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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類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37 · 한자 3,385자 · 낭독 13.5분

「논형」 감류편 「感類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陰陽不和,災變發起,或時先世遺咎,或時氣自然。賢聖感類慊懼,自思災變惡徵何為至乎?引過自責,恐有罪,畏慎恐懼之意,未必有其實事也。何以明之?以湯遭旱自責以五過也。聖人純完,行無缺失矣,何自責有五過?然如《書》曰:「湯自責,天應以雨。」

음양이 화하지 않아 재변이 일어남은 혹 때로 앞 세상이 남긴 허물이요 혹 때로 기운이 절로 그러함이다. 어질고 성스러운 이는 무리를 느껴 부족하게 여기고 두려워하여 스스로 재변과 나쁜 징조가 어찌하여 이르렀는가 생각한다. 허물을 끌어 스스로 책하며 죄가 있을까 두려워하니 삼가고 두려워하는 뜻이지 반드시 그 실다운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탕이 가뭄을 만나 다섯 허물로 스스로 책한 것으로 한다. 성인은 순수하고 온전하여 행실에 모자람과 잃음이 없는데 어찌 스스로 다섯 허물이 있다고 책하는가. 그러나 「서」에 이르기를 「탕이 스스로 책하니 하늘이 비로 응하였다」 하였다.

湯本無過,以五過自責,天何故雨?〔使〕以(無)過致旱,(亦)〔不〕知自責,(不)〔亦〕能得雨也。由此言之,旱不為湯至,雨不應自責。然而前旱後雨者,自然之氣也。此言《書》之語也。難之曰:「《春秋》大雩,董仲舒設土龍,皆為一時間也。一時不雨,恐懼雩祭,求有請福,憂念百性也。」

탕은 본디 허물이 없는데 다섯 허물로 스스로 책하니 하늘이 무슨 까닭으로 비 오게 하였는가. 허물로 가뭄을 이르게 하였다면 스스로 책할 줄 모른 이도 또한 비를 얻을 수 있다. 이로써 말하면 가뭄은 탕을 위해 이른 것이 아니요 비는 스스로 책함에 응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앞에 가물고 뒤에 비 온 것은 절로 그러한 기운이다. 이는 「서」의 말을 말함이다. 힐난하여 말한다. 「「춘추」의 큰 기우제와 동중서가 흙 용을 베푼 것은 다 한때를 위한 것이다. 한때 비가 오지 않으면 두려워하여 기우제를 지내 청하여 복을 구함은 백성을 근심하여 생각함이다.」

湯遭旱七年,以五過自責,謂何時也?夫遭旱一時,輒自責乎?旱至七年,乃自責也?謂一時輒自責,七年乃雨,天應之誠,何其留也!(始)〔如〕謂七年乃自責,憂念百姓,何其遲也!不合雩祭之法,不厭憂民之義。《書》之言未可信也。

탕이 가뭄을 일곱 해 만나 다섯 허물로 스스로 책하였다 하니 어느 때를 이르는가. 무릇 가뭄을 한때 만남에 곧 스스로 책하였는가. 가뭄이 일곱 해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책하였는가. 한때에 곧 스스로 책하였는데 일곱 해에야 비 왔다 하면 하늘이 정성에 응함이 어찌 그리 머뭇거리는가! 일곱 해에야 스스로 책하였다 하면 백성을 근심하여 생각함이 어찌 그리 더딘가! 기우제의 법에 맞지 않고 백성을 근심하는 뜻에 흡족하지 않다. 「서」의 말은 믿을 수 없다.

由此論之,周成王之雷風發,亦此類也。《金滕》曰:「秋大熟,未獲。天大雷電以風,禾盡偃,大木斯拔,邦人大恐。」

이로써 논하면 주 성왕의 우레와 바람이 일어남도 또한 이 무리다. 「금등」에 이르기를 「가을에 크게 익었는데 아직 거두지 않았다. 하늘이 크게 우레 치고 번개 치며 바람 부니 벼가 다 쓰러지고 큰 나무가 뽑혀 나라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하였다.

當此之時,周公死,儒者說之,以為成王狐疑於〔葬〕周公:欲以天子禮葬公,公,人臣也;欲以人臣禮葬公,公有王功。狐疑於葬周公之間,天大雷雨,動怒示變,以彰聖功。

이때를 당하여 주공이 죽었는데 유자가 이를 설명하기를 성왕이 주공을 장사함에 망설여 천자의 예로 공을 장사하려 하니 공은 신하요 신하의 예로 공을 장사하려 하니 공에게 왕의 공이 있었다. 주공을 장사함에 망설이는 사이에 하늘이 크게 우레 치고 비 오며 노함을 움직여 변고를 보여 성스러운 공을 드러냈다 한다.

古文家以武王崩,周公居攝,管、蔡流言,王意狐疑周公,周公奔楚,故天雷雨以悟成王。

고문가는 무왕이 죽고 주공이 섭정하니 관·채가 유언을 퍼뜨려 왕의 뜻이 주공을 의심하여 주공이 초나라로 달아났으므로 하늘이 우레 치고 비 와서 성왕을 깨우쳤다 한다.

夫一雷一雨之變,或以為葬疑,或以為信讒,二家未可審。且訂葬疑之說,秋夏之際,陽氣尚盛,未嘗無雷雨也,顧其拔木偃禾,頗為(狀)〔壯〕耳。當雷雨時,成王感懼,開《金滕》之書,見周公之功,執書泣過,自責之深,自責適已,天偶反風,書家則謂天為周公怒也。千秋萬夏,不絕雷雨。苟謂雷雨為天怒乎,是則皇天歲歲怒也。正月陽氣發泄,雷聲始動,秋夏陽至極而雷折。苟謂秋夏之雷,為天大怒,正月之雷,天小怒乎?雷為天怒,雨為恩施。使天為周公怒,徒當雷不當雨,今〔雷〕雨俱至,天怒且喜乎?「子於是日也哭則不歌」。《周禮》「子卯稷食菜羹」,哀樂不并行。哀樂不并行,喜怒反并至乎!

무릇 한 우레 한 비의 변고를 혹은 장사의 의심이라 하고 혹은 참소를 믿음이라 하니 두 집을 살필 수 없다. 또 장사의 의심 설을 바로잡으면 가을과 여름 즈음은 양의 기운이 아직 성하여 일찍이 우레와 비가 없지 않았으니 다만 그 나무를 뽑고 벼를 쓰러뜨림이 자못 장하였을 뿐이다. 우레와 비가 칠 때 성왕이 느끼고 두려워하여 「금등」의 글을 열어 주공의 공을 보고 글을 잡고 허물을 뉘우쳐 울며 스스로 책함이 깊었는데 스스로 책함이 마침 그치자 하늘이 우연히 바람을 되돌리니 글 하는 집이 곧 하늘이 주공을 위해 노하였다 한 것이다. 천 가을 만 여름에 우레와 비가 끊이지 않는다. 진실로 우레와 비를 하늘의 노함이라 하면 이는 황천이 해마다 노하는 것이다. 정월에 양의 기운이 새어 나와 우레 소리가 비로소 움직이고 가을과 여름에 양이 지극함에 이르러 우레가 꺾인다. 진실로 가을과 여름의 우레를 하늘의 큰 노함이라 하면 정월의 우레는 하늘의 작은 노함인가. 우레는 하늘의 노함이 되고 비는 은혜의 베풂이 된다. 하늘이 주공을 위해 노하였다면 한갓 마땅히 우레 치고 비 오지 말아야 하는데 이제 우레와 비가 함께 이르니 하늘이 노하고 또 기뻐한 것인가. 「공자가 이날에 곡하면 노래하지 않았다」 하였다. 「주례」에 「자·묘일에는 기장밥과 나물국을 먹는다」 하니 슬픔과 즐거움은 아울러 행하지 않는다. 슬픔과 즐거움이 아울러 행하지 않는데 기쁨과 노함이 도리어 아울러 이르는가!

秦始皇帝東封岱岳,雷雨暴至。劉媼息大澤,雷雨晦冥。始皇無道,自同前聖,治亂自謂太平,天怒可也。劉媼息大澤,夢與神遇,是生高祖,何怒於生聖人而為雷雨乎?堯時大風為害,堯(激)〔繳〕大風於青丘之野。舜入大麓,烈風雷雨。堯、舜世之隆主,何過於天,天為風雨也?大旱,《春秋》雩祭,又董仲舒設土龍以類招氣,如天應雩龍,必為雷雨。何則?秋夏之雨與雷俱也。必從《春秋》、仲舒之術,則大雩龍,求怒天乎!師曠奏《白雪之曲》,雷電下擊,鼓清角之音,風雨暴至。苟為雷雨為天怒,天何憎於《白雪》清角,而怒師曠為之乎!此雷雨之難也。

진 시황제가 동으로 대악에 봉선하는데 우레와 비가 사납게 이르렀다. 유온이 큰 못에서 쉬는데 우레와 비로 어두웠다. 시황은 도가 없으면서 스스로 앞 성인과 같다 하고 어지러움을 다스려 스스로 태평이라 하였으니 하늘이 노함이 옳다. 유온이 큰 못에서 쉬다가 꿈에 신과 만나 이에 고조를 낳았는데 어찌 성인을 낳음에 노하여 우레와 비를 하였는가. 요 때 큰 바람이 해가 되어 요가 큰 바람을 청구의 들에서 주살로 잡았다. 순이 큰 숲에 드니 사나운 바람과 우레와 비가 쳤다. 요·순은 세상의 높은 임금인데 하늘에 무엇을 잘못하여 하늘이 바람과 비를 하였는가. 큰 가뭄에 「춘추」가 기우제를 지내고 또 동중서가 흙 용을 베풀어 무리로 기운을 불렀으니 하늘이 기우제와 용에 응한다면 반드시 우레와 비를 할 것이다. 어째서인가. 가을과 여름의 비는 우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춘추」와 중서의 술법을 따르면 큰 기우제와 용은 하늘을 노하게 하기를 구함인가! 사광이 「백설곡」을 연주하니 우레와 번개가 내려쳤고 청각의 음을 타니 바람과 비가 사납게 이르렀다. 진실로 우레와 비를 하늘의 노함이라 하면 하늘이 「백설」과 청각에 무엇을 미워하여 사광이 함을 노하였는가! 이는 우레와 비의 힐난이다.

又問之曰:「成王不以天子禮葬周公,天為雷風,偃禾拔術,成王覺悟,執書泣過,天乃反風,偃禾復起,何不為疾反風以立大木,必須國人起筑之乎?」應曰:「天不能。」曰:「然則天有所不能乎?」應曰:「然。」

또 묻는다. 「성왕이 천자의 예로 주공을 장사하지 않으니 하늘이 우레와 바람을 하여 벼를 쓰러뜨리고 나무를 뽑았고 성왕이 깨달아 글을 잡고 허물을 우니 하늘이 곧 바람을 되돌려 쓰러진 벼가 다시 일어났다. 어찌 빨리 바람을 되돌려 큰 나무를 세우지 않고 반드시 나라 사람이 일으켜 쌓기를 기다렸는가?」 응하여 말한다. 「하늘이 할 수 없다.」 말한다. 「그러면 하늘에 할 수 없는 바가 있는가?」 응하여 말한다. 「그렇다.」

難曰:「孟賁推人〔而〕人仆,接人而(起接)人立。天能拔木,不能復起,是則天力不如孟賁也。秦時三山亡,猶謂天所徒也。夫木之輕重,孰與三山?能徒三山,不能起大木,非天用力宜也。如謂三山非天所亡,然則雷雨獨天所為乎?」

힐난하여 말한다. 「맹분이 사람을 밀면 사람이 엎어지고 사람을 붙들면 사람이 선다. 하늘이 나무를 뽑을 수 있으면서 다시 일으킬 수 없다면 이는 하늘의 힘이 맹분만 못한 것이다. 진나라 때 세 산이 없어졌는데 오히려 하늘이 옮긴 바라 한다. 무릇 나무의 가볍고 무거움이 세 산과 어느 것이 나은가. 세 산을 옮길 수 있으면서 큰 나무를 일으킬 수 없음은 하늘이 힘을 씀에 마땅함이 아니다. 세 산이 하늘이 없앤 바가 아니라 하면 그러면 우레와 비만 홀로 하늘이 한 것인가?」

問曰:「天之欲令成王以天子之禮葬周公,以公有聖德,以公有王功。《經》曰:『王乃得周公(死)〔所〕自以為功,代武王之說。』今天動威以彰周公之德也。」

묻는다. 「하늘이 성왕에게 천자의 예로 주공을 장사하게 하려 함은 공에게 성스러운 덕이 있고 공에게 왕의 공이 있어서다. 「경」에 이르기를 『왕이 이에 주공이 스스로 공으로 삼아 무왕을 대신하려 한 말을 얻었다』 하였다. 이제 하늘이 위엄을 움직여 주공의 덕을 드러냈다.」

難之曰:「伊尹相湯伐夏,為民興利除害,致天下太平;湯死,復相大甲,大甲佚豫,放之桐宮,攝政三年,乃退復位。周公曰:『伊尹格於皇天。』天所宜彰也。伊尹死時,天何以不為雷雨?」應曰:「以《百(雨)〔兩〕篇》曰:『伊尹死,大霧三日。』

힐난하여 말한다. 「이윤이 탕을 도와 하나라를 쳐 백성을 위해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를 없애 천하 태평을 이르게 하였다. 탕이 죽자 다시 태갑을 도왔는데 태갑이 방탕하니 동궁에 내치고 정사를 섭한 지 세 해에 곧 물러나 자리를 돌려주었다. 주공이 말하기를 『이윤이 황천에 이르렀다』 하였으니 하늘이 마땅히 드러낼 바다. 이윤이 죽을 때 하늘이 무엇으로 우레와 비를 하지 않았는가?」 응하여 말한다. 「「백량편」에 이르기를 『이윤이 죽자 큰 안개가 사흘 끼었다』 하였다.

大霧三日亂氣矣,非天怒之變也。東海張霸造《百(雨)〔兩〕篇》,其言雖未可信,且假以問:「天為雷雨以悟成王,成王未開金匱雷止乎?已開金匱雷雨乃止也?」應曰:「未開金匱雷止也。開匱得書,見公之功,党悟泣過,決以天子孔葬公,出郊觀變,天止雨反風,禾盡起。」

큰 안개 사흘은 어지러운 기운이지 하늘이 노한 변고가 아니다. 동해 장패가 「백량편」을 지었으니 그 말이 비록 믿을 수 없으나 또 빌려 묻는다. 「하늘이 우레와 비로 성왕을 깨우쳤는데 성왕이 금궤를 열기 전에 우레가 그쳤는가. 이미 금궤를 열고서야 우레와 비가 곧 그쳤는가?」 응하여 말한다. 「금궤를 열기 전에 우레가 그쳤다. 궤를 열어 글을 얻어 공의 공을 보고 깨달아 허물을 뉘우쳐 울며 천자의 예로 공을 장사하기로 결단하고 교외에 나가 변고를 보니 하늘이 비를 그치고 바람을 되돌려 벼가 다 일어났다.」

由此言之,成王未覺悟,雷雨止矣。難曰:「伊尹〔死〕,霧三日,天何不三日雷雨,須成王覺悟乃止乎?太戊之時,桑谷生朝,七日大拱,太戊思政,桑谷消亡。宋景公時,熒〔惑〕守心,出三善言,熒惑徒舍。使太戊不思政,景公無三善言,桑谷不消,熒惑不徒。何則?災變所以譴告也,所譴告未覺,災變不除,天之至意也。今天怒為雷雨以責成王,成王未覺,雨雷之息,何其早也?

이로써 말하면 성왕이 깨닫기 전에 우레와 비가 그친 것이다. 힐난하여 말한다. 「이윤이 죽자 안개가 사흘이었는데 하늘이 어찌 사흘 우레와 비를 하여 성왕이 깨닫기를 기다려 곧 그치지 않았는가. 태무 때에 뽕나무와 닥나무가 조정에 나서 이레에 크게 한 아름이었는데 태무가 정사를 생각하니 뽕나무와 닥나무가 사라져 없어졌다. 송 경공 때 형혹이 심수를 지켰는데 세 착한 말을 내니 형혹이 자리를 옮겼다. 태무가 정사를 생각하지 않고 경공에게 세 착한 말이 없었다면 뽕나무와 닥나무가 사라지지 않고 형혹이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재변은 꾸짖어 알리는 것이니 꾸짖어 알린 이가 깨닫지 못하면 재변이 없어지지 않음이 하늘의 지극한 뜻이다. 이제 하늘이 노하여 우레와 비를 하여 성왕을 책하는데 성왕이 깨닫지 못하였는데 비와 우레가 그침이 어찌 그리 이른가?」

又問曰:「禮,諸侯之子稱公子,諸侯之孫稱公孫,皆食采地,殊之眾庶。何則?公子公孫,親而又尊,得體公稱,又食采地,名實相副,猶文質相稱也。天彰周公之功,令成王以天子禮葬,何不令成王號周公以周王,副天子之禮乎?」應曰:「王者,名之尊號也,人臣不得名也。」

또 묻는다. 「예에 제후의 아들은 공자라 일컫고 제후의 손자는 공손이라 일컬으며 다 채지를 먹어 뭇사람과 다르다. 어째서인가. 공자와 공손은 친하고 또 높아 공의 일컬음을 얻고 또 채지를 먹으니 이름과 실이 서로 맞음이 문과 질이 서로 걸맞음과 같다. 하늘이 주공의 공을 드러내어 성왕에게 천자의 예로 장사하게 하려 하면서 어찌 성왕에게 주공을 주왕이라 부르게 하여 천자의 예에 맞추지 않았는가?」 응하여 말한다. 「왕은 이름의 높은 호니 신하가 이름할 수 없다.」

難曰:「人臣猶得名王,禮乎?武王伐紂,下車追王大王、王季、文王。三人者諸侯,亦人臣也,以王號加之。何為獨可於三王,不可於周公?天意欲彰周公,豈能明乎!豈以王跡起於三人哉!然而王功亦成於周公。江起岷山,流為濤瀨。相濤瀨之流,孰與初起之源?鬯之所為到,白雉之所為來,三王乎?周公也?周公功德盛於三王,不加王號,豈天惡人妄稱之哉!周衰,六國稱王,齊、秦更為帝,當時天無禁怒之變。周公不以天子禮葬,天為雷雨以責成王,何天之好惡不純一乎?」

힐난하여 말한다. 「신하가 오히려 왕이라 이름할 수 있음이 예인가. 무왕이 주를 치고 수레에서 내려 태왕·왕계·문왕을 추존하여 왕이라 하였다. 세 사람은 제후니 또한 신하인데 왕호를 더하였다. 어찌 홀로 세 왕에게는 옳고 주공에게는 옳지 않은가. 하늘의 뜻이 주공을 드러내려 하였다면 어찌 밝힐 수 없겠는가! 어찌 왕의 자취가 세 사람에게서 일어나서인가! 그러나 왕의 공은 또한 주공에게서 이루어졌다. 강은 민산에서 일어나 흘러 물결과 여울이 된다. 물결과 여울의 흐름을 살피면 처음 일어난 근원과 어느 것이 나은가. 울창주가 이른 바와 흰 꿩이 온 바가 세 왕인가. 주공인가. 주공의 공덕이 세 왕보다 성한데 왕호를 더하지 않았으니 어찌 하늘이 사람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미워해서이겠는가! 주나라가 쇠하니 여섯 나라가 왕을 일컫고 제·진이 번갈아 제가 되었는데 당시 하늘에 금하고 노하는 변고가 없었다. 주공을 천자의 예로 장사하지 않으니 하늘이 우레와 비를 하여 성왕을 책하였다 하니 어찌 하늘의 좋아하고 미워함이 순일하지 않은가?」

又問曰:「魯季孫賜曾子簀,曾子病而寢之。童子曰:『華而者,大夫之簀。』

또 묻는다. 「노 계손이 증자에게 삿자리를 주니 증자가 병들어 그것에 누웠다. 동자가 말하였다. 『화려하고 매끈하니 대부의 삿자리입니다.』

而曾子感慚,命元易簀。蓋禮,大夫之簀,士不得寢也。今周公人臣也,以天子禮葬,魂而有靈,將安之不也?」應曰:「成王所為,天之所予,何為不安?」

증자가 느끼고 부끄러워하여 원에게 명하여 삿자리를 바꾸었다. 아마 예에 대부의 삿자리는 사가 누울 수 없다. 이제 주공은 신하인데 천자의 예로 장사하면 혼에 영이 있어도 장차 편안하겠는가, 아니겠는가?」 응하여 말한다. 「성왕이 한 바는 하늘이 준 바인데 어찌 편안하지 않겠는가?」

難曰:「季孫所賜大夫之簀,豈曾子之所自制乎,何獨不安乎?子疾病,子路遣門人為臣。病間曰:『久矣哉!由之行詐也!無臣而為有臣,吾誰欺,欺天乎?』

힐난하여 말한다. 「계손이 준 대부의 삿자리가 어찌 증자가 스스로 만든 것이겠는가마는 어찌 홀로 편안하지 않았는가. 공자가 병들자 자로가 문인을 시켜 가신으로 삼았다. 병이 뜸하자 말하였다. 『오래되었구나, 유의 거짓 행함이여! 가신이 없는데 가신이 있게 하니 내가 누구를 속이는가, 하늘을 속이는가?』

孔子罪子路者也。己非人君,子路使門人為臣,非天之心而妄為之,是欺天也。周公亦非天子也,以孔子之心況周公,周公必不安也。季氏旅於太山,孔子曰:『曾謂泰山不如林放乎?』

공자가 자로를 죄준 것이다. 제가 임금이 아닌데 자로가 문인을 시켜 가신으로 삼음은 하늘의 마음이 아닌데 망령되이 함이니 이는 하늘을 속임이다. 주공도 천자가 아니니 공자의 마음으로 주공을 견주면 주공은 반드시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씨가 태산에 여제를 지내니 공자가 말하였다. 『일찍이 태산이 임방만 못하다 하는가?』

以曾子之細,猶卻非禮;周公至聖,豈安天子之葬?曾謂周公不如曾子乎?由此原之,周公不安也。大人與天地合德,周公不安,天亦不安,何故為雷雨以責成王乎?」

증자의 작음으로도 오히려 예 아님을 물리쳤는데 주공은 지극한 성인이니 어찌 천자의 장사를 편안히 여기겠는가. 일찍이 주공이 증자만 못하다 하는가. 이로써 미루면 주공은 편안하지 않다. 대인은 하늘과 땅과 덕을 합하니 주공이 편안하지 않으면 하늘도 편안하지 않은데 무슨 까닭으로 우레와 비를 하여 성왕을 책하는가?」

又問曰:「死生有命,富貴在天。武王之命,何可代乎?」

또 묻는다. 「죽고 삶에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다. 무왕의 명을 어찌 대신할 수 있는가?」

應曰:「九齡之夢,天奪文王年以益武王。克殷二年之時,九齡之年未盡,武王不豫,則請之矣。人命不可請,獨武王可,非世常法,故藏於金滕;不可復為,故掩而不見。」

응하여 말한다. 「아홉 나이의 꿈은 하늘이 문왕의 나이를 빼앗아 무왕에게 더한 것이다. 은나라를 이긴 두 해 때에 아홉 나이의 해가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무왕이 편찮으니 곧 청한 것이다. 사람의 명은 청할 수 없으나 홀로 무왕만 옳았으니 세상의 늘 그러한 법이 아니므로 금등에 감추었고 다시 할 수 없으므로 가려 보이지 않았다.」

難曰:「九齡之夢,武王已得文王之年未?」應曰:「已得之矣。」

힐난하여 말한다. 「아홉 나이의 꿈에 무왕이 이미 문왕의 나이를 얻었는가, 아닌가?」 응하여 말한다. 「이미 얻었다.」

難曰:「已得文王之年,命當自延。克殷二年,雖病,猶將不死,周公何為請而代之?」應曰:「人君爵人以官,議定,未之即與,曹下案目,然後可諾。天雖奪文王年以益武王,猶須周公請,乃能得之。命數精微,非一臥之夢所能得也。(應曰九齡之夢能得也)

힐난하여 말한다. 「이미 문왕의 나이를 얻었으면 명이 마땅히 절로 늘어난다. 은나라를 이긴 두 해에 비록 병들어도 오히려 죽지 않을 터인데 주공이 무엇 때문에 청하여 대신하였는가?」 응하여 말한다. 「임금이 사람에게 벼슬을 줌에 의논이 정해져도 아직 곧 주지 않고 조에서 목록을 살핀 뒤에야 허락할 수 있다. 하늘이 비록 문왕의 나이를 빼앗아 무왕에게 더하여도 오히려 주공이 청함을 기다려야 곧 얻을 수 있다. 명의 수는 정미하여 한 번 누운 꿈이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다.」

難曰:「九齡之夢,文王夢與武王九齡。武王夢帝予其九齡,其天已予之矣,武王已得之矣,何須復請?人且得官,先夢得爵,其後莫舉,猶自得官。何則?兆象先見,其驗必至也。古者謂年為齡,已得九齡,猶人夢得爵也。周公因必效之夢,請之於天,功安能大乎?」

힐난하여 말한다. 「아홉 나이의 꿈은 문왕이 꿈에 무왕에게 아홉 나이를 주었고 무왕이 꿈에 상제가 그 아홉 나이를 준 것이니 그 하늘이 이미 준 것이요 무왕이 이미 얻은 것인데 어찌 다시 청하기를 기다리는가. 사람이 장차 벼슬을 얻으려 함에 먼저 꿈에 작위를 얻고 그 뒤에 천거하는 이가 없어도 오히려 절로 벼슬을 얻는다. 어째서인가. 조짐과 상이 먼저 보이면 그 증험이 반드시 이르기 때문이다. 옛날에 해를 령이라 하였으니 이미 아홉 령을 얻음은 사람이 꿈에 작위를 얻음과 같다. 주공이 반드시 효험 있을 꿈으로 인하여 하늘에 청하였으니 공이 어찌 클 수 있겠는가?」

又問曰:「功無大小,德無多少,人須仰恃賴之者,則為美矣。使周公不代武王,武王病死,周公與成王而致天下太平乎?」

또 묻는다. 「공은 크고 작음이 없고 덕은 많고 적음이 없으니 사람이 우러러 의지하는 바이면 곧 아름답다. 주공이 무왕을 대신하지 않아 무왕이 병들어 죽었다면 주공이 성왕과 더불어 천하 태평을 이르게 하였겠는가?」

應曰:「成事,周公輔成王而天下不亂。使武王不見代,遂病至死,周公致太平何疑乎?」

응하여 말한다. 「이루어진 일에 주공이 성왕을 도와 천하가 어지럽지 않았다. 무왕이 대신됨을 입지 않고 마침내 병들어 죽음에 이르렀어도 주공이 태평을 이르게 함에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難曰:「若是,武王之生無益,其死無損,須周公功乃成也。周衰,諸侯背畔,管仲九合諸侯,一匡天下。孔子曰:『微管仲,吾其被髪左衽矣。』

힐난하여 말한다. 「이 같으면 무왕의 삶이 이익이 없고 그 죽음이 손해가 없으며 주공의 공을 기다려야 이루어진다. 주나라가 쇠하여 제후가 등지고 배반하였는데 관중이 제후를 아홉 번 모아 천하를 한 번 바로잡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관중이 없었으면 나는 머리를 풀고 왼쪽 옷섶을 하였을 것이다.』

使無管仲,不合諸侯,夷狄交侵,中國絕滅。此無管仲有所傷也。程量有益,管仲之功,偶於周公。管仲死,桓公不以諸侯禮葬,以周公況之,天亦宜怒,微雷薄雨不至,何哉?豈以周公聖而管仲(不)賢乎?夫管仲為反坫,有三歸,孔子譏之,以為不賢。

관중이 없어 제후를 모으지 않았다면 이적이 번갈아 침노하여 중국이 끊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이는 관중이 없으면 상하는 바가 있음이다. 이익을 헤아리면 관중의 공이 주공과 짝한다. 관중이 죽자 환공이 제후의 예로 장사하지 않았는데 주공으로 견주면 하늘이 또한 마땅히 노해야 하거늘 작은 우레와 엷은 비도 이르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어찌 주공은 성스럽고 관중은 어질지 않아서인가. 무릇 관중이 반점을 하고 삼귀를 두니 공자가 나무라 어질지 않다 하였다.

反坫、三歸,諸侯之禮;天子禮葬,王者之制,皆以人臣俱不得為。大人與天地合德,孔子,大人也,譏管仲之僭禮,皇天欲周公之侵制,非合德之驗。

반점과 삼귀는 제후의 예요 천자의 예로 장사함은 왕자의 제도니 다 신하로서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대인은 하늘과 땅과 덕을 합하니 공자는 대인이라 관중의 예를 참람함을 나무랐는데 황천이 주공의 제도를 넘음을 바라니 덕을 합한 증험이 아니다.

《書》家之說,未可然也。

「서」 하는 집의 설은 그렇다 할 수 없다.

以見鳥跡而知為書,見蜚蓬而知為車。天非以鳥跡命倉頡,以蜚蓬使奚仲也,奚仲感蜚蓬而倉頡起鳥跡也。晉文反國,命徹麋墨,舅犯心感,辭位歸家。夫文公之徹麋墨,非欲去舅犯,舅犯感慚,自同於麋墨也。宋華臣弱其宗,使家賊六人以鈹殺華吳於宋,命合左師之後。左師懼曰:「老夫無罪。」

새 발자국을 보고 글자 만들 줄 알고 나는 쑥을 보고 수레 만들 줄 알았다. 하늘이 새 발자국으로 창힐에게 명하고 나는 쑥으로 해중을 시킨 것이 아니라 해중이 나는 쑥에 느끼고 창힐이 새 발자국에서 일으킨 것이다. 진 문공이 나라에 돌아와 미묵을 물리라 명하니 구범이 마음에 느껴 자리를 사양하고 집에 돌아갔다. 무릇 문공이 미묵을 물림은 구범을 없애려 함이 아닌데 구범이 느끼고 부끄러워하여 스스로 미묵과 같다 여긴 것이다. 송 화신이 그 종족을 약하게 하여 집안 도적 여섯 사람을 시켜 창으로 화오를 송나라에서 죽이니 명하여 좌사의 뒤에 모였다. 좌사가 두려워하여 말하였다. 「늙은 몸은 죄가 없다.」

其後左師怨咎華臣,華臣備之。國人逐狗,狗入華臣之門,華臣以為左師來攻己也,逾牆而走。夫華臣自殺華吳而左師懼,國人自逐狗而華臣自走。成王之畏懼,猶此類也。心疑於不以天子禮葬公,卒遭雷雨之至,則懼而畏過矣。夫雷雨之至,天未必責成王也。雷雨至,成王懼以自責也。夫感則蒼頡、奚仲之心,懼則左師、華臣之意也。懷嫌疑之計,遭暴至之氣,以類之驗見,則天怒之效成矣。見類驗於寂漠,猶感動而畏懼,況雷雨揚(軒)〔忟〕之聲,成王庶幾能不怵惕乎?

그 뒤 좌사가 화신을 원망하고 허물하니 화신이 그를 대비하였다. 나라 사람이 개를 쫓는데 개가 화신의 문에 드니 화신은 좌사가 와서 저를 친다 여겨 담을 넘어 달아났다. 무릇 화신이 스스로 화오를 죽이고 좌사가 두려워하였고 나라 사람이 스스로 개를 쫓고 화신이 스스로 달아났다. 성왕의 두려워함도 이 무리와 같다. 마음에 천자의 예로 공을 장사하지 않음을 의심하다가 마침내 우레와 비의 이름을 만나니 두려워하여 허물을 두려워한 것이다. 무릇 우레와 비의 이름에 하늘이 반드시 성왕을 책한 것은 아니다. 우레와 비가 이르니 성왕이 두려워하여 스스로 책한 것이다. 무릇 느낌은 창힐·해중의 마음이요 두려워함은 좌사·화신의 뜻이다. 혐의하는 꾀를 품고 사납게 이르는 기운을 만나 무리의 증험이 보이니 하늘이 노한 효험이 이루어졌다. 무리의 증험을 고요하고 적막한 데서 보아도 오히려 느껴 움직여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우레와 비의 드날려 떨치는 소리에 성왕이 거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迅雷風烈,孔子必變。禮,君子聞雷,雖夜,衣冠而坐,所以敬雷懼激氣也。聖人君子於道無嫌,然猶順天變動,況成王有周公之疑,聞雷雨之變,安能不振懼乎!然則雷雨之至也,殆且自天氣,成王畏懼,殆且感物類也。夫天道無為,如天以雷雨責怒人,則亦能以雷雨殺無道。古無道者多,可以雷雨誅殺其身,必命聖人興師動軍,頓兵傷士,難以一雷行誅,輕以三軍克敵,何天之不憚煩也!

빠른 우레와 사나운 바람에 공자가 반드시 낯빛을 바꾸었다. 예에 군자는 우레를 들으면 비록 밤이라도 옷을 입고 관을 쓰고 앉으니 우레를 공경하고 격한 기운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성인과 군자는 도에 혐의가 없으나 오히려 하늘의 변동을 따르는데 하물며 성왕에게 주공의 의심이 있어 우레와 비의 변고를 들음에 어찌 떨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레와 비의 이름은 거의 또한 하늘 기운에서요 성왕의 두려워함은 거의 또한 물건의 무리에 느낀 것이다. 무릇 하늘의 도는 함이 없으니 하늘이 우레와 비로 사람을 책하고 노한다면 또한 우레와 비로 도 없는 이를 죽일 수 있다. 옛날에 도 없는 이가 많았는데 우레와 비로 그 몸을 베어 죽일 수 있으면서 반드시 성인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군대를 움직여 군사를 지치게 하고 병사를 상하게 하였으니 한 우레로 베기를 행함은 어렵게 여기고 삼군으로 적을 이김은 가볍게 여기니 어찌 하늘이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

或曰:「紂父帝乙射天毆地,游涇、渭之間,雷電擊而殺之。斯天以雷電誅無道也。」

어떤 이는 말한다. 「주의 아비 제을이 하늘을 쏘고 땅을 매질하며 경수·위수 사이에서 노닐다가 우레와 번개가 쳐서 죽였다. 이는 하늘이 우레와 번개로 도 없는 이를 베었음이다.」

帝乙之惡,孰與桀、紂?鄒伯奇論桀、紂惡不如亡秦,亡秦不如王莽,然而桀、紂、秦、莽之(地)〔死〕,不以雷電。孔子作《春秋》,采毫毛之善,貶纖介之惡,采善不逾其美,貶惡不溢其過。責小以大,夫人無之。成王小疑,天大雷雨。如定以臣葬公,其變何以過此!《洪范》稽疑,不悟災變者,人之才不能盡曉,天不以疑責備於人也。成王心疑未決,天以大雷雨責之,殆非皇天之意。書家之說,恐失其實也。

제을의 악이 걸·주와 어느 것이 심한가. 추백기가 논하기를 걸·주의 악은 망한 진나라만 못하고 망한 진나라는 왕망만 못하다 하였으나 걸·주·진·망의 죽음은 우레와 번개로 하지 않았다. 공자가 「춘추」를 지음에 터럭만 한 착함을 채택하고 실오라기만 한 악을 깎았으나 착함을 채택함이 그 아름다움을 넘지 않고 악을 깎음이 그 허물을 넘치지 않았다. 작은 것을 큰 것으로 책함은 사람이 하지 않는다. 성왕의 작은 의심에 하늘이 큰 우레와 비를 하였다면 신하의 예로 공을 장사하기로 정하였다면 그 변고가 무엇으로 이보다 지나쳤겠는가! 「홍범」의 계의는 재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사람의 재주가 다 알 수 없으니 하늘이 의심으로 사람에게 갖추기를 책하지 않는다. 성왕이 마음에 의심하여 결단하지 못하였는데 하늘이 큰 우레와 비로 책하였다 함은 거의 황천의 뜻이 아니다. 글 하는 집의 설은 아마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