湯火之熱,鼻中口內不通於外,斯須之頃,氣絕而死矣。寒水沉人,尚不得生,況在沸湯之中,有猛火之烈乎?言其入湯不死,三虛也。人沒水中,口不見於外,言音不揚。烹文摯之時,身必沒於鼎中。
무릇 문지가 삶긴 지 사흘 밤낮에 낯빛이 변하지 않다가 한 번 덮으니 기운이 끊겨 죽었다면 도를 얻은 증험이 아니다. 모든 살아 숨 쉬는 물건은 기운이 끊기면 죽는다. 죽은 물건은 삶으면 곧 문드러진다. 살아 숨 쉬는 물건을 밀폐한 그릇 가운데 두고 그 아가리를 덮고 그 틈을 옻으로 발라 안팎의 기운이 막혀 숨이 새지 못하면 잠깐 만에 죽는다. 끓는 가마 가운데 두면 또한 곧 문드러진다. 어째서인가. 몸이 같고 기운이 고르며 하늘에서 성품을 받아 한 무리이기 때문이다. 문지가 숨 쉬지 않아 쇠와 돌과 같아 끓는 물에 들어도 문드러지지 않았다면 옳다. 문지가 숨 쉬는데 삶아도 죽지 않았다면 그르다. 문지가 말하였다면 말은 소리로 하고 소리는 숨으로 한다. 숨의 움직임은 피와 기운이 일어남에 말미암는다. 피와 기운이 일어남은 뼈와 살에 붙는다. 뼈와 살의 물건은 삶으면 곧 죽는다. 이제 삶아도 죽지 않았다 말하니 첫째 헛됨이다. 이미 삶아도 죽지 않을 수 있다면 이는 진인이라 쇠와 돌과 같다. 쇠와 돌은 덮어도 덮지 않은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제 문지가 덮으니 죽었다 말하니 둘째 헛됨이다. 사람을 찬물 가운데 두고 끓는 물과 불의 뜨거움이 없어도 콧속과 입 안이 밖과 통하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기운이 끊겨 죽는다. 찬물에 사람을 잠기게 하여도 오히려 살 수 없는데 하물며 끓는 물 가운데 사나운 불의 매서움이 있음에랴. 그가 끓는 물에 들어도 죽지 않았다 말하니 셋째 헛됨이다. 사람이 물속에 잠기면 입이 밖에 보이지 않아 말소리가 오르지 않는다. 문지를 삶을 때 몸이 반드시 솥 가운데 잠겼을 것이다.
沒則口不見,口不見則言不揚。文摯之言,四虛也。烹輒死之人,三日三夜顏色不變,痴愚之人,尚知怪之。使齊王無知,太子群臣宜見其奇。奇怪文摯,則請出尊寵敬事,從之問道。今言三日三夜,無臣子請出之言,五虛也。此或時聞文摯實烹,烹而輒死。世見文摯為道人也,則為虛生不死之語矣。猶黃帝實死也,傳言升天;淮南坐反,書言度世。世好傳虛,故文摯之語傳至於今。
잠기면 입이 보이지 않고 입이 보이지 않으면 말이 오르지 않는다. 문지의 말은 넷째 헛됨이다. 삶으면 곧 죽는 사람이 사흘 밤낮 낯빛이 변하지 않았다면 어리석은 사람도 오히려 괴이하게 여길 줄 안다. 제왕이 무지하였다 하여도 태자와 뭇 신하는 마땅히 그 기이함을 보았을 것이다. 문지를 기이하게 여겼다면 곧 꺼내어 높이고 총애하고 공경히 섬기며 따라 도를 물었을 것이다. 이제 사흘 밤낮이라 말하면서 신하와 자식이 꺼내자고 청한 말이 없으니 다섯째 헛됨이다. 이는 혹 문지가 실로 삶겨 삶기자 곧 죽었다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세상은 문지가 도인임을 보고 곧 헛되이 죽지 않았다는 말을 지어냈다. 황제가 실로 죽었는데 전하는 말이 하늘에 올랐다 하고 회남이 배반에 걸렸는데 책이 세상을 건넜다 하는 것과 같다. 세상이 헛됨을 전하기 좋아하므로 문지의 말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世無得道之效,而有有壽之人,世見長壽之人,學道為仙,逾百不死,共謂之仙矣。何以明之?如武帝之時,有李少君以祠灶辟谷卻老方見上,上尊重之。少君匿其年及所生長,常自謂七十,而能使物卻老。其游以方遍諸侯,無妻。人聞其能使物及不老,更餽遺之,常餘錢金衣食。
세상에 도를 얻은 보람은 없으나 장수한 사람은 있으니 세상은 장수한 사람이 도를 배워 신선이 되려 하다가 백을 넘어도 죽지 않는 것을 보고 함께 신선이라 한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무제 때 이소군이 부엌 신에게 제사하고 곡식을 끊고 늙음을 물리치는 방술로 임금을 뵈니 임금이 그를 높이고 무겁게 여겼다. 소군은 그 나이와 나고 자란 곳을 숨기고 늘 스스로 일흔이라 하며 물건을 부려 늙음을 물리칠 수 있다 하였다. 그가 방술로 제후를 두루 노닐며 아내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가 물건을 부리고 늙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번갈아 선물을 보내니 늘 돈과 금과 옷과 먹을 것이 남았다.
人皆以為不治產業饒給,又不知其何許人,愈爭事之。少君資好方,善為巧發奇中。嘗從武安侯君見上,上有古銅器,問少君。少君曰:「此器齊桓公十五年陳於柏寢。」已而案其刻,果齊桓公器,一宮盡驚,以為少君數百歲人也。久之,少君病死。
사람들은 다 그가 산업을 다스리지 않는데도 넉넉하다 여기고 또 그가 어디 사람인지 모르니 더욱 다투어 섬겼다. 소군은 방술을 좋아하는 바탕으로 교묘히 내어 기이하게 맞히기를 잘하였다. 일찍이 무안후를 따라 임금을 뵈었는데 임금에게 옛 구리 그릇이 있어 소군에게 물었다. 소군이 말하였다. 「이 그릇은 제 환공 십오년에 백침에 진열한 것입니다.」 이윽고 그 새김을 살피니 과연 제 환공의 그릇이라 온 궁이 다 놀라 소군이 수백 살 사람이라 여겼다. 오래되어 소군이 병들어 죽었다.
今世所謂得道之人,李少君之類也。少君死於人中,人見其尸,故知少君性壽之人也。如少君處山林之中,入絕跡之野,獨病死於岩石之間,尸為虎狼狐狸之食,則世復以為真仙去矣。
이제 세상에서 이른바 도를 얻은 사람은 이소군의 무리다. 소군이 사람들 가운데서 죽어 사람들이 그 주검을 보았으므로 소군이 성품이 장수한 사람임을 안다. 소군이 산림 가운데 살고 자취 끊긴 들에 들어가 홀로 바위 사이에서 병들어 죽어 주검이 범과 이리와 여우와 살쾡이의 밥이 되었다면 세상은 다시 참으로 신선이 되어 갔다 여겼을 것이다.
世學道之人無少君之壽,年未至百,與眾俱死。愚夫無知之人,尚謂之尸解而去,其實不死。所謂尸解者,何等也?謂身死精神去乎,謂身不死得免去皮膚也?如謂身死精神去乎,是與死無異,人亦仙人也;如謂不死免去皮膚乎,諸學道死者骨肉具在,與恆死之尸無以異也。夫蟬之去復育,龜之解甲,蛇之脫皮,鹿之墮角,殼皮之物解殼皮,持骨肉去,可謂尸解矣。今學道而死者,尸與復育相似,尚未可謂之尸解。何則?案蟬之去復育,無以神於復育,況不相似復育,謂之尸解,蓋復虛妄失其實矣。太史公與李少君同世并時,少君之死,臨尸者雖非太史公,足以見其實矣。如實不死。尸解而去,太史公宜紀其狀,不宜言死,其處座中年九十老父為兒時者,少君老壽之效也。或少君年十四五,老父為兒,隨其王父。少君年二百歲而死,何為不識?武帝去桓公鑄銅器,且非少君所及見也。或時聞宮殿之內有舊銅器,或案其刻以告之者,故見而知之。今時好事之人,見舊劍古鉤,多能名之,可復謂目見其鑄作之時乎?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은 소군의 수명도 없어 나이가 백에 이르기 전에 뭇사람과 함께 죽는다.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은 오히려 시해하여 갔다 하니 실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시해란 무엇인가. 몸이 죽고 정신이 가는 것을 이르는가, 몸이 죽지 않고 살갗을 벗어 가는 것을 이르는가. 몸이 죽고 정신이 간다 하면 이는 죽음과 다를 것이 없으니 사람도 다 신선이다. 죽지 않고 살갗을 벗어 간다 하면 도를 배우다 죽은 여러 사람은 뼈와 살이 다 있어 예사로 죽은 주검과 다를 것이 없다. 무릇 매미가 복육을 벗고 거북이 껍질을 벗고 뱀이 허물을 벗고 사슴이 뿔을 떨구는 것은 껍질과 가죽의 물건이 껍질과 가죽을 벗고 뼈와 살을 가지고 가니 시해라 할 만하다. 이제 도를 배우다 죽은 이는 주검이 복육과 서로 비슷하나 오히려 시해라 할 수 없다. 어째서인가. 살피건대 매미가 복육을 벗어도 복육보다 신령할 것이 없는데 하물며 복육과 비슷하지도 않은데 시해라 하니 또 헛되고 망령되어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태사공은 이소군과 같은 세상 같은 때인데 소군이 죽을 때 주검에 임한 이가 태사공은 아니더라도 그 실상을 보기에 넉넉하다. 실로 죽지 않고 시해하여 갔다면 태사공이 마땅히 그 모양을 적어야지 죽었다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 자리 가운데 아흔 살 늙은이가 아이였을 때라 한 것은 소군이 늙어 장수한 보람이다. 혹 소군이 열넷이나 열다섯일 때 늙은이가 아이로 그 할아버지를 따랐을 것이다. 소군이 이백 살에 죽었다면 어찌 알지 못하였겠는가. 무제와 환공이 구리 그릇을 부은 때의 거리는 소군이 미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혹 궁전 안에 옛 구리 그릇이 있다는 말을 들었거나 그 새김을 살펴 알려 준 이가 있었으므로 보고 안 것이다. 지금 일 좋아하는 사람이 옛 칼과 옛 갈고리를 보면 흔히 이름을 댈 수 있는데 다시 그것이 부어 만들어질 때를 눈으로 보았다 할 수 있는가.
世或言東方朔亦道人也,姓金氏,字曼倩。變姓易名,游宦漢朝。外有仕宦之名,內乃度世之人,此又虛也。
세상은 더러 동방삭도 도인이라 하니 성은 김씨요 자는 만천으로, 성을 바꾸고 이름을 고쳐 한나라 조정에 벼슬하여 밖으로는 벼슬하는 이름이 있고 안으로는 곧 세상을 건넌 사람이라 한다. 이 또한 헛되다.
夫朔與少君并在武帝之時,太史公所及見也。少君有(教)〔谷〕道祠灶卻老之方,又名齊桓公所鑄鼎,知九十老人王父所游射之驗,然尚無得道之實,而徒性壽遲死之人也。況朔無少君之方術效驗,世人何見謂之得道?案武帝之時,道人文成、五利之輩,入海求仙人,索不死之葯,有道術之驗,故為上所信。朔無入海之使,無奇怪之效也。如使有奇,不過少君之類及文成、五利之輩耳,況謂之有道?
무릇 삭은 소군과 아울러 무제 때에 있어 태사공이 미쳐 본 바다. 소군은 곡식을 끊고 부엌 신에게 제사하여 늙음을 물리치는 방술이 있고 또 제 환공이 부은 솥을 이름 대고 아흔 살 노인의 할아버지가 노닐며 활 쏘던 곳을 안 증험이 있었으나 오히려 도를 얻은 실상은 없고 한갓 성품이 장수하여 더디 죽은 사람이었다. 하물며 삭은 소군의 방술의 증험도 없는데 세상 사람이 무엇을 보고 도를 얻었다 하는가. 살피건대 무제 때 도인 문성과 오리의 무리가 바다에 들어가 신선을 구하고 죽지 않는 약을 찾아 도술의 증험이 있었으므로 임금에게 믿음을 받았다. 삭은 바다에 들어가는 사행도 없고 기이한 보람도 없다. 기이함이 있다 하여도 소군의 무리와 문성·오리의 무리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하물며 도가 있다 하는가.
此或時偶復若少君矣,自匿所生之處,當時在朝之人不知其故,朔盛稱其年長,人見其面狀少,性又恬淡,不好仕宦,善達占卜射覆為怪奇之戲,世人則謂之得道之人矣。
이는 혹 우연히 또 소군과 같아 스스로 난 곳을 숨겨 당시 조정에 있던 사람이 그 까닭을 모르고 삭이 그 나이가 많다 성대히 일컬었는데 사람이 그 얼굴이 젊음을 보고 성품이 또 담박하여 벼슬을 좋아하지 않고 점치고 사복 맞히기 등 괴이하고 기이한 놀이에 능하니 세상 사람이 곧 도를 얻은 사람이라 한 것이다.
世或以老子之道為可以度世,恬淡無欲,養精愛氣。夫人以精神為壽命,精神不傷則壽命長而不死。成事,老子行之,逾百度世,為真人矣。
세상은 더러 노자의 도로 세상을 건널 수 있다 하니 담박하여 욕심이 없고 정기를 기르고 기운을 아낀다는 것이다. 무릇 사람은 정신으로 수명을 삼으니 정신이 상하지 않으면 수명이 길어 죽지 않는다. 이루어진 일로 노자가 이를 행하여 백을 넘겨 세상을 건너 진인이 되었다 한다.
夫恬淡少欲,孰與鳥獸?鳥獸亦老而死。鳥獸含情欲,有與人相類者矣,未足以言。草木之生何情欲,而春生秋死乎?
무릇 담박하고 욕심이 적음이 새와 짐승에 견주어 어떠한가. 새와 짐승도 늙어 죽는다. 새와 짐승은 정욕을 머금어 사람과 서로 비슷한 데가 있으니 말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풀과 나무는 나면서 무슨 정욕이 있어 봄에 나고 가을에 죽는가.
夫草木無欲,壽不逾歲;人多情欲,壽至於百。此無情欲者反夭,有情欲者壽也。夫如是,老子之術以恬淡無欲延壽度世者,復虛也。或時老子,李少君之類也,行恬淡之道,偶其性命亦自壽長。世見其命壽,又聞其恬淡,謂老子以術度世矣。
무릇 풀과 나무는 욕심이 없는데 수명이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람은 정욕이 많은데 수명이 백에 이른다. 이는 정욕 없는 것이 도리어 일찍 죽고 정욕 있는 것이 오래 사는 것이다. 이러하니 노자의 술법이 담박하고 욕심이 없어 수명을 늘이고 세상을 건넜다는 것도 헛되다. 혹 노자는 이소군의 무리라 담박한 도를 행하다가 우연히 그 성명이 또한 절로 장수하였을 것이다. 세상은 그 수명을 보고 또 그 담박함을 듣고 노자가 술법으로 세상을 건넜다 한다.
世或以辟谷不食為道術之人,謂王子喬之輩以不食谷,與恆人殊食,故與恆人殊壽,逾百度世,逐為仙人。此又虛也。夫人之生也,稟食飲之性,故形上有口齒,形下有孔竅。口齒以拕食,孔竅以注瀉。順此性者為得天正道,逆此性者為違所稟受。失本氣於天,何能得久壽?使子喬生無齒口孔竅,是稟性與人殊;稟性與人殊,尚未可謂壽,況形體均同而以所行者異,言其得度世,非性之實也。
세상은 더러 곡식을 끊고 먹지 않는 것을 도술의 사람이라 하여 왕자교의 무리가 곡식을 먹지 않아 예사 사람과 먹는 것이 다르므로 예사 사람과 수명이 달라 백을 넘겨 세상을 건너 마침내 신선이 되었다 한다. 이 또한 헛되다. 무릇 사람이 남에 먹고 마시는 성품을 받았으므로 몸 위에 입과 이가 있고 몸 아래에 구멍이 있다. 입과 이로 먹을 것을 씹고 구멍으로 쏟아 낸다. 이 성품을 따르는 것이 하늘의 바른 도를 얻은 것이요 이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 받은 바를 어기는 것이다. 하늘에서 받은 본디 기운을 잃고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자교가 나면서 이와 입과 구멍이 없었다면 이는 받은 성품이 사람과 다른 것이다. 받은 성품이 사람과 달라도 오히려 장수라 할 수 없는데 하물며 몸이 고루 같으면서 행하는 바가 다르다 하여 세상을 건넜다 말하니 성품의 실상이 아니다.
夫人之不食也,猶身之不衣也。衣以溫膚,食以充腹。膚溫腹飽,精神明盛。如飢而不飽,寒而不溫,則有凍餓之害矣。凍餓之人,安能久壽?且人之生也,以食為氣,猶草木生以土為氣矣。拔草木之根,使之離土,則枯而蚤死。閉人之口,使之不食,則餓而不壽矣。
무릇 사람이 먹지 않음은 몸이 옷 입지 않음과 같다. 옷으로 살갗을 따뜻이 하고 먹을 것으로 배를 채운다. 살갗이 따뜻하고 배가 부르면 정신이 밝고 성하다. 주려도 배부르지 못하고 추워도 따뜻하지 못하면 얼고 굶주리는 해가 있다. 얼고 굶주리는 사람이 어찌 오래 살겠는가. 또 사람이 남에 먹을 것으로 기운을 삼으니 풀과 나무가 남에 흙으로 기운을 삼는 것과 같다. 풀과 나무의 뿌리를 뽑아 흙에서 떨어지게 하면 말라 일찍 죽는다. 사람의 입을 막아 먹지 못하게 하면 주려 오래 살지 못한다.
道家相夸曰:真人食氣。以氣而為食,故傳曰:「食氣者壽而不死,雖不谷飽,亦以氣盈。」此又虛也。
도가는 서로 자랑하여 말하기를, 진인은 기운을 먹는다 한다. 기운으로 먹을 것을 삼으므로 전에 이르기를 「기운을 먹는 이는 오래 살고 죽지 않으니 비록 곡식으로 배부르지 않아도 또한 기운으로 찬다」 하였다. 이 또한 헛되다.
夫氣,謂何氣也?如謂陰陽之氣,陰陽之氣不能飽人,人或咽氣,氣滿腹脹,不能饜飽。如謂百葯之氣,人或服葯,食一合屑,吞數十丸,葯力烈盛,胸中憒毒,不能飽人。食氣者必謂吹呼吸,吐故納新也。昔有彭祖嘗行之矣,不能久壽,病而死矣。
무릇 기운이란 무슨 기운을 이르는가. 음양의 기운이라 한다면 음양의 기운은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없으니 사람이 더러 기운을 삼키면 기운이 차서 배가 부풀 뿐 배부를 수 없다. 온갖 약의 기운이라 한다면 사람이 더러 약을 먹어 한 홉 가루를 먹고 수십 알을 삼키면 약의 힘이 매섭고 성하여 가슴이 어지럽고 독하니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없다. 기운을 먹는 이는 반드시 내불고 들이쉬어 묵은 것을 뱉고 새것을 들이는 것을 이를 것이다. 옛날에 팽조가 일찍이 이것을 행하였으나 오래 살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道家或以導氣養性度世而不死,以為血脈在形體之中,不動搖屈伸,則閉塞不通。不通積聚,則為病而死。此又虛也。
도가는 더러 기운을 이끌고 성품을 길러 세상을 건너 죽지 않는다 하니, 혈맥이 몸 가운데 있어 움직이고 굽히고 펴지 않으면 막혀 통하지 않고, 통하지 않아 쌓이면 병이 되어 죽는다 여긴다. 이 또한 헛되다.
夫人為形,猶草木之體也。草木在高山之巔,當疾風之衝,晝夜動搖者,能復勝彼隱在山谷間,鄣於疾風者乎?案草木之生,動搖者傷而不暢,人之導引動搖形體者,何故壽而不死?夫血脈之藏於身也,猶江河之流地。江河之流,濁而不清,血脈之動,亦擾不安。不安,則猶人勤苦無聊也,安能得久生乎?
무릇 사람의 몸은 풀과 나무의 몸과 같다. 풀과 나무가 높은 산 꼭대기에 있어 빠른 바람의 부딪침을 당하여 밤낮 흔들리는 것이 도리어 저 산골짜기 사이에 숨어 빠른 바람에 가려진 것보다 나을 수 있는가. 살피건대 풀과 나무가 남에 흔들리는 것은 상하여 자라지 못하는데 사람이 몸을 이끌고 흔드는 이는 무슨 까닭으로 오래 살고 죽지 않는가. 무릇 혈맥이 몸에 간직됨은 강과 하수가 땅에 흐르는 것과 같다. 강과 하수의 흐름은 흐리고 맑지 않으며 혈맥의 움직임도 어지러워 편안하지 않다. 편안하지 않으면 사람이 힘들고 괴로워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道家或以服食葯物,輕身益氣,延年度世。此又虛也。夫服食葯物,輕身益氣,頗有其驗。若夫延年度世,世無其效。百葯愈病,病愈而氣復,氣復而身輕矣。凡人稟性,身本自輕,氣本自長,中於風濕,百病傷之,故身重氣劣也。服食良葯,身氣復故,非本氣少身重,得葯而乃氣長身更輕也,稟受之時,本自有之矣。故夫服食葯物除百病,令身輕氣長,復其本性,安能延年至於度世?有血脈之類,無有不生,生無不死。以其生,故知其死也。天地不生,故不死;陰陽不生,故不死。死者,生之效;生者,死之驗也。夫有始者必有終,有終者必有始。唯無終始者,乃長生不死。人之生,其猶(水)〔冰〕也。水凝而為冰,氣積而為人。冰極一冬而釋,人竟百歲而死。人可令不死,冰可令不釋乎?諸學仙術為不死之方,其必不成,猶不能使冰終不釋也。
도가는 더러 약물을 먹어 몸을 가볍게 하고 기운을 더하여 수명을 늘이고 세상을 건넌다 한다. 이 또한 헛되다. 무릇 약물을 먹어 몸을 가볍게 하고 기운을 더함은 자못 증험이 있다. 수명을 늘이고 세상을 건넘은 세상에 그 보람이 없다. 온갖 약이 병을 낫게 하니 병이 나으면 기운이 돌아오고 기운이 돌아오면 몸이 가볍다. 무릇 사람이 성품을 받음에 몸이 본디 절로 가볍고 기운이 본디 절로 긴데 바람과 습기에 맞고 온갖 병이 상하게 하므로 몸이 무겁고 기운이 못한 것이다. 좋은 약을 먹어 몸과 기운이 예전으로 돌아오는 것이지, 본디 기운이 적고 몸이 무거웠다가 약을 얻어 곧 기운이 길어지고 몸이 다시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받을 때 본디 절로 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약물을 먹어 온갖 병을 없애고 몸을 가볍게 하고 기운을 길게 하여 그 본디 성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 수명을 늘여 세상을 건너기에 이르겠는가. 혈맥이 있는 무리는 나지 않는 것이 없고 나면 죽지 않는 것이 없다. 그 남으로 그 죽음을 안다. 하늘과 땅은 나지 않으므로 죽지 않고 음양은 나지 않으므로 죽지 않는다. 죽음은 삶의 보람이요 삶은 죽음의 증험이다. 무릇 비롯함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고 끝이 있는 것은 반드시 비롯함이 있다. 오직 끝과 비롯함이 없는 것이라야 곧 오래 살아 죽지 않는다. 사람의 삶은 얼음과 같다. 물이 엉겨 얼음이 되고 기운이 쌓여 사람이 된다. 얼음은 한겨울을 다하면 풀리고 사람은 백 년을 마치면 죽는다. 사람을 죽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얼음을 풀리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신선의 술법을 배워 죽지 않는 방술로 삼는 여러 이는 반드시 이루지 못하니 얼음을 끝내 풀리지 않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