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佚文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6 · 한자 2,040자 · 낭독 8.2분

「논형」 일문편 「佚文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孝武皇帝封弟為魯恭王。恭王坏孔子宅以為宮,得佚《尚書》百篇,《禮》三百,《春秋》三十篇,《論語》二十一篇,(聞)弦歌之聲,俱復封塗,上言武帝。武帝遣吏發取,古經《論語》,此時皆出。經傳也而有〔聞〕弦歌之聲,文當興於漢,喜樂得之祥也。當傳於漢,寢藏牆壁之中,恭王〔聞〕之,聖王感動弦歌之象。此則古文不當掩,漢俟以為符也。孝成皇帝讀百篇《尚書》,博士、郎吏莫能曉知,征天下能為《尚書》者。東海張霸通《左氏春秋》,案百篇序,以《左氏》訓詁造作百二篇,具成奏上。成帝出秘《尚書》以考校之,無一字相應者,成帝下霸於吏,吏當器辜大不謹敬。成帝奇霸之才,赦其辜,亦不(減)〔滅〕其經。故百二《尚書》傳在民間。孔子曰「才難」,能推精思,作經百篇,才高卓,希有之人也。成帝赦之,多其文也。雖奸非實,次序篇句,依倚事類,有似真是,故不燒滅之。疏一櫝相遣以書,書十數札,奏記長吏,文成可觀,讀之滿意,百不能一。張霸推精思至於百篇,漢世(實)〔寡〕類,成帝赦之,不亦宜乎!楊子山為郡上計吏,見三府為《哀牢傳》不能成,歸郡作上,孝明奇之,征在蘭台。夫以三府掾吏,叢積成才,不能成一篇。子山成之,上覽其文。子山之傳,豈必審是,傳聞依為之有狀,會三府之士,終不能為,子山為之,斯須不難。成帝赦張霸,豈不有以哉!

효무황제가 아우를 봉하여 노 공왕으로 삼았다. 공왕이 공자의 집을 헐어 궁으로 삼으려다 잃어버린 「상서」 백 편과 「예」 삼백과 「춘추」 삼십 편과 「논어」 스물한 편을 얻고 현악과 노래 소리를 듣고는 다 다시 봉하여 바르고 무제에게 아뢰었다. 무제가 아전을 보내 열어 취하니 옛 경과 「논어」가 이때 다 나왔다. 경전인데 현악과 노래 소리가 들림은 글이 마땅히 한나라에서 일어날 것이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얻는 상서다. 마땅히 한나라에 전해질 것이라 담과 벽 속에 잠겨 감추어졌다가 공왕이 들으니 성왕이 감동하여 현악과 노래하는 모양이다. 이는 곧 옛 글이 마땅히 가려지지 않아 한나라가 기다려 부절로 삼은 것이다. 효성황제가 백 편 「상서」를 읽는데 박사와 낭리가 깨달아 알 수 있는 이가 없어 천하에 「상서」를 할 수 있는 이를 불렀다. 동해 장패가 「좌씨춘추」에 통하여 백 편 서문을 살펴 「좌씨」의 훈고로 백두 편을 만들어 갖추어 이루어 아뢰어 올렸다. 성제가 비장한 「상서」를 내어 살펴 견주니 한 글자도 서로 응하는 것이 없어 성제가 패를 아전에게 내리니 아전이 죄가 크게 삼가고 공경하지 않음에 해당한다 하였다. 성제가 패의 재주를 기이하게 여겨 그 죄를 용서하고 또한 그 경을 없애지 않았다. 그러므로 백두 편 「상서」가 민간에 전해진다. 공자가 「재주는 어렵다」 하였으니 정밀한 생각을 미루어 경 백 편을 지을 수 있음은 재주가 높고 뛰어나 드물게 있는 사람이다. 성제가 용서함은 그 글을 많게 여겨서다. 비록 간사하여 실상이 아니나 편과 구를 차례 지어 일의 무리에 의지하여 참인 듯함이 있으므로 불태워 없애지 않았다. 상소 한 궤짝을 글로 서로 보내고 글 십수 찰로 어른 아전에게 아뢰어도 글이 이루어져 볼 만하고 읽어 만족한 것이 백에 하나도 안 된다. 장패가 정밀한 생각을 미루어 백 편에 이르렀으니 한나라 세상에 짝이 드무니 성제가 용서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양자산이 군의 상계리가 되어 삼부가 「애뢰전」을 지어 이루지 못함을 보고 군에 돌아가 지어 올리니 효명이 기이하게 여겨 불러 난대에 두었다. 무릇 삼부의 연리로 재주를 모아 쌓아도 한 편을 이룰 수 없었다. 자산이 이루니 위에서 그 글을 보았다. 자산의 전이 어찌 반드시 살펴 옳겠는가마는 전해 들은 것에 의지하여 만듦에 모양이 있었으니 삼부의 선비를 모아도 끝내 할 수 없었는데 자산이 함에 잠깐이라 어렵지 않았다. 성제가 장패를 용서함이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孝武之時,詔百官對策,董仲舒策文最善。王莽時,使郎吏上奏,劉子駿章尤美。美善不空,才高知深之驗也。《易》曰:「聖人之情見於辭。」文辭美惡,足以觀才。

효무 때에 백관에게 조서하여 대책하게 하니 동중서의 대책 글이 가장 좋았다. 왕망 때에 낭리에게 아뢰어 올리게 하니 유자준의 장이 더욱 아름다웠다. 아름답고 좋음은 헛되지 않으니 재주가 높고 앎이 깊음의 증험이다. 「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정이 말에 보인다」 하였다. 문사의 아름답고 악함이 재주를 보기에 넉넉하다.

永平中,神雀群集,孝明詔上《〔神〕爵頌》,百官頌上,文皆比瓦石,唯班固、賈逵、傅毅、楊終、侯諷五頌金玉,孝明覽焉。夫以百官之眾,郎吏非一,唯五人文善,非奇而何?孝武善《子虛》之賦,征司馬長卿。孝成玩弄眾書之多,善揚子雲,出入游獵,子云乘從。使長卿、桓君山、子云作吏,書所不能盈牘,文所不能成句,則武帝何貪,成帝何欲!故曰:玩揚子雲之篇,樂於居千石之官;挾桓君山之書,富於積猗頓之財。

영평 연간에 신작이 무리 지어 모이니 효명이 조서하여 「신작송」을 올리게 하였는데 백관이 노래를 올림에 글이 다 기와와 돌에 견주고 오직 반고·가규·부의·양종·후풍의 다섯 송이 금과 옥이라 효명이 보았다. 무릇 백관의 많음으로 낭리가 하나가 아닌데 오직 다섯 사람의 글이 좋았으니 기이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효무가 「자허」의 부를 좋아하여 사마장경을 불렀다. 효성이 뭇 책의 많음을 즐겨 양자운을 좋아하여 나가고 들며 노닐고 사냥함에 자운이 수레를 타고 따랐다. 장경·환군산·자운이 아전이 되어 글이 서찰을 채울 수 없고 문장이 구를 이룰 수 없었다면 무제가 무엇을 탐하고 성제가 무엇을 바랐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기를 양자운의 편을 즐김이 천 석 벼슬에 있음보다 즐겁고 환군산의 글을 낌이 의돈의 재물을 쌓음보다 부유하다 한다.

韓非之書,傳在秦庭,始皇嘆曰:「獨不得與此人同時。」

한비의 글이 진나라 조정에 전해지니 시황이 탄식하였다. 「홀로 이 사람과 같은 때에 있지 못하는구나.」

陸賈《新語》,每奏一篇,高祖左右,稱曰萬歲。夫嘆思其人與喜稱萬歲,豈可空為哉!誠見其美,歡氣發於內也。候氣變者,於天不於地,天,文明也。衣裳在身,文著於衣,不在於裳,衣,法天也。察掌理者左,不觀右,左,文明也。占在右,不觀左,右,文明也。《易》曰:「大人虎變其文炳,君子豹變其文蔚。」又曰:「觀乎天文,觀乎人文。」

육가의 「신어」는 한 편을 아뢸 때마다 고조의 좌우가 만세라 일컬었다. 무릇 탄식하며 그 사람을 생각함과 기뻐하며 만세라 일컬음이 어찌 헛되이 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그 아름다움을 보아 기쁜 기운이 안에서 나온 것이다. 기운의 변함을 살피는 이는 하늘에서 하고 땅에서 하지 않으니 하늘은 무늬가 밝기 때문이다. 옷과 치마가 몸에 있음에 무늬가 옷에 붙고 치마에 있지 않으니 옷은 하늘을 본받는다. 손금을 살피는 이는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보지 않으니 왼쪽은 무늬가 밝기 때문이다. 점은 오른쪽에 있어 왼쪽을 보지 않으니 오른쪽은 무늬가 밝기 때문이다. 「역」에 이르기를 「대인은 범처럼 변하여 그 무늬가 빛나고 군자는 표범처럼 변하여 그 무늬가 무성하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하늘의 무늬를 보고 사람의 무늬를 본다」 하였다.

此言天人以文為觀,大人君子以文為操也。高祖在母身之時,息於澤陂,蛟龍在上,龍炫耀;及起,楚望漢軍,氣成五采;將入咸陽,五星聚東井,星有五色。天或者憎秦滅其文章,欲漢興之,故先受命以文為瑞也。

이는 하늘과 사람이 문으로 봄을 삼고 대인과 군자가 문으로 지조를 삼음을 말한다. 고조가 어미 몸에 있을 때 못둑에서 쉬는데 교룡이 위에 있어 용이 빛나고, 일어남에 미쳐 초나라가 한나라 군을 바라보니 기운이 다섯 채색을 이루고, 장차 함양에 들 때 다섯 별이 동정에 모이니 별에 다섯 빛이 있었다. 하늘이 혹 진나라가 그 문장을 멸함을 미워하여 한나라가 일으키기 바랐으므로 먼저 명을 받음에 문으로 상서를 삼은 것이다.

惡人操意,前後乖違。始皇前嘆韓非之書,後惑李斯之議;燔《五經》之文,設挾書之律。

악한 사람의 지조와 뜻은 앞뒤가 어긋난다. 시황이 앞서 한비의 글을 탄식하고 뒤에 이사의 의논에 홀려 「오경」의 글을 태우고 책 끼는 법을 베풀었다.

《五經》之儒,抱經隱匿,伏生之徒,竄藏土中。殄賢聖之文,厥辜深重,嗣之及孫。李斯創議,身伏五刑。漢興,易亡秦之軌,削李斯之跡。高祖始令陸賈造書,未興《五經》。惠、景以至元、成,經書并修。漢朝郁郁,厥語所聞,孰與亡秦?王莽無道,漢軍雲起,台閣廢頓,文書棄散。光武中興,修存未詳。孝明世好文人,并征蘭台之官,文雄會聚。今上即(令)〔命〕,詔求亡失,購募以金,安得不有好文之聲!唐、虞既遠,所在書散;殷、周頗近,諸子存焉。漢興以來,傳文未遠,以所聞見,伍唐、虞而什殷、周,煥炳郁郁,莫盛於斯。天晏者星辰曉爛,人性奇者掌文藻炳。漢今為盛,故文繁湊也。

「오경」의 유자가 경을 안고 숨고 복생의 무리가 흙 속에 숨겨 감추었다. 어질고 성스러운 글을 끊으니 그 죄가 깊고 무거워 후사가 손자에 미쳤다. 이사가 의논을 내었는데 몸이 다섯 형벌에 엎드렸다. 한나라가 일어나 망한 진나라의 자취를 바꾸고 이사의 자취를 깎았다. 고조가 비로소 육가에게 책을 짓게 하였으나 아직 「오경」을 일으키지 않았다. 혜제·경제로부터 원제·성제에 이르러 경서가 아울러 닦였다. 한나라 조정이 빛남은 그 말이 들리는 바가 망한 진나라와 어느 것이 나은가. 왕망이 도가 없어 한나라 군이 구름처럼 일어나니 대각이 무너지고 문서가 버려져 흩어졌다. 광무가 중흥하여 닦아 남긴 것이 아직 자세하지 않다. 효명 세상은 문인을 좋아하여 아울러 난대의 벼슬에 불러 글의 영웅이 모였다. 지금 임금이 명에 나아가 조서로 잃어버린 것을 구하고 금으로 사서 모으니 어찌 글을 좋아하는 소리가 없겠는가! 당·우가 이미 멀어 있던 책이 흩어졌고 은·주는 자못 가까워 제자가 남아 있다. 한나라가 일어난 이래 전하는 글이 멀지 않으니 듣고 본 바로 당·우의 다섯 곱이요 은·주의 열 곱이라 환하게 빛나고 빛남이 이보다 성함이 없다. 하늘이 맑으면 별이 밝게 빛나고 사람 성품이 기이하면 손 무늬가 빛난다. 한나라가 지금 성하므로 글이 번성하여 모인다.

孔子曰:「文王既歿,文不在茲乎!」

공자가 말하였다. 「문왕이 이미 죽었으니 문이 여기 있지 않은가!」

文王之文,傳在孔子。孔子為漢制文,傳在漢也。受天之文,文人宜遵《五經》、六藝為文,諸子傳書為文,造論著說為文,上書奏記為文,文德之操為文。立五文在世,皆當賢也。造論著說之文,尤宜勞焉。何則?發胸中之思,論世俗之事,非徒諷古經、續故文也。論發胸臆,文成手中,非說經藝之人所能為也。周、秦之際,諸子并作,皆論他事,不頌主上,無益於國,無補於化。造論之人,頌上恢國,國業傳在千載,主德參貳日月,非適諸子書傳所能并也。上書陳便宜,奏記荐吏士,一則為身,二則為人。繁文麗辭,無上書文德之操。治身完行,徇利為私,無為主者。夫如是,五文之中,論者之文多矣。則可尊明矣。

문왕의 문은 전하여 공자에게 있다. 공자가 한나라를 위해 문을 지었으니 전하여 한나라에 있다. 하늘의 문을 받았으니 문인은 마땅히 「오경」·육예를 따라 문을 삼고 제자의 전하는 글로 문을 삼고 논을 짓고 설을 저술함으로 문을 삼고 글을 올리고 기를 아룀으로 문을 삼고 문덕의 지조로 문을 삼아야 한다. 다섯 문을 세상에 세우면 다 마땅히 어질다. 논을 짓고 설을 저술하는 문은 더욱 마땅히 수고롭다. 어째서인가. 가슴속 생각을 내어 세속의 일을 논하니 한갓 옛 경을 외고 옛 글을 잇는 것이 아니다. 논은 가슴에서 나오고 글은 손안에서 이루어지니 경과 예를 설명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주·진 즈음에 제자가 아울러 지음에 다 다른 일을 논하고 임금을 노래하지 않아 나라에 이익이 없고 교화에 보탬이 없었다. 논을 짓는 사람은 위를 노래하고 나라를 넓히니 나라의 업이 천 년에 전해지고 임금의 덕이 해와 달에 나란하니 마침 제자의 글과 전이 아우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글을 올려 편의를 펴고 기를 아뢰어 아전과 선비를 천거함은 하나는 몸을 위함이요 둘은 남을 위함이다. 번거로운 글과 고운 말은 글을 올림에 문덕의 지조가 없다. 몸을 다스리고 행실을 온전히 하여도 이익을 좇아 사사로이 하면 임금을 위함이 없다. 무릇 이러하면 다섯 문 가운데 논하는 이의 문이 많다. 그러니 높일 만함이 분명하다.

孔子稱周曰:「唐、虞之際,於斯為盛,周之德,其可謂至德已矣!」

공자가 주나라를 일컬어 말하였다. 「당·우 즈음이 이에 성하였으니 주나라의 덕은 지극한 덕이라 이를 만하다!」

孔子,周之文人也,設生漢世,亦稱漢之至德矣。趙佗王南越,倍主滅使,不從漢制,箕踞椎髻,沉溺夷俗。陸賈說以漢德,懼以帝威,心覺醒悟,蹶然起坐。世儒之愚,有趙佗之惑;鴻文之人,陳陸賈之說。觀見之者,將有蹶然起坐,趙佗之悟。漢氏浩爛,不有殊卓之聲。文人之休,國之符也。

공자는 주나라의 문인이니 한나라 세상에 났다면 또한 한나라의 지극한 덕을 일컬었을 것이다. 조타가 남월의 왕이 되어 임금을 등지고 사신을 없애며 한나라 제도를 따르지 않고 다리를 뻗고 앉아 상투를 틀어 오랑캐 풍속에 빠졌다. 육가가 한나라 덕으로 설득하고 제왕의 위엄으로 두렵게 하니 마음이 깨어 깨달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세상 유자의 어리석음은 조타의 홀림이 있고 큰 글의 사람은 육가의 설을 편다. 보는 이는 장차 벌떡 일어나 앉는 조타의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한씨가 넓고 빛나는데 뛰어난 소리가 있지 않다. 문인의 아름다움은 나라의 부절이다.

望丰屋知名家,睹喬木知舊都。鴻文在國,聖世之驗也。孟子相人以眸子焉,心清則眸子了,了者目文了也。夫候國占人,同一實也。國君聖而文人聚,人心惠而目多采。蹂蹈文錦於泥塗之中,聞見之者莫不痛心。知文錦之可惜,不知文人之當尊,不通類也。天文人文,文豈徒調墨弄筆為美麗之觀哉!

넉넉한 집을 바라보면 이름난 집안임을 알고 큰 나무를 보면 옛 도읍임을 안다. 큰 글이 나라에 있음은 성스러운 세상의 증험이다. 맹자가 사람을 봄에 눈동자로 하였으니 마음이 맑으면 눈동자가 또렷하니 또렷함은 눈의 무늬가 또렷함이다. 무릇 나라를 살피고 사람을 점침은 같은 한 실상이다. 나라 임금이 성스러우면 문인이 모이고 사람 마음이 슬기로우면 눈에 채색이 많다. 무늬 비단을 진흙 속에 밟으면 듣고 보는 이가 마음 아파하지 않음이 없다. 무늬 비단이 아까운 줄 알면서 문인이 마땅히 높은 줄 모름은 무리에 통하지 않음이다. 하늘의 문과 사람의 문이여, 문이 어찌 한갓 먹을 고르고 붓을 놀려 아름답고 고운 볼거리가 됨이랴!

載人之行,傳人之名也。善人願載,思勉為善;邪人惡載,力自禁裁。然則文人之筆,勸善懲惡也。謚法所以章善,即以著惡也。加一字之謚,人猶勸懲,聞知之者莫不自勉。況極筆墨之力,定善惡之實,言行畢載,文以千數,傳流於世,成為丹青,故可尊也!

사람의 행실을 싣고 사람의 이름을 전한다. 착한 사람은 실리기 원하여 착함을 힘쓰기 생각하고 간사한 사람은 실림을 미워하여 힘써 스스로 금하고 재단한다. 그러니 문인의 붓은 착함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다. 시법이 착함을 드러내는 까닭이니 곧 악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글자 시호를 더하여도 사람이 오히려 권하고 징계하니 듣고 아는 이가 스스로 힘쓰지 않음이 없다. 하물며 붓과 먹의 힘을 다하여 착하고 악함의 실상을 정하고 말과 행실을 다 실어 글이 천으로 헤아려 세상에 전해 흘러 단청이 됨에랴, 그러므로 높일 만하다!

揚子雲作《法言》,蜀富人齎錢千萬,願載於書,子云不聽。夫富無仁義之行,〔猶〕圈中之鹿,欄中之牛也,安得妄載!班叔皮續《太史公書》,載鄉里人以為惡戒。邪人枉道,繩墨所彈,安得避諱?是故子云不為財勸,叔皮不為恩撓。文人之筆,獨已公矣。賢聖定意於筆,筆集成文,文具情顯,後人觀之,(見)以〔見〕正邪,安宜妄記!足蹈於地,跡有好丑;文集於禮,志有善惡。故夫占跡以睹足,觀文以知情。「《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

양자운이 「법언」을 지음에 촉의 부자가 돈 천만을 가져와 책에 실리기 원하였으나 자운이 듣지 않았다. 무릇 부유하나 인의의 행실이 없으면 우리 안의 사슴이요 난간 안의 소인데 어찌 망령되이 싣겠는가! 반숙피가 「태사공서」를 이음에 고을 사람을 실어 악의 경계로 삼았다. 간사한 사람이 도를 굽히면 먹줄이 탄핵하는 바니 어찌 꺼려 피하겠는가. 이 때문에 자운은 재물에 권해지지 않고 숙피는 은혜에 굽히지 않았다. 문인의 붓은 홀로 이미 공정하다.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붓에 뜻을 정하고 붓이 모여 글을 이루고 글이 갖추어져 정이 드러나니 뒷사람이 보고 바르고 간사함을 보는데 어찌 망령되이 기록하겠는가! 발이 땅을 밟으면 자취에 곱고 추함이 있고 글이 예에 모이면 뜻에 착하고 악함이 있다. 그러므로 무릇 자취를 점쳐 발을 보고 글을 보아 정을 안다. 「「시」 삼백을 한마디로 덮으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論衡》篇以十數,亦一言也,曰:疾虛妄。

「논형」의 편이 열로 헤아리나 또한 한마디니 헛되고 망령됨을 미워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