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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佞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5 · 한자 2,967자 · 낭독 11.9분

「논형」 답녕편 「答佞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或問曰:「賢者行道,得尊官厚祿矣;何心為佞,以取富貴?」曰:佞人知行道可以得富貴,必以佞取爵祿者,不能禁欲也;知力耕可以得谷,勉貿可以得貨,然而必盜竊,情欲不能禁者也。以禮進退也,人莫之貴,然而違禮者眾,尊義者希,心情貪欲,志慮亂溺也。夫佞與賢者同材,佞以情自敗;偷盜與田商同知,偷盜以欲自劾也。

어떤 이가 묻는다. 「어진 이는 도를 행하면 높은 벼슬과 두터운 녹을 얻는데 무슨 마음으로 아첨하여 부귀를 취하는가?」 답한다. 아첨하는 사람은 도를 행하면 부귀를 얻을 수 있음을 알면서 반드시 아첨으로 작록을 취하는 것은 욕심을 금할 수 없어서다. 힘써 밭 갈면 곡식을 얻을 수 있고 힘써 장사하면 재물을 얻을 수 있음을 알면서 반드시 도둑질함은 정욕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예로 나아가고 물러남을 사람이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나 예를 어기는 이가 많고 의를 높이는 이가 드문 것은 마음이 탐욕스럽고 뜻이 어지러워 빠져서다. 무릇 아첨하는 이와 어진 이는 재주가 같으나 아첨하는 이는 정으로 스스로 무너지고, 도둑과 농부·장사꾼은 앎이 같으나 도둑은 욕심으로 스스로 죄에 걸린다.

問曰:「佞與賢者同材,材行宜鈞,而佞人曷為獨以情自敗?」曰:「富貴皆人所欲也,雖有君子之行,猶有飢渴之情。君子則以禮防情,以義割欲,故得循道,循道則無禍。小人縱貪利之欲,逾禮犯義,故進得苟佞,苟佞則有罪。」夫賢者,君子也;佞人,小人也。君子與小人本殊操異行,取舍不同。

묻는다. 「아첨하는 이와 어진 이는 재주가 같으니 재주와 행실이 마땅히 고를 터인데 아첨하는 사람은 어찌 홀로 정으로 스스로 무너지는가?」 답한다. 「부귀는 다 사람이 바라는 바이니 비록 군자의 행실이 있어도 오히려 주리고 목마른 정이 있다. 군자는 예로 정을 막고 의로 욕심을 베므로 도를 따를 수 있고 도를 따르면 화가 없다. 소인은 이익을 탐하는 욕심을 놓아 예를 넘고 의를 범하므로 나아감에 구차히 아첨하고 구차히 아첨하면 죄가 있다.」 무릇 어진 이는 군자요 아첨하는 사람은 소인이다. 군자와 소인은 본디 몸가짐이 다르고 행실이 달라 취하고 버림이 같지 않다.

問曰:「佞與讒者同道乎?有以異乎?」曰:「讒與佞,俱小人也,同道異材,俱以嫉妒為性,而施行發動之異。」讒以口害人,佞以事危人;讒人以直道不違,佞人依違匿端;讒人無詐慮,佞人有術數。故人君皆能遠讒親仁,莫能知賢別佞。難曰:「人君皆能遠讒親仁,而莫能知賢別佞,然則佞人意不可知乎?」曰:佞可知,人君不能知。庸庸之君,不能知賢,不能知賢,不能知佞。唯聖賢之人,以九德檢其行,以事效考其言。行不合於九德,言不驗於事效,人非賢則佞矣。夫知佞以知賢,知賢以知佞,知賢則賢智自覺,知賢則奸佞自得。賢佞異行,考之一驗;情心不同,觀之一實。

묻는다. 「아첨하는 이와 참소하는 이는 도가 같은가, 다름이 있는가?」 답한다. 「참소와 아첨은 다 소인이니 도가 같고 재주가 달라 다 시샘을 성품으로 삼으나 베풀어 움직임이 다르다.」 참소는 입으로 사람을 해치고 아첨은 일로 사람을 위태롭게 한다. 참소하는 사람은 곧은 길로 어기지 않고 아첨하는 사람은 의지하고 어기며 실마리를 숨긴다. 참소하는 사람은 속이는 생각이 없고 아첨하는 사람은 술수가 있다. 그러므로 임금은 다 참소를 멀리하고 어진 이를 친할 수 있으나 어진 이를 알고 아첨을 가릴 수 있는 이는 없다. 따져 말한다. 「임금이 다 참소를 멀리하고 어진 이를 친할 수 있으나 어진 이를 알고 아첨을 가릴 수 있는 이가 없다면 아첨하는 사람의 뜻은 알 수 없는가?」 답한다. 아첨은 알 수 있으나 임금이 알지 못한다. 용렬한 임금은 어진 이를 알지 못하고 어진 이를 알지 못하면 아첨을 알지 못한다. 오직 성현의 사람만 구덕으로 그 행실을 검사하고 일의 보람으로 그 말을 살핀다. 행실이 구덕에 맞지 않고 말이 일의 보람에 증험되지 않으면 사람이 어진 이가 아니면 아첨이다. 무릇 아첨을 알아 어진 이를 알고 어진 이를 알아 아첨을 아니, 어진 이를 알면 어질고 슬기로움이 절로 깨어나고 어진 이를 알면 간사한 아첨이 절로 얻어진다. 어진 이와 아첨은 행실이 다르나 살핌은 한 증험이요, 정과 마음이 같지 않으나 봄은 한 실상이다.

問曰:「九德之法,張設久矣,觀讀之者,莫不曉見,斗斛之量多少,權衡之縣輕重也。然而居國有土之君,曷為常有邪佞之臣與常有欺惑之患?」〔曰〕:「無患斗斛過,所量非其谷;不患無銓衡,所銓非其物故也。」在人君位者,皆知九德之可以檢行,事效可以知情,然而惑亂不能見者,則明不察之故也。人有不能行,行無不可檢;人有不能考,情無不可知。

묻는다. 「구덕의 법이 베풀어진 지 오래라 보고 읽는 이가 말과 섬의 양의 많고 적음과 저울의 매달림의 가볍고 무거움을 밝게 보지 않음이 없다. 그런데 나라에 있어 땅을 가진 임금은 어찌하여 늘 사악하고 아첨하는 신하가 있고 늘 속이고 홀리는 근심이 있는가?」 답한다. 「말과 섬의 잘못을 근심하지 않고 헤아리는 바가 그 곡식이 아님을 근심하며, 저울이 없음을 근심하지 않고 다는 바가 그 물건이 아님을 근심하기 때문이다.」 임금 자리에 있는 이는 다 구덕으로 행실을 검사할 수 있고 일의 보람으로 정을 알 수 있음을 아나 홀리고 어지러워 보지 못하는 것은 밝게 살피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람이 행하지 못함이 있어도 행실은 검사할 수 없는 것이 없고, 사람이 살피지 못함이 있어도 정은 알 수 없는 것이 없다.

問曰:「行不合於九德,效不檢於考功,進近非賢,非賢則佞。夫庸庸之材,無高之知不能及賢。賢功不效,賢行不應,可謂佞乎?」曰:材有不相及,行有不相追,功有不相襲。若知無相襲,人材相什百,取舍宜同,賢佞殊行,是是非非。實名俱立,而效有成敗,是非之言俱當,功有正邪。

묻는다. 「행실이 구덕에 맞지 않고 보람이 공을 살핌에 검사되지 않으면 나아가 가까이함이 어진 이가 아니요 어진 이가 아니면 아첨이다. 무릇 용렬한 재주는 높은 앎이 없어 어진 이에 미칠 수 없다. 어진 이의 공이 보람 없고 어진 이의 행실이 응하지 않으면 아첨이라 할 수 있는가?」 답한다. 재주에 서로 미치지 못함이 있고 행실에 서로 따르지 못함이 있으며 공에 서로 잇지 못함이 있다. 앎에 서로 이음이 없어 사람의 재주가 서로 열 배 백 배라도 취하고 버림은 마땅히 같으니 어진 이와 아첨은 행실이 달라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실상과 이름이 함께 서도 보람에 이루고 패함이 있고 옳고 그름의 말이 다 마땅하여도 공에 바름과 사악함이 있다.

言合行違,名盛行廢,佞人〔也〕。

말은 맞으나 행실이 어긋나고 이름은 성하나 행실이 폐한 이가 아첨하는 사람이다.

問曰:「行合九德則賢,不合則佞。世人操行者可盡謂佞乎?」曰:諸非皆惡,惡中之逆者,謂之無道;惡中之巧者,謂之佞人。聖王刑憲,佞在惡中;聖王賞勸,賢在善中。純潔之賢,善中殊高,賢中之聖也。(善)〔惡〕中大佞,惡中之雄也。故曰:觀賢由善,察佞由惡。善惡定成,賢佞形矣。

묻는다. 「행실이 구덕에 맞으면 어질고 맞지 않으면 아첨이라 하니 세상 사람의 몸가짐을 다 아첨이라 할 수 있는가?」 답한다. 여러 그름은 다 악이니 악 가운데 거스르는 이를 무도라 하고 악 가운데 교묘한 이를 아첨하는 사람이라 한다. 성왕의 형벌과 법에 아첨은 악 가운데 있고 성왕의 상과 권함에 어진 이는 착함 가운데 있다. 순수하고 깨끗한 어진 이는 착함 가운데 특히 높으니 어진 이 가운데 성인이다. 악 가운데 큰 아첨은 악 가운데 으뜸이다. 그러므로 어진 이를 봄은 착함에서 말미암고 아첨을 살핌은 악에서 말미암는다 한다. 착함과 악이 정해져 이루어지면 어진 이와 아첨이 드러난다.

問曰:「聰明有蔽塞,推行有謬誤,今以是者為賢,非者為佞,殆不得賢之實乎?」曰:「聰明蔽塞,推行謬誤,人之所歉也。」故曰:刑故無小,宥過無大。聖君原心省意,故誅故貰誤。故賊加增,過誤減損,一獄吏所能定也,賢者見之不疑矣。

묻는다. 「총명에 가려 막힘이 있고 미루어 행함에 잘못이 있는데 이제 옳은 이를 어진 이라 하고 그른 이를 아첨이라 하면 아마 어진 이의 실상을 얻지 못하지 않겠는가?」 답한다. 「총명이 가려 막히고 미루어 행함에 잘못됨은 사람이 부족한 바다.」 그러므로 일부러 한 것을 형벌함에는 작은 것이 없고 잘못을 용서함에는 큰 것이 없다 한다. 성스러운 임금은 마음을 캐고 뜻을 살피므로 일부러 한 것을 베고 잘못을 용서한다. 일부러 한 도적은 더하고 잘못은 덜어 주니 한 옥리도 정할 수 있는 바요 어진 이가 보면 의심하지 않는다.

問曰:「言行無功效,可謂佞乎?」〔曰〕:蘇秦約六國為從,強秦不敢窺兵於關外。張儀為橫,六國不敢同攻於關內。六國約從,則秦畏而六國強;三秦稱橫,則秦強而天下弱。功著效明,載紀竹帛,雖賢何以加之?太史公敘言眾賢,儀、秦有篇,無嫉惡之文,功鈞名敵,不異於賢。夫功之不可以效賢,猶名之不可實也。儀、秦,排難之人也,處擾攘之世,行揣摩之術。當此之時,稷、契不能與之爭計,禹、睾陶不能與之比效。若夫陰陽調和,風雨時適,五谷丰熟,盜賊衰息,人舉廉讓,家行道德之功,命祿貴美,術數所致,非道德之所成也。太史公記功,故高來,記錄成則著效明驗,攬載高卓,以儀、秦功美,故列其狀。由此言之,佞人亦能以權說立功為效。無效,未可為佞也。難曰:「惡中立功者謂之佞。能為功者,材高知明。思慮遠者,必傍義依仁,亂於大賢。故《覺佞》之篇曰:『人主好辨,佞人言利;人主好文,佞人辭麗。』心合意同,偶當人主,說而不見其非,何以知其偽而伺其奸乎?」曰:是謂庸庸之君也,材下知昏,蔽惑不見。(後)〔若〕(又)〔大〕賢之君,察之審明,若視俎上脯,指掌中之理,數局上之棋,摘轅中之馬。魚鱉匿淵,捕漁者知其源;禽獸藏山,畋獵者見其脈。佞人異行於世,世不能見,庸庸之主,無高材之人也。難曰:「人君好辨,佞人言利;人主好文,佞人辭麗。言操合同,何以覺之?」曰:文王官人法曰:「推其往行以揆其來言,聽其來言以省其往行,觀其陽以考其陰,察其內以揆其外。」是故詐善設節者可知,飾偽無情者可辨,質誠居善者可得,含忠守節者可見也。人之舊性不辨,人君好辨,佞人學求合於上也。人之故能不文,人君好文,佞人意欲稱上。上奢,己麗服;上儉,己不飭。今操與古殊,朝行與家別,考鄉里之跡,証朝庭之行,察共親之節,明事君之操,外內不相稱,名實不相副,際會發見、奸為覺露也。

묻는다. 「말과 행실에 공과 보람이 없으면 아첨이라 할 수 있는가?」 답한다. 소진이 육국을 합종으로 묶으니 강한 진나라가 감히 관 밖으로 군사를 엿보지 못하였다. 장의가 연횡을 하니 육국이 감히 함께 관 안을 치지 못하였다. 육국이 합종으로 묶이니 진나라가 두려워하고 육국이 강하였으며 삼진이 연횡을 일컬으니 진나라가 강하고 천하가 약하였다. 공이 드러나고 보람이 밝아 죽백에 실렸으니 비록 어진 이라도 무엇으로 더하겠는가. 태사공이 뭇 어진 이를 서술함에 장의와 소진에 편이 있고 미워하는 글이 없으니 공이 고르고 이름이 맞서 어진 이와 다르지 않다. 무릇 공으로 어진 이를 증험할 수 없음은 이름으로 실상을 삼을 수 없음과 같다. 장의와 소진은 어려움을 물리치는 사람이라 어지러운 세상에 처하여 헤아리는 술법을 행하였다. 이때 후직과 설도 그와 계책을 다툴 수 없고 우와 고요도 그와 보람을 견줄 수 없었다. 저 음양이 고르고 바람과 비가 때에 맞고 오곡이 풍성하고 도적이 쇠하여 그치고 사람들이 청렴하고 겸양하며 집집이 도덕을 행하는 공은 명록이 귀하고 아름다워 술수가 이르게 한 것이지 도덕이 이룬 것이 아니다. 태사공이 공을 적음에 높은 것을 좇으니 이룬 것을 기록하면 보람이 드러나고 증험이 밝으니 높고 뛰어난 것을 실어, 장의와 소진의 공이 아름다우므로 그 모양을 벌인 것이다. 이로써 말하면 아첨하는 사람도 권모의 말로 공을 세워 보람을 삼을 수 있다. 보람이 없다고 아첨이라 할 수 없다. 따져 말한다. 「악 가운데 공을 세우는 이를 아첨이라 한다. 공을 세울 수 있는 이는 재주가 높고 앎이 밝다. 생각이 먼 이는 반드시 의에 곁하고 인에 의지하여 큰 어진 이와 섞인다. 그러므로 「각녕」 편에 『임금이 변론을 좋아하면 아첨하는 사람은 이로움을 말하고 임금이 글을 좋아하면 아첨하는 사람은 말을 화려하게 한다』 하였다. 마음이 맞고 뜻이 같아 임금에게 짝하니 말하여도 그 그름을 보지 못하는데 무엇으로 그 거짓을 알고 그 간사함을 엿보는가?」 답한다. 이는 용렬한 임금을 이른 것이니 재주가 낮고 앎이 어두워 가려지고 홀려 보지 못한다. 큰 어진 임금은 살핌이 자세하고 밝아 도마 위의 포를 보고 손바닥 가운데의 결을 가리키고 판 위의 바둑을 세고 끌채 가운데의 말을 골라내는 것 같다. 물고기와 자라가 못에 숨어도 고기 잡는 이는 그 근원을 알고 새와 짐승이 산에 숨어도 사냥하는 이는 그 맥을 본다. 아첨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다르게 행하여도 세상이 보지 못함은 용렬한 임금이라 높은 재주의 사람이 없어서다. 따져 말한다. 「임금이 변론을 좋아하면 아첨하는 사람은 이로움을 말하고 임금이 글을 좋아하면 아첨하는 사람은 말을 화려하게 한다. 말과 몸가짐이 맞고 같으니 무엇으로 깨닫는가?」 답한다. 문왕의 관인법에 이르기를 「그 지난 행실을 미루어 그 올 말을 헤아리고 그 올 말을 들어 그 지난 행실을 살피며 그 양을 보아 그 음을 살피고 그 안을 살펴 그 밖을 헤아린다」 하였다. 이 때문에 착함을 속이고 절개를 꾸미는 이를 알 수 있고 거짓을 꾸미고 정이 없는 이를 가릴 수 있으며 바탕이 참되어 착함에 처하는 이를 얻을 수 있고 충성을 머금고 절개를 지키는 이를 볼 수 있다. 사람의 옛 성품은 변론하지 않는데 임금이 변론을 좋아하니 아첨하는 사람이 배워 위에 맞기를 구한다. 사람의 본디 능력은 글을 하지 않는데 임금이 글을 좋아하니 아첨하는 사람이 뜻으로 위에 맞추려 한다. 위가 사치하면 저는 옷을 화려하게 하고 위가 검소하면 저는 꾸미지 않는다. 지금 몸가짐이 옛것과 다르고 조정의 행실이 집과 다르니 향리의 자취를 살피고 조정의 행실을 증험하며 어버이 섬기는 절개를 살피고 임금 섬기는 몸가짐을 밝히면 밖과 안이 서로 걸맞지 않고 이름과 실상이 서로 맞지 않아 만나는 때에 드러나 간사한 행위가 깨달아져 드러난다.

問曰:「人操行無恆,權時制宜。信者欺人,直者曲撓,權變所設,前後異操,事有所應,左右異語。儒書所載,權變非一。今以素故考之,母乃失實乎?」曰:賢者有權,佞者有權。賢者之有權,後有應。佞人之有權,亦反經,後有惡。故賢人之權,為事為國;佞人之權,為身為家。觀其所權,賢佞可論。察其發動,邪正可名。

묻는다. 「사람의 몸가짐은 늘 같지 않아 때에 따라 마땅함을 정한다. 믿음직한 이가 사람을 속이고 곧은 이가 굽히니 권변이 베풀어진 바에 앞뒤가 몸가짐이 다르고 일에 응하는 바가 있어 좌우가 말이 다르다. 유가의 책에 실린 권변이 하나가 아니다. 이제 평소의 옛것으로 살피면 실상을 잃지 않겠는가?」 답한다. 어진 이에게 권변이 있고 아첨하는 이에게 권변이 있다. 어진 이의 권변은 뒤에 응함이 있다. 아첨하는 사람의 권변도 또한 상도를 뒤집으나 뒤에 악이 있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의 권변은 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며 아첨하는 사람의 권변은 몸을 위하고 집을 위한다. 그 권변하는 바를 보면 어진 이와 아첨을 논할 수 있다. 그 움직임을 살피면 사악함과 바름을 이름할 수 있다.

問曰:「佞人好毀人,有諸?」曰:佞人不毀人。如毀人,是讒人也。何則?佞人求利,故不毀人。苟利於己,曷為毀之?苟不利(己)於〔己〕,毀之無益。以計求便,以數取利,利則便得。妒人共事,然後危人。其危人也非毀之,而其害人也非泊之。譽而危之,故人不知。厚而害之,故人不疑。是故佞人危而不怨,害人之敗而不仇。隱情匿意,為之功也。如毀人,人亦毀之,眾不親,士不附也,安能得容世取利於上?

묻는다. 「아첨하는 사람은 남을 헐뜯기 좋아한다는데 그런 일이 있는가?」 답한다. 아첨하는 사람은 남을 헐뜯지 않는다. 남을 헐뜯으면 이는 참소하는 사람이다. 어째서인가. 아첨하는 사람은 이익을 구하므로 남을 헐뜯지 않는다. 진실로 제게 이로우면 어찌 헐뜯겠는가. 진실로 제게 이롭지 않으면 헐뜯어도 보탬이 없다. 계책으로 편의를 구하고 술수로 이익을 취하니 이로우면 편의를 얻는다. 남이 일을 함께함을 시샘한 뒤에야 남을 위태롭게 한다. 그가 남을 위태롭게 함은 헐뜯음이 아니요 그가 남을 해침은 핍박함이 아니다. 기리면서 위태롭게 하므로 사람이 모르고 두터이 하면서 해치므로 사람이 의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롭게 하여도 원망받지 않고 남을 해쳐 패하게 하여도 원수가 되지 않는다. 정을 숨기고 뜻을 감춤이 그 공이 된다. 남을 헐뜯으면 남도 저를 헐뜯어 뭇사람이 친하지 않고 선비가 붙지 않으니 어찌 세상에 용납되어 위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겠는가.

問曰:「佞人不毀人於世間,毀人於將前乎?」曰:「佞人以人欺將,不毀人於將。」「然則佞人奈何?」曰:「佞人毀人,譽之;危人,安之。」「毀危奈何?」假令甲有高行奇知,名聲顯聞,將恐人君召問,扶而勝己,欲故廢不言,常騰譽之。荐之者眾,將議欲用,問人,人必不對曰,甲賢而宜召也。何則?甲意不欲留縣,前聞其語矣,聲望欲入府,在郡則望欲入州。志高則操與人異,望遠則意不顧近。屈而用之,其心不滿,不則臥病。賤而命之則傷賢,不則損威。故人君所以失名損譽者,好臣所常臣也。自耐下之,用之可也。自度不能下之,用之不便。夫用之不兩相益,舍之不兩相損。人君畏其志,信佞人之言,遂置不用。

묻는다. 「아첨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남을 헐뜯지 않으나 장수 앞에서 남을 헐뜯는가?」 답한다. 「아첨하는 사람은 사람으로 장수를 속이지 장수에게 남을 헐뜯지 않는다.」 「그러면 아첨하는 사람은 어찌하는가?」 답한다. 「아첨하는 사람이 남을 헐뜯음은 기리는 것이요 남을 위태롭게 함은 편안히 하는 것이다.」 「헐뜯고 위태롭게 함은 어찌하는가?」 가령 갑에게 높은 행실과 기이한 앎이 있어 명성이 드러나 알려지면 임금이 불러 물어 부축하여 저를 이길까 두려워 일부러 버려 말하지 않으려 하면서 늘 기림을 올린다. 천거하는 이가 많아 장차 의논하여 쓰려 하여 사람에게 물으면 사람이 반드시 갑이 어질어 마땅히 불러야 한다 대답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갑의 뜻은 현에 머물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고 앞서 그 말을 들었다 하며, 명망은 부에 들기를 바라고 군에 있으면 주에 들기를 바란다 한다. 뜻이 높으면 몸가짐이 남과 다르고 바람이 멀면 뜻이 가까운 것을 돌아보지 않는다. 굽혀 쓰면 그 마음이 차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병들어 눕는다. 천하게 명하면 어진 이를 상하고 그렇지 않으면 위엄을 던다. 그러므로 임금이 이름을 잃고 기림을 더는 까닭은 늘 신하 삼는 이를 신하 삼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낮출 수 있으면 써도 좋다. 스스로 헤아려 낮출 수 없으면 씀이 편하지 않다. 무릇 쓰면 둘이 서로 보태지 않고 버리면 둘이 서로 덜지 않는다. 임금이 그 뜻을 두려워하고 아첨하는 사람의 말을 믿어 마침내 두고 쓰지 않는다.

問曰:「佞人直以高才洪知考上世人乎?將有師學檢也?」曰:「人自有知以詐人,及其人主,須術以動上,猶上人自有勇威人,及其戰斗,須兵法以進眾,術則從橫,師則鬼谷也。」傳曰:「蘇秦、張儀從橫習之鬼谷先生,掘地為坑,曰:下,說令我泣,出則耐分人君之地。蘇秦下,說鬼谷先生泣下沾襟,張儀不若。蘇秦相趙,并相六國。張儀貧賤,往歸蘇秦,座之堂下,食以仆妾之食,數讓激怒,欲令相秦。儀忿恨,遂西入秦。蘇秦使人厚送。其後覺知,曰:此在其術中,吾不知也,此吾所不及蘇君者。」知深有術,權變鋒出,故身尊崇榮顯,為世雄杰。深謀明術,深淺不能并行,明暗不能并知。

묻는다. 「아첨하는 사람은 바로 높은 재주와 넓은 앎으로 윗세상 사람을 살피는가, 아니면 스승에게 배워 검사함이 있는가?」 답한다. 「사람에게 절로 앎이 있어 사람을 속이나 그 임금에 미쳐서는 술법을 기다려 위를 움직이니, 윗사람에게 절로 용맹이 있어 사람을 위협하나 그 싸움에 미쳐서는 병법을 기다려 무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과 같다. 술법은 종횡이요 스승은 귀곡이다.」 전에 이르기를 「소진과 장의가 종횡을 귀곡 선생에게 배웠는데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말하기를 내려가서 유세하여 나를 울게 하면 나가서 임금의 땅을 나눌 수 있다 하였다. 소진이 내려가 유세하니 귀곡 선생이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고 장의는 그만 못하였다. 소진이 조나라 재상이 되고 아울러 육국의 재상이 되었다. 장의가 가난하고 천하여 소진에게 가서 돌아가니 마루 아래 앉히고 종의 밥을 먹이며 여러 번 꾸짖어 노하게 하여 진나라 재상이 되게 하려 하였다. 의가 분하고 한하여 마침내 서로 진나라에 들어갔다. 소진이 사람을 시켜 두터이 보냈다. 그 뒤 깨달아 알고 말하기를 이는 그 술법 가운데 있었는데 내가 몰랐으니 이것이 내가 소군에게 미치지 못하는 바다 하였다」 하였다. 앎이 깊고 술법이 있어 권변이 칼끝처럼 나오므로 몸이 높고 영화가 드러나 세상의 영웅호걸이 되었다. 깊은 꾀와 밝은 술법은 깊고 얕음이 함께 행해질 수 없고 밝고 어두움이 함께 알 수 없다.

問曰:「佞人養名作高,有諸?」曰:「佞人食利專權,不養名作高。」貪權據凡,則高名自立矣。稱於小人,不行於君子。何則?利義相伐,正邪相反。義動君子,利動小人。佞人貪利名之顯,君子不安下則身危。舉世為佞者,皆以禍眾,不能養其身,安能養其名?上世列傳棄(宗)〔榮〕養身,違利赴名,竹帛所載,伯成、子高委國而耕,於陵子辭位灌園,近世蘭陵王仲子、東(都)〔郡〕昔廬君陽,寢位久病,不應上征,可謂養名矣。夫不以道進,必不以道出身;不以義止,必不以義立名。佞人懷貪利之心,輕禍重身,傾死為矣,何名之養?義廢德坏,操行隨辱,何云作高?

묻는다. 「아첨하는 사람은 이름을 기르고 높음을 짓는다는데 그런 일이 있는가?」 답한다. 「아첨하는 사람은 이익을 먹고 권세를 오로지하지 이름을 기르고 높음을 짓지 않는다.」 권세를 탐하고 자리를 차지하면 높은 이름이 절로 선다. 소인에게 일컬어지고 군자에게 행해지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익과 의는 서로 치고 바름과 사악함은 서로 반대다. 의는 군자를 움직이고 이익은 소인을 움직인다. 아첨하는 사람은 이익과 이름의 드러남을 탐하나 군자는 아래에 편안하지 않으면 몸이 위태롭다. 온 세상에 아첨하는 이는 다 화가 많아 그 몸을 기르지 못하는데 어찌 그 이름을 기르겠는가. 윗세상 열전에 영화를 버리고 몸을 기르며 이익을 어기고 이름에 달려간 것이 죽백에 실렸으니, 백성자고가 나라를 버리고 밭 갈고 오릉자가 자리를 사양하고 채마밭에 물 주었으며 근세에 난릉 왕중자와 동군 석려군양이 자리에 누워 오래 병들어 위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으니 이름을 길렀다 할 만하다. 무릇 도로 나아가지 않으면 반드시 도로 몸을 내지 않고 의로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의로 이름을 세우지 않는다. 아첨하는 사람은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품어 화를 가벼이 여기고 몸을 무겁게 여겨 기울어 죽음을 하니 무슨 이름을 기르겠는가. 의가 폐하고 덕이 무너지며 몸가짐이 욕됨을 따르니 어찌 높음을 짓는다 하는가.

問曰:「大佞易知乎,小佞易知也?」曰:「大佞易知,小佞難知。」何則?大佞材高,其跡易察;小佞知下,其效難省。何以明之?成事,小盜難覺,大盜易知也。攻城襲邑,剽劫虜掠,發則事覺,道路皆知盜也。穿鑿垣牆,狸步鼠竊,莫知謂誰。(曰)大佞奸深惑亂,其人如大盜易知,人君何難?〔曰〕:「《書》曰:『知人則哲,惟帝難之。『虞舜大聖,兜大佞。大聖難知大佞,大佞不憂大聖。何易之有?」〔曰〕:是謂下知之,上知之。上知之大難小易,下知之大易小難。何則?佞人材高,論說麗美。因麗美之說,人主之威,人(立)〔主〕心并不能責,知或不能覺。小佞材下,對鄉失漏,際會不密,人君警悟,得知其故。大難小易也。屋漏在上,知者在下。漏大,下見之著;漏小,下見之微。或曰:「雍也仁而不佞。」孔子曰:「焉用佞!御人以口給,屢憎於民。」誤設計數,煩擾農商,損下益上,愁民說主。損上益下,忠臣之說也;損下益上,佞人之義也。「季氏富於周公,而求也為之聚斂而附益之,小子鳴鼓而攻之可也。」聚斂,季氏不知其惡,不知百姓所共非也。

묻는다. 「큰 아첨이 알기 쉬운가, 작은 아첨이 알기 쉬운가?」 답한다. 「큰 아첨은 알기 쉽고 작은 아첨은 알기 어렵다.」 어째서인가. 큰 아첨은 재주가 높아 그 자취를 살피기 쉽고 작은 아첨은 앎이 낮아 그 보람을 살피기 어렵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이루어진 일로 작은 도적은 깨닫기 어렵고 큰 도적은 알기 쉽다. 성을 치고 고을을 습격하며 겁탈하고 노략질하면 일어나면 일이 드러나 길에서 다 도적인 줄 안다. 담을 뚫고 살쾡이 걸음과 쥐 훔침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큰 아첨은 간사함이 깊어 홀리고 어지럽히니 그 사람이 큰 도적처럼 알기 쉽다면 임금이 무엇이 어려운가. 답한다. 「「서」에 이르기를 『사람을 알면 밝으니 오직 임금도 어렵게 여긴다』 하였다. 우순은 큰 성인이요 환두는 큰 아첨이다. 큰 성인이 큰 아첨을 알기 어렵고 큰 아첨은 큰 성인을 근심하지 않는다. 무슨 쉬움이 있는가.」 답한다. 이는 아래가 아는 것과 위가 아는 것을 이른 것이다. 위가 앎에는 큰 것이 어렵고 작은 것이 쉬우며 아래가 앎에는 큰 것이 쉽고 작은 것이 어렵다. 어째서인가. 아첨하는 사람은 재주가 높아 논설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말과 임금의 위엄으로 인해 임금의 마음이 아울러 꾸짖을 수 없고 앎이 더러 깨닫지 못한다. 작은 아첨은 재주가 낮아 대답에 빠뜨림이 있고 만남이 치밀하지 않아 임금이 깨달아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큰 것이 어렵고 작은 것이 쉽다. 지붕이 새는 것은 위에 있고 아는 이는 아래에 있다. 샘이 크면 아래에서 봄이 뚜렷하고 샘이 작으면 아래에서 봄이 희미하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옹은 어질되 말을 잘하지 못한다.」 공자가 말하였다. 「어찌 말 잘함을 쓰겠는가! 입의 재빠름으로 사람을 막으면 자주 백성에게 미움받는다.」 계책과 수를 잘못 베풀어 농부와 장사꾼을 번거롭게 하고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니 백성을 시름하게 하고 임금을 기쁘게 한다.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탬은 충신의 말이요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탬은 아첨하는 사람의 뜻이다.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한데 염구가 그를 위해 거두어 모아 보태니 얘들아 북을 울려 치는 것이 옳다.」 거두어 모음은 계씨가 그 악을 모르니 백성이 함께 그르다 하는 바임을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