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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孔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73 · 한자 7,026자 · 낭독 28.1분

「논형」 문공편 「問孔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世儒學者,好信師而是古,以為賢聖所言皆無非,專精講習,不知難問。夫賢聖下筆造文,用意詳審,尚未可謂盡得實,況倉卒吐言,安能皆是?不能皆是,時人不知難;或是,而意沉難見,時人不知問。案賢聖之言,上下多相違;其文,前後多相伐者。世之學者,不能知也。

세상 유가의 배우는 이는 스승을 믿고 옛것을 옳다 하기 좋아하여 현인과 성인이 말한 바가 다 그름이 없다 여기고 오로지 정밀히 강습할 뿐 따져 물을 줄 모른다. 무릇 현인과 성인이 붓을 내려 글을 지음에 뜻을 씀이 자세하고 살펴도 오히려 실상을 다 얻었다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창졸간에 뱉은 말이 어찌 다 옳겠는가. 다 옳을 수 없는데 당시 사람이 따질 줄 몰랐고, 혹 옳더라도 뜻이 잠겨 보기 어려운데 당시 사람이 물을 줄 몰랐다. 살피건대 현인과 성인의 말은 위아래가 서로 어긋난 것이 많고 그 글은 앞뒤가 서로 치는 것이 많다. 세상의 배우는 이는 알지 못한다.

論者皆云:「孔門之徒,七十子之才,勝今之儒。」此言妄也。彼見孔子為師,聖人傳道,必授異才,故謂之殊。夫古人之才,今人之才也。今謂之英杰,古以為聖神,故謂七十子歷世希有。使當今有孔子之師,則斯世學者,皆顏、閔之徒也;使無孔子,則七十子之徒,今之儒生也。何以驗之?以學於孔子,不能極問也。聖人之言,不能盡解。說道陳義,不能輒形。不能輒形,宜問以發之;不能盡解,宜難以極之。皋陶陳道帝舜之前,淺略未極。禹問難之,淺言復深,略指復分。蓋起問難,此說激而深切、觸而著明也。

논하는 이는 다 「공자 문하의 무리 일흔 제자의 재주가 지금의 유자보다 낫다」 한다. 이 말은 망령되다. 저들은 공자가 스승이 되어 성인이 도를 전함에 반드시 남다른 재주에게 주었을 것이라 보므로 특별하다 한다. 무릇 옛사람의 재주는 지금 사람의 재주다. 지금 영걸이라 하는 것을 옛날에는 성신이라 여겼으므로 일흔 제자가 세상에 드물다 하는 것이다. 지금 공자 같은 스승이 있다면 이 세상의 배우는 이는 다 안연·민자건의 무리요, 공자가 없었다면 일흔 제자의 무리는 지금의 유생이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공자에게 배우면서 끝까지 묻지 못한 것으로다. 성인의 말을 다 풀 수 없다. 도를 말하고 뜻을 펼 때 곧 다 드러낼 수 없다. 곧 드러낼 수 없으면 마땅히 물어 밝혀야 하고 다 풀 수 없으면 마땅히 따져 끝까지 가야 한다. 고요가 순 임금 앞에서 도를 폈는데 얕고 간략하여 다하지 못하였다. 우가 따져 물으니 얕은 말이 다시 깊어지고 간략한 가리킴이 다시 나뉘었다. 무릇 따져 물음을 일으키면 그 말이 격동되어 깊고 간절해지며 부딪혀 밝게 드러난다.

孔子笑子游之弦歌,子游引前言以距孔子。自今案《論語》之文,孔子之言多若笑弦歌之辭,弟子寡若子游之難,故孔子之言,遂結不解。以七十子不能難,世之儒生,不能實道是非也。

공자가 자유의 현가를 웃으니 자유가 앞서 한 말을 끌어 공자에게 맞섰다. 이제 「논어」의 글을 살피면 공자의 말에 현가를 웃은 말 같은 것이 많고 제자에 자유의 따짐 같은 것이 적으므로 공자의 말이 마침내 맺혀 풀리지 않았다. 일흔 제자가 따지지 못하였으므로 세상의 유생이 옳고 그름을 실답게 말하지 못한다.

凡學問之法,不為無才,難於距師,核道實義,証定是非也。問難之道,非必對聖人及生時也。世之解說說人者,非必須聖人教告,乃敢言也。苟有不曉解之問,(迢)〔追〕難孔子,何傷於義?誠有傳聖業之知,伐孔子之說,何逆於理?謂問孔子之言,難其不解之文,世間弘才大知,(生)能答問解難之人,必將賢吾世間難問之言(是非)。

무릇 학문의 법은 재주 없음이 아니라 스승에게 맞서기 어려워함이니, 도를 핵실하고 뜻을 실답게 하여 옳고 그름을 증명하여 정하는 것이다. 따져 묻는 도는 반드시 성인을 마주하고 살았을 때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풀이하여 사람에게 말하는 이가 반드시 성인이 가르쳐 알린 뒤에야 감히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알지 못하는 물음이 있어 뒤쫓아 공자를 따진들 뜻에 무엇이 상하겠는가. 참으로 성인의 업을 전하는 앎이 있어 공자의 말을 친들 이치에 무엇이 거스르겠는가. 공자의 말을 묻고 그 풀리지 않은 글을 따지면 세상의 넓은 재주와 큰 앎으로 물음에 답하고 따짐을 풀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우리 세상의 따져 묻는 말을 어질다 할 것이다.

孟懿子問孝。子曰:「毋違。」樊遲御,子告之曰:「孟孫問孝於我,我對曰『毋違』。」

맹의자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하였다. 「어기지 마라.」 번지가 수레를 모니 공자가 그에게 알려 말하였다. 「맹손이 나에게 효를 묻기에 내가 『어기지 마라』 하고 대답하였다.」

樊遲曰:「何謂也?」子曰:「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問曰:孔子之言毋違,毋違者,禮也。孝子亦當先意承志,不當違親之欲。孔子言毋違,不言違禮。懿子聽孔子之言,獨不為嫌於無違志乎。樊遲問何謂,孔子乃言「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

번지가 말하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살아서는 예로 섬기고 죽어서는 예로 장사 지내는 것이다.」 묻는다. 공자의 말에 어기지 말라 하니 어기지 말라는 것은 예다. 효자는 또한 마땅히 뜻을 앞서 알고 뜻을 받들어야지 어버이의 바람을 어겨서는 안 된다. 공자가 어기지 말라 말하고 예를 어기지 말라 말하지 않았다. 의자가 공자의 말을 듣고 홀로 뜻을 어기지 말라는 혐의를 하지 않았겠는가. 번지가 무슨 말이냐 물으니 공자가 이에 「살아서는 예로 섬기고 죽어서는 예로 장사 지내며 예로 제사한다」 하였다.

使樊遲不問,毋違之說遂不可知也。懿子之才,不過樊遲,故《論語》篇中不見言行。樊遲不曉,懿子必能曉哉?

번지가 묻지 않았다면 어기지 말라는 말은 마침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의자의 재주는 번지에 지나지 않으므로 「논어」 편 가운데 말과 행실이 보이지 않는다. 번지가 깨닫지 못하였는데 의자가 반드시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孟武伯問孝,子曰:「父母,唯其疾之憂。」武伯善憂父母,故曰「唯其疾之憂」。武伯憂親,懿子違禮。攻其短,答武伯云「父母,唯其疾之憂」,對懿子亦宜言難水火之變乃違禮。周公告小才敕,大材略。子游之大材也,孔子告之敕;懿子小才也,告之反略。違周公之志,攻懿子之短,失道理之宜。弟子不難,何哉?如以懿子權尊,不敢極言,則其對武伯亦宜但言毋憂而已。(但)〔俱〕孟氏子也,權尊鈞同,(形)〔敕〕武伯而略懿子,未曉其故也。使孔子對懿子極言毋違禮,何害之有?專魯莫過季氏,譏八佾之舞庭,刺太山之旅祭,不懼季氏增邑不隱諱之害,獨畏答懿子極言之罪,何哉?且問孝者非一,皆有御者,對懿子言不但心服、臆肯,故告樊遲。

맹무백이 효를 물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부모는 오직 그 병을 근심한다.」 무백이 부모를 근심하기 잘하였으므로 「오직 그 병을 근심한다」 하였다. 무백은 어버이를 근심하고 의자는 예를 어겼다. 그 단점을 치는데 무백에게는 「부모는 오직 그 병을 근심한다」 답하였으니 의자에게도 마땅히 물과 불의 변고를 따지는 것이 곧 예를 어김이라 말해야 한다. 주공은 작은 재주에게는 자세히 알리고 큰 재주에게는 간략히 하였다. 자유는 큰 재주인데 공자가 자세히 알렸고 의자는 작은 재주인데 알리기를 도리어 간략히 하였다. 주공의 뜻을 어기고 의자의 단점을 치니 도리의 마땅함을 잃었다. 제자가 따지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의자가 권세가 높아 감히 다 말하지 못하였다면 무백에게 대답할 때도 마땅히 다만 근심하지 말라고만 하였을 것이다. 다 맹씨의 아들이라 권세와 높음이 고루 같은데 무백에게는 자세히 하고 의자에게는 간략히 하였으니 그 까닭을 깨닫지 못하겠다. 공자가 의자에게 예를 어기지 말라 다 말하였다면 무슨 해가 있었겠는가. 노나라를 오로지함이 계씨보다 지나친 이가 없는데 팔일무를 뜰에서 춘 것을 나무라고 태산에 여제 지낸 것을 찔러 계씨가 고을을 늘린 것을 숨기지 않은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홀로 의자에게 다 말하는 죄를 두려워하였으니 어째서인가. 또 효를 물은 이가 하나가 아니고 다 수레 모는 이가 있었는데 의자에게 말한 것이 마음으로 복종하고 가슴으로 수긍하지 않을 뿐이었으므로 번지에게 알린 것이다.

孔子曰:「富與貴,是人之所欲也,不以其道得之,不居也;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得之,不去也。」此言人當由道義得,不當苟取也;當守節安貧,不當妄去也。

공자가 말하였다. 「부와 귀는 사람이 바라는 바이나 그 도로 얻은 것이 아니면 머물지 않고, 가난과 천함은 사람이 싫어하는 바이나 그 도로 얻은 것이 아니면 떠나지 않는다.」 이 말은 사람이 마땅히 도의로 얻어야지 구차히 취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절개를 지켜 가난에 편안해야지 망령되이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夫言不以其道,得富貴不居,可也;不以其道,得貧賤如何?

무릇 그 도로 하지 않고 부귀를 얻으면 머물지 않는다 말함은 옳다. 그 도로 하지 않고 가난과 천함을 얻는다는 것은 어떠한가.

富貴顧可去,去貧賤何之?去貧賤,得富貴也。不得富貴,不去貧賤。如謂得富貴不以其道,則不去貧賤邪?則所得富貴,不得貧賤也。貧賤何故當言得之?顧當言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去之,則不去也。當言去,不當言得。得者,施於得之也。今去之,安得言得乎?獨富貴當言得耳。何者?得富貴,乃去貧賤也。是則以道去貧賤如何?修身行道,仕得爵祿、富貴。得爵祿、富貴,則去貧賤矣。不以其道去貧賤如何?毒苦貧賤,起為奸盜,積聚貨財,擅相官秩,是為不以其道。七十子既不問,世之學者亦不知難。使此言意不解而文不分,是謂孔子不能吐辭也;使此言意結文又不解,是孔子相示未形悉也。弟子不問,世俗不難,何哉?

부귀는 떠날 수 있으나 가난과 천함을 떠나면 어디로 가는가. 가난과 천함을 떠남은 부귀를 얻음이다. 부귀를 얻지 못하면 가난과 천함을 떠나지 못한다. 부귀를 얻음이 그 도로 하지 않은 것이면 가난과 천함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러면 얻은 바는 부귀지 가난과 천함을 얻은 것이 아니다. 가난과 천함을 무슨 까닭으로 마땅히 얻는다 말하는가. 도리어 마땅히 가난과 천함은 사람이 싫어하는 바이나 그 도로 떠나는 것이 아니면 떠나지 않는다 말해야 한다. 마땅히 떠난다 말해야지 얻는다 말해서는 안 된다. 얻는다는 것은 얻는 데 베푸는 것이다. 이제 떠나는데 어찌 얻는다 말할 수 있는가. 오직 부귀만 마땅히 얻는다 말할 뿐이다. 어째서인가. 부귀를 얻어야 곧 가난과 천함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로 가난과 천함을 떠남은 어떠한가. 몸을 닦고 도를 행하여 벼슬하여 작록과 부귀를 얻는다. 작록과 부귀를 얻으면 가난과 천함을 떠난다. 그 도로 하지 않고 가난과 천함을 떠남은 어떠한가. 가난과 천함을 독하게 괴로워하여 일어나 간악한 도적이 되어 재물을 모으고 벼슬을 멋대로 하니 이것이 그 도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일흔 제자가 이미 묻지 않았고 세상의 배우는 이도 따질 줄 모른다. 이 말의 뜻이 풀리지 않고 글이 나뉘지 않는다면 이는 공자가 말을 뱉을 수 없다는 것이요, 이 말의 뜻이 맺히고 글이 또 풀리지 않는다면 이는 공자가 보여 준 것이 다 드러나지 못한 것이다. 제자가 묻지 않고 세속이 따지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孔子曰:「公冶長可妻也,雖在縲紲之中,非其罪也。」以其子妻之。

공자가 말하였다. 「공야장은 아내를 줄 만하니 비록 포승줄 가운데 있었으나 그 죄가 아니다.」 그 딸로 아내를 삼게 하였다.

問曰:孔子妻公冶長者,何據見哉?據年三十可妻邪,見其行賢可妻也?如據其年三十,不宜稱在縲紲;如見其行賢,亦不宜稱在縲紲。何則?諸入孔子門者,皆有善行,故稱備徒役。徒役之中無妻,則妻之耳,不須稱也。如徒役之中多無妻,公冶長尤賢,故獨妻之,則其稱之宜列其行,不宜言其在縲紲也。何則?世間強受非辜者多,未必盡賢人也。恆人見枉,眾多非一,必以非辜為孔子所妻,則是孔子不妻賢,妻冤也。

묻는다. 공자가 공야장에게 아내를 준 것은 무엇에 근거하여 보았는가. 나이 서른이라 아내를 줄 만함에 근거하였는가, 그 행실이 어질어 아내를 줄 만함을 보았는가. 그 나이 서른에 근거하였다면 포승줄에 있었다고 일컬음이 마땅하지 않고, 그 행실이 어짊을 보았다 하여도 포승줄에 있었다고 일컬음이 마땅하지 않다. 어째서인가. 공자의 문에 든 여러 사람은 다 착한 행실이 있으므로 문도에 갖추어졌다 일컫는다. 문도 가운데 아내가 없으면 아내를 줄 뿐이니 일컬을 것이 없다. 문도 가운데 아내 없는 이가 많은데 공야장이 더욱 어질므로 홀로 아내를 주었다면 그 일컬음에 마땅히 그 행실을 벌여야지 그가 포승줄에 있었다 말함은 마땅하지 않다. 어째서인가. 세상에 억지로 죄 없이 벌받는 이가 많으나 반드시 다 어진 사람은 아니다. 예사 사람이 억울함을 당함이 많아 하나가 아닌데 반드시 죄 없음으로 공자가 아내를 준 바라 한다면 이는 공자가 어진 이에게 아내를 준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이에게 아내를 준 것이다.

案孔子之稱公冶長,有非辜之言,無行能之文。實不賢,孔子妻之,非也;實賢,孔子稱之不具,亦非也。誠似妻南容云,國有道不廢,國無道免於刑戮,具稱之矣。

살피건대 공자가 공야장을 일컬음에 죄 없다는 말은 있으나 행실과 능력의 글은 없다. 실로 어질지 않은데 공자가 아내를 주었다면 그르고, 실로 어진데 공자가 일컬음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또한 그르다. 참으로 남용에게 아내를 준 것처럼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버려지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형벌을 면한다 하였다면 갖추어 일컬은 것이다.

子謂子貢曰:「汝與回也,孰愈?」曰:「賜也,何敢望回?回也,聞一以知十;賜也,聞一以知二。」子曰:「弗如也,吾與汝俱不如也。」

공자가 자공에게 말하였다. 「너와 회 가운데 누가 나으냐?」 말하였다. 「사가 어찌 감히 회를 바라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사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압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미치지 못한다. 나와 너 다 미치지 못한다.」

是賢顏淵試以問子貢也。

이는 안연을 어질다 하여 자공에게 시험 삼아 물은 것이다.

問曰:孔子所以教者,禮讓也。子路,為國以禮,其言不讓,孔子非之。使子貢實愈顏淵,孔子問之,猶曰不如,使實不及,亦曰不如,非失對欺師,禮讓之言宜謙卑也。今孔子出言,欲何趣哉?使孔子知顏淵愈子貢,則不須問子貢。使孔子實不知,以問子貢,子貢謙讓亦不能知。使孔子徒欲表善顏淵,稱顏淵賢,門人莫及,於名多矣,何須問於子貢?子曰:「賢哉,回也!」又曰:「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又曰:「回也,其心三月不違仁。」

묻는다. 공자가 가르친 바는 예양이다. 자로가 나라를 예로 하면서 그 말이 겸양하지 않으니 공자가 그르다 하였다. 자공이 실로 안연보다 나은데 공자가 물었어도 오히려 미치지 못한다 하였을 것이요, 실로 미치지 못하여도 또한 미치지 못한다 하였을 것이니, 대답을 잘못하여 스승을 속인 것이 아니라 예양의 말은 마땅히 겸손하고 낮추기 때문이다. 이제 공자가 말을 낸 것은 무엇을 하려 한 것인가. 공자가 안연이 자공보다 나음을 알았다면 자공에게 물을 것이 없다. 공자가 실로 몰라 자공에게 물었다면 자공이 겸양하여 또한 알 수 없다. 공자가 한갓 안연의 착함을 드러내려 하였다면 안연이 어질어 문인이 미치지 못한다 일컬음이 이름에 많은데 어찌 자공에게 물을 것이 있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어질도다, 회여!」 또 말하였다. 「내가 회와 종일 말하여도 어기지 않기가 어리석은 것 같다.」 또 말하였다. 「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는다.」

三章皆直稱,不以他人激。至是一章,獨以子貢激之,何哉?

세 장은 다 바로 일컫고 다른 사람으로 격동하지 않았다. 이 한 장에 이르러 홀로 자공으로 격동하니 어째서인가.

或曰:欲抑子貢也。當此之時,子貢之名凌顏淵之上,孔子恐子貢志驕意溢,故抑之也。夫名在顏淵之上,當時所為,非子貢求勝之也。實子貢之知何如哉?使顏淵才在己上,己自服之,不須抑也。使子貢不能自知,孔子雖言,將謂孔子徒欲抑已。由此言之,問與不問,無能抑揚。

어떤 이는 말한다. 자공을 누르려 한 것이다. 이때 자공의 이름이 안연 위를 능가하니 공자가 자공의 뜻이 교만하고 뜻이 넘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누른 것이다. 무릇 이름이 안연 위에 있음은 당시 사람이 한 바지 자공이 이기기를 구한 것이 아니다. 실로 자공의 앎이 어떠하였는가. 안연의 재주가 제 위에 있다면 제가 절로 복종할 것이니 누를 것이 없다. 자공이 스스로 알 수 없다면 공자가 비록 말하여도 장차 공자가 한갓 저를 누르려 한다 여길 것이다. 이로써 말하면 묻든 묻지 않든 누르고 올릴 수 없다.

宰我晝寢。子曰:「朽木不可雕也,糞土之牆不可圬也,於予予何誅。」是惡宰予之晝寢。

재아가 낮잠을 잤다. 공자가 말하였다.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고 거름 흙의 담은 흙손질할 수 없으니 여에게 내가 무엇을 꾸짖으랴.」 이는 재여의 낮잠을 미워한 것이다.

問曰:晝寢之惡也,小惡也;朽木糞土,敗毀不可復成之物,大惡也。責小過以大惡,安能服人?使宰我性不善,如朽木糞土,不宜得入孔子之門,序在四科之列。使性善,孔子惡之,惡之太甚,過也;人之不仁,疾之已甚,亂也。孔子疾宰予,可謂甚矣。使下愚之人涉耐罪(之),獄吏令以大辟之罪,必冤而怨邪?將服而自咎也?使宰我愚,則與涉耐罪之人同志;使宰我賢,知孔子責人,幾微自改矣。明文以識之,流言以過之,以其言示端而已自改。自改不在言之輕重,在宰予能更與否。

묻는다. 낮잠의 악은 작은 악이요, 썩은 나무와 거름 흙은 무너지고 헐어 다시 이룰 수 없는 물건이니 큰 악이다. 작은 허물을 큰 악으로 꾸짖으니 어찌 사람을 복종시키겠는가. 재아의 성품이 착하지 않아 썩은 나무와 거름 흙 같다면 공자의 문에 들어 사과의 차례에 서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성품이 착한데 공자가 미워하였다면 미워함이 너무 심하니 허물이다. 사람이 어질지 않은 것을 미워함이 너무 심하면 어지러움이다. 공자가 재여를 미워함이 심하다 할 만하다. 아래 어리석은 사람이 수염 깎는 가벼운 죄에 걸렸는데 옥리가 목 베는 죄로 다스리면 반드시 억울하여 원망하겠는가, 아니면 복종하고 스스로 허물하겠는가. 재아가 어리석다면 내죄에 걸린 사람과 뜻이 같고, 재아가 어질다면 공자가 사람을 꾸짖음을 알아 기미에 스스로 고쳤을 것이다. 글을 밝혀 알리고 말을 흘려 허물하면 그 말로 실마리를 보일 뿐이니 저 스스로 고친다. 스스로 고침은 말의 가볍고 무거움에 있지 않고 재여가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春秋》之義,采毫毛之善,貶纖介之惡,褒毫毛以巨大,以巨大貶纖介。觀《春秋》之義,肯是之乎?不是,則宰我不受;不受,則孔子之言棄矣。聖人之言與文相副,言出於口,文立於策,俱發於心,其實一也。孔子作《春秋》,不貶小以大。其非宰予也,以大惡細,文語相違,服人如何?

「춘추」의 뜻은 터럭만 한 착함을 취하고 티끌만 한 악을 깎는다. 터럭만 한 것을 거대한 것으로 기리고 거대한 것으로 티끌만 한 것을 깎는 것을 「춘추」의 뜻으로 보면 옳다 하겠는가. 옳지 않으면 재아가 받지 않고, 받지 않으면 공자의 말은 버려진다. 성인의 말은 글과 서로 맞으니 말은 입에서 나오고 글은 책에 서나 다 마음에서 나와 그 실상은 하나다. 공자가 「춘추」를 지으며 작은 것을 큰 것으로 깎지 않았다. 그 재여를 그르다 함에 큰 것으로 작은 것을 미워하니 글과 말이 서로 어긋나 사람을 복종시킴이 어떠한가.

子曰:「始吾於人也,聽其言而信其行;今吾於人也,聽其言而觀其行。於予予改是。」

공자가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사람에 대해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믿었다. 이제 나는 사람에 대해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본다. 여에게서 내가 이것을 고쳤다.」

蓋起宰予晝寢,更知人之術也。

무릇 재여의 낮잠에서 일어나 사람을 아는 방법을 고친 것이다.

問曰:人之晝寢,安足以毀行?毀行之人,晝夜不臥,安足以成善?以晝寢而觀人善惡,能得其實乎?案宰予在孔子之門,序於四科,列在賜上。如性情怠,不可雕琢,何以致此?使宰我以晝寢自致此,才復過人遠矣。如未成就,自謂已足,不能自知,知不明耳,非行惡也。曉敕而已,無為改術也。如自知未足,倦極晝寢,是精神索也。精神索至於死亡,豈徒寢哉?

묻는다. 사람이 낮잠 자는 것이 어찌 행실을 헐기에 넉넉한가. 행실을 허는 사람이 밤낮 눕지 않는다고 어찌 착함을 이루기에 넉넉한가. 낮잠으로 사람의 착하고 악함을 본다면 그 실상을 얻을 수 있는가. 살피건대 재여는 공자의 문에 있어 사과에 차례하여 자공 위에 벌여 있다. 성정이 게을러 새겨 다듬을 수 없다면 무엇으로 여기에 이르렀는가. 재아가 낮잠으로 스스로 여기에 이르렀다면 재주가 다시 남보다 뛰어남이 멀다. 아직 이루지 못하였는데 스스로 이미 넉넉하다 여겨 스스로 알지 못하였다면 앎이 밝지 못할 뿐이지 행실이 악한 것이 아니다. 깨우쳐 알릴 뿐이니 방법을 고칠 까닭이 없다.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지쳐 낮잠 잤다면 이는 정신이 다한 것이다. 정신이 다하면 죽음에 이르니 어찌 다만 잠뿐이겠는가.

且論人之法,取其行則棄其言,取其言則棄其行。今宰予雖無力行,有言語。用言,令行缺,有一概矣。今孔子起宰予晝寢,聽其言,觀其行,言行相應,則謂之賢。是孔子備取人也。毋求備於一人之義,何所施?

또 사람을 논하는 법은 그 행실을 취하면 그 말을 버리고 그 말을 취하면 그 행실을 버린다. 이제 재여가 비록 힘써 행함이 없어도 언어가 있다. 말을 쓰면 행실이 이지러져도 한 가지는 있는 것이다. 이제 공자가 재여의 낮잠에서 일어나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보아 말과 행실이 서로 응해야 어질다 한다. 이는 공자가 사람을 갖추어 취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갖추기를 구하지 말라는 뜻은 어디에 베풀겠는가.

子張問:「令尹子文三仕為令尹,無喜色;三已之,無慍色;舊令尹之政,必以告新令尹。何如?」子曰:「忠矣。」曰:「仁矣乎?」曰:「未知,焉得仁?」子文曾舉楚子玉代己位而伐宋,以百乘敗而喪其眾,不知如此,安得為仁?

자장이 물었다. 「영윤 자문이 세 번 벼슬하여 영윤이 되어도 기쁜 빛이 없고 세 번 그만두어도 성난 빛이 없으며 옛 영윤의 정사를 반드시 새 영윤에게 알렸으니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충성스럽다.」 「어집니까?」 「모르겠다. 어찌 어질겠는가?」 자문이 일찍이 초나라 자옥을 들어 제 자리를 대신하게 하여 송나라를 쳤는데 백 승으로 패하여 그 무리를 잃었으니,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어질 수 있겠는가 한 것이다.

問曰:子文舉子玉,不知人也。智與仁,不相干也。有不知之性,何妨為仁之行?五常之道,仁、義、禮、智、信也。五者各別,不相須而成。故有智人、有仁人者,有禮人、有義人者。人有信者未必智,智者未必仁,仁者未必禮,禮者未必義。子文智蔽於子玉,其仁何毀?謂仁,焉得不可?且忠者,厚也。厚人,仁矣。孔子曰:「觀過,斯知仁矣。」子文有仁之實矣。孔子謂忠非仁,是謂父母非二親,配匹非夫婦也。

묻는다. 자문이 자옥을 든 것은 사람을 알지 못한 것이다. 지혜와 어짊은 서로 관계없다. 알지 못하는 성품이 있어도 어짊의 행실을 함에 무엇이 방해되는가. 오상의 도는 인·의·예·지·신이다. 다섯은 저마다 달라 서로 기다려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있고 어진 사람이 있으며 예 있는 사람이 있고 의로운 사람이 있다. 사람이 믿음 있는 이가 반드시 지혜롭지 않고 지혜로운 이가 반드시 어질지 않고 어진 이가 반드시 예 있지 않고 예 있는 이가 반드시 의롭지 않다. 자문의 지혜가 자옥에 가려졌다 하여 그 어짊이 무엇이 헐리는가. 어질다 한들 어찌 불가하겠는가. 또 충성은 두터움이다. 사람에게 두터우면 어짊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허물을 보면 어짊을 안다.」 자문에게 어짊의 실상이 있다. 공자가 충성을 어짊이 아니라 함은 부모를 두 어버이가 아니라 하고 배필을 부부가 아니라 하는 것이다.

哀公問:「弟子孰謂好學?」孔子對曰:「有顏回者,不遷怒,不貳過,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

애공이 물었다. 「제자 가운데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회라는 이가 있어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두 번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이제는 없으니 배움을 좋아하는 이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夫顏淵所以死者,審何用哉?令自以短命,猶伯牛之有疾也。人生受命,皆全當潔。今有惡疾,故曰無命。人生皆當受天長命,今得短命,亦宜曰無命。如(天)〔命〕有短長,則亦有善惡矣。言顏淵短命,則宜言伯牛惡命;言伯牛無命,則宜言顏淵無命。

무릇 안연이 죽은 까닭은 참으로 무엇 때문인가. 스스로 명이 짧다 여긴다면 백우에게 병이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 나서 명을 받음에 다 마땅히 온전하고 깨끗해야 한다. 이제 악한 병이 있으므로 명이 없다 하였다. 사람이 나면 다 마땅히 하늘의 긴 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 짧은 명을 얻었으니 또한 마땅히 명이 없다 해야 한다. 명에 짧고 긴 것이 있다면 또한 착하고 악한 것도 있다. 안연이 명이 짧다 말하면 마땅히 백우는 명이 악하다 말해야 하고, 백우가 명이 없다 말하면 마땅히 안연도 명이 없다 말해야 한다.

一死一病,皆痛云命。所稟不異,文語不同。未曉其故也。

하나는 죽고 하나는 병들었는데 다 아파하며 명이라 하였다. 받은 바는 다르지 않은데 글과 말이 같지 않다. 그 까닭을 깨닫지 못하겠다.

哀公問孔子孰為好學。孔子對曰:「有顏回者好學,今也則亡。不遷怒,不貳過。」何也?曰:并攻哀公之性,遷怒、貳過故也。因其問則并以對之,兼以攻上之短,不犯其罰。

애공이 공자에게 누가 배움을 좋아하느냐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회라는 이가 배움을 좋아하였는데 이제는 없습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두 번 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인가. 답한다. 아울러 애공의 성품을 친 것이니 노여움을 옮기고 허물을 두 번 하기 때문이다. 그 물음에 따라 아울러 대답하고 겸하여 임금의 단점을 치되 그 벌을 범하지 않은 것이다.

問曰:康子亦問好學,孔子亦對之以顏淵。康子亦有短,何不并對以攻康子?康子,非聖人也,操行猶有所失。成事,康子患盜,孔子對曰:「苟子之不欲,雖賞之不竊。」由此言之,康子以欲為短也。不攻,何哉?

묻는다. 강자도 배움 좋아함을 물었고 공자도 안연으로 대답하였다. 강자에게도 단점이 있는데 어찌 아울러 대답하여 강자를 치지 않았는가. 강자는 성인이 아니라 몸가짐에 오히려 잃은 바가 있다. 이루어진 일로 강자가 도적을 근심하니 공자가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대가 바라지 않으면 비록 상을 주어도 훔치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말하면 강자는 욕심이 단점이었다. 치지 않았으니 어째서인가.

孔子見南子,子路不悅。

공자가 남자를 만나니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다.

子曰:「予所鄙者,天厭之!天厭之!」南子,衛靈公夫人也,聘孔子,子路不說,謂孔子淫亂也。孔子解之曰:「我所為鄙陋者,天厭殺我。」至誠自誓,不負子路也。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비루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미워하리라! 하늘이 미워하리라!」 남자는 위 영공의 부인으로 공자를 초빙하니 자로가 기뻐하지 않아 공자가 음란하다 여겼다. 공자가 풀어 말하였다. 「내가 한 것이 비루하다면 하늘이 미워하여 나를 죽이리라.」 지극한 정성으로 스스로 맹세하여 자로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問曰:孔子自解,安能解乎?使世人有鄙陋之行,天曾厭殺之,可引以誓;子路聞之,可信以解;今未曾有為天所厭者也,曰天厭之,子路肯信之乎?行事,雷擊殺人,水火燒溺人,牆屋壓填人。如曰雷擊殺我,水火燒溺我,牆屋壓填我,子路頗信之;今引未曾有之禍,以自誓於子路,子路安肯曉解而信之?行事,適有臥厭不悟者,謂此為天所厭邪?案諸臥厭不悟者,未皆為鄙陋也。子路入道雖淺,猶知事之實。事非實,孔子以誓,子路必不解矣。

묻는다. 공자가 스스로 푼 것이 어찌 풀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에게 비루한 행실이 있어 하늘이 일찍이 미워하여 죽였다면 끌어 맹세할 수 있고 자로가 들으면 믿고 풀 수 있다. 이제 하늘이 미워한 이가 있은 적이 없는데 하늘이 미워하리라 하니 자로가 믿으려 하겠는가. 있는 일로 우레가 사람을 쳐 죽이고 물과 불이 사람을 태우고 빠뜨리고 담과 집이 사람을 눌러 묻는다. 우레가 나를 쳐 죽이고 물과 불이 나를 태우고 빠뜨리고 담과 집이 나를 눌러 묻으리라 하였다면 자로가 자못 믿었을 것이다. 이제 있은 적 없는 화를 끌어 자로에게 스스로 맹세하니 자로가 어찌 깨달아 풀고 믿으려 하겠는가. 있는 일로 마침 가위눌려 깨지 못한 이가 있으면 이를 하늘이 미워한 것이라 하겠는가. 살피건대 가위눌려 깨지 못한 여러 이가 다 비루한 것은 아니다. 자로가 도에 든 것이 비록 얕아도 오히려 일의 실상은 안다. 일이 실상이 아닌데 공자가 맹세하였으니 자로가 반드시 풀지 못하였을 것이다.

孔子稱曰:「死生有命,富貴在天。」若此者,人之死生自有長短,不在操行善惡也。成事,顏淵蚤死,孔子謂之短命。由此知短命夭死之人,必有邪行也。子路入道雖淺,聞孔子之言,知死生之實。

공자가 일컬어 말하였다. 「죽고 삶은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다.」 이러하면 사람의 죽고 삶은 절로 길고 짧음이 있지 몸가짐의 착하고 악함에 있지 않다. 이루어진 일로 안연이 일찍 죽으니 공자가 명이 짧다 하였다. 이로써 명이 짧아 일찍 죽는 사람에게 반드시 사악한 행실이 있어서가 아님을 안다. 자로가 도에 든 것이 비록 얕아도 공자의 말을 듣고 죽고 삶의 실상을 알았을 것이다.

孔子誓以「予所鄙者,天厭之」!獨不為子路言:夫子惟命未當死,天安得厭殺之乎?若此,誓子路以天厭之,終不見信。不見信,則孔子自解,終不解也。《尚書》曰:「毋若丹朱敖,惟慢游是好。」謂帝舜敕禹毋(子)〔私〕不肖子也。重天命,恐禹私其子,故引丹朱以敕戒之。禹曰:「予娶若時,辛壬癸甲,開呱呱而泣,予弗子。」

공자가 「내가 비루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미워하리라」 맹세하였다! 홀로 자로에게 말하지 못한 것은, 선생은 오직 명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하늘이 어찌 미워하여 죽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하면 자로에게 하늘이 미워하리라 맹세하여도 끝내 믿음을 받지 못한다. 믿음을 받지 못하면 공자가 스스로 푼 것이 끝내 풀리지 않는다. 「상서」에 이르기를 「단주처럼 오만하여 오직 게으르게 노는 것만 좋아하지 마라」 하였다. 순 임금이 우에게 어질지 못한 자식을 사사로이 하지 말라고 신칙한 말이다. 하늘의 명을 무겁게 여겨 우가 그 자식을 사사로이 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단주를 끌어 신칙하여 경계한 것이다. 우가 말하였다. 「내가 아내를 맞이하고 신·임·계·갑 나흘 만에 계가 응애응애 울었으나 나는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陳已行事以往推來,以見卜隱,效己不敢私不肖子也。不曰天厭之者,知俗人誓好引天也。孔子為子路(行)所疑,不引行事效己不鄙,而云天厭之,是與俗人解嫌引天祝詛,何以異乎?

이미 행한 일을 펴서 지난 것으로 올 것을 미루고 드러난 것으로 숨은 것을 보아 제가 감히 어질지 못한 자식을 사사로이 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하늘이 미워하리라 하지 않은 것은 속인이 맹세에 하늘을 끌기 좋아함을 알아서다. 공자가 자로에게 의심받으면서 행한 일을 끌어 제가 비루하지 않음을 밝히지 않고 하늘이 미워하리라 하였으니, 이는 속인이 혐의를 풀 때 하늘을 끌어 저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孔子曰:「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夫子自傷不王也。己王,致太平;太平則鳳鳥至,河出圖矣。今不得王,故瑞應不至,悲心自傷,故曰「吾已矣夫」。

공자가 말하였다. 「봉새가 이르지 않고 하수가 그림을 내지 않으니 나는 끝났도다.」 선생이 스스로 왕이 되지 못함을 슬퍼한 것이다. 제가 왕이 되면 태평을 이루고 태평하면 봉새가 이르고 하수가 그림을 낸다. 이제 왕이 되지 못하므로 상서로운 응함이 이르지 않아 슬픈 마음으로 스스로 슬퍼하므로 「나는 끝났도다」 하였다.

問曰:鳳鳥、河圖,審何據始起?始起之時,鳥、圖未至;如據太平,太平之帝,未必常致鳳鳥與河圖也。五帝、三王,皆致太平。案其瑞應,不皆鳳皇為必然之瑞;於太平,鳳皇為未必然之應。孔子,聖人也,思未必然以自傷,終不應矣。

묻는다. 봉새와 하도는 참으로 무엇에 근거하여 처음 일어나는가. 처음 일어날 때 새와 그림이 아직 이르지 않았고, 태평에 근거한다면 태평의 임금이 반드시 늘 봉새와 하도를 이르게 한 것은 아니다. 오제와 삼왕이 다 태평을 이루었다. 그 상서로운 응함을 살피면 다 봉황이 반드시 그러한 상서였던 것은 아니다. 태평에 있어 봉황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응함이다. 공자는 성인인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을 생각하여 스스로 슬퍼하였으니 끝내 응하지 않는다.

或曰:孔子不自傷不得王也,傷時無明王,故己不用也。鳳鳥、河圖,明王之瑞也。瑞應不至,時無明王;明王不存,己遂不用矣。

어떤 이는 말한다. 공자가 스스로 왕이 되지 못함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때에 밝은 왕이 없어 제가 쓰이지 못함을 슬퍼한 것이다. 봉새와 하도는 밝은 왕의 상서다. 상서로운 응함이 이르지 않으니 때에 밝은 왕이 없고, 밝은 왕이 있지 않으니 제가 마침내 쓰이지 못한다.

夫致瑞應,何以致之?任賢使能,治定功成;治定功成,則瑞應至矣。瑞應至後,亦不須孔子。孔子所望,何其末也!不思其本而望其末也。

무릇 상서로운 응함을 이르게 함은 무엇으로 이르게 하는가. 어진 이에게 맡기고 능한 이를 부려 다스림이 정해지고 공이 이루어지며, 다스림이 정해지고 공이 이루어지면 상서로운 응함이 이른다. 상서로운 응함이 이른 뒤에는 또한 공자가 필요 없다. 공자가 바란 것이 어찌 그리 끝인가! 그 근본을 생각하지 않고 그 끝을 바란 것이다.

不相其主而名其物,治有未定,物有不至,以至而效明王,必失之矣。孝文皇帝可謂明矣,案其本紀,不見鳳鳥與河圖。使孔子在孝文之世,猶曰「吾已矣夫」。

그 임금을 살피지 않고 그 물건을 이름하며, 다스림에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 있고 물건에 이르지 않은 것이 있는데 이름으로 밝은 왕을 증험하면 반드시 잃는다. 효문황제는 밝다 할 만한데 그 본기를 살피면 봉새와 하도가 보이지 않는다. 공자가 효문의 세상에 있었어도 오히려 「나는 끝났도다」 하였을 것이다.

子欲居九夷,或曰:「陋,如之何?」子曰:「君子居之,何陋之有!」孔子疾道不行於中國,志恨失意,故欲之九夷也。或人難之曰:「夷狄之鄙陋無禮義,如之何?」孔子曰:「君子居之,何陋之有?」言以君子之道居而教之,何為陋乎!

공자가 구이에 살려 하니 어떤 이가 말하였다. 「누추한데 어찌하시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살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공자가 도가 중국에 행해지지 않음을 미워하여 뜻이 한스럽고 실의하였으므로 구이에 가려 한 것이다. 어떤 이가 따져 말하였다. 「이적의 비루하고 예의 없음을 어찌하시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살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군자의 도로 살며 가르치면 어찌 누추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問之曰:孔子欲之九夷者,何起乎?起道不行於中國,故欲之九夷。夫中國且不行,安能行於夷狄?「夷狄之有君,不若諸夏之亡」。言夷狄之難,諸夏之易也。不能行於易,能行於難乎?且孔子云以君子居之者,何謂陋邪,謂修君子之道自容乎,謂以君子之道教之也?如修君子之道苟自容,中國亦可,何必之夷狄?如以君子之道教之,夷狄安可教乎?禹入裸國,裸入衣出,衣服之制不通於夷狄也。禹不能教國衣服,孔子何能使九夷為君子?或孔子實不欲往,患道不行,動發此言。或人難之,孔子知其陋,然而猶曰「何陋之有」者,欲遂已然,距或人之諫也。

묻는다. 공자가 구이에 가려 한 것은 어디서 일어났는가. 도가 중국에 행해지지 않음에서 일어났으므로 구이에 가려 하였다. 무릇 중국에서도 행해지지 않는데 어찌 이적에 행해지겠는가. 「이적에 임금이 있음이 제하에 없음만 못하다」 하였다. 이적은 어렵고 제하는 쉽다는 말이다. 쉬운 데서 행하지 못하는데 어려운 데서 행할 수 있는가. 또 공자가 군자로 산다 한 것은 무엇을 누추하다 하는가. 군자의 도를 닦아 스스로 용납함을 이르는가, 군자의 도로 가르침을 이르는가. 군자의 도를 닦아 구차히 스스로 용납한다면 중국도 좋은데 어찌 반드시 이적에 가는가. 군자의 도로 가르친다면 이적을 어찌 가르칠 수 있는가. 우가 나국에 들어갈 때 벗고 들어가 옷 입고 나왔으니 의복의 제도가 이적에 통하지 않는다. 우가 나국에 의복을 가르칠 수 없었는데 공자가 어찌 구이를 군자로 만들 수 있는가. 혹 공자가 실로 가려 한 것이 아니라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근심하여 움직여 이 말을 낸 것이다. 어떤 이가 따지니 공자가 그 누추함을 알면서도 오히려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한 것은 이미 그러한 것을 마치려 하여 어떤 이의 간함을 막은 것이다.

實不欲往,志動發言,是偽言也。君子於言無所苟矣。如知其陋,苟欲自遂,此子路對孔子以子羔也。子路使子羔為費宰,子曰:「賊夫人之子。」子路曰:「有社稷焉,有民人焉,何必讀書,然後為學?」

실로 가려 하지 않으면서 뜻이 움직여 말을 내었다면 이는 거짓말이다. 군자는 말에 구차한 바가 없다. 그 누추함을 알면서 구차히 스스로 마치려 하였다면 이는 자로가 공자에게 자고로 대답한 것이다. 자로가 자고에게 비의 재를 시키니 공자가 말하였다. 「남의 아들을 해친다.」 자로가 말하였다. 「사직이 있고 백성이 있는데 어찌 반드시 책을 읽은 뒤에야 배움이 됩니까?」

子曰:「是故惡夫佞者。」子路知其不可,苟對自遂,孔子惡之,比夫佞者。孔子亦知其不可,苟應或人。孔子、子路,皆以佞也。

공자가 말하였다. 「이 때문에 말 잘하는 이를 미워한다.」 자로가 그 불가함을 알면서 구차히 대답하여 스스로 마치니 공자가 미워하여 말 잘하는 이에 견주었다. 공자도 그 불가함을 알면서 구차히 어떤 이에게 응하였다. 공자와 자로가 다 말 잘한 것이다.

孔子曰:「賜不受命而貨殖焉,億則屢中。」何謂不受命乎?說曰:受當富之命,自以術知數億中時也。

공자가 말하였다. 「사는 명을 받지 않고 재물을 불렸는데 헤아리면 자주 맞는다.」 무엇을 명을 받지 않았다 하는가. 풀이하여 말하기를, 마땅히 부유할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술수와 앎으로 헤아려 때를 맞혔다는 것이다.

夫人富貴在天命乎,在人知也?如在天命,知術求之不能得;如在人,孔子何為言「死生有命,富貴在天」?夫謂富不受命而自知術得之,貴亦可不受命而自以努力求之。世無不受貴命而自得貴,亦知無不受富命而自得富得者。成事,孔子不得富貴矣,周流應聘,行說諸侯,智窮策困,還定《詩》、《書》,望絕無(異)〔翼〕,稱「已矣夫」自知無貴命,周流無補益也。孔子知己不受貴命,周流求之不能得,而謂賜不受富命,而以術知得富,言行相違,未曉其故。

무릇 사람의 부귀는 하늘의 명에 있는가, 사람의 앎에 있는가. 하늘의 명에 있다면 앎과 술수로 구하여도 얻을 수 없고, 사람에 있다면 공자가 무엇 때문에 「죽고 삶은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다」 말하였는가. 무릇 부는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앎과 술수로 얻는다 한다면 귀도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여 구할 수 있다. 세상에 귀할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귀함을 얻은 이가 없으니 또한 부유할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부를 얻은 이가 없음도 안다. 이루어진 일로 공자는 부귀를 얻지 못하여 두루 다니며 초빙에 응하고 제후에게 유세하다가 지혜가 궁하고 계책이 곤하여 돌아와 「시」와 「서」를 정하고 바람이 끊겨 날개가 없어 「끝났도다」 일컬었으니 스스로 귀할 명이 없어 두루 다녀도 보탬이 없음을 안 것이다. 공자가 제가 귀할 명을 받지 않아 두루 다니며 구하여도 얻을 수 없음을 알면서 사는 부유할 명을 받지 않고 술수와 앎으로 부를 얻었다 하니 말과 행실이 서로 어긋나 그 까닭을 깨닫지 못하겠다.

或曰:欲攻子貢之短也。子貢不好道德而徒好貨殖,故攻其短,欲令窮服而更其行節。夫攻子貢之短,可言賜不好道德而貨殖焉,何必立不受命,與前言富貴在天相違反也?

어떤 이는 말한다. 자공의 단점을 치려 한 것이다. 자공이 도덕을 좋아하지 않고 한갓 재물 불리기를 좋아하므로 그 단점을 쳐서 궁하여 복종하고 그 행실과 절개를 고치게 하려 한 것이다. 무릇 자공의 단점을 치려면 사는 도덕을 좋아하지 않고 재물을 불린다 말하면 될 것을 어찌 반드시 명을 받지 않았다고 세워 앞서 말한 부귀는 하늘에 있다는 것과 서로 어긋나게 하는가.

顏淵死,子曰:「噫!天喪予!」此言人將起,天與之輔;人將廢,天奪其佑。孔子有四友,欲因而起,顏淵早夭,故曰「天喪予「」。

안연이 죽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아! 하늘이 나를 버렸다!」 이 말은 사람이 장차 일어나려 하면 하늘이 도움을 주고 사람이 장차 무너지려 하면 하늘이 그 도움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공자에게 네 벗이 있어 그로 인해 일어나려 하였는데 안연이 일찍 죽었으므로 「하늘이 나를 버렸다」 하였다.

問曰:顏淵之死,孔子不王,天奪之邪,不幸短命自為死也?如短命不幸,不得不死,孔子雖王,猶不得生。輔之於人,猶杖之扶疾也。人有病,須杖而行;如斬杖本得短,可謂天使病人不得行乎?如能起行,杖短能使之長乎?夫顏淵之短命,猶杖之短度也。且孔子言「天喪予」者,以淵賢也。案賢者在世,未必為輔也。夫賢者未必為輔,猶聖人未必受命也。為帝有不聖,為輔有不賢。何則?祿命、骨法,與才異也。由此言之,顏淵生未必為輔,其死未必有喪。孔子云「天喪予」,何據見哉?且天不使孔子王者,本意如何?本稟性命之時,不使之王邪,將使之王,復中悔之也?如本不使之王,顏淵死,何喪?如本使之王,復中悔之,此王無骨法,便宜自在天也。且本何善所見而使之王?後何惡所聞,中悔不命?天神論議誤不諦也。

묻는다. 안연의 죽음은 공자가 왕이 되지 못하게 하늘이 빼앗은 것인가, 불행히 명이 짧아 스스로 죽은 것인가. 명이 짧아 불행하여 죽지 않을 수 없었다면 공자가 비록 왕이 되어도 오히려 살릴 수 없다. 사람을 돕는 것은 지팡이가 병자를 부축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병들면 지팡이를 짚어야 다닌다. 지팡이 밑동을 잘라 짧게 얻었다면 하늘이 병자를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할 수 있는가. 일어나 다닐 수 있다면 짧은 지팡이를 길게 할 수 있는가. 무릇 안연의 짧은 명은 지팡이의 짧은 길이와 같다. 또 공자가 「하늘이 나를 버렸다」 말한 것은 연이 어질기 때문이다. 살피건대 어진 이가 세상에 있어도 반드시 보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릇 어진 이가 반드시 보필이 되지 않음은 성인이 반드시 명을 받지 않음과 같다. 임금이 되어도 성스럽지 않은 이가 있고 보필이 되어도 어질지 않은 이가 있다. 어째서인가. 녹명과 골법은 재주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써 말하면 안연이 살았어도 반드시 보필이 되지 않았을 것이요 그가 죽었어도 반드시 잃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하늘이 나를 버렸다」 함은 무엇에 근거하여 보았는가. 또 하늘이 공자를 왕이 되지 않게 한 것은 본디 뜻이 어떠한가. 본디 성명을 받을 때 왕이 되지 않게 하였는가, 장차 왕이 되게 하려다가 다시 중간에 뉘우친 것인가. 본디 왕이 되지 않게 하였다면 안연이 죽은들 무엇을 잃는가. 본디 왕이 되게 하려다가 다시 중간에 뉘우쳤다면 이 왕은 골법이 없으니 편의로 하늘에 절로 있는 것이다. 또 본디 무슨 착함을 보아 왕이 되게 하였고 뒤에 무슨 악을 들어 중간에 뉘우쳐 명하지 않았는가. 하늘의 신의 의논이 그르고 자세하지 않다.

孔子之衛,遇舊館人之喪,入而哭之,出使子貢脫驂而賻之。子貢曰:「於門人之喪,未有所脫驂。脫驂於舊館,毋乃已重乎?」孔子曰:「予鄉者入而哭之,遇於一哀而出涕,予惡夫涕之無從也,小子行之。」

공자가 위나라에 가서 옛 여관 주인의 상을 만나 들어가 곡하고 나와서 자공에게 곁말을 풀어 부의하게 하였다. 자공이 말하였다. 「문인의 상에도 곁말을 푼 바가 없습니다. 옛 여관 주인에게 곁말을 푸는 것은 너무 무겁지 않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아까 들어가 곡하다가 한 슬픔을 만나 눈물이 났으니 나는 눈물에 따름이 없는 것을 미워한다. 얘야, 행하여라.」

孔子脫驂以賻舊館者,惡情不副禮也。副情而行禮,情起而恩動,禮情相應,君子行之。顏淵死,子哭之慟。門人曰:「子慟矣。」「吾非斯人之慟而誰為?」

공자가 곁말을 풀어 옛 여관 주인에게 부의한 것은 정이 예에 맞지 않음을 미워한 것이다. 정에 맞게 예를 행하여 정이 일어나면 은혜가 움직이니 예와 정이 서로 응함을 군자가 행한다. 안연이 죽으니 공자가 곡하며 통곡하였다. 문인이 말하였다. 「선생께서 통곡하십니다.」 「내가 이 사람에게 통곡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하겠는가?」

夫慟,哀之至也。哭顏淵慟者,殊之眾徒,哀痛之甚也。死有棺無槨,顏路請車以為之槨,孔子不予,為大夫不可以徒行也。吊舊館脫驂以賻,惡涕無從;哭顏淵慟,請車不與,使慟無副。豈涕與慟殊,馬與車異邪?於彼則禮情相副,於此則恩義不稱,未曉孔子為禮之意。

무릇 통곡은 슬픔의 지극함이다. 안연을 곡하며 통곡한 것은 뭇 무리와 달리하여 슬픔과 아픔이 심한 것이다. 죽음에 관은 있고 곽이 없어 안로가 수레를 청하여 곽을 만들려 하니 공자가 주지 않았으니 대부가 되어 걸어 다닐 수 없어서다. 옛 여관 주인을 조문하며 곁말을 풀어 부의함은 눈물에 따름이 없음을 미워한 것이요, 안연을 곡하며 통곡하고 수레를 청함에 주지 않음은 통곡에 맞춤이 없게 한 것이다. 어찌 눈물과 통곡이 다르고 말과 수레가 다른가. 저기서는 예와 정이 서로 맞고 여기서는 은혜와 의가 걸맞지 않으니 공자가 예를 한 뜻을 깨닫지 못하겠다.

孔子曰:「鯉也死,有棺無槨,吾不徒行以為之槨。」鯉之恩深於顏淵,鯉死無槨,大夫之儀,不可徒行也。鯉,子也;顏淵,他姓也。子死且不禮,況其禮他姓之人乎?

공자가 말하였다. 「리가 죽었을 때 관은 있고 곽이 없었으나 나는 걸어 다니면서 곽을 만들지 않았다.」 리의 은혜는 안연보다 깊은데 리가 죽었을 때 곽이 없었으니 대부의 의식은 걸어 다닐 수 없어서다. 리는 자식이요 안연은 다른 성이다. 자식이 죽어도 예를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다른 성의 사람에게 예를 하겠는가.

曰:是蓋孔子實恩之效也。副情於舊館,不稱恩於子,豈以前為士,後為大夫哉?如前為士,士乘二馬;如為大夫,大夫乘三馬。

답한다. 이는 공자의 실로 은혜의 보람이다. 옛 여관 주인에게는 정에 맞추고 자식에게는 은혜에 걸맞지 않았으니 어찌 앞은 사가 되고 뒤는 대부가 되었기 때문인가. 앞에 사였다면 사는 말 두 마리를 타고 대부라면 대부는 말 세 마리를 탄다.

大夫不可去車徒行,何不截賣兩馬以為槨,乘其一乎?為士時乘二馬,截一以賻舊館,今亦何不截其二以副恩,乘一以解不徒行乎?不脫馬以賻舊館,未必亂制。葬子有棺無槨,廢禮傷法。孔子重賻舊人之恩,輕廢葬子之禮。此禮得於他人,制失〔於〕親子也。然則孔子不粥車以為鯉槨,何以解於貪官好仕恐無車?而自云」君子殺身以成仁「,何難退位以成禮?

대부가 수레를 버리고 걸어 다닐 수 없다면 어찌 두 마리 말을 잘라 팔아 곽을 만들고 그 하나를 타지 않는가. 사였을 때 말 두 마리를 타고 하나를 잘라 옛 여관 주인에게 부의하였으니 이제 또한 어찌 그 둘을 잘라 은혜에 맞추고 하나를 타서 걸어 다니지 않음을 풀지 않는가. 말을 풀어 옛 여관 주인에게 부의하지 않아도 반드시 제도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자식을 장사 지냄에 관은 있고 곽이 없음은 예를 폐하고 법을 상하는 것이다. 공자가 옛사람에게 부의하는 은혜를 무겁게 여기고 자식을 장사 지내는 예를 가벼이 폐하였다. 이는 예를 남에게서 얻고 제도를 친자식에게서 잃은 것이다. 그러니 공자가 수레를 팔아 리의 곽을 만들지 않은 것은 벼슬을 탐하고 벼슬하기를 좋아하여 수레가 없을까 두려워한 것에서 무엇으로 풀겠는가. 그러면서 스스로 「군자는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하니 어찌 자리에서 물러나 예를 이루기를 어려워하는가.

子貢問政,子曰:「足食,足兵,民信之矣。」曰:「必不得已而去,於斯三者何先?」

자공이 정사를 물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먹을 것을 넉넉히 하고 군사를 넉넉히 하면 백성이 믿는다.」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이 셋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합니까?」

曰:「去兵。」曰:「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曰:「去食。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信最重也。

말하였다. 「군사를 버린다.」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이 둘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합니까?」 말하였다. 「먹을 것을 버린다. 예로부터 다 죽음이 있으나 백성이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한다.」 믿음이 가장 무겁다는 것이다.

問:使治國無食,民餓,棄禮義;禮義棄,信安所立?傳曰:「倉稟實,知禮節;衣食足,知榮辱。讓生於有餘,爭生於不足。」今言去食,信安得成?春秋之時,戰國飢餓,易子而食,析骸而炊,口飢不食,不暇顧恩義也。夫父子之恩,信矣。飢餓棄信,以子為食。孔子教子貢去食存信,如何?夫去信存食,雖不欲信,信自生矣;去食存信,雖欲為信,信不立矣。

묻는다. 나라를 다스림에 먹을 것이 없어 백성이 주리면 예의를 버리고, 예의를 버리면 믿음이 어디에 서겠는가. 전에 이르기를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옷과 먹을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사양은 남음에서 나고 다툼은 부족함에서 난다」 하였다. 이제 먹을 것을 버린다 말하니 믿음이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춘추 때 싸우는 나라가 굶주려 자식을 바꾸어 먹고 뼈를 쪼개어 밥을 지었으니 입이 주려 먹지 못하면 은혜와 의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무릇 아비와 자식의 은혜는 믿음이다. 굶주리면 믿음을 버리고 자식을 먹을 것으로 삼는다. 공자가 자공에게 먹을 것을 버리고 믿음을 두라고 가르쳤으니 어떠한가. 무릇 믿음을 버리고 먹을 것을 두면 비록 믿으려 하지 않아도 믿음이 절로 생기고, 먹을 것을 버리고 믿음을 두면 비록 믿음을 하려 하여도 믿음이 서지 못한다.

子適衛,冉子仆,子曰:「庶矣哉!」曰:「既庶矣,又何加焉?」曰:「富之。」曰:「既富矣,又何加焉?」曰:「教之。」語冉子先富而後教之,教子貢去食而存信。食與富何別?信與教何異?二子殊教,所尚不同,孔子為國,意何定哉?

공자가 위나라에 가는데 염자가 수레를 모니 공자가 말하였다. 「많구나!」 말하였다. 「이미 많으면 또 무엇을 더합니까?」 말하였다. 「부유하게 한다.」 말하였다. 「이미 부유하면 또 무엇을 더합니까?」 말하였다. 「가르친다.」 염자에게는 먼저 부유하게 한 뒤 가르친다 말하고 자공에게는 먹을 것을 버리고 믿음을 두라 가르쳤다. 먹을 것과 부유함이 무엇이 다르며 믿음과 가르침이 무엇이 다른가. 두 사람에게 가르침을 달리하여 숭상하는 바가 같지 않으니 공자가 나라를 다스림에 뜻이 어찌 정해졌는가.

蘧伯玉使人於孔子,孔子曰:「夫子何為乎?」對曰:「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使者出,孔子曰:「使乎!使乎!」非之也。說《論語》者,曰:「非之者,非其代人謙也。」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니 공자가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 대답하였다. 「선생께서는 그 허물을 적게 하려 하시나 아직 못하십니다.」 사자가 나가니 공자가 말하였다. 「사자로다! 사자로다!」 그르다 한 것이다. 「논어」를 풀이하는 이는 「그르다 한 것은 그가 남을 대신하여 겸손한 것을 그르다 한 것이다」 한다.

夫孔子之問使者曰「夫子何為」,問所治為,非問操行也。如孔子之問也,使者宜對曰「夫子為某事,治某政」,今反言「欲寡其過而未能也」,何以知其對(不)失指,孔子非之也?且實孔子何以非使者,非其代人謙之乎?其非乎對失指也?所非猶有一實,不明其過,而徒云「使乎使乎」,後世疑惑,不知使者所以為過。韓子曰:「書約則弟子辨。」孔子之言「使乎」,何其約也?

무릇 공자가 사자에게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 물은 것은 다스리는 바를 물은 것이지 몸가짐을 물은 것이 아니다. 공자의 물음대로라면 사자가 마땅히 「선생께서는 아무 일을 하시고 아무 정사를 다스리십니다」 대답해야 하는데 이제 도리어 「그 허물을 적게 하려 하시나 아직 못하십니다」 말하였으니, 그 대답이 취지를 잃어 공자가 그르다 하였음을 어찌 알겠는가. 또 실로 공자가 무엇으로 사자를 그르다 하였는가. 그가 남을 대신하여 겸손한 것을 그르다 한 것인가, 그 대답이 취지를 잃은 것을 그르다 한 것인가. 그르다 한 바에 오히려 한 실상이 있을 터인데 그 허물을 밝히지 않고 한갓 「사자로다, 사자로다」 하니 후세가 의혹하여 사자가 허물이 된 까닭을 모른다. 한자가 말하였다. 「글이 간략하면 제자가 다툰다.」 공자의 「사자로다」라는 말은 어찌 그리 간략한가.

或曰:「《春秋》之義也,為賢者諱。蘧伯玉賢,故諱其使者。」夫欲知其子視其友,欲知其君視其所使。伯玉不賢,故所使過也。《春秋》之義,為賢者諱,亦貶纖介之惡。今不非而諱,貶纖介安所施哉?使孔子為伯玉諱,宜默而已。揚言曰「使乎使乎」,時人皆知孔子之非也。出言如此,何益於諱?

어떤 이는 말한다. 「「춘추」의 뜻은 어진 이를 위해 숨긴다. 거백옥이 어질므로 그 사자를 숨긴 것이다.」 무릇 그 자식을 알려면 그 벗을 보고 그 임금을 알려면 그 부리는 바를 본다. 백옥이 어질지 않으므로 부린 바가 잘못된 것이다. 「춘추」의 뜻은 어진 이를 위해 숨기나 또한 티끌만 한 악도 깎는다. 이제 그르다 하지 않고 숨기면 티끌만 한 것을 깎음은 어디에 베풀겠는가. 공자가 백옥을 위해 숨겼다면 마땅히 잠잠할 뿐이다. 소리 높여 「사자로다, 사자로다」 하니 당시 사람이 다 공자가 그르다 함을 알았다. 말을 냄이 이러하니 숨김에 무슨 보탬이 있는가.

佛召,子欲往。子路不說,曰:「昔者,由也聞諸夫子曰:『親於其身為不善者,君子不入也。』佛以牟畔,子之往也如之何?」子曰:「有是〔言〕也。不曰堅乎?磨而不磷;不曰白乎?涅而不淄。吾豈匏瓜也哉,焉能繫而不食也?」

필힐이 부르니 공자가 가려 하였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옛날에 유가 선생께 들으니 『몸소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이에게는 군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필힐이 중모로 배반하였는데 선생께서 가심은 어찌 된 것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그런 말이 있다. 단단하다 하지 않느냐,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 희다 하지 않느냐,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 내가 어찌 박이겠는가, 어찌 매달려 먹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子路引孔子往時所言以非孔子也。往前孔子出此言,欲令弟子法而行之,子路引之以諫,孔子曉之,不曰「前言戲」,若非而不可行,而曰「有是言」者,審有當行之也。「不曰堅乎?磨而不磷;不曰白乎?涅而不淄」,孔子言此言者,能解子路難乎?「親於其身為不善者,君子不入也」,解之,宜〔曰〕:佛未為不善,尚猶可入。

자로가 공자가 지난날 한 말을 끌어 공자를 그르다 하였다. 지난날 공자가 이 말을 낸 것은 제자로 하여금 본받아 행하게 하려 한 것인데 자로가 끌어 간하니 공자가 깨우치되 「앞의 말은 농담이었다」 하지 않고 그르니 행할 수 없다 하지 않고 「그런 말이 있다」 하였으니 참으로 마땅히 행할 것이 있는 것이다. 「단단하다 하지 않느냐, 갈아도 얇아지지 않는다. 희다 하지 않느냐,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 — 공자가 이 말을 한 것이 자로의 따짐을 풀 수 있는가. 「몸소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이에게는 군자가 들어가지 않는다」를 풀려면 마땅히 필힐은 아직 착하지 않은 일을 한 것이 아니니 오히려 들어갈 수 있다 해야 한다.

而曰「堅磨而不磷,白涅而不淄」。如孔子之言,有堅白之行者可以入之,君子之行軟而易污邪,何以獨不入也?孔子不飲盜泉之水,曾子不入勝母之閭,避惡去污,不以義恥辱名也。盜泉、勝母有空名,而孔、曾恥之;佛有惡實,而子欲往。不飲盜泉是,則欲對佛非矣。「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枉道食篡畔之祿,所謂「浮雲」者非也?或權時欲行道也?即權時行道,子路難之,當云「行道」,不〔當〕言食。有權時以行道,無權時以求食。「吾豈匏瓜也哉,焉能繫而不食」,自比以匏瓜者,言人當仕而食祿。我非匏瓜繫而不食,非子路也。孔子之言,不解子路之難。子路難孔子,豈孔子不當仕也哉?當擇善國而入之也。孔子自比匏瓜,孔子欲安食也。且孔之言,何其鄙也!

그런데 「단단하여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희어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 하였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단단하고 흰 행실이 있는 이는 들어갈 수 있으니 군자의 행실이 무르고 더럽혀지기 쉬운가, 어찌 홀로 들어가지 않는가. 공자는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고 증자는 승모의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악을 피하고 더러움을 버려 의롭지 않은 것으로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은 것이다. 도천과 승모는 빈 이름이 있을 뿐인데 공자와 증자가 부끄러워하였고 필힐은 악한 실상이 있는데 공자가 가려 하였다. 도천을 마시지 않음이 옳다면 필힐에게 가려 함은 그르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 뜬구름 같다」 하였으니 도를 굽혀 찬탈하고 배반한 이의 녹을 먹음이 이른바 「뜬구름」이 아닌가. 혹 때를 따라 도를 행하려 한 것인가. 곧 때를 따라 도를 행하려 하였다면 자로가 따질 때 마땅히 「도를 행한다」 해야지 먹는다 말해서는 안 된다. 때를 따라 도를 행함은 있으나 때를 따라 먹을 것을 구함은 없다. 「내가 어찌 박이겠는가, 어찌 매달려 먹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여 스스로 박에 견준 것은 사람이 마땅히 벼슬하여 녹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박이 아니라 매달려 먹히지 않을 수 없다 함은 자로를 그르다 한 것이다. 공자의 말이 자로의 따짐을 풀지 못한다. 자로가 공자를 따진 것이 어찌 공자가 벼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겠는가. 마땅히 착한 나라를 가려 들어가라는 것이다. 공자가 스스로 박에 견준 것은 공자가 편안히 먹으려 한 것이다. 또 공자의 말이 어찌 그리 비루한가!

何彼仕為食哉?君子不宜言也。匏瓜繫而不食,亦繫而不仕等也。距子路可云「吾豈匏瓜也哉,繫而不仕也」。今吾繫而不食,孔子之仕,不為行道,徒求食也。人之仕也,主貪祿也。禮義之言,為行道也。猶人之娶也,主為欲也;禮義之言,為供親也。仕而直言食,娶可直言欲乎?孔子之言,解情而無依違之意,不假義理之名,是則俗人,非君子也。儒者說孔子周流,應聘不濟,閔道不行,失孔子情矣。

어찌 저 벼슬함이 먹기 위해서인가. 군자는 마땅히 말하지 않을 것이다. 박이 매달려 먹히지 않음은 또한 매달려 벼슬하지 않음과 같다. 자로를 막으려면 「내가 어찌 박이겠는가, 매달려 벼슬하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 이제 내가 매달려 먹히지 않겠는가 하니 공자의 벼슬은 도를 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갓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벼슬함은 주로 녹을 탐해서다. 예의의 말은 도를 행하기 위해서라 한다. 사람이 장가듦은 주로 욕심을 위해서요 예의의 말은 어버이를 봉양하기 위해서라 하는 것과 같다. 벼슬하며 바로 먹는다 말하면 장가들며 바로 욕심이라 말할 수 있는가. 공자의 말은 정을 풀어 놓아 의지하고 어기는 뜻이 없고 의리의 이름을 빌리지 않았으니 이는 곧 속인이지 군자가 아니다. 유자가 공자가 두루 다니며 초빙에 응하여 이루지 못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근심하였다 말하는 것은 공자의 정을 잃은 것이다.

公山弗擾以費畔,召,子欲往。子路曰:「未如也已,何必公山氏之之也?」子曰:「夫召我者,而豈徒哉?如用我,吾其為東周乎。」

공산불요가 비로 배반하여 부르니 공자가 가려 하였다. 자로가 말하였다. 「갈 데가 없으면 그만이지 어찌 반드시 공산씨에게 가십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무릇 나를 부르는 이가 어찌 헛되이 하겠는가? 나를 쓴다면 나는 동주를 만들 것이다.」

為東周,欲行道也。

동주를 만든다 함은 도를 행하려 함이다.

公山、佛俱畔者,行道於公山,求食於佛,孔子之言無定趨也。言無定趨,則行無常務矣。周流不用,豈獨有以乎?陽貨欲見之不見,呼之仕不仕,何其清也。公山、佛召之欲往,何其濁也!公山不擾與陽虎俱畔,執季桓子,二人同惡,呼召禮等。獨對公山,不見陽虎,豈公山尚可,陽虎不可乎?子路難公山之(名)〔召〕,孔子宜解以尚及佛未甚惡之狀也

공산과 필힐은 다 배반한 이인데 공산에게서는 도를 행하고 필힐에게서는 먹을 것을 구하니 공자의 말이 정해진 취지가 없다. 말에 정해진 취지가 없으면 행실에 늘 힘쓰는 것이 없다. 두루 다녀도 쓰이지 않음이 어찌 홀로 까닭이 있겠는가. 양화가 보려 하니 보지 않고 벼슬하라 부르니 벼슬하지 않았으니 어찌 그리 맑은가. 공산과 필힐이 부르니 가려 하였으니 어찌 그리 흐린가! 공산불요는 양호와 함께 배반하여 계환자를 잡았으니 두 사람은 악이 같고 부르는 예가 같다. 홀로 공산에게 대하고 양호를 보지 않았으니 어찌 공산은 그래도 괜찮고 양호는 안 되는가. 자로가 공산의 부름을 따지니 공자가 마땅히 필힐처럼 아직 심히 악하지 않다는 모양으로 풀어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