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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通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7 · 한자 3,116자 · 낭독 12.5분

「논형」 별통편 「別通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富人之宅,以一丈之地為內。內中所有,柙匱所(羸)〔贏〕,縑布絲(綿)〔帛〕也。貧人之宅,亦以一丈為內。內中空虛,徒四壁立,故名曰貧。夫通人猶富人,不通者猶貧人也。俱以七尺為形,通人胸中懷百家之言,不通者空腹無一牒之誦。貧人之內,徒四(所)壁立也。慕料貧富不相如,則夫通與不通不相及也。世人慕富不榮通,羞貧,不賤不賢,不推類以況之也。夫富人可慕者,貨財多則饒裕,故人慕之。夫富人不如儒生,儒生不如通人。

부유한 사람의 집은 한 길의 땅으로 안방을 삼는다. 안방 가운데 있는 것은 궤짝에 넘치는 것이 깁과 베와 실과 비단이다. 가난한 사람의 집도 한 길로 안방을 삼는다. 안방 가운데가 텅 비어 한갓 네 벽만 서 있으므로 이름하여 가난하다 한다. 무릇 통달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 같고 통달하지 못한 이는 가난한 사람 같다. 다 일곱 자로 꼴을 삼으나 통달한 사람은 가슴속에 백가의 말을 품고 통달하지 못한 이는 빈 배에 한 첩의 외움도 없다. 가난한 사람의 안방은 한갓 네 벽만 서 있다. 가난하고 부유함이 서로 같지 않음을 사모하여 헤아리면 통달함과 통달하지 못함이 서로 미치지 못한다. 세상 사람은 부유함을 사모하고 통달함을 영화롭게 여기지 않으며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어질지 않음을 천히 여기지 않으니 무리를 미루어 견주지 않는 것이다. 무릇 부유한 사람이 사모할 만한 것은 재물이 많으면 넉넉하므로 사람이 사모한다. 무릇 부유한 사람은 유생만 못하고 유생은 통달한 사람만 못하다.

通人積文十篋以上,聖人之言,賢者之語,上自黃帝,下至秦、漢,治國肥家之術,刺世譏俗之言備矣。使人通明博見,其為可榮,非徒縑布絲(綿)〔帛〕也。蕭何入秦,收拾文書,漢所以能制九州者,文書之力也。以文書御天下,天下之富,孰與家人之財?

통달한 사람은 글을 쌓음이 열 상자 이상이라 성인의 말과 어진 이의 말이 위로 황제부터 아래로 진·한까지 나라를 다스리고 집을 살찌우는 술법과 세상을 찌르고 풍속을 나무라는 말이 갖추어졌다. 사람으로 하여금 통하여 밝고 널리 보게 하니 그 영화로울 만함이 한갓 깁과 베와 실과 비단이 아니다. 소하가 진나라에 들어가 문서를 거두었으니 한나라가 구주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문서의 힘이다. 문서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의 부유함이 집안사람의 재물과 견주어 어떠한가.

人目不見青黃曰盲,耳不聞宮商曰聾,鼻不知香臭曰癰。癰聾與盲,不成人者也。人不博覽者,不聞古今,不見事類,不知然否,猶目盲、耳聾、鼻癰者也。儒生不覽,猶為閉暗,況庸人無篇章之業,不知是非,其為閉暗甚矣!此則土木之人,耳目俱足,無聞見也。涉淺水者見蝦,其頗深者察魚鱉,其尤甚者觀蛟龍。足行跡殊,故所見之物異也。入道淺深,其猶此也,淺者則見傳記諧文,深者入聖室觀秘書。故入道彌深,所見彌大。人之游也,必欲入都,都多奇觀也;入都必欲見市,市多異貨也。百家之言,古今行事,其為奇異,非徒都邑大市也。游於都邑者心厭,觀於大市者意飽,況游於道藝之際哉!大川旱不枯者,多所疏也。潢兼日不雨,泥輒見者,無所通也。是故大川相間,小川相屬,東流歸海,故海大也。海不通於百川,安得巨大之名?夫人含百家之言,猶海懷百川之流也,不謂之大者,是謂海小於百川也。夫海大於百川也,人皆知之,通者明於不通,莫之能別也。潤下作咸,水之滋味也。東海歸咸,流廣大也;西州鹽井,源泉深也。人或無井而食,或穿井不得泉,有鹽井之利乎?不與賢聖通業,望有高世之名,難哉!法令之家,不見行事,議罪不(可)審。章句之生,不覽古今,論事不實。或以說一經為(是)〔足〕,何須博覽。夫孔子之門,講習《五經》。《五經》皆習,庶幾之才也。

사람이 눈이 푸르고 누름을 보지 못함을 소경이라 하고 귀가 궁상을 듣지 못함을 귀머거리라 하고 코가 향기와 냄새를 알지 못함을 옹이라 한다. 옹과 귀머거리와 소경은 사람을 이루지 못한 이다. 사람이 널리 보지 않는 이는 고금을 듣지 못하고 일의 무리를 보지 못하며 그런지 아닌지 알지 못하니 눈멀고 귀먹고 코 막힌 이와 같다. 유생이 보지 않으면 오히려 닫히고 어두운데 하물며 용렬한 사람은 편장의 업이 없어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니 그 닫히고 어두움이 심하다! 이는 곧 흙과 나무의 사람이라 귀와 눈이 다 갖추어졌으나 듣고 봄이 없다. 얕은 물을 건너는 이는 새우를 보고 자못 깊은 이는 물고기와 자라를 살피며 더욱 심한 이는 교룡을 본다. 발 다니는 자취가 다르므로 보는 물건이 다르다. 도에 드는 얕고 깊음도 이와 같으니 얕은 이는 전기와 해문을 보고 깊은 이는 성인의 방에 들어 비서를 본다. 그러므로 도에 듦이 깊을수록 보는 것이 더욱 크다. 사람이 노닒에 반드시 도읍에 들려 하니 도읍에 기이한 볼거리가 많아서요, 도읍에 들면 반드시 저자를 보려 하니 저자에 다른 재화가 많아서다. 백가의 말과 고금의 행한 일은 그 기이함이 한갓 도읍의 큰 저자가 아니다. 도읍에 노니는 이는 마음이 물리고 큰 저자를 보는 이는 뜻이 배부른데 하물며 도와 재주의 사이에 노닒에랴. 큰 내가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것은 트인 바가 많아서다. 웅덩이가 여러 날 비 오지 않으면 진흙이 곧 보이는 것은 통하는 바가 없어서다. 이 때문에 큰 내가 서로 사이하고 작은 내가 서로 이어 동으로 흘러 바다에 돌아가므로 바다가 크다. 바다가 온갖 내에 통하지 않으면 어찌 거대하다는 이름을 얻겠는가. 무릇 사람이 백가의 말을 머금음은 바다가 온갖 내의 흐름을 품음과 같으니 크다 하지 않는 것은 이는 바다가 온갖 내보다 작다 하는 것이다. 무릇 바다가 온갖 내보다 큼은 사람이 다 아는데 통달한 이가 통달하지 못한 이보다 밝음은 아무도 가릴 수 없다. 젖어 내려가 짠맛을 지음은 물의 맛이다. 동해가 짠맛에 돌아감은 흐름이 넓고 커서요 서주의 소금 우물은 샘이 깊어서다. 사람이 혹 우물 없이 먹고 혹 우물을 파도 샘을 얻지 못하니 소금 우물의 이로움이 있겠는가. 현인과 성인과 업을 통하지 않고 세상에 높은 이름이 있기를 바람은 어렵다! 법령의 집이 행한 일을 보지 않으면 죄를 의논함에 살피지 못한다. 장구의 유생이 고금을 보지 않으면 일을 논함에 실답지 않다. 혹 한 경을 말함을 넉넉하다 하니 어찌 널리 볼 것이 있는가. 무릇 공자의 문은 「오경」을 강습하였다. 「오경」을 다 익힘은 거의 성인에 가까운 재주다.

顏淵曰:「博我以文。」

안연이 말하였다. 「나를 글로 넓히셨다.」

才智高者,能為博矣。顏淵之曰博者,豈徒一經哉?我不能博《五經》,又不能博眾事,守信一學,不好廣觀,無溫故知新之明,而有守愚不覽之暗。其謂一經(是)〔足〕者,其宜也。開戶內日之光,日光不能照幽,鑿窗啟牖,以助戶明也。夫一經之說,猶日明也,助以傳書,猶窗牖也。百家之言令人曉明,非徒窗牖之開日光之照也。是故日光照室內,道術明胸中。開戶內光,坐高堂之上,眇升樓台,窺四鄰之廷,人之所願也。閉戶幽坐,向冥冥之內,穿壙穴臥,造黃泉之際,人之所惡也。夫閉心塞意,不高瞻覽者,死人之徒也哉!孝武皇帝時,燕王旦在明光宮,欲入所臥,戶三(百)盡閉,使侍者二十人開戶,戶不開,其後旦坐謀反自殺。夫戶閉,燕王旦死之狀也。死者,凶事也,故以閉塞為占。齊慶封不通,六國大夫會而賦《詩》,慶封不曉,其後果有楚靈之禍也。

재주와 슬기가 높은 이는 넓을 수 있다. 안연이 넓다 한 것이 어찌 한갓 한 경이겠는가. 나는 「오경」에 넓지 못하고 또 뭇일에 넓지 못하며 한 배움을 지켜 믿고 널리 보기를 좋아하지 않아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밝음이 없고 어리석음을 지켜 보지 않는 어두움이 있다. 그 한 경을 넉넉하다 함이 마땅하다. 문을 열어 해의 빛을 들이나 햇빛이 그윽한 데를 비출 수 없으므로 창을 뚫고 들창을 열어 문의 밝음을 돕는다. 무릇 한 경의 말은 해의 밝음과 같고 전서로 도움은 창과 들창과 같다. 백가의 말은 사람으로 하여금 깨달아 밝게 하니 한갓 창과 들창을 열어 햇빛이 비침이 아니다. 이 때문에 햇빛이 방 안을 비추고 도술이 가슴속을 밝힌다. 문을 열어 빛을 들이고 높은 마루 위에 앉아 아득히 누대에 올라 사방 이웃의 뜰을 엿봄은 사람이 바라는 바다. 문을 닫고 그윽히 앉아 어두운 안을 향하고 굴을 뚫어 구멍에 누워 황천의 끝에 이름은 사람이 미워하는 바다. 무릇 마음을 닫고 뜻을 막아 높이 보고 살피지 않는 이는 죽은 사람의 무리다! 효무황제 때 연왕 단이 명광궁에 있어 눕는 곳에 들어가려 하는데 문이 다 닫혀 시자 스무 사람에게 문을 열게 하였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고 그 뒤 단이 모반에 걸려 스스로 죽었다. 무릇 문이 닫힘은 연왕 단이 죽을 모양이다. 죽음은 흉한 일이므로 닫히고 막힘으로 점을 삼는다. 제나라 경봉이 통하지 못하여 육국 대부가 모여 「시」를 읊었는데 경봉이 깨닫지 못하였고 그 뒤 과연 초 영왕의 화가 있었다.

夫不開通於學者,尸尚能行者也。亡國之社,屋其上、柴其下者,示絕於天地。春秋薄社,周以為城。夫經藝傳書,人當覽之,猶社當通氣於天地也。故人之不通覽者,薄社之類也。是故氣不通者,強壯之人死,榮華之物枯。

무릇 배움에 열려 통하지 않은 이는 주검으로 오히려 다닐 수 있는 이다. 망한 나라의 사직은 그 위를 지붕하고 그 아래를 섶으로 막아 하늘과 땅에 끊김을 보인다. 춘추의 망한 사직(亳社)은 주나라가 성으로 삼았다. 무릇 경예와 전서는 사람이 마땅히 보아야 하니 사직이 마땅히 하늘과 땅에 기운을 통해야 함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통하여 보지 않는 이는 그 망한 사직의 무리다. 이 때문에 기운이 통하지 않는 것은 강하고 굳센 사람도 죽고 영화로운 물건도 마른다.

東海之中,可食之物,集糅非一,以其大也。夫水精氣渥盛,故其生物也眾多奇異。

동해 가운데 먹을 만한 물건이 모여 섞임이 하나가 아닌 것은 그것이 크기 때문이다. 무릇 물의 정기가 두텁고 성하므로 그 낳는 물건이 많고 기이하다.

故夫大人之胸懷非一,才高知大,故其於道術無所不包。學士同門高業之生,眾共宗之。何則?知經指深,曉師言多也。夫古今之事,百家之言,其為深多也,豈徒師門高業之生哉!甘酒醴不(酤)〔〕飴蜜,未為能知味也。耕夫多殖嘉谷,謂之上農夫;其少者,謂之下農夫。學士之才,農夫之力,一也。能多種谷,謂之上農,能博學問,〔不〕謂之上儒,是稱牛之服重,不譽馬速也。譽手毀足,孰謂之慧矣!縣道不通於野,野路不達於邑,騎馬乘舟者,必不由也。故血脈不通,人以甚病。夫不通者,惡事也,故其禍變致不善。是故盜賊宿於穢草,邪心生於無道,無道者,無道術也。醫能治一病謂之巧,能治百病謂之良。是故良醫服百病之方,治百人之疾;大才懷百家之言,故能治百族之亂。扁鵲之眾方,孰若巧〔醫〕之一伎?子貢曰:「不得其門而入,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

그러므로 무릇 큰 사람의 가슴에 품음이 하나가 아니고 재주가 높고 앎이 크므로 그 도술에 싸지 않은 것이 없다. 학사로 같은 문의 높은 업의 유생을 뭇사람이 함께 높인다. 어째서인가. 경의 가리킴을 깊이 알고 스승의 말을 깨달음이 많기 때문이다. 무릇 고금의 일과 백가의 말은 그 깊고 많음이 어찌 한갓 스승 문의 높은 업의 유생이겠는가. 감주와 단술로 엿과 꿀을 사지 않으면 맛을 안다 할 수 없다. 밭 가는 사내가 좋은 곡식을 많이 심으면 상농부라 하고 적은 이는 하농부라 한다. 학사의 재주와 농부의 힘은 하나다. 곡식을 많이 심을 수 있으면 상농이라 하면서 널리 배우고 물을 수 있는 이를 상유라 하지 않으니 이는 소가 무거운 것을 짐을 일컫고 말의 빠름을 기리지 않는 것이다. 손을 기리고 발을 헐면 누가 슬기롭다 하겠는가! 현의 길이 들에 통하지 않고 들의 길이 고을에 이르지 않으면 말을 타고 배를 타는 이가 반드시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혈맥이 통하지 않으면 사람이 심히 병든다. 무릇 통하지 않음은 악한 일이므로 그 화와 변고가 착하지 않음을 이르게 한다. 이 때문에 도적은 더러운 풀에 묵고 사악한 마음은 무도에서 나니 무도란 도술이 없는 것이다. 의원이 한 병을 다스릴 수 있으면 교묘하다 하고 백 병을 다스릴 수 있으면 어질다 한다. 이 때문에 어진 의원은 백 병의 처방을 지녀 백 사람의 병을 다스리고 큰 재주는 백가의 말을 품으므로 백 겨레의 어지러움을 다스릴 수 있다. 편작의 뭇 처방이 교묘한 의원의 한 재주와 어느 것이 나은가. 자공이 말하였다. 「그 문을 얻어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부유함을 보지 못한다.」

蓋以宗廟百官喻孔子道也。孔子道美,故譬以宗廟,眾多非一,故喻以百官。由此言之,道達廣博者,孔子之徒也。

아마 종묘와 백관으로 공자의 도를 비유한 것이다. 공자의 도가 아름다우므로 종묘로 견주고 많아 하나가 아니므로 백관으로 비유하였다. 이로써 말하면 도에 통달하여 넓은 이는 공자의 무리다.

殷、周之地,極五千里,荒服、要服,勤能牧之。漢氏廓土,牧萬里之外,要荒之地,褒衣博帶。夫德不優者不能懷遠,才不大者不能博見。故多聞博識,無頑鄙之訾,深知道術,無淺暗之毀也。人好觀圖畫者,圖上所畫,古之列人也。見列人之面,孰與觀其言行?置之空壁,形容具存,人不激勸者,不見言行也。古賢之遺文,竹帛之所載粲然,豈徒牆壁之畫哉?空器在廚,金銀塗飾,其中無物益於飢,人不顧也。肴膳甘醢,土釜之盛,入者鄉之。古賢文之美善可甘,非徒器中之物也,讀觀有益,非徒膳食有補也。故器空無實,飢者不顧,胸虛無懷,朝廷不御也。劍伎之家,斗戰必勝者,得曲城、越女之學也。兩敵相遭,一巧一拙,其必勝者,有術之家也。孔、墨之業,賢聖之書,非徒曲城、越女之功也。成人之操,益人之知,非徒戰斗必勝之策也。故劍伎之術,有必勝之名,賢聖之書,有必尊之聲。縣邑之吏,召諸治下,將相問以政化,曉慧之吏,陳所聞見,將相覺悟,得以改政右文。聖賢言行,竹帛所傳,練人之心,聰人之知,非徒縣邑之吏對向之語也。

은·주의 땅은 끝이 오천 리라 황복과 요복을 부지런히 하여야 다스릴 수 있었다. 한나라가 땅을 넓혀 만 리 밖을 다스리니 요복과 황복의 땅이 넓은 옷과 넓은 띠를 한다. 무릇 덕이 뛰어나지 않은 이는 먼 데를 품을 수 없고 재주가 크지 않은 이는 널리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많이 듣고 널리 알면 완고하고 비루하다는 헐뜯음이 없고 도술을 깊이 알면 얕고 어둡다는 헐뜯음이 없다. 사람이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데 그림 위에 그린 것은 옛날의 벌여진 사람이다. 벌여진 사람의 얼굴을 봄이 그 말과 행실을 봄과 견주어 어떠한가. 빈 벽에 두면 형용이 갖추어 있으나 사람이 격려되지 않는 것은 말과 행실을 보지 못해서다. 옛 어진 이의 남긴 글은 죽백에 실린 것이 찬란하니 어찌 한갓 담벽의 그림이겠는가. 빈 그릇이 부엌에 있어 금은으로 칠하여 꾸몄어도 그 가운데 주림에 유익한 물건이 없으면 사람이 돌아보지 않는다. 안주와 반찬과 단 젓갈은 흙 솥에 담겨도 들어오는 이가 향한다. 옛 어진 이의 글의 아름답고 착함은 달 만하니 한갓 그릇 속의 물건이 아니요 읽고 봄에 유익함이 있으니 한갓 밥이 보탬 있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릇이 비어 실속이 없으면 주린 이가 돌아보지 않고 가슴이 비어 품음이 없으면 조정이 부리지 않는다. 검술의 집이 싸움에 반드시 이기는 것은 곡성과 월녀의 배움을 얻어서다. 두 적이 서로 만나 하나는 교묘하고 하나는 서투르면 반드시 이기는 이는 술법 있는 집이다. 공자와 묵자의 업과 현인과 성인의 책은 한갓 곡성과 월녀의 공이 아니다. 사람의 몸가짐을 이루고 사람의 앎을 더하니 한갓 싸움에 반드시 이기는 계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검술의 술법에 반드시 이기는 이름이 있고 현인과 성인의 책에 반드시 높이는 소리가 있다. 현읍의 아전이 다스리는 아래 여러 이를 부르면 장수와 재상이 정사와 교화를 묻는데 밝고 슬기로운 아전이 듣고 본 바를 펴면 장수와 재상이 깨달아 정사를 고치고 글을 높인다. 성현의 말과 행실이 죽백에 전하는 바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고 사람의 앎을 밝게 하니 한갓 현읍 아전의 대답하는 말이 아니다.

禹、益并治洪水,禹主治水,益主記異物,海外山表,無遠不至,以所聞見作《山海經》。

우와 익이 아울러 홍수를 다스렸는데 우는 물 다스림을 주관하고 익은 다른 물건 기록을 주관하여 바다 밖 산 겉에 멀다고 이르지 않은 데가 없어 듣고 본 바로 「산해경」을 지었다.

非禹、益不能行遠,《山海》不造。然則《山海》之造,見物博也。董仲舒睹重常之鳥,劉子政曉貳負之尸,皆見《山海經》,故能立二事之說。使禹、益行地不遠,不能作《山海經》,董、劉不讀《山海經》,不能定二疑。實沉、台,子產博物,故能言之。龍見絳郊,蔡墨曉占,故能御之。父兄在千里之外,且死,遺教戒之書,子弟賢者求索觀讀,服臆不舍,重先敬長,謹慎之也。不肖者輕慢佚忽,無原察之意。古聖先賢遺後人文字,其重非徒父兄之書也,或觀讀采取,或棄捐不錄,二者之相高下也,行路之人,皆能論之,況辯照然否者不能別之乎?孔子病,商瞿卜期日中,孔子曰:「取書來,比至日中何事乎?」

우와 익이 멀리 다닐 수 없었다면 「산해」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산해」의 지어짐은 물건을 봄이 넓어서다. 동중서가 중상의 새를 보고 유자정이 이부의 주검을 깨달은 것은 다 「산해경」을 보았으므로 두 일의 말을 세울 수 있었다. 우와 익이 땅을 다님이 멀지 않았다면 「산해경」을 지을 수 없고 동과 유가 「산해경」을 읽지 않았다면 두 의심을 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침과 대태는 자산이 물건에 넓었으므로 말할 수 있었다. 용이 강의 교외에 나타나자 채묵이 점을 깨달았으므로 막을 수 있었다. 아비와 형이 천 리 밖에 있어 장차 죽으며 가르쳐 경계하는 글을 남기면 자제 가운데 어진 이는 찾아 구해 보고 읽어 가슴에 새겨 버리지 않으니 앞서 간 이를 무겁게 여기고 어른을 공경하여 삼가는 것이다. 어질지 못한 이는 가벼이 여기고 소홀히 하여 캐어 살피는 뜻이 없다. 옛 성인과 앞선 어진 이가 후세 사람에게 남긴 문자는 그 무거움이 한갓 아비와 형의 글이 아닌데, 혹은 보고 읽어 캐어 취하고 혹은 버려 기록하지 않으니 둘이 서로 높고 낮음은 길 가는 사람도 다 논할 수 있는데 하물며 그런지 아닌지 가려 비추는 이가 가릴 수 없겠는가. 공자가 병들자 상구가 점쳐 기일이 한낮이라 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책을 가져오라. 한낮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하겠는가?」

聖人之好學也,且死不休,念在經書,不以臨死之故,棄忘道藝,其為百世之聖,師法祖修,蓋不虛矣。自孔子以下,至漢之際,有才能之稱者,非有飽食終日無所用心也,不說《五經》則讀書傳。書傳文大,難以備之。卜卦占射凶吉,皆文、武之道,昔有商瞿能占爻卦,末有東方朔、翼少君能達占射覆,道雖小,亦聖人之術也。曾又不知人生稟五常之性,好道樂學,故辨於物。今則不然,飽食快飲,慮深求臥,腹為飯坑,腸為酒襄,是則物也。裸蟲三百,人為之長,天地之性,人為貴,貴其識知也。今閉暗脂塞,無所好欲,與三百裸蟲何以異?而謂之為長而貴之乎!

성인이 배움을 좋아함은 죽으려 하여도 쉬지 않고 생각이 경서에 있어 죽음에 임한 까닭으로 도와 재주를 버려 잊지 않으니, 그가 백세의 성인이 되어 스승으로 본받고 조상으로 닦음이 아마 헛되지 않다. 공자 이래로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재능의 일컬음이 있는 이는 배불리 먹고 종일 마음 쓰는 바가 없는 이가 아니라 「오경」을 말하지 않으면 서전을 읽었다. 서전은 글이 커서 갖추기 어렵다. 괘를 점치고 길흉을 맞힘은 다 문왕·무왕의 도니 옛날에 상구가 효괘를 점칠 수 있었고 끝에 동방삭과 익소군이 사복 맞힘에 통달할 수 있었으니 도가 비록 작아도 또한 성인의 술법이다. 일찍이 또 사람이 나서 오상의 성품을 받아 도를 좋아하고 배움을 즐기므로 물건에 밝음을 알지 못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배불리 먹고 마음껏 마시며 생각이 깊이 누움을 구하니 배는 밥 구덩이가 되고 창자는 술 주머니가 되니 이는 곧 물건이다. 털 없는 벌레 삼백에 사람이 으뜸이니 하늘과 땅의 성품에 사람이 귀함은 그 앎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이제 닫히고 어둡고 기름이 막혀 좋아하고 바라는 바가 없으면 삼백 털 없는 벌레와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으뜸이라 하여 귀히 여기는가!

諸夏之人所以貴於夷狄者,以其通仁義之文,知古今之學也。如徒(作)〔任〕其胸中之知以取衣食,經厲年月,白首沒齒,終無曉知,夷狄之次也。觀夫蜘蛛之經絲以罔飛蟲也,人之用作,安能過之?任胸中之知,舞權利之詐,以取富壽之樂,無古今之學,蜘蛛之類也。含血之蟲,無餓死之患,皆能以知求索飲食也。人不通者,亦能自供,仕官為吏,亦得高官。將相長吏,猶吾大夫高子也!安能別之?隨時積功,以命得官,不曉古今,以位為賢,與文(之)〔人〕異術,安得識別通人,俟以不次乎?將相長吏,不得若右扶風蔡伯偕、郁林太守張孟嘗、東萊太守李季公之徒,心自通明,覽達古今,故其敬通人也如見大賓。燕昭為鄒衍擁,彼獨受何性哉?東成令董仲綬知為儒梟,海內稱通,故其接人能別奇(律)〔偉〕。是以鍾離產公以編戶之民,受圭璧之敬,知之明也。故夫能知之也,凡石生光氣,不知之也,金玉無潤色。自武帝以至今朝,數舉賢良,令人射策甲乙之科,若董仲舒、唐子高、谷子云、丁伯玉,策既中實,文說美善,博覽膏腴之所生也。

제하의 사람이 이적보다 귀한 까닭은 인의의 글에 통하고 고금의 배움을 알기 때문이다. 한갓 그 가슴속의 앎에 맡겨 옷과 먹을 것을 취하며 해와 달을 지나 머리가 희고 이가 빠지도록 끝내 깨달아 앎이 없으면 이적의 다음이다. 저 거미가 실을 늘여 나는 벌레를 그물질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쓰고 지음이 어찌 그것을 넘겠는가. 가슴속의 앎에 맡겨 권세와 이익의 속임을 춤추어 부유하고 오래 사는 즐거움을 취하며 고금의 배움이 없으면 거미의 무리다. 피를 머금은 벌레는 굶어 죽는 근심이 없으니 다 앎으로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어서다. 사람으로 통달하지 못한 이도 스스로 공급할 수 있어 벼슬하여 아전이 되고 또한 높은 벼슬을 얻는다. 장수와 재상과 장리는 우리 대부 고자와 같다! 어찌 가릴 수 있겠는가. 때를 따라 공을 쌓고 명으로 벼슬을 얻어 고금을 깨닫지 못하고 자리로 어짊을 삼으니 글 하는 사람과 술법이 달라 어찌 통달한 사람을 알아 가려 차례를 넘겨 기다리겠는가. 장수와 재상과 장리가 우부풍 채백개·울림태수 장맹상·동래태수 이계공의 무리처럼 마음이 절로 통하여 밝고 고금을 보아 통달하였으므로 그 통달한 사람을 공경함이 큰 손님을 보듯 하지 못한다. 연 소왕이 추연을 위해 비를 안았으니 저는 홀로 무슨 성품을 받았는가. 동성령 동중수가 유가의 우두머리가 될 줄 알아 해내가 통달하다 일컬었으므로 그 사람을 접함에 기이하고 뛰어남을 가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종리산공이 편호의 백성으로 규벽의 공경을 받았으니 앎이 밝은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알 수 있으면 예사 돌도 빛과 기운을 내고 알지 못하면 금과 옥도 윤택한 빛이 없다. 무제부터 지금 조정까지 여러 번 현량을 들어 사람에게 갑을의 과로 사책하게 하니 동중서·당자고·곡자운·정백옥 같은 이는 책이 이미 실상에 맞고 글과 말이 아름답고 착하니 널리 보아 기름진 데서 난 것이다.

使四者經徒能摘,筆徒能記(疏),不見古今之書,安能建美善於聖王之庭乎?孝明之時,讀《蘇武傳》,見武官名曰中監,以問百官,百官莫知。夫倉頡之章,小學之書,文字備具,至於無能對聖國之問者,是皆美命隨牒之人多在官也。「木」旁「多」文字,且不能知,其欲及若董仲舒之知重常,劉子政之知貳負,難哉!或曰:「通人之官,蘭台令史,職校書定字,比夫太史太,職在文書,無典民之用,不可施設。是以蘭台之史,班固、賈逵、楊終、傅毅之徒,名香文美,委積不(紲)〔泄〕,(大)〔失〕用於世。」

네 사람이 경을 한갓 따 낼 수 있고 붓으로 한갓 기록할 수 있을 뿐 고금의 책을 보지 않았다면 어찌 성왕의 뜰에 아름답고 착함을 세울 수 있었겠는가. 효명 때 「소무전」을 읽다가 무관 이름에 중감이라 한 것을 보고 백관에게 물으니 백관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무릇 창힐의 장은 소학의 책이라 문자가 갖추어졌는데 성스러운 나라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없음에 이르렀으니 이는 다 아름다운 명으로 첩을 따라 온 사람이 흔히 벼슬에 있어서다. 「목」 곁에 「다」인 문자도 알지 못하니 그 동중서가 중상을 알고 유자정이 이부를 안 것에 미치려 함이 어렵다! 어떤 이는 말한다. 「통달한 사람의 벼슬은 난대 영사라 직분이 책을 교정하고 글자를 정함이니 저 태사와 태복에 견주어 직분이 문서에 있어 백성을 맡는 쓰임이 없어 베풀 수 없다. 이 때문에 난대의 사인 반고·가규·양종·부의의 무리가 이름이 향기롭고 글이 아름다우나 쌓여 새어 나가지 못하여 세상에 쓰임을 잃는다.」

曰:此不繼。周世通覽之人,鄒衍之徒,孫卿之輩,受時王之寵,尊顯於世。董仲舒雖無鼎足之位,知在公卿之上。周監二代,漢監周、秦,然則蘭台之官,國所監得失也。

답한다. 이는 잇지 않은 것이다. 주나라 세상에 통하여 본 사람인 추연의 무리와 손경의 무리는 당시 왕의 총애를 받아 세상에 높이 드러났다. 동중서는 비록 솥발의 자리가 없었으나 앎이 공경 위에 있었다. 주나라는 두 대를 거울삼고 한나라는 주·진을 거울삼으니 그러면 난대의 벼슬은 나라가 잘잘못을 거울삼는 바다.

以心如丸卵,為體內藏,眸子如豆,為身光明。令史雖微,典國道藏,通人所由進,猶博士之官,儒生所由興也。委積不(紲)〔泄〕,豈聖國微遇之哉,殆以書未定而職未畢也。

마음은 탄알 같은데 몸의 안 간직함이 되고 눈동자는 콩 같은데 몸의 빛과 밝음이 된다. 영사가 비록 미미하나 나라의 도의 간직함을 맡으니 통달한 사람이 말미암아 나아가는 바로 박사의 벼슬에 유생이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과 같다. 쌓여 새어 나가지 못함이 어찌 성스러운 나라가 미미하게 대우해서겠는가. 아마 책이 아직 정해지지 않고 직분이 아직 마쳐지지 않아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