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溫篇
說寒溫者曰:「人君喜則溫,怒則寒。」何則?喜怒發於胸中,然後行出於外,外成賞罰。賞罰,喜怒之效。故寒溫渥盛,雕物傷人。夫寒溫之代至也,在數日之間。人君未必有喜怒之氣發胸中,然後渥盛於外。見外寒溫,則知胸中之氣也。當人君喜怒之時,胸中之氣未必更寒溫也。胸中之氣,何以異於境內之氣?胸中之氣,不為喜怒變,境內寒溫,何所生起?六國之時,秦、漢之際,諸侯相伐,兵革滿道。國有相攻之怒,將有相勝之志,夫有相殺之氣,當時天下未必常寒也;太平之世,唐、虞之時,政得民安,人君常喜,弦歌鼓舞,比屋而有,當時天下未必常溫也。豈喜怒之氣為小發,不為大動邪?何其不與行事相中得也!
추위와 따뜻함을 말하는 이가 말한다. 「임금이 기뻐하면 따뜻하고 노하면 춥다.」 어째서인가. 기쁨과 노여움이 가슴속에서 발한 뒤에 행실이 밖으로 나오고 밖에서 상벌을 이룬다. 상벌은 기쁨과 노여움의 보람이다. 그러므로 추위와 따뜻함이 두텁고 성하면 물건을 시들게 하고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릇 추위와 따뜻함이 번갈아 이름은 며칠 사이에 있다. 임금이 반드시 기쁨과 노여움의 기운이 가슴속에서 발한 뒤에 밖에 두텁고 성한 것은 아니다. 밖의 추위와 따뜻함을 보고 가슴속의 기운을 안다는 것이다. 임금이 기뻐하고 노할 때 가슴속의 기운이 반드시 다시 춥고 따뜻한 것은 아니다. 가슴속의 기운이 어찌 나라 안의 기운과 다르겠는가. 가슴속의 기운이 기쁨과 노여움으로 변하지 않는데 나라 안의 추위와 따뜻함이 어디서 생겨 일어나는가. 육국 때와 진·한의 즈음에 제후가 서로 치고 군사와 갑옷이 길에 가득하였다. 나라에 서로 치는 노여움이 있고 장수에게 서로 이기려는 뜻이 있고 병사에게 서로 죽이는 기운이 있었으나 당시 천하가 반드시 늘 춥지는 않았다. 태평한 세상 당·우 때에 정사가 얻어지고 백성이 편안하여 임금이 늘 기뻐하고 거문고와 노래와 북과 춤이 집집이 있었으나 당시 천하가 반드시 늘 따뜻하지는 않았다. 어찌 기쁨과 노여움의 기운이 작은 발함에는 되고 큰 움직임에는 되지 않는가. 어찌 그리 행한 일과 서로 맞지 않는가!
「夫近水則寒,近火則溫,遠之漸微。」何則?
「무릇 물에 가까우면 춥고 불에 가까우면 따뜻하며 멀어지면 차츰 미미해진다.」 어째서인가.
氣之所加,遠近有差也。成事,火位在南,水位在北,北邊則寒,南極則熱。火之在爐,水之在溝,氣之在軀,其實一也。當人君喜怒之時,寒溫之氣,閨門宜甚,境外宜微。今案寒溫外內均等,殆非人君喜怒之所致。世儒說稱,妄處之也。王者之變在天下,諸侯之變在境內,卿大夫之變在其位,庶人之變在其家。夫家人之能致變,則喜怒亦能致氣。父子相怒,夫妻相督,若當怒反喜,縱過飾非,一室之中,宜有寒溫。由此言之,變非喜怒所生明矣。
기운이 더해짐에 멀고 가까움의 차이가 있어서다. 이루어진 일로 불의 자리는 남에 있고 물의 자리는 북에 있으니 북쪽 변방은 춥고 남쪽 끝은 덥다. 불이 화로에 있음과 물이 도랑에 있음과 기운이 몸에 있음은 그 실상이 하나다. 임금이 기뻐하고 노할 때 추위와 따뜻함의 기운이 규문에서 마땅히 심하고 나라 밖에서 마땅히 미미해야 한다. 이제 추위와 따뜻함을 살피면 안팎이 고르니 아마 임금의 기쁨과 노여움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세상 유자의 말과 일컬음은 망령되이 둔 것이다. 왕의 변고는 천하에 있고 제후의 변고는 나라 안에 있고 경대부의 변고는 그 자리에 있고 서인의 변고는 그 집에 있다. 무릇 집안사람이 변고를 이르게 할 수 있으면 기쁨과 노여움도 기운을 이르게 할 수 있다. 아비와 자식이 서로 노하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꾸짖으며 노해야 할 때 도리어 기뻐하고 허물을 놓아두고 그름을 꾸미면 한 방 가운데 마땅히 추위와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이로써 말하면 변고가 기쁨과 노여움에서 생기지 않음이 분명하다.
或曰:「以類相招致也。喜者和溫,和溫賞賜。陽道施予,陽氣溫,故溫氣應之。怒者慍恚,慍恚誅殺。陰道肅殺,陰氣寒,故寒氣應之。虎嘯而谷風至,龍興而景雲起。同氣共類,動相招致。故曰以形逐影,以龍致雨。雨應龍而來,影應形而去。天地之性,自然之道也。秋冬斷刑,小獄微原,大辟盛寒,寒隨刑至,相招審矣。」
어떤 이는 말한다. 「무리로 서로 불러 이르게 하는 것이다. 기쁜 이는 화하고 따뜻하며 화하고 따뜻하면 상을 준다. 양의 도는 베풀어 주니 양의 기운은 따뜻하므로 따뜻한 기운이 응한다. 노한 이는 성내고 성내면 베어 죽인다. 음의 도는 엄숙히 죽이니 음의 기운은 추우므로 추운 기운이 응한다. 범이 울면 골바람이 이르고 용이 일어나면 빛나는 구름이 인다. 같은 기운과 같은 무리는 움직이면 서로 불러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꼴로 그림자를 좇고 용으로 비를 이르게 한다 한다. 비는 용에 응하여 오고 그림자는 꼴에 응하여 간다. 하늘과 땅의 성품이요 절로 그러한 도다. 가을과 겨울에 형벌을 결단하는데 작은 옥사는 조금 캐고 대벽은 한창 추울 때 하니 추위가 형벌을 따라 이르는 것으로 서로 부름이 분명하다.」
夫比寒溫於風雲,齊喜怒於龍虎,同氣共類,動相招致可矣。虎嘯之時,風從谷中起;龍興之時,雲起百里內。他谷異境,無有風雲。今寒溫之變,并時皆然。百里用刑,千里皆寒,殆非其驗。齊、魯接境,賞罰同時,設齊賞魯罰,所致宜殊,當時可齊國溫、魯地寒乎?
무릇 추위와 따뜻함을 바람과 구름에 견주고 기쁨과 노여움을 용과 범에 나란히 하여 같은 기운과 같은 무리가 움직이면 서로 불러 이르게 한다 함은 옳다. 범이 울 때 바람이 골짜기 가운데서 일어나고 용이 일어날 때 구름이 백 리 안에서 인다. 다른 골짜기와 다른 지경에는 바람과 구름이 없다. 이제 추위와 따뜻함의 변고는 같은 때에 다 그러하다. 백 리에서 형벌을 쓰면 천 리가 다 추우니 아마 그 증험이 아니다. 제나라와 노나라가 경계를 접하여 상벌을 같은 때에 하는데, 제나라는 상 주고 노나라는 벌한다면 이르게 하는 바가 마땅히 달라야 하니 당시에 제나라는 따뜻하고 노나라 땅은 추울 수 있는가.
案前世用刑者,蚩尤、亡秦甚矣。蚩尤之民,湎湎紛紛;亡秦之路,赤衣比肩。當時天下未必常寒也。帝都之市,屠殺牛羊,日以百數,刑人殺牲,皆有賊心,帝都之市,氣不能寒。或曰:「人貴於物,唯人動氣。」
살피건대 앞 세상에 형벌을 쓴 이로 치우와 망한 진나라가 심하였다. 치우의 백성은 빠지고 어지러웠고 망한 진나라의 길은 붉은 옷이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당시 천하가 반드시 늘 춥지는 않았다. 임금이 사는 서울 저잣거리에 소와 양을 잡음이 날마다 백으로 헤아리니 사람을 형벌함과 짐승을 죽임은 다 해치는 마음이 있는데 임금이 사는 서울 저잣거리의 기운이 추울 수 없다. 어떤 이는 말한다. 「사람이 물건보다 귀하니 오직 사람만 기운을 움직인다.」
夫用刑者動氣乎?用受刑者為變也?如用刑者,刑人殺禽,同一心也。如用受刑者,人禽皆物也,俱為萬物,百賤不能當一貴乎?或曰:「唯人君動氣,眾庶不能。」
무릇 형벌을 쓰는 이가 기운을 움직이는가, 형벌을 받는 이로 변고를 삼는가. 형벌을 쓰는 이라면 사람을 형벌함과 짐승을 죽임이 같은 한 마음이다. 형벌을 받는 이라면 사람과 짐승이 다 물건이니 다 만물이 되어 백 천한 것이 하나 귀한 것에 맞설 수 없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오직 임금만 기운을 움직이고 뭇 서인은 못 한다.」
夫氣感必須人君,世何稱於鄒衍?鄒衍匹夫,一人感氣,世又然之。刑一人而氣輒寒,生一人而氣輒溫乎?赦令四下,萬刑并除,當時歲月之氣不溫。往年萬戶失火,煙焱參天;河決千里,四望無垠。火與溫氣同,水與寒氣類。失火河決之時,不寒不溫。然則寒溫之至,殆非政治所致。然而寒溫之至,遭與賞罰同時,變復之家,因緣名之矣。
무릇 기운의 감응에 반드시 임금이 필요하다면 세상이 어찌 추연을 일컫는가. 추연은 필부인데 한 사람이 기운을 감응시켰다고 세상이 또 그렇다 한다. 한 사람을 형벌하면 기운이 곧 춥고 한 사람을 살리면 기운이 곧 따뜻한가. 사면령이 사방에 내려 만 형벌이 아울러 없어져도 당시 해와 달의 기운이 따뜻하지 않다. 지난해 만 집에 불이 나서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닿았고 하수가 천 리를 터져 사방을 바라보아도 끝이 없었다. 불은 따뜻한 기운과 같고 물은 추운 기운의 무리다. 불이 나고 황하가 터질 때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추위와 따뜻함이 이름은 아마 정치가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추위와 따뜻함이 이름이 상벌과 같은 때를 만나면 변복의 집이 연유하여 이름한다.
春溫夏暑,秋涼冬寒,人君無事,四時自然。夫四時非政所為,而謂寒溫獨應政治。正月之始(正月之後),立春之際,百刑皆斷,囹圄空虛。然而一寒一溫,當其寒也,何刑所斷?當其溫也,何賞所施?由此言之,寒溫,天地節氣,非人所為,明矣。
봄은 따뜻하고 여름은 덥고 가을은 서늘하고 겨울은 추우니 임금이 일이 없어도 사철이 절로 그러하다. 무릇 사철은 정사가 하는 것이 아닌데 추위와 따뜻함만 홀로 정치에 응한다 한다. 정월의 처음 입춘의 즈음에 온갖 형벌이 다 끊기고 감옥이 텅 빈다. 그러나 한 번 춥고 한 번 따뜻하니 그 추울 때 무슨 형벌이 끊어졌으며 그 따뜻할 때 무슨 상이 베풀어졌는가. 이로써 말하면 추위와 따뜻함은 하늘과 땅의 절기라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人有寒溫之病,非操行之所及也。遭風逢氣,身生寒溫。變操易行,寒溫不除。夫身近而猶不能變除其疾,國邑遠矣,安能調和其氣?人中於寒,飲葯行解,所苦稍衰;轉為溫疾,吞發汗之丸而應愈。燕有寒谷,不生五谷。鄒衍吹律,寒谷可種,燕人種黍其中,號曰黍谷。如審有之,寒溫之災,復以吹律之事調和其氣,變政易行,何能滅除?是故寒溫之疾,非葯不愈;黍谷之氣,非律不調。堯遭洪水,使禹治之。寒溫與堯之洪水,同一實也。堯不變政易行,知夫洪水非政行所致。洪水非政行所致,亦知寒溫非政治所招。
사람에게 추위와 따뜻함의 병이 있음은 몸가짐이 미치는 바가 아니다. 바람을 만나고 기운을 만나 몸에 추위와 따뜻함이 생긴다. 몸가짐을 바꾸고 행실을 고쳐도 추위와 따뜻함이 없어지지 않는다. 무릇 몸은 가까운데도 오히려 그 병을 바꾸어 없앨 수 없는데 나라와 고을은 머니 어찌 그 기운을 고르게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추위에 맞으면 약을 마시고 다녀 풀면 괴로움이 차츰 쇠하고, 바뀌어 따뜻한 병이 되면 땀 내는 환을 삼키면 응하여 낫는다. 연나라에 추운 골짜기가 있어 오곡이 나지 않았다. 추연이 율을 부니 추운 골짜기에 심을 수 있어 연나라 사람이 기장을 그 가운데 심어 이름하여 서곡이라 하였다. 참으로 그것이 있다면 추위와 따뜻함의 재앙은 다시 율을 부는 일로 그 기운을 고르게 하는 것이니 정사를 바꾸고 행실을 고쳐 어찌 없앨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추위와 따뜻함의 병은 약이 아니면 낫지 않고 서곡의 기운은 율이 아니면 고르지 않다. 요가 홍수를 만나 우에게 다스리게 하였다. 추위와 따뜻함은 요의 홍수와 한가지 실상이다. 요가 정사를 바꾸고 행실을 고치지 않았으니 저 홍수가 정사와 행실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님을 안 것이다. 홍수가 정사와 행실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면 또한 추위와 따뜻함이 정치가 부른 것이 아님을 안다.
或難曰:「《洪范》庶徵曰:『急,恆寒若;舒,恆燠若。』若,順;燠,溫;恆,常也。人君急,則常寒順之;舒,則常溫順之。寒溫應急舒,謂之非政,如何?」
어떤 이가 따져 말한다. 「「홍범」 서징에 『급하면 늘 추움이 따르고 느슨하면 늘 따뜻함이 따른다』 하였다. 약(若)은 따름이요 욱(燠)은 따뜻함이요 항(恆)은 늘이다. 임금이 급하면 늘 추위가 따르고 느슨하면 늘 따뜻함이 따른다. 추위와 따뜻함이 급하고 느슨함에 응하는데 정사가 아니라 하니 어떠한가?」
夫豈謂急不寒、舒不溫哉?人君急舒而寒溫遞至,偶適自然,若故相應,猶卜之得兆、筮之得數也。人謂天地應令問,其實適然。夫寒溫之應急舒,猶兆數之應令問也。外若相應,其實偶然。何以驗之?夫天道自然,自然無為,二令參偶。遭適逢會,人事始作,天氣已有,故曰道也。使應政事,是有非自然也。《易》京氏布六十(四)卦,於一歲中,六日七分,一卦用事。卦有陰陽,氣有升降。陽升則溫,陰升則寒。
무릇 어찌 급하면 춥지 않고 느슨하면 따뜻하지 않다 하겠는가. 임금이 급하고 느슨함에 추위와 따뜻함이 번갈아 이름은 우연히 맞아 절로 그러한 것이니 일부러 서로 응하는 것 같음은 점쳐 조짐을 얻고 시초 점쳐 수를 얻음과 같다. 사람은 하늘과 땅이 물음에 응한다 하나 그 실은 마침 그러한 것이다. 무릇 추위와 따뜻함이 급하고 느슨함에 응함은 조짐과 수가 물음에 응함과 같다. 밖으로 서로 응하는 것 같으나 그 실은 우연이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무릇 하늘의 도는 절로 그러하고 절로 그러함은 함이 없으니 두 명령이 서로 짝한다. 만남이 마침 맞아 사람의 일이 비로소 지어질 때 하늘의 기운은 이미 있으므로 도라 한다. 정사에 응한다면 이는 함이 있는 것이라 절로 그러함이 아니다. 「역」에 경씨가 육십사 괘를 벌여 한 해 가운데 엿새 일곱 푼에 한 괘가 일을 맡는다. 괘에 음양이 있고 기운에 오르내림이 있다. 양이 오르면 따뜻하고 음이 오르면 춥다.
由此言之,寒溫隨卦而至,不應政治也。案《易》無妄之應,水旱之至,自有期節。百災萬變,始同一曲。變復之家,疑且失實。何以為疑?夫大人與天地合德,先天而天不違,後天而奉天時。《洪范》曰:「急,恆寒若;舒,恆燠若。」
이로써 말하면 추위와 따뜻함은 괘를 따라 이르지 정치에 응하지 않는다. 살피건대 「역」 무망의 응함에 물과 가뭄의 이름이 절로 기한과 절기가 있다. 온갖 재앙과 만 변고가 처음은 한 가락으로 같다. 변복의 집은 의심스럽고 또 실상을 잃었다. 무엇으로 의심하는가. 무릇 대인은 하늘과 땅과 덕을 합하여 하늘보다 앞서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하면 하늘의 때를 받든다. 「홍범」에 이르기를 「급하면 늘 추움이 따르고 느슨하면 늘 따뜻함이 따른다」 하였다.
如《洪范》之言,天氣隨人易徒,當先天而天不違耳,何故復言後天而奉天時乎?後者,天已寒溫於前,而人賞罰於後也。由此言之,人言與《尚書》不合,一疑也。京氏占寒溫以陰陽升降,變復之家以刑賞、喜怒,兩家乖跡,二疑也。民間占寒溫,今日寒而明日溫,朝有繁霜,夕有列光,旦雨氣溫,旦氣寒。夫雨者陰,者陽也,寒者陰而溫者陽也。雨旦反寒,旦雨反溫,不以類相應,三疑也。三疑不定,自然之說亦未立也。
「홍범」의 말대로라면 하늘의 기운이 사람을 따라 바뀌니 마땅히 하늘보다 앞서도 하늘이 어기지 않을 뿐인데 무슨 까닭으로 다시 하늘보다 뒤에 하면 하늘의 때를 받든다 말하는가. 뒤라는 것은 하늘이 이미 앞에 춥고 따뜻하였고 사람이 뒤에 상벌하는 것이다. 이로써 말하면 사람의 말이 「상서」와 맞지 않으니 첫째 의심이다. 경씨는 추위와 따뜻함을 음양의 오르내림으로 점치고 변복의 집은 형벌과 상, 기쁨과 노여움으로 하니 두 집이 자취가 어긋나니 둘째 의심이다. 민간에서 추위와 따뜻함을 점치는데 오늘 추우면 내일 따뜻하고 아침에 많은 서리가 있으면 저녁에 벌여진 빛이 있으며 아침에 비 오면 기운이 따뜻하고 아침에 개면 기운이 춥다 한다. 무릇 비는 음이요 갬은 양이며 추움은 음이요 따뜻함은 양이다. 비 오는 아침에 도리어 따뜻하고 개는 아침에 도리어 추우면 무리로 서로 응하지 않으니 셋째 의심이다. 세 의심이 정해지지 않으니 절로 그러하다는 말도 아직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