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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韓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24 · 한자 3,992자 · 낭독 16.0분

「논형」 비한편 「非韓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韓子之術,明法尚功。賢,無益於國不加賞;不肖,無害於治不施罰。責功重賞,任刑用誅。故其論儒也,謂之「不耕而食」,比之於一蠹,論有益與無益也。比之於鹿馬,馬之似鹿者千金,天下有千金之馬,無千金之鹿。鹿無益,馬有用也。儒者猶鹿,有用之吏猶馬也。

한자의 술법은 법을 밝히고 공을 숭상한다. 어질어도 나라에 보탬이 없으면 상을 더하지 않고 어질지 못하여도 다스림에 해가 없으면 벌을 베풀지 않는다. 공을 책하고 상을 무겁게 하며 형벌에 맡기고 벰을 쓴다. 그러므로 그가 유자를 논함에 「밭 갈지 않고 먹는다」 하여 한 좀에 견주니 유익함과 무익함을 논한 것이다. 사슴과 말에 견주니, 말로 사슴 같은 것은 천금이라 천하에 천금의 말은 있어도 천금의 사슴은 없다. 사슴은 무익하고 말은 쓸모가 있다. 유자는 사슴 같고 쓸모 있는 아전은 말 같다는 것이다.

夫韓子知以鹿馬喻,不知以冠履譬。使韓子不冠,徒履而朝,吾將聽其言也。加冠於首而立於朝,受無益之服,增無益之(仕)〔行〕,言與服相違,行與術相反,吾是以非其言而不用其法也。煩勞人體,無益於人身,莫過跪拜。使韓子逢人不拜,見君父不謁,未必有賊於身體也。然須拜謁以尊親者,禮義至重,不可失也。故禮義在身,身未必肥;而禮義去身,身未必瘠而化衰。以謂有益,禮義不如飲食。使韓子賜食君父之前,不拜而用,肯為之乎?夫拜謁,禮義之效,非益身之實也。然而韓子終不失者,不廢禮義以苟益也。夫儒生,禮義也;耕戰,飲食也。貴耕戰而賤儒生,是棄禮義求飲食也。

무릇 한자는 사슴과 말로 비유할 줄 알고 관과 신으로 비유할 줄 몰랐다. 한자가 관을 쓰지 않고 맨발로 조회한다면 나는 그 말을 들을 것이다. 관을 머리에 얹고 조정에 서서 무익한 옷을 받고 무익한 행실을 더하니 말과 옷이 서로 어긋나고 행실과 술법이 서로 반대라 나는 이 때문에 그 말을 그르다 하고 그 법을 쓰지 않는다. 사람의 몸을 번거롭고 수고롭게 하고 사람의 몸에 보탬이 없는 것으로 꿇어 절하는 것보다 지나친 것이 없다. 한자가 사람을 만나 절하지 않고 임금과 아비를 보고 뵙지 않아도 반드시 몸에 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하고 뵈어 어른을 높여야 하는 것은 예의가 지극히 무거워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의가 몸에 있어도 몸이 반드시 살지지 않고 예의가 몸에서 떠나도 몸이 반드시 여위지 않으나 교화가 쇠한다. 유익함으로 말하면 예의는 먹고 마심만 못하다. 한자가 임금과 아비 앞에서 먹을 것을 받아 절하지 않고 쓴다면 하려 하겠는가. 무릇 절하고 뵘은 예의의 보람이지 몸에 보탬이 되는 실상이 아니다. 그러나 한자가 끝내 잃지 않는 것은 예의를 폐하고 구차히 보탬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릇 유생은 예의요 밭 갈고 싸움은 먹고 마심이다. 밭 갈고 싸움을 귀히 여기고 유생을 천히 여김은 예의를 버리고 먹고 마심을 구하는 것이다.

使禮義廢,綱紀敗,上下亂而陰陽繆,水旱失時,五谷不登,萬民飢死,農不得耕,士不得戰也。子貢去告朔之餼羊,孔子曰:「賜也,爾愛其羊,我愛其禮。」子貢惡費羊,孔子重廢禮也。故以舊防為無益而去之,必有水災;以舊禮為無補而去之,必有亂患。

예의가 폐하고 기강이 무너지면 위아래가 어지럽고 음양이 어그러져 물과 가뭄이 때를 잃고 오곡이 익지 않아 만민이 굶어 죽어 농부가 밭 갈지 못하고 선비가 싸우지 못한다. 자공이 곡삭의 희생양을 없애려 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그 예를 아낀다.」 자공은 양을 허비함을 미워하고 공자는 예를 폐함을 무겁게 여겼다. 그러므로 옛 둑을 무익하다 하여 없애면 반드시 물의 재앙이 있고 옛 예를 보탬 없다 하여 없애면 반드시 어지러운 근심이 있다.

儒者之在世,禮義之舊防也,有之無益,無之有損。庠序之設,自古有之。重本尊始,故立官置吏。官不可廢,道不可棄。儒生,道官之吏也,以為無益而廢之,是棄道也。夫道無成效於人,成效者須道而成。然足蹈路而行,所蹈之路,須不蹈者。身須手足而動,待不動者。故事或無益而益者須之,無效而效者待之。儒生,耕戰所須待也,棄而不存,如何也?

유자가 세상에 있음은 예의의 옛 둑이니 있어도 보탬이 없으나 없으면 덜함이 있다. 학교를 세움은 예로부터 있었다. 근본을 무겁게 여기고 비롯함을 높이므로 벼슬을 세우고 아전을 둔다. 벼슬을 폐할 수 없고 도를 버릴 수 없다. 유생은 도의 벼슬아치니 무익하다 하여 폐함은 도를 버리는 것이다. 무릇 도는 사람에게 이루어진 보람이 없으나 보람을 이루는 것은 도를 기다려 이루어진다. 그러니 발로 길을 밟아 다니는데 밟는 길은 밟지 않는 곳을 필요로 한다. 몸은 손발로 움직이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일에 더러 무익하나 유익한 것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보람 없으나 보람 있는 것이 그것을 기다린다. 유생은 밭 갈고 싸움이 필요로 하고 기다리는 바인데 버려 두지 않으니 어떠한가.

韓子非儒,謂之無益有損,蓋謂俗儒無行操,舉措不重禮,以儒名而俗行,以實學而偽說,貪官尊榮,故不足貴。夫志潔行顯,不徇爵祿,去卿相之位若脫者,居位治職,功雖不立,此禮義為業者也。國之所以存者,禮義也。民無禮義,傾國危主。今儒者之操,重禮愛義,率無禮義士,激無義之人。人民為善,愛其主上,此亦有益也。聞伯夷風者,貪夫廉,懦夫有立志;聞柳下惠風者,薄夫敦,鄙夫寬。此上化也,非人所見。

한자가 유자를 그르다 하여 무익하고 덜함이 있다 한 것은 아마 속된 유자가 몸가짐이 없고 거동이 예를 무겁게 여기지 않으며 유자의 이름으로 속된 행실을 하고 실다운 배움으로 거짓 말을 하며 벼슬을 탐하고 영화를 높이므로 귀히 여길 것이 없다 한 것이다. 무릇 뜻이 깨끗하고 행실이 드러나 작록을 따르지 않고 경상의 자리를 벗은 신처럼 버리는 이는 자리에 있어 직분을 다스림에 공이 비록 서지 않아도 이는 예의로 업을 삼는 이다. 나라가 보존되는 까닭은 예의다. 백성에게 예의가 없으면 나라를 기울이고 임금을 위태롭게 한다. 이제 유자의 몸가짐은 예를 무겁게 여기고 의를 아껴 예의 없는 선비를 거느리고 의 없는 사람을 격동시킨다. 백성이 착함을 하고 그 임금을 사랑하니 이 또한 유익함이 있다. 백이의 풍모를 들은 이는 탐하는 사내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내가 뜻을 세우며, 유하혜의 풍모를 들은 이는 박한 사내가 두터워지고 비루한 사내가 너그러워진다. 이는 위의 교화니 사람이 보는 바가 아니다.

段干木闔門不出,魏文敬之,表式其閭,秦軍聞之,卒不攻魏。使魏無干木,秦兵入境,境土危亡。秦,強國也,兵無不勝,兵加於魏,魏國必破,三軍兵頓,流血千里。今魏文式闔門之士,卻強秦之兵,全魏國之境,濟三軍之眾,功莫大焉,賞莫先焉。齊有高節之士,曰狂譎、華士,二人昆弟也,義不降志,不仕非其主。太公封於齊,以此二子解沮齊眾,開不為上用之路,同時誅之。韓子善之,以為二子無益而有損也。

단간목이 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니 위 문후가 공경하여 그 마을에 경례하였는데 진나라 군사가 듣고 마침내 위나라를 치지 않았다. 위나라에 간목이 없었다면 진나라 군사가 경계에 들어와 경계의 땅이 위태로워 망하였을 것이다. 진나라는 강한 나라라 군사가 이기지 않음이 없으니 군사가 위나라에 더해지면 위나라가 반드시 깨지고 삼군의 군사가 꺾여 피가 천 리에 흘렀을 것이다. 이제 위 문후가 문 닫은 선비에게 경례하여 강한 진나라의 군사를 물리치고 위나라의 경계를 온전히 하고 삼군의 무리를 건졌으니 공이 이보다 큰 것이 없고 상이 이보다 앞설 것이 없다. 제나라에 높은 절개의 선비가 있어 광휼과 화사라 하니 두 사람은 형제로 의로써 뜻을 굽히지 않고 그 임금이 아닌 이에게 벼슬하지 않았다.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지자 이 두 사람이 제나라 무리를 풀어 헤치고 위에 쓰이지 않는 길을 연다 하여 같은 때에 베었다. 한자가 옳다 하여 두 사람이 무익하고 덜함이 있다 여겼다.

夫狂譎、華士,段干木之類也,太公誅之,無所卻到;魏文侯式之,卻強秦而全魏。功孰大者?使韓子善干木闔門高節,魏文式之,是也;狂譎、華士之操,干木之節也,善太公誅之,非也。使韓子非干木之行,下魏文之式,則干木以此行而有益,魏文用式之道為有功;是韓子不賞功、尊有益也。

무릇 광휼과 화사는 단간목의 무리인데 태공이 베어도 물리친 바가 없고 위 문후가 경례하여 강한 진나라를 물리치고 위나라를 온전히 하였다. 공이 누가 큰가. 한자가 간목이 문 닫은 높은 절개를 착하다 하고 위 문후가 경례한 것을 옳다 한다면, 광휼과 화사의 몸가짐은 간목의 절개인데 태공이 벤 것을 착하다 함은 그르다. 한자가 간목의 행실을 그르다 하고 위 문후의 경례를 낮춘다면 간목이 이 행실로 유익하고 위 문후가 경례의 도를 써서 공이 있는 것이니, 이는 한자가 공을 상 주지 않고 유익함을 높이지 않는 것이다.

論者或曰:「魏文式段干木之閭,秦兵為之不至,非法度之功;一功特然,不可常行,雖全國有益,非所貴也。」夫法度之功者,謂何等也?養三軍之士,明賞罰之命,嚴刑峻法,富國強兵,此法度也。案秦之強,肯為此乎?六國之亡,皆滅於秦兵。六國之兵非不銳,士眾之力非不勁也,然而不勝,至於破亡者,強弱不敵,眾寡不同,雖明法度,其何益哉?使童子變孟賁之意,孟賁怒之,童子操刃與孟賁戰,童子必不勝,力不如也。孟賁怒,而童子修禮盡敬,孟賁不忍犯也。秦之與魏,孟賁之與童子也。魏有法度,秦必不畏,猶童子操刃,孟賁不避也。其尊士式賢者之閭,非徒童子修禮盡敬也。夫力少則修德,兵強則奮威。秦以兵強,威無不勝,卻軍還眾,不犯魏境者,賢干木之操,高魏文之禮也。夫敬賢,弱國之法度,力少之強助也。謂之非法度之功,如何?高皇帝議欲廢太子,呂后患之,即召張子房而取策,子房教以敬迎四皓而厚禮之,高祖見之,心消意沮,太子遂安。使韓子為呂后議,進不過強諫,退不過勁力。以此自安,取誅之道也,豈徒易哉?夫太子敬厚四皓以消高帝之議,猶魏文式段干木之閭,卻強秦之兵也。

논하는 이가 더러 말한다. 「위 문후가 단간목의 마을에 경례하여 진나라 군사가 그 때문에 이르지 않은 것은 법도의 공이 아니다. 한 공이 특별히 그러한 것이라 늘 행할 수 없으니 비록 나라를 온전히 하여 유익하여도 귀히 여길 바가 아니다.」 무릇 법도의 공이란 무엇을 이르는가. 삼군의 군사를 기르고 상벌의 명을 밝히며 형벌을 엄히 하고 법을 준엄히 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를 강하게 함이 법도다. 살피건대 진나라의 강함에 이것을 하려 하겠는가. 육국의 망함은 다 진나라 군사에 멸한 것이다. 육국의 군사가 날카롭지 않은 것이 아니고 군사 무리의 힘이 굳세지 않은 것이 아니나 이기지 못하고 깨져 망하기에 이른 것은 강약이 맞서지 못하고 많고 적음이 같지 않아서니 비록 법도를 밝힌들 무슨 보탬이 있는가. 아이가 맹분의 뜻을 바꾸어 맹분이 노하니 아이가 칼을 잡고 맹분과 싸우면 아이가 반드시 이기지 못하니 힘이 못하기 때문이다. 맹분이 노하였는데 아이가 예를 닦고 공경을 다하면 맹분이 차마 범하지 못한다. 진나라와 위나라는 맹분과 아이다. 위나라에 법도가 있어도 진나라가 반드시 두려워하지 않으니 아이가 칼을 잡아도 맹분이 피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 선비를 높이고 어진 이의 마을에 경례함은 한갓 아이가 예를 닦고 공경을 다함이 아니다. 무릇 힘이 적으면 덕을 닦고 군사가 강하면 위엄을 떨친다. 진나라가 군사가 강하여 위엄이 이기지 않음이 없는데 군사를 물리고 무리를 돌려 위나라 경계를 범하지 않은 것은 간목의 몸가짐을 어질다 하고 위 문후의 예를 높인 것이다. 무릇 어진 이를 공경함은 약한 나라의 법도요 힘이 적은 이의 강한 도움이다. 법도의 공이 아니라 하니 어떠한가. 고황제가 태자를 폐하려 의논하니 여후가 근심하여 곧 장자방을 불러 계책을 취하니 자방이 사호를 공경히 맞이하여 두터이 예우하라 가르쳤는데 고조가 보고 마음이 사라지고 뜻이 꺾여 태자가 마침내 편안하였다. 한자가 여후를 위해 의논하였다면 나아가야 힘써 간함에 지나지 않고 물러나야 굳센 힘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으로 스스로 편안하려 함은 죽임을 취하는 길이니 어찌 한갓 쉽겠는가. 무릇 태자가 사호를 공경하고 두터이 하여 고제의 의논을 사라지게 한 것은 위 문후가 단간목의 마을에 경례하여 강한 진나라의 군사를 물리친 것과 같다.

治國之道,所養有二:一曰養德,二曰養力。養德者,養名高之人,以示能敬賢;養力者,養氣力之士,以明能用兵。此所謂文武張設,德力(且)〔具〕足者也,事或可以德懷,或可以力摧。外以德自立,內以力自備。慕德者不戰而服,犯德者畏兵而卻。徐偃王修行仁義,陸地朝者三十二國,強楚聞之,舉兵而滅之。此有德守,無力備者也。夫德不可獨任以治國,力不可直任以御敵也。韓子之術不養德,偃王之操不任力。二者偏駁,各有不足。偃王有無力之禍,知韓子必有無德之患。凡人稟性也,清濁貪廉,各有操行,猶草木異質,不可復變易也。狂譎、華士不仕於齊,猶段干木不仕於魏矣。性行清廉,不貪富貴,非時疾世,義不苟仕,雖不誅此人,此人行不可隨也。太公誅之,韓子是之,是謂人無性行,草木無質也。

나라를 다스리는 도에 기르는 바가 둘이니 하나는 덕을 기름이요 둘은 힘을 기름이다. 덕을 기름은 이름 높은 사람을 길러 어진 이를 공경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요, 힘을 기름은 기력의 선비를 길러 군사를 쓸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문과 무를 베풀어 덕과 힘이 갖추어 넉넉함이니 일에 더러 덕으로 품을 수 있고 더러 힘으로 꺾을 수 있다. 밖으로는 덕으로 스스로 서고 안으로는 힘으로 스스로 갖춘다. 덕을 사모하는 이는 싸우지 않고 복종하고 덕을 범하는 이는 군사를 두려워하여 물러난다. 서언왕이 인의를 닦아 행하니 뭍에서 조회하는 이가 서른두 나라였는데 강한 초나라가 듣고 군사를 들어 멸하였다. 이는 덕의 지킴은 있으나 힘의 갖춤이 없는 것이다. 무릇 덕만 홀로 맡겨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힘만 바로 맡겨 적을 막을 수 없다. 한자의 술법은 덕을 기르지 않고 언왕의 몸가짐은 힘에 맡기지 않았다. 둘은 치우쳐 저마다 부족함이 있다. 언왕에게 힘 없는 화가 있었으니 한자에게 반드시 덕 없는 근심이 있음을 안다. 무릇 사람이 성품을 받음에 맑고 흐리고 탐하고 청렴함이 저마다 몸가짐이 있으니 풀과 나무가 바탕이 달라 다시 바꿀 수 없는 것과 같다. 광휼과 화사가 제나라에 벼슬하지 않음은 단간목이 위나라에 벼슬하지 않음과 같다. 성품과 행실이 맑고 청렴하여 부귀를 탐하지 않고 때를 그르다 하고 세상을 미워하여 의로써 구차히 벼슬하지 않으니 비록 이 사람을 베지 않아도 이 사람의 행실은 따를 수 없다. 태공이 베고 한자가 옳다 하니 이는 사람에게 성품과 행실이 없고 풀과 나무에 바탕이 없다는 말이다.

太公誅二子,使齊有二子之類,必不為二子見誅之故,不清其身;使無二子之類,雖養之,終無其化。堯不誅許由,唐民不皆處;武王不誅伯夷,周民不皆隱餓;魏文侯式段干木之閭,魏國不皆闔門。由此言之,太公不誅二子,齊國亦不皆不仕。何則?清廉之行,人所不能為也。夫人所不能為,養使為之,不能使勸;人所能為,誅以禁之,不能使止。然則太公誅二子,無益於化,空殺無辜之民。賞無功,殺無辜,韓子所非也。太公殺無辜,韓子是之,以韓子之術殺無辜也。夫執不仕者,未必有正罪也,太公誅之。如出仕未有功,太公肯賞之乎?賞須功而加,罰待罪而施。使太公不賞出仕未有功之人,則其誅不仕未有罪之民,非也;而韓子是之,失誤之言也。

태공이 두 사람을 베었으니 제나라에 두 사람의 무리가 있다면 반드시 두 사람이 베인 까닭으로 그 몸을 깨끗이 하지 않을 리 없고, 두 사람의 무리가 없다면 비록 기른들 끝내 그 교화가 없다. 요가 허유를 베지 않아도 당나라 백성이 다 숨어 살지 않았고, 무왕이 백이를 베지 않아도 주나라 백성이 다 숨어 굶지 않았으며, 위 문후가 단간목의 마을에 경례하여도 위나라가 다 문을 닫지 않았다. 이로써 말하면 태공이 두 사람을 베지 않았어도 제나라가 또한 다 벼슬하지 않지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청렴한 행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길러 하게 하여도 권할 수 없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베어 금하여도 그치게 할 수 없다. 그러니 태공이 두 사람을 벤 것은 교화에 보탬이 없고 헛되이 죄 없는 백성을 죽인 것이다. 공 없는 이를 상 주고 죄 없는 이를 죽임은 한자가 그르다 하는 바다. 태공이 죄 없는 이를 죽였는데 한자가 옳다 하니 한자의 술법으로 죄 없는 이를 죽이는 것이다. 무릇 벼슬하지 않기를 고집하는 이는 반드시 바른 죄가 있는 것이 아닌데 태공이 베었다. 나가 벼슬하여 아직 공이 없으면 태공이 상 주려 하겠는가. 상은 공을 기다려 더하고 벌은 죄를 기다려 베푼다. 태공이 나가 벼슬하여 아직 공이 없는 사람을 상 주지 않는다면 벼슬하지 않아 아직 죄 없는 백성을 벰은 그르다. 그런데 한자가 옳다 하니 잘못된 말이다.

且不仕之民,性廉寡欲;好仕之民,性貪多利。利欲不存於心,則視爵祿猶糞土矣。廉則約省無極,貪則奢泰不止;奢泰不止,則其所欲不避其主。案古篡畔之臣,希清白廉潔之人。貪,故能立功;驕,故能輕生。積功以取大賞,奢泰以貪主位。太公遺此法而去,故齊有陳氏劫殺之患。太公之術,致劫殺之法也;韓子善之,是韓子之術亦危亡也。

또 벼슬하지 않는 백성은 성품이 청렴하고 욕심이 적으며 벼슬하기 좋아하는 백성은 성품이 탐하고 이익이 많다. 이익과 욕심이 마음에 있지 않으면 작록 보기를 거름 흙같이 한다. 청렴하면 검약하여 끝이 없고 탐하면 사치하여 그치지 않으며, 사치하여 그치지 않으면 그 바라는 바가 그 임금도 피하지 않는다. 살피건대 옛날 찬탈하고 배반한 신하에 청백하고 청렴한 사람이 드물다. 탐하므로 공을 세울 수 있고 교만하므로 삶을 가벼이 할 수 있다. 공을 쌓아 큰 상을 취하고 사치하여 임금 자리를 탐한다. 태공이 이 법을 남기고 갔으므로 제나라에 진씨가 위협하여 죽인 근심이 있었다. 태공의 술법은 위협하여 죽임을 이르게 하는 법이니 한자가 옳다 하니 이는 한자의 술법도 위태롭고 망하는 것이다.

周公聞太公誅二子,非而不是,然而身執贄以下白屋之士。白屋之士,二子之類也,周公禮之,太公誅之,二子之操,孰為是者?宋人有御馬者不進,拔俞剄而棄之於溝中;又駕一馬,馬又不進,又剄而棄之於溝。是者三。以此威馬,至矣,然非王良之法也。王良登車,馬無罷駑。堯、舜治世,民無狂悖。王良馴馬之心,堯、舜順民之意。人同性,馬殊類也。王良能調殊類之馬,太公不能率同性之士。然則周公之所下白屋,王良之馴馬也;太公之誅二子,宋人之剄馬也。舉王良之法與宋人之操,使韓子平之,韓子必是王良而非宋人矣。王良全馬,宋人賊馬也。馬之賊,則不若其全;然則民之死,不若其生。使韓子非王良,自同於宋人,賊善人矣。如非宋人,宋人之術與太公同。非宋人,是太公,韓子好惡無定矣。

주공이 태공이 두 사람을 베었다는 말을 듣고 그르다 하고 옳다 하지 않았으며 몸소 폐백을 잡고 초가의 선비에게 낮추었다. 초가의 선비는 두 사람의 무리인데 주공은 예우하고 태공은 베었으니 두 사람의 몸가짐에 누가 옳은가. 송나라 사람에 말을 모는 이가 있어 나아가지 않자 칼을 뽑아 목을 베어 도랑에 버렸다. 또 말 한 마리를 메우니 말이 또 나아가지 않자 또 베어 도랑에 버렸다. 이렇게 하기 세 번이었다. 이로써 말을 위협함은 지극하나 왕량의 법이 아니다. 왕량이 수레에 오르면 말에 지치고 둔한 것이 없다. 요·순이 세상을 다스리니 백성에 미치고 어긋난 이가 없었다. 왕량이 말을 길들이는 마음은 요·순이 백성을 따르는 뜻이다. 사람은 성품이 같고 말은 종류가 다르다. 왕량은 종류가 다른 말을 고를 수 있는데 태공은 성품이 같은 선비를 거느릴 수 없었다. 그러니 주공이 초가에 낮춘 것은 왕량이 말을 길들임이요 태공이 두 사람을 벤 것은 송나라 사람이 말을 벤 것이다. 왕량의 법과 송나라 사람의 짓을 들어 한자에게 평하게 하면 한자는 반드시 왕량을 옳다 하고 송나라 사람을 그르다 할 것이다. 왕량은 말을 온전히 하고 송나라 사람은 말을 해쳤다. 말이 해쳐짐은 그 온전함만 못하니 그러면 백성이 죽음은 그 삶만 못하다. 한자가 왕량을 그르다 하면 스스로 송나라 사람과 같아져 착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송나라 사람을 그르다 하면 송나라 사람의 술법은 태공과 같다. 송나라 사람을 그르다 하고 태공을 옳다 하면 한자의 좋아하고 미워함이 정함이 없다.

治國猶治身也。治一身,省恩德之行,多傷害之操,則交党疏絕,恥辱至身。推治身以況治國,治國之道當任德也。韓子任刑獨以治世,是則治身之人任傷害也。韓子豈不知任德之為善哉?以為世衰事變,民心靡薄,故作法術,專意於刑也。夫世不乏於德,猶歲不絕於春也。謂世衰難以德治,可謂歲亂不可以春生乎?人君治一國,猶天地生萬物。天地不為亂歲去春,人君不以衰世屏德。孔子曰:「斯民也,三代所以直道而行也。」

나라를 다스림은 몸을 다스림과 같다. 한 몸을 다스림에 은덕의 행실을 덜고 상해하는 짓을 많이 하면 사귐과 무리가 멀어지고 끊겨 치욕이 몸에 이른다. 몸 다스림을 미루어 나라 다스림에 견주면 나라 다스리는 도는 마땅히 덕에 맡겨야 한다. 한자가 형벌에 맡겨 홀로 세상을 다스리니 이는 몸 다스리는 사람이 상해에 맡기는 것이다. 한자가 어찌 덕에 맡김이 착함을 몰랐겠는가. 세상이 쇠하고 일이 변하여 백성의 마음이 얇아졌으므로 법술을 지어 형벌에 뜻을 오로지한 것이다. 무릇 세상에 덕이 없지 않음은 해에 봄이 끊이지 않음과 같다. 세상이 쇠하여 덕으로 다스리기 어렵다 하면 해가 어지러워 봄에 낳을 수 없다 할 수 있는가. 임금이 한 나라를 다스림은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음과 같다. 하늘과 땅은 어지러운 해라고 봄을 없애지 않고 임금은 쇠한 세상이라고 덕을 물리치지 않는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 백성은 삼대가 곧은 도로 행한 까닭이다.」

周穆王之世,可謂衰矣,任刑治政,亂而無功,甫侯諫之,穆王存德,享國久長,功傳於世。夫穆王之治,初亂終治,非知昏於前,才妙於後也;前任蚩尤之刑,後用甫侯之言也。

주 목왕의 세상은 쇠하였다 할 만한데 형벌에 맡겨 정사를 다스리니 어지러워 공이 없었고 보후가 간하니 목왕이 덕을 두어 나라를 누림이 오래고 길어 공이 세상에 전해졌다. 무릇 목왕의 다스림이 처음 어지럽고 끝내 다스려진 것은 앎이 앞에 어둡고 재주가 뒤에 묘하여서가 아니라, 앞에 치우의 형벌에 맡기고 뒤에 보후의 말을 썼기 때문이다.

夫治人不能舍恩,治國不能廢德,治物不能去春。韓子欲獨任刑用誅,如何?

무릇 사람을 다스림에 은혜를 버릴 수 없고 나라를 다스림에 덕을 폐할 수 없고 물건을 다스림에 봄을 없앨 수 없다. 한자가 홀로 형벌에 맡겨 벰을 쓰려 하니 어떠한가.

魯繆公問於子思曰:「吾聞龐是子不孝,不孝其行奚如?」子思對曰:「君子尊賢以崇德,舉善以勸民。若夫過行,是細人之所識也,臣不知也。」子思出,子服厲伯見,君問龐是子,子服厲伯對以其過,皆君(子)〔之〕所未曾聞。自是之後,君貴子思而賤子服厲伯。韓子聞之,以非繆公,以為明君求奸而誅之,子思不以奸聞,而厲伯以奸對,厲伯宜貴,子思宜賤。今繆公貴子思,賤厲伯,失貴賤之宜,故非之也。

노 목공이 자사에게 물었다. 「내가 들으니 방간자가 불효한다 하는데 불효한 그 행실이 어떠한가?」 자사가 대답하였다. 「군자는 어진 이를 높여 덕을 숭상하고 착한 이를 들어 백성을 권합니다. 저 허물된 행실은 소인이 아는 바이니 신은 모릅니다.」 자사가 나가고 자복여백이 뵈니 임금이 방간자를 묻자 자복여백이 그 허물로 대답하니 다 임금이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이었다. 이 뒤로 임금이 자사를 귀히 여기고 자복여백을 천히 여겼다. 한자가 듣고 목공을 그르다 하여, 밝은 임금은 간사함을 구하여 베는데 자사는 간사함을 알리지 않고 여백은 간사함으로 대답하였으니 여백이 마땅히 귀하고 자사가 마땅히 천하다 하였다. 이제 목공이 자사를 귀히 여기고 여백을 천히 여겨 귀천의 마땅함을 잃었으므로 그르다 한 것이다.

夫韓子所尚者,法度也。人為善,法度賞之;惡,法度罰之。雖不聞善惡於外,善惡有所制矣。夫聞惡不可以行罰,猶聞善不可以行賞也。非人不舉奸者,(非)韓子之術也。使韓子聞善,必將試之;試之有功,乃肯賞之。夫聞善不輒加賞,虛言未必可信也。若此,聞善與不聞,無以異也。夫聞善不輒賞,則聞惡不輒罰矣。聞善必試之,聞惡必考之。試有功乃加賞,考有驗乃加罰。虛聞空見,實試未立,賞罰未加。賞罰未加,善惡未定,未定之事,須術乃立。則欲耳聞之,非也。

무릇 한자가 숭상하는 바는 법도다. 사람이 착하면 법도가 상 주고 악하면 법도가 벌한다. 비록 착하고 악함을 밖에서 듣지 않아도 착하고 악함은 제어되는 바가 있다. 무릇 악을 들었다고 벌을 행할 수 없음은 착함을 들었다고 상을 행할 수 없음과 같다. 간사함을 들어내지 않은 이를 그르다 함은 한자의 술법이다. 한자가 착함을 들으면 반드시 시험할 것이고 시험하여 공이 있어야 상 주려 할 것이다. 무릇 착함을 들어도 곧 상을 더하지 않음은 빈말은 반드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하면 착함을 듣는 것과 듣지 않는 것이 다를 것이 없다. 무릇 착함을 들어도 곧 상 주지 않으면 악을 들어도 곧 벌하지 않는다. 착함을 들으면 반드시 시험하고 악을 들으면 반드시 살핀다. 시험하여 공이 있어야 상을 더하고 살펴 증험이 있어야 벌을 더한다. 헛되이 듣고 헛되이 보아 실다운 시험이 아직 서지 않으면 상벌이 더해지지 않는다. 상벌이 더해지지 않으면 착하고 악함이 정해지지 않고 정해지지 않은 일은 술법을 기다려야 선다. 그러면 귀로 들으려 함은 그르다.

鄭子產晨出,過東匠之宮,聞婦人之哭也,撫其仆之手而聽之。有間,使吏執而問之;手殺其夫者也。翼日,其仆問曰:「夫子何以知之?」子產曰:「其聲不慟。凡人於其所親愛也,知病而憂,臨死而懼,已死而哀。今哭夫已死,不哀而懼,是以知其有奸也。」韓子聞而非之,曰:「子產不亦多事乎!奸必待耳目之所及而後知之,則鄭國之得奸寡矣。不任典城之吏,察參伍之正,不明度量,待盡聰明、勞知慮而以知奸,不亦無術乎!」韓子之非子產,是也。其非繆公,非也。夫婦人之不哀,猶龐(捫)〔是〕子不孝也。非子產持耳目以知奸,獨欲繆公須問以定邪。子產不任典城之吏,而以耳〔聞〕定實;繆公亦不任吏,而以口問立誠。夫耳聞口問,一實也,俱不任吏,皆不參伍。厲伯之對不可以立實,猶婦人之哭不可以定誠矣。不可定誠,使吏執而問之。可以立實,不使吏考,獨信厲伯口以罪不考之奸,如何?

정나라 자산이 새벽에 나가 동장의 집을 지나다가 부인의 곡을 듣고 그 마부의 손을 잡고 들었다. 잠시 뒤 아전을 시켜 잡아 물으니 손수 그 남편을 죽인 이였다. 이튿날 그 마부가 물었다. 「선생께서는 무엇으로 아셨습니까?」 자산이 말하였다. 「그 소리가 애통하지 않았다. 무릇 사람은 그 친애하는 이에 대해 병든 줄 알면 근심하고 죽음에 임하면 두려워하고 이미 죽으면 슬퍼한다. 이제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곡하며 슬퍼하지 않고 두려워하니 이 때문에 간사함이 있음을 알았다.」 한자가 듣고 그르다 하여 말하였다. 「자산은 또한 일이 많지 않은가! 간사함을 반드시 귀와 눈이 미치기를 기다린 뒤에 안다면 정나라가 간사함을 얻는 것이 적을 것이다. 성을 맡은 아전에게 맡기지 않고 참오의 바름을 살피지 않고 도량을 밝히지 않으며 총명을 다하고 지려를 수고롭게 하기를 기다려 간사함을 아니 또한 술법이 없지 않은가!」 한자가 자산을 그르다 함은 옳다. 그가 목공을 그르다 함은 그르다. 무릇 부인이 슬퍼하지 않음은 방간자가 불효함과 같다. 자산이 귀와 눈으로 간사함을 안 것을 그르다 하면서 홀로 목공은 물어서 사악함을 정하기를 바란다. 자산은 성을 맡은 아전에게 맡기지 않고 귀로 들어 실상을 정하였고 목공도 아전에게 맡기지 않고 입으로 물어 참됨을 세웠다. 무릇 귀로 듣고 입으로 물음은 한가지 실상이니 다 아전에게 맡기지 않고 다 참오하지 않았다. 여백의 대답으로 실상을 세울 수 없음은 부인의 곡으로 참됨을 정할 수 없음과 같다. 참됨을 정할 수 없어 아전을 시켜 잡아 물었다. 실상을 세울 수 있다 하여 아전에게 살피게 하지 않고 홀로 여백의 입을 믿어 살피지 않은 간사함을 죄주니 어떠한가.

韓子曰:「子思不以過聞,繆公貴之。子服厲伯以奸聞,繆公賤之。人情皆喜貴而惡賤,故季氏之亂成而不上聞。此魯君之所以劫也。」夫魯君所以劫者,以不明法度邪,以不早聞奸也?夫法度明,雖不聞奸,奸無由生;法度不明,雖日求奸,決其源鄣之以掌也。御者無銜,見馬且奔,無以制也。使王良持轡,馬無欲奔之心,御之有數也。今不言魯君無術,而曰「不聞奸」;不言〔不〕審法度,曰「不通下情」,韓子之非繆公也,與術意而相違矣。

한자가 말하였다. 「자사가 허물을 알리지 않으니 목공이 귀히 여겼다. 자복여백이 간사함을 알리니 목공이 천히 여겼다. 사람의 정은 다 귀함을 기뻐하고 천함을 미워하므로 계씨의 어지러움이 이루어졌는데도 위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이 노나라 임금이 위협받은 까닭이다.」 무릇 노나라 임금이 위협받은 까닭은 법도를 밝히지 않아서인가, 간사함을 일찍 듣지 않아서인가. 무릇 법도가 밝으면 비록 간사함을 듣지 않아도 간사함이 생길 길이 없고, 법도가 밝지 않으면 비록 날마다 간사함을 구하여도 그 근원을 터놓고 손바닥으로 막는 것이다. 마부에게 재갈이 없으면 말이 장차 달아나는 것을 보아도 제어할 길이 없다. 왕량이 고삐를 잡으면 말에 달아나려는 마음이 없으니 몰기에 법도가 있어서다. 이제 노나라 임금이 술법이 없다 말하지 않고 「간사함을 듣지 않았다」 하고, 법도를 살피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아래 정을 통하지 않았다」 하니, 한자가 목공을 그르다 함은 술법의 뜻과 서로 어긋난다.

龐(捫)〔〕是子不孝,子思不言。繆公貴之,韓子非之,以為明君求善而賞之,求奸而誅之。夫不孝之人,下愚之才也。下愚無禮,順情從欲,與鳥獸同,謂之惡,可也,謂奸,非也。奸人外善內惡,色厲內荏,作為操止象類賢行,以取升進,容媚於上,安肯作不孝、著身為惡以取棄殉之咎乎?龐(捫)〔〕是子可謂不孝,不可謂奸。韓子謂之奸,失奸之實矣。

방간자가 불효한 것을 자사가 말하지 않았다. 목공이 귀히 여기니 한자가 그르다 하여 밝은 임금은 착함을 구하여 상 주고 간사함을 구하여 벤다 하였다. 무릇 불효한 사람은 아래 어리석은 재주다. 아래 어리석은 이는 예가 없어 정을 따르고 욕심을 좇아 새와 짐승과 같으니 악하다 함은 옳으나 간사하다 함은 그르다. 간사한 사람은 밖으로 착하고 안으로 악하며 낯빛은 엄하고 속은 물러 몸가짐을 어진 행실과 비슷하게 하여 올라감을 취하고 위에 아첨하니 어찌 불효를 하고 몸을 악으로 드러내어 버림받는 허물을 취하려 하겠는가. 방간자는 불효하다 할 수 있으나 간사하다 할 수 없다. 한자가 간사하다 하니 간사함의 실상을 잃은 것이다.

韓子曰:「布帛尋常,庸人不擇;爍金百鎰,盜蹠不搏。」

한자가 말하였다. 「베와 비단 몇 자는 예사 사람도 가리지 않고, 녹인 쇠 백 일은 도척도 잡지 않는다.」

以此言之,法明,民不敢犯也。設明法於邦,有盜賊之心,不敢犯矣;不測之者,不敢發矣。奸心藏於胸中,不敢以犯罪法,(罪)〔明〕法恐之也。明法恐之,則不須考奸求邪於下矣。使法峻,民無奸者;使法不峻,民多為奸。而不言明王之嚴刑峻法,而云求奸而誅之。言求奸,是法不峻,民或犯之也。世不專意於明法,而專心求奸。韓子之言,與法相違。

이로써 말하면 법이 밝으면 백성이 감히 범하지 않는다. 밝은 법을 나라에 베풀면 도적의 마음이 있어도 감히 범하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이도 감히 일으키지 않는다. 간사한 마음이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어도 감히 죄와 법을 범하지 않음은 밝은 법이 두렵게 하기 때문이다. 밝은 법이 두렵게 하면 아래에서 간사함을 살피고 사악함을 구할 것이 없다. 법이 준엄하면 백성에 간사한 이가 없고 법이 준엄하지 않으면 백성이 흔히 간사함을 한다. 그런데 밝은 왕의 엄한 형벌과 준엄한 법을 말하지 않고 간사함을 구하여 벤다 하였다. 간사함을 구한다 말함은 법이 준엄하지 않아 백성이 더러 범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법을 밝힘에 뜻을 오로지하지 않고 간사함 구하기에 마음을 오로지한다. 한자의 말은 법과 서로 어긋난다.

人之釋溝渠也,知者必溺身。不塞溝渠而繕船楫者,知水之性不可閼,其勢必溺人也。臣子之性欲奸君父,猶水之性溺人也。不教所以防奸,而非其不聞知,是猶不備水之具,而徒欲早知水之溺人也。溺於水,不責水而咎己者,己失防備也。然則人君劫於臣,己失法也。備溺不閼水源,防劫不求臣奸,韓子所宜用教己也。水之性勝火,如裹之以釜,水煎而不得勝,必矣。

사람이 도랑을 터놓으면 아는 이는 반드시 몸이 빠진다. 도랑을 막지 않고 배와 노를 손질하는 이는 물의 성품이 막을 수 없어 그 형세가 반드시 사람을 빠뜨림을 안다. 신하와 자식의 성품이 임금과 아비를 간사하게 하려 함은 물의 성품이 사람을 빠뜨림과 같다. 간사함을 막을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그 듣고 알지 못함을 그르다 함은 물을 갖출 기구를 갖추지 않고 한갓 물이 사람을 빠뜨림을 일찍 알려 함과 같다. 물에 빠지면 물을 꾸짖지 않고 저를 허물하는 것은 제가 방비를 잃어서다. 그러니 임금이 신하에게 위협받음은 제가 법을 잃은 것이다. 빠짐을 대비함에 물의 근원을 막지 않고 위협을 막음에 신하의 간사함을 구하지 않음은 한자가 마땅히 써서 스스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물의 성품은 불을 이기나 가마로 싸면 물이 끓어도 이길 수 없음이 반드시 그러하다.

夫君猶火也,臣猶水也,法度釜也。火不求水之奸,君亦不宜求臣之罪也。

무릇 임금은 불 같고 신하는 물 같으며 법도는 가마다. 불이 물의 간사함을 구하지 않으니 임금도 마땅히 신하의 죄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