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程材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7 · 한자 2,662자 · 낭독 10.6분

「논형」 정재편 「程材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論者多謂儒生不及彼文吏,見文吏利便而儒生陸落,則詆訾儒生以為淺短,稱譽文吏謂之深長。是不知儒生,亦不知文吏也。

논하는 이는 흔히 유생이 저 문리에 미치지 못한다 하니, 문리는 이롭고 편하며 유생은 처져 떨어짐을 보고 곧 유생을 헐뜯어 얕고 짧다 하고 문리를 기려 깊고 길다 한다. 이는 유생을 모르는 것이요 또한 문리도 모르는 것이다.

儒生、文吏皆有材智,非文吏材高而儒生智下也,文吏更事,儒生不習也。謂文吏更事,儒生不習,可也;謂文吏深長,儒生淺短,知妄矣。世俗共短儒生,儒生之徒亦自相少。何則?并好仕學宦,用吏為繩表也。儒生有闕,俗共短之;文吏有過,俗不敢訾。歸非於儒生,付是於文吏也。夫儒生材非下於文吏,又非所習之業非所當為也,然世俗共短之者,見將不好用也。將之不好用之者,事多,己不能理,須文吏以領之也。夫論善謀材,施用累能,期於有益。文吏理煩,身役於職,職判功立,將尊其能。儒生栗栗,不能當劇,將有煩疑,不能效力,力無益於時,則官不及其身也。將以官課材,材以官為驗,是故世俗常高文吏,賤下儒生。儒生之下,文吏之高,本由不能之將。世俗之論,緣將好惡。

유생과 문리는 다 재주와 슬기가 있으니 문리는 재주가 높고 유생은 슬기가 낮은 것이 아니라 문리는 일을 겪었고 유생은 익히지 않은 것이다. 문리는 일을 겪었고 유생은 익히지 않았다 함은 옳으나 문리는 깊고 길고 유생은 얕고 짧다 함은 앎이 망령되다. 세속이 함께 유생을 짧다 하고 유생의 무리도 스스로 서로 적다 한다. 어째서인가. 다 벼슬을 좋아하고 벼슬을 배워 아전으로 먹줄과 표지를 삼기 때문이다. 유생에게 모자람이 있으면 세속이 함께 짧다 하고 문리에게 허물이 있으면 세속이 감히 헐뜯지 않는다. 그름을 유생에게 돌리고 옳음을 문리에게 붙인다. 무릇 유생의 재주는 문리보다 낮지 않고 또 익힌 업이 마땅히 할 바가 아닌 것도 아닌데 세속이 함께 짧다 하는 것은 장수가 쓰기 좋아하지 않음을 보아서다. 장수가 쓰기 좋아하지 않는 것은 일이 많아 저가 다스릴 수 없어 문리를 기다려 거느리기 때문이다. 무릇 착함을 논하고 재주를 꾀하며 씀을 베풀고 능함을 쌓음은 유익함을 기약한다. 문리는 번거로움을 다스려 몸이 직분에 부려지고 직분이 판가름되고 공이 서면 장수가 그 능함을 높인다. 유생은 벌벌 떨어 심한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장수에게 번거로운 의심이 있어도 힘을 바치지 못하니 힘이 때에 보탬이 없으면 벼슬이 그 몸에 미치지 않는다. 장수는 벼슬로 재주를 매기고 재주는 벼슬로 증험을 삼으니 이 때문에 세속이 늘 문리를 높이고 유생을 천히 여겨 낮춘다. 유생의 낮음과 문리의 높음은 본디 능하지 못한 장수에서 말미암는다. 세속의 논은 장수의 좋아하고 미워함을 따른다.

今世之將,材高知深,能達眾凡,舉綱持領,事無不定。其置文吏也,備數滿員,足以輔己志。志在修德,務在立化,則夫文吏瓦石,儒生珠玉也。夫文吏能破堅理煩,不能守身,〔不能守〕身,則亦不能輔將。儒生不習於職,長於匡救,將相傾側,諫難不懼。案世間能建蹇蹇之節,成三諫之議,令將檢身自敕,不敢邪曲者,率多儒生。阿意苟取容幸,將欲放失,低嘿不言者,率多文吏。文吏以事勝,以忠負;儒生以節優,以職劣。二者長短,各有所宜。世之將相,各有所取。取儒生者,必軌德立化者也;取文吏者,必優事理亂者也。材不自能則須助,須助則待勁。官之立佐,為力不足也;吏之取能,為材不及也。

지금 세상의 장수가 재주가 높고 앎이 깊어 뭇 평범한 이를 통달하고 벼리를 들고 옷깃을 잡아 일에 정해지지 않음이 없다면, 그가 문리를 둠은 수를 갖추고 인원을 채워 제 뜻을 돕기에 넉넉한 것이다. 뜻이 덕을 닦음에 있고 힘씀이 교화를 세움에 있으면 저 문리는 기와와 돌이요 유생은 구슬과 옥이다. 무릇 문리는 굳센 것을 깨고 번거로움을 다스릴 수 있으나 몸을 지킬 수 없고 몸을 지킬 수 없으면 또한 장수를 도울 수 없다. 유생은 직분에 익히지 않으나 바로잡고 구함에 뛰어나 장수와 재상이 기울어져도 간하고 따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피건대 세상에서 꿋꿋한 절개를 세우고 세 번 간하는 의논을 이루어 장수로 하여금 몸을 검사하고 스스로 신칙하여 감히 사악하고 굽지 못하게 하는 이는 대개 유생이 많다. 뜻에 아첨하고 구차히 용납되기를 취하며 장수가 방종하고 잃으려 하여도 고개 숙이고 말하지 않는 이는 대개 문리가 많다. 문리는 일로 이기고 충성으로 지며 유생은 절개로 뛰어나고 직분으로 못하다. 둘의 길고 짧음은 저마다 마땅한 바가 있다. 세상의 장수와 재상은 저마다 취하는 바가 있다. 유생을 취하는 이는 반드시 덕을 본받고 교화를 세우는 이요 문리를 취하는 이는 반드시 일을 우선하고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이다. 재주가 스스로 능하지 못하면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굳센 것을 기다린다. 벼슬에 보좌를 세움은 힘이 부족해서요 아전의 능함을 취함은 재주가 미치지 못해서다.

日之照幽,不須燈燭;賁、育當敵,不待輔佐。使將相知力若日之照幽,賁、育之難敵,則文吏之能無所用也。病作而醫用,禍起而巫使。如自能案方和葯,入室求祟,則醫不售而巫不進矣。橋梁之設也,足不能越溝也;車馬之用也,走不能追遠也。足能越溝,走能追遠,則橋梁不設、車馬不用矣。天地事物,人所重敬,皆力劣知極,須仰以給足者也。今世之將相,不責己之不能,而賤儒生之不習;不原文吏之所得得用,而尊其材謂之善吏。非文吏,憂不除;非文吏,患不救:是以選舉取常故,案吏取無害。儒生無閥閱,所能不能任劇,故陋於選舉,佚於朝庭。

해가 그윽한 데를 비춤에 등불과 촛불이 필요 없고 맹분과 하육이 적을 당함에 보좌를 기다리지 않는다. 장수와 재상의 앎과 힘이 해가 그윽한 데를 비추듯 하고 맹분과 하육이 적을 당하기 어렵듯 하다면 문리의 능함은 쓸 데가 없다. 병이 나면 의원을 쓰고 화가 일어나면 무당을 부린다. 스스로 처방을 살펴 약을 짓고 방에 들어가 빌미를 구할 수 있다면 의원이 팔리지 않고 무당이 나아가지 못한다. 다리를 놓는 것은 발이 도랑을 넘을 수 없어서요 수레와 말을 쓰는 것은 달림이 먼 데를 쫓을 수 없어서다. 발이 도랑을 넘을 수 있고 달림이 먼 데를 쫓을 수 있으면 다리를 놓지 않고 수레와 말을 쓰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일과 물건에서 사람이 무겁게 여기고 공경하는 것은 다 힘이 못하고 앎이 다하여 우러러 넉넉하게 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세상의 장수와 재상은 제가 능하지 못함을 꾸짖지 않고 유생이 익히지 않음을 천히 여기며, 문리가 얻어 쓰이는 까닭을 캐지 않고 그 재주를 높여 착한 아전이라 한다. 문리가 아니면 근심이 없어지지 않고 문리가 아니면 근심이 구해지지 않는다 하니, 이 때문에 사람을 뽑을 때 늘 하던 옛것을 취하고 아전을 살핌에 해 없음을 취한다. 유생은 문벌이 없고 능한 바가 심한 일을 맡을 수 없으므로 사람 뽑는 자리에서 초라하고 조정에 빠진다.

聰慧捷疾者,隨時變化,學知吏事,則踵文吏之後,未得良善之名。守古循志,案禮修義,輒為將相所不任,文吏所毗戲。不見任則執欲息退,見毗戲則意不得。臨職不勸,察事不精,遂為不能,斥落不習。有俗材而無雅度者,學知吏事,亂於文吏,觀將所知,適時所急,轉志易務,晝夜學問,無所羞恥,期於成能名文而已。其高志妙操之人,恥降意損崇,以稱媚取進,深疾才能之儒,(泊)〔汨〕入文吏之科,堅守高志,不肯下學。亦時或精暗不及,意疏不密,臨事不識,對向謬誤;拜起不便,進退失度,秦記言事,蒙士解過;援引古義,割切將欲,直言一指,觸諱犯忌;封蒙約縛,簡繩檢署,事不如法,文辭卓詭,辟刺離實,曲不應義。故世俗輕之,文吏薄之,將相賤之。

총명하고 민첩한 이는 때를 따라 변화하여 아전의 일을 배워 알면 문리의 뒤를 잇되 어질고 착하다는 이름은 얻지 못한다. 옛것을 지키고 뜻을 따르며 예를 살피고 의를 닦으면 곧 장수와 재상이 맡기지 않는 바가 되고 문리가 놀리는 바가 된다. 맡김을 받지 못하면 뜻을 잡고 물러나려 하고 놀림을 당하면 뜻이 얻지 못한다. 직분에 임하여 힘쓰지 않고 일을 살핌에 정밀하지 않아 마침내 능하지 못하게 되어 익히지 않았다고 물리쳐 떨어진다. 속된 재주는 있으나 바른 도량이 없는 이는 아전의 일을 배워 알아 문리에 섞여 장수가 아는 바를 보고 때의 급한 바에 맞추어 뜻을 바꾸고 힘씀을 바꾸어 밤낮 배우고 물어 부끄러워하는 바가 없어 능하다는 이름을 이루기를 기약할 뿐이다. 그 뜻이 높고 몸가짐이 묘한 사람은 뜻을 낮추고 높음을 덜어 아첨으로 나아감을 취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재능 있는 유자가 문리의 과에 빠져 듦을 깊이 미워하여 높은 뜻을 굳게 지켜 낮추어 배우려 하지 않는다. 또한 때로 정밀함이 어두워 미치지 못하고 뜻이 성글어 치밀하지 않으며 일에 임하여 알지 못하고 대답이 그릇되며, 절하고 일어남이 편하지 않고 나아가고 물러남이 법도를 잃으며 기록을 아뢰고 일을 말함에 어리석은 선비처럼 잘못을 풀고, 옛 뜻을 끌어 장수의 바람을 베어 끊고 곧은 말로 한 가지를 가리켜 꺼림을 건드리고 기휘를 범하며, 봉하고 묶고 검서함에 일이 법과 같지 않고 글이 뛰어나나 기괴하여 실상을 떠나고 굽어 뜻에 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속이 가벼이 여기고 문리가 박하게 여기며 장수와 재상이 천히 여긴다.

是以世俗學問者,不肯竟經明學,深知古今,急欲成一家章句,義理略具,同(超)〔趨〕學史書,讀律諷令,治作(情)〔請〕奏,習對向,滑(習)跪拜,家成室就,召署輒能。徇今不顧古,趨仇不存志,競進不案禮,廢經不念學。是以古經廢而不修,舊學暗而不明,儒者寂於空室,文吏嘩於朝堂。材能之士,隨世驅馳;節操之人,守隘屏竄。驅馳日以巧,屏竄日以拙。非材頓知不及也,希見闕為,不狎習也。蓋足未嘗行堯、禹問曲折,目未嘗見孔、墨問形象。

이 때문에 세속의 배우고 묻는 이는 경을 다하고 배움을 밝히며 고금을 깊이 알려 하지 않고 급히 한 집의 장구를 이루어 의리가 대략 갖추어지면 함께 사서를 배우고 율을 읽고 영을 외며 청주를 짓고 대답을 익히며 꿇어 절함을 매끄럽게 하여 집이 이루어지고 방이 갖추어지면 부름을 받아 임명되매 곧 능하다. 지금을 따라 옛것을 돌아보지 않고 짝을 좇아 뜻을 두지 않으며 나아감을 다투어 예를 살피지 않고 경을 폐하여 배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옛 경이 폐하여 닦이지 않고 옛 배움이 어두워 밝지 않아 유자는 빈 방에서 적막하고 문리는 조정에서 떠들썩하다. 재능의 선비는 세상을 따라 달리고 절조의 사람은 좁은 데를 지켜 숨어 달아난다. 달리면 날로 교묘해지고 숨어 달아나면 날로 서투르다. 재주가 둔하고 앎이 미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드물게 보고 모자라게 하여 익히지 않아서다. 무릇 발이 일찍이 요·우에게 가서 곡절을 묻지 않았고 눈이 일찍이 공자·묵자를 보고 형상을 묻지 않았다.

齊部世刺繡,恆女無不能;襄邑俗織錦,鈍婦無不巧。(日)〔目〕見之,日為之,手狎也。使材士未嘗見,巧女未嘗為,異事詭手,暫為卒睹,顯露易為者,猶憒憒焉。方今論事不謂希更,而曰材不敏;不曰未嘗為,而曰知不達。失其實也。儒生材無不能敏,業無不能達,志不(有)〔肯〕為。今俗見不習謂之不能,睹不為謂之不達。科用累能,故文吏在前,儒生在後。是從朝庭謂之也。如從儒堂訂之,則儒生在上,文吏在下矣。從農論田,田夫勝;從商講賈,賈人賢。今從朝庭謂之,文吏,朝庭之人也,幼為干吏,以朝庭為田畝,以刀筆為耒耜,以文書為農業,猶家人子弟生長宅中,其知曲折愈於賓客也。賓客暫至,雖孔、墨之材,不能分別。儒生猶賓客,文吏猶子弟也。

제나라 고을에서는 대대로 수를 놓으니 예사 여자가 못하는 이가 없고 양읍에서는 풍속이 비단을 짜니 둔한 아낙도 교묘하지 않은 이가 없다. 눈으로 보고 날마다 하여 손에 익은 것이다. 재주 있는 선비가 일찍이 보지 못하고 교묘한 여자가 일찍이 하지 않아 다른 일과 낯선 손으로 잠깐 하고 갑자기 보면 드러나 쉬운 것도 오히려 어리둥절하다. 지금 일을 논함에 드물게 겪었다 하지 않고 재주가 민첩하지 않다 하며, 일찍이 하지 않았다 하지 않고 앎이 통달하지 못하였다 한다.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유생은 재주가 민첩하지 못할 것이 없고 업에 통달하지 못할 것이 없으나 뜻이 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세속은 익히지 않음을 보고 능하지 못하다 하고 하지 않음을 보고 통달하지 못하였다 한다. 과목으로 쓰고 능함을 쌓으므로 문리가 앞에 있고 유생이 뒤에 있다. 이는 조정에서 이른 것이다. 유가의 집에서 바로잡으면 유생이 위에 있고 문리가 아래에 있다. 농부를 따라 밭을 논하면 밭 가는 사내가 이기고 상인을 따라 장사를 말하면 장사꾼이 낫다. 지금 조정에서 이르면 문리는 조정의 사람이라 어려서 간리가 되어 조정을 밭이랑으로 삼고 도필을 쟁기와 보습으로 삼으며 문서를 농업으로 삼으니 집안 자제가 집 안에서 나고 자라 그 곡절을 아는 것이 손님보다 나은 것과 같다. 손님은 잠깐 이르니 비록 공자·묵자의 재주라도 가릴 수 없다. 유생은 손님 같고 문리는 자제 같다.

以子弟論之,則文吏曉於儒生,儒生暗於文吏。今世之將相,知子弟以文吏為慧,不能知文吏以狎為能;知賓客以暫為固,不知儒生以希為拙:惑蔽暗昧,不知類也。一縣佐史之材,任郡掾史。一郡修行之能,堪州從事。然而郡不召佐史,州不取修行者,巧習無害,文少德高也。五曹自有條品,簿書自有故事,勤力玩弄,成為巧吏,安足多矣。賢明之將,程吏取材,不求習論高,存志不顧文也。

자제로 논하면 문리는 유생보다 밝고 유생은 문리보다 어둡다. 지금 세상의 장수와 재상은 자제가 문리로 슬기로움을 알되 문리가 익숙함으로 능함을 알지 못하고, 손님이 잠깐이라 굳음을 알되 유생이 드묾으로 서투름을 알지 못하니 홀리고 가려 어두워 무리를 알지 못한다. 한 현 좌사의 재주가 군의 연사를 맡는다. 한 군의 행실 닦은 능함이 주의 종사를 감당한다. 그러나 군이 좌사를 부르지 않고 주가 행실 닦은 이를 취하지 않는 것은 교묘히 익힘은 해가 없으나 글이 적고 덕이 높기 때문이다. 오조는 절로 조목이 있고 부서는 절로 옛일이 있으니 힘써 다루어 교묘한 아전이 됨이 어찌 많다 하기에 넉넉하겠는가. 어질고 밝은 장수는 아전을 매기고 재주를 취함에 익힘을 구하지 않고 높음을 논하며 뜻을 두고 글을 돌아보지 않는다.

稱良吏曰忠,忠之所以為效,非簿書也。夫事可學而知,禮可習而善,忠節公行,不可立也。文吏、儒生皆有所志,然而儒生務忠良,文吏趨理事。苟有忠良之業,疏拙於事,無損於高。論者以儒生不曉簿書,置之於下第。法令比例,吏斷決也。

착한 아전을 일컬어 충성이라 하니 충성이 보람이 되는 까닭은 부서가 아니다. 무릇 일은 배워 알 수 있고 예는 익혀 잘할 수 있으나 충성과 절개와 공정한 행실은 세울 수 없다. 문리와 유생이 다 뜻하는 바가 있으나 유생은 충성과 어짊에 힘쓰고 문리는 일 다스림에 달린다. 진실로 충성과 어짊의 업이 있으면 일에 성글고 서툴러도 높음에 덜함이 없다. 논하는 이는 유생이 부서를 알지 못한다 하여 아래 등급에 둔다. 법령의 비례는 아전이 결단하는 것이다.

文吏治事,必問法家。縣官事務,莫大法令。必以吏職程高,是則法令之家宜最為上。或曰:「固然,法令,漢家之經,吏議決焉。事定於法,誠為明矣。」

문리가 일을 다스림에 반드시 법가에게 묻는다. 현관의 사무에 법령보다 큰 것이 없다. 반드시 아전의 직분으로 높음을 매긴다면 이는 법령의 집이 마땅히 가장 위가 된다. 어떤 이는 말한다. 「본디 그렇다. 법령은 한나라의 경이라 아전이 의논하여 결단한다. 일이 법에 정해짐이 참으로 밝다.」

曰:夫《五經》亦漢家之所立,儒生善政大義,皆出其中。董仲舒表《春秋》之義,稽合於律,無乖異者。然則《春秋》,漢之經,孔子制作,垂遺於漢。論者徒尊法家,不高《春秋》,是暗蔽也。《春秋》、《五經》義相關穿,既是《春秋》,不大《五經》,是不通也。《五經》以道為務,事不如道,道行事立,無道不成。然則儒生所學者,道也;文吏所學者,事也。假使材同,當以道學。如比於文吏,洗泥者以水,燔腥生者用火。水火,道也,用之者事也,事末於道。儒生治本,文吏理末,道本與事末比,定尊卑之高下,可得程矣。

답한다. 무릇 「오경」도 한나라가 세운 바라 유생의 착한 정사와 큰 뜻이 다 그 가운데서 나온다. 동중서가 「춘추」의 뜻을 드러내어 율에 맞추어 살피니 어긋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춘추」는 한나라의 경으로 공자가 지어 한나라에 남긴 것이다. 논하는 이가 한갓 법가를 높이고 「춘추」를 높이지 않으니 이는 어둡고 가려진 것이다. 「춘추」와 「오경」은 뜻이 서로 관통하니 이미 「춘추」를 옳다 하면서 「오경」을 크게 여기지 않으니 이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오경」은 도로 힘씀을 삼으니 일은 도만 못하고 도가 행해지면 일이 서고 도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유생이 배우는 것은 도요 문리가 배우는 것은 일이다. 가령 재주가 같다면 마땅히 도의 배움으로 해야 한다. 문리에 견주면 진흙을 씻는 이는 물로 하고 날것을 굽는 이는 불을 쓴다. 물과 불은 도요 쓰는 것은 일이니 일은 도의 끝이다. 유생은 근본을 다스리고 문리는 끝을 다스리니 도의 근본과 일의 끝을 견주어 높고 낮음의 위아래를 정하면 매길 수 있다.

堯以俊德致黎民雍。孔子曰:「孝悌之至,通於神明。」

요는 뛰어난 덕으로 백성이 화목함을 이르게 하였다. 공자가 말하였다. 「효도와 공손의 지극함은 신명에 통한다.」

張釋之曰:「秦任刀筆小吏,陵遲至於二世,天下土崩。」

장석지가 말하였다. 「진나라가 붓 놀리는 작은 아전에게 맡겨 차츰 쇠하여 이세에 이르러 천하가 흙 무너지듯 하였다.」

張湯、趙禹,漢之惠吏,太史公《序累》置於酷部而致土崩,孰與通於神明,令人填膺也?將相知經學至道,而不尊經學之生,彼見經學之生能不及治事之吏也。牛刀可以割雞,雞刀難以屠牛。刺繡之師,能縫帷裳。納縷之工,不能織錦。

장탕과 조우는 한나라의 은혜로운 아전인데 태사공이 「서루」에서 혹리 부에 두어 흙 무너짐에 이르게 하였다 하였으니 신명에 통함에 견주어 어느 것이 사람의 가슴을 메우는가. 장수와 재상이 경학이 지극한 도임을 알면서 경학의 유생을 높이지 않는 것은 저들이 경학의 유생의 능함이 일 다스리는 아전에 미치지 못함을 보아서다. 소 잡는 칼로 닭을 가를 수 있으나 닭 잡는 칼로 소를 잡기 어렵다. 수놓는 스승은 휘장과 치마를 꿰맬 수 있다. 실을 꿰는 장인은 비단을 짤 수 없다.

儒生能為文吏之事,文吏不能立儒生之學。文吏之能,誠劣不及,儒生之不習,實優而不為。禹決江河,不秉棃鍤;周公筑雒,不把筑杖。夫筆墨簿書,棃鍤筑杖之類也,而欲合志大道者躬親為之,是使將軍戰而大匠也。說一經之生,治一曹之事,旬月能之。典一曹之吏,學一經之業,一歲不能立也。何則?吏事易知,而經學難見也。儒生擲經,窮竟聖意。文吏搖筆,考跡民事。夫能知大聖之意,曉細民之情,孰者為難?以立難之材,含懷章句,十萬以上,行有餘力。博學覽古今,計胸中之穎,出溢十萬。文吏所知,不過辨解簿書。富累千金,孰與貲直百十也?京稟知丘,孰與委聚如坁也?

유생은 문리의 일을 할 수 있으나 문리는 유생의 배움을 세울 수 없다. 문리의 능함은 참으로 못하여 미치지 못하고 유생의 익히지 않음은 실로 뛰어나되 하지 않는 것이다. 우가 강과 하수를 트는데 쟁기와 삽을 잡지 않았고 주공이 낙읍을 쌓는데 달굿대를 잡지 않았다. 무릇 붓과 먹과 부서는 쟁기와 삽과 달굿대의 무리인데 뜻을 큰 도에 합한 이에게 몸소 하기를 바라니 이는 장군에게 싸우게 하면서 큰 목수 노릇을 시키는 것이다. 한 경을 말하는 유생이 한 조의 일을 다스리면 열흘이나 한 달에 능하다. 한 조를 맡은 아전이 한 경의 업을 배우면 한 해에도 세우지 못한다. 어째서인가. 아전의 일은 알기 쉽고 경학은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생은 경을 던져 성인의 뜻을 끝까지 파고들고 문리는 붓을 흔들어 백성의 일의 자취를 살핀다. 무릇 큰 성인의 뜻을 알 수 있음과 작은 백성의 정을 앎에 어느 것이 어려운가. 어려움을 세우는 재주로 장구를 품음이 십만 이상이니 행함에 남는 힘이 있다. 널리 배워 고금을 보아 가슴속의 빼어남을 헤아리면 십만을 넘쳐 나온다. 문리가 아는 바는 부서를 가려 푸는 데 지나지 않는다. 부유하기 천금을 쌓음이 재물이 백이나 십인 것에 견주어 어떠한가. 서울 창고의 앎이 언덕 같음이 모아 쌓음이 모래섬 같음에 견주어 어떠한가.

世名材為名器,器大者盈物多。然則儒生所懷,可謂多矣。

세상은 재주를 이름하여 이름난 그릇이라 하니 그릇이 큰 것은 담는 물건이 많다. 그러니 유생이 품은 바는 많다 할 만하다.

蓬生麻間,不扶自直;白紗入緇,不染自黑。此言所習善惡,變易質性也。儒生之性,非能皆善也,被服聖教,日夜諷詠,得聖人之操矣。文吏幼則筆墨,手習而行,無篇章之誦,不聞仁義之語。長大成吏,舞文巧法,徇私為己,勉赴權利。考事則受賂,臨民則采漁,處右則弄權,幸上則賣將。一旦在位,鮮冠利劍。一歲典職,田宅并兼。性非皆惡,所習為者違聖教也。故習善儒路,歸化慕義,志操則勵,變從高明。將(見)〔相〕之顯用儒生:東海相宗叔,廣召幽隱,春秋會饗,設置三科,以第補吏。一府員吏,儒生什九。陳留太守陳子瑀,開廣儒路,列曹掾史,皆能教授。簿書之吏,什置一二。兩將知道事之理,曉多少之量,故世稱褒其名,書記經累其行也。

쑥이 삼 사이에 나면 붙들지 않아도 절로 곧고 흰 깁이 검은 물에 들면 물들이지 않아도 절로 검다. 이는 익히는 바의 착하고 악함이 바탕과 성품을 바꾼다는 말이다. 유생의 성품이 다 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성인의 가르침을 입고 밤낮 외고 읊어 성인의 몸가짐을 얻는다. 문리는 어려서는 붓과 먹으로 손이 익어 행하고 편장의 외움이 없으며 인의의 말을 듣지 못한다. 자라 아전이 되어 글을 춤추고 법을 교묘히 하며 사사로움을 좇아 저를 위하고 권세와 이익에 힘써 달린다. 일을 살피면 뇌물을 받고 백성에 임하면 캐어 고기 잡듯 하며 오른쪽에 있으면 권세를 희롱하고 위에 총애받으면 장수를 판다. 하루아침에 자리에 있으면 고운 관에 날카로운 칼이요 한 해 직분을 맡으면 밭과 집을 아울러 겸한다. 성품이 다 악한 것이 아니라 익혀 하는 바가 성인의 가르침을 어겨서다. 그러므로 착한 유가의 길을 익히면 교화에 돌아가고 의를 사모하며 뜻과 몸가짐이 곧 힘써지고 변하여 높고 밝음을 따른다. 장수와 재상이 유생을 드러내어 쓴 일로, 동해상 종숙이 널리 숨은 이를 불러 봄가을에 모여 잔치하고 삼과를 두어 차례로 아전을 보충하니 한 부의 원리가 유생이 열에 아홉이었다. 진류태수 진자우가 유가의 길을 열어 넓히니 여러 조의 연사가 다 가르칠 수 있었고 부서의 아전은 열에 하나둘을 두었다. 두 장관이 도와 일의 이치를 알고 많고 적음의 양을 깨달았으므로 세상이 그 이름을 일컬어 기리고 기록이 그 행실을 거듭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