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奇篇
通書千篇以上,萬卷以下,弘暢雅閑,審定文讀,而以教授為人師者,通人也。杼其義旨,損益其文句,而以上書奏記,或興論立說、結連篇章者,文人鴻儒也。好學勤力,博聞強識,世間多有;著書表文,論說古今,萬不耐一。然則著書表文,博通所能用之者也。入山見木,長短無所不知;入野見草,大小無所不識。然而不能伐木以作室屋,采草以和方葯,此知草木所不能用也。夫通人覽見廣博,不能掇以論說,此為匿生書主人,孔子所謂「誦詩三百,授之以政不達」者也,與彼草木不能伐采,一實也。孔子得史記以作《春秋》,及其立義創意,褒貶賞誅,不復因史記者,眇思自出於胸中也。凡貴通者,貴其能用之也,即徒誦讀,讀詩諷術雖千篇以上,鸚鵡能言之類也。衍傳書之意,出膏腴之辭,非儻之才,不能任也。夫通覽者,世間比有;著文者,歷世希然。近世劉子政父子、揚子雲、桓君山,猶文、武、周公,并出一時也。其餘直有,往往而然,譬珠玉不可多得,以其珍也。
책을 통함이 천 편 이상 만 권 이하로 넓고 통달하고 우아하고 익숙하여 글의 읽기를 살펴 정하여 가르쳐 남의 스승이 되는 이는 통인이다. 그 뜻과 취지를 짜내고 그 글귀를 덜고 더하여 글을 올리고 기록을 아뢰거나 논을 일으키고 설을 세워 편장을 잇는 이는 문인이요 홍유다. 배움을 좋아하고 힘써 부지런하며 널리 듣고 굳세게 기억하는 이는 세상에 많이 있으나 책을 짓고 글을 드러내어 고금을 논설하는 이는 만에 하나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책을 짓고 글을 드러냄은 널리 통한 것을 쓸 수 있는 이다. 산에 들어 나무를 보면 길고 짧음을 모르는 것이 없고 들에 들어 풀을 보면 크고 작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나무를 베어 집을 짓지 못하고 풀을 캐어 약방문을 맞추지 못하면 이는 풀과 나무를 알되 쓰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통인이 보고 살핌이 넓고 넓어도 주워 논설할 수 없으면 이는 책을 숨겨 둔 주인이 되니 공자가 이른바 「시 삼백을 외고도 정사를 맡기면 통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라 저 풀과 나무를 베고 캐지 못함과 한가지 실상이다. 공자가 사기를 얻어 「춘추」를 지었는데 그 뜻을 세우고 생각을 냄에 기리고 깎고 상 주고 벰에 이르러 다시 사기에 말미암지 않았으니 묘한 생각이 가슴속에서 절로 나온 것이다. 무릇 통함을 귀히 여기는 것은 그 쓸 수 있음을 귀히 여기는 것이니 한갓 외고 읽어 시를 읽고 술법을 욈이 비록 천 편 이상이라도 앵무새가 말할 수 있는 무리다. 전하는 책의 뜻을 펴고 기름진 말을 냄은 뛰어난 재주가 아니면 맡을 수 없다. 무릇 통하여 보는 이는 세상에 자주 있으나 글을 짓는 이는 세상을 거쳐도 드물다. 근세의 유자정 부자·양자운·환군산은 문왕·무왕·주공이 아울러 한때에 난 것과 같다. 그 나머지도 바로 있어 이따금 그러하니 비유하면 구슬과 옥을 많이 얻을 수 없음이 그 보배롭기 때문인 것과 같다.
故夫能說一經者為儒生,博覽古今者為通人,采掇傳書以上書奏記者為文人,能精思著文連結篇章者為鴻儒。故儒生過俗人,通人勝儒生,文人逾通人,鴻儒超文人。故夫鴻儒,所謂超而又超者也。以超之奇,退與儒生相料,文軒之比於敝車,錦繡之方於袍也,其相過遠矣。如與俗人相料,太山之巔,長狄之項蹠,不足以喻。故夫丘山以土石為體,其有銅鐵,山之奇也。銅鐵既奇,或出金玉。然鴻儒,世之金玉也,奇而又奇矣。奇而又奇,才相超乘,皆有品差。
그러므로 무릇 한 경을 말할 수 있는 이는 유생이 되고 고금을 널리 보는 이는 통인이 되며 전하는 책을 주워 글을 올리고 기록을 아뢰는 이는 문인이 되고 정밀히 생각하여 글을 짓고 편장을 잇는 이는 홍유가 된다. 그러므로 유생은 속인보다 낫고 통인은 유생보다 낫고 문인은 통인보다 낫고 홍유는 문인보다 뛰어나다. 그러므로 무릇 홍유는 이른바 뛰어나고 또 뛰어난 이다. 뛰어난 기이함으로 물러나 유생과 서로 헤아리면 무늬 수레를 해진 수레에 견주고 비단을 베옷에 견줌이니 그 서로 지남이 멀다. 속인과 서로 헤아리면 태산의 꼭대기와 장적의 목과 발이라도 비유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그러므로 무릇 언덕과 산은 흙과 돌로 몸을 삼으니 그것에 구리와 쇠가 있음은 산의 기이함이다. 구리와 쇠가 이미 기이한데 혹 금과 옥이 난다. 그러니 홍유는 세상의 금과 옥이니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기이하고 또 기이하여 재주가 서로 뛰어넘음에 다 품의 차이가 있다.
儒生說名於儒門,過俗人遠也。或不能說一經,教誨後生,或帶徒聚眾,說論洞溢,稱為經明。或不能成牘,治一說;或能陳得失,奏便宜,言應經傳,文如星月。其高第若谷子云、唐子高者,說書於牘奏之上,不能連結篇章。或抽列古今,紀著行事,若司馬子長、劉子政之徒,累積篇第,文以萬數,其過子云、子高遠矣。然而因成紀前,無胸中之造。若夫陸賈、董仲舒論說世事,由意而出,不假取於外,然而淺露易見,觀讀之者猶曰傳記。陽成子長作《樂經》,揚子雲作《太玄經》,造於助思,極窅冥之深,非庶幾之才,不能成也。孔子作《春秋》,二子作兩經,所謂卓爾蹈孔子之跡,鴻茂參貳聖之才者也。王公子問於桓君山以揚子雲,君山對曰:「《漢》興以來,未有此人。」
유생은 유가의 문에서 이름을 말하니 속인보다 나음이 멀다. 혹 한 경을 말하지 못하고 후생을 가르치며 혹 무리를 거느리고 사람을 모아 논설이 넘쳐 경에 밝다 일컬어진다. 혹 독을 이루지 못하고 한 설을 다스리며 혹 잘잘못을 펴고 편의를 아뢸 수 있어 말이 경전에 응하고 글이 별과 달 같다. 그 높은 등급인 곡자운·당자고 같은 이는 독과 주에 글을 말하나 편장을 이을 수 없다. 혹 고금을 뽑아 벌이고 행한 일을 적어 드러내니 사마자장·유자정의 무리 같은 이는 편차를 쌓아 글이 만으로 헤아리니 그 자운·자고보다 나음이 멀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에 말미암아 앞을 적었지 가슴속의 지음이 없다. 저 육가·동중서는 세상일을 논설함이 뜻에서 나와 밖에서 빌려 취하지 않았으나 얕게 드러나 보기 쉬워 보고 읽는 이가 오히려 전기라 한다. 양성자장이 「악경」을 짓고 양자운이 「태현경」을 지음은 생각을 도와 짓고 아득한 깊음을 다하였으니 거의 성인에 가까운 재주가 아니면 이룰 수 없다. 공자가 「춘추」를 짓고 두 사람이 두 경을 지었으니 이른바 우뚝이 공자의 자취를 밟고 크고 무성하게 둘째 성인의 재주에 든 이다. 왕공자가 환군산에게 양자운을 물으니 군산이 대답하였다.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 이런 사람이 없었다.」
君山差才,可謂得高下之實矣。采玉者心羨於玉,鑽龜能知神於龜。能差眾儒之才,累其高下,賢於所累。又作《新論》,論世間事,辯照然否,虛妄之言,偽飾之辭,莫不証定。彼子長、子云說論之徒,君山為甲。自君山以來,皆為鴻眇之才,故有嘉令之文。筆能著文,則心能謀論,文由胸中而出,心以文為表。觀見其文,奇偉儻,可謂得論也。由此言之,繁文之人,人之杰也。
군산이 재주를 매김에 높고 낮음의 실상을 얻었다 할 만하다. 옥을 캐는 이는 마음이 옥을 부러워하고 거북을 뚫는 이는 거북의 신령함을 알 수 있다. 뭇 유자의 재주를 매겨 그 높고 낮음을 쌓을 수 있으니 쌓인 이보다 어질다. 또 「신론」을 지어 세상일을 논하고 그런지 아닌지 가려 비추니 헛되고 망령된 말과 거짓으로 꾸민 말이 증명되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저 자장·자운으로 논설하는 무리 가운데 군산이 으뜸이다. 군산 이래로 다 크고 묘한 재주라 그러므로 아름답고 좋은 글이 있다. 붓이 글을 지을 수 있으면 마음이 논을 꾀할 수 있으니 글은 가슴속에서 나오고 마음은 글로 겉을 삼는다. 그 글을 보매 기이하고 뛰어나면 논을 얻었다 할 만하다. 이로써 말하면 글 많은 사람은 사람의 호걸이다.
有根株於下,有榮葉於上;有實核於內,有皮殼於外。文墨辭說,士之榮葉、皮殼也。實誠在胸臆,文墨著竹帛,外內表里,自相副稱,意奮而筆縱,故文見而實露也。人之有文也,猶禽之有毛也。毛有五色,皆生於體。苟有文無實,是則五色之禽,毛妄生也。選士以射,心平體正,執弓矢審固,然後射中。論說之出,猶弓矢之發也;論之應理,猶矢之中的。夫射以矢中效巧,論以文墨驗奇。奇巧俱發於心,其實一也。文有深指巨略,君臣治術,身不得行,口不能紲,表著情心,以明己之必能為之也。孔子作《春秋》,以示王意。然則孔子之《春秋》,素王之業也;諸子之傳書,素相之事也。觀《春秋》以見王意,讀諸子以睹相指。故曰:陳平割肉,丞相之端見;叔孫敖決期思,令君之兆著。觀讀傳書之文,治道政務,非徒割肉決水之占也。足不強則跡不遠,鋒不則割不深。連結篇章,必大長智鴻懿之俊也。
아래에 뿌리와 그루가 있으면 위에 꽃과 잎이 있고 안에 열매와 씨가 있으면 밖에 가죽과 껍질이 있다. 글과 먹과 말은 선비의 꽃과 잎이요 가죽과 껍질이다. 실다운 정성은 가슴에 있고 글과 먹은 죽백에 드러나니 밖과 안, 겉과 속이 절로 서로 맞아 뜻이 떨치면 붓이 놓이므로 글이 보이면 실상이 드러난다. 사람에게 글이 있음은 새에게 털이 있음과 같다. 털에 다섯 빛깔이 있으나 다 몸에서 난다. 진실로 글이 있고 실상이 없으면 이는 다섯 빛깔의 새가 털이 망령되이 난 것이다. 선비를 활쏘기로 뽑음은 마음이 평평하고 몸이 바르며 활과 화살을 잡음이 살피고 굳은 뒤에야 쏘아 맞힌다. 논설이 나옴은 활과 화살이 발함과 같고 논이 이치에 응함은 화살이 과녁에 맞음과 같다. 무릇 활쏘기는 화살 맞음으로 교묘함을 증험하고 논은 글과 먹으로 기이함을 증험한다. 기이함과 교묘함이 다 마음에서 발하니 그 실상은 하나다. 글에 깊은 가리킴과 큰 계략과 임금과 신하의 다스리는 술법이 있어 몸소 행할 수 없고 입으로 잇지 못하면 정과 마음을 드러내어 제가 반드시 그것을 할 수 있음을 밝힌다. 공자가 「춘추」를 지어 왕의 뜻을 보였다. 그러니 공자의 「춘추」는 소왕의 업이요 제자의 전하는 책은 소상의 일이다. 「춘추」를 보아 왕의 뜻을 보고 제자를 읽어 재상의 가리킴을 본다. 그러므로 진평이 고기를 가름에 승상의 실마리가 보이고 숙손오가 기사를 터놓음에 영윤의 조짐이 드러났다 한다. 전하는 책의 글을 보고 읽으면 다스리는 도와 정사의 힘씀이 한갓 고기 가르고 물 터놓는 점이 아니다. 발이 강하지 않으면 자취가 멀지 않고 칼끝이 날카롭지 않으면 가름이 깊지 않다. 편장을 잇는 이는 반드시 크고 긴 지혜와 크고 아름다운 준걸이다.
或曰:「著書之人,博覽多聞,學問習熟,則能推類興文。文由外而興,未必實才學文相副也。
어떤 이는 말한다. 「책을 짓는 사람은 널리 보고 많이 들으며 학문이 익숙하면 무리를 미루어 글을 일으킬 수 있다. 글은 밖에서 말미암아 일어나니 반드시 실다운 재주와 배움과 글이 서로 맞는 것은 아니다.
且淺意於華葉之言,無根核之深,不見大道體要,故立功者希。安危之際,文人不與,無能建功之驗,徒能筆說之效也。」
또 꽃과 잎의 말에 뜻이 얕아 뿌리와 씨의 깊음이 없어 큰 도의 몸과 요체를 보지 못하므로 공을 세우는 이가 드물다. 위태롭고 편안한 즈음에 문인이 참여하지 못하니 공을 세울 수 있는 증험이 없고 한갓 붓과 말의 보람이 있을 뿐이다.」
曰:此不然。周世著書之人皆權謀之臣,漢世直言之士皆通覽之吏,豈謂文非華葉之生,根核推之也?心思為謀,集扎為文,情見於辭,意驗於言。商鞅相秦,致功於霸,作耕戰之書。虞卿為趙決計定說行,退作春秋之思,起城中之議。
답한다. 이는 그렇지 않다. 주나라 세상에 책을 지은 사람은 다 권모의 신하요 한나라 세상에 곧게 말한 선비는 다 통하여 보는 아전이니 어찌 글이 꽃과 잎에서 나는 것이지 뿌리와 씨가 미룬 것이 아니라 하겠는가. 마음으로 생각하여 꾀를 삼고 글을 모아 글을 삼으니 정이 말에 보이고 뜻이 말에 증험된다. 상앙이 진나라 재상이 되어 패업에 공을 이루고 밭 갈고 싸우는 책을 지었다. 우경이 조나라를 위해 계책을 정하고 설이 행해지자 물러나 춘추의 생각을 지었으니 성 가운데의 의논에서 일어난 것이다.
耕戰之書,秦堂上之計也。陸賈消呂氏之謀,與《新語》同一意。桓君山易晁錯這策,與《新論》共一思。觀谷永之陳說,唐林之宜言,劉向之切議,以知為本,筆墨之文,將而送之,豈徒雕文飾辭,苟為華葉之言哉?精誠由中,故其文語感動人深。是故魯連飛書,燕將自殺;鄒陽上疏,梁孝開牢。書疏文義,奪於肝心,非徒博覽者所能造,習熟者所能為也。
밭 갈고 싸우는 책은 진나라 조정의 계책이다. 육가가 여씨의 꾀를 사라지게 함은 「신어」와 한 뜻이다. 환군산이 조조의 계책을 바꿈은 「신론」과 한 생각이다. 곡영의 진술과 당림의 마땅한 말과 유향의 절실한 의논을 보면 앎으로 근본을 삼고 붓과 먹의 글로 이끌어 보내니 어찌 한갓 글을 새기고 말을 꾸며 구차히 꽃과 잎의 말을 하겠는가. 정성이 가운데서 말미암으므로 그 글과 말이 사람을 감동시킴이 깊다. 이 때문에 노중련이 글을 날리니 연나라 장수가 스스로 죽었고 추양이 소를 올리니 양 효왕이 옥문을 열었다. 글과 소의 글뜻이 간과 심장에서 빼앗아 오니 한갓 널리 보는 이가 지을 수 있고 익숙한 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夫鴻儒希有,而文人比然,將相長吏,安可不貴?豈徒用其才力,游文於牒牘哉?州郡有憂,能治章上奏,解理結煩,使州郡連事,有如唐子高、谷子云之吏,出身盡思,竭筆牘之力,煩憂適有不解者哉?
무릇 홍유는 드물게 있고 문인은 자주 있으니 장수와 재상과 장리가 어찌 귀히 여기지 않겠는가. 어찌 한갓 그 재주와 힘을 써서 첩과 독에 글을 놀리겠는가. 주와 군에 근심이 있어 글을 다스려 올려 맺힌 것을 풀고 번거로움을 다스려 주와 군이 일을 잇게 할 수 있으니, 당자고·곡자운 같은 아전이 있어 몸을 내어 생각을 다하고 붓과 독의 힘을 다하면 번거로운 근심에 마침 풀리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古昔之遠,四方辟匿,文墨之士,難得紀錄。且近自以會稽言之,周長生者,文士之雄也,在州為刺史任安舉奏,在郡為太守孟觀上書,事解憂除,州郡無事,二將以全。長生之身不尊顯,非其才知少、功力薄也,二將懷俗人之節,不能貴也。使遭前世燕昭,則長生已蒙鄒衍之寵矣。長生死後,州郡遭憂,無舉奏之吏,以故事結不解,征詣相屬,文軌不尊,筆疏不續也。豈無憂上之吏哉?乃其中文筆不足類也。長生之才,非徒銳於牒牘也,作《洞歷》十篇,上自黃帝,下至漢朝,鋒芒毛髪之事,莫不紀載,與太吏公《表》、《紀》相似類也。上通下達,故曰「洞歷」。然則長生非徒文人,所謂鴻儒者也。前世有嚴夫子,後有吳君(商)〔高〕,末有周長生。白雉貢於越,暢草獻於宛,雍州出玉,荊、揚生金。珍物產於四遠幽遼之地,未可言無奇人也。孔子曰:「文王既沒,文不在茲乎!」
옛날은 멀고 사방은 궁벽하고 숨어 글과 먹의 선비를 기록에서 얻기 어렵다. 또 가까이 회계로 말하면 주장생은 문사의 영웅이라 주에 있어서는 자사 임안을 위해 아뢰고 군에 있어서는 태수 맹관을 위해 글을 올려 일이 풀리고 근심이 없어져 주와 군에 일이 없고 두 장관이 온전하였다. 장생의 몸이 높이 드러나지 못한 것은 그 재주와 앎이 적고 공과 힘이 얇아서가 아니라 두 장관이 속인의 절개를 품어 귀히 여길 수 없어서다. 앞 세상의 연 소왕을 만났다면 장생은 이미 추연의 총애를 입었을 것이다. 장생이 죽은 뒤 주와 군이 근심을 만나 아뢸 아전이 없어 이로써 일이 맺혀 풀리지 않아 불려 가는 이가 서로 이었으니 글의 궤가 높지 않고 붓의 소가 이어지지 않아서다. 어찌 위를 근심하는 아전이 없었겠는가. 곧 그 가운데 글과 붓이 무리에 넉넉하지 않았을 뿐이다. 장생의 재주는 한갓 첩과 독에 날카로울 뿐 아니라 「동력」 열 편을 지어 위로 황제부터 아래로 한나라 조정까지 칼끝과 터럭 같은 일도 기록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태사공의 「표」·「기」와 서로 비슷한 무리다. 위로 통하고 아래로 통달하므로 「동력」이라 한다. 그러니 장생은 한갓 문인이 아니라 이른바 홍유다. 앞 세상에 엄부자가 있고 뒤에 오군고가 있고 끝에 주장생이 있다. 흰 꿩은 월에서 바치고 창초는 완에서 바치며 옹주는 옥을 내고 형·양은 금을 낸다. 보배로운 물건이 사방 먼 그윽하고 아득한 땅에서 나니 기이한 사람이 없다 말할 수 없다. 공자가 말하였다.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니 글이 여기 있지 않은가!」
文王之文在孔子,孔子之文在仲舒。仲舒既死,豈在長生之徒與?何言之卓殊,文之美麗也!唐勒、宋玉,亦楚文人也,竹帛不紀者,屈原在其上也。會稽文才,豈獨周長生哉?所以未論列者,長生尤逾出也。九州多山,而華、岱為岳,四方多川,而江、河為瀆者,華、岱高而江、河大也。長生,州郡高大者也。同姓之伯賢,舍而譽他族之孟,未為得也。長生說文辭之伯,文人之所共宗,獨紀錄之,《春秋》記元於魯之義也。俗好高古而稱所聞,前人之業,菜果甘甜;後人新造,蜜酪辛苦。長生家在會稽,生在今世,文章雖奇,論者猶謂稚於前人。天稟元氣,人受元精,豈為古今者差殺哉?優者為高,明者為上,實事之人,見然否之分者,睹非卻前,退置於後,見是推今,進置於古,心明知昭,不惑於俗也。
문왕의 글은 공자에게 있고 공자의 글은 중서에게 있다. 중서가 이미 죽었으니 어찌 장생의 무리에게 있지 않은가. 어찌 그리 말이 뛰어나고 글이 아름다운가! 당륵과 송옥도 초나라 문인인데 죽백에 적히지 않은 것은 굴원이 그 위에 있어서다. 회계의 문재가 어찌 홀로 주장생뿐이겠는가. 논하여 벌이지 않은 까닭은 장생이 더욱 넘어 나서다. 구주에 산이 많으나 화산·대산이 악이 되고 사방에 내가 많으나 강·하수가 독이 되는 것은 화산·대산이 높고 강·하수가 크기 때문이다. 장생은 주와 군의 높고 큰 이다. 같은 성의 맏이 어진데 버려두고 다른 겨레의 맏이를 기림은 옳지 않다. 장생은 문사의 맏이라 문인이 함께 높이는 바이니 홀로 기록함은 「춘추」가 노나라에서 원을 적은 뜻이다. 세속은 높고 옛것을 좋아하여 들은 바를 일컬으니 앞사람의 업은 나물과 열매가 달고 뒷사람의 새 지음은 꿀과 우유가 맵고 쓰다 한다. 장생은 집이 회계에 있고 지금 세상에 났으니 문장이 비록 기이하여도 논하는 이는 오히려 앞사람보다 어리다 한다. 하늘이 원기를 주고 사람이 원정을 받는데 어찌 옛과 지금으로 차등을 두겠는가. 뛰어난 이가 높고 밝은 이가 위이니 실상을 아는 사람으로 그런지 아닌지 나뉨을 보는 이는 그른 것을 보면 앞이라도 물리쳐 뒤에 두고 옳은 것을 보면 지금이라도 밀어 옛에 두니 마음이 밝고 앎이 환하여 세속에 홀리지 않는다.
班叔皮續《太史公書》百篇以上,記事詳悉,義淺理備。觀讀之者以為甲,而太史公乙。子男孟堅為尚書郎,文比叔皮非徒五百里也,乃夫周召、魯衛之謂也。苟可高古,而班氏父子不足紀也。
반숙피가 「태사공서」를 백 편 이상 이어 일을 적음이 자세하고 뜻이 얕으면서 이치가 갖추어졌다. 보고 읽는 이가 갑으로 삼고 태사공을 을로 삼는다. 아들 맹견이 상서랑이 되어 글이 숙피에 견주어 한갓 오백 리가 아니라 곧 주공·소공과 노·위를 이르는 것이다. 진실로 옛것을 높일 수 있다면 반씨 부자는 기록하기에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周有郁郁之文者,在百世之末也。漢在百世之後,文論辭說,安得不茂?喻大以小,推民家事,以睹王廷之義:廬宅始成,桑麻才有,居之歷歲,子孫相續,桃李梅杏,〔奄〕丘蔽野。根莖眾多,則華葉繁茂。漢氏治定久矣,土廣民眾,義興事起,華葉之言,安得不繁?夫華與實俱成者也,無華生實,物希有之。山之禿也,孰其茂也?地之瀉也,孰其滋也?文章之人,滋茂漢朝者,乃夫漢家熾盛之瑞也。天晏,列宿煥炳。陰雨,日月蔽匿。方今文人并出見者,乃夫漢朝明明之驗也。
주나라에 빛나는 글이 있었던 것은 백세의 끝에 있어서다. 한나라는 백세 뒤에 있으니 글과 논과 말이 어찌 무성하지 않겠는가.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비유하여 백성의 집안일을 미루어 왕정의 뜻을 보면, 집이 처음 이루어지면 뽕과 삼이 겨우 있으나 살아 해를 거듭하면 자손이 서로 이어 복숭아·오얏·매화·살구가 언덕을 덮고 들을 가린다. 뿌리와 줄기가 많으면 꽃과 잎이 번성한다. 한나라가 다스려 정해진 지 오래니 땅이 넓고 백성이 많아 뜻이 일어나고 일이 일어나니 꽃과 잎의 말이 어찌 번성하지 않겠는가. 무릇 꽃과 열매는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니 꽃 없이 열매를 냄은 물건에 드물게 있다. 산이 벗어지면 무엇이 무성하겠는가. 땅이 쏟아지면 무엇이 불어나겠는가. 문장의 사람이 한나라 조정에 불어나고 무성함은 곧 한나라 집안이 성한 상서다. 하늘이 맑으면 뭇별이 빛난다. 흐리고 비 오면 해와 달이 가려 숨는다. 지금 문인이 아울러 나와 보이는 것은 곧 한나라 조정이 밝고 밝은 증험이다.
高祖讀陸賈之書,嘆稱萬歲;徐樂、主父偃上疏,征拜郎中:方今未聞。膳無苦酸之肴,口所不甘味,手不舉以啖人。詔書每下,文義經傳四科,詔書斐然,郁郁好文之明驗也。上書不實核,著書無義指,萬歲之聲,征拜之恩,何從發哉?飾面者皆欲為好,而運目者希。
고조가 육가의 책을 읽고 탄식하여 만세라 일컬었고 서락과 주보언이 소를 올리자 불러 낭중에 배하였는데 지금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반찬에 쓰고 신 안주가 없으니 입이 달지 않는 맛은 손이 들어 남에게 먹이지 않는다. 조서가 내릴 때마다 글뜻이 경전 사과에 통하고 조서가 아름다우니 빛나게 글을 좋아하는 밝은 증험이다. 글을 올림에 실상을 핵실하지 않고 책을 지음에 뜻과 가리킴이 없으면 만세의 소리와 불러 배하는 은혜가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얼굴을 꾸미는 이는 다 아름답게 하려 하나 눈을 움직이는 이는 드물다.
文音者皆欲為悲,而驚耳者寡。陸賈之書未奏,徐樂、主父之策未聞,群諸瞽言之徒,言事麤醜,文不美,潤不指,所謂文辭淫滑,不被濤沙之謫,幸矣,焉蒙征拜為郎中之寵乎?
글과 소리를 내는 이는 다 슬프게 하려 하나 귀를 놀라게 하는 이는 적다. 육가의 책이 아뢰어지지 않고 서락과 주보의 계책이 들리지 않았다면 뭇 눈먼 말의 무리가 일을 말함이 거칠고 추하며 글이 아름답지 않고 윤택함이 가리키지 않아 이른바 글과 말이 음란하고 미끄러워 도사의 꾸짖음을 입지 않으면 다행일 것인데 어찌 불러 배하여 낭중이 되는 총애를 입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