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논형 › 자연편

自然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25 · 한자 3,147자 · 낭독 12.6분

「논형」 자연편 「自然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天地合氣,萬物自生,猶夫婦合氣,子自生矣。萬物之生,含血之類,知飢知寒,見五谷可食,取而食之,見絲麻可衣,取而衣之。或說以為天生五谷以食人,生絲麻以衣人,此謂天為人作農夫桑女之徒也,不合自然,故其義疑,未可從也。試依道家論之。

하늘과 땅이 기운을 합하면 만물이 절로 나니 부부가 기운을 합하면 자식이 절로 남과 같다. 만물의 남에 피를 머금은 무리는 주림을 알고 추위를 알아 오곡이 먹을 만함을 보면 취하여 먹고 실과 삼이 입을 만함을 보면 취하여 입는다. 혹 설명하기를 하늘이 오곡을 내어 사람을 먹이고 실과 삼을 내어 사람을 입힌다 하니 이는 하늘이 사람을 위해 농부와 누에 치는 여인의 무리가 된다 함이라 절로 그러함에 맞지 않으므로 그 뜻이 의심스러워 따를 수 없다. 시험 삼아 도가에 의지하여 논한다.

天者,普施氣萬物之中,谷愈飢而絲麻救寒,故人食谷衣絲麻也。夫天之不故生五谷絲麻以衣食人,由其有災變不欲以譴告人也。物自生而人衣食之,氣自變而人畏懼之。以若說論之,厭於人心矣。如天瑞為故,自然焉在?無為何居?

하늘은 두루 기운을 만물 가운데 베푸니 곡식이 주림을 낫게 하고 실과 삼이 추위를 구하므로 사람이 곡식을 먹고 실과 삼을 입는다. 무릇 하늘이 일부러 오곡과 실과 삼을 내어 사람을 입히고 먹이지 않음은 그 재앙과 변고가 있음이 사람을 꾸짖어 알리려 함이 아님과 같다. 물건이 절로 나서 사람이 입고 먹고 기운이 절로 변하여 사람이 두려워한다. 이 설로 논하면 사람의 마음에 흡족하다. 하늘의 상서가 일부러 함이라면 절로 그러함은 어디 있는가. 함이 없음은 어디 있는가.

何以〔知〕天之自然也?以天無口目也。案有為者,口目之類也。口欲食而目欲視,有嗜欲於內,發之於外,口目求之,得以為利欲之為也。今無口目之欲,於物無所求索,夫何為乎!何以知天無口目也?以地知之。地以土為體,土本無口目。無地,夫婦也,地體無口目,亦知天口目也。使天體乎,宜與地同。使天氣乎,氣若雲煙。雲煙之屬,安得口目!

무엇으로 하늘이 절로 그러함을 아는가. 하늘에 입과 눈이 없음으로써다. 살피건대 함이 있는 것은 입과 눈의 무리다. 입은 먹으려 하고 눈은 보려 하여 즐기고 바람이 안에 있어 밖에 나타나니 입과 눈이 구하여 얻어 이로움으로 삼음이 바람의 함이다. 이제 입과 눈의 바람이 없어 물건에 구하고 찾는 바가 없으니 무엇을 하겠는가! 무엇으로 하늘에 입과 눈이 없음을 아는가. 땅으로 안다. 땅은 흙을 몸으로 삼으니 흙에 본디 입과 눈이 없다. 하늘과 땅은 부부니 땅의 몸에 입과 눈이 없으면 또한 하늘에 입과 눈이 없음을 안다. 하늘이 몸이라면 마땅히 땅과 같다. 하늘이 기운이라면 기운은 구름과 연기 같다. 구름과 연기의 무리에 어찌 입과 눈이 있겠는가!

或曰:「凡動行之類,皆本(無)有為。有欲故動,動則有為。今天動行與人相似,安得無為?」曰:天之動行也,施氣也,體動氣乃出,物乃生矣。由人動氣也,體動氣乃出,子亦生也。夫人之施氣也,非欲以生子,氣施而子自生矣。天動不欲以生物,而物自生,此則自然也。施氣不欲為物,而物自為,此則無為也。謂天自然無為者何?氣也。恬淡無欲,無為無事者也,老聃得以壽矣。老聃稟之於天,使天無此氣,老聃安所稟受此性!師無其說而弟子獨言者,未之有也。或復於桓公,公曰:「以告仲父。」左右曰:「一則仲父,二則仲父,為君乃易乎?」桓公曰:「吾未得仲父,故難;已得仲父,何為不易!」

어떤 이는 말한다. 「무릇 움직여 다니는 무리는 다 본디 함이 있다. 바람이 있으므로 움직이고 움직이면 함이 있다. 이제 하늘의 움직여 다님이 사람과 서로 비슷한데 어찌 함이 없겠는가?」 답한다. 하늘의 움직여 다님은 기운을 베풂이니 몸이 움직여 기운이 곧 나오고 물건이 곧 난다. 사람이 기운을 움직임과 같으니 몸이 움직여 기운이 곧 나오고 자식이 또한 난다. 무릇 사람이 기운을 베풂은 자식을 낳으려 함이 아니라 기운이 베풀어져 자식이 절로 난다. 하늘이 움직임은 물건을 낳으려 함이 아니나 물건이 절로 나니 이것이 곧 절로 그러함이다. 기운을 베풂이 물건을 하려 함이 아니나 물건이 절로 되니 이것이 곧 함이 없음이다. 하늘이 절로 그러하고 함이 없다 함은 무엇인가. 기운이다. 담담하여 바람이 없고 함이 없고 일이 없는 것이니 노담이 얻어 오래 살았다. 노담이 하늘에서 받았으니 하늘에 이 기운이 없다면 노담이 어디서 이 성품을 받겠는가! 스승에게 그 설이 없는데 제자가 홀로 말함은 있지 않았다. 어떤 이가 환공에게 아뢰니 공이 말하였다. 「중보에게 알려라.」 좌우가 말하였다. 「하나도 중보, 둘도 중보니 임금 노릇이 쉽습니다.」 환공이 말하였다. 「내가 중보를 얻기 전에는 어려웠고 이미 중보를 얻었으니 어찌 쉽지 않겠는가!」

夫桓公得父,任之以事,委之以政,不復與知。皇天以至優之德與王政,〔隨〕而譴告(人)〔之〕,則天德不若桓公,而霸君之操過上帝也。

무릇 환공이 중보를 얻어 일을 맡기고 정사를 맡겨 다시 관여하여 알지 않았다. 황천이 지극히 넉넉한 덕으로 왕에게 정사를 주고 따라 꾸짖어 알린다면 하늘의 덕이 환공만 못하고 패자의 지조가 상제보다 나은 것이다.

或曰:「桓公知管仲賢,故委任之;如非管仲,亦將譴告之矣。使天遭堯、舜,必無譴告之變。」

어떤 이는 말한다. 「환공은 관중이 어짊을 알았으므로 맡긴 것이니 관중이 아니면 또한 장차 꾸짖어 알렸을 것이다. 하늘이 요·순을 만나면 반드시 꾸짖어 알리는 변고가 없다.」

曰:天能譴告人君,則亦能故命聖君。擇才若堯、舜,受以王命,委以王事,勿復與知。今則不然,生庸庸之君,失道廢德,隨譴告之,何天不憚勞也!曹參為漢相,縱酒歌樂,不聽政治,其子諫之,笞之二百。當時天下無擾亂之變。淮陽鑄偽錢,吏不能禁,汲黯為太守,不坏一爐,不刑一人,高枕安臥,而淮陽政清。夫曹參為相若不為相,汲黯為太守若郡無人。然而漢朝無事,淮陽刑錯者,參德優而黯威重也。計天之威德,孰與曹參、汲黯?而謂天與王政隨而譴告之,是謂天德不若曹參厚,而威不若汲黯重也。蘧伯玉治衛,子貢使人問之:「何以治衛?」對曰:「以不治治之。」夫不治之治,無為之道也。

답한다. 하늘이 임금을 꾸짖어 알릴 수 있으면 또한 일부러 성스러운 임금을 명할 수 있다. 재주를 가려 요·순 같으면 왕의 명을 주고 왕의 일을 맡겨 다시 관여하여 알지 말아야 한다. 이제 그렇지 않아 용렬한 임금을 내어 도를 잃고 덕을 폐하면 따라 꾸짖어 알리니 어찌 하늘이 수고를 꺼리지 않음인가! 조참이 한나라 재상이 되어 술을 마음껏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며 정치를 듣지 않았는데 그 아들이 간하니 매 이백을 쳤다. 당시 천하에 어지러운 변고가 없었다. 회양에서 가짜 돈을 부어 아전이 금할 수 없었는데 급암이 태수가 되어 화로 하나를 헐지 않고 한 사람을 형벌하지 않고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누웠으나 회양의 정사가 맑았다. 무릇 조참이 재상 됨이 재상 되지 않음 같고 급암이 태수 됨이 군에 사람이 없음 같았다. 그러나 한나라 조정에 일이 없고 회양에 형벌이 놓인 것은 참의 덕이 넉넉하고 암의 위엄이 무거워서다. 하늘의 위엄과 덕을 헤아리면 조참·급암과 어느 것이 나은가. 그런데 하늘이 왕에게 정사를 주고 따라 꾸짖어 알린다 하니 이는 하늘의 덕이 조참만큼 두텁지 못하고 위엄이 급암만큼 무겁지 못하다 함이다. 거백옥이 위나라를 다스리니 자공이 사람을 보내 물었다. 「무엇으로 위나라를 다스리는가?」 대답하였다.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린다.」 무릇 다스리지 않음의 다스림은 함이 없는 도다.

或曰:「太平之應,,河出圖,洛出書。不畫不就,不為不成。天地出之,有為之驗也。張良游泗水之上,遇黃石公授太公書,蓋天佐漢誅秦,故命令神石為鬼書授人,復為有為之效也。」

어떤 이는 말한다. 「태평의 응함에 하수에서 그림이 나오고 낙수에서 글이 나왔다. 그리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고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이 내었으니 함이 있음의 증험이다. 장량이 사수 위에서 노닐다가 황석공을 만나 태공의 글을 받았으니 아마 하늘이 한나라를 도와 진나라를 베므로 신령한 돌에게 명령하여 귀신의 글이 되어 사람에게 주게 하였으니 다시 함이 있음의 효험이다.」

曰:此皆自然也。夫天安得以筆黑而為圖書乎?天道自然,故圖書自成。晉唐叔虞、魯成季友生,文在其手,故叔曰「虞」,季曰「友」。宋仲子生,有文在其手,曰為魯夫人。三者在母之時,文字成矣,而謂天為文字,在母之時,天使神持錐筆墨刻其身乎?自然之化,固疑難知,外若有為,內實自然。是以太史公紀黃石事,疑而不能實也。趙簡子夢上天,見一男子在帝之側,後出,見人當道,則前所夢見在帝側者也。論之以為趙國且昌之狀也。黃石授書,亦漢且興之象也。妖氣為鬼,鬼象人形,自然之道,非或為之也。

답한다. 이는 다 절로 그러함이다. 무릇 하늘이 어찌 붓과 먹으로 그림과 글을 만들겠는가. 하늘의 도가 절로 그러하므로 그림과 글이 절로 이루어진다. 진 당숙우와 노 성계우가 남에 글이 그 손에 있었으므로 숙은 「우(虞)」라 하고 계는 「우(友)」라 하였다. 송 중자가 남에 글이 그 손에 있어 노나라 부인이 된다 하였다. 세 사람이 어미 배 속에 있을 때 글자가 이루어졌는데 하늘이 글자를 만들었다 하면 어미 배 속에 있을 때 하늘이 신을 시켜 송곳과 붓과 먹을 잡고 그 몸에 새겼는가. 절로 그러한 조화는 본디 의심스러워 알기 어려우니 겉은 함이 있는 듯하나 속은 실로 절로 그러함이다. 이 때문에 태사공이 황석의 일을 기록함에 의심하여 실답게 할 수 없었다. 조간자가 꿈에 하늘에 올라 한 남자가 상제 곁에 있음을 보았는데 뒤에 나가 사람이 길을 막음을 보니 곧 앞서 꿈에 상제 곁에서 본 이였다. 논하여 조나라가 장차 창성할 모양이라 하였다. 황석이 글을 줌도 한나라가 장차 일어날 상이다. 요사한 기운이 귀신이 되고 귀신이 사람 꼴을 본뜸은 절로 그러한 도지 누가 한 것이 아니다.

草木之生,華葉青蔥,皆有曲折,象類文章,謂天為文字,復為華葉乎?宋人或刻木為楮葉者,三年乃成。(孔)〔列〕子曰:「使〔天〕地三年乃成一葉,則萬物之有葉者寡矣。」

풀과 나무의 남에 꽃과 잎이 푸르고 무성하여 다 굽고 꺾임이 있어 무늬와 글을 본뜨니 하늘이 글자를 만든다 하면 다시 꽃과 잎도 만드는가. 송나라 사람이 혹 나무를 새겨 닥나무 잎을 만든 이가 있어 세 해에야 이루었다. 열자가 말하였다. 「하늘과 땅이 세 해에야 한 잎을 이룬다면 만물에 잎 있는 것이 적을 것이다.」

如(孔)〔列〕子之言,萬物之葉自為生也。自為生也,故能并成。如天為之,其遲當若宋人刻楮葉矣。觀鳥獸之毛羽,毛羽之采色,通可為乎!

열자의 말대로라면 만물의 잎은 절로 나는 것이다. 절로 나므로 아울러 이룰 수 있다. 하늘이 한다면 그 더딤이 마땅히 송나라 사람이 닥나무 잎을 새김 같을 것이다. 새와 짐승의 털과 깃을 보면 털과 깃의 채색을 통틀어 만들 수 있겠는가!

鳥獸未能盡實。春觀萬物之生,秋觀其成,天地為之乎?物自然也。如謂天地為之,為之宜用手,天地安得萬萬千千手,并為萬萬千千物乎!諸物在天地之間也,猶子在母腹中也。母懷子氣,十月而生,鼻、口、耳、目、髪膚、毛理、血脈、脂腴、骨節、爪齒,自然成腹中乎?母為之也?偶人千萬,不名為人者,何也?鼻口耳目,非性自然也。武帝幸(王)〔李〕夫人,(王)〔李〕夫人死,思見其形。道士以方術作夫人形,形成,出入宮門,武帝大驚,立而迎之,忽不復見。蓋非自然之真,方士巧妄之偽,故一見恍忽,消散滅亡。有為之化,其不可久行,猶(王)〔李〕夫人形不可久見也。道家論自然,不知引物事以驗其言行,故自然之說未見信也。

새와 짐승은 다 실답게 할 수 없다. 봄에 만물의 남을 보고 가을에 그 이루어짐을 보니 하늘과 땅이 한 것인가. 물건이 절로 그러한 것이다. 하늘과 땅이 한다 하면 함에 마땅히 손을 써야 하니 하늘과 땅이 어찌 만만천천의 손을 얻어 아울러 만만천천의 물건을 만들겠는가! 뭇 물건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음은 자식이 어미 배 속에 있음과 같다. 어미가 자식의 기운을 품어 열 달에 낳으니 코·입·귀·눈·머리털과 살갗·털결·혈맥·기름·뼈마디·손톱과 이가 절로 배 속에서 이루어지는가. 어미가 만드는 것인가. 나무 인형이 천만이라도 사람이라 이름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코·입·귀·눈이 성품이 절로 그러함이 아니어서다. 무제가 이부인을 총애하였는데 이부인이 죽으니 그 모습을 보기를 생각하였다. 도사가 방술로 부인의 모습을 만드니 모습이 이루어져 궁문을 드나들어 무제가 크게 놀라 서서 맞았는데 문득 다시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절로 그러한 참이 아니라 방사의 교묘하고 망령된 거짓이므로 한 번 보이고 황홀하여 흩어져 없어진 것이다. 함이 있는 조화는 그 오래 행해질 수 없음이 이부인의 모습이 오래 보일 수 없음과 같다. 도가가 절로 그러함을 논함에 물건과 일을 끌어 그 말과 행실을 증험할 줄 모르므로 절로 그러함의 설이 믿음을 받지 못하였다.

然雖自然,亦須有為輔助。耒耜耕耘,因春播種者,人為之也;及谷入地,日夜長(夫)〔大〕,人不能為也。或為之者,敗之道也。宋人有閔其苗之不長者,就而揠之,明日枯死。夫欲為自然者,宋人之徒也。

그러나 비록 절로 그러하여도 또한 함이 있음의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 쟁기와 보습으로 갈고 매어 봄을 따라 씨 뿌림은 사람이 하는 것이요 곡식이 땅에 들어가 밤낮 자라 커짐은 사람이 할 수 없다. 혹 하는 이는 패하는 길이다. 송나라 사람이 그 모가 자라지 않음을 근심하는 이가 있어 나아가 뽑아 올리니 이튿날 말라 죽었다. 무릇 절로 그러함을 하려 하는 이는 송나라 사람의 무리다.

問曰:「人生於天地,天地無為。人稟天性者,亦當無為,而有為,何也?」

묻는다. 「사람이 하늘과 땅에서 나는데 하늘과 땅은 함이 없다. 사람이 하늘 성품을 받은 이도 또한 마땅히 함이 없어야 하는데 함이 있음은 어째서인가?」

曰:至德純渥之人,稟天氣多,故能則天,自然無為。稟氣薄少,不遵道德,不似天地,故曰不肖。不肖者,不似也。不似天地,不類聖賢,故有為也。天地為爐,造化為工,稟氣不一,安能皆賢!賢之純者,黃、老是也。黃者,黃帝也;老者,老子也。黃、老之操,身中恬淡,其治無為。正身共己,而陰陽自和,無心於為,而物自化,無意於生,而物自成。

답한다. 지극한 덕이 순수하고 두터운 사람은 하늘 기운을 받음이 많으므로 하늘을 본받아 절로 그러하고 함이 없을 수 있다. 기운을 받음이 얇고 적으면 도덕을 따르지 않고 하늘과 땅을 닮지 않으므로 못났다 한다. 못남은 닮지 않음이다. 하늘과 땅을 닮지 않고 성현과 같은 무리가 아니므로 함이 있다. 하늘과 땅은 화로가 되고 조화는 장인이 되니 기운을 받음이 하나가 아닌데 어찌 다 어질 수 있겠는가! 어짊의 순수한 이는 황·노가 그것이다. 황은 황제요 노는 노자다. 황·노의 지조는 몸 가운데가 담담하고 그 다스림이 함이 없었다. 몸을 바르게 하고 제 몸을 공손히 하니 음양이 절로 화하고 함에 마음이 없으니 물건이 절로 화하고 낳음에 뜻이 없으니 물건이 절로 이루어졌다.

《易》曰:「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垂衣裳者,垂拱無為也。孔子曰:「大哉,堯之為君也!惟天為大,惟堯則之。」又曰:「巍巍乎舜、禹之有天下也!而不與焉。」周公曰:「上帝引佚。」

「역」에 이르기를 「황제·요·순이 옷을 드리우니 천하가 다스려졌다」 하였다. 옷을 드리움은 팔짱 끼고 함이 없음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크도다, 요의 임금 됨이여! 오직 하늘이 크거늘 오직 요가 본받았다.」 또 말하였다. 「높고 높도다, 순·우가 천하를 두심이여! 관여하지 않았다.」 주공이 말하였다. 「상제가 편안함을 이끌었다.」

上帝謂〔虞〕舜(禹)也。〔虞〕舜(禹)承安繼治,任賢使能,恭己無為而天下治。〔虞〕舜(禹)承堯之安,堯則天而行,不作功邀名,無為之化自成,故曰「蕩蕩乎民無能名焉」。

상제는 우순을 이른다. 우순이 편안함을 잇고 다스림을 이어 어진 이를 맡기고 능한 이를 부려 몸을 공손히 하고 함이 없으니 천하가 다스려졌다. 우순은 요의 편안함을 이었고 요는 하늘을 본받아 행하여 공을 짓고 이름을 구하지 않아 함이 없는 교화가 절로 이루어졌으므로 「넓고 넓도다, 백성이 이름할 수 없네」 하였다.

年五十者擊壤於塗,不能知堯之德,蓋自然之化也。《易》曰:「大人與天地合其德。」

나이 쉰인 이가 길에서 흙덩이를 치며 요의 덕을 알 수 없었으니 아마 절로 그러한 교화다. 「역」에 이르기를 「대인은 하늘과 땅과 그 덕을 합한다」 하였다.

黃帝、堯、舜大人也,其德與天地合,故知無為也。天道無為,故春不為生,而夏不為長,秋不為成,冬不為藏。陽氣自出,物自生長,陰氣自起,物自成藏。汲井決陂,灌溉園田,物亦生長,霈然而雨,物之莖葉根(垓)〔〕,莫不洽濡。程量澍澤,孰與汲井決陂哉!故無為之為大矣。本不求功,故其功立;本不求名,故其名成。沛然之雨,功名大矣,而天地不為也,氣和而雨自集。

황제·요·순은 대인이니 그 덕이 하늘과 땅과 합하므로 함이 없음을 안다. 하늘의 도는 함이 없으므로 봄에 낳으려 하지 않고 여름에 자라게 하려 하지 않고 가을에 이루려 하지 않고 겨울에 갈무리하려 하지 않는다. 양의 기운이 절로 나와 물건이 절로 나서 자라고 음의 기운이 절로 일어 물건이 절로 이루어져 갈무리된다. 우물을 긷고 못을 터 동산과 밭에 물 대면 물건이 또한 나서 자라고 흠뻑 비 오면 물건의 줄기와 잎과 뿌리가 젖지 않음이 없다. 적시는 못을 헤아리면 우물을 긷고 못을 틈과 어느 것이 나은가! 그러므로 함이 없음의 함이 크다. 본디 공을 구하지 않으므로 그 공이 서고 본디 이름을 구하지 않으므로 그 이름이 이루어진다. 흠뻑 오는 비는 공과 이름이 크나 하늘과 땅이 하지 않고 기운이 화하여 비가 절로 모인다.

儒家說夫婦之道取法於天地,知夫婦法天地,不知推夫婦之道以論天地之性,可謂惑矣。夫天覆於上,地偃於下,下氣上,上氣降下,萬物自生其中間矣。當其生也,天不須復與也,由子在母懷中,父不能知也。物自生,子自成,天地父母,何與知哉!及其生也,人道有教訓之義。天道無為,聽恣其性,故放魚於川,縱獸於山,從其性命之欲也。不驅魚令上陵,不逐獸令入淵者,何哉?拂詭其性,失其所宜也。夫百姓,魚獸之類也。上德治之若烹小鮮,與天地同操也。商鞅變秦法,欲為殊異之功,不聽趙良之議,以取車裂之患,德薄多欲,君臣相憎怨也。道家德厚,下當其上,上安其下,純蒙無為,何復譴告?故曰:政之適也,君臣相忘於治,魚相忘於水,獸相忘於林,人相忘於世。故曰天也。孔子謂顏淵曰:「吾服汝,忘也;汝之服於我,亦忘也。」

유가는 부부의 도가 하늘과 땅에서 법을 취한다 말하니 부부가 하늘과 땅을 본받음은 알면서 부부의 도를 미루어 하늘과 땅의 성품을 논할 줄 모르니 홀렸다 할 만하다. 무릇 하늘은 위를 덮고 땅은 아래에 누워 아래 기운이 오르고 위 기운이 내리면 만물이 절로 그 사이에 난다. 그 남을 당하여 하늘이 다시 관여할 것이 없으니 자식이 어미 품에 있음에 아비가 알 수 없음과 같다. 물건이 절로 나고 자식이 절로 이루어지니 하늘과 땅과 부모가 어찌 관여하여 알겠는가! 그 남에 이르러 사람의 도에 가르치고 훈계하는 뜻이 있다. 하늘의 도는 함이 없어 그 성품에 맡기므로 물고기를 내에 놓고 짐승을 산에 놓아 그 성품과 명의 바람을 따른다. 물고기를 몰아 언덕에 오르게 하지 않고 짐승을 몰아 못에 들게 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그 성품을 어기고 그 마땅한 바를 잃기 때문이다. 무릇 백성은 물고기와 짐승의 무리다. 상덕이 다스림에 작은 생선 삶듯 하니 하늘과 땅과 지조가 같다. 상앙이 진나라 법을 바꾸어 뛰어나게 다른 공을 하려 하여 조량의 의논을 듣지 않아 거열의 환난을 취하였으니 덕이 얇고 바람이 많아 임금과 신하가 서로 미워하고 원망한 것이다. 도가는 덕이 두터워 아래가 그 위에 마땅하고 위가 그 아래에 편안하며 순수하고 어리석어 함이 없으니 어찌 다시 꾸짖어 알리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정사의 알맞음은 임금과 신하가 다스림에서 서로 잊고 물고기가 물에서 서로 잊고 짐승이 숲에서 서로 잊고 사람이 세상에서 서로 잊는다 한다. 그러므로 하늘이라 한다. 공자가 안연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를 생각함은 잊음이요 네가 나를 생각함도 잊음이다.」

以孔子為君,顏淵為臣,尚不能譴告,況以老子為君,文子為臣乎!老子、文子,似天地者也。淳酒味甘,飲之者醉不相知。薄酒酸苦,賓主顰蹙。夫相譴告,道薄之驗也。謂天譴告,曾謂天德不若淳酒乎!

공자가 임금이 되고 안연이 신하가 되어도 오히려 꾸짖어 알릴 수 없는데 하물며 노자가 임금이 되고 문자가 신하가 됨에랴! 노자·문자는 하늘과 땅을 닮은 이다. 진한 술은 맛이 달아 마시는 이가 취하여 서로 알지 못한다. 묽은 술은 시고 써서 손과 주인이 눈살을 찌푸린다. 무릇 서로 꾸짖어 알림은 도가 얇은 증험이다. 하늘이 꾸짖어 알린다 하면 일찍이 하늘의 덕이 진한 술만 못하다 함인가!

禮者,忠信之薄,亂之首也。相譏以禮,故相譴告。三皇之時,坐者于于,行者居居,乍自以為馬,乍自以為牛,純德行而民瞳,曉惠之心未形生也。當時亦無災異,如有災異,不名曰譴告。何則?時人愚蠢,不知相繩責也。末世衰微,上下相非,災異時至,則造譴告之言矣。夫今之天,古之天也,非古之天厚而今之天薄也,譴告之言生於今者,人以心准況之也。誥誓不及五帝,要盟不及三王,交質子不及五伯。德彌薄者信彌衰。心險而行,則犯約而負教;教約不行,則相譴告;譴告不改,舉兵相滅。由此言之,譴告之言,衰亂之語也,而謂之上天為之,斯蓋所以疑也。

예는 충신의 얇음이요 어지러움의 머리다. 예로 서로 나무라므로 서로 꾸짖어 알린다. 삼황 때에 앉은 이는 느긋하고 다니는 이는 한가하여 문득 스스로 말이라 여기고 문득 스스로 소라 여겨 순수한 덕이 행해져 백성이 어리석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마음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당시에 또한 재이가 없었고 재이가 있어도 꾸짖어 알림이라 이름하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당시 사람이 어리석어 서로 바로잡고 책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말세가 쇠하고 미약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그르다 하고 재이가 때로 이르니 곧 꾸짖어 알린다는 말을 만들었다. 무릇 지금의 하늘은 옛 하늘이니 옛 하늘이 두텁고 지금의 하늘이 얇은 것이 아니라 꾸짖어 알린다는 말이 지금에 남은 사람이 마음으로 헤아려 견준 것이다. 고와 서는 오제에 미치지 못하고 요맹은 삼왕에 미치지 못하고 볼모를 바꿈은 오패에 미치지 못한다. 덕이 얇을수록 믿음이 쇠한다. 마음이 험하여 행하면 약속을 범하고 가르침을 등지고 가르침과 약속이 행해지지 않으면 서로 꾸짖어 알리고 꾸짖어 알려도 고치지 않으면 군사를 일으켜 서로 멸한다. 이로써 말하면 꾸짖어 알린다는 말은 쇠하고 어지러운 말인데 위 하늘이 한다 하니 이것이 아마 의심하는 까닭이다.

且凡言譴告者,以人道驗之也。人道,君譴告臣,上天譴告君也,謂災異為譴告。夫人道,臣亦有諫君,以災異為譴告,而王者亦當時有諫上天之義,其效何在?苟謂天德優,人不能諫,優德亦宜玄默,不當譴告。萬石君子有過,不言,對案不食,至優之驗也。夫人之優者,猶能不言,皇天德大,而乃謂之譴告乎!夫天無為,故不言災變,時至,氣自為之。夫天地不能為,亦不能知也。腹中有寒,腹中疾痛,人不使也,氣自為之。夫天地之間,猶人背腹之中也。謂天為災變,凡諸怪異之類,無小大薄厚,皆天所為乎?牛生馬,桃生李,如論者之言,天神入牛腹中為馬,把李實提桃間乎?牢曰:「子云:『吾不試,故藝。』」又曰:「吾少也賤,故多能鄙事。」

또 무릇 꾸짖어 알림을 말하는 이는 사람의 도로 증험한다. 사람의 도는 임금이 신하를 꾸짖어 알리니 위 하늘이 임금을 꾸짖어 알림에 재이를 꾸짖어 알림이라 한다. 무릇 사람의 도에 신하가 또한 임금에게 간함이 있으니 재이를 꾸짖어 알림이라 하면 왕자도 마땅히 때로 위 하늘에 간하는 뜻이 있어야 하는데 그 효험이 어디 있는가. 진실로 하늘의 덕이 넉넉하여 사람이 간할 수 없다 하면 넉넉한 덕도 마땅히 고요하여 꾸짖어 알리지 말아야 한다. 만석군은 자식에게 허물이 있으면 말하지 않고 상을 대하고 먹지 않았으니 지극히 넉넉한 증험이다. 무릇 사람의 넉넉한 이도 오히려 말하지 않을 수 있는데 황천의 덕이 큰데 곧 꾸짖어 알린다 하는가! 무릇 하늘은 함이 없으므로 말하지 않고 재변은 때가 이르면 기운이 절로 하는 것이다. 무릇 하늘과 땅은 할 수 없고 또한 알 수 없다. 배 속에 추위가 있어 배 속이 아프면 사람이 시키지 않고 기운이 절로 하는 것이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는 사람의 등과 배 속과 같다. 하늘이 재변을 한다 하면 무릇 여러 괴이하고 다른 무리에 크고 작고 얇고 두터움 없이 다 하늘이 하는 것인가. 소가 말을 낳고 복숭아가 오얏을 냄에 논하는 이의 말대로라면 하늘의 신이 소 배 속에 들어가 말이 되고 오얏 열매를 잡아 복숭아 사이에 들어 놓는가. 금뢰가 말하였다. 「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쓰이지 않았으므로 재주가 있다』 하셨다.」 또 말하였다. 「내가 젊어서 천하였으므로 비천한 일에 능함이 많다.」

人之賤不用於大者,類多伎能。天尊貴高大,安能撰為災變以譴告人,且吉凶蜚色見於面,人不能為,色自發也。天地猶人身,氣變猶蜚色。人不能為蜚色,天地安能為氣變!然則氣變之見,殆自然也。變自見,色自發,占候之家,因以言也。

사람의 천하여 큰 데 쓰이지 않는 이는 무리가 재주가 많다. 하늘은 높고 귀하고 크니 어찌 재변을 지어 사람을 꾸짖어 알리겠는가. 또 길흉의 나는 빛이 얼굴에 보임은 사람이 할 수 없고 빛이 절로 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람 몸과 같고 기운의 변함은 나는 빛과 같다. 사람이 나는 빛을 할 수 없으니 하늘과 땅이 어찌 기운의 변함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기운의 변함이 보임은 거의 절로 그러함이다. 변고가 절로 보이고 빛이 절로 나니 점치고 살피는 집이 인하여 말하는 것이다.

夫寒溫、譴告、變動、招致,四疑皆已論矣。譴告於天道尤詭,故重論之。論之,所以難別也。說合於人事,不入於道意,從道不隨事,雖違儒家之說,合黃、老之義也。

무릇 추위와 더위·꾸짖어 알림·변하여 움직임·불러 이르게 함의 네 의심을 다 이미 논하였다. 꾸짖어 알림은 하늘의 도에서 더욱 어긋나므로 거듭 논한다. 논함은 가리기 어려워서다. 설이 사람의 일에 맞고 도의 뜻에 들지 않으니 도를 따르고 일을 따르지 않아 비록 유가의 설에 어긋나도 황·노의 뜻에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