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雩篇
變復之家,以久雨為湛,久為旱。旱應亢陽,湛應沈溺。或難曰:「夫一歲之中,十日者一雨,五日者一風。雨頗留,湛之兆也。頗久,旱之漸也。湛之時,人君未必沈溺也;旱之時,未必亢陽也。人君為政,前後若一。然而一湛一早,時氣也。」
변복의 집은 오래 비 오는 것을 잠김이라 하고 오래 개는 것을 가뭄이라 한다. 가뭄은 항양에 응하고 잠김은 침닉에 응한다 한다. 어떤 이가 따져 말한다. 「무릇 한 해 가운데 열흘에 한 번 비 오고 닷새에 한 번 바람 분다. 비가 자못 머물면 잠김의 조짐이요 갬이 자못 오래면 가뭄의 점점 됨이다. 잠길 때 임금이 반드시 침닉한 것이 아니요 가물 때 반드시 항양한 것이 아니다. 임금이 정사를 함이 앞뒤가 한결같은데 한 번 잠기고 한 번 가무니 때의 기운이다.」
范蠡、計然曰:「太歲在(子)〔於〕水,毀;金,穰;木,飢;火,旱。」
범려와 계연이 말하였다. 「태세가 물에 있으면 헐고 쇠에 있으면 풍년이며 나무에 있으면 굶주리고 불에 있으면 가문다.」
夫如是,水旱飢穰,有歲運也。歲直其運,氣當其世,變復之家,指而名之。人君用其言,求過自改。久自雨,雨久自,變復之家,遂名其功;人君然之,遂信其術。試使人君恬居安處不求己過,天猶自雨,雨猶自。濟雨濟之時,人君無事,變復之家,猶名其術。是則陰陽之氣,以人為主,不(說)〔統〕於天也。夫人不能以行感天,天亦不隨行而應人。《春秋》,魯大雩,旱求雨之祭也。旱久不雨,禱祭求福,若人之疾病祭神解禍矣。此變復也。《詩》云:「月離於畢,比滂㩗矣。」
무릇 이러하면 물과 가뭄과 굶주림과 풍년에 해의 운이 있다. 해가 그 운을 만나고 기운이 그 세상에 마땅한데 변복의 집이 가리켜 이름한다. 임금이 그 말을 써서 허물을 구하여 스스로 고친다. 갬이 오래면 절로 비 오고 비가 오래면 절로 개는데 변복의 집이 마침내 그 공을 이름하고 임금이 그렇다 하여 마침내 그 술법을 믿는다. 시험 삼아 임금이 편안히 살고 편안히 처하여 제 허물을 구하지 않게 하여도 하늘이 오히려 절로 비 오고 비가 오히려 절로 갠다. 비 오고 개는 즈음에 임금이 일이 없어도 변복의 집이 오히려 그 술법을 이름한다. 이는 곧 음양의 기운이 사람으로 주인을 삼고 하늘에 통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릇 사람이 행실로 하늘을 느끼게 할 수 없고 하늘도 행실을 따라 사람에게 응하지 않는다. 「춘추」에 노나라가 큰 기우제를 지냈다 함은 가뭄에 비를 구하는 제사다. 가뭄이 오래 비 오지 않으면 빌고 제사하여 복을 구함은 사람이 질병에 신에게 제사하여 화를 풂과 같다. 이것이 변복이다. 「시」에 이르기를 「달이 필성에 붙으면 큰비가 내린다」 하였다.
《書》曰:「月之從星,則以風雨。」
「서」에 이르기를 「달이 별을 따르면 바람과 비로 한다」 하였다.
然則風雨隨月所離從也。房星四表三道,日月之行,出入三道。出北則湛,出南則旱。或言出北則旱,南則湛。案月為天下占,房為九州候。月之南北,非獨為魯也。孔子出,使子路齎雨具。有頃,天果大雨。子路問其故,孔子曰:「昨暮月離於畢。」
그러니 바람과 비는 달이 붙고 따르는 바를 따른다. 방성은 네 표에 세 길이니 해와 달의 다님이 세 길을 드나든다. 북으로 나오면 잠기고 남으로 나오면 가문다. 혹은 북으로 나오면 가물고 남으로 나오면 잠긴다 한다. 살피건대 달은 천하의 점이 되고 방성은 구주의 조짐이 된다. 달의 남북은 홀로 노나라를 위함이 아니다. 공자가 나가며 자로에게 비 도구를 가져가게 하였다. 얼마 뒤 하늘이 과연 큰비가 왔다. 자로가 그 까닭을 물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어제 저녁에 달이 필성에 붙었다.」
後日,月復離畢。孔子出,子路請齎雨具,孔子不聽,出果無雨。子路問其故,孔子曰:「昔日,月離其陰,故雨。昨暮,月離其陽,故不雨。」
뒷날 달이 다시 필성에 붙었다. 공자가 나가는데 자로가 비 도구를 가져가기를 청하니 공자가 듣지 않았고 나가니 과연 비가 없었다. 자로가 그 까닭을 물으니 공자가 말하였다. 「지난날은 달이 그 음에 붙었으므로 비 왔다. 어제 저녁은 달이 그 양에 붙었으므로 비 오지 않는다.」
夫如是,魯雨自以月離,豈以政哉?如審以政令,月離於畢為雨占,天下共之。魯雨,天下亦宜皆雨。六國之時,政治不同,人君所行賞罰異時,必以雨為應政令,月離六七畢星,然後足也?
무릇 이러하면 노나라의 비는 절로 달의 붙음으로 하는 것이지 어찌 정사로 하겠는가. 참으로 정령으로 한다면 달이 필성에 붙음이 비의 점이 됨은 천하가 함께한다. 노나라에 비 오면 천하도 마땅히 다 비 와야 한다. 육국 때 정치가 같지 않고 임금이 행하는 상벌이 때가 달랐으니 반드시 비로 정령에 응한다면 달이 육칠 필성에 붙은 뒤에야 넉넉하겠는가.
魯繆公之時,歲旱。繆公問縣子:「天旱不雨,寡人欲暴巫,奚如?」縣子不聽。「欲徙市,奚如?」對曰:「天子崩,巷市七日;諸公薨,巷市五日。為之徙市,不亦可乎?」
노 목공 때 해가 가물었다. 목공이 현자에게 물었다. 「하늘이 가물어 비 오지 않으니 과인이 무당을 볕에 쬐려 하는데 어떠한가?」 현자가 듣지 않았다. 「저자를 옮기려 하는데 어떠한가?」 대답하였다. 「천자가 붕하면 거리에서 저자를 여는 것이 이레요 제후가 훙하면 거리에서 저자를 여는 것이 닷새입니다. 그 때문에 저자를 옮김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案縣子之言,徙市得雨也。案《詩》、書之文,月離星得雨。日月之行,有常節度,肯為徙市故,離畢之陰乎?夫月畢,天下占。徙魯之市,安耐移月?月之行天,三十日而周。一月之中,一過畢星,離陽則(陽)〔〕。假令徙市之感,能令月離畢(陽)〔陰〕,其時徙市而得雨乎?夫如縣子言,未可用也。
현자의 말을 살피면 저자를 옮겨 비를 얻는다는 것이다. 「시」·「서」의 글을 살피면 달이 별에 붙어 비를 얻는다. 해와 달의 다님에 늘 그러한 절도가 있는데 저자를 옮긴 까닭으로 필성의 음에 붙으려 하겠는가. 무릇 달과 필성은 천하의 점이다. 노나라의 저자를 옮겨 어찌 달을 옮길 수 있겠는가. 달이 하늘을 다님은 서른 날에 한 바퀴다. 한 달 가운데 한 번 필성을 지나니 양에 붙으면 갠다. 가령 저자를 옮긴 느낌이 달로 하여금 필성의 음에 붙게 할 수 있다 하여도 그때 저자를 옮겨 비를 얻겠는가. 무릇 현자의 말과 같으면 쓸 수 없다.
董仲舒求雨,申《春秋》之義,設虛立祀,父不食於枝庶,天不食於下地。諸侯雩禮所祀,未知何神。如天神也,唯王者天乃歆,諸侯及今長吏,天不享也。神不歆享,安耐得神?如雲雨者氣也,雲雨之氣,何用歆享?觸石而出,膚寸而合,不崇朝而辨雨天下,泰山也。泰山雨天下,小山雨國邑。
동중서가 비를 구함에 「춘추」의 뜻을 펴서 허를 두고 제사를 세웠으니 아비는 지서에게서 먹지 않고 하늘은 아래 땅에서 먹지 않는다. 제후의 기우제가 제사하는 바는 무슨 신인지 알지 못한다. 하늘의 신이라면 오직 왕자에게만 하늘이 흠향하니 제후와 지금의 장리에게는 하늘이 누리지 않는다. 신이 흠향하지 않는데 어찌 신을 얻을 수 있겠는가. 구름과 비라는 기운이라면 구름과 비의 기운이 무엇으로 흠향하겠는가. 돌에 부딪쳐 나와 한 치 한 치 합하여 아침이 다하기 전에 천하에 비를 두루 함은 태산이다. 태산은 천하에 비 내리고 작은 산은 나라와 고을에 비 내린다.
然則大雩所祭,豈祭山乎?假令審然,而不得也。何以效之?水異川而居,相高分寸,不決不流,不鑿不合。誠令人君禱祭水旁,能令高分寸之水流而合乎?夫見在之水,相差無幾,人君請之,終不耐行。況雨無形兆,深藏高山,人君雩祭,安耐得之?
그러니 대우가 제사하는 바는 어찌 산을 제사함인가. 가령 참으로 그렇다 하여도 얻을 수 없다. 무엇으로 살피는가. 물이 다른 내에 있어 서로 높이가 푼과 치로 나뉘면 터놓지 않으면 흐르지 않고 파지 않으면 합하지 않는다. 참으로 임금이 물가에서 빌고 제사하게 하면 푼과 치 높은 물을 흘러 합하게 할 수 있는가. 무릇 보이는 물이 서로 차이가 얼마 되지 않아도 임금이 청하여도 끝내 행하게 할 수 없다. 하물며 비는 형체와 조짐이 없고 높은 산에 깊이 감추어 있는데 임금이 기우제하여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夫雨水在天地之間也,猶夫涕泣在人形中也。或齎酒食請於惠人之前,(未)〔求〕出其泣,惠人終不為之隕涕。夫泣不可請而出,雨安可求而得?雍門子悲哭,孟嘗君為之流涕。蘇秦、張儀悲說坑中,鬼谷先生泣下沾襟。或者儻可為雍門之聲、出蘇、張之說以感天乎!天又耳目高遠,音氣不通。杞梁之妻,又已悲哭,天不雨而城反崩。夫如是,竟當何以致雨?雩祭之家,何用感天?案月出北道,離畢之陰,希有不雨。由此言之,北道,畢星之所在也。北道星肯為雩祭之故,下其雨乎?孔子出,使子路齎雨具之時,魯未必雩祭也。不祭,沛然自雨;不求,曠然自。夫如是,天之雨,自有時也。一歲之中,雨連屬,當其雨也,誰求之者?當其也,誰止之者?
무릇 비와 물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음은 저 눈물이 사람 몸속에 있음과 같다. 혹 술과 밥을 가지고 은혜로운 사람 앞에 청하여 그 울음을 내기를 구하여도 은혜로운 사람이 끝내 그 때문에 눈물을 떨구지 않는다. 무릇 울음도 청하여 낼 수 없는데 비를 어찌 구하여 얻겠는가. 옹문자가 슬피 곡하니 맹상군이 그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소진과 장의가 구덩이 가운데서 슬피 유세하니 귀곡 선생이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 혹 아마 옹문의 소리를 내고 소·장의 유세를 내어 하늘을 느끼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은 또 귀와 눈이 높고 멀어 소리와 기운이 통하지 않는다. 기량의 아내가 또 이미 슬피 곡하였는데 하늘이 비 오지 않고 성이 도리어 무너졌다. 무릇 이러하면 마침내 마땅히 무엇으로 비를 이르게 하는가. 기우제의 집은 무엇으로 하늘을 느끼게 하는가. 살피건대 달이 북쪽 길로 나와 필성의 음에 붙으면 비 오지 않는 일이 드물다. 이로써 말하면 북쪽 길은 필성이 있는 곳이다. 북쪽 길의 별이 기우제의 까닭으로 그 비를 내리려 하겠는가. 공자가 나가며 자로에게 비 도구를 가져가게 할 때 노나라가 반드시 기우제한 것은 아니다. 제사하지 않아도 넉넉히 절로 비 오고 구하지 않아도 훤히 절로 갠다. 무릇 이러하면 하늘의 비와 갬은 절로 때가 있다. 한 해 가운데 비와 갬이 이어지는데 그 비 올 때 누가 구한 이며 그 갤 때 누가 그치게 한 이인가.
人君聽請,以安民施恩,必非賢也。天至賢矣,時未當雨,偽請求之故,妄下其雨,人君聽請之類也。變復之家,不推類驗之,空張法術,惑人君。或未當雨,而賢君求之而不得;或適當自雨,惡君求之,遭遇其時。是使賢君受空責,而惡君蒙虛名也。世稱聖人純而賢者駁,純則行操無非,無非則政治無失。然而世之聖君,莫有如堯、湯。堯遭洪水,湯遭大旱。如謂政治所致,堯、湯惡君也;如非政治,是運氣也。運氣有時,安可請求?世之論者,猶謂堯、湯水旱。水旱者,時也,其小旱湛皆政也。假令審然,何用致湛。審以政致之,不修所以失之,而從請求,安耐復之?世審稱堯、湯水旱,天之運氣,非政所致。夫天之運氣,時當自然,雖雩祭請求,終無補益。而世又稱湯以五過禱於桑林,時立得雨。夫言運氣,則桑林之說絀;稱桑林,則運氣之論消。世之說稱者,竟當何由?救水旱之術,審當何用?
임금이 청을 들어 백성을 편안히 하고 은혜를 베풀어도 반드시 어진 것은 아니다. 하늘은 지극히 어질어 때가 아직 비 올 때가 아닌데 거짓 청하여 구하는 까닭으로 망령되이 그 비를 내린다면 임금이 청을 듣는 무리다. 변복의 집은 무리를 미루어 증험하지 않고 헛되이 법술을 펴서 임금을 홀린다. 혹 아직 비 올 때가 아니라 어진 임금이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혹 마침 절로 비 올 때라 악한 임금이 구하여 그 때를 만난다. 이는 어진 임금이 헛된 꾸짖음을 받고 악한 임금이 헛된 이름을 입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성인은 순수하고 어진 이는 잡되다 일컬으니 순수하면 행실과 몸가짐에 그름이 없고 그름이 없으면 정치에 잃음이 없다. 그러나 세상의 성스러운 임금으로 요·탕 같은 이가 없다. 요는 홍수를 만나고 탕은 큰 가뭄을 만났다. 정치가 이르게 한 것이라면 요·탕은 악한 임금이요 정치가 아니라면 이는 운기다. 운기에 때가 있으니 어찌 청하여 구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논하는 이는 오히려 요·탕의 물과 가뭄을 말한다. 물과 가뭄은 때인데 그 작은 가뭄과 잠김은 다 정사라 한다. 가령 참으로 그렇다면 무엇으로 잠김을 이르게 하는가. 참으로 정사로 이르게 하였다면 잃은 까닭을 닦지 않고 청하여 구함을 좇아 어찌 회복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 참으로 요·탕의 물과 가뭄을 하늘의 운기라 일컬으니 정사가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무릇 하늘의 운기는 때에 마땅히 절로 그러하니 비록 기우제하여 청하고 구하여도 끝내 보탬이 없다. 그런데 세상은 또 탕이 다섯 허물로 상림에서 빌어 때로 곧 비를 얻었다 일컫는다. 무릇 운기를 말하면 상림의 설이 물러나고 상림을 일컬으면 운기의 논이 사라진다. 세상의 말하고 일컫는 이는 마침내 마땅히 어디로 말미암아야 하는가. 물과 가뭄을 구하는 술법은 참으로 마땅히 무엇을 써야 하는가.
夫災變大抵有二:有政治之災,有無妄之變。政治之災,須耐求之,求之雖不耐得,而惠愍惻隱之恩,不得已之意也。慈父之於子,孝子之於親,知病不祀神,疾痛不和葯,又知病之必不可治,治之無益,然終不肯安坐待絕,猶卜筮求崇、召醫和葯者,惻痛殷勤,冀有驗也。既死氣絕,不可如何,升屋之危,以衣招復,悲恨思慕,冀其悟也。雩祭者之用心,慈父孝子之用意也。無妄之災,百民不知,必歸於主。為政治者慰民之望,故亦必雩。
무릇 재앙과 변고는 대저 둘이 있으니 정치의 재앙이 있고 무망의 변고가 있다. 정치의 재앙은 모름지기 구할 수 있으니 구하여도 비록 얻을 수 없으나 은혜롭고 불쌍히 여기는 은혜요 부득이한 뜻이다. 자애로운 아비가 자식에게 대하고 효자가 어버이에게 대하여 병에는 신에게 제사해도 소용없고 아픔에는 약을 지어도 소용없음을 알고, 또 그 병을 반드시 고칠 수 없어 다스려도 보탬이 없음을 알면서도, 끝내 편안히 앉아 숨 끊기기를 기다리려 하지 않으니, 오히려 점을 쳐 빌미를 찾고 의원을 불러 약을 짓는 것은 측은하고 아파하며 간절하여 증험이 있기를 바라서다. 이미 죽어 기운이 끊기면 어찌할 수 없으나 지붕의 높은 데 올라 옷으로 불러 돌이킴은 슬프고 한스럽고 사모하여 그 깨어나기를 바라서다. 기우제하는 이의 마음 씀은 자애로운 아비와 효자의 뜻 씀이다. 무망의 재앙은 온 백성이 알지 못하여 반드시 임금에게 돌린다. 정치를 하는 이는 백성의 바람을 위로하므로 또한 반드시 기우제한다.
問:「政治之災,無妄之變,何以別之?」
묻는다. 「정치의 재앙과 무망의 변고는 무엇으로 가르는가?」
曰:德酆政得,災猶至者,無妄也;德衰政失,變應來者,政治也。夫政治則外雩而內改,以復其虧;無妄則內守舊政,外修雩禮,以慰民心。故夫無妄之氣,厲世時至,當固自一,不宜改政。何以驗之?周公為成王陳《立政》之言曰:「時則物有間之。自一話一言,我則末維成德之彥,以我受民。」
답한다. 덕이 풍성하고 정사가 얻어졌는데 재앙이 오히려 이르면 무망이요 덕이 쇠하고 정사가 잃어져 변고가 응하여 오면 정치다. 무릇 정치라면 밖으로 기우제하고 안으로 고쳐 그 이지러짐을 회복하고, 무망이라면 안으로 옛 정사를 지키고 밖으로 기우제의 예를 닦아 백성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러므로 무릇 무망의 기운은 세상을 사납게 하며 때로 이르니 마땅히 굳게 스스로 한결같이 하여 정사를 고침이 마땅하지 않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주공이 성왕을 위해 「입정」의 말을 펴서 말하였다. 「때로 물건이 끼어드는 것이 있다. 한 말 한 마디부터 나는 곧 덕을 이룬 선비를 생각하여 내 받은 백성을 맡긴다.」
周公立政,可謂得矣。知非常之物,不賑不至,故敕成王自一話一言,政事無非,毋敢變易。然則非常之變,無妄之氣,間而至也。水氣間堯,旱氣間湯。周宣以賢,遭遇久旱。建初孟(季)〔年〕,北州連旱,牛死民乏,放流就賤。聖主寬明於上,百官共職於下,太平之明時也。政無細非,旱猶有,氣間之也。聖主知之,不改政行,轉谷賑贍,損酆濟耗。斯見之審明,所以救赴之者得宜也。魯文公間,歲大旱,臧文仲曰:「修城郭,貶食省用,務嗇勸分。」
주공의 입정은 얻었다 할 만하다. 예사롭지 않은 물건은 진휼하지 않으면 이르지 않음을 알았으므로 성왕에게 한 말 한 마디부터 정사에 그름이 없게 하고 감히 변하여 바꾸지 말라 신칙하였다. 그러니 예사롭지 않은 변고와 무망의 기운은 끼어들어 이르는 것이다. 물의 기운이 요에게 끼어들고 가뭄의 기운이 탕에게 끼어들었다. 주 선왕이 어질면서 오랜 가뭄을 만났다. 건초 첫 해에 북쪽 주가 잇달아 가물어 소가 죽고 백성이 궁핍하여 흩어져 천한 데로 갔다. 성스러운 임금이 위에서 너그럽고 밝고 백관이 아래에서 직분을 함께하니 태평의 밝은 때다. 정사에 작은 그름도 없는데 가뭄이 오히려 있음은 기운이 끼어든 것이다. 성스러운 임금이 이를 알아 정사와 행실을 고치지 않고 곡식을 옮겨 진휼하여 풍성함을 덜어 모자람을 건졌다. 이는 보는 눈이 살펴 밝아 구하여 달려가는 것이 마땅함을 얻은 것이다. 노 문공 사이에 해가 크게 가물자 장문중이 말하였다. 「성곽을 닦고 먹을 것을 줄이고 씀을 덜며 아낌에 힘쓰고 나눔을 권하라.」
文仲知非政,故徒修備,不改政治。變復之家,見變輒歸於政,不揆政之無非,見異懼惑,變易操行,以不宜改而變,只取災焉!
문중은 정사가 아님을 알았으므로 한갓 대비를 닦고 정치를 고치지 않았다. 변복의 집은 변고를 보면 곧 정사에 돌려 정사에 그름이 없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변을 보고 두려워 홀려 몸가짐을 변하여 바꾸니 고침이 마땅하지 않은데 변하여 다만 재앙을 취할 뿐이다!
何以言必當雩也?曰:《春秋》大雩,傳家(在宣)〔左丘明〕、公羊、谷梁無譏之文,當雩明矣。曾晰對孔子言其志曰:「暮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
무엇으로 반드시 마땅히 기우제한다 말하는가. 답한다. 「춘추」에 큰 기우제를 지냈다 하였는데 전하는 집 좌구명·공양·곡량에 나무라는 글이 없으니 마땅히 기우제함이 분명하다. 증석이 공자에게 그 뜻을 말하였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 쓴 이 대여섯 사람과 아이 예닐곱 사람과 기수에서 목욕하고 기우제 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
孔子曰:「吾與點也!」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점과 함께하겠다!」
魯設雩祭於沂水之上。暮者,晚也;春謂四月也。春服既成,謂四月之服成也。冠者、童子,雩祭樂人也。
노나라는 기우제를 기수 위에 베풀었다. 모(暮)는 늦음이요 봄은 사월을 이른다. 봄옷이 이미 이루어짐은 사월의 옷이 이루어짐을 이른다. 관 쓴 이와 아이는 기우제의 악인이다.
浴乎沂,涉沂水也,象龍之從水中出也。風乎舞雩,風,歌也。
기수에서 목욕함은 기수를 건넘이니 용이 물 가운데서 나옴을 본뜬 것이다. 기우제 터(舞雩)에서 바람 쐼의 풍(風)은 노래함이다.
詠而餽,詠歌餽祭也,歌詠而祭也。說論之家,以為浴者,浴沂水中也,風干身也。周之四月,正歲二月也,尚寒,安得浴而風干身?由此言之,涉水不浴,雩祭審矣。
노래하며 돌아옴은 노래하며 제사에 음식을 올림이니 노래하고 읊으며 제사하는 것이다. 설을 논하는 집은 목욕한다는 것을 기수 가운데서 목욕하고 바람으로 몸을 말린다는 것이라 한다. 주나라의 사월은 바른 해의 이월이라 오히려 추운데 어찌 목욕하고 바람으로 몸을 말리겠는가. 이로써 말하면 물을 건너고 목욕하지 않으니 기우제임이 분명하다.
《春秋》《左氏傳》曰:「啟蟄而雩。」又曰:「龍見而雩。啟蟄龍見。」皆二月也。春二月雩,秋八月亦雩。春祈谷雨,秋祈谷實。當今靈星,秋之雩也。春雩廢,秋雩在。故靈星之祀,歲雩祭也。孔子曰:「吾與點也!」
「춘추」 「좌씨전」에 「계칩에 기우제한다」 하고 또 「용이 나타나면 기우제한다. 계칩과 용이 나타남」 하였으니 다 이월이다. 봄 이월에 기우제하고 가을 팔월에 또 기우제한다. 봄에는 곡식의 비를 빌고 가을에는 곡식의 열매를 빈다. 지금의 영성은 가을의 기우제다. 봄 기우제는 폐하고 가을 기우제는 있다. 그러므로 영성의 제사는 해마다 기우제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점과 함께하겠다!」
善點之言,欲以雩祭調和陰陽,故與之也。使雩失正,點欲為之,孔子宜非,不當與也。樊遲從游,感雩而問,刺魯不能崇德而徒雩也。夫雩,古而有之。故《禮》曰:「雩祭,祭水旱也。」故有雩禮,故孔子不譏,而仲舒申之。夫如是,雩祭,祀禮也。雩祭得禮,則大水鼓用牲於社,亦古禮也。得禮無非,當雩一也。禮祭(也)〔地〕社,報生萬物之功。土地廣遠,難得辨祭,故立社為位,主心事之。為水旱者,陰陽之氣也,滿六合難得盡祀,故修壇設位,敬恭祈求,效事社之義,復災變之道也。推生事死,推人事鬼。陰陽精氣,儻如生人能飲食乎?故共馨香,奉進旨嘉,區區,冀見答享。推祭社言之,當雩二也。歲氣調和,災害不生,尚猶而雩。今有靈星,古昔之禮也。況歲氣有變,水旱不時,人君之懼,必痛甚矣。雖有靈星之祀,猶復雩,恐前不備,肜繹之義也。冀復災變之虧,獲酆穰之報,三也。
점의 말을 착하다 함은 기우제로 음양을 고르게 하려 하므로 함께한 것이다. 기우제가 바름을 잃었는데 점이 하려 하였다면 공자가 마땅히 그르다 해야지 함께해서는 안 된다. 번지가 따라 노닐다가 기우제에 느껴 물음은 노나라가 덕을 높이지 못하고 한갓 기우제함을 나무란 것이다. 무릇 기우제는 옛날부터 있었다. 그러므로 「예」에 이르기를 「기우제는 물과 가뭄을 제사함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기우제의 예가 있으므로 공자가 나무라지 않았고 중서가 폈다. 무릇 이러하면 기우제는 제사의 예다. 기우제가 예를 얻었다면 큰물에 북을 치고 희생을 사직에 씀도 또한 옛 예다. 예를 얻어 그름이 없으니 마땅히 기우제할 첫째다. 예에 땅의 사직을 제사함은 만물을 낳은 공을 갚는 것이다. 토지가 넓고 멀어 가려 제사하기 어려우므로 사직을 세워 자리를 삼아 마음을 주로 하여 섬긴다. 물과 가뭄이 되는 것은 음양의 기운이니 육합에 가득하여 다 제사하기 어려우므로 단을 닦고 자리를 베풀어 공경히 빌고 구함은 사직을 섬기는 뜻을 본받아 재앙과 변고를 회복하는 도다. 삶을 미루어 죽음을 섬기고 사람을 미루어 귀신을 섬긴다. 음양의 정기가 혹 산 사람처럼 마시고 먹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향기를 바치고 맛있는 것을 받들어 올려 구구히 갚아 흠향하기를 바란다. 사직을 제사함을 미루어 말하면 마땅히 기우제할 둘째다. 해의 기운이 고르고 재앙과 해가 생기지 않아도 오히려 기우제한다. 지금 영성이 있음은 옛날의 예다. 하물며 해의 기운에 변고가 있어 물과 가뭄이 때가 아니면 임금의 두려움이 반드시 아픔이 심할 것이다. 비록 영성의 제사가 있어도 오히려 다시 기우제함은 앞이 갖추어지지 않았을까 두려워함이니 융역의 뜻이다. 재앙과 변고의 이지러짐을 회복하고 풍년의 갚음을 얻기를 바람이 셋째다.
禮之心悃,樂之意歡忻。悃以玉帛效心,歡忻以鐘鼓驗意。雩祭請祈,人君精誠也。精誠在內,無以效外。故雩祀盡己惶懼,關納精心於雩祀之前,玉帛鐘鼓之義,四也。臣得罪於君,子獲過於父,比自改更,且當謝罪惶懼。於旱如政治所致,臣子得罪獲過之類也。默改政治,潛易操行,不彰於外,天怒不釋。故必雩祭,惶懼之義,五也。漢立博士之官,師弟子相呵難,欲極道之深,形是非之理也。不出橫難,不得從說;不發苦詰,不聞甘對。導才低仰,欲求裨也;砥石厲,欲求也。推《春秋》之義,求雩祭之說,實孔子之心,考仲舒之意,孔子既歿,仲舒已死,世之論者,孰當復問?唯若孔子之徒,仲舒之党,為能說之。
예의 마음은 간절하고 악의 뜻은 기쁘다. 간절함은 옥과 비단으로 마음을 증험하고 기쁨은 종과 북으로 뜻을 증험한다. 기우제로 청하고 빎은 임금의 정성이다. 정성이 안에 있으면 밖에 증험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기우제에 제 두려움을 다하여 정밀한 마음을 기우제 앞에 들여 바치니 옥과 비단과 종과 북의 뜻이 넷째다.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고 자식이 아비에게 허물을 얻으면 스스로 고치기에 견주어 또 마땅히 사죄하고 두려워한다. 가뭄이 정치가 이르게 한 것이라면 신하와 자식이 죄를 얻고 허물을 얻은 무리다. 잠자코 정치를 고치고 가만히 몸가짐을 바꾸어 밖에 드러내지 않으면 하늘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우제함은 두려워하는 뜻이니 다섯째다. 한나라가 박사의 벼슬을 세워 스승과 제자가 서로 꾸짖고 따짐은 도의 깊음을 다하고 옳고 그름의 이치를 드러내려 함이다. 가로지르는 따짐을 내지 않으면 따르는 설을 얻지 못하고 괴로운 힐난을 발하지 않으면 단 대답을 듣지 못한다. 재주를 이끌어 낮추고 우러름은 보탬을 구하려 함이요 숫돌에 갈고 가는 것은 날카로움을 구하려 함이다. 「춘추」의 뜻을 미루어 기우제의 설을 구하고 공자의 마음을 실답게 하고 중서의 뜻을 살피는데 공자가 이미 죽고 중서가 이미 죽었으니 세상의 논하는 이는 누구에게 마땅히 다시 묻겠는가. 오직 공자의 무리와 중서의 무리 같은 이라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