指瑞篇
儒者說鳳皇、騏為聖王來,以為鳳皇、騏仁聖禽也,思慮深,避害遠,中國有道則來,無道則隱。稱鳳皇、騏之仁知者,欲以褒聖人也,非聖人之德不能致鳳皇、騏。此言妄也。夫鳳皇、騏聖,聖人亦聖。聖人
유자는 봉황과 기린이 성왕을 위해 온다 말하니 봉황과 기린은 어질고 성스러운 새라 생각이 깊고 해를 피함이 멀어 중국에 도가 있으면 오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여긴다. 봉황과 기린의 어질고 슬기로움을 일컬음은 성인을 기리려는 것이니 성인의 덕이 아니면 봉황과 기린을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망령되다. 무릇 봉황과 기린이 성스럽고 성인도 성스럽다. 성인이
憂世,鳳皇、騏亦宜率教;聖人游於世間,鳳皇、騏亦宜與鳥獸會。何故遠去中國,處於邊外,豈聖人濁,鳳皇、騏清哉?何其聖德俱而操不同也!如以聖人者當隱乎,十二聖宜隱;如以聖者當見,鳳、亦宜見。如以仁聖之禽,思慮深,避害遠,則文王拘於里,孔子厄於陳、蔡,非也。文王、孔子,仁聖之人,憂世憫民,不圖利害,故其有仁聖之知,遭拘厄之患。凡人操行能修身正節,不能禁人加非於己。
세상을 근심하니 봉황과 기린도 마땅히 가르침을 거느려야 하고, 성인이 세상 사이에 노니니 봉황과 기린도 마땅히 새와 짐승과 모여야 한다. 무슨 까닭으로 중국을 멀리 떠나 변방 밖에 처하는가. 어찌 성인은 흐리고 봉황과 기린은 맑은가. 어찌 그리 성스러운 덕은 같으면서 몸가짐은 같지 않은가! 성인은 마땅히 숨어야 한다면 열두 성인이 마땅히 숨어야 하고, 성인은 마땅히 나타나야 한다면 봉과 기린도 마땅히 나타나야 한다. 어질고 성스러운 새로 생각이 깊고 해를 피함이 멀다 하면 문왕이 유리에 갇히고 공자가 진·채에서 곤액함이 그르다. 문왕과 공자는 어질고 성스러운 사람으로 세상을 근심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겨 이해를 꾀하지 않았으므로 어질고 성스러운 앎이 있으면서 갇히고 곤액한 근심을 만났다. 무릇 사람의 몸가짐이 몸을 닦고 절개를 바르게 할 수 있으나 남이 제게 그름을 더함을 금할 수 없다.
案人操行莫能過聖人,聖人不能自免於厄,而鳳、獨能自全於世,是鳥獸之操,賢於聖人也。且鳥獸之知,不與人通,何以能知國有道與無道也?人同性類,好惡均等,尚不相知;鳥獸與人異性,何能知之?人不能知鳥獸,鳥獸亦不能知人,兩不能相知;鳥獸為愚於人,何以反能知之?儒者咸稱鳳皇之德,欲以表明王之治,反令人有不及鳥獸,論事過情,使實不著。
살피건대 사람의 몸가짐이 성인을 넘을 수 있는 이가 없는데 성인이 곤액에서 스스로 면할 수 없고 봉과 기린만 홀로 세상에서 스스로 온전할 수 있다면 이는 새와 짐승의 몸가짐이 성인보다 어진 것이다. 또 새와 짐승의 앎은 사람과 통하지 않는데 무엇으로 나라에 도가 있고 도가 없음을 알 수 있는가. 사람은 성품과 무리가 같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고르게 같아도 오히려 서로 알지 못한다. 새와 짐승은 사람과 성품이 다른데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이 새와 짐승을 알 수 없고 새와 짐승도 사람을 알 수 없어 둘이 서로 알 수 없다. 새와 짐승은 사람보다 어리석은데 어찌 도리어 알 수 있는가. 유자가 다 봉황의 덕을 일컬어 밝은 왕의 다스림을 드러내려 하다가 도리어 사람이 새와 짐승에 미치지 못함이 있게 하니 일을 논함이 정을 지나쳐 실상이 드러나지 않게 한다.
且鳳、豈獨為聖王至哉!孝宣皇帝之時,鳳皇五至,騏一至,神雀、黃龍,甘露、醴泉,莫不畢見,故有五鳳、神雀、甘露、黃龍之紀。
또 봉과 기린이 어찌 홀로 성왕을 위해 이르겠는가! 효선황제 때 봉황이 다섯 번 이르고 기린이 한 번 이르고 신작·황룡·감로·예천이 다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오봉·신작·감로·황룡의 연호가 있다.
使鳳、審為聖王見,則孝宣皇帝聖人也;如孝宣帝非聖,則鳳、為賢來也。為賢來,則儒者稱鳳皇、騏,失其實也。鳳皇、騏為堯、舜來,亦為宣帝來矣。夫如是,為聖且賢也。
봉과 기린이 참으로 성왕을 위해 나타난다면 효선황제는 성인이요, 효선제가 성인이 아니라면 봉과 기린은 어진 이를 위해 온 것이다. 어진 이를 위해 온다면 유자가 봉황과 기린을 일컬음이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봉황과 기린이 요·순을 위해 왔고 또한 선제를 위해 왔다. 무릇 이러하면 성인을 위하고 또 어진 이를 위한 것이다.
儒者說聖太隆,則論鳳、亦過其實。《春秋》曰:「西狩獲死。」人以示孔子,孔子曰:「孰為來哉?孰為來哉?」
유자가 성인을 말함이 너무 높으니 봉과 기린을 논함도 그 실상을 지나친다. 「춘추」에 「서쪽으로 사냥하다가 죽은 기린을 얻었다」 하였다. 사람이 공자에게 보이니 공자가 말하였다. 「누구를 위해 왔는가? 누구를 위해 왔는가?」
反袂拭面,泣涕沾襟。儒者說之,以為天以命孔子,孔子不王之聖也。夫為聖王來,孔子自以不王,而時王魯君無感之德,怪其來而不知所為,故曰:「孰為來哉?孰為來哉?」
소매를 뒤집어 얼굴을 닦고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유자가 이를 말하기를 하늘이 공자에게 명한 것이니 공자는 왕이 되지 못한 성인이라 여긴다. 무릇 성왕을 위해 왔는데 공자가 스스로 왕이 아니라 여기고 당시 왕인 노나라 임금은 느끼게 할 덕이 없으므로 그 옴을 괴이하게 여기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하였으므로 「누구를 위해 왔는가? 누구를 위해 왔는가?」 하였다.
知其不為治平而至,為己道窮而來,望絕心感,故涕泣沾襟。以孔子言「孰為來哉」,知為聖王來也。曰:前孔子之時,世儒已傳此說,孔子聞此說而希見其物也,見之至,怪所為來。實者至,無所為來,常有之物也,行邁魯澤之中,而魯國見其物遭獲之也。孔子見之獲,獲而又死,則自比於,自謂道絕不復行,將為小人所蹊獲也。故孔子見而自泣者,據其見得而死也,非據其本所為來也。然則之至也,自與獸會聚也。其死,人殺之也。使有知,為聖王來,時無聖主,何為來乎?思慮深,避害遠,何故為魯所獲殺乎?夫以時無聖王而至,知不為聖王來也;為魯所獲殺,知其避害不能遠也。聖獸不能自免於難。聖人亦不能自免於禍。禍難之事,聖者所不能避,而云鳳、思慮深,避害遠,妄也。
그것이 다스림이 평안하여 이른 것이 아니라 제 도가 궁하여 온 것임을 알고 바람이 끊겨 마음이 느꼈으므로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공자가 「누구를 위해 왔는가」 말한 것으로 성왕을 위해 옴을 안다는 것이다. 답한다. 공자 앞 때에 세상 유자가 이미 이 설을 전하였고 공자가 이 설을 듣고 그 물건을 드물게 보았는데 기린이 이른 것을 보고 무엇을 위해 왔는지 괴이하게 여긴 것이다. 실상은 기린이 이름에 무엇을 위해 온 것이 없으니 늘 있는 물건이라 노나라 못 가운데를 다니다가 노나라가 그 물건을 보고 만나 잡은 것이다. 공자가 기린이 잡히고 잡혀 또 죽은 것을 보고 스스로 기린에 견주어 스스로 도가 끊어져 다시 행해지지 않고 장차 소인에게 밟히고 잡힐 것이라 여겼다. 그러므로 공자가 기린을 보고 스스로 운 것은 그 보아 잡혀 죽음에 근거한 것이지 그 본디 무엇을 위해 왔는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기린의 이름은 절로 짐승과 모임이다. 그 죽음은 사람이 죽인 것이다. 기린에게 앎이 있어 성왕을 위해 온다면 때에 성스러운 임금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왔는가. 생각이 깊고 해를 피함이 멀다면 무슨 까닭으로 노나라에 잡혀 죽었는가. 무릇 때에 성왕이 없는데 이른 것으로 성왕을 위해 온 것이 아님을 알고, 노나라에 잡혀 죽은 것으로 그 해를 피함이 멀 수 없음을 안다. 성스러운 짐승도 어려움에서 스스로 면할 수 없다. 성인도 화에서 스스로 면할 수 없다. 화와 어려움의 일은 성스러운 이가 피할 수 없는 바인데 봉과 기린이 생각이 깊고 해를 피함이 멀다 하니 망령되다.
且鳳、非生外國也,中國有聖王乃來至也。生於中國,長於山林之間,性廉見希,人不得害也,則謂之思慮深,避害遠矣。生與聖王同時,行與治平相遇,世間謂之聖王之瑞,為聖來矣。剝巢破卵,鳳皇為之不翔;焚林而畋,漉池而漁,龜、龍為之不游。鳳皇,龜、龍之類也,皆生中國,與人相近。巢剝卵破,屏竄不翔,林焚池漉,伏匿不游,無遠去之文,何以知其在外國也!龜、龍、鳳皇,同一類也。希見不害,謂在外國;龜、龍希見,亦在外國矣。
또 봉과 기린은 외국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 중국에 성왕이 있으면 곧 와서 이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나서 산림 사이에서 자라 성품이 청렴하고 보임이 드물어 사람이 해칠 수 없으면 생각이 깊고 해를 피함이 멀다 한다. 남이 성왕과 같은 때이고 다님이 다스림이 평안함과 서로 만나면 세상이 성왕의 상서라 하여 성인을 위해 왔다 한다. 둥지를 벗기고 알을 깨뜨리면 봉황이 그 때문에 날지 않고 숲을 태워 사냥하고 못을 말려 고기 잡으면 거북과 용이 그 때문에 노닐지 않는다. 봉황은 거북과 용의 무리라 다 중국에서 나서 사람과 서로 가깝다. 둥지가 벗겨지고 알이 깨지면 물러나 숨어 날지 않고 숲이 타고 못이 마르면 엎드려 숨어 노닐지 않으니 멀리 떠난다는 글이 없는데 무엇으로 그것이 외국에 있음을 아는가! 거북과 용과 봉황은 같은 한 무리다. 드물게 보이고 해치지 않음을 외국에 있다 하면 거북과 용도 드물게 보이니 또한 외국에 있는 것이다.
孝宣皇帝之時,鳳皇、騏、黃龍、神雀皆至,其至同時,則其性行相似類,則其生出宜同處矣。龍不生於外國,外國亦有龍。鳳、不生外國,外國亦有鳳、。然則中國亦有,未必外國之鳳、也。人見鳳、希見,則曰在外國;見遇太平,則曰為聖王來。夫鳳皇、騏之至也,猶醴泉之出、朱草之生也。謂鳳皇在外國,聞有道而來,醴泉、朱草何知,而生於太平之時?醴泉、朱草,和氣所生,然則鳳皇、騏,亦和氣所生也。和氣生聖人,聖人生於衰世。物生為瑞,人生為聖,同時俱然,時其長大,相逢遇矣。衰世亦有和氣,和氣時生聖人。聖人生於衰世,衰世亦時有鳳、也。孔子生於周之末世,騏見於魯之西澤。光武皇帝生於成、哀之際,鳳皇集於濟陽之地。聖人聖物,生於(盛)衰世。聖王遭見聖物,猶吉命之人逢吉祥之類也,其實相遇,非相為出也。
효선황제 때 봉황·기린·황룡·신작이 다 이르렀는데 그 이름이 같은 때니 그 성품과 행실이 서로 비슷한 무리라 그 나서 나옴이 마땅히 같은 곳일 것이다. 용은 외국에서 나지 않으나 외국에도 용이 있다. 봉과 기린이 외국에서 나지 않으나 외국에도 봉과 기린이 있다. 그러니 중국에도 있으니 반드시 외국의 봉과 기린은 아니다. 사람이 봉과 기린이 드물게 보임을 보고 외국에 있다 하고 태평을 만남을 보고 성왕을 위해 온다 한다. 무릇 봉황과 기린의 이름은 예천이 나오고 주초가 남과 같다. 봉황이 외국에 있어 도가 있음을 듣고 온다 하면 예천과 주초는 무엇을 알아 태평한 때에 나는가. 예천과 주초는 화한 기운이 낳는 것이니 그러면 봉황과 기린도 화한 기운이 낳는 것이다. 화한 기운이 성인을 낳고 성인은 쇠한 세상에 난다. 물건이 나면 상서가 되고 사람이 나면 성인이 되니 같은 때에 함께 그러하여 때로 그 자라남에 서로 만난다. 쇠한 세상에도 화한 기운이 있고 화한 기운이 때로 성인을 낳는다. 성인이 쇠한 세상에 나니 쇠한 세상에도 때로 봉과 기린이 있다. 공자가 주나라 말세에 나니 기린이 노나라 서쪽 못에 나타났다. 광무황제가 성제·애제의 즈음에 나니 봉황이 제양 땅에 모였다. 성인과 성스러운 물건이 쇠한 세상에 난다. 성왕이 성스러운 물건을 만나 봄은 길한 명의 사람이 길상의 무리를 만남과 같으니 그 실은 서로 만난 것이지 서로를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夫鳳、之來,與白魚、赤烏之至,無以異也。魚遭自躍,王舟逢之;火偶為烏,王仰見之。非魚聞武王之德而入其舟,烏知周家當起集於王屋也。謂鳳、為聖王來,是謂魚、烏為武王至也。王者受富貴之命,故其動出見吉祥異物,見則謂之瑞。瑞有小大,各以所見,定德薄厚。若夫白魚、赤烏小物,小安之兆也;鳳皇、騏大物,太平之象也。故孔子曰:「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
무릇 봉과 기린의 옴은 흰 물고기와 붉은 까마귀의 이름과 다를 것이 없다. 물고기가 절로 뛰어 왕의 배가 그것을 만났고 불이 우연히 까마귀가 되어 왕이 우러러보았다. 물고기가 무왕의 덕을 듣고 그 배에 든 것이 아니요 까마귀가 주나라 집안이 마땅히 일어날 줄 알고 왕의 지붕에 모인 것이 아니다. 봉과 기린이 성왕을 위해 온다 함은 물고기와 까마귀가 무왕을 위해 이르렀다 함이다. 왕자는 부귀의 명을 받으므로 그 움직여 나감에 길상의 다른 물건을 보고 보면 상서라 한다. 상서에 크고 작음이 있어 저마다 본 바로 덕의 얇고 두터움을 정한다. 저 흰 물고기와 붉은 까마귀는 작은 물건이라 작은 편안함의 조짐이요 봉황과 기린은 큰 물건이라 태평의 상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였다. 「봉새가 이르지 않고 하수가 그림을 내지 않으니 나는 끝났도다!」
不見太平之象,自知不遇太平之時矣。且鳳皇、騏,何以為太平之象?鳳皇、騏,仁聖之禽也,仁聖之物至,天下將為仁聖之行矣。《尚書大傳》曰:「高宗祭成湯之廟,有雉升鼎耳而鳴。高宗問祖乙,祖乙曰:『遠方君子殆有至者。』祖乙見雉有似君子之行,今從外來,則曰遠方君子將有至者矣。」
태평의 상을 보지 못하니 스스로 태평의 때를 만나지 못함을 안 것이다. 또 봉황과 기린은 무엇으로 태평의 상이 되는가. 봉황과 기린은 어질고 성스러운 새라 어질고 성스러운 물건이 이르면 천하가 장차 어질고 성스러운 행실을 하리라는 것이다. 「상서대전」에 이르기를 「고종이 성탕의 사당에 제사하는데 꿩이 있어 솥 귀에 올라 울었다. 고종이 조을에게 물으니 조을이 말하였다. 『먼 곳의 군자가 아마 이를 이가 있을 것입니다.』 조을은 꿩에 군자의 행실과 비슷함이 있음을 보고 이제 밖에서 왔으니 먼 곳의 군자가 장차 이를 이가 있을 것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夫鳳皇、騏猶雉也,其來之象,亦與雉同。孝武皇帝西巡狩,得白一角而五趾,又有木枝出復合於本。武帝議問群臣,謁者終軍曰:「野禽并角,明同本也;眾枝內附,示無外也。如此瑞者,外國宜有降者,(是)若〔是〕應,殆且有解編發、削左衽、襲冠帶而蒙化焉。」其後數月,越地有降者,匈奴名王亦將數千人來降,竟如終軍之言。終軍之言,得瑞應之實矣。推此以況白魚、赤烏,猶此類也。魚,(木)〔水〕精;白者,殷之色也;烏者,孝鳥;赤者,周之應氣也。先得白魚,後得赤烏,殷之統絕,色移在周矣。據魚、烏之見以占武王,則知周之必得天下也。
무릇 봉황과 기린은 꿩과 같으니 그 옴의 상도 꿩과 같다. 효무황제가 서쪽으로 순수하다가 흰 기린을 얻었는데 뿔이 하나에 발가락이 다섯이요 또 나무 가지가 나와 다시 밑동에 합하였다. 무제가 의논하여 뭇 신하에게 물으니 알자 종군이 말하였다. 「들의 새가 뿔을 아울렀으니 근본을 같이함을 밝힘이요 뭇 가지가 안으로 붙었으니 밖이 없음을 보임입니다. 이 같은 상서는 외국에 마땅히 항복하는 이가 있을 것이니 이 응함이라면 아마 장차 땋은 머리를 풀고 왼쪽 옷섶을 깎고 관과 띠를 입어 교화를 입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 뒤 몇 달에 월 땅에 항복하는 이가 있었고 흉노의 이름난 왕도 수천 사람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니 마침내 종군의 말과 같았다. 종군의 말은 상서로운 응함의 실상을 얻었다. 이를 미루어 흰 물고기와 붉은 까마귀를 헤아리면 이 무리와 같다. 물고기는 물의 정기요 흰 것은 은나라의 빛깔이며 까마귀는 효도하는 새요 붉은 것은 주나라의 응하는 기운이다. 먼저 흰 물고기를 얻고 뒤에 붉은 까마귀를 얻었으니 은나라의 계통이 끊기고 빛깔이 옮겨 주나라에 있는 것이다. 물고기와 까마귀의 보임에 근거하여 무왕을 점치면 주나라가 반드시 천하를 얻을 것을 안다.
世見武王誅紂,出遇魚、烏,則謂天用魚、烏命使武王誅紂,事相似類,其實非也。春秋之時,鵒來巢,占者以為凶。夫野鳥來巢,魯國之都且為丘墟,昭公之身,且出奔也。
세상은 무왕이 주를 베려 나가다가 물고기와 까마귀를 만남을 보고 하늘이 물고기와 까마귀를 써서 무왕에게 명하여 주를 베게 하였다 하니 일이 서로 비슷한 무리이나 그 실은 아니다. 춘추 때 구욕새가 와서 둥지를 트니 점치는 이가 흉하다 여겼다. 무릇 들새가 와서 둥지를 틀면 노나라의 도읍이 장차 폐허가 되고 소공의 몸이 장차 달아날 것이라는 것이다.
後昭公為季氏所攻,出奔於齊,死不歸魯。賈誼為長沙太傅,服鳥集舍,發書占之,云服鳥入室,主人當去。其後賈誼竟去。野鳥雖殊,其占不異。夫鳳、之來,與野鳥之巢、服鳥之集,無以異也。是鵒之巢,服鳥之集,偶巢適集,占者因其野澤之物,巢集城宮之內,則見魯國且凶,傳(舍)〔主〕人不吉之瑞矣。非鵒、服鳥知二國禍將至而故為之巢集也。王者以天下為家,家人將有吉凶之事,而吉凶之兆豫見於人,知者占之,則知吉凶將至。非吉凶之物有知,故為吉凶之人來也,猶蓍龜之有兆數矣。龜兆蓍數,常有吉凶,吉人卜筮與吉相遇,凶人與凶相逢,非蓍龜神靈知人吉凶,出兆見數以告之也。虛居卜筮,前無過客,猶得吉凶。然則天地之間,常有吉凶,吉凶之物來至,自當與吉凶之人相逢遇矣。或言天使之所為也,夫巨大之天,使細小之物,音語不通,情指不達,何能使物!物亦不為天使,其來神怪,若天使之,則謂天使矣。
뒤에 소공이 계씨에게 공격받아 제나라로 달아나 죽어 노나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가의가 장사 태부가 되었는데 붕새가 집에 모이자 책을 펴 점치니 붕새가 방에 들면 주인이 마땅히 떠난다 하였다. 그 뒤 가의가 마침내 떠났다. 들새가 비록 다르나 그 점은 다르지 않다. 무릇 봉과 기린의 옴은 들새가 둥지 틀고 붕새가 모임과 다를 것이 없다. 이는 구욕새의 둥지와 붕새의 모임이 우연히 둥지 틀고 마침 모인 것인데 점치는 이가 그 들과 못의 물건이 성과 궁 안에 둥지 틀고 모임으로 인하여 노나라가 장차 흉하고 전사의 주인이 길하지 않을 조짐을 본 것이다. 구욕새와 붕새가 두 나라의 화가 장차 이를 것을 알고 일부러 둥지 틀고 모인 것이 아니다. 왕자는 천하를 집으로 삼으니 집안사람에게 장차 길흉의 일이 있으려 하면 길흉의 조짐이 미리 사람에게 보이고 아는 이가 점치면 길흉이 장차 이를 것을 안다. 길흉의 물건에 앎이 있어 일부러 길흉의 사람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니 시초와 거북에 조짐과 수가 있음과 같다. 거북의 조짐과 시초의 수에 늘 길흉이 있으니 길한 사람이 점치면 길함과 서로 만나고 흉한 사람은 흉함과 서로 만나니 시초와 거북이 신령하여 사람의 길흉을 알아 조짐을 내고 수를 보여 알리는 것이 아니다. 빈 데서 점쳐 앞에 지나는 손이 없어도 오히려 길흉을 얻는다. 그러니 하늘과 땅 사이에 늘 길흉이 있으니 길흉의 물건이 와서 이름은 절로 마땅히 길흉의 사람과 서로 만난다. 혹 하늘이 시켜 하는 바라 말하나 무릇 거대한 하늘이 가늘고 작은 물건을 시킴에 소리와 말이 통하지 않고 정과 가리킴이 통하지 않으니 어찌 물건을 시킬 수 있겠는가! 물건도 하늘의 시킴이 되지 않으나 그 옴이 신령하고 괴이하여 하늘이 시킨 것 같으면 하늘이 시켰다 한다.
夏後孔甲畋於首山,天雨晦冥,入於民家,主人方乳。或曰:「後來之子必大貴。」或曰:「不勝之子必有殃。」
하후 공갑이 수산에서 사냥하는데 하늘이 비 와서 어두워 백성의 집에 들어가니 주인이 바야흐로 아이를 낳았다. 어떤 이는 「임금이 온 아이니 반드시 크게 귀할 것이다」 하고 어떤 이는 「이기지 못하는 아이니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夫孔甲之入民室也,偶遭雨而蔭庇也,非知民家將生子,而其子必〔吉〕凶,為之至也;既至,人占則有吉凶矣。夫吉凶之物見於王朝,若入民家,猶孔甲遭雨入民室也。孔甲不知其將生子為之故到。謂鳳皇諸瑞有知,應吉而至,誤矣。
무릇 공갑이 백성의 집에 든 것은 우연히 비를 만나 그늘에 가린 것이지 백성의 집이 장차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반드시 길흉할 줄 알고 그 때문에 이른 것이 아니다. 이미 이르니 사람이 점쳐 곧 길흉이 있었다. 무릇 길흉의 물건이 왕의 조정에 보이거나 백성의 집에 듦은 공갑이 비를 만나 백성의 집에 든 것과 같다. 공갑은 그가 장차 아이를 낳을 것을 알고 그 때문에 이른 것이 아니다. 봉황과 여러 상서에 앎이 있어 길함에 응하여 이른다 함은 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