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논형 › 치기편

治期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5 · 한자 1,805자 · 낭독 7.2분

「논형」 치기편 「治期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世謂古人君賢則道德施行,施行則功成治安;人君不肖則道德頓廢,頓廢則功敗治亂。古今論者,莫謂不然。何則?見堯、舜賢聖致太平,桀、紂無道,致亂得誅。如實論之,命期自然,非德化也。

세상은 옛 임금이 어질면 도덕이 베풀어져 행해지고 베풀어져 행해지면 공이 이루어져 다스림이 편안하며, 임금이 못나면 도덕이 갑자기 폐하고 갑자기 폐하면 공이 패하여 다스림이 어지럽다 한다. 고금의 논하는 이가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어째서인가. 요·순이 어질고 성스러워 태평을 이르게 하고 걸·주가 도가 없어 어지러움을 이르게 하고 베임을 얻음을 보아서다. 실상으로 논하면 명과 기한이 절로 그러한 것이지 덕의 교화가 아니다.

吏百石以(上)〔下〕,若(升)〔斗〕食以(下)〔上〕,居位治民,為政布教,教行與止,民治與亂,皆有命焉。或才高行潔,居位職廢;或智淺操,治民而立。上古黜陟幽明,考功,據有功而加賞,案無功而施罰。是考命而長祿,非實才而厚能也。論者因考功之法,據效而定賢,則謂民治國安者,賢君之所致;民亂國危者,無道之所為也。故危亂之變至,論者以責人君,歸罪於為政不得其道。人君受以自責,愁神苦思,撼動形體,而危亂之變終不減除。空憤人君人心,使明知之主,虛受之責,世論傳稱,使之然也。

녹이 백 석에서 말곡식 받는 데까지 이르는 아전으로 자리에 있어 백성을 다스리고 정사를 하여 가르침을 펴는 이는 가르침이 행해지고 그침과 백성이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에 다 명이 있다. 혹 재주가 높고 행실이 깨끗하여도 자리에 있으며 직책이 폐하고 혹 앎이 얕고 지조가 더러워도 백성을 다스려 세운다. 상고에 어둡고 밝은 이를 내치고 올림에 공을 살펴 공 있음에 근거하여 상을 더하고 공 없음을 살펴 벌을 베풀었다. 이는 명을 살펴 녹을 자라게 함이지 실다운 재주로 능함을 두텁게 함이 아니다. 논하는 이가 공을 살피는 법으로 인하여 효험에 근거하여 어짊을 정하니 곧 백성이 다스려지고 나라가 편안함은 어진 임금이 이르게 한 것이요 백성이 어지럽고 나라가 위태로움은 도 없음이 한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위태롭고 어지러운 변고가 이르면 논하는 이가 임금을 책하여 정사를 함에 그 도를 얻지 못하였다고 죄를 돌린다. 임금이 받아 스스로 책하여 정신을 근심하고 생각을 괴롭혀 몸을 흔들어도 위태롭고 어지러운 변고가 끝내 덜어 없어지지 않는다. 헛되이 임금의 마음을 괴롭혀 밝게 아는 임금으로 헛된 책망을 받게 함은 세상 의논이 전하여 일컬어 그렇게 한 것이다.

夫賢君能治當安之民,不能化當亂之世。良醫能行其針葯,使方術驗者,遇未死之人,得未死之病也;如命窮病困,則雖扁鵲,末如之何。夫命窮病困不可治,猶夫亂民之不可安也。葯氣之愈病,猶教導之安民也,皆有命時,不可令勉力也。公伯寮訴子路於季孫,子服景伯以告孔子。孔子曰:「道之將行也與,命也!道之將廢也與,命也!」

무릇 어진 임금은 마땅히 편안할 백성을 다스릴 수 있으나 마땅히 어지러울 세상을 교화할 수 없다. 좋은 의원이 그 침과 약을 행하여 방술이 증험되게 함은 아직 죽지 않을 사람을 만나 아직 죽지 않을 병을 얻음이니 명이 궁하고 병이 곤하면 비록 편작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 무릇 명이 궁하고 병이 곤하여 고칠 수 없음은 어지러운 백성을 편안히 할 수 없음과 같다. 약 기운이 병을 낫게 함은 가르침과 이끎이 백성을 편안히 함과 같으니 다 명과 때가 있어 힘써 하게 할 수 없다. 공백료가 자로를 계손에게 헐뜯으니 자복경백이 공자에게 알렸다. 공자가 말하였다. 「도가 장차 행해짐도 명이요 도가 장차 폐함도 명이다!」

由此言之,教之行廢,國之安危,皆在命時,非人力也。

이로써 말하면 가르침의 행해지고 폐함과 나라의 편안하고 위태함이 다 명과 때에 있지 사람의 힘이 아니다.

夫世亂民逆,國之危殆災害,繫於上天,賢君之德,不能消卻。《詩》道周宣王遭大旱矣。《詩》曰:「周餘黎民,靡有孑遺。」

무릇 세상이 어지럽고 백성이 거스르며 나라가 위태롭고 재해가 있음은 위 하늘에 매여 어진 임금의 덕이 없앨 수 없다. 「시」에 주 선왕이 큰 가뭄을 만남을 말하였다. 「시」에 이르기를 「주나라의 남은 백성 한 사람도 남음이 없네」 하였다.

言無有可遺一人不被害者。宣王賢者,嫌於德微。仁惠盛者,莫過堯、湯,堯遭洪水,湯遭大旱。水旱,災害之甚者也,而二聖逢之,豈二聖政之所致哉?天地歷數當然也。

한 사람도 해를 입지 않아 남길 만한 이가 없음을 말함이다. 선왕은 어진 이라 덕이 적다는 혐의가 없다. 어질고 은혜로움이 성한 이는 요·탕보다 나은 이가 없는데 요는 홍수를 만나고 탕은 큰 가뭄을 만났다. 물과 가뭄은 재해의 심한 것인데 두 성인이 만났으니 어찌 두 성인의 정사가 이르게 한 것이겠는가. 하늘과 땅의 역수가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以堯、湯之水旱,准百王之災害,非德所致,非德所致,則其福佑非德所為也。

요·탕의 물과 가뭄으로 온 왕의 재해를 헤아리면 덕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요, 덕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면 그 복과 도움도 덕이 한 것이 아니다.

賢君之治國也,猶慈父之治家。慈父耐平教明令,耐使子孫皆為孝善。

어진 임금이 나라를 다스림은 자애로운 아비가 집을 다스림과 같다. 자애로운 아비는 고르게 가르치고 밝게 명령할 수 있고 자손이 다 효도하고 착하게 할 수 있다.

子孫孝善,是家興也;百姓平安,是國昌也。昌必有衰,興必有廢。興昌非德所能成,然則衰廢非德所能敗也。昌衰興廢,皆天時也。此善惡之實,未言苦樂之效也。家安人樂,富饒財用足也。案富饒者命厚所致,非賢惠所獲也。人皆知富饒居安樂者命祿厚,而不知國安治化行者歷數吉也。故世治非賢聖之功,衰亂非無道之致。國當衰亂,賢聖不能盛;時當治,惡人不能亂。世之治亂,在時不在政;國之安危,在數不在教。賢不賢之君,明不明之政,無能損益。

자손이 효도하고 착하면 이는 집이 일어남이요 백성이 평안하면 이는 나라가 창성함이다. 창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일어나면 반드시 폐함이 있다. 일어나고 창성함이 덕이 이룰 수 있는 바가 아니니 그러면 쇠하고 폐함도 덕이 패하게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창성하고 쇠하고 일어나고 폐함이 다 하늘의 때다. 이는 착하고 악함의 실상이요 아직 괴롭고 즐거움의 효험을 말하지 않았다. 집이 편안하고 사람이 즐거움은 부유하여 재물과 쓰임이 넉넉함이다. 살피건대 부유함은 명이 두터워 이르게 한 것이지 어질고 은혜로워 얻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다 부유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이는 명과 녹이 두터움을 알면서 나라가 편안하고 다스림과 교화가 행해짐은 역수가 길함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이 다스려짐은 어질고 성스러운 공이 아니요 쇠하고 어지러움은 도 없음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나라가 마땅히 쇠하고 어지러울 때는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성하게 할 수 없고 때가 마땅히 다스려질 때는 악한 사람이 어지럽힐 수 없다. 세상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은 때에 있지 정사에 있지 않고 나라의 편안하고 위태함은 수에 있지 가르침에 있지 않다. 어질고 어질지 않은 임금과 밝고 밝지 않은 정사가 덜고 더할 수 없다.

世稱五帝之時,天下太平,家有十年之蓄,人有君子之行。或時不然,世增其美,亦或時政致。何以審之?夫世之所以為亂者,不以賊盜眾多,兵革并起,民棄禮義,負畔其上乎?若此者,由谷食乏絕,不能忍飢寒。夫飢寒并至而能無為非者寡,然則溫飽并至而能不為善者希。傳曰:「倉稟實,民知禮節;衣食足,民知榮辱。」

세상은 오제 때 천하가 태평하여 집에 열 해 쌓임이 있고 사람에 군자의 행실이 있었다 일컫는다. 혹 때로 그렇지 않고 세상이 그 아름다움을 더한 것이요 또한 혹 때로 정사가 이르게 한 것이다. 무엇으로 살피는가. 무릇 세상이 어지럽다 하는 까닭은 도적이 많고 병란이 아울러 일어나며 백성이 예의를 버리고 그 윗사람을 등지고 배반함 때문이 아닌가. 이 같은 것은 곡식이 모자라 끊겨 주림과 추위를 참을 수 없음으로 말미암는다. 무릇 주림과 추위가 아울러 이르러 그른 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는 적으니 그러면 따뜻하고 배부름이 아울러 이르러 착함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전에 이르기를 「창고가 차면 백성이 예절을 알고 옷과 먹을 것이 넉넉하면 백성이 영화와 욕됨을 안다」 하였다.

讓生於有餘,爭起於不足。谷足食多,禮義之心生;禮丰義重,平安之基立矣。故飢歲之春,不食親戚,穰歲之秋,召及四鄰。不食親戚,惡行也;召及四鄰,善義也。為善惡之行,不在人質性,在於歲之飢穰。由此言之,禮義之行,在谷足也。案谷成敗,自有年歲。年歲水旱,五谷不成,非政所致,時數然也。必謂水旱政治所致,不能為政者莫過桀、紂,桀、紂之時,宜常水旱。案桀、紂之時,無飢耗之災。災至自有數,或時返在聖君之世。實事者說堯之洪水,湯之大旱,皆有遭遇,非政惡之所致。說百王之害,獨謂為惡之應,此見堯、湯德優,百王劣也。審一足以見百,明惡足以照善。堯、湯証百王,至百王遭變,非政所致,以變見而明禍福。五帝致太平,非德所就明矣。

사양은 남음이 있음에서 나고 다툼은 모자람에서 일어난다. 곡식이 넉넉하고 먹을 것이 많으면 예의의 마음이 나고 예가 넉넉하고 의가 무거우면 평안의 터가 선다. 그러므로 흉년의 봄에는 친척을 먹이지 않고 풍년의 가을에는 사방 이웃까지 부른다. 친척을 먹이지 않음은 악한 행실이요 사방 이웃까지 부름은 착한 의다. 착하고 악한 행실을 함은 사람의 바탕 성품에 있지 않고 해의 흉년과 풍년에 있다. 이로써 말하면 예의의 행해짐은 곡식이 넉넉함에 있다. 살피건대 곡식의 이루어지고 패함은 절로 해가 있다. 해에 물과 가뭄이 있어 오곡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정사가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때와 수가 그러한 것이다. 반드시 물과 가뭄이 정치가 이르게 한 것이라 하면 정사를 못하는 이는 걸·주보다 나은 이가 없으니 걸·주 때 마땅히 늘 물과 가뭄이 있어야 한다. 살피건대 걸·주 때 주리고 축나는 재앙이 없었다. 재앙이 이름에 절로 수가 있어 혹 때로 도리어 성스러운 임금의 세상에 있다. 실상을 말하는 이는 요의 홍수와 탕의 큰 가뭄이 다 만남이 있지 정사가 악하여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한다. 온 왕의 해를 말하며 홀로 악을 한 응함이라 하니 이는 요·탕은 덕이 넉넉하고 온 왕은 못하다 봄이다. 하나를 살피면 백을 보기에 넉넉하고 악을 밝히면 착함을 비추기에 넉넉하다. 요·탕이 온 왕을 증험하니 온 왕이 변고를 만남에 이르러 정사가 이르게 한 것이 아니고 변고가 보임으로 화복을 밝힌다. 오제가 태평을 이르게 함이 덕이 이룬 바가 아님이 분명하다.

人之溫病而死也,先有凶色見於面部。其病遇邪氣也,其病不愈。至於身死,命壽訖也。國之亂亡,與此同驗。有變見於天地,猶人溫病而死,色見於面部也。有水旱之災,猶人遇氣而病也。災禍不除,至於國亡,猶病不愈,至於身死也。論者謂變徵政治,賢人溫病色凶,可謂操行所生乎?謂水旱者無道所致,賢者遭病,可謂無狀所得乎?謂亡者為惡極,賢者身死,可謂罪重乎?夫賢人有被病而早死,惡人有完強而老壽,人之病死,不在操行為惡也。然則國之亂亡,不在政之是非。惡人完強而老壽,非政平安而常存。由此言之,禍變不足以明惡,福瑞不足以表善,明矣。

사람이 열병으로 죽음에 먼저 흉한 빛이 얼굴에 보인다. 그 병은 사악한 기운을 만남이라 그 병이 낫지 않는다. 몸이 죽음에 이름은 명과 수가 다한 것이다. 나라의 어지럽고 망함도 이와 증험이 같다. 변고가 하늘과 땅에 보임은 사람이 열병으로 죽을 때 빛이 얼굴에 보임과 같다. 물과 가뭄의 재앙이 있음은 사람이 기운을 만나 병듦과 같다. 재앙과 화가 없어지지 않아 나라가 망함에 이름은 병이 낫지 않아 몸이 죽음에 이름과 같다. 논하는 이는 변고가 정치를 징험한다 하는데 어진 사람이 열병으로 빛이 흉함을 지조와 행실이 낳은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물과 가뭄이 도 없음이 이르게 한 것이라 하면 어진 이가 병을 만남을 못난 짓으로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망하는 이는 악이 지극하다 하면 어진 이가 몸이 죽음을 죄가 무겁다 할 수 있는가. 무릇 어진 사람이 병을 입어 일찍 죽는 이가 있고 악한 사람이 온전하고 강하여 늙도록 오래 사는 이가 있으니 사람의 병들고 죽음은 지조와 행실이 악함에 있지 않다. 그러면 나라의 어지럽고 망함은 정사의 옳고 그름에 있지 않다. 악한 사람이 온전하고 강하여 늙도록 오래 삶은 정사가 평안하여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로써 말하면 화와 변고는 악을 밝히기에 넉넉하지 않고 복과 상서는 착함을 드러내기에 넉넉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在天之變,日月薄蝕,四十二月日一食,五(十)六月月亦一食,食有常數,不在政治,百變千災,皆同一狀,未必人君政教所致。歲害鳥帑,周、楚有禍;然之氣見,宋、衛、陳、鄭皆災。當此之時,六國政教,未必失誤也。歷陽之都,一夕沈而為湖,當時歷陽長吏,未必誑妄也。成敗繫於天,吉凶制於時。人事未為,天氣已見,非時而何?五谷生地,一丰一耗;谷糶在市,一貴一賤。丰者未必賤,耗者未必貴。丰耗有歲,貴賤有時。時當貴,丰谷价增;時當賤,耗谷直減。

하늘에 있는 변고로 해와 달이 먹힘은 마흔두 달에 해가 한 번 먹히고 쉰여섯 달에 달이 또 한 번 먹히니 먹힘에 늘 그러한 수가 있어 정치에 있지 않다. 온 변고와 천 재앙이 다 같은 한 모양이니 반드시 임금의 정사와 가르침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세성이 조노를 해치니 주·초에 화가 있었고 혜성의 기운이 보이니 송·위·진·정이 다 재앙을 입었다. 이때를 당하여 여섯 나라의 정사와 가르침이 반드시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양의 도읍이 하룻저녁에 가라앉아 호수가 되었는데 당시 역양의 어른 아전이 반드시 속이고 망령되었던 것은 아니다. 이루어지고 패함은 하늘에 매이고 길흉은 때에 제어된다. 사람의 일이 아직 되지 않았는데 하늘의 기운이 이미 보이니 때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곡이 땅에 나서 한 번 풍년이고 한 번 축나며 곡식 팖이 저자에 있어 한 번 비싸고 한 번 싸다. 풍년이라 반드시 싼 것이 아니요 축났다고 반드시 비싼 것이 아니다. 풍년과 축남에 해가 있고 비싸고 쌈에 때가 있다. 때가 마땅히 비쌀 때는 풍년의 곡식도 값이 오르고 때가 마땅히 쌀 때는 축난 곡식도 값이 내린다.

夫谷之貴賤不在丰耗,猶國之治亂不在善惡。

무릇 곡식의 비싸고 쌈이 풍년과 축남에 있지 않음은 나라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이 착하고 악함에 있지 않음과 같다.

賢君之立,偶在當治之世,德自明於上,民自善於下,世平民安,瑞佑并至,世則謂之賢君所致。無道之君,偶生於當亂之時,世擾俗亂,災害不絕,遂以破國亡身滅嗣,世皆謂之為惡所致。若此,明於善惡之外形,不見禍福之內實也。禍福不在善惡,善惡之証不在禍福。長吏到官,未有所行,政教因前,無所改更。然而盜賊或多或寡,災害或無或有,夫何故哉?長吏秩貴,當階平安以升遷,或命賤不任,當由危亂以貶詘也。以今之長吏,況古之國君,安危存亡,可得論也。

어진 임금이 섬은 우연히 마땅히 다스려질 세상에 있어 덕이 절로 위에 밝고 백성이 절로 아래에 착하여 세상이 평안하고 백성이 편안하며 상서와 도움이 아울러 이르니 세상은 곧 어진 임금이 이르게 하였다 한다. 도 없는 임금은 우연히 마땅히 어지러울 때에 나서 세상이 어지럽고 풍속이 어지러우며 재해가 끊이지 않아 마침내 나라를 깨뜨리고 몸을 망치고 후사를 끊으니 세상이 다 악을 하여 이르게 한 것이라 한다. 이 같으면 착하고 악함의 겉모양에 밝고 화복의 속 실상을 보지 못한 것이다. 화복은 착하고 악함에 있지 않고 착하고 악함의 증거는 화복에 있지 않다. 어른 아전이 벼슬에 이르러 아직 행한 바가 없고 정사와 가르침은 앞을 따라 고친 바가 없다. 그러나 도적이 혹 많고 혹 적고 재해가 혹 없고 혹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어른 아전의 녹이 귀하면 마땅히 평안을 딛고 올라 옮기고 혹 명이 천하여 감당하지 못하면 마땅히 위태롭고 어지러움으로 말미암아 깎여 물러난다. 지금의 어른 아전으로 옛 나라 임금을 견주면 편안하고 위태롭고 있고 망함을 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