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短篇
《程材》、《量知》,言儒生、文吏之材,不能相過;以儒生修大道,以文吏曉簿書,道勝於事,故謂儒生頗愈文吏也。此職業外相程相量也。其內各有所以為短,未實謝也。夫儒生能說一經,自謂通大道驕文吏;文吏曉簿書,自謂文無害以戲儒生。各持滿而自(藏)〔臧〕,非彼而是我,不知所為短,不悟於己未足。《論衡》之,將使〔〕然各知所(之)〔乏〕。夫儒生所短,不徒以不曉簿書;文吏所劣,不徒以不通大道也。反以閉暗不覽古今,不能各自知其所業之事未具足也。二家各短,不能自知也。世之論者,而亦不能訓之,如何?
「정재」와 「양지」에서 유생과 문리의 재주가 서로 지나칠 수 없으나, 유생은 큰 도를 닦고 문리는 부서를 깨달아 도가 일보다 나으므로 유생이 자못 문리보다 낫다 하였다. 이는 직업 밖으로 서로 매기고 서로 헤아린 것이다. 그 안에 저마다 짧은 바가 있는데 아직 실로 사죄하지 않았다. 무릇 유생은 한 경을 말할 수 있으면 스스로 큰 도에 통하였다 하여 문리에게 교만하고, 문리는 부서를 깨달으면 스스로 글에 해가 없다 하여 유생을 놀린다. 저마다 가득 참을 지녀 스스로 옳다 하고 저를 그르다 하고 나를 옳다 하여 짧은 바를 알지 못하고 저에게 부족함을 깨닫지 못한다. 「논형」이 이를 논하여 각각 모자란 바를 알게 하려 한다. 무릇 유생의 짧음은 한갓 부서를 깨닫지 못함뿐이 아니요 문리의 못함은 한갓 큰 도에 통하지 못함뿐이 아니다. 도리어 닫히고 어두워 고금을 보지 않아 저마다 그 업으로 삼은 일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 두 집이 저마다 짧은데 스스로 알지 못한다. 세상의 논하는 이도 또한 가르치지 못하니 어찌하는가.
夫儒生之業,《五經》也,南面為師,旦夕講授章句,滑習義理,究備於《五經》可也。《五經》之後,秦、漢之事,(無)不能知者,短也。夫知古不知今,謂之陸沉,然則儒生,所謂陸沉者也。《五經》之前,至於天地始開、帝王初立者,主名為誰,儒生又不知也。夫知今不知古,謂之盲瞽。《五經》比於上古,猶為今也。徒能說經,不曉上古,然則儒生,所謂盲瞽者也。
무릇 유생의 업은 「오경」이니 남면하여 스승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장구를 강론하여 가르치고 의리를 매끄럽게 익혀 「오경」에 갖추어 다하면 된다. 「오경」 뒤로 진·한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은 짧음이다. 무릇 옛것을 알고 지금을 모르는 것을 육침이라 하니 그러면 유생은 이른바 육침이다. 「오경」 앞으로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고 제왕이 처음 선 데 이르러 주인의 이름이 누구인지 유생이 또 모른다. 무릇 지금을 알고 옛것을 모르는 것을 눈멀었다 한다. 「오경」은 상고에 견주면 오히려 지금이다. 한갓 경을 말할 수 있고 상고를 깨닫지 못하니 그러면 유생은 이른바 눈먼 이다.
儒生猶曰:「上古久遠,其事暗昧,故經不載而師不說也。」
유생은 오히려 말한다. 「상고는 오래고 멀어 그 일이 어두우므로 경이 싣지 않고 스승이 말하지 않는다.」
夫三王之事雖近矣,經雖不載,義所連及,《五經》所當共知,儒生所當審說也。夏自禹向國,幾載而至於殷;殷自湯幾祀而至於周;周自文王幾年而至於秦。桀亡夏而紂棄殷,滅周者何王也?周猶為遠,秦則漢之所伐也。夏始於禹,殷本於湯,周祖后稷,秦初為人者誰?秦燔《五經》,坑殺儒士,《五經》之家所共聞也。秦何起而燔《五經》,何感而坑儒生?秦則前代也。漢國自儒生之家也,從高祖至今朝幾世?歷年訖今幾載?
무릇 삼왕의 일은 비록 가까우니 경이 비록 싣지 않아도 뜻이 이어 미치는 바라 「오경」이 마땅히 함께 알아야 하고 유생이 마땅히 살펴 말해야 한다. 하나라는 우가 나라를 가진 뒤로 몇 해에 은나라에 이르렀고, 은나라는 탕부터 몇 사에 주나라에 이르렀고, 주나라는 문왕부터 몇 년에 진나라에 이르렀는가. 걸이 하나라를 망치고 주가 은나라를 버렸는데 주나라를 멸한 것은 어느 왕인가. 주나라는 오히려 멀고 진나라는 곧 한나라가 친 바다. 하나라는 우에서 비롯하고 은나라는 탕에 근본하고 주나라는 후직을 조상으로 하는데 진나라의 처음 사람 된 이는 누구인가. 진나라가 「오경」을 불태우고 유생을 묻어 죽인 것은 「오경」의 집이 함께 듣는 바다. 진나라는 무엇에서 일어나 「오경」을 불태우고 무엇에 느껴 유생을 묻었는가. 진나라는 곧 앞 시대다. 한나라는 유생의 집에서부터니 고조부터 지금 조정까지 몇 세인가. 해를 지나 지금까지 몇 해인가.
初受何命?復獲何瑞?得天下難易孰與殷、周?家人子弟,學問歷幾歲,人問之曰:「居宅幾年?祖先何為?」
처음 무슨 명을 받았는가. 다시 무슨 상서를 얻었는가. 천하를 얻음이 어렵고 쉬움이 은·주와 견주어 어떠한가. 집안의 자제가 학문한 지 몇 해 지나 사람이 묻기를 「집에 산 지 몇 해인가? 조상은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데,
不能知者,愚子弟也。然則儒生不能知漢事,世之愚蔽人也。「溫故知新,可以為師。」
알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제다. 그러면 유생이 한나라 일을 알지 못함은 세상의 어리석고 가려진 사람이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古今不知,稱師如何!彼人問曰:二尺四寸,聖人文語,朝夕講習,義類所及,故可務知。漢事未載於經,名為尺籍短書,比於小道,其能知,非儒者之貴也。儒不能都曉古今,欲各別說其經,經事義類,乃以不知為貴也。
고금을 모르면서 스승이라 일컬음이 어떠한가! 저 사람이 묻는다. 두 자 네 치는 성인의 글과 말이라 아침저녁으로 강습하고 뜻과 무리가 미치는 바이므로 힘써 알 수 있다. 한나라 일은 경에 실리지 않아 이름하여 척적과 짧은 글이라 작은 도에 견주니 그 알 수 있음이 유자의 귀함이 아니다. 유자가 고금을 다 깨닫지 못하고 저마다 따로 그 경을 말하려 하니 경의 일과 뜻의 무리에 곧 알지 못함을 귀함으로 삼는 것이다.
事不曉,不以為短,請復別問儒生,各以其經旦夕之所講說。先問《易》家:《易》本何所起?造作之者為誰?彼將應曰:「伏羲作八卦,文王演為六十四,孔子作《象》、《繫辭》。三聖重業,《易》乃具足。」
일을 깨닫지 못함을 짧다 여기지 않으니 청컨대 다시 따로 유생에게 저마다 그 경으로 아침저녁 강설하는 바를 묻자. 먼저 「역」의 집에 묻는다. 「역」은 본디 어디서 일어났는가. 지은 이는 누구인가. 저들이 장차 응하기를 「복희가 팔괘를 짓고 문왕이 펴서 육십사괘로 하고 공자가 「상」과 「계사」를 지었다. 세 성인이 업을 거듭하여 「역」이 곧 갖추어졌다」 할 것이다.
問之曰:「《易》有三家,一日《連山》,二曰《歸藏》,三曰《周易》。伏羲所作,文王所造,《連山》乎?《歸藏》,《周易》也?秦燔《五經》,《易》何以得脫?漢興幾年而復立?宣帝之時,河內女子坏老屋,得《易》一篇,名為何《易》?此時《易》具足未?」問《尚書》家曰:「今旦夕所授二十九篇,奇有百二篇,又有百篇。二十九篇何所起?百二篇何所造?秦焚諸書之時,《尚書》諸篇皆何在?漢興,始錄《尚書》者何帝?初受學者何人?」問《禮》家曰:「前孔子時,周已制禮,殷禮夏禮,凡三王因時損益,篇有多少,文有增減,不知今禮,周乎?殷、夏也?」
묻는다. 「「역」에 세 집이 있으니 하나는 「연산」이요 둘은 「귀장」이요 셋은 「주역」이다. 복희가 지은 것과 문왕이 지은 것은 「연산」인가, 「귀장」인가, 「주역」인가. 진나라가 「오경」을 불태웠는데 「역」은 어떻게 벗어났는가. 한나라가 일어나 몇 해에 다시 세웠는가. 선제 때 하내의 여자가 낡은 집을 헐다가 「역」 한 편을 얻었는데 이름이 무슨 「역」인가. 이때 「역」이 갖추어졌는가 아닌가.」 「상서」의 집에 묻는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전수하는 것은 이십구 편인데 특별히 백이 편이 있고 또 백 편이 있다. 이십구 편은 어디서 일어났고 백이 편은 무엇으로 지어졌는가. 진나라가 여러 책을 태울 때 「상서」의 여러 편은 다 어디 있었는가. 한나라가 일어나 처음 「상서」를 기록한 이는 어느 임금인가. 처음 배움을 받은 이는 어느 사람인가.」 「예」의 집에 묻는다. 「공자 앞 때에 주나라가 이미 예를 정하였고 은나라 예와 하나라 예는 무릇 삼왕이 때에 따라 덜고 더하여 편에 많고 적음이 있고 글에 더하고 덞이 있으니, 지금 예가 주나라 것인가, 은·하 것인가 알지 못하겠다.」
彼必以漢承周,將曰:「周禮。」
저들이 반드시 한나라가 주나라를 이었다 하여 장차 「주나라 예다」 할 것이다.
夫周禮六典,又六轉,六六三十六,三百六十,是以周官三百六十也。案今《禮》不見六典,無三百六十官,又不見天子。天子禮廢何時?豈秦滅之哉?宣帝時河內女子坏老屋,得佚《禮》一篇,六十篇中,是何篇是者?
무릇 주나라 예는 육전이요 또 여섯으로 돌려 육육 삼십육이요 삼백육십이니 이 때문에 주나라 벼슬이 삼백육십이다. 살피건대 지금 「예」에 육전이 보이지 않고 삼백육십 벼슬이 없으며 또 천자가 보이지 않는다. 천자의 예가 언제 폐하였는가. 어찌 진나라가 없앤 것인가. 선제 때 하내의 여자가 낡은 집을 헐다가 잃어버린 「예」 한 편을 얻었는데 육십 편 가운데 어느 편이 그것인가.
高祖詔叔孫通制作《儀品》,十(六)〔二〕篇何在?
고조가 숙손통에게 조서하여 「의품」을 지었는데 십이 편은 어디 있는가.
而復定《儀禮》,見在十六篇,秦火之餘也。更秦之時,篇凡有幾?問《詩》家曰:「《詩》作何帝王時也?」
다시 「의례」를 정하니 지금 있는 십육 편은 진나라 불의 나머지다. 진나라 때를 거쳐 편이 무릇 몇이 있었는가. 「시」의 집에 묻는다. 「「시」는 어느 제왕 때 지어졌는가?」
彼將曰:「周衰而《詩》作,蓋康王時也。康王德缺於房,大臣刺晏,故《詩》作。」
저들이 장차 「주나라가 쇠하여 「시」가 지어졌으니 아마 강왕 때다. 강왕이 덕이 방에서 이지러져 대신이 늦음을 찔렀으므로 「시」가 지어졌다」 할 것이다.
夫文、武之隆貴在成、康,康王未衰,《詩》安得作?周非一王,何知其康王也?二王之末皆衰,夏、殷衰時,《詩》何不作?《尚書》曰「詩言志,歌詠言」,此時已有詩也,斷取周以來而謂興於周。古者采詩,詩有文也,今《詩》無書,何知非秦燔《五經》,《詩》獨無餘(禮)〔札〕也?問《春秋》家曰:「孔子作《春秋》,周何王時也?自衛反魯,然後樂正,《春秋》作矣。
무릇 문왕·무왕의 융성함이 성왕·강왕에게 귀한데 강왕이 아직 쇠하지 않았으니 「시」가 어찌 지어졌겠는가. 주나라는 한 왕이 아닌데 어찌 그 강왕임을 아는가. 두 왕의 끝이 다 쇠하였는데 하·은이 쇠할 때 「시」가 어찌 지어지지 않았는가. 「상서」에 「시는 뜻을 말하고 노래는 말을 읊는다」 하니 이때 이미 시가 있었는데 주나라 이래를 끊어 취하여 주나라에서 일어났다 한다. 옛날에 시를 캐니 시에 글이 있었는데 지금 「시」에 글이 없으니 진나라가 「오경」을 불태울 때 「시」만 홀로 남은 찰이 없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아는가. 「춘추」의 집에 묻는다. 「공자가 「춘추」를 지은 것은 주나라 어느 왕 때인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 음악이 바로잡히고 「춘추」가 지어졌다.
自衛反魯,哀公時也。自衛,何君也?俟孔子以何禮,而孔子反魯作《春秋》乎?孔子錄史記以作《春秋》,史記本名《春秋》乎?制作以為經乃歸《春秋》也?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것은 애공 때다. 위나라에서라 함은 어느 임금인가. 공자를 무슨 예로 기다렸기에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와 「춘추」를 지었는가. 공자가 사기를 기록하여 「춘추」를 지었는데 사기의 본디 이름이 「춘추」인가, 지어 경으로 삼아 곧 「춘추」라 돌린 것인가.
法律之家,亦為儒生問曰:「《九章》,誰所作也?」彼聞皋陶作獄,必將曰:「皋陶山。」詰曰:「皋陶,唐、虞時,唐、虞之刑五刑,案今律無五刑之文。」或曰:「蕭何也。」詰曰:「蕭何,高祖時也,孝文之時,齊太倉令淳于(德)〔意〕有罪,征詣長安,其女緹縈為父上書,言肉刑壹施,不得改悔。文帝痛其言,乃改肉刑。案今《九章》象刑,非肉刑也。文帝在蕭何後,知時肉刑也。蕭何所造,反具(肉)〔象〕刑也?而云《九章》蕭何所造乎?」
법률의 집도 유생을 위해 묻는다. 「「구장」은 누가 지은 것인가?」 저들이 고요가 옥을 지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반드시 「고요다」 할 것이다. 따져 말한다. 「고요는 당·우 때인데 당·우의 형벌은 오형이라 살피건대 지금 율에 오형의 글이 없다.」 어떤 이는 「소하다」 한다. 따져 말한다. 「소하는 고조 때인데 효문 때 제나라 태창령 순우의가 죄가 있어 불려 장안에 가니 그 딸 제영이 아비를 위해 글을 올려 육형은 한 번 베풀면 고쳐 뉘우칠 수 없다 하였다. 문제가 그 말을 아파하여 이에 육형을 고쳤다. 살피건대 지금 「구장」은 상형이지 육형이 아니다. 문제는 소하 뒤에 있으니 당시 육형임을 안다. 소하가 지은 것이 도리어 상형을 갖추었는가. 그런데 「구장」을 소하가 지었다 하는가.」
古禮三百,威儀三千,刑亦正刑三百,科條三千。出於禮,入於刑,禮之所去,刑之所取,故其多少同一數也。今《禮經》十六,蕭何律有九章,不相應,又何?
옛 예는 삼백이요 위의는 삼천이며 형벌도 바른 형벌은 삼백이요 과조는 삼천이다. 예에서 나오면 형벌에 들고 예가 버리는 바를 형벌이 취하므로 그 많고 적음이 한 수로 같다. 지금 「예경」은 십육이요 소하의 율은 구장이 있어 서로 응하지 않으니 또 어째서인가.
《五經》題篇,皆以事義別之,至禮與律(獨)(猶)經也,題之,禮言昏禮,律言盜律,何?
「오경」의 편 이름은 다 일과 뜻으로 가르는데 예와 율에 이르러는 오히려 경인데 이름함에 예는 혼례라 말하고 율은 도율이라 말하니 어째서인가.
夫總問儒生以古今之義,儒生不能知,別(名)〔各〕以其經事問之,又不能曉,斯則坐守(何)〔信〕(言)師法、不頗博覽之咎也。文吏自謂知官事,曉簿書。問之曰:「曉知其事,當能究達其義,通見其意否?」
무릇 유생에게 고금의 뜻을 통틀어 물으면 유생이 알지 못하고 따로 저마다 그 경의 일로 물어도 또 깨닫지 못하니 이는 곧 앉아서 스승의 법을 지켜 믿고 자못 널리 보지 않은 허물이다. 문리는 스스로 관의 일을 알고 부서를 깨닫는다 한다. 묻는다. 「그 일을 깨달아 알면 마땅히 그 뜻을 끝까지 통달하고 그 뜻을 통하여 볼 수 있는가?」
文吏必將罔然。問之曰:「古者封侯各專國土,今置太守令長,何義?
문리가 반드시 멍할 것이다. 묻는다. 「옛날에 후를 봉하여 저마다 나라 땅을 오로지하였는데 지금 태수와 영장을 두는 것은 무슨 뜻인가.
古人井田,民為公家耕,今量租,何意?一(業)〔歲〕使民居更一月,何據?年二十三(儒)〔傅〕,十五賦,七歲頭錢二十三,何緣?
옛사람은 정전이라 백성이 공가를 위해 밭 갈았는데 지금 조세를 헤아리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한 해에 백성으로 하여금 한 달 경을 살게 함은 무슨 근거인가. 나이 스물셋에 부역 장부에 올리고 열다섯에 구실을 물리며 일곱 살에 머릿돈 스물셋을 매김은 무슨 연유인가.
有,何帝王時?門戶井灶,何立?社稷、先農、靈星,保祠?歲終逐疫,何驅?使立桃象人於門戶,何旨?挂蘆索於戶上,畫虎於門闌,何放除?
유(有)는 어느 제왕 때인가. 문호와 우물과 부엌은 어찌 세우는가. 사직과 선농과 영성은 무엇을 보답하여 제사하는가. 해 끝에 역귀를 쫓음은 무엇을 몰아내는가. 복숭아 나무 사람을 문에 세우게 함은 무슨 뜻인가. 갈대 새끼를 문 위에 걸고 범을 문틀에 그림은 무엇을 놓아 없애는가.
牆壁書畫厭火丈夫,何見?步之六尺,冠之六寸,何應?有尉史令史,無(承)〔丞〕長史,何制?
담벽에 불을 누르는 장부를 그림은 무엇을 보는가. 걸음의 여섯 자와 관의 여섯 치는 무엇에 응하는가. 위사와 영사는 있는데 승과 장사는 없음은 무슨 제도인가.
兩郡移書曰「敢告卒人」,兩縣不言,何解?郡言事二府曰「敢言之」,司空曰「上」,何狀?賜民爵八級,何法?名曰簪、上造,何謂?
두 군이 문서를 옮기며 「감히 졸인에게 고한다」 하고 두 현은 말하지 않음은 무슨 풀이인가. 군이 두 부에 일을 말함에 「감히 말한다」 하고 사공에게 「올린다」 함은 무슨 모양인가. 백성에게 작 여덟 급을 내림은 무슨 법인가. 이름을 잠뇨·상조라 함은 무슨 뜻인가.
吏上功曰伐閱,名籍墨(將)〔狀〕,何指?七十賜王杖,何起?著鳩於杖末,不著爵,何杖?苟以鳩為善,不賜而賜鳩杖,而不爵,何說?日分六十,漏之盡(自)〔百〕,鼓之致五,何故?吏衣黑衣,宮闕赤單,何慎?
아전이 공을 올림을 벌열이라 하고 명적을 묵장이라 함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일흔에 왕장을 내림은 어디서 일어났는가. 비둘기를 지팡이 끝에 붙이고 참새를 붙이지 않음은 무슨 지팡이인가. 진실로 비둘기를 착하다 하면서 내리지 않고 비둘기 지팡이를 내리며 작을 내리지 않음은 무슨 말인가. 하루를 육십으로 나누고 물시계가 다함을 백으로 하고 북을 다섯에 이르게 함은 무슨 까닭인가. 아전이 검은 옷을 입고 궁궐이 붉은 홑옷임은 무엇을 삼감인가.
服革於腰,佩刀於右,(舞)〔帶〕劍於左,何(人)備?著(鉤)〔〕於履,冠在於首,何象?
가죽을 허리에 차고 칼을 오른쪽에 차고 검을 왼쪽에 참은 무엇을 갖춤인가. 신에 구를 붙이고 관이 머리에 있음은 무엇을 본뜸인가.
吏居城郭,出乘車馬,坐治文書;起城郭,何王?造車輿,何工?生馬,何地?作書,何人(王)?造城郭及馬所生,難知也,遠也。造車作書,易曉也,必將應曰:「倉頡作書,奚仲作車。」
아전이 성곽에 살고 나가면 수레와 말을 타고 앉아 문서를 다스리는데, 성곽을 일으킨 것은 어느 왕이며 수레를 만든 것은 어느 장인이며 말이 난 것은 어느 땅이며 글을 지은 것은 어느 사람인가. 성곽을 만든 것과 말이 난 곳은 알기 어려우니 멀기 때문이다. 수레를 만들고 글을 지은 것은 알기 쉬우니 반드시 장차 「창힐이 글을 짓고 해중이 수레를 만들었다」 응할 것이다.
詰曰:「倉頡何感而作書?奚仲何起而作車?」
따져 말한다. 「창힐은 무엇에 느껴 글을 지었고 해중은 무엇에서 일어나 수레를 만들었는가?」
又不知也。文吏所當知,然而不知,亦不博覽之過也。夫儒生不覽古今,(何)〔所〕知(一)(永)不過守信經文,滑習章句,解剝互錯,分明乖異。文吏不曉吏道,所能不過案獄考事,移書下記,對(卿)〔鄉〕便給。(之)准〔之〕無一閱備,皆淺略不及,偏駁不純,俱有闕遺,何以相言?
또 알지 못한다. 문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인데 알지 못함은 또한 널리 보지 않은 허물이다. 무릇 유생은 고금을 보지 않아 아는 바가 경문을 지켜 믿고 장구를 매끄럽게 익혀 풀어 벗기고 서로 얽어 어긋남을 분명히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문리는 아전의 도를 깨닫지 못하여 능한 바가 옥사를 살피고 일을 고찰하며 문서를 옮기고 기록을 내리며 향에 대답하기를 편하게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헤아리면 하나도 갖추어 넘김이 없어 다 얕고 간략하여 미치지 못하고 치우쳐 순수하지 않아 다 빠뜨림이 있으니 무엇으로 서로 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