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增篇
傳語曰:「聖人憂世深,思事勤,愁擾精神,感動形體,故稱堯若腊,舜若,桀、紂之君垂腴尺餘。」夫言聖人憂世念人,身體贏惡,不能身體肥澤,可也。言堯、舜若腊與,桀、紂垂腴尺餘,增之也。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성인은 세상 근심이 깊고 일 생각이 부지런하여 정신을 시름으로 어지럽히고 몸을 움직이므로 요는 포 같고 순은 마른 고기 같다 일컫고, 걸·주의 임금은 살이 한 자 남짓 드리웠다」 한다. 무릇 성인이 세상을 근심하고 사람을 염려하여 몸이 여위고 못하여 몸이 살지고 윤택할 수 없다 말함은 옳다. 요·순이 포와 마른 고기 같고 걸·주가 살이 한 자 남짓 드리웠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齊桓公云:「寡人未得仲父極難,既得仲父甚易。」桓公不及堯、舜,仲父不及禹、契,桓公猶易,堯、舜反難乎?以桓公得管促易,知堯、舜得禹、契不難。
제 환공이 말하였다. 「과인이 중보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지극히 어려웠고 이미 중보를 얻고는 매우 쉬웠다.」 환공은 요·순에 미치지 못하고 중보는 우·설에 미치지 못하는데 환공은 오히려 쉬웠다면 요·순은 도리어 어려웠겠는가. 환공이 관중을 얻어 쉬웠던 것으로 요·순이 우·설을 얻어 어렵지 않았음을 안다.
夫易則少憂,少憂則不愁,不愁則身體不㮡。舜承堯太平,堯、舜襲德。功假荒服,堯尚有憂,舜安(能)〔而〕無事。故《經》曰:「上帝引逸」,謂虞舜也。舜承安繼治,任賢使能,恭己無為而天下治。故孔子曰:「巍巍乎,舜、禹之有天下而不與焉。」
무릇 쉬우면 근심이 적고 근심이 적으면 시름하지 않고 시름하지 않으면 몸이 여위지 않는다. 순은 요의 태평을 이었고 요·순은 덕을 이어받았다. 공이 황복에까지 이르렀으니 요는 오히려 근심이 있었으나 순은 편안하여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상제가 편안함을 이끌었다」 하니 우순을 이른 것이다. 순이 편안함을 잇고 다스림을 이어 어진 이에게 맡기고 능한 이를 부려 몸을 공손히 하고 함이 없이 천하가 다스려졌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였다. 「높고 높도다, 순과 우는 천하를 가지고도 관여하지 않았도다.」
夫不與尚謂之㮡若,如德劣承衰,若孔子栖栖,周流應聘,身不得容,道不得行,可骨立(跛)〔皮〕附,僵仆道路乎?紂為長夜之飲,糟丘酒池,沉湎於酒,不舍晝夜,是必以病。病則不甘飲食,不甘飲食則肥腴不得至尺。《經》曰:「惟湛樂是從,時亦罔有克壽。」魏公子無忌為長夜之飲,困毒而死。紂雖未死,宜贏㮡矣。然桀、紂同行則宜同病,言其腴垂過尺餘,非徒增之,又失其實矣。
무릇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여위어 마른 고기 같다 한다면, 덕이 못하고 쇠함을 이은 공자처럼 바삐 두루 다니며 초빙에 응하여도 몸이 용납되지 못하고 도가 행해지지 못한 이는 뼈가 서고 가죽이 붙어 길에 쓰러져야 하는가. 주(紂)는 긴 밤의 술자리를 벌여 술지게미 언덕과 술 못으로 술에 잠겨 밤낮을 쉬지 않았으니 이는 반드시 병들었을 것이다. 병들면 먹고 마심이 달지 않고 먹고 마심이 달지 않으면 살이 한 자에 이를 수 없다. 「경」에 이르기를 「오직 즐김만 따르니 때로 또한 오래 살 수 있는 이가 없었다」 하였다. 위 공자 무기가 긴 밤의 술자리를 벌이다가 독에 곤하여 죽었다. 주가 비록 죽지 않았어도 마땅히 여위었을 것이다. 그러니 걸·주가 같이 행하였으면 마땅히 같이 병들었을 것이니 그 살이 한 자 남짓 드리웠다 말하는 것은 한갓 보탠 것일 뿐 아니라 또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傳語又稱紂力能索鐵伸鉤,撫梁易柱。言其多力也。蜚廉、惡來之徒,并幸受寵。言好伎力之主致伎力之士也。或言武王伐紂,兵不血刃。夫以索鐵伸鉤之力,輔以蜚廉、惡來之徒,與周軍相當,武王德雖盛,不能奪紂素所厚之心,紂雖惡,亦不失所與同行之意。雖為武王所擒,時亦宜殺傷十百人。今言不血刃,非紂多力之效,蜚廉、惡來助紂之驗也。
전하는 말에 또 주(紂)의 힘이 쇠를 새끼 꼬듯 하고 갈고리를 펴며 들보를 받치고 기둥을 바꿀 수 있었다 일컫는다. 그 힘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비렴과 악래의 무리가 아울러 총애를 받았다 한다. 재주와 힘을 좋아하는 임금이 재주와 힘의 선비를 이르게 한다는 말이다. 더러는 무왕이 주를 치는데 군사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말한다. 무릇 쇠를 새끼 꼬고 갈고리를 펴는 힘에 비렴·악래의 무리로 도와 주나라 군사와 맞섰다면, 무왕의 덕이 비록 성하여도 주가 본디 두터이 한 이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고, 주가 비록 악하여도 함께 행한 이들의 뜻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무왕에게 사로잡혔어도 때로 또한 마땅히 열이나 백 사람은 죽이고 상하게 하였을 것이다. 이제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말하니 주가 힘이 많다는 보람도 아니요 비렴·악래가 주를 도운 증험도 아니다.
案武王之符瑞不過高祖。武王有白魚、赤烏之佑,高祖有斷大蛇、老嫗哭於道之瑞。武王有八百諸侯之助,高祖有天下義兵之佐。武王之相,望羊而已;高祖之相,龍顏隆准,項紫,美須髯,身有七十二黑子。高祖又逃呂后於澤中,呂后輒見上有雲氣之驗,武王不聞有此。夫相多於望羊,瑞明於魚烏,天下義兵并來會漢,助強於諸侯。武王承紂,高祖襲秦。二世之惡,隆盛於紂,天下畔秦,宜多於殷。案高祖伐秦,還破項羽,戰場流血,暴尸萬數,失軍亡眾,幾死一再,然後得天下,用兵苦,誅亂劇。獨云周兵不血刃,非其實也。言其易,可也;言不血刃,增之也。案周取殷之時,太公陰謀之書,食小兒丹,教云亡殷,兵到牧野,晨舉脂燭。察《武成》之篇,牧野之戰,血流浮杵,赤志千里。由此言之,周之取殷,與漢、秦一實也。而云取殷易,兵不血刃,美武王之德,增益其實也。凡天下之事,不可增損,考察前後,效驗自列。自列,則是非之實有所定矣。
살피건대 무왕의 부서와 상서는 고조에 지나지 않는다. 무왕에게 흰 물고기와 붉은 까마귀의 도움이 있었고 고조에게 큰 뱀을 베고 늙은 할미가 길에서 운 상서가 있었다. 무왕에게 팔백 제후의 도움이 있었고 고조에게 천하 의병의 도움이 있었다. 무왕의 상은 우러러보는 눈뿐이요 고조의 상은 용의 얼굴에 높은 코와 자줏빛 목과 아름다운 수염에 몸에 일흔두 검은 점이 있었다. 고조가 또 여후를 피해 못 가운데 숨었는데 여후가 곧 임금 위에 구름 기운이 있는 증험을 보았으니 무왕에게 이런 것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무릇 상이 우러러보는 눈보다 많고 상서가 물고기와 까마귀보다 밝으며 천하 의병이 아울러 와서 한나라에 모였으니 도움이 제후보다 강하다. 무왕은 주(紂)를 이었고 고조는 진나라를 이었다. 이세의 악은 주보다 융성하여 천하가 진나라를 배반한 것이 마땅히 은나라보다 많았다. 살피건대 고조가 진나라를 치고 돌아와 항우를 깨뜨리는데 싸움터에 피가 흐르고 주검을 드러낸 것이 만으로 헤아리며 군사를 잃고 무리를 잃어 거의 죽을 뻔한 것이 한두 번인 뒤에야 천하를 얻었으니 군사 씀이 괴롭고 어지러움을 벰이 심하였다. 홀로 주나라 군사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하니 그 실상이 아니다. 그 쉬웠다 말함은 옳으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살피건대 주나라가 은나라를 취할 때 태공의 음모의 책에 어린아이에게 단사를 먹여 은나라가 망한다고 말하게 가르치고 군사가 목야에 이르러 새벽에 기름 촛불을 들었다 한다. 「무성」 편을 살피면 목야의 싸움에 피가 흘러 절굿공이를 띄우고 붉은 것이 천 리에 이르렀다 한다. 이로써 말하면 주나라가 은나라를 취한 것은 한나라·진나라와 한가지 실상이다. 그런데 은나라를 취함이 쉬워 군사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하니 무왕의 덕을 아름답게 하여 그 실상을 보탠 것이다. 무릇 천하의 일은 보태고 덜 수 없으니 앞뒤를 살피면 증험이 절로 벌여진다. 절로 벌여지면 옳고 그름의 실상이 정해지는 바가 있다.
世稱紂力能索鐵伸鉤;又稱武王伐之,兵不血刃。夫以索鐵伸鉤之力當人,則是孟賁、夏育之匹也;以不血刃之德取人,是則三皇、五帝之屬也。以索鐵之力,不宜受服;以不血刃之德,不宜頓兵。今稱紂力,則武王德貶;譽武王,則紂力少。索鐵、不血刃,不得兩立;殷、周之稱不得二全。不得二全,則必一非。
세상은 주(紂)의 힘이 쇠를 새끼 꼬고 갈고리를 펼 수 있다 일컫고 또 무왕이 그를 치는데 군사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일컫는다. 무릇 쇠를 새끼 꼬고 갈고리를 펴는 힘으로 사람을 맞선다면 이는 맹분·하육의 짝이요,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는 덕으로 사람을 취한다면 이는 삼황·오제의 무리다. 쇠를 새끼 꼬는 힘으로는 복종을 받지 않아야 하고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는 덕으로는 군사를 꺾지 않아야 한다. 이제 주의 힘을 일컬으면 무왕의 덕이 깎이고 무왕을 기리면 주의 힘이 적어진다. 쇠를 새끼 꼬는 것과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는 것은 둘 다 설 수 없고 은나라·주나라의 일컬음은 둘 다 온전할 수 없다. 둘 다 온전할 수 없으면 반드시 하나는 그르다.
孔子曰:「紂之不善,不若是之甚也。是以君子惡居下流,天下之惡皆歸焉。」孟子曰:「吾於《武成》,取二三策耳。以至仁伐不仁,如何其血之浮杵也?」若孔子言,殆(沮)〔且〕浮杵;若孟子之言,近不血刃。浮杵過其實,不血刃亦失其正。一聖一賢,共論一紂,輕重殊稱,多少異實。
공자가 말하였다. 「주(紂)의 착하지 않음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군자는 하류에 사는 것을 미워하니 천하의 악이 다 돌아간다.」 맹자가 말하였다. 「나는 「무성」에서 두세 쪽만 취할 뿐이다. 지극한 어짊으로 어질지 않음을 치는데 어찌 그 피가 절굿공이를 띄웠겠는가.」 공자의 말대로라면 거의 절굿공이를 띄울 만하고 맹자의 말대로라면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음에 가깝다. 절굿공이를 띄움은 그 실상을 지나치고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음도 그 바름을 잃었다. 한 성인과 한 현인이 함께 한 주를 논하는데 가볍고 무거움이 일컬음이 다르고 많고 적음이 실상이 다르다.
紂之惡不若王莽。紂殺比干,莽鴆平帝;紂以嗣立,莽盜漢位。殺主隆於誅臣,嗣立須於盜位,士眾所畔,宜甚於紂。漢誅王莽,兵頓昆陽,死者萬數,軍至漸台,血流沒趾。而獨謂周取天下,兵不血刃,非其實也。
주(紂)의 악은 왕망만 못하다. 주는 비간을 죽였고 망은 평제를 짐독으로 죽였다. 주는 이어 섰고 망은 한나라 자리를 훔쳤다. 임금을 죽임은 신하를 벰보다 크고 이어 섬은 자리를 훔침보다 낫다. 선비와 무리가 배반한 것이 마땅히 주보다 심하였을 것이다. 한나라가 왕망을 베는데 군사가 곤양에서 꺾여 죽은 이가 만으로 헤아리고 군사가 점대에 이르러 피가 흘러 발을 잠갔다. 그런데 홀로 주나라가 천하를 취함에 군사가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하니 그 실상이 아니다.
傳語曰:「文王飲酒千鍾,孔子百觚。」欲言聖人德盛,能以德將酒也。如一坐千鍾百觚,此酒徒,非聖人也。飲酒有法,胸腹小大,與人均等。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문왕은 술 천 종을 마시고 공자는 백 고를 마셨다」 한다. 성인의 덕이 성하여 덕으로 술을 거느릴 수 있다 말하려는 것이다. 한자리에 천 종 백 고라면 이는 술꾼이지 성인이 아니다. 술을 마심에 법도가 있으니 가슴과 배의 크고 작음이 사람과 고루 같다.
飲酒用千鍾,用肴宜盡百牛,百觚則宜用十羊。夫以千鍾百牛、百觚十羊言之,文王之身如防風之君,孔子之體如長狄之人,乃能堪之。案文王、孔子之體,不能及防風、長狄。以短小之身,飲食眾多,是缺文王之廣,貶孔子之崇也。
술 마시기를 천 종으로 하면 안주로 마땅히 소 백 마리를 다하고 백 고면 마땅히 양 열 마리를 써야 한다. 무릇 천 종에 소 백 마리와 백 고에 양 열 마리로 말하면 문왕의 몸이 방풍의 임금 같고 공자의 몸이 장적의 사람 같아야 곧 견딜 수 있다. 살피건대 문왕과 공자의 몸은 방풍과 장적에 미칠 수 없다. 작은 몸으로 먹고 마심이 많다 하면 이는 문왕의 넓음을 이지러뜨리고 공자의 높음을 깎는 것이다.
案《酒誥》之篇,「朝夕曰祀茲酒」,此言文王戒慎酒也。朝夕戒慎,則民化之。外出戒慎之教,內飲酒盡千鍾,導民率下,何以致化?承紂疾惡,何以自別?且千鍾之效,百觚之驗,何所用哉?
살피건대 「주고」 편에 「아침저녁으로 이르기를 제사에 이 술을 쓰라」 하니 이는 문왕이 술을 경계하고 삼갔다는 말이다. 아침저녁으로 경계하고 삼가면 백성이 그것에 교화된다. 밖으로는 경계하고 삼가는 가르침을 내고 안으로는 술 마시기를 천 종을 다한다면 백성을 이끌고 아랫사람을 거느려 무엇으로 교화를 이루겠는가. 주(紂)를 이어 악을 미워하면서 무엇으로 스스로 가르는가. 또 천 종의 보람과 백 고의 증험을 어디에 쓰겠는가.
使文王、孔子因祭用酒乎,則受福胙不能厭飽;因饗射之用酒乎,饗射飲酒自有禮法;如私燕賞賜飲酒乎,則賞賜飲酒,宜與下齊。賜尊者之前,三觴而退,過於三觴,醉酗生亂。文王、孔子,率禮之人也,賞賚左右,至於醉酗亂身:自用酒千鍾百觚,大之則為桀、紂,小之則為酒徒,用何以立德成化,表名垂譽乎?世聞「德將毋醉」之言,見聖人有多德之效,則虛增文王以為千鍾,空益孔子以百觚矣。
문왕과 공자가 제사로 인하여 술을 썼다면 복과 제사 고기를 받아도 배부를 수 없고, 향사와 향례로 인하여 술을 썼다면 향사의 술 마심은 절로 예법이 있으며, 사사로운 잔치에 상으로 술을 마셨다면 상으로 술을 마심은 마땅히 아랫사람과 같아야 한다. 높은 이 앞에서 내리면 석 잔에 물러나니 석 잔을 지나면 취하여 어지러움이 생긴다. 문왕과 공자는 예를 따르는 사람인데 좌우에 상을 내려 취하여 몸을 어지럽히기에 이르렀겠는가. 스스로 술 천 종 백 고를 썼다면 크게는 걸·주가 되고 작게는 술꾼이 되니 무엇으로 덕을 세우고 교화를 이루며 이름을 드러내고 기림을 남기겠는가. 세상은 「덕으로 거느리면 취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성인에게 덕이 많은 보람이 있음을 보고 곧 헛되이 문왕을 보태어 천 종이라 하고 공연히 공자를 더하여 백 고라 한 것이다.
傳語曰:「紂沉湎於酒,以糟為丘,以酒為池,牛飲者三千人,為長夜之飲,亡其甲子。」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주(紂)가 술에 잠겨 술지게미로 언덕을 삼고 술로 못을 삼아 소처럼 마시는 이가 삼천 사람이며 긴 밤의 술자리를 벌여 그 갑자를 잊었다」 한다.
夫紂雖嗜酒,亦欲以為樂。令酒池在中庭乎,則不當言為長夜之飲,坐在深室之中,閉窗舉燭,故曰長夜。令坐於室乎,每當飲者起之中庭,乃復還坐,則是煩苦相藉,不能甚樂。令池在深室之中,則三千人宜臨池坐,前俯飲池酒,仰食肴膳,倡樂在前,乃為樂耳。如審臨池而坐,則前飲害於肴膳,倡樂之作不得在前。夫飲食既不以禮,臨池牛飲,則其啖肴不復用杯,亦宜就魚肉而虎食。則知夫酒池牛飲,非其實也。
무릇 주가 비록 술을 즐겼어도 또한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려 하였을 것이다. 술 못이 뜰 가운데 있었다면 긴 밤의 술자리라 말해서는 안 되니, 깊은 방 가운데 앉아 창을 닫고 촛불을 들었으므로 긴 밤이라 한다. 방에 앉았다면 마실 때마다 일어나 뜰로 가서 곧 다시 돌아와 앉으니 이는 번거롭고 괴로워 서로 밟혀 크게 즐거울 수 없다. 못이 깊은 방 가운데 있었다면 삼천 사람이 마땅히 못에 임하여 앉아 앞으로 굽혀 못의 술을 마시고 우러러 안주를 먹으며 광대와 풍류가 앞에 있어야 곧 즐거울 것이다. 참으로 못에 임하여 앉았다면 앞으로 마시는 것이 안주에 방해되고 광대와 풍류의 지음이 앞에 있을 수 없다. 무릇 먹고 마심이 이미 예로 하지 않아 못에 임하여 소처럼 마셨다면 그 안주 먹음도 다시 잔을 쓰지 않고 또한 마땅히 물고기와 고기에 나아가 범처럼 먹었을 것이다. 그러니 무릇 술 못에 소처럼 마셨다는 것이 그 실상이 아님을 안다.
傳又言:紂懸肉以為林,令男女裸而相逐其間,是為醉樂淫戲無節度也。夫肉當內於口,口之所食,宜潔不辱。今言男女裸相逐其間,何等潔者?如以醉而不計潔辱,則當其浴於酒中,而裸相逐於肉間。何為不肯浴於酒中?以不言浴於酒,知不裸相逐於肉間。
전에 또 이르기를, 주(紂)가 고기를 매달아 숲을 삼고 남녀에게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서로 쫓게 하였으니 이는 취하여 즐기고 음란하게 놀아 절도가 없는 것이라 한다. 무릇 고기는 입에 넣는 것이니 입이 먹는 바는 마땅히 깨끗하고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이제 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서로 쫓았다 하니 무엇이 깨끗한 것인가. 취하여 깨끗하고 더러움을 헤아리지 않았다면 마땅히 술 가운데서 목욕하고 벌거벗고 고기 사이에서 서로 쫓았을 것이다. 어찌하여 술 가운데서 목욕하려 하지 않았는가. 술에서 목욕하였다 말하지 않는 것으로 벌거벗고 고기 사이에서 서로 쫓지 않았음을 안다.
傳者之說,或言:車行灑,騎行炙,百二十日為一夜。夫言用酒為池,則言其車行酒非也;言其懸肉為林,即言騎行炙非也。
전하는 이의 말에 더러 이르기를, 수레로 술을 돌리고 말 타고 구운 고기를 돌리며 백스무 날을 한 밤으로 삼았다 한다. 무릇 술로 못을 삼았다 말하면 그 수레로 술을 돌렸다는 말이 그르고, 그 고기를 매달아 숲을 삼았다 말하면 곧 말 타고 구운 고기를 돌렸다는 말이 그르다.
或時紂沉湎覆酒,滂㩗於地,即言以酒為池。釀酒糟積聚,則言糟為丘。懸肉以林,則言肉為林。林中幽冥,人時走戲其中,則言裸相逐。或時載酒用鹿車,則言車行酒、騎行炙。或時十數夜,則言其百二十。或時醉不知問日數,則言其亡甲子。周公封康叔,告以紂用酒期於悉極,欲以戒之也。而不言糟丘酒池,懸肉為林,長夜之飲,亡其甲子。聖人不言,殆非實也。
혹 주(紂)가 술에 잠겨 술을 엎질러 땅에 흥건하니 곧 술로 못을 삼았다 말하였을 것이다. 술을 빚어 지게미가 쌓이니 지게미로 언덕을 삼았다 말하였을 것이다. 고기를 숲처럼 매다니 고기로 숲을 삼았다 말하였을 것이다. 숲 가운데가 어둑하여 사람이 때로 그 가운데로 달려 놀았으니 벌거벗고 서로 쫓았다 말하였을 것이다. 혹 술을 싣는 데 사슴 수레를 쓰니 수레로 술을 돌리고 말 타고 구운 고기를 돌렸다 말하였을 것이다. 혹 십수 밤이니 그 백스물이라 말하였을 것이다. 혹 취하여 날수를 물을 줄 모르니 그 갑자를 잊었다 말하였을 것이다. 주공이 강숙을 봉하며 주가 술을 쓰기를 다하고 극함에 기약하였다고 알린 것은 그것으로 경계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지게미 언덕과 술 못과 고기를 매달아 숲을 삼음과 긴 밤의 술자리와 그 갑자를 잊음은 말하지 않았다. 성인이 말하지 않았으니 아마 실상이 아닐 것이다.
傳言曰:「紂非時與三千人牛飲於酒池。」夫夏官百,殷二百,周三百。紂之所與相樂,非民,必臣也;非小臣,必大官,其數不能滿三千人。傳書家欲惡紂,故言三千人,增其實也。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주(紂)가 때 아닌 때에 삼천 사람과 술 못에서 소처럼 마셨다」 한다. 무릇 하나라 벼슬은 백이요 은나라는 이백이요 주나라는 삼백이다. 주가 더불어 서로 즐긴 이는 백성이 아니면 반드시 신하요, 작은 신하가 아니면 반드시 큰 벼슬이니 그 수가 삼천 사람을 채울 수 없다. 전하는 책을 짓는 이가 주를 미워하려 하였으므로 삼천 사람이라 말하니 그 실상을 보탠 것이다.
傳語曰:「周公執贄下白屋之士。」謂候之也。夫三公,鼎足之臣,王者之貞干也;白屋之士,閭巷之微賤者也。三公傾鼎足之尊,執贄候白屋之士,非其實也。時或待士卑恭,不驕白屋人,則言其往候白屋。或時起白屋之士,以璧迎禮之,人則言其執贄以候其家也。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주공이 폐백을 잡고 초가의 선비에게 낮추었다」 한다. 그를 문안하였다는 말이다. 무릇 삼공은 솥발 같은 신하로 왕의 곧은 줄기요, 초가의 선비는 마을의 미천한 이다. 삼공이 솥발의 높음을 기울여 폐백을 잡고 초가의 선비를 문안하였다는 것은 그 실상이 아니다. 때로 혹 선비를 대접함에 낮추고 공손하여 초가의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으니 곧 그가 가서 초가을 문안하였다 말하였을 것이다. 혹 초가의 선비를 일으켜 옥으로 맞이하여 예우하니 사람이 곧 그가 폐백을 잡고 그 집을 문안하였다 말하였을 것이다.
傳語曰:「堯、舜之儉,茅茨不剪,采椽不斫。」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요·순의 검소함은 띠 지붕을 자르지 않고 참나무 서까래를 깎지 않았다」 한다.
夫言茅茨采椽,可也;言不剪不斫,增之也。《經》曰「弼成五服」。五服,五采服也。服五采之服,又茅茨采椽,何宮室衣服之不相稱也?服五采,畫日月星辰,茅茨采椽,非其實也。
무릇 띠 지붕과 참나무 서까래를 말함은 옳으나 자르지 않고 깎지 않았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오복을 도와 이루었다」 하였다. 오복은 다섯 빛깔 옷이다. 다섯 빛깔 옷을 입으면서 또 띠 지붕과 참나무 서까래라면 어찌 궁실과 의복이 서로 걸맞지 않은가. 다섯 빛깔을 입고 해와 달과 별을 그리면서 띠 지붕과 참나무 서까래라 함은 그 실상이 아니다.
傳語曰:「秦始皇帝燔燒詩書,坑殺儒士。」言燔燒詩書,滅去《五經》文書也。坑殺儒士者,言其皆挾經傳文書之人也。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진 시황제가 시서를 불태우고 유생을 묻어 죽였다」 한다. 시서를 불태웠다 말함은 「오경」의 글을 없앴다는 것이다. 유생을 묻어 죽였다 함은 그들이 다 경전의 글을 낀 사람이라는 말이다.
燒其書,坑其人,詩書絕矣。言燒燔詩書、坑殺儒士,實也;言其欲滅詩書,故坑殺其人,非其誠,又增之也。
그 책을 태우고 그 사람을 묻으니 시서가 끊어졌다. 시서를 불태우고 유생을 묻어 죽였다 말함은 실상이나, 그가 시서를 없애려 하였으므로 그 사람을 묻어 죽였다 말함은 그 참됨이 아니요 또 보탠 것이다.
秦始皇帝三十四年,置酒咸陽台,儒士七十人前為壽。仆射周青臣進頌始皇之德。齊淳于越進諫始皇不封子弟功臣自為(狹)〔挾〕輔,刺周青臣以為面諛。始皇下其議於丞相李斯。李斯非淳于越曰:「諸生不師今而學古,以非當世,惑亂黔首。臣請敕史官,非秦記皆燒之;非博士官所職,天下有敢藏詩書、百家語、諸刑書者,悉詣守尉集燒之;有敢偶語詩書,棄市;以古非今者,族滅。吏見知弗舉,與同罪。
진 시황제 삼십사년에 함양대에서 술자리를 베푸니 유생 일흔 사람이 앞에 나와 축수하였다. 복야 주청신이 나아가 시황의 덕을 기렸다. 제나라 순우월이 나아가 시황이 자제와 공신을 봉하여 스스로 보필을 삼지 않는다고 간하며 주청신을 찔러 낯으로 아첨한다 하였다. 시황이 그 의논을 승상 이사에게 내렸다. 이사가 순우월을 그르다 하여 말하였다. 「여러 유생이 지금을 스승 삼지 않고 옛것을 배워 당세를 그르다 하며 백성을 홀리고 어지럽힙니다. 신은 청컨대 사관에게 명하여 진나라 기록이 아니면 다 태우게 하고, 박사 벼슬이 맡은 것이 아니면 천하에 감히 시서와 백가의 말과 여러 형서를 감춘 이가 있으면 다 군의 수령과 군위에게 가서 모아 태우게 하며, 감히 둘이 모여 시서를 말하는 이가 있으면 저자에서 목 베고, 옛것으로 지금을 그르다 하는 이는 겨레를 멸하며, 아전이 보고 알면서 들어내지 않으면 같은 죄로 하소서.
始皇許之。明年三十五年,諸生在咸陽者多為妖言。始皇使御史案問諸生,諸生傳相告引者,自除犯禁者四百六十七人,皆坑之。燔詩書,起淳于越之諫;坑儒士,起自諸生為妖言,見坑者四百六十七人。傳增言坑殺儒士,欲絕詩書,又言盡坑之。此非其實而又增之。
시황이 허락하였다. 이듬해 삼십오년에 함양에 있는 여러 유생이 흔히 요망한 말을 하였다. 시황이 어사를 시켜 여러 유생을 안문하게 하니 여러 유생이 서로 전하여 고하고 끌어 대어 스스로 금령을 범한 이 사백예순일곱 사람을 가려내어 다 묻었다. 시서를 태운 것은 순우월의 간함에서 일어났고 유생을 묻은 것은 여러 유생이 요망한 말을 한 데서 일어났으니 묻힌 이는 사백예순일곱 사람이다. 전하는 이가 보태어 유생을 묻어 죽여 시서를 끊으려 하였다 말하고 또 다 묻었다 말한다. 이는 그 실상이 아니고 또 보탠 것이다.
傳語曰:「町町若荊軻之閭。」言荊軻為燕太子丹刺秦王,後誅軻九族,其後恚恨不已,復夷軻之一里,一里皆滅,故曰町町。此言增之也。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밀어 평평하기가 형가의 마을 같다」 한다.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을 위해 진왕을 찔렀는데 뒤에 형가의 구족을 베고 그 뒤에 성내고 한하기를 그치지 않아 다시 형가의 한 마을을 멸하여 한 마을이 다 없어졌으므로 밀어 평평하다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보탠 것이다.
夫秦雖無道,無為盡誅荊軻之里。始皇幸梁山之宮,從山上望見丞相李斯車騎甚盛,恚,出言非之。其後左右以告李斯,李斯立損車騎。始皇知左右泄其言,莫知為誰,盡捕諸在旁者皆殺之。其後墜星下東郡,至地為石,民或刻其石曰「始皇帝死,地分」。皇帝聞之,令御史逐問,莫服,盡取石旁人誅之。夫誅從行於梁山宮及誅石旁人,欲得泄言、刻石者,不能審知,故盡誅之。荊軻之閭何罪於秦而盡誅之?如刺秦王在閭中,不知為誰,盡誅之,可也。荊軻已死,刺者有人,一里之民,何為坐之?始皇二十年,燕使荊軻刺秦王,秦王覺之,體解軻以徇,不言盡誅其閭。彼或時誅軻九族,九族眾多,同里而處,誅其九族,一里且盡,好增事者則言町町也。
무릇 진나라가 비록 무도하였어도 형가의 마을을 다 벨 까닭이 없다. 시황이 양산의 궁에 거둥하여 산 위에서 승상 이사의 수레와 말이 매우 성함을 바라보고 성내어 말을 내어 그르다 하였다. 그 뒤 좌우가 이사에게 알리니 이사가 곧 수레와 말을 덜었다. 시황이 좌우가 그 말을 누설한 줄 알았으나 누구인지 몰라 곁에 있던 이를 다 잡아 다 죽였다. 그 뒤 별이 동군에 떨어져 땅에 이르러 돌이 되니 백성이 더러 그 돌에 새기기를 「시황제가 죽고 땅이 나뉜다」 하였다. 황제가 듣고 어사를 시켜 쫓아 물었으나 아무도 복종하지 않으니 돌 곁의 사람을 다 잡아 베었다. 무릇 양산궁에서 따라간 이를 벤 것과 돌 곁의 사람을 벤 것은 말을 누설하고 돌에 새긴 이를 얻으려 하였으나 살펴 알 수 없었으므로 다 벤 것이다. 형가의 마을은 진나라에 무슨 죄가 있어 다 베겠는가. 진왕을 찌른 이가 마을 가운데 있는데 누구인지 몰라 다 베었다면 옳다. 형가는 이미 죽었고 찌른 이가 있는데 한 마을의 백성이 무엇 때문에 연좌되는가. 시황 이십년에 연나라가 형가를 시켜 진왕을 찌르게 하니 진왕이 깨닫고 형가를 몸을 갈라 조리돌렸으나 그 마을을 다 베었다 말하지 않는다. 저들은 혹 형가의 구족을 베었는데 구족이 많아 같은 마을에 살아 그 구족을 베니 한 마을이 거의 다하였으므로 일 보태기 좋아하는 이가 곧 밀어 평평하다 말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