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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日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33 · 한자 5,835자 · 낭독 23.3분

「논형」 설일편 「說日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儒者曰:「日朝見,出陰中;暮不見,入陰中。陰氣晦冥,故沒不見。」如實論之,不出入陰中。何以效之?夫夜,陰也,氣亦晦冥,或夜舉火者,光不滅焉。夜之陰,北方之陰也,朝出(日)〔暮〕入,所舉之火也。火夜舉,光不滅,日暮入,獨不見,非氣驗也。夫觀冬日之出入,朝出東南,暮入西南,東南西南非陰,何故謂之出入陰中?且夫星小猶見,日大反滅,世儒之論,竟虛妄也。

유자가 말한다. 「해가 아침에 보이는 것은 음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요 저녁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음 가운데로 드는 것이다. 음의 기운이 어두우므로 잠겨 보이지 않는다.」 실상을 논하면 음 가운데로 드나들지 않는다. 무엇으로 살피는가. 무릇 밤은 음이라 기운이 또한 어두운데 더러 밤에 불을 들면 빛이 꺼지지 않는다. 밤의 음은 북방의 음이니 아침에 나오고 저녁에 드는 것은 든 불이다. 불을 밤에 들면 빛이 꺼지지 않는데 해가 저녁에 들면 홀로 보이지 않으니 기운 때문이라는 증험이 아니다. 무릇 겨울 해의 드나듦을 보면 아침에 동남에서 나와 저녁에 서남으로 드니 동남과 서남은 음이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음 가운데로 드나든다 하는가. 또 무릇 별은 작아도 오히려 보이는데 해는 큰데 도리어 꺼진다니 세상 유자의 논은 끝내 헛되고 망령되다.

儒者曰:「冬日短,夏日長,亦復以陰陽。夏時陽氣多,陰氣少,陽氣光明,與日同耀,故日出輒無鄣蔽。冬陰氣晦冥,掩日之光,日雖出,猶隱不見,故冬日日短,陰多陽少,與夏相反。」如實論之,日之長短,不以陰陽。

유자가 말한다. 「겨울 해는 짧고 여름 해는 긴 것도 또한 음양 때문이다. 여름에는 양의 기운이 많고 음의 기운이 적어 양의 기운이 밝아 해와 함께 빛나므로 해가 나오면 곧 가림이 없다. 겨울에는 음의 기운이 어두워 해의 빛을 가려 해가 비록 나와도 오히려 숨어 보이지 않으므로 겨울 해는 해가 짧으니 음이 많고 양이 적어 여름과 서로 반대다.」 실상을 논하면 해의 길고 짧음은 음양 때문이 아니다.

何以驗之?復以北方之星。北方之陰,日之陰也,北方之陰,不蔽星光,冬日之陰,何故(猶)〔獨〕滅日明?由此言之,以陰陽說者,失其實矣。實者,夏時日在東井,冬時日在牽牛,牽牛去極遠,故日道短,東井近極,故日道長。夏北至東井,冬南至牽牛,故冬夏節極,皆謂之至,春秋未至,故謂之分。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다시 북방의 별로 한다. 북방의 음은 해의 음이니 북방의 음이 별빛을 가리지 않는데 겨울 해의 음은 무슨 까닭으로 홀로 해의 밝음을 꺼뜨리는가. 이로써 말하면 음양으로 말하는 이는 그 실상을 잃었다. 실상은 여름에 해가 동정에 있고 겨울에 해가 견우에 있는데 견우는 북극에서 머니 해의 길이 짧고 동정은 북극에 가까우니 해의 길이 길다. 여름에 북으로 동정에 이르고 겨울에 남으로 견우에 이르므로 겨울과 여름의 절기의 끝을 다 지(至)라 하고 봄과 가을은 이르지 않으므로 분(分)이라 한다.

或曰:「夏時陽氣盛,陽氣在南方,故天舉而高;冬時陽氣衰,天抑而下。高則日道多,故日長;下則日道少,故日短也。」(日)〔曰〕:陽氣盛,天南方舉而日道長,月亦當復長。案夏日長之時,日出東北,而月出東南;冬日短之時,日出東南,月出東北。如夏時天舉南方,日月當俱出東北,冬時天復下,日月亦當俱出東南。由此言之,夏時天不舉南方,冬時天不抑下也。然則夏日之長也,其所出之星在北方也;冬日之短也,其所出之星在南方也。問曰:「當夏五月日長之時在東井,東井近極,故日道長,今案察五月之時,日出於寅,入於戌。日道長,去人遠,何以得見其出於寅入於戌乎?」日東井之時,去人極近。夫東井近極,若極旋轉,人常見之矣。使東井在極旁側,得無夜常為晝乎?日晝行十六分,人常見之,不復出入焉。儒者或曰:「日月有九道,故曰日行有近遠,晝夜有長短也。」夫復五月之時,晝十一分,夜五分;六月,晝十分,夜六分;從六月往至十一月,月減一分:此則日行月從一分道也,歲日行天十六道也,豈徒九道?

어떤 이는 말한다. 「여름에는 양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이 남방에 있으므로 하늘이 들려 높고, 겨울에는 양의 기운이 쇠하여 하늘이 눌려 낮다. 높으면 해의 길이 많으므로 해가 길고 낮으면 해의 길이 적으므로 해가 짧다.」 답한다. 양의 기운이 성하여 하늘이 남방에서 들려 해의 길이 길다면 달도 마땅히 또 길어야 한다. 살피건대 여름 해가 길 때 해는 동북에서 나오고 달은 동남에서 나오며, 겨울 해가 짧을 때 해는 동남에서 나오고 달은 동북에서 나온다. 여름에 하늘이 남방에서 들린다면 해와 달이 마땅히 함께 동북에서 나와야 하고, 겨울에 하늘이 다시 낮아지면 해와 달도 마땅히 함께 동남에서 나와야 한다. 이로써 말하면 여름에 하늘이 남방에서 들리지 않고 겨울에 하늘이 눌려 낮아지지 않는다. 그러니 여름 해가 긴 것은 그 나오는 별이 북방에 있어서요, 겨울 해가 짧은 것은 그 나오는 별이 남방에 있어서다. 묻는다. 「여름 오월 해가 길 때 동정에 있고 동정은 북극에 가까우므로 해의 길이 긴데, 이제 오월 때를 살피면 해가 인에서 나와 술로 든다. 해의 길이 길어 사람에게서 멀다면 무엇으로 그것이 인에서 나와 술로 드는 것을 볼 수 있는가?」 해가 동정에 있을 때 사람에게서 지극히 가깝다. 무릇 동정이 북극에 가까우니 북극처럼 돌면 사람이 늘 보았을 것이다. 동정이 북극 곁에 있다면 밤이 늘 낮이 되지 않겠는가. 해가 낮에 열여섯 분을 다니면 사람이 늘 보아 다시 드나들지 않을 것이다. 유자는 더러 말한다. 「해와 달에 아홉 길이 있으므로 해의 다님에 가깝고 멂이 있고 낮과 밤에 길고 짧음이 있다.」 무릇 다시 오월 때는 낮이 열한 분이요 밤이 다섯 분이며, 유월은 낮이 열 분이요 밤이 여섯 분이니, 유월에서 십일월까지 달마다 한 분씩 준다. 이는 곧 해의 다님이 달마다 한 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니 한 해에 해가 하늘을 열여섯 길 다니는데 어찌 한갓 아홉 길이겠는가.

或曰:「天高南方下北方,日出高故見,入下故不見,天之居若倚蓋矣,故極在人之北,是其效也。極其天下之中,今在人北,其若倚蓋,明矣。」日明既以倚蓋喻,當若蓋之形也;極星在上之北,若蓋之葆矣;其下之南,有若蓋之莖者,正何所乎?夫取蓋倚於地不能運,立而樹之然後能轉。今天運轉,其北際不著地者,觸礙何以能行?由此言之,天不若倚蓋之狀,日之出入不隨天高下,明矣。

어떤 이는 말한다. 「하늘은 남방이 높고 북방이 낮아 해가 높이 나오므로 보이고 낮게 들므로 보이지 않으니, 하늘의 자리는 기울인 덮개 같으므로 북극이 사람의 북쪽에 있는 것이 그 보람이다. 북극은 하늘의 가운데인데 이제 사람의 북쪽에 있으니 그것이 기울인 덮개 같음이 분명하다.」 해의 밝음을 이미 기울인 덮개로 비유하였으니 마땅히 덮개의 꼴 같아야 한다. 북극성이 위의 북쪽에 있으니 덮개의 꼭지 같다면 그 아래 남쪽에 덮개의 자루 같은 것이 바로 어디에 있는가. 무릇 덮개를 가져다 땅에 기울이면 돌릴 수 없고 세워 꽂은 뒤에야 돌 수 있다. 이제 하늘이 돌아 움직이는데 그 북쪽 끝이 땅에 닿지 않는다면 부딪쳐 걸려 어찌 다닐 수 있는가. 이로써 말하면 하늘은 기울인 덮개의 모양 같지 않고 해의 드나듦은 하늘의 높고 낮음을 따르지 않음이 분명하다.

或曰:「天北際下地中,日隨天而入地,地密鄣隱,故人不見。」然天地,夫婦也,合為一體。天在地中,地與天合,天地并氣,故能生物。北方陰也,合體并氣,故居北方。天運行於地中乎,不則北方之地低下而不平也。如審運行地中,鑿地一丈,轉見水源,天行地中,出入水中乎,如北方低下不平,是則九川北注,不得盈滿也。實者,天不在地中,日亦不隨天隱,天平正與地無異。然而日出上日入下者,隨天轉運,視天若覆盆之狀,故視日上下然,似若出入地中矣。然則日之出,近也,其入遠,不復見,故謂之入,運見於東方近,故謂之出。何以驗之?繫明月之珠於車蓋之,轉而旋之,明月之珠旋邪?

어떤 이는 말한다. 「하늘의 북쪽 끝이 땅속으로 내려가 해가 하늘을 따라 땅에 드니 땅이 빽빽이 가리므로 사람이 보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부부라 합하여 한 몸이 된다. 하늘이 땅속에 있고 땅이 하늘과 합하여 하늘과 땅이 기운을 아우르므로 물건을 낳을 수 있다. 북방은 음이니 몸을 합하고 기운을 아우르므로 북방에 있다. 하늘이 땅속을 돌아 다니는가, 아니면 북방의 땅이 낮아 평평하지 않은가. 참으로 땅속을 돌아 다닌다면 땅을 한 길 파면 곧 물의 근원이 보이니 하늘이 땅속을 다니면 물속을 드나드는가. 북방이 낮아 평평하지 않다면 이는 곧 아홉 내가 북으로 흘러 가득 찰 수 없을 것이다. 실상은 하늘이 땅속에 있지 않고 해도 하늘을 따라 숨지 않으며 하늘은 평평하고 바르기가 땅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해가 위로 나오고 아래로 드는 것은 하늘의 돌아 움직임을 따르는데 하늘을 봄이 엎은 동이 모양 같으므로 해를 봄이 위아래로 그러하여 땅속을 드나드는 것 같다. 그러니 해의 나옴은 가까움이요 그 듦은 멀어 다시 보이지 않으므로 든다 하고 돌아 동방에 가까이 보이므로 나온다 한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명월주를 수레 덮개 위에 매어 돌려 굴리면 명월주가 드나드는가.

人望不過十里,天地合矣,遠非合也。今視日入,非入也,亦遠也。當日入西方之時,其下民亦將謂之日中,從日入之下東望今之天下,或時亦天地合,如是方〔今〕天下在南方也,故日出於東方入於北方之地,日出北方,入於南方,各於近者為出,遠者為入,實者不入遠矣。臨大澤之濱,望四邊之際與天屬,其實不屬,遠若屬矣。日以遠為入,澤以遠為屬,其實一也。澤際有陸,人望而不見,陸在,察之若(望)〔亡〕,日亦在,視之若入。皆遠之故也。太山之高,參天入雲,去之百里,不見塊。夫去百里,不見太山,況日去人以萬里數乎?太山之險,則既明矣,試使一人把大炬火夜行於道,平易無險,去人不一里,火光滅矣,非滅也,遠也。

사람이 바라봄이 십 리를 넘지 못하니 하늘과 땅이 합한 것 같으나 멀어서지 합한 것이 아니다. 이제 해가 드는 것을 보면 드는 것이 아니라 또한 먼 것이다. 해가 서방으로 들 때 그 아래 백성도 또한 해가 한가운데라 할 것이니 해가 드는 아래에서 동으로 지금의 천하를 바라보면 혹 때로 또한 하늘과 땅이 합한 것 같다. 이와 같이 지금 천하가 남방에 있으므로 해가 동방에서 나와 북방의 땅으로 든다 하는데, 해가 북방에서 나와 남방으로 들면 저마다 가까운 데를 나옴으로 삼고 먼 데를 듦으로 삼으니 실상은 들지 않고 먼 것이다. 큰 못 가에 임하여 사방 끝을 바라보면 하늘과 붙은 것 같으나 실은 붙지 않고 멀어서 붙은 것 같다. 해는 멂을 듦으로 삼고 못은 멂을 붙음으로 삼으니 그 실상은 하나다. 못 끝에 뭍이 있어 사람이 바라보아도 보지 못하니 뭍이 있어도 살피면 없는 것 같고 해도 있어도 보면 든 것 같다. 다 먼 까닭이다. 태산의 높음은 하늘을 찌르고 구름에 드는데 백 리를 떠나면 덩어리가 보이지 않는다. 무릇 백 리를 떠나면 태산이 보이지 않는데 하물며 해가 사람에게서 떨어짐이 만 리로 헤아림에랴. 태산의 험함은 이미 밝다. 시험 삼아 한 사람에게 큰 횃불을 잡고 밤에 길을 가게 하면 평탄하여 험함이 없어도 사람에게서 일 리도 안 떨어져 불빛이 꺼진다. 꺼진 것이 아니라 먼 것이다.

今日西轉不復見者,非入也。問曰:「天平正與地無異,今仰視天,觀日月之行,天高南方下北方,何也?」曰:方今天下在東南之上,視天若高,日月道在人之南,今天下在日月道下,故觀日月之行,若高南下北也。何以驗之?即天高,南方之星亦當高,今視南方之星低下,天復低南方乎?夫視天之居近者則高,遠則下焉,極北方之民以為高,南方為下,極東極西,亦如此焉。皆以近者為高,遠者為下。從北塞下近仰視斗極,且在人上。匈奴之北,地之邊陲,北上視天,天復高北下南,日月之道,亦在其上。立太山之上,太山高,去下十里,太山下。夫天之高下,猶人之察太山也。平正,四方中央高下皆同,今望天之四邊若下者,非也,遠也。非徒下,若合矣。

이제 해가 서로 돌아 다시 보이지 않는 것은 든 것이 아니다. 묻는다. 「하늘이 평평하고 바르기가 땅과 다름이 없다면 이제 하늘을 우러러 해와 달의 다님을 보면 하늘이 남방이 높고 북방이 낮은 것은 어째서인가?」 답한다. 지금 천하는 동남 위에 있어 하늘을 봄이 높은 것 같고 해와 달의 길은 사람의 남쪽에 있으니 지금 천하는 해와 달의 길 아래에 있으므로 해와 달의 다님을 보면 남이 높고 북이 낮은 것 같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곧 하늘이 높으면 남방의 별도 마땅히 높아야 하는데 이제 남방의 별을 보면 낮으니 하늘이 다시 남방이 낮은가. 무릇 하늘의 자리를 봄에 가까운 것은 높고 먼 것은 낮으니 북극 북방의 백성은 높다 여기고 남방을 낮다 여기며 동쪽 끝과 서쪽 끝도 이와 같다. 다 가까운 것을 높다 하고 먼 것을 낮다 한다. 북쪽 변방 아래에서 가까이 두성과 북극을 우러러보면 바로 사람 위에 있다. 흉노의 북쪽은 땅의 변두리인데 북으로 올라가 하늘을 보면 하늘이 다시 북이 높고 남이 낮으며 해와 달의 길도 그 위에 있다. 태산 위에 서면 태산이 높으나 아래로 십 리를 떠나면 태산이 낮다. 무릇 하늘의 높고 낮음은 사람이 태산을 살핌과 같다. 평평하고 바르니 사방과 중앙의 높고 낮음이 다 같은데 이제 하늘의 사방 가를 바라보아 낮은 것 같음은 낮은 것이 아니라 먼 것이다. 한갓 낮을 뿐 아니라 합한 것 같다.

儒者或以旦暮日出入為近,日中為遠。或以日中為近,日出入為遠。

유자는 더러 아침저녁 해가 드나듦을 가깝다 하고 한낮을 멀다 한다. 더러는 한낮을 가깝다 하고 해가 드나듦을 멀다 한다.

其以日出入為近,日中為遠者,見日出入時大,日中時小也。察物近則大,遠則小,故日出入為近,日中為遠也。其以日出入為遠,日中時為近者,見日中時溫,日出入時寒也。夫火光近人則溫,遠人則寒,故以日中為近,日出入為遠也。二論各有所見,故是非曲直未有所定。如實論之,日中近而日出入遠,何以驗之?以植竿於屋下,夫屋高三丈,竿於屋棟之下,正而樹之,上扣棟,下抵地,是以屋棟去地三丈。如旁邪倚之,則竿末旁跌,不得扣棟,是為去地過三丈也。日中時,日正在天上,猶竿之正樹,去地三丈也。日出入,邪在人旁,猶竿之旁跌,去地過三丈也。夫如是,日中為近,出入為遠,可知明矣。試復以屋中堂而坐一人,一人行於屋上,其行中屋之時,正在坐人之上,是為屋上之人,與屋下坐人,相去三丈矣。如屋上人在東危若西危上,其與屋下坐人,相去過三丈矣。日中時猶人正在屋上矣,其始出與入,猶人在東危與西危也。日中去人近故溫,日出入遠故寒。然則日中時日小,其出入時大者,日中光明故小,其出入時光暗故大,猶晝日察火光小,夜察之火光大也。既以火為效,又以星為驗,晝日星不見者,光耀滅之也,夜無光耀,星乃見。夫日月,星之類也。平旦日入光銷,故視大也。

해가 드나듦을 가깝다 하고 한낮을 멀다 하는 이는 해가 드나들 때 크고 한낮에 작음을 본 것이다. 물건을 살핌에 가까우면 크고 멀면 작으므로 해가 드나듦을 가깝다 하고 한낮을 멀다 한다. 해가 드나듦을 멀다 하고 한낮을 가깝다 하는 이는 한낮에 따뜻하고 해가 드나들 때 추움을 본 것이다. 무릇 불빛은 사람에게 가까우면 따뜻하고 사람에게서 멀면 추우므로 한낮을 가깝다 하고 해가 드나듦을 멀다 한다. 두 논이 저마다 본 바가 있으므로 옳고 그름과 굽고 곧음이 정해진 바가 없다. 실상을 논하면 한낮이 가깝고 해가 드나듦이 머니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장대를 집 아래에 세움으로 한다. 무릇 집 높이가 세 길인데 장대를 집 마룻대 아래에 바로 세워 위로 마룻대에 닿고 아래로 땅에 닿으면 이는 집 마룻대가 땅에서 세 길 떨어진 것이다.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면 장대 끝이 옆으로 미끄러져 마룻대에 닿지 못하니 이는 땅에서 떨어짐이 세 길을 넘는 것이다. 한낮에 해가 바로 하늘 위에 있음은 장대를 바로 세워 땅에서 세 길 떨어짐과 같다. 해가 드나들며 비스듬히 사람 곁에 있음은 장대가 옆으로 미끄러져 땅에서 떨어짐이 세 길을 넘음과 같다. 이러하니 한낮이 가깝고 드나듦이 멂을 알 수 있어 분명하다. 시험 삼아 다시 집 가운데 마루에 한 사람이 앉고 한 사람이 집 위를 다니는데 그 다님이 집 가운데일 때 바로 앉은 사람 위에 있으니 이는 집 위의 사람과 집 아래 앉은 사람이 서로 떨어짐이 세 길이다. 집 위의 사람이 동쪽 처마나 서쪽 처마 위에 있으면 집 아래 앉은 사람과 서로 떨어짐이 세 길을 넘는다. 한낮은 사람이 바로 집 위에 있음과 같고 그 처음 나오고 듦은 사람이 동쪽 처마와 서쪽 처마에 있음과 같다. 한낮에 사람에게서 가까우므로 따뜻하고 해가 드나들 때 멀므로 춥다. 그러니 한낮에 해가 작고 드나들 때 큰 것은 한낮에 빛이 밝으므로 작고 드나들 때 빛이 어두우므로 크니, 낮에 불빛을 살피면 작고 밤에 살피면 불빛이 큰 것과 같다. 이미 불로 증험하고 또 별로 증험하니 낮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은 빛이 꺼뜨리기 때문이요 밤에 빛이 없으니 별이 곧 보인다. 무릇 해와 달은 별의 무리다. 새벽과 해 질 때 빛이 사그라지므로 보면 크다.

儒者論日旦出扶桑,暮入細柳。扶桑,東方地;細柳,西方野也。

유자는 해가 아침에 부상에서 나와 저녁에 세류로 든다 논한다. 부상은 동방의 땅이요 세류는 서방의 들이다.

桑、柳,天地之際,日月常所出入之處。問曰:歲二月八月時,日出正東,日入正西,可謂日出於扶桑,入於細柳。今夏日長之時,日出於東北,入於西北,冬日短之時,日出東南,入於西南,冬與夏日之出入,在於四隅,扶桑、細柳,正在何所乎?所論之言,猶謂春秋,不謂冬與夏也。如實論之,日不出於扶桑,入於細柳。何以驗之?隨天而轉,近則見,遠則不見。當在扶桑、細柳之時,從扶桑、細柳之民,謂之日中之時,從扶桑、細柳察之,或時為日出入,(若)〔皆〕以其上者為中,旁則為旦夕,安得出於扶桑入細柳?儒者論曰:天左旋,日月之行,不繫於天,各自旋轉。

부상과 세류는 하늘과 땅의 끝이라 해와 달이 늘 드나드는 곳이라 한다. 묻는다. 한 해에 이월과 팔월 때 해가 바로 동에서 나와 바로 서로 드니 해가 부상에서 나와 세류로 든다 할 수 있다. 이제 여름 해가 길 때 해가 동북에서 나와 서북으로 들고 겨울 해가 짧을 때 해가 동남에서 나와 서남으로 드니 겨울과 여름 해의 드나듦이 네 모퉁이에 있는데 부상과 세류는 바로 어디에 있는가. 논한 말은 봄과 가을을 이른 것과 같고 겨울과 여름을 이른 것이 아니다. 실상을 논하면 해는 부상에서 나오지 않고 세류로 들지 않는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하늘을 따라 도니 가까우면 보이고 멀면 보이지 않는다. 부상과 세류에 있을 때 부상과 세류의 백성으로부터는 한낮이라 할 것이니 부상과 세류에서 살피면 혹 때로 해가 드나드는 것이 되어 다 그 위에 있는 것을 가운데로 삼고 곁을 아침저녁으로 삼으니 어찌 부상에서 나와 세류로 들겠는가. 유자가 논하여 말한다.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해와 달의 다님은 하늘에 매이지 않아 저마다 절로 돈다.

難之曰:使日月自行,不繫於天,日行一度,月行十三度,當日月出時,當進而東旋,何還始西轉?繫於天,隨天四時轉行也。其喻若蟻行於上,日月行遲天行疾,天持日月轉,故日月實東行,而反西旋也。

따져 말한다. 해와 달이 절로 다니고 하늘에 매이지 않아 해가 한 도를 다니고 달이 열세 도를 다닌다면, 해와 달이 나올 때 마땅히 나아가 동으로 돌 것인데 어찌 도리어 처음처럼 서로 도는가. 하늘에 매여 하늘을 따라 사철 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 비유는 개미가 맷돌 위를 다니는 것과 같으니 해와 달의 다님은 더디고 하늘의 다님은 빨라 하늘이 해와 달을 가지고 도니 해와 달이 실은 동으로 다니나 도리어 서로 돈다.

或問:「日、月、天皆行,行度不同,三者舒疾,驗之人物,(為)〔何〕以(何)〔為〕喻?」

어떤 이가 묻는다. 「해와 달과 하늘이 다 다니는데 다니는 도수가 같지 않으니 셋의 더디고 빠름을 사람과 물건으로 증험하면 무엇으로 비유하는가?」

曰:天,日行一周。日行一度二千里,日晝行千里,行千里,(麒麟)〔騏驥〕晝日亦行千里。然則日行舒疾,與(麒麟)〔騏驥〕之步相似類也。月行十三度,十度二萬里,三度六千里,月一(旦)〔日〕〔一〕夜行二萬六千里,與晨鳧飛相類似也。

답한다. 하늘은 하루에 한 바퀴 다닌다. 해는 한 도 이천 리를 다니니 해가 낮에 천 리를 다니고 천 리를 다님은 천리마가 낮에 또한 천 리를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러니 해의 다님이 더디고 빠름은 천리마의 걸음과 서로 비슷한 무리다. 달은 열세 도를 다니니 열 도는 이만 리요 세 도는 육천 리라 달이 하루 낮 하룻밤에 이만육천 리를 다니니 새벽 오리가 나는 것과 서로 비슷하다.

天行三百六十五度,積凡七十三萬里也,其行甚疾,無以為驗,當與陶鈞之運,弩矢之流,相類似乎!天行已疾,去人高遠,視之若遲,蓋望遠物者,動若不動,行若不行。何以驗之?乘船江海之中,順風而驅,近岸則行疾,遠岸則行遲,船行一實也,或疾或遲,遠近之視,使之然也。仰視天之運,不若(麒麟)〔騏驥〕負日而馳,(皆)〔比〕〔日〕暮而日在其前,

하늘은 삼백육십오 도를 다니니 쌓으면 모두 칠십삼만 리라 그 다님이 매우 빨라 증험할 것이 없으니 마땅히 도균의 돎과 쇠뇌 화살의 흐름과 서로 비슷할 것이다! 하늘의 다님이 이미 빠른데 사람에게서 떨어짐이 높고 멀어 보면 더딘 것 같으니, 무릇 먼 물건을 바라보면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다녀도 다니지 않는 것 같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배를 타고 강과 바다 가운데서 바람을 따라 달리면 언덕에 가까우면 다님이 빠르고 언덕에서 멀면 다님이 더디니, 배의 다님은 한 실상이나 혹 빠르고 혹 더딘 것은 멀고 가까운 봄이 그렇게 한 것이다. 하늘의 돎을 우러러보면 천리마가 해를 지고 달리는 것만 못하니 해 질 때에 견주면 해가 그 앞에 있다.

何則?(麒麟)〔騏驥〕近而日遠也。遠則若遲,近則若疾,六萬里之程,難以得運行之實也。

어째서인가. 천리마는 가깝고 해는 멀기 때문이다. 멀면 더딘 것 같고 가까우면 빠른 것 같으니 육만 리의 길에서 돌아 다니는 실상을 얻기 어렵다.

儒者說曰:「日行一度,天一日一夜行三百六十五度,天左行,日月右行,與天相迎。」問:日月之行也,繫著於天也,日月附天而行,不(直)〔自〕行也。何以言之?《易》曰:「日月星辰麗乎天,百果草木麗於土。」麗者,附也。附天所行,若人附地而圓行,其取喻若蟻行於上焉。問曰:「何知不離天直自行也?」如日能直自行,當自東行,無為隨天而西轉也。月行與日同,亦皆附天。何以驗之?驗之(似)〔以〕雲。雲不附天,常止於所處,使不附天,亦當自止其處。由此言之,日行附天明矣。

유자가 말한다. 「해는 한 도를 다니고 하늘은 하루 낮 하룻밤에 삼백육십오 도를 다니니 하늘은 왼쪽으로 다니고 해와 달은 오른쪽으로 다녀 하늘과 서로 맞이한다.」 묻는다. 해와 달의 다님은 하늘에 매여 붙어 있으니 해와 달은 하늘에 붙어 다니지 스스로 다니지 않는다. 어찌 그리 말하는가. 「역」에 이르기를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붙고 온갖 열매와 풀과 나무는 흙에 붙는다」 하였다. 려(麗)는 붙음이다. 하늘에 붙어 다니는 바는 사람이 땅에 붙어 둥글게 다니는 것과 같으니 그 비유를 취하면 개미가 맷돌 위를 다니는 것과 같다. 묻는다. 「하늘을 떠나 바로 스스로 다니지 않음을 어찌 아는가?」 해가 바로 스스로 다닐 수 있다면 마땅히 스스로 동으로 다닐 것이지 하늘을 따라 서로 돌 까닭이 없다. 달의 다님은 해와 같으니 또한 다 하늘에 붙는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구름으로 증험한다. 구름은 하늘에 붙지 않아 늘 있는 곳에 머무니 하늘에 붙지 않으면 또한 마땅히 스스로 그 곳에 머물 것이다. 이로써 말하면 해의 다님이 하늘에 붙음이 분명하다.

問曰:「日,火也。火在地不行,日在天,何以為行?」曰:附天之氣行,附地之氣不行。火附地,地不行,故火不行。難曰:「附地之氣不行,水何以行?」曰:水之行也,東流入海也。

묻는다. 「해는 불이다. 불은 땅에 있어 다니지 않는데 해는 하늘에 있어 어찌 다니는가?」 답한다. 하늘에 붙은 기운은 다니고 땅에 붙은 기운은 다니지 않는다. 불은 땅에 붙어 땅이 다니지 않으므로 불이 다니지 않는다. 따져 말한다. 「땅에 붙은 기운이 다니지 않는다면 물은 어찌 다니는가?」 답한다. 물의 다님은 동으로 흘러 바다에 드는 것이다.

西北方高,東南方下,水性歸下,猶火性趨高也。使地不高西方,則水亦不東流。難曰:「附地之氣不行,人附地何以行?」曰:人之行,求有為也。人道有為,故行求。古者質朴,鄰國接境,雞犬之聲相聞,終身不相往來焉。難曰:「附天之氣行,列星亦何以不行?」曰:列星著天,天已行也,隨天而轉,是亦行也。難曰:「人道有為故行,天道無為何行?」曰:天之行也,施氣自然也,施氣則物自生,非故施氣以生物也。不動,氣不施,氣不施,物不生,與人行異。日月五星之行,皆施氣焉。

서북방은 높고 동남방은 낮으니 물의 성품은 아래로 돌아가는데 불의 성품이 높은 데로 달리는 것과 같다. 땅이 서방이 높지 않으면 물도 동으로 흐르지 않는다. 따져 말한다. 「땅에 붙은 기운이 다니지 않는다면 사람은 땅에 붙어 어찌 다니는가?」 답한다. 사람의 다님은 함이 있음을 구하는 것이다. 사람의 도는 함이 있으므로 다니며 구한다. 옛날에는 질박하여 이웃 나라가 경계를 접하여 닭과 개 소리가 서로 들려도 종신토록 서로 오가지 않았다. 따져 말한다. 「하늘에 붙은 기운이 다닌다면 뭇별은 또한 어찌 다니지 않는가?」 답한다. 뭇별은 하늘에 붙어 하늘이 이미 다니니 하늘을 따라 도는 것도 다니는 것이다. 따져 말한다. 「사람의 도는 함이 있으므로 다니는데 하늘의 도는 함이 없는데 어찌 다니는가?」 답한다. 하늘의 다님은 기운을 베풂이 절로 그러함이니 기운을 베풀면 물건이 절로 나지 일부러 기운을 베풀어 물건을 낳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기운이 베풀어지지 않고 기운이 베풀어지지 않으면 물건이 나지 않으니 사람의 다님과 다르다. 해와 달과 다섯 별의 다님은 다 기운을 베푸는 것이다.

儒者曰:「日中有三足烏,月中有兔、蟾蜍。」夫日者,天之火也,與地之火,無以異也。地火之中無生物,天火之中何故有烏?火中無生物,生物入火中,爛而死焉,烏安得立?夫月者,水也,水中有生物,非兔、蟾蜍也。兔與蟾蜍久在水中,無不死者。日月毀於天,螺蚌汨於淵,同氣審矣,所謂兔、蟾蜍者,豈反螺與蚌邪?且問儒者:烏、兔、蟾蜍,死乎生也?如死,久在日月,枯腐朽。如生,日蝕時既,月晦常盡,烏、兔、蟾蜍皆何在?夫烏、兔、蟾蜍,日月氣也,若人之腹髒,萬物之心膂也。月尚可察也,人之察日無不眩,不能知日審何氣,通而見其中有物名曰烏乎?審日不能見烏之形,通而能見其足有三乎?此已非實。且聽儒者之言,蟲物非一,日中何為有烏,月中何為有兔、蟾蜍?

유자가 말한다. 「해 가운데 세발까마귀가 있고 달 가운데 토끼와 두꺼비가 있다.」 무릇 해는 하늘의 불이라 땅의 불과 다를 것이 없다. 땅의 불 가운데 산 물건이 없는데 하늘의 불 가운데 무슨 까닭으로 까마귀가 있는가. 불 가운데 산 물건이 없어 산 물건이 불 가운데 들어가면 문드러져 죽는데 까마귀가 어찌 서겠는가. 무릇 달은 물이니 물 가운데 산 물건이 있으나 토끼와 두꺼비가 아니다. 토끼와 두꺼비가 오래 물 가운데 있으면 죽지 않는 것이 없다. 해와 달이 하늘에서 이지러지면 소라와 조개가 못에서 줄어드니 기운이 같음이 분명한데 이른바 토끼와 두꺼비란 도리어 소라와 조개인가. 또 유자에게 묻는다. 까마귀와 토끼와 두꺼비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죽었다면 오래 해와 달에 있어 말라 썩었을 것이다. 살았다면 일식으로 다하고 그믐에 달이 늘 다할 때 까마귀와 토끼와 두꺼비는 다 어디에 있는가. 무릇 까마귀와 토끼와 두꺼비는 해와 달의 기운이니 사람의 배 속 오장과 만물의 심장과 등뼈 같다. 달은 오히려 살필 수 있으나 사람이 해를 살피면 눈부시지 않음이 없어 해가 참으로 무슨 기운인지 알 수 없는데 통하여 그 가운데 물건이 있어 까마귀라 이름함을 보겠는가. 참으로 해에서 까마귀의 꼴을 볼 수 없는데 통하여 그 발이 셋임을 볼 수 있겠는가. 이는 이미 실상이 아니다. 또 유자의 말을 들으면 벌레와 물건이 하나가 아닌데 해 가운데 어찌 까마귀가 있고 달 가운데 어찌 토끼와 두꺼비가 있는가.

儒者謂日蝕、月蝕也。彼見日蝕常於晦朔,晦朔月與日合,故得蝕之。

유자는 일식을 달이 먹는 것이라 한다. 저들은 일식이 늘 그믐과 초하루에 있음을 보고 그믐과 초하루에 달이 해와 합하므로 먹을 수 있다 한다.

夫春秋之時,日蝕多矣。《經》曰:某月朔,日有蝕之。日有蝕之者,未必月也。知月蝕之,何諱不言月?說日蝕之變,陽弱陰強也,人物在世,氣力勁強,乃能乘凌。案月晦光既,朔則如盡,微弱甚矣,安得勝日?夫日之蝕,月蝕也。日蝕謂月蝕之,月誰蝕之者,無蝕月也,月自損也。以月論日,亦如日蝕,光自損也。

무릇 춘추 때 일식이 많았다. 「경」에 이르기를 아무 달 초하루에 해에 먹힘이 있었다 한다. 해에 먹힘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달이 아니다. 달이 먹은 줄 안다면 어찌 꺼려 달을 말하지 않는가. 일식의 변고를 말함에 양이 약하고 음이 강하다 하니 사람과 물건이 세상에 있어 기력이 굳세고 강해야 곧 타고 능멸할 수 있다. 살피건대 달이 그믐에 빛이 다하고 초하루에는 다한 것 같아 미약함이 심한데 어찌 해를 이기겠는가. 무릇 해의 먹힘은 달의 먹힘과 같다. 일식을 달이 먹는다 하면 월식은 누가 먹는가. 달을 먹는 것이 없으니 달이 스스로 던 것이다. 달로 해를 논하면 또한 일식과 같이 빛이 스스로 던 것이다.

大率四十一二月日一食,百八十日月一蝕,蝕之皆有時,非時為變,及其為變,氣自然也。日時晦朔,月復為之乎?夫日當實滿,以虧為變,必謂有蝕之者,山崩地動,蝕者誰也?或說:「日食者,月掩之也,日在上,月在下,障於(日)〔月〕之形也。日月合相襲,月在上日在下者,不能掩日。日在上,月在日下,障於日,月光掩日光,故謂之食也,障於月也,若陰雲蔽日月不見矣。其端合者,相食是也。其合相當如襲(辟)〔璧〕者,日既是也。」

대략 사십일이 달에 해가 한 번 먹히고 백팔십 일에 달이 한 번 먹히니 먹힘에 다 때가 있어 때가 아니면 변고가 되고 그 변고가 됨에 이르러도 기운이 절로 그러한 것이다. 해가 때로 그믐과 초하루에 달이 다시 그렇게 하는가. 무릇 해는 마땅히 차야 하니 이지러짐을 변고로 삼아 반드시 먹는 것이 있다 한다면 산이 무너지고 땅이 움직임에 먹는 것은 누구인가. 어떤 이는 말한다. 「일식은 달이 가리는 것이니 해가 위에 있고 달이 아래에 있어 달의 꼴에 가려진다. 해와 달이 합하여 서로 겹침에 달이 위에 있고 해가 아래에 있으면 해를 가릴 수 없다. 해가 위에 있고 달이 해 아래에 있어 해를 가리면 달빛이 햇빛을 가리므로 먹힌다 하니 달에 가려지는 것이라 음운이 해와 달을 가려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끝이 합하면 서로 먹는 것이요 그 합함이 서로 맞기가 겹친 옥 같으면 일식이 다한 것이다.」

日月合於晦朔,天之常也。日食,月掩日光,非也。何以驗之?使日月合,月掩日光,其初食崖當與旦復時易處。假令日在東,月在西,月之行疾,東及日,掩日崖,須臾過日而東,西崖初掩之處光當復,東崖未掩者當復食。今察日之食,西崖光缺,其復也,西崖光復,過掩東崖復西崖,謂之合襲相掩障,如何?

해와 달이 그믐과 초하루에 합함은 하늘의 늘 그러함이다. 일식이 달이 햇빛을 가리는 것이라 함은 그르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해와 달이 합하여 달이 햇빛을 가린다면 그 처음 먹히는 가장자리가 마땅히 되돌아올 때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 가령 해가 동에 있고 달이 서에 있으면 달의 다님이 빨라 동으로 해에 미쳐 해의 가장자리를 가리고 잠깐 사이에 해를 지나 동으로 가니 서쪽 가장자리 처음 가려진 곳의 빛이 마땅히 돌아오고 동쪽 가장자리 아직 가려지지 않은 데가 마땅히 다시 먹혀야 한다. 이제 해의 먹힘을 살피면 서쪽 가장자리 빛이 이지러지고 그 돌아옴에 서쪽 가장자리 빛이 돌아오니, 지나 가리며 동쪽 가장자리로 갔다가 서쪽 가장자리로 돌아온다면 합하여 겹쳐 서로 가린다 하는 것이 어떠한가.

儒者謂日月之體皆至圓,彼從下望見其形,若斗筐之狀,狀如正圓,不如望遠光氣,氣不圓矣。夫日月不圓,視若圓者,〔去〕人遠也。何以驗之?夫日者,火之精也;月者,水之精也。在地水火不圓,在天水火何故獨圓?日月在天猶五星,五星猶列星,列星不圓,光耀若圓,去人遠也。何以明之?春秋之時,星宋都,就而視之,石也,不圓。以星不圓,知日月五星亦不圓也。

유자는 해와 달의 몸이 다 지극히 둥글다 한다. 저들은 아래에서 그 꼴을 바라보아 말과 광주리 모양 같아 모양이 바로 둥근 것 같다 하나 먼 빛과 기운을 바라보는 것만 못하니 기운은 둥글지 않다. 무릇 해와 달이 둥글지 않은데 보면 둥근 것 같은 것은 사람에게서 멀어서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무릇 해는 불의 정기요 달은 물의 정기다. 땅에서 물과 불이 둥글지 않은데 하늘에서 물과 불이 무슨 까닭으로 홀로 둥근가. 해와 달이 하늘에 있음은 다섯 별과 같고 다섯 별은 뭇별과 같으니 뭇별이 둥글지 않은데 빛이 둥근 것 같음은 사람에게서 멀어서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춘추 때 별이 송나라 도읍에 떨어졌는데 가서 보니 돌이라 둥글지 않았다. 별이 둥글지 않음으로 해와 달과 다섯 별도 둥글지 않음을 안다.

儒者說日及工伎之家,皆以日為一。禹、(貢)〔益〕《山海經》言日有十,在海外東方有湯谷,上有扶桑,十日浴沐水中,有大木,九日居下枝,一日居上枝。

유자가 해를 말함과 공기의 집이 다 해를 하나라 한다. 우와 익의 「산해경」에 해가 열이 있으니 바다 밖 동방에 탕곡이 있고 위에 부상이 있어 열 해가 물 가운데서 목욕하고 큰 나무가 있어 아홉 해는 아래 가지에 살고 한 해는 위 가지에 산다 하였다.

《淮南書》又言燭十日,堯時十日并出,萬物焦枯,堯上射十日,以故不并一日見也。世俗又名甲乙為日,甲至癸凡十日,日之有十,猶星之有五也。通人談士,歸於難知,不肯辨明。是以文二傳而不定,世兩言而無主。誠實論之,且無十焉。何以驗之?夫日猶月也,日而有十,月有十二乎?星有五,五行之精,金木水火土各異光色。如日有十,其氣必異。今觀日光無有異者,察其小大前後若一。如審氣異,光色宜殊;如誠同氣,宜合為一,無為十也。驗日陽遂,火從天來,日者、大火也,察火在地,一氣也,地無十火,天安得十日?然則所謂十日者,殆更自有他物,光質如日之狀,居湯谷中水,時緣據扶桑,禹、益見之,則紀十日。數家度日之光,數日之質,刺徑千里,假令日出是扶桑木上之日,扶桑木宜覆萬里,乃能受之。何則?一日徑千里,十日宜萬里也。天之去人萬里餘也,仰察之,日光眩耀,火光盛明,不能堪也。使日出是扶桑木上之日,禹、益見之,不能知其為日也。何則?仰察一日,目猶眩耀,況察十日乎?當禹、益見之,若斗筐之狀,故名之為日。夫火如斗筐,望六萬之形,非就見之,即察之體也。由此言之,禹、益所見,意似日非日也。天地之間,物氣相類,其實非者多。海外西南有珠樹焉,察之是珠,然非魚中之珠也。夫十日之日,猶珠樹之珠也,珠樹似珠非真珠,十日似日非實日也。淮南見《山海經》,則虛言真人燭十日,妄紀堯時十日并出。且日,火也;湯谷,水也。水火相賊,則十日浴於湯谷,當滅敗焉。火燃木,扶桑,木也,十日處其上,宜枯焉。今浴湯谷而光不滅,登扶桑而枝不不枯,與今日出同,不驗於五行,故知十日非真日也。且禹、益見十日之時,終不以夜,猶以晝也,則一日出,九日宜留,安得俱出十日?如平旦日未出,且天行有度數,日隨天轉行,安得留扶桑枝間,浴湯谷之水乎?

「회남서」에 또 촉룡이 열 해를 비추고 요 때 열 해가 함께 나와 만물이 타고 마르니 요가 위로 열 해를 쏘았으므로 함께 하나의 해로 보이지 않는다 하였다. 세속은 또 갑을을 해라 이름하니 갑에서 계까지 모두 열 해라 해에 열이 있음은 별에 다섯이 있음과 같다. 통달한 사람과 담론하는 선비는 알기 어려운 데 돌리고 밝히려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글이 둘로 전해져 정해지지 않고 세상이 두 말을 하여 주인이 없다. 진실로 실상을 논하면 또한 열이 없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무릇 해는 달과 같으니 해에 열이 있다면 달에 열둘이 있는가. 별에 다섯이 있음은 오행의 정기라 금목수화토가 저마다 빛깔이 다르다. 해에 열이 있다면 그 기운이 반드시 다를 것이다. 이제 햇빛을 보면 다른 것이 없고 그 크고 작음과 앞뒤를 살피면 하나 같다. 참으로 기운이 다르다면 빛깔이 마땅히 달라야 하고 참으로 기운이 같다면 마땅히 합하여 하나가 될 것이니 열이 될 까닭이 없다. 해를 양수로 증험하면 불이 하늘에서 오니 해는 큰 불이라 불이 땅에 있음을 살피면 한 기운이라 땅에 열 불이 없는데 하늘에 어찌 열 해가 있겠는가. 그러니 이른바 열 해란 아마 따로 다른 물건이 있어 빛과 바탕이 해의 모양 같아 탕곡 가운데 물에 살며 때로 부상을 타고 붙으니 우와 익이 보고 열 해라 적은 것이다. 수가가 해의 빛을 헤아리고 해의 바탕을 세니 지름이 천 리라, 가령 해가 나옴이 이 부상 나무 위의 해라면 부상 나무가 마땅히 만 리를 덮어야 곧 받을 수 있다. 어째서인가. 한 해의 지름이 천 리니 열 해는 마땅히 만 리기 때문이다. 하늘이 사람에게서 떨어짐이 만 리 남짓인데 우러러 살피면 햇빛이 눈부시고 불빛이 성하게 밝아 견딜 수 없다. 해가 나옴이 이 부상 나무 위의 해라면 우와 익이 보고도 그것이 해인 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한 해를 우러러 살펴도 눈이 오히려 부신데 하물며 열 해를 살핌에랴. 우와 익이 볼 때 말과 광주리 모양 같았으므로 해라 이름한 것이다. 무릇 불이 말과 광주리 같음은 육만 리의 꼴을 바라본 것이지 나아가 본 것이 아니요 곧 살핀 몸이 아니다. 이로써 말하면 우와 익이 본 것은 뜻에 해 같으나 해가 아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물건과 기운이 서로 비슷하나 그 실상이 아닌 것이 많다. 바다 밖 서남에 주수가 있어 살피면 구슬이나 물고기 속의 구슬이 아니다. 무릇 열 해의 해는 주수의 구슬과 같으니 주수는 구슬 같으나 참 구슬이 아니요 열 해는 해 같으나 실다운 해가 아니다. 회남이 「산해경」을 보고 곧 헛되이 진인이 열 해를 비춘다 말하고 망령되이 요 때 열 해가 함께 나왔다 적었다. 또 해는 불이요 탕곡은 물이다. 물과 불이 서로 해치니 열 해가 탕곡에서 목욕하면 마땅히 꺼져 무너져야 한다. 불은 나무를 태우니 부상은 나무라 열 해가 그 위에 살면 마땅히 말라야 한다. 이제 탕곡에서 목욕하여도 빛이 꺼지지 않고 부상에 올라도 가지가 마르지 않으니 지금 해가 나옴과 같아 오행에 증험되지 않으므로 열 해가 참 해가 아님을 안다. 또 우와 익이 열 해를 볼 때 끝내 밤이 아니라 오히려 낮이었을 것이니 한 해가 나오면 아홉 해는 마땅히 머물 것인데 어찌 함께 열 해가 나오겠는가. 새벽에 해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 또 하늘의 다님에 도수가 있어 해가 하늘을 따라 돌아 다니니 어찌 부상 가지 사이에 머물러 탕곡의 물에 목욕하겠는가.

留則失行度,行度差跌不相應矣。如行出之日與十日異,是意似日而非日也。

머물면 다니는 도수를 잃어 다니는 도수가 어그러져 서로 응하지 않는다. 다니며 나오는 해가 열 해와 다르다면 이는 뜻에 해 같으나 해가 아니다.

《春秋》莊公七年:「夏四月辛卯,夜中恆星不見,星如雨。」(者)《公羊傳》曰「如雨者何?非雨也。非雨則曷為謂之如雨?不修《春秋》曰:雨星,不及地尺而復。君子修之曰:星如雨。」不修《春秋》者,未修《春秋》時魯史記,曰「(星如)雨〔星〕,不及地尺而復」。君子者,孔子,孔子修之曰「星如雨」孔子之意以為地有山陵樓台,云不及地尺,恐失其實,更正之曰如雨。如雨者,為從地上而下,星亦從天而復,與同,故曰如。夫孔子雖云不及地尺,但言如雨,其謂之者,皆是星也。孔子雖定其位,著其文,謂為星,與史同焉。從平地望泰山之巔,鶴如烏,烏如爵者,泰山高遠,物之小大失其實。天之去地六萬餘里,高遠非直泰山之巔也;星著於天,人察之,失星之實,非直望鶴烏之類也。數等,星之質百里,體大光盛,故能垂耀,人望見之,若鳳卵之狀,遠失其實也。如星審者,天之星而至地,人不知其為星也。何則?時小大不與在天同也。今見星如在天時,是時星也非星,則氣為之也。人見鬼如死人之狀,其實氣象聚,非真死人。然則星之形,其實非星。孔子云正者,非星而徙,正言如雨非雨之文,蓋俱失星之實矣。《春秋》《左氏傳》:「四月辛卯,夜中恆星不見,夜明也;星如雨,與雨俱也。」其言夜明,故不見,與《易》之言日中見斗相依類也。日中見斗,幽不明也;夜中星不見,夜光明也。事異義同,蓋其實也。其言與雨俱之,集也。夫辛卯之夜明,故星不見,明則不雨之驗也,雨氣陰暗安得明?明則無雨,安得與雨俱?夫如是言與雨俱者非實,且言夜明不見,安得見星與雨俱?又僖公十六年正月戊申,石於宋五,《左氏傳》曰:「星也。」夫謂石為星,則謂為石矣。辛卯之夜星,為星則實為石矣。辛卯之夜,星如是石,地有樓台,樓台崩坏。孔子雖不合言及地尺,雖地必有實數,魯史目見,不空言者也,雲與雨俱,雨集於地,石亦宜然。至地而樓台不坏,非星明矣。且左丘明謂石為星,何以審之?當時石輕然。

「춘추」 장공 칠년에 「여름 사월 신묘에 밤중에 항성이 보이지 않고 별이 비 같았다」 하였다. 「공양전」에 이르기를 「비 같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가 아니다. 비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비 같다 하는가. 닦지 않은 「춘추」에 이르기를 비 오듯 한 별이 땅에 한 자 미치지 못하고 다시 올랐다 하였다. 군자가 닦아 별이 비 같았다 하였다」 하였다. 닦지 않은 「춘추」란 「춘추」를 닦기 전 노나라 사기로 「비 오듯 한 별이 땅에 한 자 미치지 못하고 다시 올랐다」 한 것이다. 군자란 공자니 공자가 닦아 「별이 비 같았다」 하였다. 공자의 뜻은 땅에 산과 언덕과 누대가 있는데 땅에 한 자 미치지 못하였다 하면 그 실상을 잃을까 두려워 다시 바로잡아 비 같다 한 것이다. 비 같다는 것은 비가 땅 위에서 내리는데 별도 하늘에서 다시 오니 같으므로 같다 한 것이다. 무릇 공자가 비록 땅에 한 자 미치지 못하였다 하지 않고 다만 비 같다 말하였으나 그것을 이른 것은 다 별이다. 공자가 비록 그 자리를 정하고 그 글을 드러내었으나 별이라 이른 것은 사기와 같다. 평지에서 태산 꼭대기를 바라보면 학이 까마귀 같고 까마귀가 참새 같으니 태산이 높고 멀어 물건의 크고 작음이 그 실상을 잃는다. 하늘이 땅에서 떨어짐이 육만 리 남짓이니 높고 멂이 다만 태산 꼭대기 정도가 아니다. 별이 하늘에 붙어 사람이 살피면 별의 실상을 잃으니 다만 학과 까마귀의 무리를 바라봄 정도가 아니다. 수로 견주면 별의 바탕이 백 리라 몸이 크고 빛이 성하므로 빛을 드리울 수 있는데 사람이 바라보면 봉황 알 모양 같으니 멀어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참으로 별이라면 하늘의 별이 땅에 이르면 사람이 그것이 별인 줄 모른다. 어째서인가. 그때 크고 작음이 하늘에 있을 때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별을 봄이 하늘에 있을 때 같다면 이때의 별은 별이 아니라 기운이 그렇게 한 것이다. 사람이 귀신을 봄이 죽은 사람 모양 같으나 그 실은 기운의 상이 모인 것이지 참 죽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별의 꼴은 그 실상이 별이 아니다. 공자가 바로잡았다 하는 것은 별이 아닌데 옮겨 비 같으나 비가 아니라는 글을 바로 말한 것이니 아마 다 별의 실상을 잃은 것이다. 「춘추」 「좌씨전」에 「사월 신묘에 밤중에 항성이 보이지 않은 것은 밤이 밝아서요, 별이 비 같았다는 것은 비와 함께한 것이다」 하였다. 그 밤이 밝으므로 보이지 않았다는 말은 「역」의 한낮에 두성이 보인다는 말과 서로 의지하는 무리다. 한낮에 두성이 보임은 어두워 밝지 않은 것이요 밤중에 별이 보이지 않음은 밤이 밝은 것이다. 일은 다르나 뜻이 같으니 아마 그 실상일 것이다. 그 비와 함께하였다는 말은 모인 것이다. 무릇 신묘의 밤이 밝으므로 별이 보이지 않았다면 밝음은 비 오지 않는 증험이니 비의 기운은 음침한데 어찌 밝겠는가. 밝으면 비가 없으니 어찌 비와 함께하겠는가. 이러하니 비와 함께하였다는 말은 실상이 아니요 또 밤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말하면서 어찌 별이 비와 함께함을 보았는가. 또 희공 십육년 정월 무신에 돌이 송나라에 다섯 떨어졌는데 「좌씨전」에 「별이다」 하였다. 무릇 돌을 별이라 하면 별을 돌이라 하는 것이다. 신묘의 밤의 별은 별이라면 실은 돌이다. 신묘의 밤에 별이 이 돌 같다면 땅에 누대가 있어 누대가 무너졌을 것이다. 공자가 비록 땅에 한 자 미치지 못하였다 말하기를 합하지 않았어도 땅에 반드시 실다운 수가 있어 노나라 사기가 눈으로 보았지 헛말한 것이 아니다. 구름이 비와 함께하여 비가 땅에 모이면 돌도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땅에 이르러도 누대가 무너지지 않았으니 별이 아님이 분명하다. 또 좌구명이 돌을 별이라 한 것은 무엇으로 살폈는가. 당시 돌이 가벼웠던가.

何以其從天墜也,秦時三山亡,亡(有)〔者〕不消散,有在其集下時必有聲音,或時夷狄之山從集於宋,宋聞石,則謂之星也,左丘明省,則謂之星。夫星,萬物之精,與日月同。說五星者,謂五行之精之光也,五星眾星同光耀,獨謂列星為石,恐失其實。實者辛卯之夜,星若雨而非星也,與彼湯谷之十日,若日而非日也。

무엇으로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하는가. 진나라 때 세 산이 없어졌는데 없어진 것은 흩어지지 않으니 그 모여 내릴 때 반드시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혹 때로 이적의 산이 송나라에 모여 내리니 송나라가 돌을 듣고 별이라 하였고 좌구명이 살펴 별이라 한 것이다. 무릇 별은 만물의 정기라 해와 달과 같다. 다섯 별을 말하는 이는 오행의 정기의 빛이라 한다. 다섯 별과 뭇별이 같은 빛인데 홀로 뭇별을 돌이라 하니 그 실상을 잃을까 두렵다. 실상은 신묘의 밤에 별이 비 같았으나 별이 아니니 저 탕곡의 열 해가 해 같으나 해가 아닌 것과 같다.

儒者又曰:雨從天下,謂正從天墜也。如(當)〔實〕論之,雨從地上不從天下,見雨從上集,則謂從天下矣,其實地上也。然其出地起於山。何以明之?《春秋傳》曰:「觸石而出,膚寸而合,不崇朝而遍天下,惟太山也。」

유자가 또 말한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니 바로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상을 논하면 비는 땅 위에서 나오지 하늘에서 내리지 않으니, 비가 위에서 모이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내린다 하나 그 실은 땅 위다. 그러나 그 땅에서 나옴은 산에서 일어난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춘추전」에 이르기를 「돌에 부딪쳐 나와 한 치 한 치 합하여 아침이 다하기 전에 천하에 두루 하는 것은 오직 태산이다」 하였다.

太山雨天下,小山雨一國,各以小大為近遠差。雨之出山,或謂雲載而行,雲散水墜,名為雨矣。夫雲則雨,雨則雲矣,初出為雲,雲繁為雨,猶甚而泥露濡污衣服,若雨之狀,非雲與俱,雲載行雨也。或曰:《尚書》曰:「月之從星,則以風雨。」《詩》曰:「月麗於畢,俾滂㩗矣。」二經咸言,所謂為之非天,如何?夫雨從山發,月經星麗畢之時,麗畢之時當雨也。時不雨,月不麗,山不雲,天地上下自相應也。月麗於上,山於下,氣體偶合,自然道也。雲霧,雨之徵也,夏則為露,冬則為霜,溫則為雨,寒則為雪。雨露凍凝者,皆由地發,不從天降也。

태산은 천하에 비 내리고 작은 산은 한 나라에 비 내리니 저마다 크고 작음으로 멀고 가까움의 차이를 삼는다. 비가 산에서 나옴을 더러 구름이 싣고 다니다가 구름이 흩어져 물이 떨어져 비라 이름한다 한다. 무릇 구름은 곧 비요 비는 곧 구름이니 처음 나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번성하여 비가 되니, 심하면 진흙 이슬이 옷을 적셔 비의 모양 같음과 같으니 구름이 함께하여 구름이 비를 싣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말한다. 「상서」에 「달이 별을 따르면 바람과 비로 한다」 하였고 「시」에 「달이 필성에 붙으면 큰비가 내린다」 하였다. 두 경이 다 말하니 이른바 하는 것이 하늘이 아니라 함이 어떠한가. 무릇 비는 산에서 일어나는데 달이 별을 지나 필성에 붙을 때 필성에 붙을 때 마땅히 비 온다. 때에 비 오지 않으면 달이 붙지 않고 산이 구름 내지 않으니 하늘과 땅이 위아래로 절로 서로 응한다. 달이 위에 붙고 산이 아래에서 구름 내니 기운과 몸이 우연히 합함이 절로 그러한 도다. 구름과 안개는 비의 조짐이니 여름에는 이슬이 되고 겨울에는 서리가 되며 따뜻하면 비가 되고 추우면 눈이 된다. 비와 이슬과 얼어 엉긴 것은 다 땅에서 일어나지 하늘에서 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