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漢篇
儒者稱五帝、三王致天下太平,漢興已來,未有太平。彼謂五帝、三王致太平,漢未有太平者,見五帝、三王聖人也,聖人之德能致太平;謂漢不太平者,漢無聖帝也,賢者之化,不能太平。又見孔子言「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方今無鳳鳥、《河圖》,瑞頗未至悉具,故謂未太平。此言妄也。
유자는 오제·삼왕이 천하 태평을 이르게 하였고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 태평이 있지 않다 일컫는다. 저들이 오제·삼왕은 태평을 이르게 하고 한나라는 태평이 있지 않다 함은 오제·삼왕이 성인임을 보고 성인의 덕이 태평을 이르게 할 수 있다 함이요, 한나라가 태평하지 않다 함은 한나라에 성스러운 임금이 없어 어진 이의 교화는 태평할 수 없다 함이다. 또 공자가 「봉새가 이르지 않고 하수가 그림을 내지 않으니 나는 끝났도다」 말함을 보고 지금 봉새와 「하도」가 없고 상서가 자못 다 갖추어 이르지 않았으므로 아직 태평하지 않다 한다. 이 말은 망령되다.
夫太平以治定為效,百姓以安樂為符。孔子曰:「修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
무릇 태평은 다스림이 정해짐을 효험으로 삼고 백성은 편안하고 즐거움을 부절로 삼는다. 공자가 말하였다. 「제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함은 요·순도 오히려 어렵게 여겼다!」
百姓安者,太平之驗也。夫治人以人為主,百姓安而陰陽和,陰陽和則萬物育,萬物育則奇瑞出。視今天下,安乎?危乎?安則平矣,瑞雖未具,無害於平。故夫王道定事以驗,立實以效,效驗不彰,實誠不見。時或實然,証驗不具。是故王道立事以實,不必具驗。聖(主)〔王〕治世,期於平安,不須符瑞。
백성이 편안함이 태평의 증험이다. 무릇 사람을 다스림은 사람을 주로 삼으니 백성이 편안하면 음양이 화하고 음양이 화하면 만물이 자라고 만물이 자라면 기이한 상서가 나온다. 지금 천하를 보면 편안한가, 위태한가. 편안하면 평안한 것이니 상서가 비록 갖추어지지 않아도 평안에 해가 없다. 그러므로 무릇 왕도는 일을 증험으로 정하고 실을 효험으로 세우니 효험이 드러나지 않으면 실다운 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때로 혹 실로 그러하여도 증험이 갖추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왕도는 일을 실로 세우지 반드시 증험을 갖추지 않는다. 성왕이 세상을 다스림에 평안을 기약하지 상서로운 조짐를 기다리지 않는다.
且夫太平之瑞,猶聖(主)〔王〕之相也。聖王骨法未必同,太平之瑞何為當等?彼聞堯、舜之時,鳳皇、景星皆見,《河圖》、《洛書》皆出,以為後王治天下,當復若等之物,乃為太平。用心若此,猶謂堯當復比齒,舜當復八眉也。夫帝王聖相,前後不同,則得瑞古今不等。而今王無鳳鳥、《河圖》,(為)〔謂〕未太平,妄矣。孔子言鳳皇、《河圖》者,假前瑞以為語也,未必謂世當復有鳳皇與《河圖》也。夫帝王之瑞,眾多非一,或以鳳鳥、麒麟,或以《河圖》、《洛書》,或以甘露、醴泉,或以陰陽和調,或以百姓安。今瑞未必同於古,古應未必合於今,遭以所得,未必相襲。何以明之?以帝王興起,命(祜)〔佑〕不同也。
또 무릇 태평의 상서는 성왕의 상과 같다. 성왕의 골법이 반드시 같지 않은데 태평의 상서가 어찌 마땅히 같겠는가. 저들은 요·순 때 봉황·경성이 다 보이고 「하도」·「낙서」가 다 나왔다 듣고 뒷 왕이 천하를 다스림에 마땅히 다시 그런 물건들이 있어야 곧 태평이라 여긴다. 마음 씀이 이 같으면 요가 마땅히 다시 붙은 이이고 순이 마땅히 다시 여덟 빛 눈썹이라 함과 같다. 무릇 제왕의 성스러운 상이 앞뒤로 같지 않으면 상서를 얻음도 고금이 같지 않다. 그런데 지금 왕에게 봉새와 「하도」가 없다고 아직 태평하지 않다 하니 망령되다. 공자가 봉황과 「하도」를 말함은 앞 상서를 빌려 말로 삼은 것이지 반드시 세상에 마땅히 다시 봉황과 「하도」가 있어야 한다 이름이 아니다. 무릇 제왕의 상서는 많아 하나가 아니니 혹은 봉새·기린으로, 혹은 「하도」·「낙서」로, 혹은 감로·예천으로, 혹은 음양이 화하고 고름으로, 혹은 백성이 편안함으로 한다. 지금 상서가 반드시 옛것과 같지 않고 옛 응함이 반드시 지금에 맞지 않으니 만나 얻은 바가 반드시 서로 잇지 않는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제왕이 일어남에 명과 도움이 같지 않음으로 한다.
周則烏、魚,漢斬大蛇。推論唐、虞,猶周、漢也,初興始起,事效物氣,無相襲者。太平瑞應,何故當鈞?以已至之瑞,效方來之應,猶守株待兔之蹊,藏身破之路也。
주나라는 까마귀와 물고기요 한나라는 큰 뱀을 베었다. 당·우를 미루어 논하면 주·한과 같으니 처음 일어나 비로소 일어남에 일의 효험과 물건의 기운이 서로 잇는 것이 없다. 태평의 상서로운 응함이 무슨 까닭으로 마땅히 고르겠는가. 이미 이른 상서로 바야흐로 올 응함을 증험함은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리는 지름길이요 몸을 감추고 깨뜨리는 길이다.
天下太平,瑞應各異,猶家人富殖,物不同也:或積米谷,或藏布帛,或畜牛馬,或長田宅。夫樂米谷不愛布帛,歡牛馬不美田宅,則謂米谷愈布帛,牛馬勝田宅矣。今百姓安矣,符瑞至矣,終謂古瑞《河圖》、鳳皇不至,謂之未安,是猶食稻之人入飯稷之鄉,不見稻米,謂稷為非谷也。實者,天下已太平矣,未有聖人何以致之,未見鳳皇何以效實!問世儒不知聖,何以知今無聖人也?世人見鳳皇,何以知之?既無以知之,何以知今無鳳皇也?委不能知有聖與無,又不能別鳳皇是鳳與非,則必不能定今太平與未平也。
천하가 태평함에 상서로운 응함이 저마다 다름은 집안사람이 부유하게 불림에 물건이 같지 않음과 같다. 혹은 쌀과 곡식을 쌓고 혹은 베와 비단을 갈무리하고 혹은 소와 말을 기르고 혹은 밭과 집을 늘린다. 무릇 쌀과 곡식을 즐기고 베와 비단을 아끼지 않고 소와 말을 기뻐하고 밭과 집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으면 쌀과 곡식이 베와 비단보다 낫고 소와 말이 밭과 집보다 낫다 한다. 지금 백성이 편안하고 상서로운 조짐가 이르렀는데 끝내 옛 상서 「하도」와 봉황이 이르지 않았다 하여 아직 편안하지 않다 하니 이는 벼를 먹는 사람이 기장밥 먹는 고을에 들어 쌀을 보지 못하고 기장을 곡식이 아니라 함과 같다. 실상은 천하가 이미 태평하니 성인이 없다면 무엇으로 이르게 하였고 봉황을 보지 못하였다면 무엇으로 실상을 증험하겠는가! 세상 유자가 성인을 알지 못하는데 무엇으로 지금 성인이 없음을 아는지 묻는다. 세상 사람이 봉황을 보면 무엇으로 아는가. 이미 알 길이 없는데 무엇으로 지금 봉황이 없음을 아는가. 성인이 있고 없음을 알 수 없고 또 봉황이 봉인지 봉이 아닌지 가릴 수 없으니 반드시 지금이 태평한지 아직 평안하지 않은지 정할 수 없다.
孔子曰:「如有王者,必世然後仁。」
공자가 말하였다. 「왕자가 있어도 반드시 한 세대 뒤에야 어질어진다.」
三十年而天下平〔也〕。
서른 해에 천하가 평안해진다는 것이다.
漢興,至文帝時二十餘年,賈誼創議以為天下洽和,當改正朔、服色、制度,定官名,興禮樂。文帝初即位,謙讓未遑。夫如賈生之議,文帝時已太平矣。漢興二十餘年,應孔子之言「必世然後仁」也。漢一(代)〔世〕之年數已滿,太平立矣,賈生知之。況至今且三百年,謂未太平,誤也。且孔子所謂一世,三十年也;漢家三百歲,十帝耀德,未平,如何?夫文帝之時,固已平矣,歷世(持)〔治〕平矣。至平帝時,前漢已滅,光武中興,復致太平。
한나라가 일어나 문제 때에 이르러 스무 해 남짓에 가의가 의논을 내어 천하가 화합하니 마땅히 정삭과 복색과 제도를 고치고 관명을 정하고 예악을 일으켜야 한다 하였다. 문제가 처음 즉위하여 겸양하여 겨를이 없었다. 무릇 가생의 의논대로라면 문제 때 이미 태평하였다. 한나라가 일어나 스무 해 남짓이니 공자의 말 「반드시 한 세대 뒤에야 어질어진다」에 응한다. 한나라 한 세대의 햇수가 이미 찼으니 태평이 섰고 가생이 알았다. 하물며 지금에 이르러 삼백 해가 되어 가는데 아직 태평하지 않다 함은 그르다. 또 공자가 이른 한 세대는 서른 해다. 한나라 집안이 삼백 해에 열 제왕이 덕을 빛냈는데 평안하지 않다 하니 어떠한가. 무릇 문제 때에 본디 이미 평안하였고 세대를 거쳐 다스려져 평안하였다. 평제 때에 이르러 전한이 이미 멸하고 광무가 중흥하여 다시 태평을 이르게 하였다.
問曰:「文帝有瑞,可名太平;光武無瑞,謂之太平,如何?」
묻는다. 「문제는 상서가 있어 태평이라 이름할 수 있으나 광무는 상서가 없는데 태평이라 함은 어떠한가?」
曰:夫帝王瑞應,前後不同。雖無物瑞,百姓宁集,風氣調和,是亦瑞也。何以明之?帝王治平,升封太山,告安也。秦始皇升封太山,遭雷雨之變,治未平,氣未和。光武皇帝升封,天晏然無雲,太平之應也,治平氣應。光武之時,氣和人安,物瑞等至,人氣已驗,論者猶疑。孝宣皇帝元康二年,鳳皇集於太山,後又集於新平。四年,神雀集於長樂宮,或集於上林,九真獻麟。神雀二年,鳳皇、甘露降集京師。
답한다. 무릇 제왕의 상서로운 응함은 앞뒤로 같지 않다. 비록 물건의 상서가 없어도 백성이 편안히 모이고 바람 기운이 고르고 화하면 이 또한 상서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제왕이 다스림이 평안하면 태산에 올라 봉선하여 편안함을 알린다. 진 시황이 태산에 올라 봉선하다가 우레와 비의 변고를 만났으니 다스림이 아직 평안하지 않고 기운이 아직 화하지 않은 것이다. 광무황제가 올라 봉선함에 하늘이 맑아 구름이 없었으니 태평의 응함이라 다스림이 평안하여 기운이 응한 것이다. 광무 때에 기운이 화하고 사람이 편안하며 물건의 상서가 고르게 이르러 사람과 기운이 이미 증험되었는데 논하는 이가 오히려 의심한다. 효선황제 원강 이년에 봉황이 태산에 모였고 뒤에 또 신평에 모였다. 사년에 신작이 장락궁에 모였고 혹은 상림에 모였고 구진이 기린을 바쳤다. 신작 이년에 봉황과 감로가 경사에 내려 모였다.
四年,鳳皇下杜陵及上林。五鳳三年,帝祭南郊,神光并見,或興(子)〔於〕谷,燭耀齋宮,十有餘(日)〔刻〕。明年,祭後土,靈光復至,至如南郊之時;甘露、神雀降集延壽萬歲宮。其年三月,鸞鳳集長樂宮東門中樹上。甘露元年,黃龍至,見於新丰,醴泉滂流。彼鳳皇雖五六至,或時一鳥而數來,或時異鳥而各至。麒麟、神雀、黃龍、鸞鳥、甘露、醴泉,祭後土、天地之時,神光靈耀,可謂繁盛累積矣。孝明時雖無鳳皇,亦致〔麒〕麟、甘露、醴泉、神雀、白雉、紫芝、嘉禾,金出鼎見,離木復合。五帝、三王,經傳所載瑞應,莫盛孝明。如以瑞應效太平,宣、明之年倍五帝、三王也。夫如是,孝宣、孝明可謂太平矣。
사년에 봉황이 두릉과 상림에 내렸다. 오봉 삼년에 임금이 남교에 제사하니 신령한 빛이 아울러 보여 혹 골짜기에서 일어나 재궁을 비추어 밝힘이 열 남짓 각이었다. 이듬해 후토에 제사하니 신령한 빛이 다시 이르렀는데 남교 때와 같았고 감로와 신작이 연수궁·만세궁에 내려 모였다. 그해 삼월에 난새와 봉황이 장락궁 동문 안 나무 위에 모였다. 감로 원년에 황룡이 이르러 신풍에 보이고 예천이 넘쳐 흘렀다. 저 봉황이 비록 대여섯 번 이르렀으나 혹 때로 한 새가 여러 번 오고 혹 때로 다른 새가 저마다 이르렀다. 기린·신작·황룡·난새·감로·예천과 후토와 하늘과 땅에 제사할 때 신령한 빛이 신령하게 빛남은 번성하고 쌓였다 할 만하다. 효명 때에 비록 봉황이 없었으나 또한 기린·감로·예천·신작·흰 꿩·자줏빛 지초·가화를 이르게 하였고 금이 나오고 솥이 보이고 떨어진 나무가 다시 합하였다. 오제·삼왕이 경전에 실린 상서로운 응함이 효명보다 성한 것이 없다. 상서로운 응함으로 태평을 증험하면 선제·명제의 해가 오제·삼왕의 곱절이다. 무릇 이러하면 효선·효명은 태평이라 할 만하다.
能致太平者,聖人也,世儒何以謂世未有聖人?天之稟氣,豈為前世者渥,後世者泊哉!周有三聖,文王、武王、周公并時猥出。漢亦一代也,何以當少於周?周之聖王,何以當多於漢?漢之高祖、光武,周之文、武也。文帝、武帝、宣帝、孝明、今上,過周之成、康、宣王。非以身生漢世,可褒增頌嘆,以求媚稱也;核事理之情,定說者之實也。俗好褒遠稱古,講瑞〔則〕上世為美,論治則古王為賢,睹奇於今,終不信然。使堯、舜更生,恐無聖名。獵者獲禽,觀者樂獵,不見漁者,(之)心不顧也。是故觀於齊不虞魯,游於楚不歡宋。唐、虞、夏、殷同載在二尺四寸,儒者(推)〔抽〕讀,朝夕講習,不見漢書,謂漢劣不若,亦觀獵不見漁,游齊、楚不願宋、魯也。使漢有弘文之人,經傳漢事,則《尚書》、《春秋》也,儒者宗之,學者習之,將襲舊六為七,今上、上王至高祖皆為聖帝矣。觀杜撫、班固等所上《漢頌》,頌功德符瑞,汪深廣,滂沛無量,逾唐、虞,入皇域,三代隘辟,厥深沮也。殷監不遠,在夏后之世。且舍唐、虞、夏、殷,近與周家斷量功德,實商優劣,周不如漢。
태평을 이르게 할 수 있는 이는 성인인데 세상 유자가 무엇으로 세상에 아직 성인이 없다 하는가. 하늘이 기운을 줌에 어찌 앞 세상은 두텁고 뒷세상은 얇겠는가! 주나라에 세 성인이 있어 문왕·무왕·주공이 같은 때에 많이 나왔다. 한나라도 한 대인데 무엇으로 마땅히 주나라보다 적겠는가. 주나라의 성왕이 무엇으로 마땅히 한나라보다 많겠는가. 한나라의 고조·광무는 주나라의 문·무다. 문제·무제·선제·효명·지금 임금은 주나라의 성·강·선왕을 넘는다. 몸이 한나라 세상에 났다고 기려 더하고 기리고 감탄하여 아첨의 일컬음을 구함이 아니라 일과 이치의 정을 살피고 설명하는 이의 실상을 정함이다. 세속은 먼 것을 기리고 옛것을 일컫기 좋아하여 상서를 강론하면 윗세상이 아름답다 하고 다스림을 논하면 옛 왕이 어질다 하며 지금에 기이함을 보아도 끝내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 요·순이 다시 나도 아마 성스러운 이름이 없을 것이다. 사냥하는 이가 짐승을 잡으면 보는 이가 사냥을 즐기고 고기 잡는 이를 보지 않으면 마음이 돌아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제나라를 보면 노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초나라에 노닐면 송나라를 기뻐하지 않는다. 당·우·하·은이 함께 두 자 네 치에 실려 있어 유자가 뽑아 읽어 아침저녁 강습하나 한나라 글을 보지 않고 한나라가 못하여 같지 않다 하니 또한 사냥을 보고 고기 잡음을 보지 않고 제·초에 노닐어 송·노를 바라지 않음이다. 한나라에 글을 넓히는 사람이 있어 한나라 일을 경전으로 하면 곧 「상서」·「춘추」니 유자가 높이고 배우는 이가 익혀 장차 옛 여섯을 이어 일곱이 되어 지금 임금과 위 왕으로 고조에 이르기까지 다 성스러운 제왕이 될 것이다. 두무·반고 등이 올린 「한송」을 보면 공덕과 상서로운 조짐를 기림이 깊고 넓고 넘치게 커서 헤아릴 수 없어 당·우를 넘어 황의 지경에 들고 삼대는 좁고 치우쳐 그 깊음이 무너진다. 은나라의 거울이 멀지 않으니 하후의 세상에 있다. 또 당·우·하·은을 버리고 가까이 주나라 집안과 공덕을 끊어 헤아리고 실로 넉넉하고 못함을 헤아리면 주나라가 한나라만 못하다.
何以驗之?周之受命者文、武也,漢則高祖、光武也。文、武受命之降怪,不及高祖、光武初起之佑;孝宣、〔孝〕明之瑞,美於周之成、康、宣王。孝宣、孝明符瑞,唐、虞以來,可謂盛矣。今上即命,奉成持滿,四海混一,天下定宁,物瑞已極,人應(訂)〔斯〕隆。唐世黎民雍熙,今亦天下修仁,歲遭運氣,谷頗不登,路無絕道之憂,深幽無屯聚之奸。周家越常獻白雉,方今匈奴、鄯善、哀牢貢獻牛馬。周時僅治五千里內,漢氏廓土收荒服之外。牛馬珍於白雉,近屬不若遠物。古之戎狄,今為中國;古之人,今被朝服;古之露首,今冠章甫;古之跣跗,今履(商)〔高〕舄。以盤石為沃田,以桀暴為良民,夷坎坷為平均,化不賓為齊民,非太平而何?夫實德化則周不能過漢,論符瑞則漢盛於周,度土境則周狹於漢,漢何以不如周?獨謂周多聖人,治致太平?儒者稱聖泰隆,使聖卓而無跡;稱治亦泰盛,使太平絕而無續也。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주나라의 명 받은 이는 문·무요 한나라는 곧 고조·광무다. 문·무가 명을 받을 때 내린 괴이함은 고조·광무가 처음 일어난 도움에 미치지 못하고 효선·효명의 상서는 주나라 성·강·선왕보다 아름답다. 효선·효명의 상서로운 조짐는 당·우 이래로 성하다 할 만하다. 지금 임금이 명에 나아가 이룸을 받들고 참을 지켜 사해가 하나로 섞이고 천하가 안정되어 물건의 상서가 이미 지극하고 사람의 응함이 이에 융성하다. 당의 세상에 백성이 화락하였고 지금도 천하가 어짊을 닦아 해가 운기를 만나 곡식이 자못 익지 않아도 길에 길이 끊기는 근심이 없고 깊고 그윽한 데 모여 둔치는 간사함이 없다. 주나라 집안에 월상이 흰 꿩을 바쳤고 지금은 흉노·선선·애뢰가 소와 말을 바친다. 주나라 때는 겨우 오천 리 안을 다스렸고 한씨는 땅을 넓혀 황복 밖까지 거두었다. 소와 말은 흰 꿩보다 진귀하고 가까이 붙음은 먼 물건만 못하다. 옛날의 융적이 지금은 중국이 되고 옛날의 뭉텅이 머리가 지금은 조복을 입고 옛날의 드러낸 머리가 지금은 장보관을 쓰고 옛날의 맨발이 지금은 높은 신을 신는다. 반석을 기름진 밭으로 삼고 걸처럼 사나운 이를 어진 백성으로 삼고 울퉁불퉁함을 고르게 평평히 하고 복종하지 않던 이를 교화하여 여느 백성으로 삼으니 태평이 아니고 무엇인가. 무릇 실로 덕의 교화는 주나라가 한나라를 넘을 수 없고 상서로운 조짐를 논하면 한나라가 주나라보다 성하고 땅의 지경을 헤아리면 주나라가 한나라보다 좁은데 한나라가 무엇으로 주나라만 못한가. 홀로 주나라에 성인이 많아 다스림이 태평을 이르게 하였다 하는가. 유자가 성인을 일컬음이 너무 높아 성인을 뛰어나게 하여 자취가 없게 하고 다스림을 일컬음도 너무 성하여 태평을 끊겨 이음이 없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