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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瑞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40 · 한자 4,236자 · 낭독 16.9분

「논형」 강서편 「講瑞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儒者之論,自說見鳳皇、騏而知之。何則?案鳳皇、騏之象。又《春秋》獲麟文曰:「有而角。」

유자의 논은 스스로 봉황과 기린을 보면 안다 말한다. 어째서인가. 봉황과 기린의 상을 살핌이다. 또 「춘추」에 기린을 얻은 글에 이르기를 「노루인데 뿔이 있다」 하였다.

獐而角者,則是騏矣。其見鳥而象鳳皇者則鳳皇矣。黃帝、堯、舜、周之盛時皆致鳳皇。孝宣帝之時,鳳皇集於上林,後又於長樂之宮東門樹上,高五尺,文章五色。周獲麟,麟似獐而角。武帝之麟,亦如獐而角。如有大鳥,文章五色;獸狀如獐,首戴一角:考以圖象,驗之古今,則鳳、麟可得審也。

노루인데 뿔이 있는 것은 곧 기린이다. 그 새를 보아 봉황을 본뜬 것은 곧 봉황이다. 황제·요·순·주나라의 성한 때에 다 봉황을 이르게 하였다. 효선제 때 봉황이 상림에 모였고 뒤에 또 장락궁 동문 나무 위에 모였는데 높이가 다섯 자요 무늬가 다섯 빛깔이었다. 주나라가 기린을 얻으니 기린이 노루 같으면서 뿔이 있었다. 무제의 기린도 노루 같으면서 뿔이 있었다. 큰 새가 있어 무늬가 다섯 빛깔이고 짐승의 모양이 노루 같으면서 머리에 뿔 하나를 이었으면 그림과 상으로 살피고 고금으로 증험하여 봉과 기린을 살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夫鳳皇,鳥之聖者也;騏,獸之聖者也;五帝、三王、皋陶、孔子,人之聖也。十二聖相各不同,而欲以獐戴角則謂之騏,相與鳳皇象合者謂之鳳皇,如何?夫聖鳥獸毛色不同,猶十二聖骨體不均也。

무릇 봉황은 새의 성인이요 기린은 짐승의 성인이며 오제·삼왕·고요·공자는 사람의 성인이다. 열두 성인의 상이 저마다 같지 않은데 노루가 뿔을 이면 기린이라 하고 봉황의 상과 합하는 것을 봉황이라 하려 하니 어떠한가. 무릇 성스러운 새와 짐승의 털 빛깔이 같지 않음은 열두 성인의 뼈와 몸이 고르지 않음과 같다.

戴角之相,猶戴午也。顓頊戴午,堯、舜必未然。今魯所獲麟戴角,即後所見麟未必戴角也。如用魯所獲麟求知世間之麟,則必不能知也。何則?毛羽骨角不合同也。假令不同,或時似類,未必真是。虞舜重瞳,王莽亦重瞳;晉文駢脅,張儀亦駢脅。如以骨體毛色比,則王莽,虞舜;而張儀,晉文也。有若在魯,最似孔子。孔子死,弟子共坐有若,問以道事,有若不能對者,何也?體狀似類,實性非也。今五色之鳥,一角之獸,或時似類鳳皇、騏,其實非真,而說者欲以骨體毛色定鳳皇、騏,誤矣!是故顏淵庶幾,不似孔子;有若恆庸,反類聖人。由是言之,或時真鳳皇、騏骨體不似,恆庸鳥獸毛色類真,知之如何?

뿔을 인 상은 오(午)를 인 것과 같다. 전욱은 오를 이었으나 요·순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 이제 노나라가 얻은 기린은 뿔을 이었으나 곧 뒤에 보이는 기린이 반드시 뿔을 이는 것은 아니다. 노나라가 얻은 기린으로 세상의 기린을 구하여 알려 하면 반드시 알 수 없다. 어째서인가. 털과 깃과 뼈와 뿔이 합하여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같지 않아도 혹 때로 비슷한 무리라도 반드시 참으로 옳은 것이 아니다. 우순은 눈동자가 겹이었는데 왕망도 눈동자가 겹이었고 진 문공은 갈비뼈가 붙었는데 장의도 갈비뼈가 붙었다. 뼈와 몸과 털 빛깔로 견주면 왕망은 우순이요 장의는 진 문공이다. 유약이 노나라에 있어 공자와 가장 비슷하였다. 공자가 죽자 제자가 함께 유약을 앉히고 도의 일을 물었는데 유약이 대답할 수 없었음은 어째서인가. 몸과 모양이 비슷한 무리이나 실다운 성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다섯 빛깔의 새와 뿔 하나의 짐승이 혹 때로 봉황과 기린에 비슷한 무리라도 그 실은 참이 아닌데 말하는 이는 뼈와 몸과 털 빛깔로 봉황과 기린을 정하려 하니 그르다! 이 때문에 안연은 거의 성인에 가까웠으나 공자와 비슷하지 않고 유약은 예사롭고 평범하나 도리어 성인과 비슷하였다. 이로써 말하면 혹 때로 참 봉황과 기린은 뼈와 몸이 비슷하지 않고 예사롭고 평범한 새와 짐승이 털 빛깔이 참과 비슷할 것이니 알기를 어떻게 하는가.

儒者自謂見鳳皇、騏輒而知之,則是自謂見聖人輒而知之也。皋陶馬口,孔子反宇,設後輒有知而絕殊,馬口反宇,尚未可謂聖。何則?十二聖相不同,前聖之相,難以照後聖也。骨法不同,姓名不等,身形殊狀,生出異土,雖復有聖,何如知之?

유자가 스스로 봉황과 기린을 보면 곧 안다 하면 이는 스스로 성인을 보면 곧 안다 함이다. 고요는 말 입이요 공자는 뒤집힌 지붕 머리인데 뒤에 곧 앎이 있어 뛰어나게 다르고 말 입과 뒤집힌 지붕 머리라도 오히려 성인이라 할 수 없다. 어째서인가. 열두 성인의 상이 같지 않아 앞 성인의 상으로 뒤 성인을 비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골법이 같지 않고 성명이 같지 않으며 몸의 꼴이 다른 모양이고 나온 땅이 다르니 비록 다시 성인이 있어도 어떻게 알겠는가.

恆君山謂揚子雲曰:「如後世復有聖人,徒知其才能之勝己,多不能知其聖與非聖人也。」子云曰:「誠然。」

환군산이 양자운에게 말하였다. 「후세에 다시 성인이 있으면 한갓 그 재능이 저보다 나음만 알고 흔히 그가 성인인지 성인이 아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자운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다.」

夫聖人難知,知能之美若桓、揚者,尚復不能知。世儒懷庸庸之知,無異之議,見聖不能知,可保必也。夫不能知聖,則不能知鳳皇與騏。世人名鳳皇、騏,何用自謂能之乎?夫上世之名鳳皇、騏,聞其鳥獸之奇者耳。毛角有奇,又不妄翔苟游,與鳥獸爭飽,則謂之鳳皇、騏矣。

무릇 성인은 알기 어려우니 앎과 능함의 아름다움이 환·양 같은 이도 오히려 다시 알 수 없다. 세상 유자가 용렬한 앎을 품어 남다른 의논이 없으니 성인을 보고 알 수 없음이 반드시 그러함을 보증할 만하다. 무릇 성인을 알 수 없으면 봉황과 기린을 알 수 없다. 세상 사람이 봉황과 기린을 이름함에 무엇으로 스스로 알 수 있다 하는가. 무릇 윗세상이 봉황과 기린을 이름함은 그 새와 짐승의 기이한 것을 들었을 뿐이다. 털과 뿔에 기이함이 있고 또 망령되이 날고 구차히 노닐어 새와 짐승과 배부름을 다투지 않으면 봉황과 기린이라 한 것이다.

世人之知聖,亦猶此也。聞聖人人之奇者,身有奇骨,知能博達,則謂之聖矣。及其知之,非卒見暫聞而輒名之為聖也,與之偃伏,從(文)〔之〕受學,然後知之。何以明之?子貢事孔子一年,自謂過孔子;二年,自謂與孔子同;三年,自知不及孔子。當一年、二年之時,未知孔子聖也;三年之後,然乃知之。以子貢知孔子,三年乃定。世儒無子貢之才,其見聖人不從之學,任倉卒之視,無三年之接,自謂知聖,誤矣!少正卯在魯,與孔子并。孔子之門,三盈三虛,唯顏淵不去,顏淵獨知孔子聖也。夫門人去孔子歸少正卯,不徒不難知孔子之聖,又不能知少正卯,門人皆惑。

세상 사람이 성인을 앎도 또한 이와 같다. 성인이 사람의 기이한 이로 몸에 기이한 뼈가 있고 앎과 능함이 넓고 통달하다 들으면 성인이라 한다. 그 앎에 미쳐서는 갑자기 보고 잠깐 듣고 곧 성인이라 이름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눕고 엎드리며 따라 배움을 받은 뒤에야 안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자공이 공자를 섬긴 지 한 해에 스스로 공자보다 낫다 하였고 두 해에 스스로 공자와 같다 하였고 세 해에 스스로 공자에 미치지 못함을 알았다. 한 해 두 해 때에는 공자가 성인임을 알지 못하였고 세 해 뒤에야 곧 알았다. 자공이 공자를 앎이 세 해에야 정해졌다. 세상 유자는 자공의 재주가 없으면서 성인을 보고 따라 배우지 않고 창졸의 봄에 맡겨 세 해의 접함이 없이 스스로 성인을 안다 하니 그르다! 소정묘가 노나라에 있어 공자와 나란하였다. 공자의 문이 세 번 차고 세 번 비었는데 오직 안연만 떠나지 않았으니 안연이 홀로 공자가 성인임을 안 것이다. 무릇 문인이 공자를 떠나 소정묘에게 돌아감은 한갓 공자의 성스러움을 알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또 소정묘도 알 수 없어 문인이 다 홀린 것이다.

子貢曰:「夫少正卯,魯之聞人也。子為政,何以先之?」孔子曰:「賜退,非爾所及。」

자공이 말하였다. 「무릇 소정묘는 노나라의 이름난 사람입니다. 선생께서 정사를 하시며 어찌 그를 먼저 하십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사야 물러가라, 네가 미칠 바가 아니다.」

夫才能知佞若子貢,尚不能知聖。世儒見聖自謂能知之,妄也!

무릇 재주가 아첨을 알 수 있기 자공 같은 이도 오히려 성인을 알 수 없었다. 세상 유자가 성인을 보고 스스로 알 수 있다 함은 망령되다!

夫以不能知聖言之,則亦知其不能知鳳皇與騏也。使鳳皇羽翮長廣,騏體高大,則見之者以為大鳥巨獸耳。何以別之?如必巨大別之,則其知聖人亦宜以巨大。春秋之時,鳥有爰居,不可以為鳳皇;長狄來至,不可以為聖人。然則鳳皇、騏與鳥獸等也,世人見之,何用知之?如以中國無有,從野外來而知之,則是鵒同也。鵒,非中國之禽也。鳳皇、騏,亦非中國之禽獸也。皆非中國之物,儒者何以謂鵒惡、鳳皇騏善乎?

무릇 성인을 알 수 없음으로 말하면 또한 그가 봉황과 기린을 알 수 없음을 안다. 봉황의 깃이 길고 넓으며 기린의 몸이 높고 크게 하면 보는 이는 큰 새와 큰 짐승이라 여길 뿐이다. 무엇으로 가르는가. 반드시 거대함으로 가른다면 그 성인을 앎도 마땅히 거대함으로 해야 한다. 춘추 때 새에 원거가 있었으나 봉황이라 할 수 없고 장적이 왔으나 성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봉황과 기린은 새와 짐승과 같은데 세상 사람이 보고 무엇으로 아는가. 중국에 없는 것으로 들 밖에서 왔다고 안다면 이는 구욕새와 같다. 구욕새는 중국의 새가 아니다. 봉황과 기린도 중국의 새와 짐승이 아니다. 다 중국의 물건이 아닌데 유자는 무엇으로 구욕새는 악하고 봉황과 기린은 착하다 하는가.

或曰:「孝宣之時,鳳皇集於上林,群鳥從(上)〔之〕以千萬數。以其眾鳥之長,聖神有異,故群鳥附從。」

어떤 이는 말한다. 「효선 때 봉황이 상림에 모였는데 뭇 새가 따르는 것이 천만으로 헤아렸다. 그것이 뭇 새의 어른이라 성스럽고 신령하여 남다름이 있으므로 뭇 새가 붙어 따른 것이다.」

如見大鳥來集,群鳥附之,則是鳳皇,鳳皇審則定矣。夫鳳皇與騏同性,鳳皇見,群鳥從;騏見,眾獸亦宜隨。案春秋之麟,不言眾獸隨之。宣帝、武帝皆行騏,無眾獸附從之文。如以騏為人所獲,附從者散,鳳皇人不獲,自來蜚翔,附從可見。《書》曰:「簫《韶》九成,鳳皇來儀。」

큰 새가 와서 모이고 뭇 새가 붙는 것을 보면 이는 봉황이라 봉황임이 살펴져 정해진다는 것이다. 무릇 봉황과 기린은 같은 성품이라 봉황이 나타나면 뭇 새가 따르니 기린이 나타나면 뭇 짐승도 마땅히 따라야 한다. 살피건대 춘추의 기린에 뭇 짐승이 따랐다 말하지 않았다. 선제·무제가 다 기린을 얻었는데 뭇 짐승이 붙어 따랐다는 글이 없다. 기린은 사람에게 잡혀 붙어 따르는 것이 흩어졌다 한다면 봉황은 사람이 잡지 않고 절로 와서 날아다니니 붙어 따름을 볼 수 있다. 「서」에 이르기를 「퉁소로 「소」를 아홉 번 이루니 봉황이 와서 춤추었다」 하였다.

《大傳》曰:「鳳皇在列樹。」不言群鳥從也。豈宣帝所致者異哉?

「대전」에 이르기를 「봉황이 벌여 선 나무에 있었다」 하였다. 뭇 새가 따랐다 말하지 않았다. 어찌 선제가 이르게 한 것이 다른가.

或曰:「記事者失之。唐、虞之君,鳳皇實有附從。上世久遠,記事遺失,經書之文,未足以實也。」

어떤 이는 말한다. 「일을 기록한 이가 빠뜨린 것이다. 당·우의 임금 때 봉황에게 실로 붙어 따름이 있었다. 윗세상은 오래고 멀어 일을 기록함에 빠뜨려 잃었으니 경서의 글은 실답게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夫實有而記事者失之,亦有實無而記事者生之。夫如是,儒書之文,難以實事,案附從以知鳳皇,未得實也。且人有佞猾而聚者,鳥亦有佼黠而從群者。當唐、虞之時,鳳愨願,宣帝之時佼黠乎?何其俱有聖人之德行,動作之操不均同也?

무릇 실로 있었는데 일을 기록한 이가 빠뜨림도 있고 또한 실로 없었는데 일을 기록한 이가 낳음도 있다. 무릇 이러하면 유가의 책의 글은 일을 실답게 하기 어려우니 붙어 따름을 살펴 봉황을 앎은 실상을 얻지 못한다. 또 사람에 아첨하고 교활하면서 모이는 이가 있고 새에도 교활하면서 무리를 따르는 것이 있다. 당·우 때에는 봉황이 성실하고 선제 때에는 교활하였는가. 어찌 다 성인의 덕행이 있으면서 움직이는 몸가짐이 고르게 같지 않은가.

無鳥附從,或時是鳳皇;群鳥附從,或時非也。君子在世,清節自守,不廣結從,出入動作,人不附從。豪猾之人,任使用氣,往來進退,士眾云合。夫鳳皇,君子也,必以隨多者效鳳皇,是豪黠為君子也。歌曲彌妙,和者彌寡;行操益清,交者益鮮。鳥獸亦然,必以附從效鳳皇,是用和多為妙曲也。龍與鳳皇為比類。宣帝之時,黃龍出於新丰,群蛇不隨。神雀鸞鳥,皆眾鳥之長也,其仁聖雖不及鳳皇,然其從群鳥亦宜數十。信陵、孟嘗,食客三千,稱為賢君。漢將軍衛青及將軍霍去病,門無一客,亦稱名將。太史公曰:「盜蹠橫行,聚党數千人。伯夷、叔齊,隱處首陽山。」

새가 붙어 따름이 없어도 혹 때로 봉황이요 뭇 새가 붙어 따라도 혹 때로 아니다. 군자가 세상에 있어 맑은 절개로 스스로 지켜 널리 무리를 맺지 않으니 드나들고 움직임에 사람이 붙어 따르지 않는다. 호걸스럽고 교활한 사람은 기운을 부려 오가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선비와 무리가 구름처럼 모인다. 무릇 봉황은 군자니 반드시 따름이 많음으로 봉황을 증험하면 이는 호걸스럽고 교활한 이가 군자가 되는 것이다. 노래 가락이 묘할수록 화답하는 이가 적고 행실과 몸가짐이 맑을수록 사귀는 이가 드물다. 새와 짐승도 그러하니 반드시 붙어 따름으로 봉황을 증험하면 이는 화답이 많음을 묘한 가락으로 삼는 것이다. 용과 봉황은 견줄 무리다. 선제 때 누런 용이 신풍에 나왔는데 뭇 뱀이 따르지 않았다. 신작과 난새는 다 뭇 새의 어른이라 그 어질고 성스러움이 비록 봉황에 미치지 못하여도 그 뭇 새를 따르게 함이 또한 마땅히 수십은 되어야 한다. 신릉군과 맹상군은 식객이 삼천으로 어진 군이라 일컬어졌다. 한나라 장군 위청과 장군 곽거병은 문에 한 손님도 없었으나 또한 이름난 장수라 일컬어졌다. 태사공이 말하였다. 「도척이 횡행하며 무리 수천 사람을 모았다. 백이·숙제는 수양산에 숨어 살았다.」

鳥獸之操,與人相似。人之得眾,不足以別賢。以鳥附從審鳳皇,如何?

새와 짐승의 몸가짐은 사람과 서로 비슷하다. 사람이 무리를 얻음이 어짊을 가르기에 넉넉하지 않다. 새가 붙어 따름으로 봉황을 살핌이 어떠한가.

或曰:「鳳皇、騏,太平之瑞也。太平之際,見來至也。然亦有未太平而來至也。鳥獸奇骨異毛,卓絕非常,則是矣,何為不可知?鳳皇騏,通常以太平之時來至者,春秋之時,騏嘗嫌於王孔子而至。光武皇帝生於濟陽,鳳皇來集。」

어떤 이는 말한다. 「봉황과 기린은 태평의 상서다. 태평의 즈음에 나타나 와서 이른다. 그러나 또한 아직 태평하지 않은데 와서 이름도 있다. 새와 짐승의 기이한 뼈와 다른 털이 뛰어나 예사롭지 않으면 곧 그것이니 어찌 알 수 없겠는가. 봉황과 기린이 보통은 태평한 때에 와서 이르나 춘추 때 기린이 일찍이 공자를 왕으로 여기는 혐의로 이르렀다. 광무황제가 제양에서 나니 봉황이 와서 모였다.」

夫光武始生之時,成、哀之際也,時未太平而鳳皇至。如以自為光武有聖德而來,是則為聖王始生之瑞,不為太平應也。嘉瑞或應太平,或為始生,其實難知。獨以太平之際驗之,如何?

무릇 광무가 처음 날 때는 성제·애제의 즈음이라 때가 아직 태평하지 않은데 봉황이 이르렀다. 스스로 광무가 성스러운 덕이 있어 왔다 한다면 이는 곧 성왕이 처음 남의 상서요 태평의 응함이 아니다. 아름다운 상서가 혹 태평에 응하고 혹 처음 남을 위하니 그 실상을 알기 어렵다. 홀로 태평의 즈음으로 증험함이 어떠한가.

或曰:「鳳皇騏,生有種類,若龜龍有種類矣。龜故生龜,龍故生龍,形色小大,不異於前者也。見之父,察其子孫,何為不可知?」

어떤 이는 말한다. 「봉황과 기린은 남에 종류가 있으니 거북과 용에 종류가 있음과 같다. 거북은 본디 거북을 낳고 용은 본디 용을 낳아 꼴과 빛깔과 크고 작음이 앞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아비를 보고 그 자손을 살피니 어찌 알 수 없겠는가?」

夫恆物有種類,瑞物無種適生,故曰德應,龜龍然也。人見神龜、靈龍而別之乎?宋元王之時,漁者網,得神龜焉,漁父不知其神也。方今世儒,漁父之類也。以漁父而不知神龜,則亦知夫世人而不知靈龍也。

무릇 예사 물건은 종류가 있으나 상서로운 물건은 종류 없이 마침 나므로 덕의 응함이라 하니 거북과 용도 그러하다. 사람이 신령한 거북과 신령한 용을 보고 가리는가. 송 원왕 때 고기 잡는 이가 그물을 쳐 신령한 거북을 얻었는데 어부는 그것이 신령함을 몰랐다. 지금 세상 유자는 어부의 무리다. 어부로서 신령한 거북을 알지 못하니 또한 저 세상 사람이 신령한 용을 알지 못함도 안다.

龍或時似蛇,蛇或時似龍。韓子曰:「馬之似鹿者千金。」

용은 혹 때로 뱀과 비슷하고 뱀은 혹 때로 용과 비슷하다. 한자가 말하였다. 「말로 사슴 같은 것은 천금이다.」

良馬似鹿,神龍或時似蛇。如審有類,形色不異。王莽時有大鳥如馬,五色龍文,與眾鳥數十集於沛國蘄縣。宣帝時鳳皇集於地,高五尺,與言如馬身高同矣;文章五色,與言五色龍文,物色均矣;眾鳥數十,與言俱集、附從等也。如以宣帝時鳳皇體色眾鳥附從,安知鳳皇則王莽所致鳥鳳皇也。如審是王莽致之,是非瑞也。如非鳳皇,體色附從,何為均等?

좋은 말은 사슴 같고 신령한 용은 혹 때로 뱀 같다. 참으로 무리가 있다면 꼴과 빛깔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왕망 때 큰 새가 말 같고 다섯 빛깔에 용 무늬로 뭇 새 수십과 함께 패국 기현에 모였다. 선제 때 봉황이 땅에 모였는데 높이가 다섯 자라 말의 몸 높이 같다는 말과 같고, 무늬가 다섯 빛깔이니 다섯 빛깔 용 무늬라는 말과 물건 빛깔이 고르며, 뭇 새 수십이니 함께 모여 붙어 따랐다는 말과 같다. 선제 때 봉황의 몸 빛깔과 뭇 새의 붙어 따름으로 한다면 봉황이 곧 왕망이 이르게 한 새가 봉황임을 어찌 아는가. 참으로 왕망이 이르게 한 것이라면 이는 상서가 아니다. 봉황이 아니라면 몸 빛깔과 붙어 따름이 어찌 고르게 같은가.

且瑞物皆起和氣而生,生於常類之中,而有詭異之性,則為瑞矣。故夫鳳皇之聖也,猶赤烏之集也。謂鳳皇有種,赤烏復有類乎?嘉禾、醴泉、甘露,嘉禾生於禾中,與禾中異穗,謂之嘉禾;醴泉、甘露,出而甘美也,皆泉、露生出,非天上有甘露之神,地下有醴泉之類,聖治公平而乃沾下產出也。莢、朱草亦生在地,集於眾草,無常本根,暫時產出,旬月枯折,故謂之瑞。夫鳳皇騏亦瑞也,何以有種類?

또 상서로운 물건은 다 화한 기운에서 일어나 나니 예사 무리 가운데서 나면서 괴이하고 다른 성품이 있으면 상서가 된다. 그러므로 무릇 봉황의 성스러움은 붉은 까마귀가 모임과 같다. 봉황에 종류가 있다 하면 붉은 까마귀도 다시 무리가 있는가. 가화·예천·감로에서 가화는 벼 가운데 나서 벼 가운데 이삭이 다르므로 가화라 하고 예천·감로는 나와서 달고 아름다운 것이니 다 샘과 이슬이 나온 것이지 하늘 위에 감로의 신이 있고 땅 아래 예천의 무리가 있어 성스러운 다스림이 공평하면 곧 적셔 내리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명협·주초도 땅에 나서 뭇 풀에 모여 늘 그러한 뿌리가 없이 잠시 나와 열흘이나 한 달에 말라 꺾이므로 상서라 한다. 무릇 봉황과 기린도 상서인데 어찌 종류가 있겠는가.

案周太平,越常獻白雉。白雉,生短而白色耳,非有白雉之種也。魯人得戴角之獐,謂之騏,亦或時生於獐,非有騏之類。由此言之,鳳皇亦或時生於鵠鵲,毛奇羽殊,出異眾鳥,則謂之鳳皇耳,安得與眾鳥殊種類也?有若曰:「騏之於走獸,鳳皇之於飛鳥,太山之於丘垤,河海之於行潦,類也。」

살피건대 주나라가 태평하니 월상이 흰 꿩을 바쳤다. 흰 꿩은 나면서 짧고 흰 빛일 뿐이지 흰 꿩의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노나라 사람이 뿔 인 노루를 얻어 기린이라 하였으니 또한 혹 때로 노루에서 난 것이지 기린의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로써 말하면 봉황도 혹 때로 고니와 까치에서 나서 털이 기이하고 깃이 달라 뭇 새보다 뛰어나면 봉황이라 할 뿐이니 어찌 뭇 새와 다른 종류이겠는가. 유약이 말하였다. 「기린이 달리는 짐승에 대하여, 봉황이 나는 새에 대하여, 태산이 언덕과 두둑에 대하여, 하수와 바다가 길가 웅덩이에 대하여 무리다.」

然則鳳皇、騏都與鳥獸同一類,體色詭耳,安得異種?同類而有奇,奇為不世,不世難審,識之如何?

그러니 봉황과 기린은 다 새와 짐승과 같은 한 무리라 몸과 빛깔이 괴이할 뿐인데 어찌 다른 종류를 얻겠는가. 같은 무리이면서 기이함이 있으니 기이함은 세상에 늘 있지 않고 세상에 늘 있지 않으면 살피기 어려우니 알기를 어떻게 하는가.

堯生丹朱,舜生商均。商均、丹朱,堯、舜之類也,骨性詭耳。鯀生禹,瞽瞍生舜。舜、禹,鯀、瞽瞍之種也,知德殊矣。試種嘉禾之實,不能得嘉禾。恆見粢梁之粟,莖穗怪奇。人見叔梁紇,不知孔子父也;見伯魚,不知孔子之子也。張湯之父五尺,湯長八尺,湯孫長六尺。孝宣鳳皇高五尺,所從生鳥或時高二尺,後所生之鳥或時高一尺。安得常種?

요는 단주를 낳고 순은 상균을 낳았다. 상균과 단주는 요·순의 무리이나 뼈와 성품이 괴이할 뿐이다. 곤은 우를 낳고 고수는 순을 낳았다. 순·우는 곤·고수의 종자이나 앎과 덕이 다르다. 시험 삼아 가화의 열매를 심어도 가화를 얻을 수 없다. 늘 보는 기장과 조도 줄기와 이삭이 괴이하고 기이하다. 사람이 숙량흘을 보고 공자의 아비임을 모르고 백어를 보고 공자의 아들임을 모른다. 장탕의 아비는 다섯 자인데 탕은 키가 여덟 자요 탕의 손자는 키가 여섯 자였다. 효선의 봉황은 높이가 다섯 자인데 그것을 낳은 새는 혹 때로 높이가 두 자요 뒤에 낳은 새는 혹 때로 높이가 한 자일 것이다. 어찌 늘 그러한 종자를 얻겠는가.

種類無常,故曾皙生參,氣性不世;顏路出回,古今卓絕。馬有千里,不必騏〔驥〕之駒;鳥有仁聖,不必鳳皇之雛。山頂之溪,不通江湖,然而有魚,水精自為之也;廢庭坏殿,基上草生,地氣自出之也。按溪水之魚,殿基上之草,無類而出。瑞應之自至,天地未必有種類也。

종류가 늘 그러하지 않으므로 증석이 증삼을 낳으매 기운과 성품이 세상에 없는 것이었고 안로가 안회를 냄에 고금에 뛰어났다. 말에 천 리 가는 것이 있으나 반드시 천리마의 망아지가 아니요 새에 어질고 성스러운 것이 있으나 반드시 봉황의 새끼가 아니다. 산꼭대기의 시내는 강과 호수에 통하지 않으나 물고기가 있으니 물의 정기가 절로 만든 것이요, 버려진 뜰과 무너진 전각의 터 위에 풀이 나니 땅의 기운이 절로 낸 것이다. 살피건대 시냇물의 물고기와 전각 터 위의 풀은 무리 없이 나온다. 상서로운 응함이 절로 이름에 하늘과 땅에 반드시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夫瑞應猶災變也。瑞以應善,災以應惡;善惡雖反,其應一也。災變無種,瑞應亦無類也。陰陽之氣,天地之氣也,遭善而為和,遇惡而為變,豈天地為善惡之政,更生和變之氣乎?然則瑞應之出,殆無種類,因善而起,氣和而生。亦或時政平氣和,眾物變化,猶春則鷹變為鳩,秋則鳩化為鷹,蛇鼠之類輒為魚鱉,蝦蟆為鶉,雀為蜃蛤。物隨氣變,不可謂無。黃石為老父授張良書,去復為石也。儒知之。或時太平氣和,獐為騏,鵠為鳳皇。是故氣性隨時變化,豈必有常類哉?褒姒,玄黿之子,二龍也。晉之二卿,熊羆之裔也。吞燕子、薏苡、履大跡之語,世之人然之,獨謂瑞有常類哉?以物無種計之,以人無類議之,以體變化論之,鳳皇、騏生無常類,則形色何為當同!

무릇 상서로운 응함은 재앙과 변고와 같다. 상서는 착함에 응하고 재앙은 악에 응하니 착함과 악이 비록 반대이나 그 응함은 하나다. 재앙과 변고에 종자가 없으니 상서로운 응함도 무리가 없다. 음양의 기운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니 착함을 만나 화가 되고 악을 만나 변고가 되는데 어찌 하늘과 땅이 착하고 악한 정사를 하여 다시 화와 변고의 기운을 낳겠는가. 그러니 상서로운 응함의 나옴은 아마 종류가 없고 착함으로 인해 일어나고 기운이 화하여 난다. 또한 혹 때로 정사가 평안하고 기운이 화하여 뭇 물건이 변화하니 봄에는 매가 변하여 비둘기가 되고 가을에는 비둘기가 변하여 매가 되며 뱀과 쥐의 무리가 곧 물고기와 자라가 되고 두꺼비가 메추라기가 되고 참새가 조개가 되는 것과 같다. 물건이 기운을 따라 변함을 없다 할 수 없다. 누런 돌이 늙은 아비가 되어 장량에게 글을 주고 가서 다시 돌이 되었다. 유자가 이를 안다. 혹 때로 태평하여 기운이 화하면 노루가 기린이 되고 고니가 봉황이 된다. 이 때문에 기운과 성품이 때를 따라 변화하니 어찌 반드시 늘 그러한 무리가 있겠는가. 포사는 검은 자라의 자식이니 두 용이다. 진나라의 두 경은 곰과 큰곰의 후예다. 제비 알을 삼키고 율무를 먹고 큰 발자국을 밟았다는 말을 세상 사람이 그렇다 하면서 홀로 상서에 늘 그러한 무리가 있다 하는가. 물건에 종자가 없음으로 헤아리고 사람에 무리가 없음으로 의논하고 몸이 변화함으로 논하면 봉황과 기린은 남에 늘 그러한 무리가 없으니 꼴과 빛깔이 어찌 마땅히 같겠는가!

案《禮記瑞命篇》云:「雄曰鳳,雌曰皇。雄鳴曰即即,雌鳴足足。」《詩》云:「梧桐生矣,於彼高岡。鳳皇鳴矣,於彼朝陽。萋萋,喈喈。」《瑞命》與《詩》,俱言鳳皇之鳴。《瑞命》之言「即即、足足」,《詩》云「、喈喈」,此聲異也。使聲審則形不同也。使審〔異〕同,《詩》與《禮》異。世傳鳳皇之鳴,故將疑焉。

살피건대 「예기」 서명 편에 「수컷을 봉이라 하고 암컷을 황이라 한다. 수컷의 울음은 즉즉이요 암컷의 울음은 족족이다」 하였다. 「시」에 이르기를 「오동나무가 났네, 저 높은 언덕에. 봉황이 우네, 저 아침 볕에. 무성하고 무성하며 화락하고 화락하네」 하였다. 「서명」과 「시」가 다 봉황의 울음을 말하였다. 「서명」의 「즉즉·족족」이라는 말과 「시」의 「옹옹·개개」는 이 소리가 다르다. 소리가 참이라면 꼴이 같지 않다. 참으로 다르고 같으면 「시」와 「예」가 다르다. 세상에 봉황의 울음을 전하나 그러므로 장차 의심한다.

案魯之獲麟云「有獐而角」。言有獐者,色如獐也。獐色有常,若鳥色有常矣。武王之時,火流為烏,云其色赤。赤非烏之色,故言其色赤。如似獐而色異,亦當言其色白若黑。今成事色同,故言「有獐」。獐無角,有異於故,故言「而角」也。夫如是,魯之所得者,若獐之狀也。武帝之時,西巡狩得白,一角而五趾。角或時同,言五趾者,足不同矣。魯所得麟,云有獐不言色者,獐無異色也。武帝云得白,色白不類獐,故〔不〕言有獐,正言白,色不同也。孝宣之時,九真貢,獻,狀如(獐)〔鹿〕而兩角者。

살피건대 노나라가 기린을 얻음에 「노루인데 뿔이 있다」 하였다. 노루가 있다 말함은 빛깔이 노루 같음이다. 노루 빛깔에 늘 그러함이 있음은 새 빛깔에 늘 그러함이 있음과 같다. 무왕 때 불이 흘러 까마귀가 되니 그 빛깔이 붉다 하였다. 붉음은 까마귀의 빛깔이 아니므로 그 빛깔이 붉다 말하였다. 노루와 비슷하나 빛깔이 다르다면 또한 마땅히 그 빛깔이 희다거나 검다 말해야 한다. 이제 이루어진 일에 빛깔이 같으므로 「노루가 있다」 말하였다. 노루는 뿔이 없는데 옛것과 다름이 있으므로 「뿔이 있다」 말하였다. 무릇 이러하면 노나라가 얻은 것은 노루의 모양 같다. 무제 때 서쪽으로 순수하다가 흰 기린을 얻었는데 뿔이 하나요 발가락이 다섯이었다. 뿔은 혹 때로 같으나 다섯 발가락이라 말하니 발이 같지 않다. 노나라가 얻은 기린은 노루가 있다 하고 빛깔을 말하지 않은 것은 노루에 다른 빛깔이 없어서다. 무제는 흰 기린을 얻었다 하니 빛깔이 희어 노루와 같지 않으므로 노루가 있다 말하지 않고 바로 흰 기린이라 말하였으니 빛깔이 같지 않다. 효선 때 구진이 기린을 바쳤는데 모양이 사슴 같으면서 뿔이 둘이었다.

孝武言一角,不同矣。春秋之麟如獐,宣帝之言如鹿。鹿與獐小大相倍,體不同也。

효무는 뿔이 하나라 말하였으니 같지 않다. 춘추의 기린은 노루 같고 선제의 말은 사슴 같다. 사슴과 노루는 크고 작음이 서로 곱이니 몸이 같지 않다.

夫三王之時,毛色、角趾、身體高大,不相似類。推此准後世出,必不與前同,明矣!夫騏,鳳皇之類,騏前後體色不同,而欲以宣帝之時所見鳳皇高五尺,文章五色,准前況後,當復出鳳皇,謂與之同,誤矣!後當復出見之鳳皇、騏,必已不與前世見出者相似類。而世儒自謂見而輒知之,奈何?

무릇 세 왕 때 털 빛깔과 뿔과 발가락과 몸의 높고 큼이 서로 비슷한 무리가 아니다. 이를 미루어 후세에 나올 것을 헤아리면 반드시 앞과 같지 않음이 분명하다! 무릇 기린은 봉황의 무리라 기린이 앞뒤로 몸과 빛깔이 같지 않은데 선제 때 본 봉황이 높이 다섯 자 무늬 다섯 빛깔인 것으로 앞을 기준 삼아 뒤를 헤아려 마땅히 다시 나올 봉황을 그것과 같다 하면 그르다! 뒤에 마땅히 다시 나와 보일 봉황과 기린은 반드시 이미 앞 세상에 보여 나온 것과 서로 비슷한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세상 유자가 스스로 보면 곧 안다 하니 어떠한가.

案魯人得,不敢正名,曰「有獐而角者」,時誠無以知也。武帝使謁者終軍議之,終軍曰:「野禽并角,明天下同本也。」

살피건대 노나라 사람이 기린을 얻고 감히 바로 이름하지 못하고 「노루인데 뿔이 있는 것」이라 하였으니 당시 참으로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무제가 알자 종군에게 의논하게 하니 종군이 말하였다. 「들의 새가 뿔을 아울렀으니 천하가 근본을 같이함을 밝힘입니다.」

不正名而言野者,終軍亦疑無以審也。當今世儒之知,不能過魯人與終軍,其見鳳皇、騏,必從而疑之非恆之鳥獸耳,何能審其鳳皇、騏乎?

바로 이름하지 않고 들의 새라 말한 것은 종군도 의심하여 살필 길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세상 유자의 앎이 노나라 사람과 종군을 넘을 수 없으니 그 봉황과 기린을 보면 반드시 따라 그것이 예사롭지 않은 새와 짐승인가 의심할 뿐이지 어찌 그것이 봉황과 기린임을 살필 수 있겠는가.

以體色言之,未必等;以鳥獸隨從多者,未必善;以希見言之,有鵒來;以相奇言之,聖人有奇骨體,賢者亦有奇骨。聖賢俱奇,人無以別。由賢聖言之,聖鳥、聖獸,亦與恆鳥庸獸俱有奇怪。聖人賢者亦有知而絕殊,骨無異者,聖賢鳥獸亦有仁善廉清,體無奇者。世或有富貴不聖,身有骨為富貴表,不為聖賢驗。然則鳥亦有五采,獸有角而無仁聖者。夫如是,上世所見鳳皇、騏,何知其非恆鳥獸?今之所見鵲、獐之屬,安知非鳳皇、騏也?

몸과 빛깔로 말하면 반드시 같지 않고 새와 짐승이 따르는 것이 많음으로 하면 반드시 착하지 않으며 드물게 보임으로 말하면 구욕새가 온 것이 있고 상의 기이함으로 말하면 성인에게 기이한 뼈와 몸이 있고 어진 이에게도 기이한 뼈가 있다. 성인과 어진 이가 다 기이하니 사람이 가릴 길이 없다. 성현으로 말하면 성스러운 새와 성스러운 짐승도 예사 새와 평범한 짐승과 다 기이하고 괴이함이 있다. 성인과 어진 이에게도 앎이 뛰어나게 다르나 뼈에 다름이 없는 이가 있고 성현의 새와 짐승에도 어질고 착하고 청렴하고 맑으나 몸에 기이함이 없는 것이 있다. 세상에 혹 부귀하되 성스럽지 않은 이가 있어 몸에 뼈가 있어 부귀의 표가 되나 성현의 증험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새에도 다섯 빛깔이 있고 짐승에도 뿔이 있으면서 어질고 성스럽지 않은 것이 있다. 무릇 이러하면 윗세상이 본 봉황과 기린이 예사 새와 짐승이 아님을 어찌 아는가. 지금 보는 까치와 노루의 무리가 봉황과 기린이 아님을 어찌 아는가.

方今聖世,堯、舜之主,流布道化,仁聖之物,何為不生?或時以有鳳皇、騏亂於鵠鵲、獐鹿,世人不知。美玉隱在石中,楚王、令尹不能知,故有抱玉泣血之痛。今或時鳳皇、騏以仁聖之性,隱於恆毛庸羽,無一角、五色表之,世人不之知,猶玉在石中也。何用審之?為此論草於永平之初,時來有瑞,其孝明宣惠,眾瑞并至。至元和、章和之際,孝章耀德,天下和洽,嘉瑞奇物,同時俱應,鳳皇、騏,連出重見,盛於五帝之時。此篇已成,故不得載。

지금 성스러운 세상은 요·순의 임금이 도와 교화를 흘려 펴니 어질고 성스러운 물건이 어찌 나지 않겠는가. 혹 때로 봉황과 기린이 고니와 까치와 노루와 사슴에 섞여 있으나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옥이 돌 가운데 숨어 있어 초왕과 영윤이 알 수 없었으므로 옥을 안고 피눈물 흘린 아픔이 있었다. 이제 혹 때로 봉황과 기린이 어질고 성스러운 성품으로 예사 털과 평범한 깃에 숨어 뿔 하나와 다섯 빛깔로 드러냄이 없으면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함이 옥이 돌 가운데 있음과 같다. 무엇으로 살피는가. 이 논은 영평 초에 초를 잡았는데 때로 상서가 있었고 그 효명이 은혜를 펴서 뭇 상서가 아울러 이르렀다. 원화·장화의 즈음에 이르러 효장이 덕을 빛내어 천하가 화합하니 아름다운 상서와 기이한 물건이 같은 때에 함께 응하여 봉황과 기린이 잇달아 나와 거듭 보임이 오제 때보다 성하였다. 이 편이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실을 수 없었다.

或問曰:「《講瑞》謂鳳皇、騏難知,世瑞不能別。今孝章之所致鳳皇、騏,不可得知乎?」

어떤 이가 묻는다. 「「강서」는 봉황과 기린을 알기 어려워 세상의 상서를 가릴 수 없다 하였다. 이제 효장이 이르게 한 봉황과 기린을 알 수 없는가?」

曰:五鳥之記,四方中央,皆有大鳥,其出,眾鳥皆從,小大毛色類鳳皇,實難知也。故夫世瑞不能別,別之如何?以政治。時王之德,不及唐、虞之時,其鳳皇、騏,目不親見。然而唐、虞之瑞必真是者,堯之德明也。孝宣比堯、舜,天下太平,萬里慕化,仁道施行,鳥獸仁者感動而來,瑞物小大、毛色、足翼,必不同類。以政治之得失,主之明暗,准況眾瑞,無非真者。事或難知而易曉,其此之謂也?又以甘露驗之:甘露,和氣所生也,露無故而甘,和氣獨已至矣。和氣至,甘露降,德洽而眾瑞湊。案永平以來,訖於章和,甘露常降,故知眾瑞皆是,而鳳凰、騏皆真也。

답한다. 다섯 새의 기록에 사방과 중앙에 다 큰 새가 있어 그것이 나오면 뭇 새가 다 따르고 크고 작음과 털 빛깔이 봉황과 비슷하니 실로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릇 세상의 상서를 가릴 수 없으니 가리기를 어떻게 하는가. 정치로 한다. 당시 왕의 덕이 당·우 때에 미치지 못하여 그 봉황과 기린을 눈으로 몸소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당·우의 상서가 반드시 참으로 옳음은 요의 덕이 밝기 때문이다. 효선은 요·순에 견주어 천하가 태평하고 만 리가 교화를 사모하고 어진 도가 베풀어져 행해지니 새와 짐승의 어진 것이 감동하여 오는데 상서로운 물건의 크고 작음과 털 빛깔과 발과 날개가 반드시 같은 무리는 아니다. 정치의 잘잘못과 임금의 밝고 어두움으로 뭇 상서를 견주어 헤아리면 참이 아닌 것이 없다. 일이 혹 알기 어려우나 깨닫기 쉽다는 것이 이를 이르는 것인가. 또 감로로 증험하면 감로는 화한 기운이 낳는 것이니 이슬이 까닭 없이 달면 화한 기운이 홀로 이미 이른 것이다. 화한 기운이 이르면 감로가 내리고 덕이 두루 하면 뭇 상서가 모인다. 살피건대 영평 이래로 장화에 이르기까지 감로가 늘 내렸으므로 뭇 상서가 다 옳고 봉황과 기린이 다 참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