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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頌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20 · 한자 2,345자 · 낭독 9.4분

「논형」 수송편 「須頌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古之帝王建鴻德者,須鴻筆之臣。褒頌紀載,鴻德乃彰,萬世乃聞。

옛 제왕으로 큰 덕을 세운 이는 큰 붓의 신하를 기다렸다. 기리고 노래하여 기록하여 실어야 큰 덕이 곧 드러나 만세에 곧 들린다.

問說《書》者:「『欽明文思』以下,誰所言也?」曰:「篇家也。」「篇家誰也?」「孔子也。」然則孔子鴻筆之人也,自衛反魯,然後樂正,《雅》、《頌》各得其所也。

「서」를 설명하는 이에게 묻는다. 「『흠명문사』 이하는 누가 말한 것인가?」 말한다. 「편을 지은 집이다.」 「편을 지은 집은 누구인가?」 「공자다.」 그러니 공자는 큰 붓의 사람이라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야 음악이 바루어지고 「아」·「송」이 저마다 그 자리를 얻었다.

鴻筆之奮,蓋斯時也。或說《尚書》曰:「尚者,上也;上所為,下所書也。」「下者誰也?」曰:「臣子也。」然則臣子書上所為矣。

큰 붓의 떨침이 아마 이때다. 혹 「상서」를 설명하여 말한다. 「상은 위다. 위가 한 바를 아래가 적은 것이다.」 「아래는 누구인가?」 말한다. 「신하다.」 그러니 신하가 위가 한 바를 적은 것이다.

問儒者:「禮言制,樂言作,何也?」曰:「禮者,上所制,故曰制;樂者,下所作,故曰作。天下太平,頌聲作。」

유자에게 묻는다. 「예는 제라 말하고 악은 작이라 말함은 어째서인가?」 말한다. 「예는 위가 제정한 바이므로 제라 하고 악은 아래가 지은 바이므로 작이라 한다. 천하가 태평하면 노래하는 소리가 지어진다.」

方今天下太平矣,頌詩樂聲,可以作未?傳者不知也,故曰拘儒。衛孔悝之鼎銘,周臣勸行。孝宣皇帝稱潁川太守黃霸有治狀,賜金百斤,漢臣勉政。夫以人主頌稱臣子,臣子當褒君父,於義較矣。虞氏天下太平,夔歌舜德。宣王惠周,《詩》頌其行。召伯述職,周歌棠樹。

지금 천하가 태평한데 노래하는 시와 음악 소리를 지을 수 있는가, 아닌가. 전하는 이가 알지 못하므로 얽매인 유자라 한다. 위나라 공회의 솥 새김은 주나라 신하가 행실을 권한 것이다. 효선황제가 영천 태수 황패에게 다스린 실적이 있다 일컬어 금 백 근을 내리니 한나라 신하가 정사에 힘썼다. 무릇 임금으로 신하를 기려 일컫는데 신하가 마땅히 임금과 아비를 기려야 함은 의에 뚜렷하다. 우씨의 천하가 태평하니 악관 기가 순의 덕을 노래하였다. 선왕이 주나라에 은혜로우니 「시」가 그 행실을 노래하였다. 소백이 직책을 살피니 주나라가 팥배나무를 노래하였다.

是故《周頌》三十一,《殷頌》五,《魯頌》四,凡頌四十篇,詩人所以嘉上也。由此言之,臣子當頌,明矣。

이 때문에 「주송」이 서른하나요 「은송」이 다섯이요 「노송」이 넷이니 무릇 송이 마흔 편이라 시인이 위를 아름답게 여긴 까닭이다. 이로써 말하면 신하가 마땅히 노래해야 함이 분명하다.

儒者謂漢無聖帝,治化未太平。《宣漢》之篇,論漢已有聖帝,治已太平。《恢國》之篇,極論漢德非常,實然乃在百代之上。表德頌功,宣褒主上,詩之頌言,右臣之典也。舍其家而觀他人之室,忽其父而稱異人之翁,未為德也。漢,今天下之家也;先帝、今上民臣之翁也。夫曉主德而頌其美,識國奇而恢其功,孰與疑暗不能也!孔子稱「大哉,堯之為君也!唯天為大,唯堯則之。蕩蕩乎民無能名焉」。或年五十,擊壤於塗,或曰:「大哉,堯之德也!」擊壤者曰:「吾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飲,耕田而食,堯何等力?」

유자는 한나라에 성스러운 제왕이 없고 다스림과 교화가 아직 태평하지 않다 한다. 「선한」 편은 한나라에 이미 성스러운 제왕이 있고 다스림이 이미 태평함을 논하였다. 「회국」 편은 한나라 덕이 예사롭지 않아 실로 그러하여 곧 백대의 위에 있음을 끝까지 논하였다. 덕을 드러내고 공을 노래하며 임금을 펴 기림은 시의 노래하는 말이요 신하를 돕는 법이다. 제 집을 버리고 남의 집을 보며 제 아비를 소홀히 하고 남의 늙은이를 일컬음은 덕이 되지 않는다. 한나라는 지금 천하의 집이요 선제와 지금 임금은 백성과 신하의 늙은이다. 무릇 임금의 덕을 알아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나라의 기이함을 알아 그 공을 넓힘이 의심하고 어두워 할 수 없음과 어느 것이 나은가! 공자가 「크도다, 요의 임금 됨이여! 오직 하늘이 크거늘 오직 요가 본받았다. 넓고 넓도다, 백성이 이름할 수 없네」 일컬었다. 혹 나이 쉰에 길에서 흙덩이를 치니 혹이 말하였다. 「크도다, 요의 덕이여!」 흙덩이 치는 이가 말하였다. 「나는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며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먹으니 요가 무슨 힘이 있는가?」

孔子乃言「大哉堯之德」者,乃知堯者也。涉聖世不知聖主,是則盲者不能別青黃也;知聖主不能頌,是則暗者不能言是非也。然則方今盲喑之儒,與唐擊壤之民,同一才矣。夫孔子及唐人言「大哉」者,知堯德,蓋堯盛也。擊壤之民云「堯何等力」,是不知堯德也。

공자가 곧 「크도다 요의 덕」이라 말함은 곧 요를 안 것이다. 성스러운 세상을 건너며 성스러운 임금을 알지 못함은 곧 눈먼 이가 푸르고 누름을 가리지 못함이요, 성스러운 임금을 알면서 노래하지 못함은 곧 벙어리가 옳고 그름을 말하지 못함이다. 그러니 지금의 눈멀고 벙어리인 유자는 당의 흙덩이 치는 백성과 같은 한 재주다. 무릇 공자와 당나라 사람이 「크도다」 말한 것은 요의 덕을 안 것이니 아마 요가 성해서다. 흙덩이 치는 백성이 「요가 무슨 힘이 있는가」 함은 이는 요의 덕을 알지 못함이다.

夜舉燈燭,光曜所及,可得度也。日照天下,遠近廣狹,難得量也。浮於淮、濟,皆知曲折;入東海者,不曉南北。故夫廣大從橫難數,極深揭歷難測。漢德酆廣,日光海外也。知者知之,不知者不知漢盛也。漢家著書,多上及殷、周,諸子并作,皆論他事,無褒頌之言,《論衡》有之。又《詩》頌國名《周頌》,與杜撫、〔班〕固所上《漢頌》,相依類也。

밤에 등불과 촛불을 들면 빛이 미치는 바를 헤아릴 수 있다. 해가 천하를 비추면 멀고 가깝고 넓고 좁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회수·제수에 뜨면 다 굽이를 아나 동해에 든 이는 남북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릇 넓고 큰 가로세로는 세기 어렵고 지극히 깊음은 걷어 올려 건너기 어려워 재기 어렵다. 한나라 덕은 풍성하고 넓어 햇빛이 바다 밖까지다. 아는 이는 알고 알지 못하는 이는 한나라의 성함을 알지 못한다. 한나라 집안이 책을 지음에 흔히 위로 은·주에 미치고 제자가 아울러 지음에 다 다른 일을 논하여 기려 노래하는 말이 없는데 「논형」에 있다. 또 「시」의 송은 나라 이름으로 「주송」이라 하였으니 두무·반고가 올린 「한송」과 서로 의지하는 무리다.

宣帝之時,畫圖漢列士,或不在於畫上者,子孫恥之。何則?父祖不賢,故不畫圖也。夫頌言,非徒畫文也。如千世之後,讀經書不見漢美,後世怪之。故夫古之通經之臣,紀主令功,記於竹帛;頌上令德,刻於鼎銘。文人涉世,以此自勉。漢德不及六代,論者不德之故也。

선제 때에 한나라 열사를 그림으로 그리니 혹 그림 위에 있지 않은 이는 자손이 부끄러워하였다. 어째서인가. 아비와 할아비가 어질지 않으므로 그림에 그리지 않아서다. 무릇 노래하는 말은 한갓 그림의 글이 아니다. 천 세 뒤에 경서를 읽고 한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 후세가 괴이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옛날에 경에 통한 신하는 임금의 아름다운 공을 기록하여 대와 비단에 적고 위의 아름다운 덕을 노래하여 솥 새김에 새겼다. 문인이 세상을 건너며 이로써 스스로 힘썼다. 한나라 덕이 여섯 대에 미치지 못함은 논하는 이가 덕으로 여기지 않는 까닭이다.

地有丘,故有高平,或以鍤平而夷之,為平地矣。世見五帝、三王為經書,漢事不載,則謂五、三優於漢矣。或以論為鍤,損(三)五、〔三〕,少丰滿漢家之下,豈徒并為平哉!漢將為丘,五、三轉為矣。湖池非一,廣狹同也,樹竿測之,深淺可度。漢與百代俱為主也,實而論之,優劣可見。故不樹長竿,不知深淺之度;無《論衡》之論,不知優劣之實。漢在百代之末,上與百代料德,湖池相與比也。無鴻筆之論,不免庸庸之名。論好稱古而毀今,恐漢將在百代之下,豈徒同哉!

땅에 언덕과 구렁이 있으므로 높고 평평함이 있는데 혹 삽으로 평평히 하여 고르면 평지가 된다. 세상은 오제·삼왕이 경서가 되고 한나라 일이 실리지 않음을 보고 곧 오제·삼왕이 한나라보다 넉넉하다 한다. 혹 논을 삽으로 삼아 오제·삼왕을 덜고 한나라 집안의 아래를 조금 가득 채우면 어찌 한갓 아울러 평평함이 되겠는가! 한나라가 장차 언덕이 되고 오제·삼왕이 도리어 구렁이 될 것이다. 호수와 못이 하나가 아닌데 넓고 좁음이 같으면 장대를 세워 재면 깊고 얕음을 헤아릴 수 있다. 한나라와 백대가 다 임금이 되니 실로 논하면 넉넉하고 못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긴 장대를 세우지 않으면 깊고 얕음의 도를 알지 못하고 「논형」의 논이 없으면 넉넉하고 못함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 한나라는 백대의 끝에 있어 위로 백대와 덕을 헤아리니 호수와 못이 서로 견줌이다. 큰 붓의 논이 없으면 용렬한 이름을 면하지 못한다. 논은 옛것을 일컫고 지금을 헐기 좋아하니 아마 한나라가 장차 백대의 아래에 있을 것이니 어찌 한갓 같기만 하겠는가!

謚者,行之跡也。謚之美者,成、宣也;惡者,靈、歷也。成湯遭旱,周宣亦然。然而成湯加「成」,宣王言〔宣〕,無妄之災,不能虧政,臣子累謚,不失實也。由斯以論堯,堯亦美謚也,時亦有洪水,百姓不安,猶言堯者,得實考也。夫一字之謚,尚猶明主,況千言之論,萬文之頌哉!

시호는 행실의 자취다. 시호의 아름다운 것은 성·선이요 악한 것은 영·여다. 성탕이 가뭄을 만났고 주 선왕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성탕은 「성」을 더하였고 선왕은 「선」이라 말하였으니 무망의 재앙이 정사를 이지러뜨릴 수 없어 신하가 시호를 쌓음에 실상을 잃지 않았다. 이로써 요를 논하면 요도 아름다운 시호니 때에 또한 홍수가 있어 백성이 편안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요라 말함은 실다운 살핌을 얻은 것이다. 무릇 한 글자의 시호도 오히려 밝은 임금을 밝히는데 하물며 천 마디 논과 만 글자 노래이랴!

船車載人,孰與其徒多也?素車朴船,孰與加漆采畫也?

배와 수레로 사람을 실음이 걸어감과 어느 것이 많은가. 흰 수레와 질박한 배가 옻칠하고 채색 그림을 더함과 어느 것이 나은가.

然則鴻筆之人,國之船車采畫也。農無(疆)〔強〕夫,谷粟不登;國無強文,德暗不彰。漢德不休,亂在百代之間,強筆之儒不著載也。高祖以來,著書非不講論。漢司馬長卿為《封禪書》,文約不具。司馬子長紀黃帝以至孝武,揚子雲錄宣帝以至哀、平,陳平仲紀光武,班孟堅頌孝明,漢家功德,頗可觀見。今上即命,未有褒載,《論衡》之人,為此畢精,故有《齊世》、《宣漢》、《恢國》、《驗符》。

그러니 큰 붓의 사람은 나라의 배와 수레의 채색 그림이다. 농사에 강한 지아비가 없으면 곡식이 익지 않고 나라에 강한 글이 없으면 덕이 어두워 드러나지 않는다. 한나라 덕이 아름답지 않아 백대 사이에 어지러이 있음은 강한 붓의 유자가 적어 싣지 않아서다. 고조 이래로 책을 지음에 강론하지 않음이 아니다. 한나라 사마장경이 「봉선서」를 지었으나 글이 간략하여 갖추지 않았다. 사마자장이 황제로부터 효무에 이르기까지 기록하고 양자운이 선제로부터 애·평에 이르기까지 기록하고 진평중이 광무를 기록하고 반맹견이 효명을 노래하니 한나라 집안의 공덕이 자못 볼 만하다. 지금 임금이 명에 나아감에 아직 기려 실음이 없어 「논형」의 사람이 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으므로 「제세」·「선한」·「회국」·「험부」가 있다.

龍無雲雨不能參天。鴻筆之人,國之雲雨也。載國德於傳書之上,宣昭名於萬世之後,厥高非徒參天也。城牆之土,平地之壤也,人加筑蹈之力,樹立臨池。國之功德崇於城牆,文人之筆勁於筑蹈。聖主德盛功立,(莫)〔若〕不褒頌紀載,奚得傳馳流去無疆乎?人有高行,或譽得其實,或欲稱之不能言,或謂不善不肯陳(一)。斷此三者,孰者為賢?五、三之際,於斯為盛。孝明之時,眾瑞并至,百官臣子不為少矣,唯班固之徒稱頌國德,可謂譽得其實矣。頌文譎以奇,彰漢德於百代,使帝名如日月,孰與不能言,言之不美善哉!

용은 구름과 비가 없으면 하늘에 오를 수 없다. 큰 붓의 사람은 나라의 구름과 비다. 나라의 덕을 전하는 글 위에 싣고 밝은 이름을 만세 뒤에 펴니 그 높음이 한갓 하늘에 오름만이 아니다. 성벽의 흙은 평지의 흙인데 사람이 쌓고 밟는 힘을 더하여 세워 못에 임한다. 나라의 공덕은 성벽보다 높고 문인의 붓은 쌓고 밟음보다 굳세다. 성주가 덕이 성하고 공이 섰는데 기려 노래하여 기록하여 싣지 않으면 어찌 전하여 달려 흘러 끝없이 가겠는가. 사람에게 높은 행실이 있으면 혹 기림이 그 실상을 얻고 혹 일컬으려 하나 말할 수 없고 혹 착하지 않다 하여 펴려 하지 않는다. 이 셋을 끊어 보면 어느 것이 어진가. 오제·삼왕의 즈음에 이에 성하였다. 효명 때에 뭇 상서가 아울러 이르니 백관과 신하가 적지 않았는데 오직 반고의 무리가 나라의 덕을 일컬어 노래하였으니 기림이 그 실상을 얻었다 할 만하다. 노래하는 글이 기이함으로 뛰어나 한나라 덕을 백대에 드러내어 제왕의 이름을 해와 달 같게 함이 말할 수 없음과 말하여도 아름답고 착하지 않음과 어느 것이 나은가!

秦始皇東南游,升會稽山,李斯刻石,紀頌帝德,至琅琊亦然。秦無道之國,刻石文世,觀讀之者見堯、舜之美。由此言之,須頌明矣。當今非無李斯之才也,無從升會稽歷琅琊之階也。弦歌為妙異之曲,坐者不曰善,弦歌之人必怠不精。何則?妙異難為,觀者不知善也。聖國揚妙異之政,眾臣不頌,將順其美,安得所施哉!今方(板)〔技〕之書在竹帛,無主名所從生出,見者忽然不卸服也。如題曰(甲)〔某〕甲某子之方,若言已驗嘗試,人爭刻寫,以為珍秘。上書於國,(記)奏〔記〕於郡,譽荐士吏,稱術行能,章下記出,士吏賢妙。何則?章表其行,記明其才也。國德溢熾,莫有宣褒,使聖國大漢有庸庸之名,咎在俗儒不實論也。

진 시황이 동남으로 노닐어 회계산에 오르니 이사가 돌에 새겨 제왕의 덕을 기록하여 노래하였고 낭야에 이르러서도 그러하였다. 진나라는 도 없는 나라인데 돌에 새겨 세상에 글을 남기니 보고 읽는 이가 요·순의 아름다움을 본다. 이로써 말하면 노래를 기다림이 분명하다. 지금 이사의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회계에 오르고 낭야를 지날 계단을 따를 데가 없는 것이다. 현악과 노래로 묘하고 다른 곡을 하여도 앉은 이가 좋다 하지 않으면 현악과 노래하는 사람이 반드시 게을러 정밀하지 않다. 어째서인가. 묘하고 다름은 하기 어려운데 보는 이가 좋음을 알지 못해서다. 성스러운 나라가 묘하고 다른 정사를 드날리는데 뭇 신하가 노래하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받들어 따름이 어찌 베풀 데를 얻겠는가! 지금 방기의 책이 대와 비단에 있어 주인 이름과 나온 바가 없으면 보는 이가 소홀히 하여 삼가 받들지 않는다. 제목에 아무개 아무개의 방이라 하고 이미 증험하고 시험하였다 말하면 사람이 다투어 새기고 베껴 진귀한 비밀로 여긴다. 나라에 글을 올리고 군에 기를 아뢰어 선비와 아전을 기려 천거하고 술법과 행실과 능함을 일컬으면 장계가 내려오고 기가 나옴에 선비와 아전이 어질고 묘하다. 어째서인가. 장계가 그 행실을 드러내고 기가 그 재주를 밝혀서다. 나라의 덕이 넘치고 치열한데 펴 기리는 이가 없어 성스러운 나라 큰 한나라에 용렬한 이름이 있게 함은 허물이 속된 유자가 실답게 논하지 않음에 있다.

古今聖王不絕,則其符瑞亦宜累屬。符瑞之出,不同於前,或時已有,世無以知,故有《講瑞》。俗儒好長古而短今,言瑞則渥前而薄後。是應實而定之,漢不為少。漢有實事,儒者不稱;古有虛美,誠心然之。信久遠之偽,忽近今之實。斯蓋三增九虛,所以成也;能聖實聖,所以興也。儒者稱聖過實,稽合於漢,漢不能及。非不能及,儒者之說使難及也。〔如〕實(而)論之,漢更難及。谷熟歲平,聖王因緣以立功化,故《治期》之篇,為漢激發。治有期,亂有時。能以亂為治者優,優者有之。建初孟年,無妄氣至,聖世之期也。皇帝執德,救備其災,故《順鼓》、《明雩》,為漢應變。是故災變之至,或在聖世。時旱禍湛,為漢論災。是故《春秋》為漢制法,《論衡》為漢平說。從門應庭,聽堂室之言,什而失九,如升堂窺室,百不失一。《論衡》之人在古荒流之地,其遠非徒門庭也。

고금에 성왕이 끊이지 않으면 그 상서로운 조짐도 마땅히 잇달아야 한다. 상서로운 조짐의 나옴이 앞과 같지 않아 혹 때로 이미 있어도 세상이 알 길이 없으므로 「강서」가 있다. 속된 유자는 옛것을 길게 하고 지금을 짧게 하기 좋아하여 상서를 말하면 앞을 두텁게 하고 뒤를 얇게 한다. 「시응」은 실답게 하여 정하니 한나라가 적지 않다. 한나라에 실다운 일이 있어도 유자가 일컫지 않고 옛날에 헛된 아름다움이 있어도 정성으로 그렇다 한다. 오래고 먼 거짓을 믿고 가깝고 지금의 실상을 소홀히 한다. 이것이 아마 「삼증」·「구허」가 이루어진 까닭이요 「능성」·「실성」이 일어난 까닭이다. 유자가 성인을 일컬음이 실상을 지나쳐 한나라에 견주어 맞추면 한나라가 미칠 수 없다. 미칠 수 없음이 아니라 유자의 설이 미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실로 논하면 한나라가 더욱 미치기 어렵다. 곡식이 익고 해가 평안하면 성왕이 인연하여 공과 교화를 세우므로 「치기」 편이 한나라를 위해 격발하였다. 다스림에 기한이 있고 어지러움에 때가 있다. 어지러움으로 다스림을 삼을 수 있는 이는 넉넉하니 넉넉한 이가 있다. 건초 첫 해에 무망의 기운이 이르니 성스러운 세상의 기한이다. 황제가 덕을 잡아 그 재앙을 구하여 갖추었으므로 「순고」·「명우」가 한나라를 위해 변고에 응하였다. 이 때문에 재변의 이름이 혹 성스러운 세상에 있다. 때로 가물고 화가 잠기니 한나라를 위해 재앙을 논하였다. 이 때문에 「춘추」는 한나라를 위해 법을 지었고 「논형」은 한나라를 위해 설을 고르게 하였다. 문에서 뜰에 응하여 당과 방의 말을 들으면 열에 아홉을 잃고 당에 올라 방을 엿보면 백에 하나를 잃지 않는다. 「논형」의 사람이 옛 황폐하고 흐르는 땅에 있으니 그 멂이 한갓 문과 뜰이 아니다.

日刻徑重千里,人不謂之廣者,遠也。望夜甚雨,月光不暗,人不睹曜者,隱也。聖者垂日月之明,處在中州。隱於百里,遙聞傳授,不實。形耀不實,難論。得詔書到,計吏至,乃聞聖政。

해의 지름이 천 리를 거듭하여도 사람이 넓다 하지 않음은 멀어서다. 보름밤에 비가 심하게 와도 달빛이 어둡지 않은데 사람이 빛남을 보지 못함은 숨어서다. 성인은 해와 달의 밝음을 드리우니 처함이 중주에 있다. 백 리에 숨어 멀리서 전하여 받음을 들으니 실답지 않다. 형상과 빛남이 실답지 않으니 논하기 어렵다. 조서가 이르고 계리가 이르러야 곧 성스러운 정사를 듣는다.

是以褒功失丘山之積,頌德遺膏腴之美。使至台閣之下,蹈班、賈之跡,論功德之實,不失毫厘之微。武王封比干之墓,孔子顯三累之行。大漢之德,非直比干三累也。道立(國)〔郵〕表,路出其下,望(國)〔郵〕表者昭然知路。

이 때문에 공을 기림에 언덕과 산의 쌓임을 잃고 덕을 노래함에 기름진 아름다움을 빠뜨린다. 대각 아래에 이르러 반고·가의의 자취를 밟아 공덕의 실상을 논하게 하면 터럭만 한 작음도 잃지 않을 것이다. 무왕이 비간의 무덤을 봉하고 공자가 세 번 쌓은 행실을 드러냈다. 큰 한나라의 덕은 한갓 비간과 세 번 쌓음뿐이 아니다. 길에 역참 표를 세우면 길이 그 아래로 나와 역참 표를 바라보는 이가 환히 길을 안다.

漢德明著,莫立邦表之言,故浩廣之德未光於世也。

한나라 덕이 밝고 드러나도 나라 표의 말을 세우는 이가 없으므로 넓고 큰 덕이 아직 세상에 빛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