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死篇
世謂(死)人〔死〕為鬼,有知,能害人。試以物類驗之,(死)人〔死〕不為鬼,無知,不能害人。何以驗之?驗之以物。
세상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앎이 있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한다. 시험 삼아 물건의 무리로 증험하면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지 않고 앎이 없어 사람을 해칠 수 없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물건으로 증험한다.
人,物也;物,亦物也。物死不為鬼,人死何故獨能為鬼?世能別人物不能為鬼,則為鬼不為鬼尚難分明;如不能別,則亦無以知其能為鬼也。人之所以生者,精氣也,死而精氣滅,能為精氣者,血脈也,人死血脈竭,竭而精氣滅,滅而形體朽,朽而成灰土,何用為鬼?人無耳目則無所知,故聾盲之人比於草木。夫精氣去人,豈徒與無耳目同哉!朽則消亡,荒忽不見,故謂之鬼神。人見鬼神之形,故非死人之精也。何則?鬼神,荒忽不見之名也。人死精神升天,骸骨歸土,故謂之鬼。鬼者,歸也;神者,荒忽無形者也。
사람은 물건이요 물건도 물건이다. 물건이 죽어 귀신이 되지 않는데 사람이 죽어 무슨 까닭으로 홀로 귀신이 될 수 있는가. 세상이 사람과 물건이 귀신이 될 수 없음을 가릴 수 있으면 귀신이 되고 되지 않음이 오히려 분명히 나누기 어렵고, 가릴 수 없으면 또한 그것이 귀신이 될 수 있음을 알 길이 없다. 사람이 사는 까닭은 정기니 죽으면 정기가 없어지고 정기가 될 수 있는 것은 혈맥인데 사람이 죽으면 혈맥이 다하고 다하면 정기가 없어지고 없어지면 몸이 썩고 썩으면 재와 흙이 되니 무엇으로 귀신이 되는가. 사람이 귀와 눈이 없으면 아는 바가 없으므로 귀먹고 눈먼 사람은 풀과 나무에 견준다. 무릇 정기가 사람을 떠남이 어찌 한갓 귀와 눈이 없음과 같겠는가! 썩으면 사라져 없어져 아득하여 보이지 않으므로 귀신이라 한다. 사람이 귀신의 꼴을 보니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정기가 아니다. 어째서인가. 귀신은 아득하여 보이지 않음의 이름이다. 사람이 죽으면 정신이 하늘에 오르고 뼈가 흙에 돌아가므로 귀라 한다. 귀는 돌아감이요 신은 아득하여 꼴이 없는 것이다.
或說:鬼神,陰陽之名也,陰氣逆物而歸,故謂之鬼;陽氣導物而生,故謂之神。神者,(伸)〔申〕也。申復無已,終而復始。人用神氣生,其死復歸神氣。陰陽稱鬼神,人死亦稱鬼神。氣之生人,猶水之為冰也。水凝為冰,氣凝為人;冰釋為水,人死復神。其名為神也,猶冰釋更名水也。人見名異,則謂有知,能為形而害人,無據以論人也。
혹 설명한다. 귀신은 음양의 이름이니 음의 기운이 물건을 거슬러 돌아가므로 귀라 하고 양의 기운이 물건을 이끌어 낳으므로 신이라 한다. 신은 폄이다. 펴고 다시 함이 그침 없어 끝나면 다시 시작한다. 사람이 신의 기운을 써서 살고 그 죽음에 다시 신의 기운에 돌아간다. 음양을 귀신이라 일컫고 사람이 죽어도 귀신이라 일컫는다. 기운이 사람을 낳음은 물이 얼음이 됨과 같다. 물이 엉겨 얼음이 되고 기운이 엉겨 사람이 되며 얼음이 풀려 물이 되고 사람이 죽어 다시 신이 된다. 그 이름이 신이 됨은 얼음이 풀려 다시 물이라 이름함과 같다. 사람이 이름이 다름을 보고 곧 앎이 있어 꼴이 되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하니 사람을 논함에 근거가 없다.
人見鬼若生人之形,以其見若生人之形,故知非死人之精也。何以效之?以囊橐盈粟米,米在囊中,若粟在橐中,滿盈堅強,立樹可見。人瞻望之,則知其為粟米囊橐。何則?囊橐之形,若其容可察也。如囊穿米出,橐敗粟棄,則囊橐委辟,人瞻望之,弗復見矣。人之精神藏於形體之內,猶粟米在囊橐之中也。死而形體朽,精氣散,猶囊橐穿敗,粟米棄出也。粟米棄出,囊橐無復有形,精氣散亡,何能復有體而人得見之乎?禽獸之死也,其肉盡索,皮毛尚在,制以為裘,人望見之似禽獸之形。故世有衣狗裘為狗盜者,人不覺知,假狗之皮毛,故人不意疑也。今人死,皮毛朽敗,雖精氣尚在,神安能復假此形而以行見乎?夫死人不能假生人之形以見,猶生人不能假死人之魂以亡矣。六畜能變化象人之形者,其形尚生,精氣尚在也。如死,其形腐朽,雖虎兕勇悍,不能復化。魯公牛哀病化為虎,亦以未死也。世有以生形轉為生類者矣,未有以死身化為生象者也。
사람이 귀신을 봄에 산 사람의 꼴 같으니 그 산 사람의 꼴 같음을 봄으로 죽은 사람의 정기가 아님을 안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자루와 부대에 조와 쌀을 채움으로 한다. 쌀이 자루 속에 있고 조가 부대 속에 있으면 가득 차고 굳세어 세워 둠에 볼 수 있다. 사람이 바라보면 그것이 조와 쌀의 자루와 부대임을 안다. 어째서인가. 자루와 부대의 꼴이 그 담긴 것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루가 뚫려 쌀이 나오고 부대가 해져 조가 버려지면 자루와 부대가 늘어져 사람이 바라보아도 다시 보지 못한다. 사람의 정신이 몸 안에 감추어짐은 조와 쌀이 자루와 부대 속에 있음과 같다. 죽어 몸이 썩고 정기가 흩어짐은 자루와 부대가 뚫리고 해져 조와 쌀이 버려져 나옴과 같다. 조와 쌀이 버려져 나오면 자루와 부대가 다시 꼴이 없는데 정기가 흩어져 없어지면 어찌 다시 몸이 있어 사람이 볼 수 있겠는가. 새와 짐승이 죽음에 그 살은 다 없어져도 가죽과 털이 아직 있어 만들어 갖옷으로 하면 사람이 바라보매 새와 짐승의 꼴 같다. 그러므로 세상에 개 갖옷을 입고 개 도둑이 된 이가 있어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니 개의 가죽과 털을 빌렸으므로 사람이 뜻하여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사람이 죽어 가죽과 털이 썩어 해지면 비록 정기가 아직 있어도 신이 어찌 다시 이 꼴을 빌려 다녀 보이겠는가. 무릇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꼴을 빌려 보일 수 없음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혼을 빌려 없어질 수 없음과 같다. 집짐승이 변화하여 사람 꼴을 본뜰 수 있음은 그 꼴이 아직 살고 정기가 아직 있어서다. 죽으면 그 꼴이 썩어 비록 범과 외뿔소처럼 용맹하여도 다시 변할 수 없다. 노나라 공우애가 병들어 범이 됨도 또한 아직 죽지 않아서다. 세상에 산 꼴로 산 무리로 바뀐 이가 있으나 죽은 몸으로 산 모양으로 변한 이는 있지 않았다.
天地開辟,人皇以來,隨壽而死。若中年夭亡,以億萬數。
하늘과 땅이 열려 인황 이래로 수명을 따라 죽었다. 중년에 일찍 죽은 이는 억만으로 헤아린다.
計今人之數不若死者多,如人死輒為鬼,則道路之上,一步一鬼也。人且死見鬼,宜見數百千萬,滿堂盈廷,填塞巷路,不宜徒見一兩人也。人之兵死也,世言其血為磷。血者,生時之精氣也。人夜行見磷,不象人形,渾沌積聚,若火光之狀。磷,死人之血也,其形不類生人之血。〔鬼,死人之形〕也,其形不類生人之形。精氣去人,何故象人之體?人見鬼也皆象死人形,則可疑死人為鬼或反象生人之形。病者見鬼,云甲來。甲時不死,氣象甲形。如死人為鬼,病者何故見生人之體乎?
지금 사람의 수를 헤아리면 죽은 이의 많음만 못하니 사람이 죽어 문득 귀신이 된다면 길 위에 한 걸음에 한 귀신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장차 죽을 때 귀신을 보면 마땅히 수백 수천만을 보아 당에 가득하고 뜰에 차고 골목과 길을 메워야지 한갓 한두 사람만 보아서는 안 된다. 사람이 병기로 죽음에 세상이 그 피가 도깨비불이 된다 말한다. 피는 살 때의 정기다. 사람이 밤에 다니며 도깨비불을 보면 사람 꼴을 본뜨지 않고 어지럽게 쌓여 불빛 모양 같다. 도깨비불은 죽은 사람의 피인데 그 꼴이 산 사람의 피와 같지 않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꼴인데 그 꼴이 산 사람의 꼴과 같지 않다. 정기가 사람을 떠나는데 무슨 까닭으로 사람의 몸을 본뜨는가. 사람이 귀신을 봄에 다 죽은 사람의 꼴을 본뜬다면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됨을 의심할 만하고 혹 도리어 산 사람의 꼴을 본뜬다. 병든 이가 귀신을 보고 갑이 온다 한다. 갑이 그때 죽지 않았는데 기운이 갑의 꼴을 본뜬 것이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된다면 병든 이가 무슨 까닭으로 산 사람의 몸을 보는가.
天地之性,能更生火,不能使滅火復燃;能更生人,不能令死人復見。能使灰更為燃火,吾乃頗疑死人能復為形。案火滅不能復燃以況之,死人不能復為鬼,明矣。夫為鬼者,人謂死人之精神。如審鬼者死人之精神,則人見之宜徒見裸袒之形,無為見衣帶被服也。何則?衣服無精神,人死與形體俱朽,何以得貫穿之乎?
하늘과 땅의 성품은 불을 다시 낼 수 있으나 꺼진 불을 다시 타게 할 수 없고 사람을 다시 낼 수 있으나 죽은 사람을 다시 보이게 할 수 없다. 재를 다시 타는 불이 되게 할 수 있다면 내가 곧 자못 죽은 사람이 다시 꼴이 될 수 있음을 의심하겠다. 살피건대 불이 꺼져 다시 탈 수 없음으로 견주면 죽은 사람이 다시 귀신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무릇 귀신이 되는 것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정신이라 한다. 정말로 귀신이 죽은 사람의 정신이라면 사람이 봄에 마땅히 한갓 벌거벗은 꼴을 볼 것이지 옷과 띠와 입은 것을 볼 것이 없다. 어째서인가. 옷은 정신이 없어 사람이 죽으면 몸과 함께 썩는데 무엇으로 꿰어 입을 수 있겠는가.
精神本以血氣為主,血氣常附形體。形體雖朽,精神尚在,能為鬼可也。今衣服,絲絮布帛也,生時血氣不附著,而亦自無血氣,敗朽遂已,與形體等,安能自若為衣服之形?由此言之,見鬼衣服象(之)〔人〕,則形體亦象(之)〔人〕矣。象(之)〔人〕,則知非死人之精神也。
정신은 본디 혈기를 주로 삼고 혈기는 늘 몸에 붙는다. 몸이 비록 썩어도 정신이 아직 있어 귀신이 될 수 있다 함은 옳다. 이제 옷은 실과 솜과 베와 비단이라 살 때 혈기가 붙지 않았고 또 절로 혈기가 없어 해져 썩으면 마침내 그만이니 몸과 같은데 어찌 절로 그대로 옷의 꼴이 되겠는가. 이로써 말하면 귀신의 옷이 사람을 본뜸을 보면 몸도 사람을 본뜬 것이다. 사람을 본떴으면 죽은 사람의 정신이 아님을 안다.
夫死人不能為鬼,則亦無所知矣。何以驗之?以未生之時無所知也。人未生,在元氣之中;既死,復歸元氣。元氣荒忽,人氣在其中。人未生,無所知,其死,歸無知之本,何能有知乎?人之所以聰明智惠者,以含五常之氣也;五常之氣所以在人者,以五藏在形中也。五藏不傷,則人智惠;五藏有病,則人荒忽。荒忽則愚痴矣。人死,五藏腐朽,腐朽則五常無所托矣,所用藏智者已敗矣,所用為智者已去矣。形須氣而成,氣須形而知。天下無獨燃之火,世間安得有無體獨知之精?
무릇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될 수 없으면 또한 아는 바도 없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아직 나지 않았을 때 아는 바가 없음으로 한다. 사람이 아직 나지 않아서는 원기 속에 있고 이미 죽으면 다시 원기에 돌아간다. 원기는 아득하고 사람의 기운이 그 속에 있다. 사람이 아직 나지 않아 아는 바가 없고 그 죽음에 앎 없는 근본에 돌아가니 어찌 앎이 있을 수 있는가. 사람이 총명하고 슬기로운 까닭은 오상의 기운을 머금어서요 오상의 기운이 사람에게 있는 까닭은 오장이 몸속에 있어서다. 오장이 상하지 않으면 사람이 슬기롭고 오장에 병이 있으면 사람이 아득하다. 아득하면 어리석다. 사람이 죽으면 오장이 썩고 썩으면 오상이 의탁할 데가 없어 슬기를 감추는 데 쓰는 것이 이미 해지고 슬기가 되는 데 쓰는 것이 이미 떠난다. 꼴은 기운을 기다려 이루어지고 기운은 꼴을 기다려 안다. 천하에 홀로 타는 불이 없는데 세상에 어찌 몸 없이 홀로 아는 정이 있겠는가.
人之死也,其猶夢也;夢者,殄之次也;殄者,死之比也。人殄不悟,則死矣。案人殄復悟,死(從)〔復〕來者,與夢相似。然則夢、殄、死,一實也。人夢不能知覺時所作,猶死不能識生時所為矣。人言談有所作於臥人之旁,臥人不能知,猶對死人之棺為善惡之事,死人不能復知也。夫臥,精氣尚在,形體尚全,猶無所知,況死人精神消亡,形體朽敗乎!
사람의 죽음은 꿈과 같다. 꿈은 까무러침의 버금이요 까무러침은 죽음의 견줌이다. 사람이 까무러쳐 깨지 않으면 죽는다. 살피건대 사람이 까무러쳐 다시 깨어 죽음에서 다시 옴은 꿈과 서로 비슷하다. 그러니 꿈·까무러침·죽음은 한 실상이다. 사람이 꿈에 깬 때 한 바를 알 수 없음은 죽어 살 때 한 바를 알 수 없음과 같다. 사람이 말하고 누운 사람 곁에서 하는 바가 있어도 누운 사람이 알 수 없음은 죽은 사람의 관을 마주하고 착하고 악한 일을 하여도 죽은 사람이 다시 알 수 없음과 같다. 무릇 누움에 정기가 아직 있고 몸이 아직 온전하여도 오히려 아는 바가 없는데 하물며 죽은 사람은 정신이 사라져 없어지고 몸이 썩어 해짐에랴!
人為人所毆傷,詣吏告苦以語人,有知之故也。或為人所殺,則不知何人殺也,或家不知其尸所在。使死人有知,必恚人之殺己也,當能言於吏旁,告以賊主名,若能歸語其家,告以尸之所在。今則不能,無知之效也。世間死者,(今)〔令〕生人殄而用其言,用巫叩元弦下死人魂,因巫口談,皆夸誕之言也。知不夸誕,物之精神為之象也。或曰:「不能言也。」
사람이 남에게 맞아 상하면 아전에게 가서 괴로움을 알려 남에게 말함은 앎이 있는 까닭이다. 혹 남에게 죽임을 당하면 어떤 사람이 죽였는지 알지 못하고 혹 집에서 그 주검 있는 데를 알지 못한다. 죽은 사람에게 앎이 있으면 반드시 사람이 저를 죽임을 성내어 마땅히 아전 곁에서 말하여 도적의 주인 이름을 알리고 혹 돌아가 그 집에 말하여 주검 있는 데를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 할 수 없으니 앎이 없음의 효험이다. 세상에서 죽은 이가 산 사람을 까무러치게 하여 그 말을 쓰고 무당이 현을 두드려 죽은 사람의 혼을 내려 무당의 입을 빌려 말함은 다 과장되고 허탄한 말이다. 과장되고 허탄하지 않음을 알면 물건의 정신이 그 모양이 된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말할 수 없다.」
夫〔曰〕不能言,則亦不能知矣。知用氣,言亦用氣焉。人之未死也,智惠精神定矣,病則亂,精神擾也。夫死,病之甚者也。病,死之微,猶亂,況其甚乎!精神擾,自無所知,況其散也!
무릇 말할 수 없다 하면 또한 알 수 없다. 앎은 기운을 쓰고 말도 기운을 쓴다.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아서는 슬기와 정신이 정하고 병들면 어지러우니 정신이 흔들려서다. 무릇 죽음은 병의 심한 것이다. 병은 죽음의 작은 것인데 오히려 어지러운데 하물며 그 심함에랴! 정신이 흔들리면 절로 아는 바가 없는데 하물며 그 흩어짐에랴!
人之死,猶火之滅也。火滅而耀不照,人死而知不惠,二者宜同一實。論者猶謂死有知,惑也。人病且死,與火之且滅何以異?火滅光消而燭在,人死精亡而形存,謂人死有知,是謂火滅復有光也。隆冬之月,寒氣用事,水凝為冰,逾春氣溫,冰釋為水。人生於天地之間,其猶冰也。陰陽之氣,凝而為人,年終壽盡,死還為氣。夫春水不能復為冰,死魂安能復為形?
사람의 죽음은 불의 꺼짐과 같다. 불이 꺼지면 빛이 비추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앎이 슬기롭지 않으니 둘은 마땅히 같은 한 실상이다. 논하는 이가 오히려 죽어 앎이 있다 함은 홀림이다. 사람이 병들어 장차 죽음이 불이 장차 꺼짐과 무엇이 다른가. 불이 꺼지면 빛이 사라져도 초는 있고 사람이 죽으면 정이 없어져도 꼴은 남는데 사람이 죽어 앎이 있다 함은 불이 꺼지고 다시 빛이 있다 함이다. 한겨울 달에 찬 기운이 일을 맡아 물이 엉겨 얼음이 되고 봄이 지나 기운이 따뜻하면 얼음이 풀려 물이 된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남은 얼음과 같다. 음양의 기운이 엉겨 사람이 되고 해가 끝나고 수명이 다하면 죽어 도로 기운이 된다. 무릇 봄 물이 다시 얼음이 될 수 없는데 죽은 혼이 어찌 다시 꼴이 될 수 있는가.
妒夫娼妻,同室而處,淫亂失行,忿怒斗訟,夫死妻更嫁,妻死無更娶。以有知驗之,宜大忿怒。今夫妻死者寂寞無聲,更嫁娶者平忽無禍,無知之驗也。
질투하는 남편과 음탕한 아내가 한 방에 처하여 음란하여 행실을 잃고 성내어 다투고 송사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다시 시집가고 아내가 죽으면 다시 장가든다. 앎이 있음으로 증험하면 마땅히 크게 성낼 것이다. 이제 죽은 남편과 아내가 적막하여 소리가 없고 다시 시집가고 장가든 이가 편안하여 화가 없으니 앎이 없음의 증험이다.
孔子葬母於防,既而雨甚至,防墓崩。孔子聞之,泫然流涕曰:「古者不修墓。」
공자가 어미를 방산(防山)에 장사하였는데 이윽고 비가 심하게 와서 방산의 무덤이 무너졌다. 공자가 듣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였다. 「옛날에는 무덤을 고치지 않았다.」
遂不復修。使死有知,必恚人不修也。孔子知之,宜輒修墓,以喜魂神。然而不修,聖人明審,曉其無知也。
마침내 다시 고치지 않았다. 죽어 앎이 있다면 반드시 사람이 고치지 않음을 성낼 것이다. 공자가 이를 알았으면 마땅히 곧 무덤을 고쳐 혼신을 기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고치지 않았으니 성인이 밝게 살펴 그 앎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枯骨在野,時鳴呼有聲,若夜聞哭聲,謂之死人音,非也。何以驗之?生人所以言語吁呼者,氣括口喉之中,動搖其舌,張歙其口,故能成言。譬猶吹簫笙,簫笙折破,氣越不括,手無所弄,則不成音。夫簫笙之管,猶人之口喉也;手弄其孔,猶人之動舌也。人死口喉腐敗,舌不復動,何能成言!然而枯骨時呻鳴者,人骨自有能呻鳴者焉,或以為秋〔氣〕也,是與夜鬼哭無以異也。秋氣為呻鳴之變,自有所為,依倚死骨之側,人則謂之骨尚有知,呻鳴於野。草澤暴體以千萬數,呻鳴之聲,家步屬焉。
마른 뼈가 들에 있어 때로 울어 소리가 있고 혹 밤에 곡하는 소리를 들으면 죽은 사람의 소리라 하나 그르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산 사람이 말하고 부르짖는 까닭은 기운이 입과 목구멍 속에 묶여 그 혀를 흔들고 그 입을 열고 닫으므로 말을 이룰 수 있다. 비유하면 퉁소와 생황을 붊에 퉁소와 생황이 꺾여 깨져 기운이 넘어 묶이지 않고 손이 놀릴 데 없으면 소리를 이루지 못함과 같다. 무릇 퉁소와 생황의 관은 사람의 입과 목구멍 같고 손이 그 구멍을 놀림은 사람이 혀를 움직임 같다. 사람이 죽어 입과 목구멍이 썩고 혀가 다시 움직이지 않는데 어찌 말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마른 뼈가 때로 신음하고 우는 것은 사람 뼈에 절로 신음하고 울 수 있는 것이 있어서니 혹은 가을 기운이라 여기니 이는 밤 귀신의 곡과 다를 것이 없다. 가을 기운이 신음하고 우는 변고가 되어 절로 하는 바가 있어 죽은 뼈 곁에 의지하니 사람이 곧 뼈에 오히려 앎이 있어 들에서 신음하고 운다 한다. 풀밭과 못에 드러난 몸이 천만으로 헤아리니 신음하고 우는 소리가 집집 걸음마다 이어질 것이다.
夫有能使不言者言,未有言者死能復使之言,言者亦不能復使之言。猶物生以青為(氣)〔色〕,或予之也,物死青者去,或奪之也。予之物青,奪之青去,去後不能復予之青,物亦不能復自青。聲色俱通,并稟於天,青青之色,猶梟梟之聲也。死物之色不能復青,獨為死人之聲能復自言,惑也。
무릇 말하지 못하는 이를 말하게 할 수 있는 이는 있어도 말하던 이가 죽어 다시 말하게 할 수 있는 이는 없으니 말하는 이도 다시 말하게 할 수 없다. 물건이 나서 푸름을 빛으로 삼음은 혹 준 것이요 물건이 죽어 푸름이 떠남은 혹 빼앗은 것과 같다. 물건에 주면 푸르고 빼앗으면 푸름이 떠나며 떠난 뒤에 다시 푸름을 줄 수 없고 물건도 다시 절로 푸를 수 없다. 소리와 빛이 다 통하여 아울러 하늘에서 받으니 푸르고 푸른 빛은 무성한 소리와 같다. 죽은 물건의 빛이 다시 푸를 수 없는데 홀로 죽은 사람의 소리는 다시 절로 말할 수 있다 함은 홀림이다.
人之所以能言語者,以有氣力也,氣力之盛,以能飲食也。飲食損減則氣力衰,衰則聲音嘶,困不能食,則口不能復言。夫死,困之甚,何能復言?或曰:「死人歆肴食氣,故能言。」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기력이 있어서요 기력의 성함은 먹고 마실 수 있어서다. 먹고 마심이 덜리면 기력이 쇠하고 쇠하면 목소리가 쉬며 곤하여 먹을 수 없으면 입이 다시 말할 수 없다. 무릇 죽음은 곤함의 심한 것인데 어찌 다시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죽은 사람은 안주와 음식의 기운을 흠향하므로 말할 수 있다.」
夫死人之精,生人之精也。使生人不飲食,而徒以口歆肴食〔之〕氣,不過三日則餓死矣。
무릇 죽은 사람의 정은 산 사람의 정이다. 산 사람이 먹고 마시지 않고 한갓 입으로 안주와 음식의 기운을 흠향하게 하면 사흘을 넘지 않아 굶어 죽는다.
或曰:「死人之精,神於生人之精,故能歆氣為音。」
어떤 이는 말한다. 「죽은 사람의 정은 산 사람의 정보다 신령하므로 기운을 흠향하여 소리를 낼 수 있다.」
夫生人之精在於身中,死則在於身外,死之與生何以殊?身中身外何以異?取水實於大盎中,盎破水流地,地水能異於盎中之水乎?地水不異於盎中之水,身外之精,何故殊於身中之精?
무릇 산 사람의 정은 몸속에 있고 죽으면 몸 밖에 있으니 죽음과 삶이 무엇으로 다르고 몸속과 몸 밖이 무엇으로 다른가. 물을 취하여 큰 동이 속에 채웠다가 동이가 깨져 물이 땅에 흐르면 땅의 물이 동이 속의 물과 다를 수 있는가. 땅의 물이 동이 속의 물과 다르지 않은데 몸 밖의 정이 무슨 까닭으로 몸속의 정과 다르겠는가.
人死不為鬼,無知,不能語言,則不能害人矣。何以驗之?夫人之怒也用氣,其害人用力,用力須筋骨而強,強則能害人。忿怒之人,呼於人之旁,口氣喘射人之面,雖勇如賁、育,氣不害人,使舒手而擊,舉足而蹶,則所擊蹶無不破折。夫死,骨朽筋力絕,手足不舉,雖精氣尚在,猶吁之時無嗣助也,何以能害人也?凡人與物所以能害人者,手臂把刃,爪牙堅利之故也。今人死,手臂朽敗,不能復持刃,爪牙墮落,不能復嚙噬,安能害人?兒之始生也,手足具成,手不能搏,足不能蹶者,氣適凝成,未能堅強也。由此言之,精氣不能堅強,審矣。氣為形體,形體微弱,猶未能害人,況死,氣去精神絕。微弱猶未能害人,寒骨謂能害人者邪?死人之氣不去邪,何能害人!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지 않고 앎이 없고 말할 수 없으면 사람을 해칠 수 없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무릇 사람이 성냄에 기운을 쓰고 그 사람을 해침에 힘을 쓰니 힘을 씀에 힘줄과 뼈를 기다려 강하고 강하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성내는 사람이 남의 곁에서 부르짖어 입 기운을 헐떡여 남의 얼굴에 쏘아도 비록 용맹이 맹분·하육 같아도 기운은 사람을 해치지 못하고 손을 펴서 치고 발을 들어 차게 하면 치고 찬 것이 깨지고 꺾이지 않음이 없다. 무릇 죽으면 뼈가 썩고 힘줄의 힘이 끊겨 손발을 들지 못하니 비록 정기가 아직 있어도 부르짖을 때 도움이 없음과 같은데 무엇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겠는가. 무릇 사람과 물건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까닭은 손과 팔이 칼날을 잡고 손톱과 이가 굳세고 날카로운 까닭이다. 이제 사람이 죽어 손과 팔이 썩어 해져 다시 칼날을 잡을 수 없고 손톱과 이가 떨어져 다시 물어뜯을 수 없는데 어찌 사람을 해치겠는가. 아이가 처음 남에 손발이 갖추어 이루어졌으나 손이 치지 못하고 발이 차지 못함은 기운이 마침 엉겨 이루어져 아직 굳세고 강하지 못해서다. 이로써 말하면 정기가 굳세고 강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기운이 몸이 되어 몸이 미약하면 오히려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데 하물며 죽어 기운이 떠나고 정신이 끊어짐에랴. 미약하여도 오히려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데 찬 뼈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하는가. 죽은 사람의 기운이 떠나지 않는다 하여도 어찌 사람을 해칠 수 있겠는가!
雞卵之未字也,溶於彀中,潰而視之,若水之形;良雌傴伏,體方就成,就成之後,能啄蹶之。夫人之死猶溶之時,溶之氣,安能害人?人之所以勇猛能害人者,以飲食也,飲食飽足則強壯勇猛,強壯勇猛則能害人矣。人病不能飲食,則身(嬴)〔羸〕弱,(嬴)〔羸〕弱困甚,故至於死。病困之時,仇在其旁,不能咄叱,人盜其物,不能禁奪,羸弱困劣之故也。夫死,羸弱困劣之甚者也,何能害人?有雞太之畜,為人所盜竊,雖怯無勢之人,莫不忿怒,忿怒之極,至相賊滅。敗亂之時,人相啖食者,使其神有知,宜能害人。身貴於雞犬,己死重於見盜,忿怒於雞犬,無怨於食己,不能害人之驗也。蟬之未蛻也為復育,已蛻也去復育之體,更為蟬之形。使死人精神去形體,若蟬之去復育乎!則夫為蟬者不能害為復育者。夫蟬不能害復育,死人之精神,何能害生人之身?夢者之義疑。(惑)〔或〕言夢者精神自止身中,為吉凶之象;或言精神行與人物相更。今其審止身中,死之精神亦將復然。今其審行,人夢殺傷人,夢殺傷人若為人所復殺,明日視彼之身,察己之體,無兵刃創傷之驗。夫夢用精神,精神,死之精神也。
달걀이 아직 부화하지 않아서는 껍질 속에 녹아 있어 깨뜨려 보면 물의 꼴 같다. 좋은 암탉이 품어 엎드리면 몸이 바야흐로 이루어지고 이루어진 뒤에 쪼고 찰 수 있다. 무릇 사람의 죽음은 녹아 있을 때와 같으니 녹은 기운이 어찌 사람을 해칠 수 있는가. 사람이 용맹하여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까닭은 먹고 마심으로써니 먹고 마심이 배부르고 족하면 강하고 씩씩하고 용맹하며 강하고 씩씩하고 용맹하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사람이 병들어 먹고 마실 수 없으면 몸이 여위고 약하며 여위고 약하여 곤함이 심하므로 죽음에 이른다. 병들어 곤할 때 원수가 그 곁에 있어도 꾸짖을 수 없고 사람이 그 물건을 훔쳐도 금하여 빼앗을 수 없음은 여위고 약하고 곤하고 못난 까닭이다. 무릇 죽음은 여위고 약하고 곤하고 못남의 심한 것인데 어찌 사람을 해칠 수 있는가. 닭과 개의 가축이 있어 남에게 도둑맞으면 비록 겁 많고 세력 없는 사람이라도 성내지 않음이 없고 성냄이 지극하면 서로 해쳐 멸함에 이른다. 패하고 어지러운 때에 사람이 서로 먹는데 그 신에게 앎이 있다면 마땅히 사람을 해칠 수 있어야 한다. 몸은 닭과 개보다 귀하고 제가 죽음은 도둑맞음보다 무거운데 닭과 개에는 성내면서 저를 먹은 이에게 원망이 없으니 사람을 해칠 수 없음의 증험이다. 매미가 아직 허물 벗지 않아서는 복육이 되고 이미 허물 벗으면 복육의 몸을 떠나 다시 매미의 꼴이 된다. 죽은 사람의 정신이 몸을 떠남이 매미가 복육을 떠남과 같은가! 그러면 무릇 매미가 된 것은 복육이 된 것을 해칠 수 없다. 무릇 매미가 복육을 해칠 수 없으니 죽은 사람의 정신이 어찌 산 사람의 몸을 해칠 수 있는가. 꿈의 뜻은 의심스럽다. 혹은 꿈은 정신이 절로 몸속에 머물러 길흉의 모양이 된다 말하고 혹은 정신이 다녀 사람과 물건과 서로 바뀐다 말한다. 이제 그것이 살펴 몸속에 머문다면 죽은 정신도 장차 다시 그러할 것이다. 이제 그것이 살펴 다닌다면 사람이 꿈에 사람을 죽이고 상하게 하고 꿈에 사람을 죽이고 상하게 함이 혹 남에게 다시 죽임을 당하여도 이튿날 저의 몸을 보고 제 몸을 살피면 병기와 칼날에 상한 증험이 없다. 무릇 꿈은 정신을 쓰니 정신은 죽음의 정신이다.
夢之精神不能害人,死之精神安能為害?火熾而釜拂,沸止而氣歇,以火為主也。精神之怒也,乃能害人,不怒不能害人。火猛灶中,釜涌氣蒸;精怒胸中,力盛身熱。今人之將死,身體清涼,涼益清甚,遂以死亡。當死之時,精神不怒。身亡之後,猶湯之離釜也,安能害人?
꿈의 정신이 사람을 해칠 수 없는데 죽음의 정신이 어찌 해칠 수 있는가. 불이 치열하면 솥이 끓고 끓음이 그치면 기운이 쉬니 불을 주로 삼아서다. 정신이 성내면 곧 사람을 해칠 수 있고 성내지 않으면 사람을 해칠 수 없다. 불이 부뚜막 속에 맹렬하면 솥이 끓고 기운이 찌며 정이 가슴속에 성내면 힘이 성하고 몸이 뜨겁다. 이제 사람이 장차 죽음에 몸이 맑고 서늘하며 서늘함이 더욱 맑고 심하여 마침내 죽어 없어진다. 죽을 때에 정신이 성내지 않는다. 몸이 없어진 뒤는 끓는 물이 솥을 떠남과 같은데 어찌 사람을 해칠 수 있는가.
物與人通。人有痴狂之病,如知其物然而理之,病則愈矣。夫物未死,精神依倚形體,故能變化,與人交通;已死,形體坏爛,精神散亡,無所復依,不能變化。夫人之精神猶物之精神也。物生,精神為病;其死,精神消亡。人與物同,死而精神亦滅,安能為害禍!設謂人貴,精神有異,成事,物能變化,人則不能。是反人精神不若物,物精〔神〕奇於人也。
물건은 사람과 통한다. 사람에게 미친 병이 있어 그 물건을 알고 다스리면 병이 낫는다. 무릇 물건이 아직 죽지 않아서는 정신이 몸에 의지하므로 변화하여 사람과 사귀어 통할 수 있고 이미 죽으면 몸이 무너지고 썩어 정신이 흩어져 없어져 다시 의지할 데가 없어 변화할 수 없다. 무릇 사람의 정신은 물건의 정신과 같다. 물건이 살면 정신이 병이 되고 그 죽음에 정신이 사라져 없어진다. 사람과 물건이 같으니 죽어 정신도 없어지는데 어찌 해와 화가 될 수 있는가! 설령 사람이 귀하여 정신에 다름이 있다 하나 이루어진 일에 물건은 변화할 수 있고 사람은 할 수 없다. 이는 도리어 사람의 정신이 물건만 못하고 물건의 정신이 사람보다 기이함이다.
水火燒溺。凡能害人者,皆五行之物。金傷人,木毆人,土壓人,水溺人,火燒人。使人死,精神為五行之物乎?害人;不為乎?不能害人。不為物,則為氣矣。氣之害人者,太陽之氣為毒者也。使人死,其氣為毒乎?害人;不為乎?不能害人。
물과 불은 태우고 빠뜨린다. 무릇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것은 다 오행의 물건이다. 쇠는 사람을 상하고 나무는 사람을 치고 흙은 사람을 누르고 물은 사람을 빠뜨리고 불은 사람을 태운다. 사람이 죽어 정신이 오행의 물건이 되는가. 그러면 사람을 해친다. 되지 않는가. 그러면 사람을 해칠 수 없다. 물건이 되지 않으면 기운이 된다. 기운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태양의 기운이 독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 그 기운이 독이 되는가. 그러면 사람을 해친다. 되지 않는가. 그러면 사람을 해칠 수 없다.
夫論死不為鬼,無知,不能害人。則夫所見鬼者,非死人之精;其害人者,非其精所為,明矣。
무릇 죽어 귀신이 되지 않고 앎이 없고 사람을 해칠 수 없음을 논하였다. 그러면 무릇 보이는 귀신은 죽은 사람의 정이 아니요 그 사람을 해치는 것은 그 정이 하는 바가 아님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