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논형 › 효력편

效力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8 · 한자 2,535자 · 낭독 10.1분

「논형」 효력편 「效力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程才》、《量知》之篇,徒言知學,未言才力也。人有知學,則有力矣。文吏以理事為力,而儒生以學問為力。或問揚子雲曰:「力能扛鴻鼎、揭華旗,知德亦有之乎?」答曰:「百人矣。」

「정재」와 「양지」 편은 한갓 앎과 배움을 말하였고 재주와 힘을 말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앎과 배움이 있으면 힘이 있다. 문리는 일을 다스림으로 힘을 삼고 유생은 학문으로 힘을 삼는다. 어떤 이가 양자운에게 물었다. 「힘이 큰 솥을 들고 화려한 기를 들 수 있는데 앎과 덕에도 그러함이 있는가?」 답하였다. 「백 사람이다.」

夫知德百人者,與彼扛鴻鼎、揭華旗者為料敵也。夫壯士力多者,扛鼎揭旗;儒生力多者,博達疏通。故博達疏通,儒生之力也;舉重拔堅,壯士之力也。《梓材》曰:「強人有王開賢,厥率化民。」

무릇 앎과 덕이 백 사람이라는 것은 저 큰 솥을 들고 화려한 기를 드는 이와 맞선다는 것이다. 무릇 장사로 힘 많은 이는 솥을 들고 기를 들며 유생으로 힘 많은 이는 널리 통달하고 소통한다. 그러므로 널리 통달하고 소통함은 유생의 힘이요 무거운 것을 들고 굳은 것을 뽑음은 장사의 힘이다. 「재재」에 이르기를 「강한 사람이 왕이 되어 어진 이를 열어 그가 거느려 백성을 교화한다」 하였다.

此言賢人亦壯強於禮義,故能開賢,其率化民。化民須禮義,禮義須文章,「行有餘力,則以學文」,能學文,有力之驗也。問曰:「說一經之儒,可謂有力者?」

이 말은 어진 사람도 예의에 굳세고 강하므로 어진 이를 열 수 있고 그가 거느려 백성을 교화한다는 것이다. 백성을 교화함은 예의가 필요하고 예의는 문장이 필요하니 「행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 하니 글을 배울 수 있음은 힘 있는 증험이다. 묻는다. 「한 경을 말하는 유자를 힘 있는 이라 할 수 있는가?」

曰:非有力者也。陳留龐少都每荐諸生之吏,常曰:「王甲某子才能百人。」

답한다. 힘 있는 이가 아니다. 진류 방소도가 여러 유생의 아전을 천거할 때마다 늘 「왕갑 아무개는 재능이 백 사람이다」 하였다.

太守非其能,不答。少都更曰:「言之尚少,王甲某子,才能百萬人。」

태수가 그 능함을 그르다 하여 답하지 않았다. 소도가 다시 말하였다. 「말한 것이 오히려 적으니 왕갑 아무개는 재능이 백만 사람입니다.」

太守怒曰:「親吏妄言。」

태수가 노하여 말하였다. 「친한 아전이 망령된 말을 한다.」

少都曰:「文吏不通(一)經一文,不調師一言。諸生能說百萬章句,非才知百萬人乎!」

소도가 말하였다. 「문리는 한 경 한 글에 통하지 못하고 스승의 한 말도 고르지 못합니다. 여러 유생은 백만 장구를 말할 수 있으니 재주와 앎이 백만 사람이 아닙니까!」

太守無以應。夫少都之言,實也,然猶未也。何則?諸生能傳百萬言,不能覽古今,守信師法,雖辭說多,終不為博。殷、周以前,頗載《六經》,儒生所不能說也。秦、漢之事,儒生不見,力劣不能覽也。

태수가 응할 것이 없었다. 무릇 소도의 말은 실상이나 오히려 아직 아니다. 어째서인가. 여러 유생이 백만 말을 전할 수 있으나 고금을 보지 못하고 스승의 법을 지켜 믿으니 비록 말과 설이 많아도 끝내 넓다 하지 못한다. 은·주 이전은 자못 「육경」에 실렸으나 유생이 말하지 못하는 바다. 진·한의 일은 유생이 보지 못하니 힘이 못하여 볼 수 없어서다.

周監二代,漢監周、秦,周、秦以來,儒生不知;漢欲觀覽,儒生無力。使儒生博觀覽,則為文儒。文儒者,力多於儒生,如少都之言,文儒才能千萬人矣。

주나라는 두 대를 거울삼고 한나라는 주·진을 거울삼는데 주·진 이래를 유생이 알지 못하고 한나라가 보려 하여도 유생은 힘이 없다. 유생이 널리 보게 하면 문유가 된다. 문유란 힘이 유생보다 많으니 소도의 말과 같이 문유는 재능이 천만 사람이다.

曾子曰:「士不可以不弘毅,任重而道遠。仁以為己任,不亦重乎!死而後己,不亦遠乎!」

증자가 말하였다.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짐이 무겁고 길이 멀다. 인으로 제 짐을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그치니 또한 멀지 않은가!」

由此言之,儒者所懷,獨己重矣,志所欲至,獨己遠矣。身載重任,至於終死,不倦不衰,力獨多矣。夫曾子載於仁而儒生載於學,所載不同,輕重均也。夫一石之重,一人挈之,十石以上,二人不能舉也。世多挈一石之任,寡有舉十石之力。儒生所載,非徒十石之重也。地力盛者,草木暢茂。一畝之收,當中田五畝之分。苗田,人知出谷多者地力盛。不知出文多者才知茂,失事理之實矣。夫文儒之力過於儒生,況文吏乎?能舉賢荐士,世謂之多力也。然能舉賢荐士,上書(日)〔占〕記也。能上書(日)〔占〕記者,文儒也。

이로써 말하면 유자가 품은 바는 홀로 무겁고 뜻이 이르려는 바는 홀로 멀다. 몸에 무거운 짐을 싣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게으르지 않고 쇠하지 않으니 힘이 홀로 많다. 무릇 증자는 인을 싣고 유생은 배움을 싣는데 싣는 바는 다르나 가볍고 무거움은 고르다. 무릇 한 섬의 무게는 한 사람이 드나 열 섬 이상은 두 사람도 들 수 없다. 세상에 한 섬의 짐을 드는 이는 많고 열 섬을 드는 힘은 드물다. 유생이 싣는 바는 한갓 열 섬의 무게가 아니다. 땅의 힘이 성한 데는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한 이랑의 거둠이 중간 밭 다섯 이랑의 몫에 맞먹는다. 모 심는 밭에 사람이 곡식을 많이 내는 것이 땅의 힘이 성함을 안다. 글을 많이 내는 것이 재주와 앎이 무성함을 모르니 일의 이치의 실상을 잃은 것이다. 무릇 문유의 힘이 유생보다 지나치는데 하물며 문리랴. 어진 이를 들고 선비를 천거할 수 있으면 세상이 힘이 많다 한다. 그러나 어진 이를 들고 선비를 천거할 수 있음은 글을 올리고 기록을 점하는 것이다. 글을 올리고 기록을 점할 수 있는 이는 문유다.

文儒非必諸生也,賢達用文則是矣。谷子云、唐子高章奏百上,筆有餘力,極言不諱,文不折乏,非夫才知之人不能為也。孔子,周世多力之人也。作《春秋》,刪《五經》,秘書微文,無所不定。山大者雲多,泰山不崇朝(辦)(辨)雨(雨)天下。夫然,則賢者有雲雨之知,故其吐文萬牒以上,可謂多力矣。

문유는 반드시 여러 유생이 아니니 어질고 통달하여 글을 쓰면 그것이다. 곡자운과 당자고는 장주를 백 번 올려 붓에 남는 힘이 있어 말을 다하여 꺼리지 않고 글이 꺾이거나 모자라지 않으니 재주와 앎의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공자는 주나라 세상에 힘 많은 사람이다. 「춘추」를 짓고 「오경」을 산정하며 비서와 미문을 정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산이 크면 구름이 많으니 태산은 아침이 다하기 전에 천하에 비 내린다. 그러니 어진 이는 구름과 비의 앎이 있으므로 그 글을 토함이 만 첩 이상이니 힘이 많다 할 만하다.

世稱力者,常褒烏獲,然則董仲舒、揚子雲,文之烏獲也。秦武王與孟說舉鼎不任,絕脈而死。少文之人,與董仲舒等涌胸中之思,必將不任,有絕脈之變。王莽之時,省《五經》章句皆為二十萬,博士弟子郭路夜定舊說,死於燭下,精思不任,絕脈氣減也。顏氏之子,已曾馳過孔子於塗矣,劣倦罷極,髪白齒落。夫以庶幾之材,猶有仆頓之禍,孔子力優,顏淵不任也。才力不相如,則其知(思)〔惠〕不相及也。勉自什伯,鬲中嘔血,失魂狂亂,遂至氣絕。書五行之牘,(書)〔奏〕十(奏)〔言〕之記,其才劣者,筆墨之力尤難,況乃連句結章,篇至十百哉!力獨多矣。江、河之水,馳涌滑漏,度地長遠,無枯竭之流,本源盛矣。知江、河之流遠,地中之源盛,不知萬牒之人,胸中之才茂,迷惑者也。故望見驥足,不異於眾馬之蹄,躡平陸而馳騁,千里之跡,斯須可見。夫馬足人手,同一實也,稱驥之足,不荐文人之手,不知類也。夫能論筋力以見比類者,則能取文力之人,立之朝庭。故夫文力之人,助有力之將,乃能以力為功。有力無助,以力為禍。何以驗之?長巨之物,強力之人,乃能舉之。重任之車,強力之牛,乃能挽之。是任車上阪,強牛引前,力人推後,乃能升逾。如牛羸人罷,任車退卻,還墮坑谷,有破覆之敗矣。文儒懷先王之道,含百家之言,其難推引,非徒任車之重也。荐致之者,罷羸無力,遂卻退竄於岩穴矣。

세상이 힘을 일컬음에 늘 오획을 기리니 그러면 동중서와 양자운은 글의 오획이다. 진 무왕이 맹열과 솥을 들다가 견디지 못하여 맥이 끊겨 죽었다. 글이 적은 사람이 동중서 등과 가슴속 생각을 솟구치면 반드시 견디지 못하여 맥이 끊기는 변고가 있을 것이다. 왕망 때 「오경」 장구를 다 이십만으로 줄였는데 박사 제자 곽로가 밤에 옛 설을 정하다가 촛불 아래서 죽었으니 정밀한 생각을 견디지 못하여 맥이 끊기고 기운이 줄어서다. 안씨의 아들이 이미 일찍이 길에서 공자를 달려 지나쳤으나 못하고 지쳐 다하여 머리가 희고 이가 빠졌다. 무릇 거의 성인에 가까운 재주로도 오히려 엎어지는 화가 있으니 공자는 힘이 넉넉하고 안연은 견디지 못한 것이다. 재주와 힘이 서로 같지 않으면 그 앎과 슬기가 서로 미치지 못한다. 힘써 스스로 열 배 백 배 하면 가슴속에 피를 토하고 혼을 잃고 미쳐 마침내 기운이 끊김에 이른다. 다섯 줄의 글을 쓰고 열 마디의 기록을 아룀에 그 재주가 못한 이는 붓과 먹의 힘도 더욱 어려운데 하물며 구를 잇고 장을 맺어 편이 열 편 백 편에 이름에랴! 힘이 홀로 많다. 강과 하수의 물이 달리고 솟고 매끄럽게 새어 땅을 헤아려 길고 멀어 마르는 흐름이 없으니 본디 근원이 성해서다. 강과 하수의 흐름이 멀면 땅속의 근원이 성함을 알면서 만 첩의 사람이 가슴속의 재주가 무성함을 모르니 홀린 이다. 그러므로 천리마의 발을 바라보면 뭇 말의 발굽과 다르지 않으나 평지를 밟고 달리면 천 리의 자취를 잠깐에 볼 수 있다. 무릇 말의 발과 사람의 손은 한가지 실상인데 천리마의 발을 일컬으면서 문인의 손을 천거하지 않으니 무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힘줄의 힘을 논하여 무리로 견줌을 볼 수 있으면 글의 힘의 사람을 취하여 조정에 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무릇 글의 힘의 사람은 힘 있는 장수를 도와야 곧 힘으로 공을 삼을 수 있다. 힘이 있으나 도움이 없으면 힘으로 화를 삼는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길고 큰 물건은 힘센 사람이라야 곧 들 수 있다. 무거운 짐의 수레는 힘센 소라야 곧 끌 수 있다. 짐 실은 수레가 언덕을 오름에 힘센 소가 앞에서 끌고 힘센 사람이 뒤에서 밀어야 곧 올라 넘을 수 있다. 소가 여위고 사람이 지치면 짐 실은 수레가 물러나 도리어 구렁에 떨어져 깨지고 엎어지는 패함이 있다. 문유는 선왕의 도를 품고 백가의 말을 머금어 그 밀고 끌기 어려움이 한갓 짐 실은 수레의 무게가 아니다. 천거하여 이르게 하는 이가 지치고 여위어 힘이 없으면 마침내 물러나 바위 굴에 달아나 숨는다.

河發昆侖,江起岷山,水力盛多,滂沛之流,浸下益盛,不得廣岸低地,不能通流入乎東海。如岸狹地仰,溝洫決,散在丘墟矣。文儒之知,有似於此。文章滂沛,不遭有力之將援引荐舉,亦將棄遺於衡門之下,固安得升陟聖主之庭,論說政事之務乎?火之光也,不舉不明。有人於斯,其知如京,其德如山,力重不能自稱,須人乃舉,而莫之助,抱其盛高之力,竄於閭巷之深,何時得達?、育,古之多力者,身能負荷千鈞,手能決角伸鉤,使之自舉,不能離地。智能滿胸之人,宜在王闕,須三寸之舌,一尺之筆,然後自動,不能自進,進之又不能自安,須人能動,待人能安。道重知大,位地難適也。小石附於山,山力能得持之;在沙丘之間,小石輕微,亦能自安。至於大石,沙土不覆,山不能持,處危峭之際,則必崩墜於坑谷之間矣。大智之重,遭小才之將,無左右沙土之助,雖在顯位,將不能持,則有大石崩墜之難也。或伐薪於山,輕小之木,合能束之。至於大木,十圍以上,引之不能動,推之不能移,則委之於山林,收所束之小木而歸。由斯以論,知能之大者,其猶十圍以上木也。人力不能舉荐,其猶薪者不能推引大木也。孔子周流,無所留止,非聖才不明,道大難行,人不能用也!故夫孔子,山中巨木之類也。

하수는 곤륜에서 발하고 강은 민산에서 일어나 물의 힘이 성하고 많아 흐르는 흐름이 아래로 스밀수록 더욱 성하니 넓은 언덕과 낮은 땅을 얻지 못하면 흘러 통하여 동해에 들 수 없다. 언덕이 좁고 땅이 우러러 있으면 도랑이 터져 언덕과 폐허에 흩어진다. 문유의 앎이 이와 비슷함이 있다. 문장이 넘쳐 흐르나 힘 있는 장수가 끌어 천거함을 만나지 못하면 또한 장차 형문 아래 버려질 것이니 본디 어찌 성스러운 임금의 뜰에 올라 정사의 힘씀을 논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불의 빛은 들지 않으면 밝지 않다. 여기 사람이 있어 그 앎이 창고 같고 그 덕이 산 같아 힘이 무거워 스스로 들 수 없어 사람을 기다려야 드는데 돕는 이가 없으면 그 성하고 높은 힘을 안고 마을 깊은 데 숨으니 언제 통달하겠는가. 오획과 하육은 옛날의 힘 많은 이라 몸이 천 균을 질 수 있고 손이 뿔을 끊고 갈고리를 펼 수 있으나 스스로 들게 하면 땅에서 떨어질 수 없다. 앎과 능함이 가슴에 찬 사람은 마땅히 왕의 대궐에 있어야 하나 세 치 혀와 한 자 붓을 기다린 뒤에야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나아갈 수 없으며 나아가도 또 스스로 편안할 수 없어 사람이 움직여 주기를 기다리고 사람이 편안하게 해 주기를 기다린다. 도가 무겁고 앎이 크면 자리와 땅이 맞기 어렵다. 작은 돌이 산에 붙으면 산의 힘이 지탱할 수 있고 모래 언덕 사이에 있어도 작은 돌은 가볍고 작아 또한 스스로 편안할 수 있다. 큰 돌에 이르러는 모래와 흙이 덮지 못하고 산이 지탱할 수 없어 위태롭고 가파른 끝에 처하면 반드시 구렁 사이에 무너져 떨어진다. 큰 앎의 무거움이 작은 재주의 장수를 만나 좌우에 모래와 흙의 도움이 없으면 비록 드러난 자리에 있어도 장수가 지탱할 수 없으니 큰 돌이 무너져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다. 혹 산에서 섶을 베는데 가볍고 작은 나무는 합하여 묶을 수 있다. 큰 나무 열 아름 이상에 이르러는 끌어도 움직일 수 없고 밀어도 옮길 수 없으면 산림에 버리고 묶은 작은 나무를 거두어 돌아간다. 이로써 논하면 앎과 능함이 큰 이는 그 열 아름 이상의 나무와 같다. 사람의 힘이 들어 천거할 수 없음은 그 섶 베는 이가 큰 나무를 밀고 끌 수 없음과 같다. 공자가 두루 다니며 머물 데가 없은 것은 성인의 재주가 밝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가 커서 행하기 어려워 사람이 쓸 수 없어서다! 그러므로 무릇 공자는 산 가운데 큰 나무의 무리다.

桓公九合諸侯,一匡天下,管仲之力。管仲有力,桓公能舉之,可謂壯強矣。吳不能用子胥,楚不能用屈原,二子力重,兩主不能舉也。舉物不勝,委地而去可也,時或恚怒,斧斫破敗,此則子胥、屈原所取害也。

환공이 제후를 아홉 번 모아 천하를 한 번 바로잡음은 관중의 힘이다. 관중에게 힘이 있고 환공이 들 수 있었으니 굳세고 강하다 할 만하다. 오나라는 자서를 쓸 수 없었고 초나라는 굴원을 쓸 수 없었으니 두 사람은 힘이 무겁고 두 임금은 들 수 없었다. 물건을 들어 이기지 못하면 땅에 버려두고 가면 되는데 때로 혹 성내어 도끼로 찍어 깨뜨리니 이것이 자서와 굴원이 해를 취한 바다.

淵中之魚,遞相吞食,度口所能容,然後咽之;口不能受,哽咽不能下。故夫商鞅三說孝公,後說者用,前二難用,後一易行也。觀管仲之明法,察商鞅之耕戰,固非弱劣之主所能用也。六國之時,賢才之臣,入楚楚重,出齊齊輕,為趙趙完,畔魏魏傷。韓用申不害,行其三符,兵不侵境,蓋十五年;不能用之,又不察其書,兵挫軍破,國并於秦。殷、周之世,亂跡相屬,亡禍比肩,豈其心不欲為治乎?力弱智劣,不能納至言也。是故重,一人之跡,不能蹈也;大,一人之掌,不能推也。

못 가운데 물고기가 번갈아 서로 삼켜 먹으니 입이 용납할 수 있는 바를 헤아린 뒤에 삼킨다. 입이 받을 수 없으면 목이 메어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릇 상앙이 세 번 효공에게 유세하였는데 뒤에 유세한 것이 쓰였으니 앞의 둘은 쓰기 어렵고 뒤의 하나는 행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관중의 법을 밝힘과 상앙의 밭 갈고 싸움을 보면 본디 약하고 못한 임금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육국 때 어진 재주의 신하가 초나라에 들면 초나라가 무겁고 제나라를 나가면 제나라가 가벼우며 조나라를 위하면 조나라가 온전하고 위나라를 배반하면 위나라가 상하였다. 한나라가 신불해를 써서 그 삼부를 행하니 군사가 경계를 침범하지 않은 것이 대개 십오 년이었고, 쓰지 못하고 또 그 책을 살피지 않으니 군사가 꺾이고 군대가 깨져 나라가 진나라에 아울러졌다. 은·주의 세상에 어지러운 자취가 서로 잇고 망하는 화가 어깨를 나란히 하였으니 어찌 그 마음이 다스리려 하지 않았겠는가. 힘이 약하고 슬기가 못하여 지극한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무거우면 한 사람의 발자취로 밟을 수 없고 크면 한 사람의 손바닥으로 밀 수 없다.

賢臣有勁強之優,愚主有不堪之劣,以此相求,禽魚相與游也。干將之刃,人不推頓,瓠不能傷;之箭,機不(能)動發,魯縞不能穿。非無干將、之才也,無推頓發動之主。瓠、魯縞不穿傷,焉望斬旗穿革之功乎?故引弓之力不能引強弩,弩力五石,引以三石,筋絕骨折,不能舉也。故力不任強引,則有變惡折脊之禍;知不能用賢,則有傷德毀名之敗。

어진 신하에게 굳세고 강한 뛰어남이 있고 어리석은 임금에게 감당하지 못하는 못함이 있어 이것으로 서로 구하니 새와 물고기가 서로 노니는 것이다. 간장의 칼날도 사람이 밀고 부딪치지 않으면 박도 상하게 할 수 없고, 숙신의 화살도 틀이 움직여 발하지 않으면 노나라 비단도 뚫을 수 없다. 간장과 숙신의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밀고 부딪치고 발하여 움직이는 주인이 없어서다. 박과 노나라 비단을 뚫고 상하게 하지 못하는데 어찌 기를 베고 가죽을 뚫는 공을 바라겠는가. 그러므로 활을 당기는 힘으로 강한 쇠뇌를 당길 수 없으니 쇠뇌의 힘이 다섯 섬인데 세 섬으로 당기면 힘줄이 끊기고 뼈가 부러져 들 수 없다. 그러므로 힘이 강한 당김을 감당하지 못하면 변하여 등뼈가 부러지는 화가 있고 앎이 어진 이를 쓸 수 없으면 덕을 상하고 이름을 헐리는 패함이 있다.

論事者不曰才大道重,上不能用,而曰不肖不能自達。自達者帶絕不抗,自者賈賤不仇。案諸為人用之物,須人用之,功力乃立。鑿所以入木者,槌叩之也,鍤所以能撅地者,蹠蹈之也。諸有鋒刃之器,所以能斷斬割削者,手能把持之也,力能推引之也。韓信去楚入漢,項羽不能安,高祖能持之也。能用其善,能安其身,則能量其力、能別其功矣。樊、酈有攻城野戰之功,高祖行封,先及蕭何,則比蕭何於獵人,同樊、酈於獵犬也。夫蕭何安坐,樊、酈馳走,封不及馳走而先安坐者,蕭何以知為力,而樊、酈以力為功也。蕭何所以能使樊、酈者,以入秦收斂文書也。眾將拾金,何獨掇書,坐知秦之形勢,是以能圖其利害。眾將馳走者,何驅之也。故叔孫通定儀,而高祖以尊;蕭何造律,而漢室以宁。案儀律之功,重於野戰,斬首之力,不及尊主。故夫墾草殖谷,農夫之力也;勇猛攻戰,士卒之力也;構架斫削,工匠之力也;治書定簿,佐史之力也;論道議政,賢儒之力也。人生莫不有力,所以為力者,或尊或卑。孔子能舉北門之關,不以力自章,知夫筋骨之力,不如仁義之力榮也。

일을 논하는 이는 재주가 크고 도가 무거워 위가 쓸 수 없다 하지 않고 어질지 못하여 스스로 통달할 수 없다 한다. 스스로 통달하는 이는 띠가 끊겨도 들지 않고 스스로 파는 이는 값이 천하여도 갚지 않는다. 살피건대 사람에게 쓰이는 여러 물건은 사람이 써야 공과 힘이 곧 선다. 끌이 나무에 들어가는 것은 망치로 두드리기 때문이요 삽이 땅을 팔 수 있는 것은 발로 밟기 때문이다. 칼날 있는 여러 기구가 끊고 베고 가르고 깎을 수 있는 것은 손이 잡을 수 있고 힘이 밀고 끌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신이 초나라를 떠나 한나라에 드니 항우는 편안하게 할 수 없었고 고조는 지탱할 수 있었다. 그 착함을 쓸 수 있고 그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면 그 힘을 헤아리고 그 공을 가릴 수 있다. 번쾌와 역상은 성을 치고 들에서 싸운 공이 있는데 고조가 봉함을 행함에 먼저 소하에 미쳤으니 소하를 사냥꾼에 견주고 번쾌와 역상을 사냥개에 같이한 것이다. 무릇 소하는 편안히 앉고 번쾌와 역상은 달렸는데 봉함이 달린 이에 미치지 않고 먼저 편안히 앉은 이에 이른 것은 소하는 앎으로 힘을 삼고 번쾌와 역상은 힘으로 공을 삼았기 때문이다. 소하가 번쾌와 역상을 부릴 수 있었던 까닭은 진나라에 들어가 문서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뭇 장수가 금을 주울 때 소하만 홀로 책을 거두어 앉아서 진나라의 형세를 알았으니 이 때문에 그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다. 뭇 장수가 달린 것은 소하가 몬 것이다. 그러므로 숙손통이 의식을 정하니 고조가 높아졌고 소하가 율을 지으니 한나라 왕실이 편안하였다. 살피건대 의식과 율의 공은 들 싸움보다 무겁고 머리 베는 힘은 임금을 높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릇 풀을 일구고 곡식을 심음은 농부의 힘이요 용맹하게 치고 싸움은 사졸의 힘이요 얽고 깎음은 장인의 힘이요 글을 다스리고 장부를 정함은 좌사의 힘이요 도를 논하고 정사를 의논함은 어진 유자의 힘이다. 사람이 나서 힘이 없는 이가 없으나 힘을 삼는 바가 혹 높고 혹 낮다. 공자가 북문의 빗장을 들 수 있었으나 힘으로 스스로 드러내지 않았으니 힘줄과 뼈의 힘이 인의의 힘의 영광만 못함을 알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