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增篇
儒書稱堯、舜之德,至優至大,天下太平,一人不刑;又言文、武之隆,遺在成康,刑錯不用四十餘年。是欲稱堯、舜,褒文、武也。夫為言不益,則美不足稱;為文不渥,則事不足褒。堯、舜雖優,不能使一人不刑;文、武雖盛,不能使刑不用。言其犯刑者少,用刑希疏,可也;言其一人不刑,刑錯不用,增之也。
유가의 책은 요·순의 덕이 지극히 뛰어나고 지극히 커서 천하가 태평하여 한 사람도 형벌받지 않았다 일컫고, 또 문왕·무왕의 융성함이 성왕·강왕에게 남아 형벌을 버려 두고 쓰지 않은 것이 마흔 해 남짓이라 한다. 이는 요·순을 일컫고 문왕·무왕을 기리려는 것이다. 무릇 말을 보태지 않으면 아름다움이 일컫기에 넉넉하지 않고 글을 두터이 하지 않으면 일이 기리기에 넉넉하지 않다. 요·순이 비록 뛰어나도 한 사람도 형벌받지 않게 할 수 없고 문왕·무왕이 비록 성하여도 형벌을 쓰지 않게 할 수 없다. 형벌을 범한 이가 적고 형벌을 씀이 드물었다 말함은 옳으나 한 사람도 형벌받지 않고 형벌을 버려 두고 쓰지 않았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夫能使一人不刑,則能使一國不伐;能使刑錯不用,則能使兵寢不施。
무릇 한 사람도 형벌받지 않게 할 수 있으면 한 나라도 치지 않게 할 수 있고, 형벌을 버려 두고 쓰지 않게 할 수 있으면 군사를 재워 두고 베풀지 않게 할 수 있다.
案堯伐丹水,舜征有苗,四子服罪,刑兵設用。成王之時,四國篡畔,淮夷、徐戎,并為患害。夫刑人用刀,伐人用兵,罪人用法,誅人用武。武、法不殊,兵、刀不異。巧論之人,不能別也。夫德劣故用兵,犯法故施刑。刑與兵,猶足與翼也,走用足,飛用翼。形體雖異,其行身同。刑之與兵,全眾禁邪,其實一也。稱兵之(不)用,言刑之不施,是猶人(耳)〔身〕缺目完,以目完稱人體全,不可從也。人桀於刺虎,怯於擊人,而以刺虎稱謂之勇,不可聽也。身無敗缺,勇無不進,乃為全耳。今稱一人不刑,不言一兵不用;褒刑錯不用,不言一人不畔:未得為優,未可謂盛也。
살피건대 요는 단수를 쳤고 순은 유묘를 정벌하였으며 네 사람이 죄에 복종하였으니 형벌과 군사가 베풀어져 쓰였다. 성왕 때 네 나라가 찬탈하고 배반하고 회이와 서융이 아울러 근심과 해가 되었다. 무릇 사람을 형벌함에는 칼을 쓰고 사람을 침에는 군사를 쓰며 사람을 죄줌에는 법을 쓰고 사람을 벰에는 무력을 쓴다. 무력과 법이 다르지 않고 군사와 칼이 다르지 않다. 교묘히 논하는 사람도 가를 수 없다. 무릇 덕이 못하므로 군사를 쓰고 법을 범하므로 형벌을 베푼다. 형벌과 군사는 발과 날개 같으니 달릴 때는 발을 쓰고 날 때는 날개를 쓴다. 몸이 비록 다르나 그 몸을 움직임은 같다. 형벌과 군사는 무리를 온전히 하고 사악함을 금하니 그 실상은 하나다. 군사가 쓰인 것은 그대로 두고 형벌이 베풀어지지 않았다 말함은 사람의 몸이 이지러졌는데 눈이 온전하다 하여 눈이 온전함으로 사람의 몸이 온전하다 일컫는 것과 같으니 따를 수 없다. 사람이 범을 찌르는 데는 사납고 사람을 치는 데는 겁내는데 범을 찌르는 것으로 일컬어 용감하다 하면 들을 수 없다. 몸에 이지러진 데가 없고 용맹에 나아가지 못함이 없어야 곧 온전한 것이다. 이제 한 사람도 형벌받지 않았다 일컬으면서 한 군사도 쓰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형벌을 버려 두고 쓰지 않았다 기리면서 한 사람도 배반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니, 뛰어나다 할 수 없고 성하다 할 수 없다.
儒書稱楚養由基善射,射一楊葉,百發能百中之。是稱其巧於射也。夫言其時射一楊葉中之,可也;言其百發而百中,增之也。
유가의 책은 초나라 양유기가 활을 잘 쏘아 한 버들잎을 쏘는데 백 번 쏘아 백 번 맞힐 수 있다 일컫는다. 이는 그 활쏘기가 교묘함을 일컬은 것이다. 무릇 그때 한 버들잎을 쏘아 맞혔다 말함은 옳으나 백 번 쏘아 백 번 맞혔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夫一楊葉射而中之,中之一再,行敗穿不可復射矣。如就葉懸於樹而射之,雖不欲射葉,楊葉繁茂,自中之矣。是必使上取楊葉,一一更置地而射之也?射之數十行,足以見巧;觀其射之者亦皆知射工,亦必不至於百,明矣。言事者好增巧美,數十中之,則言其百中矣。百與千,數之大者也。實欲言十則言百,百則言千矣。是與《書》言「協和萬邦」,《詩》曰「子孫千億」,同一意也。
무릇 한 버들잎을 쏘아 맞히면 맞히기 한두 번에 뚫어져 다시 쏠 수 없다. 잎이 나무에 달린 채로 쏜다면 잎을 쏘려 하지 않아도 버들잎이 무성하여 절로 맞을 것이다. 이는 반드시 버들잎을 위에서 따다가 하나하나 다시 땅에 두고 쏘게 한 것인가. 쏘기를 수십 번 하면 교묘함을 보기에 넉넉하고 그 쏘는 것을 보는 이도 다 활 잘 쏨을 알 것이니 또한 반드시 백에 이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일을 말하는 이는 교묘함과 아름다움을 보태기 좋아하니 수십 번 맞히면 백 번 맞혔다 말한다. 백과 천은 수의 큰 것이다. 실로 열을 말하려 하면 백이라 말하고 백이면 천이라 말한다. 이는 「서」에 「만방을 화합하였다」 말하고 「시」에 「자손이 천억」이라 말한 것과 같은 뜻이다.
儒書言:衛有忠臣弘演,為衛哀公使,未還,狄人攻哀公而殺之,盡食其肉,獨舍其肝。弘演使還,致命於肝,痛哀公之死,身肉盡,肝無所附,引刀自刳其腹,盡出其腹實,乃內哀公之肝而死。言此者,欲稱其忠矣。言其自刳內哀公之肝而死,可也。言盡出其腹實乃內哀公之肝,增之也。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위나라에 충신 홍연이 있어 위 애공을 위해 사자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적인이 애공을 쳐서 죽이고 그 살을 다 먹고 홀로 그 간만 남겼다. 홍연이 사자로 갔다 돌아와 간에 명을 아뢰고 애공의 죽음을 아파하여 몸의 살이 다하고 간이 붙을 데가 없으니 칼을 끌어 스스로 그 배를 갈라 그 뱃속을 다 내고 이에 애공의 간을 넣고 죽었다 한다. 이를 말하는 이는 그 충성을 일컬으려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갈라 애공의 간을 넣고 죽었다 말함은 옳다. 그 뱃속을 다 내고 이에 애공의 간을 넣었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人以刃相刺,中五藏輒死。何則?五藏氣之主也,猶頭脈之湊也。頭一斷,手不能取他人之頭著之於頸,奈何獨能先出其腹實,乃內哀公之肝?腹實出輒死,則手不能復把矣。如先內哀公之肝,乃出其腹實,則文當言內哀公之肝出其腹實。今先言盡出其腹實,內哀公之肝,又言盡,增其實也。
사람이 칼로 서로 찌를 때 오장을 맞히면 곧 죽는다. 어째서인가. 오장은 기운의 주인이니 머리가 맥이 모이는 곳인 것과 같다. 머리가 한 번 끊기면 손이 남의 머리를 가져다 목에 붙일 수 없는데 어찌 홀로 먼저 그 뱃속을 내고 이에 애공의 간을 넣을 수 있는가. 뱃속이 나오면 곧 죽으니 손이 다시 잡을 수 없다. 먼저 애공의 간을 넣고 이에 그 뱃속을 내었다면 글이 마땅히 애공의 간을 넣고 그 뱃속을 내었다 말해야 한다. 이제 먼저 그 뱃속을 다 내고 애공의 간을 넣었다 말하고 또 다라 말하니 그 실상을 보탠 것이다.
儒書言:楚熊渠子出,見寢石,以為伏虎,將弓射之,矢沒其衛。或曰:養由基見寢石,以為兕也,射之,矢飲羽。或言李廣。便是熊渠、養由基、李廣主名不審,無實也。或以為虎,或以為兕,兕、虎俱猛,一實也。或言沒衛,或言飲羽,羽則衛,言不同耳,要取以寢石似虎、兕,畏懼加精,射之入深也。夫言以寢石為虎,射之矢入,可也;言其沒衛,增之也。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초나라 웅거자가 나갔다가 누운 돌을 보고 엎드린 범이라 여겨 활을 당겨 쏘니 화살이 그 깃까지 박혔다 한다. 더러는 양유기가 누운 돌을 보고 외뿔소라 여겨 쏘니 화살이 깃을 마셨다 한다. 더러는 이광이라 말한다. 곧 웅거·양유기·이광으로 주인의 이름이 분명하지 않으니 실상이 없는 것이다. 더러는 범이라 하고 더러는 외뿔소라 하는데 외뿔소와 범은 다 사나우니 한가지 실상이다. 더러는 깃까지 박혔다 하고 더러는 깃을 마셨다 하는데 우(羽)는 곧 위(衛)라 말이 다를 뿐이니, 요컨대 누운 돌이 범이나 외뿔소 같아 두려워 정기를 더하여 쏘아 깊이 들어갔다는 것을 취한 것이다. 무릇 누운 돌을 범이라 여겨 쏘아 화살이 들어갔다 말함은 옳으나 깃까지 박혔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夫見似虎者意以為是,張弓射之,盛精加意,則其見真虎與是無異。射似虎之石,矢入沒衛,若射真虎之身,矢洞度乎?石之質難射,肉易射也。
무릇 범 같은 것을 보고 뜻에 옳다 여겨 활을 당겨 쏘며 정기를 성하게 하고 뜻을 더하면 그 참 범을 봄과 이와 다름이 없다. 범 같은 돌을 쏘아 화살이 들어가 깃까지 박혔다면 참 범의 몸을 쏘면 화살이 꿰뚫고 지나가겠는가. 돌의 바탕은 쏘기 어렵고 살은 쏘기 쉽다.
以射難沒衛言之,則其射易者,洞不疑矣。善射者能射遠中微,不失毫厘,安能使弓弩更多力乎?養由基從軍,射晉侯,中其目。夫以匹夫射萬乘之主,其加精倍力,必與射寢石等。當中晉侯之目也,可復洞達於項乎?如洞達於項,晉侯宜死。
쏘기 어려운 것에 깃까지 박혔다는 것으로 말하면 그 쏘기 쉬운 것은 꿰뚫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활 잘 쏘는 이는 멀리 쏘고 작은 것을 맞혀 털끝만큼도 잃지 않을 수 있으나 어찌 활과 쇠뇌에 더 많은 힘이 있게 하겠는가. 양유기가 군사를 따라 진후를 쏘아 그 눈을 맞혔다. 무릇 필부로 만승의 임금을 쏘니 그 정기를 더하고 힘을 곱하기가 반드시 누운 돌을 쏨과 같았을 것이다. 진후의 눈을 맞혔을 때 다시 목까지 꿰뚫었는가. 목까지 꿰뚫었다면 진후는 마땅히 죽었을 것이다.
車張十石之弩,恐不能入〔石〕一寸,(失)〔矢〕摧為三,況以一人之力,引微弱之弓,雖加精誠,安能沒衛?人之精乃氣也,氣乃力也。有水火之難,惶惑恐懼,舉徙器物,精誠至矣,素舉一石者倍舉二石。然則見伏石射之,精誠倍故,不過入一寸,如何謂之沒衛乎?如有好用劍者,見寢石,懼而斫之,可復謂能斷石乎?以勇夫空拳而暴虎者,卒然見寢石,以手椎之,能令石有跡乎?
수레에 열 섬 쇠뇌를 당겨도 돌에 한 치도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우며 화살이 꺾여 셋이 될 것인데, 하물며 한 사람의 힘으로 작고 약한 활을 당겨 비록 정성을 더하여도 어찌 깃까지 박히겠는가. 사람의 정기는 곧 기운이요 기운은 곧 힘이다. 물과 불의 난리가 있어 당황하고 두려워 그릇을 들어 옮기면 정성이 지극하여 평소 한 섬 드는 이가 곱으로 두 섬을 든다. 그러니 엎드린 돌을 보고 쏘면 정성이 곱이 되므로 한 치 들어감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어찌 깃까지 박혔다 하는가. 칼 쓰기 좋아하는 이가 있어 누운 돌을 보고 두려워 베었다면 다시 돌을 끊을 수 있다 하겠는가. 용맹한 사내가 맨주먹으로 범을 치는 이가 갑자기 누운 돌을 보고 손으로 쳤다면 돌에 자국이 있게 할 수 있겠는가.
巧人之精與拙人等,古人之誠與今人同。使當今射工射禽獸於野,其欲得之,不餘精力乎?及其中獸,不過數寸。跌誤中石,不能內鋒,箭摧折矣。夫如是,儒書之言楚熊渠子、養由基、李廣射寢石,矢沒衛飲羽者,皆增之也。
교묘한 사람의 정기는 서투른 사람과 같고 옛사람의 정성은 지금 사람과 같다. 지금 활 쏘는 장인에게 들에서 새와 짐승을 쏘게 하면 그것을 얻으려 하매 정기와 힘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 짐승을 맞혀도 몇 치에 지나지 않는다. 헛디뎌 잘못 돌을 맞히면 살촉을 넣지 못하고 화살이 꺾여 부러진다. 이러하니 유가의 책에 초나라 웅거자·양유기·이광이 누운 돌을 쏘아 화살이 깃까지 박히고 깃을 마셨다 말한 것은 다 보탠 것이다.
儒書稱魯般、墨子之巧,刻木為鳶,飛之三日而不集。夫言其以木為鳶飛之,可也;言其三日不集,增之也。
유가의 책은 노반과 묵자의 교묘함이 나무를 새겨 솔개를 만들어 날리니 사흘 동안 내려앉지 않았다 일컫는다. 무릇 나무로 솔개를 만들어 날렸다 말함은 옳으나 사흘 동안 내려앉지 않았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夫刻木為鳶以象鳶形,安能飛而不集乎?既能飛翔,安能至於三日?如審有机關,一飛遂翔,不可復下,則當言遂飛,不當言三日。猶世傳言曰:「魯般巧,亡其母也。」言巧工為母作木車馬、木人御者,机關備具,載母其上,一驅不還,遂失其母。如木鳶机關備具,與木車馬等,則遂飛不集。机關為須臾間,不能遠過三日,則木車等亦宜三日止於道路,無為徑去以失其母。二者必失實者矣。
무릇 나무를 새겨 솔개를 만들어 솔개의 꼴을 본떴다 하여 어찌 날아 내려앉지 않을 수 있는가. 이미 날아다닐 수 있다 하여도 어찌 사흘에 이르는가. 참으로 기관이 있어 한 번 날면 마침내 날아다녀 다시 내려올 수 없다면 마땅히 마침내 날았다 말해야지 사흘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노반이 교묘하여 그 어미를 잃었다」 하는 것과 같다. 교묘한 장인이 어미를 위해 나무 수레와 말과 나무 사람 마부를 만들어 기관이 갖추어지자 어미를 그 위에 태우니 한 번 몰아 돌아오지 않아 마침내 그 어미를 잃었다는 말이다. 나무 솔개가 기관이 갖추어져 나무 수레와 말과 같다면 마침내 날아 내려앉지 않을 것이다. 기관은 잠깐 사이의 것이라 멀리 사흘을 지날 수 없다면 나무 수레도 마땅히 사흘에 길에서 멈추었을 것이니 바로 가 버려 그 어미를 잃을 까닭이 없다. 둘은 반드시 실상을 잃은 것이다.
書說:孔子不能容於世,周流游說七十餘國,未嘗得安。夫言周流不遇,可也;言干七十國,增之也。
책에 말하기를, 공자가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여 두루 다니며 일흔 남짓 나라에 유세하였으나 일찍이 편안함을 얻지 못하였다 한다. 무릇 두루 다녀 만나지 못하였다 말함은 옳으나 일흔 나라에 구하였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案《論語》之篇、諸子之書,孔子自衛反魯,在陳絕糧,削跡於衛,忘味於齊,伐樹於宋,并費與頓牟,至不能十國。傳言七十國,非其實也。或時干十數國也,七十之說,文書傳之,因言干七十國矣。
살피건대 「논어」의 편과 제자의 책에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오고,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기고, 위나라에서 자취를 깎이고, 제나라에서 맛을 잊고, 송나라에서 나무를 베이고, 비와 돈모를 아울러도 열 나라에 이르지 못한다. 전하는 말이 일흔 나라라 함은 그 실상이 아니다. 혹 십수 나라에 구하였을 것이니 일흔이라는 말은 글과 책이 전하여 이로 인해 일흔 나라에 구하였다 말한 것이다.
《論語》曰:「孔子問公叔文子於公明賈曰:『信乎,夫子不言、不笑、不取乎?』公明賈對曰:『以告者,過也。夫子時然後言,人不厭其言也;樂然後笑,人不厭其笑也;義然後取,人不厭其取也。』子曰:『豈其然乎!豈其然乎!』」夫公叔文子實時言、時笑、義取,人傳說稱之;言其不言、不笑、不取也,俗言竟增之也。
「논어」에 이르기를 「공자가 공숙문자를 공명가에게 물었다. 『참인가, 부자께서는 말하지 않고 웃지 않고 취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공명가가 대답하였다. 『알린 이가 지나쳤습니다. 부자께서는 때가 된 뒤에 말하시니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고, 즐거운 뒤에 웃으시니 사람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의로운 뒤에 취하시니 사람들이 그 취함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 그러하랴! 어찌 그러하랴!』」 하였다. 무릇 공숙문자가 실로 때에 맞게 말하고 때에 맞게 웃고 의로움에 취하니 사람들이 전하여 일컬은 것인데, 그가 말하지 않고 웃지 않고 취하지 않는다 말함은 세속의 말이 끝내 보탠 것이다.
書言:秦繆公伐鄭,過晉不假途,晉襄公率羌戎要擊於崤塞之下,匹馬只輪無反者,時秦遣三大夫孟明視、西乞術、白乙丙皆得復還。夫三大夫復還,車馬必有歸者;文言匹馬只輪無反者,增其實也。
책에 말하기를, 진(秦) 목공이 정나라를 치는데 진(晉)나라를 지나면서 길을 빌리지 않으니 진(晉) 양공이 강융을 거느리고 효새 아래에서 맞아 쳐서 한 마리 말 한 바퀴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하는데, 이때 진(秦)이 보낸 세 대부 맹명시·서걸술·백을병은 다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무릇 세 대부가 다시 돌아왔으니 수레와 말도 반드시 돌아간 것이 있다. 글이 한 마리 말 한 바퀴도 돌아간 것이 없다 말함은 그 실상을 보탠 것이다.
書稱齊之孟嘗君,魏之信陵君,趙之平原君,楚之春申君,待士下客,招會四方,各三千人。欲言下士之至,趨之者眾也。夫言士多,可也;言其三千,增之也。四君雖好士,士至雖眾,不過各千餘人。書則言三千矣。夫言眾必言千數,言少則言無一。世俗之情,言事之失也。
책은 제나라 맹상군, 위나라 신릉군, 조나라 평원군, 초나라 춘신군이 선비를 대접하고 손에게 낮추어 사방을 불러 모으니 저마다 삼천 사람이라 일컫는다. 선비에게 낮춤이 지극하여 달려온 이가 많았다 말하려는 것이다. 무릇 선비가 많았다 말함은 옳으나 그 삼천이라 말함은 보탠 것이다. 네 군이 비록 선비를 좋아하고 이른 선비가 비록 많아도 저마다 천 남짓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은 곧 삼천이라 말한다. 무릇 많음을 말하면 반드시 천 수를 말하고 적음을 말하면 하나도 없다 말한다. 세속의 정이 일을 말함에 잃는 것이다.
傳記言:高子羔之喪親,泣血三年,未嘗見齒。君子以為難,難為故也。夫不以為非實而以為難,君子之言誤矣。高子泣血,殆必有之。何則?荊和獻寶於楚,楚刖其足,痛寶不進,己情不達,泣涕,涕盡因續以血。今高子痛親哀極,涕竭血隨而出,實也。而云三年未嘗見齒,是增之也。
전기에 말하기를, 고자고가 어버이를 잃고 피눈물을 세 해 흘리며 일찍이 이를 보이지 않았다 한다. 군자가 어렵다 여긴 것은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릇 실상이 아니라 여기지 않고 어렵다 여겼으니 군자의 말이 그르다. 고자가 피눈물 흘린 것은 아마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형화가 초나라에 보물을 바치니 초나라가 그 발을 베었는데 보물이 나아가지 못하고 제 정이 통하지 못함을 아파하여 눈물을 흘리다 눈물이 다하니 이어 피가 나왔다. 이제 고자가 어버이를 아파함이 슬픔이 지극하여 눈물이 다하고 피가 따라 나온 것은 실상이다. 그런데 세 해 동안 일찍이 이를 보이지 않았다 함은 보탠 것이다.
言未嘗見齒,欲言其不言、不笑也。孝子喪親不笑,可也,安得不言?言安得不見齒?孔子曰:「言不文。」或時不言,傳則言其不見齒;或時傳則言其不見齒三年矣。高宗諒陰,三年不言。
일찍이 이를 보이지 않았다 말함은 그가 말하지 않고 웃지 않았다 말하려는 것이다. 효자가 어버이를 잃고 웃지 않음은 옳으나 어찌 말하지 않겠는가. 말하면 어찌 이를 보이지 않겠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말을 꾸미지 않는다.」 혹 때로 말하지 않으니 전하는 이가 곧 그가 이를 보이지 않았다 말하고, 혹 때로 전하는 이가 곧 그가 세 해 동안 이를 보이지 않았다 말한 것이다. 고종은 양암에서 세 해 말하지 않았다.
尊為天子,不言,而其文言不言,猶疑於增,況高子位賤,而曰未嘗見齒,是必增益之也。
높기가 천자이면서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 글이 말하지 않았다 한 것이 오히려 보탠 것으로 의심되는데, 하물며 고자는 자리가 천한데 일찍이 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니 이는 반드시 보태어 더한 것이다.
儒書言:禽息荐百里奚,繆公未聽,禽息出,當門仆頭碎首而死。繆公痛之,乃用百里奚。此言賢者荐善,不愛其死,仆頭碎首而死,以達其友也。世士相激,文書傳稱之,莫謂不然。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금식이 백리해를 천거하니 목공이 듣지 않았는데 금식이 나가 문에 이르러 머리를 엎어 머리를 부수고 죽었다 한다. 목공이 아파하여 이에 백리해를 썼다 한다. 이 말은 어진 이가 착한 이를 천거함에 그 죽음을 아끼지 않고 머리를 엎어 머리를 부수고 죽어 그 벗을 통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세상 선비가 서로 격려하여 글과 책이 전하여 일컫고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夫仆頭以荐善,古今有之。禽息仆頭,蓋其實也;言碎首而死,是增之也。
무릇 머리를 엎어 착한 이를 천거함은 예나 지금이나 있다. 금식이 머리를 엎은 것은 아마 그 실상이나 머리를 부수고 죽었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夫人之扣頭,痛者血流,雖忿恨惶恐,無碎首者。非首不可碎,人力不能自碎也。執刃刎頸,樹鋒刺胸,鋒刃之助,故手足得成勢也。言禽息舉椎自擊首碎,不足怪也;仆頭碎首,力不能自將也。有扣頭而死者,未有使頭破首碎者也。此時或扣頭荐百里奚,世空言其死;若或扣頭而死,世空言其首碎也。
무릇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면 아픈 이는 피가 흐르나 비록 분하고 한하고 두려워도 머리를 부순 이는 없다. 머리를 부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스스로 부술 수 없는 것이다. 칼을 잡아 목을 찌르고 칼끝을 세워 가슴을 찌르는 것은 칼날의 도움이 있으므로 손발이 형세를 이룰 수 있다. 금식이 망치를 들어 스스로 머리를 쳐서 부수었다 말하면 괴이할 것이 없으나 머리를 엎어 머리를 부수었다는 것은 힘이 스스로 이끌 수 없다. 머리를 조아리다 죽은 이는 있으나 머리를 깨뜨리고 머리를 부수게 한 이는 없다. 이때 혹 머리를 조아려 백리해를 천거하니 세상이 헛되이 그가 죽었다 말하고, 혹 머리를 조아리다 죽으니 세상이 헛되이 그 머리가 부서졌다 말한 것이다.
儒書言:荊軻為燕太子刺秦王,操匕首之劍,刺之不得,秦王拔劍擊之。軻以匕首秦王不中,中銅柱,入尺。欲言匕首之利,荊軻勢盛,投銳利之刃,陷堅強之柱,稱荊軻之勇,故增益其事也。夫言入銅柱,實也;言其入尺,增之也。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형가가 연나라 태자를 위해 진왕을 찌르는데 비수의 검을 잡고 찔렀으나 얻지 못하니 진왕이 검을 뽑아 쳤다. 형가가 비수를 진왕에게 던졌으나 맞지 않고 구리 기둥을 맞혀 한 자 들어갔다 한다. 비수의 날카로움과 형가의 기세가 성하여 날카로운 칼을 던져 굳센 기둥을 뚫었다 말하여 형가의 용맹을 일컬으려 하였으므로 그 일을 보태어 더한 것이다. 무릇 구리 기둥에 들어갔다 말함은 실상이나 한 자 들어갔다 말함은 보탠 것이다.
夫銅雖不若匕首堅剛,入之不過數寸,殆不能入尺。以入尺言之,設中秦王,匕首洞過乎?車張十石之弩,射垣木之表,尚不能入尺。以荊軻之手力,投輕小之匕首,身被龍淵之劍刃,入堅剛之銅柱,是荊軻之力勁於十石之弩,銅柱之堅不若木表之剛也。世稱荊軻之勇,不言其多力。多力之人,莫若孟賁。使孟賁銅柱,能(淵)〔洞〕出一尺乎?此亦或時匕首利若干將、莫邪,所刺無前,所擊無下,故有入尺之效。夫稱干將、莫邪,亦過其實。刺擊無前下,亦入銅柱尺之類也。
무릇 구리가 비록 비수처럼 굳세고 단단하지 않아도 들어감이 몇 치에 지나지 않으니 거의 한 자 들어갈 수 없다. 한 자 들어갔다는 것으로 말하면 진왕을 맞혔더라면 비수가 꿰뚫고 지났겠는가. 수레에 열 섬 쇠뇌를 당겨 담과 나무 과녁을 쏘아도 오히려 한 자 들어갈 수 없다. 형가의 손 힘으로 가볍고 작은 비수를 던지며 몸에 용연의 검날을 입고서 굳센 구리 기둥에 들어갔다면 이는 형가의 힘이 열 섬 쇠뇌보다 굳세고 구리 기둥의 단단함이 나무 과녁의 굳셈만 못한 것이다. 세상은 형가의 용맹을 일컫지 그 힘이 많다 말하지 않는다. 힘 많은 사람은 맹분만 한 이가 없다. 맹분에게 구리 기둥을 찌르게 하면 한 자를 뚫고 나올 수 있겠는가. 이 또한 혹 비수가 날카롭기 간장·막야 같아 찌르는 데 앞이 없고 치는 데 아래가 없으므로 한 자 들어간 보람이 있었을 것이다. 무릇 간장·막야를 일컫는 것도 그 실상을 지나쳤다. 찌르고 치는 데 앞과 아래가 없다는 것도 구리 기둥에 한 자 들어갔다는 무리다.
儒書言:董仲舒讀《春秋》,專精一思,志不在他,三年不窺園菜。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동중서가 「춘추」를 읽는데 오로지 정밀히 한 생각에 뜻이 다른 데 있지 않아 세 해 동안 정원의 채소를 엿보지 않았다 한다.
夫言不窺園菜,實也;言三年,增之也。
무릇 정원의 채소를 엿보지 않았다 말함은 실상이나 세 해라 말함은 보탠 것이다.
仲舒雖精,亦時解休,解休之間,猶宜游於門庭之側;則能至門庭,何嫌不窺園菜?聞用精者察物不見,存道以亡身;不聞不至門庭,坐思三年,不及窺園也。《尚書毋佚》曰「君子所其毋逸,先知稼穡之艱難,乃佚」者也。人之筋骨非木非石,不能不解。故張而不弛,文王不為;弛而不張,文王不行;一弛一張,文王以為常。聖人材優,尚有弛張之時。仲舒材力劣於聖,安能用精三年不休?
중서가 비록 정밀하였어도 또한 때로 풀어 쉬었을 것이니 풀어 쉬는 사이에 오히려 마땅히 문과 뜰 곁에 노닐었을 것이다. 문과 뜰에 이를 수 있었다면 어찌 정원의 채소를 엿보지 않았겠는가. 정기를 쓰는 이가 물건을 살펴도 보지 못하고 도를 지켜 몸을 잊는다는 말은 들었으나, 문과 뜰에 이르지 않고 앉아 세 해를 생각하며 정원을 엿봄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상서」 무일 편에 「군자는 그 편안하지 않은 바에 처하여 먼저 농사의 어려움을 알고 이에 편안하다」 하였다. 사람의 힘줄과 뼈는 나무도 돌도 아니니 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당기기만 하고 늦추지 않음은 문왕이 하지 않았고 늦추기만 하고 당기지 않음은 문왕이 행하지 않았으며 한 번 늦추고 한 번 당김을 문왕이 늘 하였다. 성인은 재주가 뛰어나도 오히려 늦추고 당기는 때가 있다. 중서는 재주와 힘이 성인보다 못한데 어찌 정기를 세 해 동안 쉬지 않고 쓸 수 있겠는가.
儒書言:夏之方盛也,遠方圖物,貢金九牧,鑄鼎象物而為之備,故入山澤不逢惡物,用辟神奸,故能葉於上下,以承天休。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하나라가 바야흐로 성할 때 먼 곳에서 물건을 그리고 구목이 쇠를 바치니 솥을 부어 물건을 본떠 갖추었으므로 산과 못에 들어가도 악한 물건을 만나지 않고 신령한 간사함을 물리쳐 위아래가 화합하여 하늘의 아름다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한다.
夫金之性,物也,用遠方貢之為美,鑄以為鼎,用象百物之奇,安能入山澤不逢惡物,辟除神奸乎?周時天下太平,越裳獻白雉,倭人貢鬯草。食白雉,服鬯草,不能除凶;金鼎之器,安能辟奸?且九鼎之來,德盛之瑞也。
무릇 쇠의 성품은 물건이니 먼 곳에서 바친 것을 아름답다 하여 부어 솥을 만들어 온갖 물건의 기이함을 본떴다 하여 어찌 산과 못에 들어가도 악한 물건을 만나지 않고 신령한 간사함을 물리쳐 없앨 수 있는가. 주나라 때 천하가 태평하여 월상이 흰 꿩을 바치고 왜인이 창초를 바쳤다. 흰 꿩을 먹고 창초를 쓴다 하여 흉함을 없앨 수 없는데 쇠솥의 그릇이 어찌 간사함을 물리치겠는가. 또 구정이 온 것은 덕이 성한 상서다.
服瑞應之物,不能致福。男子服玉,女子服珠。珠玉於人,無能辟除。寶奇之物,使為蘭服,作牙身,或言有益者,九鼎之語也。夫九鼎無能辟除,傳言能辟神奸,是則書增其文也。
상서로운 물건을 쓴다 하여 복을 이르게 할 수 없다. 남자는 옥을 차고 여자는 구슬을 찬다. 구슬과 옥이 사람에게 물리쳐 없앨 수 있는 것이 없다. 보배롭고 기이한 물건으로 난초 옷을 만들고 상아 몸을 만들어 더러 유익하다 말하는 것은 구정의 말이다. 무릇 구정이 물리쳐 없앨 수 없는데 전하는 말이 신령한 간사함을 물리칠 수 있다 하니 이는 책이 그 글을 보탠 것이다.
世俗傳言:周鼎不爨自沸;不投物,物自出。此則世俗增其言也,儒書增其文也,是使九鼎以無怪空為神也。
세속에 전하는 말에 주나라 솥은 불을 때지 않아도 절로 끓고 물건을 넣지 않아도 물건이 절로 나온다 한다. 이는 세속이 그 말을 보탠 것이요 유가의 책이 그 글을 보탠 것이니, 이는 구정으로 하여금 괴이함이 없는데 헛되이 신령하게 한 것이다.
且夫謂周之鼎神者,何用審之?周鼎之金,遠方所貢,禹得鑄以為鼎也。其為鼎也,有百物之象。如為遠方貢之為神乎,遠方之物安能神?如以為禹鑄之為神乎,禹聖不能神,聖人身不能神,鑄器安能神?如以金之物為神乎,則夫金者石之類也,石不能神,金安能神?以有百物之象為神乎,夫百物之象猶雷樽也,雷樽刻畫雲雷之形,雲雷在天,神於百物,雲雷之象不能神,百物之象安能神也?
또 무릇 주나라 솥이 신령하다 하는 이는 무엇으로 살폈는가. 주나라 솥의 쇠는 먼 곳에서 바친 것으로 우가 얻어 부어 솥을 만든 것이다. 그 솥을 만듦에 온갖 물건의 상이 있다. 먼 곳에서 바쳤다 하여 신령하다 한다면 먼 곳의 물건이 어찌 신령하겠는가. 우가 부었다 하여 신령하다 한다면 우는 성인이지 신령할 수 없으니 성인의 몸이 신령할 수 없는데 부은 그릇이 어찌 신령하겠는가. 쇠라는 물건으로 신령하다 한다면 무릇 쇠는 돌의 무리니 돌이 신령할 수 없는데 쇠가 어찌 신령하겠는가. 온갖 물건의 상이 있음으로 신령하다 한다면 무릇 온갖 물건의 상은 뇌준과 같으니, 뇌준에 구름과 우레의 꼴을 새겨 그리는데 구름과 우레는 하늘에 있어 온갖 물건보다 신령하나 구름과 우레의 상이 신령할 수 없는데 온갖 물건의 상이 어찌 신령하겠는가.
傳言:秦滅周,周之九鼎入於秦。
전하는 말에 진나라가 주나라를 멸하니 주나라의 구정이 진나라에 들어갔다 한다.
案本事,周赧王之時,秦昭王使將軍攻王赧,王赧惶懼奔秦,頓首受罪,盡獻其邑三十六、口三萬。秦受其獻還王赧。王赧卒,秦王取九鼎寶器矣。若此者,九鼎在秦也。始皇二十八年,此游至琅邪,還過彭城,齊戒禱祠,欲出周鼎,使千人沒泗水之中,求弗能得。案時,昭王之後三世得始皇帝,秦無危亂之禍,鼎宜不亡,亡時殆在周。傳言王赧奔秦,秦取九鼎,或時誤也。傳又言宋太丘社亡,鼎沒水中彭城下,其後二十九年秦并天下。若此者,鼎未入秦也。其亡,從周去矣,未為神也。
본디 일을 살피면 주 난왕 때 진 소왕이 장군을 시켜 난왕을 치니 난왕이 두려워 진나라로 달아나 머리를 조아려 죄를 받고 그 고을 서른여섯과 인구 삼만을 다 바쳤다. 진나라가 그 바침을 받고 난왕을 돌려보냈다. 난왕이 죽으니 진왕이 구정과 보배 그릇을 취하였다. 이와 같다면 구정이 진나라에 있는 것이다. 시황 이십팔년에 낭야에 노닐러 갔다가 돌아오며 팽성을 지나는데 재계하고 빌며 주나라 솥을 꺼내려 천 사람을 사수 가운데 들어가게 하여 구하였으나 얻을 수 없었다. 때를 살피면 소왕 뒤로 삼세에 시황제를 얻었으니 진나라에 위태롭고 어지러운 화가 없어 솥이 마땅히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니 없어진 때는 아마 주나라에 있을 것이다. 전하는 말에 난왕이 진나라로 달아나 진나라가 구정을 취하였다 함은 혹 그른 것이다. 전하는 말에 또 송나라 태구의 사직이 없어지고 솥이 팽성 아래 물 가운데 잠겼는데 그 뒤 스물아홉 해에 진나라가 천하를 아울렀다 한다. 이와 같다면 솥은 진나라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없어짐은 주나라에서 간 것이니 신령한 것이 아니다.
春秋之時,五石隕於宋。五石者星也,星之去天,猶鼎之亡於地也。星去天不為神,鼎亡於地何能神?春秋之時,三山亡,猶太丘社之去宋,五星之去天。三山亡,五石隕,太丘社去,皆自有為。然鼎亡,亡亦有應也。未可以亡之故,乃謂之神。如鼎與秦三山同乎,亡不能神。如有知欲辟危亂之禍乎,則更桀、紂之時矣。衰亂無道,莫過桀、紂,桀、紂之時,鼎不亡去。周之衰亂,未若桀、紂。留無道之桀、紂,去衰末之周,非止去之,宜神有知之驗也。或時周亡之時,將軍人眾見鼎盜取,奸人鑄爍以為他器,始皇求不得也,後因言有神名,則空生沒於泗水之語矣。
춘추 때 다섯 돌이 송나라에 떨어졌다. 다섯 돌은 별이니 별이 하늘을 떠남은 솥이 땅에서 없어짐과 같다. 별이 하늘을 떠남이 신령하지 않은데 솥이 땅에서 없어짐이 어찌 신령하겠는가. 춘추 때 세 산이 없어졌으니 태구의 사직이 송나라에서 떠나고 다섯 별이 하늘에서 떠난 것과 같다. 세 산이 없어지고 다섯 돌이 떨어지고 태구 사직이 떠남은 다 절로 까닭이 있다. 그러니 솥이 없어짐도 없어짐에 또한 응함이 있다. 없어졌다는 까닭으로 곧 신령하다 할 수 없다. 솥이 진나라 세 산과 같다면 없어짐이 신령할 수 없다. 앎이 있어 위태롭고 어지러운 화를 피하려 하였다면 걸·주의 때를 지났다. 쇠하고 어지럽고 무도함이 걸·주보다 지나친 것이 없는데 걸·주 때 솥이 없어져 가지 않았다. 주나라의 쇠하고 어지러움은 걸·주만 못하다. 무도한 걸·주에게는 머물고 쇠하고 끝난 주나라에서 떠났으니 다만 떠난 것이 아니라 마땅히 신령하고 앎이 있다는 증험이어야 한다. 혹 주나라가 망할 때 장군과 사람들이 솥을 보고 훔쳐 취하여 간사한 사람이 부어 녹여 다른 그릇으로 만들어 시황이 구하여 얻지 못하였고 뒤에 이로 인해 신령한 이름이 있다 말하니 곧 헛되이 사수에 잠겼다는 말을 낳은 것이다.
孝文皇帝之時,趙人新垣平上言:「周鼎亡在泗水中。今河溢通於泗水,臣望東北,汾陰直有金氣,意周鼎出乎!兆見弗迎則不至。」於是文帝使使治廟汾陰,南臨河,欲祠出周鼎。人有上書告新垣平所言神器事皆詐也,於是下平事於吏。吏治,誅新垣平。夫言鼎在泗水中,猶新垣平詐言鼎有神氣見也。
효문황제 때 조나라 사람 신원평이 글을 올려 말하였다. 「주나라 솥이 사수 가운데 없어져 있습니다. 이제 하수가 넘쳐 사수에 통하니 신이 동북을 바라보매 분음에 바로 쇠 기운이 있어 생각건대 주나라 솥이 나올 것입니다! 조짐이 보이는데 맞이하지 않으면 이르지 않습니다.」 이에 문제가 사자를 시켜 분음에 사당을 지어 남으로 하수에 임하게 하고 제사하여 주나라 솥을 내려 하였다. 사람이 글을 올려 신원평이 말한 신령한 그릇의 일이 다 속임이라 고하니 이에 평의 일을 아전에게 내렸다. 아전이 다스려 신원평을 베었다. 무릇 솥이 사수 가운데 있다 말함은 신원평이 솥에 신령한 기운이 보인다고 속여 말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