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談天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4 · 한자 2,146자 · 낭독 8.6분

「논형」 담천편 「談天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儒書言:共工與顓頊爭為天子不勝,怒而觸不周之山,使天柱折,地維絕。

유가의 책에 이르기를, 공공이 전욱과 천자가 되기를 다투다가 이기지 못하고 노하여 부주산을 들이받아 하늘 기둥을 꺾고 땅의 벼리를 끊었다 한다.

女媧銷煉五色石以補蒼天,斷鰲足以立四極。天不足西北,故日月移焉;地不足東南,故百川注焉。此久遠之文,世間是之訑。文雅之人,怪而無以非,若非而無以奪,又恐其實然,不敢正議。以天道人事論之,殆虛言也。

여와가 오색 돌을 녹여 푸른 하늘을 깁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극을 세웠다. 하늘이 서북이 부족하므로 해와 달이 옮기고 땅이 동남이 부족하므로 온갖 내가 흘러든다 한다. 이는 오래된 글이라 세상이 옳다 여긴다. 글 아는 사람은 괴이하게 여기나 그르다 할 길이 없고 그르다 하려 하여도 빼앗을 길이 없으며 또 그것이 실로 그러할까 두려워 감히 바로 의논하지 못한다. 하늘의 도와 사람의 일로 논하면 거의 헛말이다.

與人爭為天子不勝,怒觸不周之山,使天柱折,地維絕,有力如此,天下無敵。以此之力,與三軍戰,則士卒螻蟻也,兵革毫芒也,安得不勝之恨,怒觸不周之山乎?且堅重莫如山,以萬人之力,共推小山,不能動也。如不周之山,大山也,使是天柱乎,折之固難;使非柱乎,觸不周山而使天柱折,是亦復難信。顓頊與之爭,舉天下之兵,悉海內之眾,不能當也,何不勝之有!

사람과 천자가 되기를 다투다가 이기지 못하고 노하여 부주산을 들이받아 하늘 기둥을 꺾고 땅의 벼리를 끊었다면 힘이 이러하니 천하에 적이 없다. 이 힘으로 삼군과 싸우면 군사는 땅강아지와 개미요 병기는 터럭 끝이니 어찌 이기지 못한 한으로 노하여 부주산을 들이받음이 있겠는가. 또 단단하고 무겁기가 산만 한 것이 없으니 만 사람의 힘으로 함께 작은 산을 밀어도 움직일 수 없다. 부주산은 큰 산이니 그것이 하늘 기둥이라면 꺾기가 본디 어렵고, 기둥이 아니라면 부주산을 들이받아 하늘 기둥이 꺾이게 하였다는 것도 또한 믿기 어렵다. 전욱이 그와 다투는데 천하의 군사를 들고 해내의 무리를 다하여도 당할 수 없었을 것이니 무슨 이기지 못함이 있겠는가!

且夫天者,氣邪?體也?如乎,雲煙無異,安得柱而折之?女媧以石補子,是休也。如審然,天乃玉石之類也。石之質重,千里一柱,不能勝也。如五岳之巔不能上極天,乃為柱。如觸不周,上極天乎?不周為共工所折,當此之時,天毀坏也?如審毀坏,何用舉之?斷鰲之足以立四極,說者曰:「鱉,古之大獸也,四足長大,故斷其足以立四極。」夫不周,山也;鰲,獸也。夫天本以山為柱,共工折之,代以獸足,骨有腐朽,何能立之久?且鰲足可以柱天,體必長大,不容於天地,女媧雖聖,何能殺之?如能殺之,殺之何用?足可以柱天,則皮革如鐵石,刀劍矛戟不能刺之,強弩利矢不能勝射也。

또 무릇 하늘이란 기운인가, 몸인가. 기운이라면 구름과 연기와 다름없으니 어찌 기둥을 얻어 꺾겠는가. 여와가 돌로 하늘을 기웠다 하니 이는 몸이다. 참으로 그렇다면 하늘은 곧 옥과 돌의 무리다. 돌의 바탕은 무거우니 천 리에 한 기둥으로 이길 수 없다. 오악의 꼭대기도 위로 하늘에 다하지 못하는데 곧 기둥이 되겠는가. 부주산을 들이받았다 하니 위로 하늘에 다하였는가. 부주산이 공공에게 꺾였다면 이때 하늘이 헐어 무너졌는가. 참으로 헐어 무너졌다면 무엇으로 들었는가. 자라의 발을 잘라 사극을 세웠다 하니 말하는 이는 「자라는 옛날의 큰 짐승으로 네 발이 길고 크므로 그 발을 잘라 사극을 세웠다」 한다. 무릇 부주는 산이요 자라는 짐승이다. 무릇 하늘이 본디 산으로 기둥을 삼았는데 공공이 꺾자 짐승의 발로 대신하였다면 뼈는 썩음이 있으니 어찌 오래 세울 수 있는가. 또 자라의 발이 하늘을 받칠 수 있다면 몸이 반드시 길고 커서 하늘과 땅에 용납되지 않을 것이니 여와가 비록 성스러워도 어찌 죽일 수 있는가. 죽일 수 있다 하여도 죽여 무엇에 쓰는가. 발이 하늘을 받칠 수 있으면 가죽이 쇠와 돌 같아 칼과 창이 찌를 수 없고 강한 쇠뇌와 날카로운 화살이 쏘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察當今天去地甚高,古天與今無異。當共工缺天之時,天非墜於地也。女媧,人也,人雖長,無及天者。夫其補天之時,何登緣階據而得治之?豈古之天若屋廡之形,去人不遠,故共工得敗之,女媧得補之乎?如審然者,女媧(多)〔已〕前,齒為人者,人皇最先。人皇之時,天如蓋乎?說《易》者曰:「元氣未分,渾沌為一。」儒書又言:「溟,氣未分之類也。及其分離,清者為天,濁者為地。」如說《易》之家、儒書之言,天地始分,形體尚小,相去近也。

살피건대 지금 하늘이 땅에서 떨어짐이 매우 높은데 옛 하늘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공공이 하늘을 이지러뜨릴 때 하늘이 땅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여와는 사람이니 사람이 비록 커도 하늘에 미치는 이가 없다. 무릇 그 하늘을 기울 때 무슨 섬돌을 올라 붙잡고 다스릴 수 있었는가. 어찌 옛날의 하늘이 지붕 같은 꼴이라 사람에게서 멀지 않았으므로 공공이 헐 수 있고 여와가 기울 수 있었는가. 참으로 그렇다면 여와 이전에 이를 갈아 사람 된 이는 인황이 가장 먼저다. 인황 때 하늘이 덮개 같았는가. 「역」을 말하는 이는 「원기가 아직 나뉘지 않아 혼돈하여 하나였다」 한다. 유가의 책에 또 이르기를 「명재는 기운이 아직 나뉘지 않은 무리다. 그것이 나뉘어 떨어짐에 맑은 것이 하늘이 되고 흐린 것이 땅이 되었다」 한다. 「역」을 말하는 집과 유가의 책의 말대로라면 하늘과 땅이 처음 나뉠 때 몸이 아직 작아 서로 떨어짐이 가까웠다.

近則或枕於不周之山,共工得折之,女媧得補之也。含氣之類,無有不長。天地,含氣之自然也;從始立以來,年歲甚多,則天地相去,廣狹遠近,不可復計。儒書之言,殆有所見。然其言觸不周山而折天柱,絕地維,消煉五石補蒼天,斷鰲之足以立四極,猶為虛也。何則?山雖動,共工之力不能折也。豈天地始分之時,山小而人反大乎?何以能觸而折之?以五色石補天,尚可謂五石若葯石治病之狀。至其斷鰲之足以立四極,難論言也。從女媧以來久矣,四極之立自若鰲之足乎?

가까우면 혹 부주산에 베고 있어 공공이 꺾을 수 있고 여와가 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기운을 머금은 무리는 자라지 않는 것이 없다. 하늘과 땅은 기운을 머금은 절로 그러함이니 처음 선 이래 해가 매우 많으니 하늘과 땅이 서로 떨어짐의 넓고 좁고 멀고 가까움을 다시 헤아릴 수 없다. 유가의 책의 말은 아마 본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주산을 들이받아 하늘 기둥을 꺾고 땅의 벼리를 끊으며 오색 돌을 녹여 푸른 하늘을 깁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극을 세웠다는 말은 오히려 헛되다. 어째서인가. 산은 비록 움직여도 공공의 힘으로 꺾을 수 없다. 어찌 하늘과 땅이 처음 나뉠 때 산은 작고 사람은 도리어 컸겠는가. 어떻게 들이받아 꺾을 수 있는가. 오색 돌로 하늘을 기웠다 함은 오히려 다섯 돌이 약석으로 병을 다스리는 모양 같다 할 수 있다. 그 자라의 발을 잘라 사극을 세웠다는 데 이르러는 논하여 말하기 어렵다. 여와 이래로 오래되었는데 사극이 선 것이 자라의 발 그대로인가.

鄒衍之書言:天下有九州,《禹貢》之上所謂九州也;《禹貢》九州,所謂一州也,若《禹貢》以上者九焉。《禹貢》九州,方今天下九州也,在東南隅,名曰赤縣神州。復更有八州。每一州者四海環之,名曰裨海。九州之外,更有瀛海。此言詭異,聞者驚駭,然亦不能實然否,相隨觀讀諷述以談。故虛實之事,并傳世間,真偽不別也。世人惑焉,是以難論。

추연의 책에 말하기를, 천하에 구주가 있으니 「우공」 위에 이른바 구주다. 「우공」의 구주는 이른바 한 주이니 「우공」 같은 것이 위로 아홉이다. 「우공」의 구주는 지금 천하의 구주로 동남 모퉁이에 있어 이름을 적현신주라 한다. 다시 또 여덟 주가 있다. 한 주마다 사해가 둘러 이름을 비해라 한다. 구주 밖에 다시 영해가 있다 한다. 이 말은 괴이하여 듣는 이가 놀라나 또한 실로 그런지 아닌지 알 수 없어 서로 따라 보고 읽고 외어 말한다. 그러므로 헛되고 실다운 일이 아울러 세상에 전해져 참과 거짓이 가려지지 않는다. 세상 사람이 홀리니 이 때문에 논하기 어렵다.

案鄒子之知不過禹。禹之治洪水,以益為佐。禹主治水,益(之)〔主〕記勿。極天之廣,窮地之長,辨四海之外,竟四山之表,三十五國之地,鳥獸草木、金石水土,莫不畢載,不言復有九州。淮南王劉安召術士伍被、左吳之輩,充滿宮殿,作道術之書,論天下之事。《地形》之篇,道異類之物,外國之怪,列三十五國之異,不言更有九州。鄒子行地不若禹、益,聞見不過被、吳,才非聖人,事非天授,安得此言?案禹之《山經》、淮南之《地形》,以察鄒子之書,虛妄之言也。

살피건대 추자의 앎은 우에 지나지 못한다. 우가 홍수를 다스림에 익으로 보좌를 삼았다. 우는 물 다스림을 주관하고 익은 물건 기록을 주관하였다. 하늘의 넓음을 다하고 땅의 긺을 다하며 사해 밖을 가리고 사산 겉을 다하여 서른다섯 나라의 땅과 새·짐승·풀·나무와 쇠·돌·물·흙을 다 싣지 않은 것이 없는데 다시 구주가 있다 말하지 않았다. 회남왕 유안이 술사 오피와 좌오의 무리를 불러 궁전에 가득하여 도술의 책을 짓고 천하의 일을 논하였다. 「지형」 편에 다른 무리의 물건과 외국의 괴이함을 말하고 서른다섯 나라의 다름을 벌였으나 다시 구주가 있다 말하지 않았다. 추자가 땅을 다님이 우·익만 못하고 듣고 봄이 오피·좌오에 지나지 못하며 재주가 성인이 아니요 일이 하늘이 준 것이 아닌데 어찌 이 말을 얻었는가. 우의 「산경」과 회남의 「지형」을 살펴 추자의 책을 살피면 헛되고 망령된 말이다.

太史公曰:「《禹本紀》言河出昆倉,其高三千五百餘里,日月所(於)〔相〕辟隱為光明也,其上有玉泉、華池。今自張騫使大夏之後,窮河源,惡睹《本紀》所謂昆倉者乎?故言九州山川,《尚書》近之矣。至《禹本紀》、《山經》所有怪物,余不敢言也。」夫弗敢言者,謂之虛也。昆倉之高,玉泉、華池,世所共聞,張騫親行無其實。案《禹貢》九州山川怪奇之物、金玉之珍,莫不悉載,不言昆倉山上有玉泉、華池。案太史公之言,《山經》、《禹紀》,虛妄之言。

태사공이 말하였다. 「「우본기」에 하수가 곤륜에서 나오는데 그 높이가 삼천오백 리 남짓이라 해와 달이 서로 피하여 숨어 빛을 밝히며 그 위에 옥천과 화지가 있다 한다. 이제 장건이 대하에 사신 간 뒤로 하수의 근원을 다하였는데 어디서 「본기」의 이른바 곤륜을 보았는가. 그러므로 구주의 산천을 말함에 「상서」가 가깝다. 「우본기」와 「산경」에 있는 괴이한 물건에 이르러는 나는 감히 말하지 않는다.」 무릇 감히 말하지 않는다 함은 헛되다 이르는 것이다. 곤륜의 높음과 옥천·화지는 세상이 함께 듣는 바인데 장건이 몸소 다녀 그 실상이 없었다. 살피건대 「우공」의 구주 산천의 괴이하고 기이한 물건과 금옥의 보배를 다 싣지 않은 것이 없는데 곤륜산 위에 옥천과 화지가 있다 말하지 않았다. 태사공의 말을 살피면 「산경」과 「우기」는 헛되고 망령된 말이다.

凡事難知,是非難測。

무릇 일은 알기 어렵고 옳고 그름은 헤아리기 어렵다.

極為天中,方今天下在(禹)極之南,則天極北必高多民。《禹貢》東漸於海,西被於流沙,此則天地之極際也。日刺徑千里,今從東海之上會稽鄞、〔〕,則察日之初出徑二尺,尚遠之驗也,遠則東方之地尚多,東方之地尚多,則天極之北,天地廣長,不復訾矣。夫如是,鄒衍之言未可非,《禹紀》、《山海》、《淮南地形》未可信也。鄒衍曰:「方今天下在地東南,名赤縣神州。」天極為天中,如方今天下在地東南,視極當在西北。今正在北方,今天下在極南也。以極言之,不在東南,鄒衍之言非也。如在東南,近日所出,日如出時,其光宜大。今從東海上察日,及從流沙之地視日,小大同也。相去萬里,小大不變,方今天下得地之廣少矣。雒陽,九州之中也,從雒陽北顧,極正在北。東海之上,去雒陽三千里,視極亦在北。推此以度,從流沙之地,視極亦必復在北焉。東海、流沙,九州東西之際也,相去萬里,視極猶在北者,地小居狹,未能辟離極也。日南之郡,去雒且萬里。徙民還者,問之,言日中之時,所居之地,未能在日南也。度之復南萬里,日在日〔南〕之南,是則去雒陽二萬里,乃為日南也。

북극이 하늘의 가운데인데 지금 천하가 북극의 남쪽에 있으니 북극 북쪽에 반드시 높은 곳에 백성이 많을 것이다. 「우공」에 동으로 바다에 이르고 서로 유사에 미친다 하니 이는 곧 하늘과 땅의 끝이다. 해의 지름이 천 리인데 이제 동해 위 회계 은현에서 해가 처음 나올 때의 지름을 살피면 두 자이니 오히려 멀다는 증험이다. 멀면 동방의 땅이 오히려 많고 동방의 땅이 오히려 많으면 북극의 북쪽으로 하늘과 땅이 넓고 길어 다시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하면 추연의 말을 그르다 할 수 없고 「우기」·「산해」·「회남 지형」을 믿을 수 없다. 추연이 말하였다. 「지금 천하는 땅의 동남에 있어 적현신주라 이름한다.」 북극이 하늘의 가운데니 지금 천하가 땅의 동남에 있다면 북극을 보매 마땅히 서북에 있어야 한다. 이제 바로 북쪽에 있으니 지금 천하는 북극의 남쪽에 있다. 북극으로 말하면 동남에 있지 않으니 추연의 말은 그르다. 동남에 있다면 해 뜨는 곳에 가까우니 해가 나올 때 그 빛이 마땅히 커야 한다. 이제 동해 위에서 해를 살피고 유사의 땅에서 해를 보면 크고 작음이 같다. 서로 떨어짐이 만 리인데 크고 작음이 변하지 않으니 지금 천하가 얻은 땅의 넓이는 적다. 낙양은 구주의 가운데인데 낙양에서 북을 돌아보면 북극이 바로 북에 있다. 동해 위는 낙양에서 삼천 리인데 북극을 보아도 북에 있다. 이를 미루어 헤아리면 유사의 땅에서 북극을 보아도 반드시 또 북에 있을 것이다. 동해와 유사는 구주 동서의 끝이라 서로 떨어짐이 만 리인데 북극을 봄이 오히려 북에 있는 것은 땅이 작고 사는 데가 좁아 북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남군은 낙양에서 거의 만 리다. 옮겨 갔다 돌아온 백성에게 물으니 해가 한가운데일 때 사는 땅이 아직 해의 남쪽에 있지 못하다 말한다. 헤아려 다시 남으로 만 리 가면 해가 일남의 남쪽에 있으니 이는 곧 낙양에서 이만 리라야 곧 일남이 된다.

今從雒地察日之去遠近,非與極同也,極為遠也。今欲北行三萬里,未能至極下也。假令之至,是則名為距極下也。以至日南五萬里,極北亦五萬里也。極北亦五萬里,極東西亦皆五萬里焉。東西十萬,南北十萬,相承百萬里。鄒衍之言:「天地之間,有若天下者九。」案周時九州,東西五千里,南北亦五千里。五五二十五,一州者二萬五千里。天下若此九之乘二萬五千里。二十二萬五千里。如鄒衍之書,若謂之多,計度驗實,反為少焉。

이제 낙양 땅에서 해의 멀고 가까움을 살피면 북극과 같지 않으니 북극이 멀다. 이제 북으로 삼만 리를 가려 하여도 북극 아래에 이를 수 없다. 가령 이른다면 이는 곧 북극 아래에 이르렀다 이름한다. 일남에 이르기까지 오만 리니 북극까지 북으로도 오만 리다. 북극까지 북으로 오만 리면 북극의 동서도 다 오만 리다. 동서 십만, 남북 십만이니 서로 이어 백만 리다. 추연의 말에 「하늘과 땅 사이에 천하 같은 것이 아홉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주나라 때 구주는 동서 오천 리요 남북도 오천 리다. 오오 이십오니 한 주는 이만오천 리다. 천하가 이 아홉 곱 이만오천 리이니 이십이만오천 리다. 추연의 책대로라면 많다 하겠으나 헤아려 실상을 증험하면 도리어 적다.

儒者曰:「天,氣也,故其去人不遠。人有是非,陰為德害,天輒知之,又輒應之,近人之效也。」如實論之,天體非氣也。人生於天,何嫌天無氣?猶有體在上,與人相遠。秘傳或言天之離天下六萬餘里,數家計之,三百六十五度一周天。

유자가 말한다. 「하늘은 기운이므로 그 사람에게서 떨어짐이 멀지 않다. 사람에게 옳고 그름이 있어 몰래 덕과 해를 하면 하늘이 곧 알고 또 곧 응하니 사람에 가까운 보람이다.」 실상을 논하면 하늘의 몸은 기운이 아니다. 사람이 하늘에서 났는데 하늘에 기운이 없다고 어찌 혐의하겠는가. 오히려 몸이 위에 있어 사람과 서로 멀다. 비전에 더러 하늘이 천하에서 떨어짐이 육만 리 남짓이라 하고 수가가 헤아림에 삼백육십오 도가 하늘 한 바퀴라 한다.

下有周度,高有里數。如天審氣,氣如雲煙,安得里、度?又以二十八宿效之,二十八宿為日月舍,猶地有郵亭為長吏廨矣。郵亭著地,亦如星舍著天也。案附書者,天有形體,所據不虛。(猶)〔由〕此考之,則無恍惚,明矣。

아래에 도수가 있고 높이에 리 수가 있다. 하늘이 참으로 기운이라면 기운은 구름과 연기 같으니 어찌 리와 도가 있겠는가. 또 이십팔수로 증험하면 이십팔수는 해와 달의 집이니 땅에 우정이 있어 장리의 관사가 되는 것과 같다. 우정이 땅에 붙어 있음은 또한 별의 집이 하늘에 붙어 있음과 같다. 살피건대 책을 붙인 이는 하늘에 형체가 있어 근거한 바가 헛되지 않다. 이로써 살피면 황홀함이 없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