譴告篇
論災異,謂古之人君為政失道,天用災異譴告之也。災異非一,復以寒溫為之效。人君用刑非時則寒,施賞違節則溫。天神譴告人君,猶人君責怒臣下也。故楚(嚴)〔莊〕王曰:「天不下災異,天其忘(子)〔予〕乎!」
재앙과 이변을 논하는 이는 옛 임금이 정사를 함에 도를 잃으면 하늘이 재앙과 이변으로 견책하여 알린다 한다. 재앙과 이변이 하나가 아닌데 다시 추위와 따뜻함으로 보람을 삼는다. 임금이 형벌을 씀이 때가 아니면 춥고 상을 베풂이 절기를 어기면 따뜻하다. 하늘의 신이 임금을 견책하여 알림은 임금이 신하를 꾸짖고 노함과 같다. 그러므로 초 장왕이 말하였다. 「하늘이 재앙과 이변을 내리지 않으니 하늘이 나를 잊었는가!」
災異為譴告,故(嚴)〔莊〕王懼而思之也。曰:此疑也。夫國之有災異也,猶家人之有變怪也。有災異,謂天譴人君;有變怪,天復譴告家人乎?家人既明,人之身中亦將可以喻。身中病,猶天有災異也。血脈不調,人生疾病;風氣不和,歲生災異。災異謂天譴告國政,疾病天復譴告人乎?釀酒於罌,烹肉於鼎,皆欲其氣味調得也。時或咸苦酸淡不應口者,猶人芍葯失其和也。
재앙과 이변을 견책하여 알림으로 삼으므로 장왕이 두려워 생각한 것이다. 답한다. 이는 의심스럽다. 무릇 나라에 재앙과 이변이 있음은 집안사람에게 변괴가 있음과 같다. 재앙과 이변이 있으면 하늘이 임금을 견책한다 하니 변괴가 있으면 하늘이 다시 집안사람을 견책하여 알리는가. 집안사람이 이미 밝혀졌으니 사람의 몸속으로도 또한 비유할 수 있다. 몸속의 병은 하늘에 재앙과 이변이 있음과 같다. 혈맥이 고르지 않으면 사람에게 질병이 생기고 바람과 기운이 화하지 않으면 해에 재앙과 이변이 생긴다. 재앙과 이변을 하늘이 나라 정사를 견책하여 알림이라 하니 질병은 하늘이 다시 사람을 견책하여 알리는가. 항아리에 술을 빚고 솥에 고기를 삶음은 다 그 기운과 맛이 고르게 되기를 바란다. 때로 혹 짜고 쓰고 시고 싱거워 입에 응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약을 씀에 그 화를 잃는 것과 같다.
夫政治之有災異也,猶烹釀之有惡味也。苟謂災異為天譴告,是其烹釀之誤,得見譴告也。占大以小,明物事之喻,足以審天。使(嚴)〔莊〕王知孔子,則其言可信。衰世霸者之才,猶夫變復之家也,言未必信,故疑之。
무릇 정치에 재앙과 이변이 있음은 삶고 빚음에 나쁜 맛이 있음과 같다. 진실로 재앙과 이변을 하늘이 견책하여 알림이라 한다면 이는 그 삶고 빚음의 잘못이 견책하여 알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점치고 물건과 일의 비유를 밝히면 하늘을 살피기에 넉넉하다. 장왕이 공자를 알았다면 그 말을 믿을 만하다. 쇠한 세상 패자의 재주는 저 변복의 집과 같으니 말이 반드시 믿을 만하지 않으므로 의심한다.
夫天道,自然也,無為。如譴告人,是有為,非自然也。黃、老之家,論說天道,得其實矣。且天審能譴告人君,宜變易其氣以覺悟之。用刑非時,刑氣寒而天宜為溫;施賞違節,賞氣溫而天宜為寒。變其政而易其氣,故君得以覺悟知是非。今乃隨寒從溫,為寒為溫以譴告之,意欲令變更之。且太王父以王季之可立,故易名為歷。歷者,適也。
무릇 하늘의 도는 절로 그러함이니 함이 없다. 사람을 견책하여 알린다면 이는 함이 있는 것이라 절로 그러함이 아니다. 황·노의 집이 하늘의 도를 논설함에 그 실상을 얻었다. 또 하늘이 참으로 임금을 견책하여 알릴 수 있다면 마땅히 그 기운을 바꾸어 깨닫게 해야 한다. 형벌을 씀이 때가 아니면 형벌의 기운은 추우니 하늘이 마땅히 따뜻하게 해야 하고, 상을 베풂이 절기를 어기면 상의 기운은 따뜻하니 하늘이 마땅히 춥게 해야 한다. 그 정사를 변하게 하고 그 기운을 바꾸므로 임금이 깨달아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다. 이제 곧 추위를 따르고 따뜻함을 좇아 춥게 하고 따뜻하게 하여 견책하여 알리고 뜻은 바꾸게 하려 한다. 또 태왕보가 왕계를 세울 만하다 하여 이름을 바꾸어 역이라 하였다. 역이란 마땅함이다.
太伯覺悟,之吳、越采葯,以避王季。使太王不易季名,而復字之季,太伯豈覺悟以避之哉?今刑賞失法,天欲改易其政,宜為異氣,若太王之易季名。今乃重為同氣以譴告之,人君何時將能覺悟,以見刑賞之誤哉?
태백이 깨달아 오·월에 가서 약을 캐어 왕계를 피하였다. 태왕이 계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다시 계라 불렀다면 태백이 어찌 깨달아 피하였겠는가. 이제 형벌과 상이 법을 잃어 하늘이 그 정사를 고쳐 바꾸려 하면 마땅히 다른 기운을 내어 태왕이 계의 이름을 바꾼 것처럼 해야 한다. 이제 곧 거듭 같은 기운으로 견책하여 알리니 임금이 언제 깨달아 형벌과 상의 잘못을 볼 수 있겠는가.
鼓瑟者誤於張弦設柱,宮商易聲,其師知之,易其弦而復移其柱。夫天之見刑賞之誤,猶瑟師之睹弦柱之非也。不更變氣以悟人君,反增其氣以渥其惡,則天無心意,苟隨人君為誤,非也。紂為長夜之飲,文王朝夕曰:「祀茲酒。」
슬 타는 이가 줄을 매고 기러기발을 두는 데 잘못하여 궁과 상이 소리를 바꾸면 그 스승이 알고 그 줄을 바꾸고 다시 그 기러기발을 옮긴다. 무릇 하늘이 형벌과 상의 잘못을 봄은 슬 스승이 줄과 기러기발의 그름을 봄과 같다. 다시 기운을 변하게 하여 임금을 깨우치지 않고 도리어 그 기운을 더하여 그 악을 두텁게 한다면 하늘에 마음과 뜻이 없어 구차히 임금을 따라 잘못하는 것이니 그르다. 주(紂)가 긴 밤의 술자리를 벌이니 문왕이 아침저녁으로 「제사에 이 술을 쓰라」 하였다.
齊奢於祀,晏子祭廟,豚不掩俎。何則?非疾之者,宜有以改易之也。子弟傲慢,父兄教以謹敬;吏民橫悖,長吏示以和順。是故康叔、伯禽失子弟之道,見於周公,拜起驕悖,三見三笞;往見商子,商子令觀橋梓之樹,二子見橋梓,心感覺悟,以知父子〔兄弟〕之禮。周公可隨為驕,商子可順為慢,必須加之捶杖,教觀於物者,冀二人之見異,以奇自覺悟也。夫人君之失政,猶二子失道也。天不告以政道,令其覺悟,若二子觀見橋梓,而顧隨刑賞之誤,為寒溫之報,此則天與人君俱為非也。無相覺悟之感,有相隨從之氣,非皇天之意,愛下譴告之宜也。
제나라가 제사에 사치하니 안자가 사당에 제사함에 돼지가 도마를 덮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그것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고쳐 바꿀 것이 있어서다. 자제가 오만하면 부형이 삼가고 공경함을 가르치고 아전과 백성이 어그러지면 장리가 화하고 순함을 보인다. 이 때문에 강숙과 백금이 자제의 도를 잃어 주공을 뵙는데 절하고 일어남이 교만하고 어그러져 세 번 뵙고 세 번 매 맞았다. 가서 상자를 뵈니 상자가 교나무와 재나무를 보게 하였는데 두 사람이 교나무와 재나무를 보고 마음에 느껴 깨달아 부자와 형제의 예를 알았다. 주공이 따라 교만할 수 있고 상자가 따라 게으를 수 있었으나 반드시 매를 더하고 물건 보기를 가르친 것은 두 사람이 다름을 보고 기이함으로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서다. 무릇 임금이 정사를 잃음은 두 사람이 도를 잃음과 같다. 하늘이 정사의 도로 알려 깨닫게 하기를 두 사람이 교나무와 재나무를 본 것처럼 하지 않고 도리어 형벌과 상의 잘못을 따라 추위와 따뜻함의 갚음을 한다면 이는 하늘과 임금이 다 그른 것이다. 서로 깨우치는 느낌이 없고 서로 따르는 기운만 있음은 황천의 뜻이 아니요 아래를 사랑하여 견책하여 알리는 마땅함이 아니다.
凡物能相割截者,必異性者也;能相奉成者,必同氣者也。是故《離》下、《兌》上曰革。革,更也。火金殊氣,故能相革。如俱火而皆金,安能相成?屈原疾楚之臭,故稱香潔之辭;漁父議以不隨俗,故陳沐浴之言。
무릇 물건이 서로 가르고 끊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성품이 다른 것이요 서로 받들어 이룰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기운이 같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이」가 아래고 「태」가 위인 것을 혁이라 한다. 혁은 고침이다. 불과 쇠는 기운이 다르므로 서로 고칠 수 있다. 다 불이고 다 쇠라면 어찌 서로 이루겠는가. 굴원이 초나라의 냄새를 미워하므로 향기롭고 깨끗한 말을 일컬었고 어부가 세속을 따르지 않음을 의논하므로 목욕의 말을 폈다.
凡相混者,或教之熏隧,或令之負豕。二言之於除臭也,孰是孰非,非有不易,少有以益。夫用寒溫,非刑賞也,能易之乎?西門豹急,佩韋以自寬;董安於緩,帶弦以自促。二賢知佩帶變己之物,而以攻身之短。(夫)〔天〕至明矣,人君失政,不以他氣譴告變易,反隨其誤,就起其氣,此則皇天用意,不若二賢審也。楚庄王好獵,樊姬為之不食鳥獸之肉;秦繆公好淫樂,華陽後為之不聽鄭、衛之音。二姬非兩主,拂其欲而不順其行;皇天非賞罰,而順其操,而渥其氣:此蓋皇天之德,不若婦人賢也。
무릇 서로 섞인 것은 혹 훈수를 가르치고 혹 돼지를 지게 한다. 두 말이 냄새를 없앰에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바꾸지 않음이 있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있다. 무릇 추위와 따뜻함을 씀은 형벌과 상이 아닌데 그것을 바꿀 수 있는가. 서문표는 급하여 가죽을 차서 스스로 너그럽게 하였고 동안우는 느슨하여 활시위를 띠어 스스로 재촉하였다. 두 어진 이는 차고 띠는 것이 저를 변하게 하는 물건임을 알아 몸의 단점을 쳤다. 하늘은 지극히 밝은데 임금이 정사를 잃으면 다른 기운으로 견책하여 알려 변하게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잘못을 따라 그 기운을 일으키니 이는 곧 황천의 뜻 씀이 두 어진 이의 살핌만 못한 것이다. 초 장왕이 사냥을 좋아하니 번희가 그 때문에 새와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았고 진 목공이 음란한 음악을 좋아하니 화양후가 그 때문에 정·위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두 희는 두 임금을 그르다 하여 그 바람을 거스르고 그 행실을 따르지 않았는데, 황천은 상벌을 그르다 하지 않고 그 몸가짐을 따라 그 기운을 두텁게 하니 이는 아마 황천의 덕이 부인의 어짊만 못한 것이다.
故諫之為言間也,持善間惡,必謂之一亂。周繆王任刑,《甫刑篇》曰:「報虐用威。」威虐皆惡也,用惡報惡,亂莫甚焉。今刑失賞寬,惡也。(大)〔天〕復為惡以應之,此則皇天之操與繆王同也。
그러므로 간한다는 말은 사이에 듦이니 착함을 지녀 악에 끼어드는 것을 반드시 한 어지러움이라 한다. 주 목왕이 형벌에 맡기니 「보형」 편에 「사나움을 갚음에 위엄을 쓴다」 하였다. 위엄과 사나움은 다 악이니 악으로 악을 갚음은 어지러움이 이보다 심함이 없다. 이제 형벌을 잃고 상이 너그러움은 악이다. 하늘이 다시 악으로 응한다면 이는 곧 황천의 몸가짐이 목왕과 같은 것이다.
故以善駁惡,以惡懼善,告人之理,勸厲為善之道也。舜戒禹曰:「毋若丹朱敖!」周公敕成王曰:「毋若殷王紂!」毋者,禁之也。丹朱、殷紂至惡,故曰「毋」以禁之。夫言毋若,孰與言必若哉?故毋必二辭,聖人審之。況肯譴非為非,順人之過以增其惡哉?天人同道,大人與天合德。聖賢以善反惡,皇天以惡隨非,豈道同之效、合德之驗哉?
그러므로 착함으로 악을 논박하고 악으로 착함을 두렵게 함은 사람에게 알리는 이치요 착함을 권하고 힘쓰게 하는 도다. 순이 우를 경계하여 「단주처럼 오만하지 마라!」 하였고 주공이 성왕을 신칙하여 「은왕 주처럼 하지 마라!」 하였다. 「마라」는 금함이다. 단주와 은나라 주는 지극히 악하므로 「마라」 하여 금하였다. 무릇 「처럼 하지 마라」 함이 「반드시 처럼 하라」 함과 어떠한가. 그러므로 「마라」와 「반드시」 두 말을 성인이 살폈다. 하물며 그름을 견책하며 그름을 하여 사람의 허물을 따라 그 악을 더하려 하겠는가. 하늘과 사람은 도가 같고 대인은 하늘과 덕을 합한다. 성현은 착함으로 악을 돌이키는데 황천은 악으로 그름을 따르니 어찌 도가 같은 보람이요 덕을 합한 증험이겠는가.
孝武皇帝好仙,司馬長卿獻《大人賦》,上乃有凌雲之氣。孝成皇帝好廣宮室,揚子雲上《甘泉頌》,妙稱神怪,若曰非人力所能為,鬼神力乃可成。皇帝不覺,為之不止。長卿之賦如言仙無實效,子云之頌言奢有害,孝武豈有之氣者,孝成豈有不覺之惑哉?然即天之不為他氣以譴告人君,反順人心以非應之,猶二子為賦頌,令兩帝惑而不悟也。竇嬰、灌夫疾時為邪,相與日引繩以糾之。心疾之甚,安肯從其欲?太伯教吳冠帶,孰與隨從其俗與之俱裸也?故吳之知禮義也,太伯改其俗也。蘇武入匈奴,終不左衽。趙他入南越,箕踞椎髻。漢朝稱蘇武而毀趙他。
효무황제가 신선을 좋아하니 사마장경이 「대인부」를 바쳐 임금이 이에 구름을 능가하는 기운이 있었다. 효성황제가 궁실 넓히기를 좋아하니 양자운이 「감천송」을 올려 신령하고 괴이함을 묘하게 일컬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힘이라야 이룰 수 있다 하였다. 황제가 깨닫지 못하고 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장경의 부가 신선은 실다운 보람이 없다 말하고 자운의 송이 사치는 해가 있다 말하였다면 효무가 어찌 구름을 능가하는 기운이 있었으며 효성이 어찌 깨닫지 못하는 홀림이 있었겠는가. 그러니 곧 하늘이 다른 기운으로 임금을 견책하여 알리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마음을 따라 그름으로 응함은 두 사람이 부와 송을 지어 두 임금을 홀려 깨닫지 못하게 함과 같다. 두영과 관부가 때를 미워하여 사악하다 하여 서로 날마다 줄을 끌어 바로잡았다. 마음으로 미워함이 심한데 어찌 그 바람을 따르려 하겠는가. 태백이 오나라에 관과 띠를 가르친 것이 그 풍속을 따라 그들과 함께 벌거벗음과 어떠한가. 그러므로 오나라가 예의를 앎은 태백이 그 풍속을 고쳐서다. 소무가 흉노에 들어가 끝내 왼쪽 옷섶을 하지 않았다. 조타가 남월에 들어가 두 다리 뻗고 앉고 몽둥이 상투를 하였다. 한나라 조정이 소무를 일컫고 조타를 헐뜯었다.
之性習越土氣,畔冠帶之制,陸賈說之,夏服雅禮,風告以義,趙他覺悟,運心向內。如陸賈復越服夷談,從其亂俗,安能令之覺悟,自變從漢制哉?三教之相違,文質之相反,政失不相反襲也。譴告人君誤,不變其失而襲其非,欲行譴告之教,不從如何?管、蔡篡畔,周公告教之至於再三。其所以告教之者,豈云當篡畔哉?
타의 성품이 월의 토기에 익어 관과 띠의 제도를 배반하였는데 육가가 유세하여 하나라 옷과 바른 예로 의로써 알리니 조타가 깨달아 마음을 안으로 향하게 하였다. 육가가 다시 월의 옷을 입고 오랑캐 말을 하여 그 어지러운 풍속을 따랐다면 어찌 깨닫게 하여 스스로 변하여 한나라 제도를 따르게 할 수 있었겠는가. 세 가르침이 서로 어긋나고 문과 질이 서로 반대이나 정사의 잃음을 서로 반대로 잇지는 않는다. 임금의 잘못을 견책하여 알림에 그 잃음을 변하게 하지 않고 그 그름을 이으면서 견책하여 알리는 가르침을 행하려 하니 따르지 않음이 어떠한가. 관숙·채숙이 찬탈하고 배반하니 주공이 알려 가르침이 두세 번에 이르렀다. 그 알려 가르친 것이 어찌 마땅히 찬탈하고 배반하라 하였겠는가.
人道善善惡惡,施善以賞,加惡以罪,天道宜然。刑賞失實,惡也,為惡氣以應之,惡惡之義,安能施哉?漢正首匿之罪,制亡從之法,惡其隨非而與惡人為群党也。如束罪人以詣吏,離惡人與異居,首匿亡從之法除矣。狄牙之調味也,酸則沃之以水,淡則加之以咸。水火相變易,故膳無咸淡之失也。今刑罰失實,不為異氣以變其過,而又為寒於寒,為溫於溫,此猶憎酸而沃之以咸,惡淡而灌之以水也。由斯言之,譴告之言,疑乎?必信也?
사람의 도는 착함을 착하다 하고 악을 악하다 하여 착함에 상을 베풀고 악에 죄를 더하니 하늘의 도도 마땅히 그러하다. 형벌과 상이 실상을 잃음은 악인데 악한 기운으로 응한다면 악을 미워하는 뜻을 어찌 베풀 수 있겠는가. 한나라가 수닉의 죄를 바로잡고 망종의 법을 정한 것은 그가 그름을 따라 악한 사람과 무리가 됨을 미워한 것이다. 죄인을 묶어 아전에게 가고 악한 사람을 떠나 달리 살면 수닉과 망종의 법이 없어진다. 적아가 맛을 고름에 시면 물을 붓고 싱거우면 소금을 더한다. 물과 불이 서로 변하여 바꾸므로 반찬에 짜고 싱거운 잘못이 없다. 이제 형벌이 실상을 잃었는데 다른 기운으로 그 허물을 변하게 하지 않고 또 추운 데 춥게 하고 따뜻한 데 따뜻하게 하니 이는 신 것을 미워하면서 소금을 붓고 싱거운 것을 미워하면서 물을 대는 것과 같다. 이로써 말하면 견책하여 알린다는 말이 의심스러운가, 반드시 믿을 만한가.
今薪燃釜,火猛則湯熱,火微則湯冷。夫政猶火,寒溫猶熱冷也。顧可言人君為政,賞罰失中也,逆亂陰陽,使氣不和;乃言天為人君為寒為溫以譴告之乎?儒者之說,又言人君失政,天為異;不改,災其人民;不改,乃災其身也。先異後災,先教後誅之義也。曰:此復疑也。以夏樹物,物枯不生。以秋收谷,谷棄不藏。夫為政教,猶樹物收谷也。顧可言政治失時,氣物為災;乃言天為異以譴告之,不改為災以誅伐之乎?儒者之說,俗人言也。盛夏陽氣熾烈,陰氣干之,激射裂,中殺人物。謂天罰陰過,外一聞若是,內實不然。夫謂災異為譴告誅伐,猶為雷殺人罰陰過也。非謂之言,不然之說也。
이제 섶으로 가마를 때면 불이 사나우면 물이 뜨겁고 불이 약하면 물이 차다. 무릇 정사는 불 같고 추위와 따뜻함은 뜨겁고 참 같다. 도리어 임금이 정사를 함에 상벌이 가운데를 잃어 음양을 거슬러 어지럽혀 기운이 화하지 않게 한다 말할 수 있을 뿐이니, 곧 하늘이 임금을 위해 춥게 하고 따뜻하게 하여 견책하여 알린다 하겠는가. 유자의 말은 또 임금이 정사를 잃으면 하늘이 이변을 내고 고치지 않으면 그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고 고치지 않으면 곧 그 몸에 재앙을 내린다 한다. 먼저 이변이 있고 뒤에 재앙이 있음은 먼저 가르치고 뒤에 베는 뜻이라는 것이다. 답한다. 이 또한 의심스럽다. 여름에 물건을 심으면 물건이 말라 나지 않는다. 가을에 곡식을 거두면 곡식이 버려져 간직되지 않는다. 무릇 정사와 가르침을 함은 물건을 심고 곡식을 거둠과 같다. 도리어 정치가 때를 잃어 기운과 물건이 재앙이 된다 말할 수 있을 뿐이니 곧 하늘이 이변을 내어 견책하여 알리고 고치지 않으면 재앙을 내어 베어 친다 하겠는가. 유자의 말은 속인의 말이다. 한여름에 양의 기운이 치열한데 음의 기운이 범하면 격하게 쏘고 찢어져 사람과 물건을 맞혀 죽인다. 하늘이 숨은 허물을 벌한다 함은 밖으로 한 번 들으면 그럴듯하나 안으로 실은 그렇지 않다. 무릇 재앙과 이변을 견책하여 알리고 베어 침이라 함은 우레가 사람을 죽임을 숨은 허물을 벌함이라 함과 같다. 그렇다 할 수 없는 말이요 그렇지 않은 설이다.
或曰:「谷子云上書,陳言變異,明天之譴告。不改,後將復有,願貫械待時。後竟復然。即不為譴告,何故復有?子云之言,故後有以示改也。」
어떤 이는 말한다. 「곡자운이 글을 올려 변고와 이변을 펴 말하여 하늘의 견책하여 알림을 밝혔다. 고치지 않으면 뒤에 장차 다시 있을 것이니 바라건대 목에 칼을 쓰고 때를 기다리겠다 하였다. 뒤에 마침내 다시 그러하였다. 곧 견책하여 알림이 아니라면 무슨 까닭으로 다시 있었는가. 자운의 말이 뒤에 있음으로 고침을 보인 것이다.」
曰:夫變異自有占候,陰陽物氣自有終始。履霜以知堅冰必至,天之道也。子云識微,知後復然,借變復之說,以效其言,故願貫械以待時也。猶齊晏子見鉤星在房、心之間,則知地且動也。使子云見鉤星,則將復曰天以鉤星譴告政治,不改,將有地動之變矣。然則子云之願貫械待時,猶子韋之願伏陛下以俟熒惑徙處。必然之驗,故譴告之言信也。予之譴告,何傷於義。損皇天之德,使自然無為轉為人事,故難聽之也。稱天之譴告,譽天之聰察也,反以聰察傷損於天德。何以知其聾也?以其聽之聰也。何以知其盲也?以其視之明也。何以知其狂也?以其言之當也。夫言當視聽聰明,而道家謂之狂而盲聾。今言天之譴告,是謂天狂而盲聾也。
답한다. 무릇 변고와 이변은 절로 점과 조짐이 있고 음양과 물건과 기운은 절로 끝과 처음이 있다. 서리를 밟아 굳은 얼음이 반드시 이를 것을 앎은 하늘의 도다. 자운이 기미를 알아 뒤에 다시 그러할 것을 알고 변복의 설을 빌려 그 말을 증험하였으므로 목에 칼을 쓰고 때를 기다리기를 바란 것이다. 제나라 안자가 구성이 방과 심 사이에 있음을 보고 땅이 장차 움직일 것을 안 것과 같다. 자운이 구성을 보았다면 장차 다시 하늘이 구성으로 정치를 견책하여 알리니 고치지 않으면 장차 땅이 움직이는 변고가 있으리라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자운이 목에 칼을 쓰고 때를 기다리기를 바란 것은 자위가 폐하 아래 엎드려 형혹이 옮기기를 기다리기를 바란 것과 같다. 반드시 그러한 증험이므로 견책하여 알린다는 말이 믿어졌다. 견책하여 알림을 준 것이 뜻에 무엇이 상하겠는가. 황천의 덕을 덜어 절로 그러하고 함이 없음을 사람의 일로 바꾸므로 듣기 어려운 것이다. 하늘의 견책하여 알림을 일컬음은 하늘의 밝게 살핌을 기리는 것인데 도리어 밝게 살핌으로 하늘의 덕을 상하고 던다. 무엇으로 그 귀먹음을 아는가. 그 들음이 밝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그 눈멂을 아는가. 그 봄이 밝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그 미침을 아는가. 그 말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무릇 말이 마땅하고 보고 들음이 밝은데 도가는 미쳤고 눈멀고 귀먹었다 한다. 이제 하늘의 견책하여 알림을 말함은 하늘이 미치고 눈멀고 귀먹었다 하는 것이다.
《易》曰:「大人與天地合其德。」故太伯曰:「天不言,殖其道於賢者之心。」
「역」에 이르기를 「대인은 하늘과 땅과 그 덕을 합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태백이 말하였다. 「하늘은 말하지 않고 그 도를 어진 이의 마음에 심는다.」
夫大人之德,則天德也;賢者之言,則天言也。大人刺而賢者諫,是則天譴告也,而反歸告於災異,故疑之也。《六經》之文,聖人之語,動言天者,欲化無道、懼愚者。之言非獨吾心,亦天意也。及其言天猶以人心,非謂上天蒼蒼之體也。變復之家,見誣言天,災異時至,則生譴告之言矣。驗古以〔今〕,知(今)天以人。
무릇 대인의 덕은 곧 하늘의 덕이요 어진 이의 말은 곧 하늘의 말이다. 대인이 나무라고 어진 이가 간함은 곧 하늘의 견책하여 알림인데 도리어 알림을 재앙과 이변에 돌리므로 의심한다. 「육경」의 글과 성인의 말이 걸핏하면 하늘을 말함은 무도한 이를 교화하고 어리석은 이를 두렵게 하려는 것이다. 내 말이 홀로 내 마음이 아니라 또한 하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 하늘을 말함에 미쳐서도 오히려 사람의 마음으로 하지 위의 푸르고 푸른 하늘의 몸을 이른 것이 아니다. 변복의 집은 하늘을 무고하여 말하는 것을 보고 재앙과 이변이 때로 이르면 견책하여 알린다는 말을 낳는다. 옛것을 지금으로 증험하고 하늘을 사람으로 안다.
受終於文祖,不言受終於天。堯之心知天之意也。堯授之,天亦授之,百官臣子皆鄉與舜。舜之授禹,禹之傳啟,皆以人心效天意。《詩》之「眷顧」,《洪范》之「震怒」,皆以人身效天之意。文、武之卒,成王幼少,周道未成,周公居攝,當時豈有上天之教哉?周公推心合天志也。上天之心,在聖人之胸;及其譴告,在聖人之口。不信聖人之言,反然災異之氣,求索上天之意,何其遠哉?世無聖人,安所得聖人之言?賢人庶幾之才,亦聖人之次也。
문조에게서 마침을 받았다 하고 하늘에게서 마침을 받았다 말하지 않았다. 요의 마음이 하늘의 뜻을 안 것이다. 요가 주니 하늘도 주었고 백관과 신하가 다 순에게 향하였다. 순이 우에게 주고 우가 계에게 전함은 다 사람의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증험한 것이다. 「시」의 「돌아보심」과 「홍범」의 「진노」는 다 사람의 몸으로 하늘의 뜻을 증험한 것이다. 문왕·무왕이 죽고 성왕이 어려 주나라의 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주공이 섭정하였는데 당시 어찌 위의 하늘의 가르침이 있었겠는가. 주공이 마음을 미루어 하늘의 뜻에 합한 것이다. 위의 하늘의 마음은 성인의 가슴에 있고 그 견책하여 알림에 미쳐서는 성인의 입에 있다. 성인의 말을 믿지 않고 도리어 재앙과 이변의 기운을 그렇다 하여 위의 하늘의 뜻을 찾으니 어찌 그리 먼가. 세상에 성인이 없으면 어디서 성인의 말을 얻겠는가. 어진 사람은 거의 성인에 가까운 재주라 또한 성인의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