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논형 › 정귀편

訂鬼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21 · 한자 2,923자 · 낭독 11.7분

「논형」 정귀편 「訂鬼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凡天地之間有鬼,非人死精神為之也,皆人思念存想之所致也。致之何由?由於疾病。人病則憂懼,憂懼見鬼出。凡人不病則不畏懼。故得病寢衽,畏懼鬼至;畏懼則存想,存想則目虛見。何以效之?傳曰:「伯樂學相馬,顧玩所見無非馬者。宋之庖丁學解牛,三年不見生牛,所見皆死牛也。」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귀신이 있음은 사람이 죽어 정신이 된 것이 아니라 다 사람이 생각하고 마음에 그려 이르게 한 것이다. 이르게 함은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병으로 말미암는다. 사람이 병들면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면 귀신이 나옴을 본다. 무릇 사람이 병들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면 귀신이 이를까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마음에 그리고 마음에 그리면 눈에 헛되이 보인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전에 이르기를 「백락이 말 보기를 배워 돌아보고 즐기는 바에 말 아닌 것이 없었다. 송나라 포정이 소 잡기를 배워 세 해에 산 소를 보지 못하고 본 바가 다 죽은 소였다」 하였다.

二者用精至矣。思念存想,自見異物也。人病見鬼,猶伯樂之見馬,庖丁之見牛也。伯樂、庖丁所見非馬與牛,則亦知夫病者所見非鬼也。病者困劇身體痛,則謂鬼持箠杖毆擊之,若見鬼把椎鎖繩立守其旁,病痛恐懼,妄見之也。初疾畏驚,見鬼之來;疾困恐死,見鬼之怒;身自疾痛,見鬼之擊:皆存想虛致,未必有其實也。夫精念存想,或泄於目,或泄於口,或泄於耳。泄於目,目見其形;泄於耳,耳聞其聲;泄於口,口言其事。晝日則鬼見,暮臥則夢聞。獨臥空室之中,若有所畏懼,則夢見夫人據案其身哭矣。覺見臥聞,俱用精神,畏懼存想,同一實也。

둘은 정신 씀이 지극한 것이다. 생각하고 마음에 그려 스스로 다른 물건을 본다. 사람이 병들어 귀신을 봄은 백락이 말을 보고 포정이 소를 봄과 같다. 백락·포정이 본 것이 말과 소가 아니면 또한 무릇 병든 이가 본 것이 귀신이 아님을 안다. 병든 이가 곤하고 극하여 몸이 아프면 귀신이 매와 몽둥이를 잡고 때린다 하고 혹 귀신이 철퇴와 자물쇠와 밧줄을 잡고 그 곁에 서서 지킴을 보니 병이 아프고 두려워 망령되이 본 것이다. 처음 병들어 두렵고 놀라면 귀신이 옴을 보고 병이 곤하여 죽을까 두려우면 귀신이 노함을 보고 몸이 절로 아프면 귀신이 침을 본다. 다 마음에 그려 헛되이 이르게 한 것이지 반드시 그 실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릇 정밀한 생각과 마음에 그림은 혹 눈에 새고 혹 입에 새고 혹 귀에 샌다. 눈에 새면 눈이 그 꼴을 보고 귀에 새면 귀가 그 소리를 듣고 입에 새면 입이 그 일을 말한다. 낮에는 귀신이 보이고 저녁에 누우면 꿈에 듣는다. 홀로 빈방 속에 누워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듯하면 꿈에 저 사람이 그 몸을 누르고 곡함을 본다. 깨어 보고 누워 들음이 다 정신을 쓰니 두려워하여 마음에 그림은 같은 한 실상이다.

一曰:人之見鬼,目光與臥亂也。人之晝也,氣倦精盡,夜則欲臥,臥而目光反,反而精神見人物之象矣。人病亦氣倦精盡,目雖不臥,光已亂於臥也,故亦見人物象。病者之見也,若臥若否,與夢相似。當其見也,其人能自知覺與夢,故其見物不能知其鬼與人,精盡氣倦之效也。何以驗之?以狂者見鬼也。狂痴獨語,不與善人相得者,病困精亂也。夫病且死之時,亦與狂等。臥、病及狂,三者皆精衰倦,目光反照,故皆獨見人物之象焉。

하나는 이른다. 사람이 귀신을 봄은 눈빛이 누움과 더불어 어지러워서다. 사람의 낮에는 기운이 지치고 정이 다하여 밤이면 눕고자 하고 누우면 눈빛이 뒤집히고 뒤집히면 정신이 사람과 물건의 모양을 본다. 사람이 병들어도 기운이 지치고 정이 다하여 눈이 비록 눕지 않아도 빛이 이미 누움처럼 어지러우므로 또한 사람과 물건의 모양을 본다. 병든 이의 봄은 누운 듯 아닌 듯하여 꿈과 서로 비슷하다. 그 볼 때에 그 사람이 스스로 깸과 꿈을 알 수 있으므로 그 물건을 봄에 그 귀신과 사람을 알 수 없으니 정이 다하고 기운이 지친 효험이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미친 이가 귀신을 봄으로 한다. 미치고 어리석어 홀로 말하고 착한 사람과 서로 맞지 않음은 병이 곤하여 정이 어지러워서다. 무릇 병들어 장차 죽을 때도 미친 이와 같다. 누움과 병과 미침 셋은 다 정이 쇠하고 지쳐 눈빛이 뒤집혀 비추므로 다 홀로 사람과 물건의 모양을 본다.

一曰:鬼者人所見得病之氣也。氣不知者中人,中人為鬼,其氣象人形而見。故病篤者氣盛,氣盛則象人而至,至則病者見其象矣。假令得病山林之中,其見鬼則見山林之精。人或病越地者,〔其見鬼〕(病)〔則〕見越人坐其側。由此言之,灌夫、竇嬰之徒,或時氣之形象也。凡天地之間氣皆(純)〔統〕於天,天文垂象於上,其氣降而生物。氣和者養生,不和者傷害。本有象於天,則其降下,有形於地矣。故鬼之見也,象氣為之也。眾(星)〔氣〕之體為人與鳥獸,故其病人則見人與鳥獸之形。

하나는 이른다. 귀신은 사람이 보는 병을 얻은 기운이다. 기운이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을 맞히니 사람을 맞힌 것이 귀신이 되어 그 기운이 사람 꼴을 본떠 보인다. 그러므로 병이 심한 이는 기운이 성하고 기운이 성하면 사람을 본떠 이르고 이르면 병든 이가 그 모양을 본다. 가령 산림 속에서 병을 얻으면 그 귀신을 봄에 산림의 정을 본다. 사람이 혹 월 땅에서 병들면 그 귀신을 봄에 월나라 사람이 그 곁에 앉음을 본다. 이로써 말하면 관부·두영의 무리는 혹 때로 기운의 형상이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의 기운은 다 하늘에 거느려져 하늘의 무늬가 위에 모양을 드리우고 그 기운이 내려와 물건을 낳는다. 기운이 화한 것은 삶을 기르고 화하지 않은 것은 상하고 해친다. 본디 하늘에 모양이 있으면 그 내려옴에 땅에 꼴이 있다. 그러므로 귀신의 보임은 모양의 기운이 한 것이다. 뭇 기운의 몸이 사람과 새와 짐승이 되므로 그 사람을 병들게 하면 사람과 새와 짐승의 꼴을 본다.

一曰:鬼者老物精也。

하나는 이른다. 귀신은 늙은 물건의 정이다.

夫物之老者,其精為人;亦有未老,性能變化,象人形。人之受氣,有與物同精者,則其物與之交;及病精氣衰劣也,則來犯陵之矣。何以效之?成事,俗間與物交者,見鬼之來也。夫病者所見之鬼,與彼病物何以異?人病見鬼來,象其墓中死人來迎呼之者,宅中之六畜也。及見他鬼非是所素知者,他家若草野之中物為之也。

무릇 물건의 늙은 것은 그 정이 사람이 되고 또한 아직 늙지 않아도 성품이 변화할 수 있어 사람 꼴을 본뜨는 것이 있다. 사람이 기운을 받음에 물건과 정이 같은 이가 있으면 그 물건이 그와 사귀고 병들어 정기가 쇠하고 못함에 미쳐서는 와서 범하고 업신여긴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이루어진 일에 세속에서 물건과 사귀는 이가 귀신이 옴을 본다. 무릇 병든 이가 본 귀신은 저 병들게 하는 물건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이 병들어 귀신이 옴을 봄에 그 무덤 속 죽은 사람이 와서 맞아 부름을 본뜬 것은 집 안의 집짐승이다. 다른 귀신을 봄에 미쳐 평소 아는 바가 아닌 것은 다른 집이나 풀과 들 가운데 물건이 한 것이다.

一曰:鬼者本生於人,時不成人,變化而去。天地之性,本有此化,非道術之家所能論辯。與人相觸犯者病,病人命當死,死者不離人。何以明之?《禮》曰:「顓頊氏有三子,生而亡去為疫鬼:一居江水,是為虐鬼;一居若水,是為魍魎鬼;一居人宮室區隅漚庫,善驚人小兒。」

하나는 이른다. 귀신은 본디 사람에게서 나서 때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변화하여 떠난 것이다. 하늘과 땅의 성품에 본디 이 변화가 있으니 도술의 집이 논하여 가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사람과 서로 부딪쳐 범하는 이는 병들고 병든 사람의 명이 마땅히 죽으면 죽는 이는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예」에 이르기를 「전욱씨에게 세 아들이 있어 나서 죽어 가서 역귀가 되었다. 하나는 강수에 살아 이것이 학귀요 하나는 약수에 살아 이것이 망량귀요 하나는 사람의 궁실 모퉁이 물 괸 곳간에 살아 사람의 어린아이를 잘 놀라게 한다」 하였다.

前顓頊之世,生子必多,若顓頊之鬼神以百數也。諸鬼神有形體法,能立樹與人相見者,皆生於善人,得善人之氣,故能似類善人之形,能與善人相害。陰陽浮游之類,若雲煙之氣,不能為也。

앞 전욱의 세상에 아들 낳음이 반드시 많았으니 전욱의 귀신 같은 것이 백으로 헤아릴 것이다. 여러 귀신에 몸의 법이 있어 설 수 있어 사람과 서로 보는 것은 다 착한 사람에게서 나서 착한 사람의 기운을 얻었으므로 착한 사람의 꼴과 비슷할 수 있고 착한 사람과 서로 해칠 수 있다. 음양의 떠도는 무리는 구름과 연기의 기운 같아 할 수 없다.

一曰:鬼者甲乙之神也。甲乙者天之別(一本作剛。)氣也,其形象人,人病且死,甲乙之神至矣。假令甲乙之日病,則死見庚辛之神矣。何則?甲乙鬼,庚辛報甲乙,故病人且死,殺鬼之至者,庚辛之神也。何以效之?以甲乙日病者,其死生之期,常在庚辛之日。此非論者所以為實也。天道難知,鬼神暗昧,故具載列,令世察之也。

하나는 이른다. 귀신은 갑을의 신이다. 갑을은 하늘의 다른 기운이니 그 꼴이 사람을 본떠 사람이 병들어 장차 죽으면 갑을의 신이 이른다. 가령 갑을 날에 병들면 죽음에 경신의 신을 본다. 어째서인가. 갑을은 귀신이요 경신은 갑을을 갚으므로 병든 사람이 장차 죽음에 죽이는 귀신이 이르는 것은 경신의 신이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갑을 날에 병든 이는 그 죽고 사는 기한이 늘 경신의 날에 있음으로 한다. 이는 논하는 이가 실상으로 삼는 바가 아니다. 하늘의 도는 알기 어렵고 귀신은 어둡고 아득하므로 갖추어 실어 벌여 세상이 살피게 한다.

一曰:鬼者物也,與人無異。天地之間,有鬼之物,常在四邊之外,時往來中國,與人雜(則)〔廁〕,凶惡之類也。

하나는 이른다. 귀신은 물건이니 사람과 다름이 없다. 하늘과 땅 사이에 귀신의 물건이 있어 늘 사방 변경 밖에 있다가 때로 중국에 오가며 사람과 섞여 있으니 흉악한 무리다.

故人病且死者,乃見之。天地生物也,有人如鳥獸。及其生凶物,亦有似人象鳥獸者。故凶禍之家,或見蜚尸,或見走凶,或見人形,三者皆鬼也。或謂之鬼,或謂之凶,或謂之魅,或謂之魑,皆生存實有,非虛無象類之也。何以明之?成事,俗間家人且凶,見流光集其室,或見其形若鳥之狀,時流(人)〔入〕堂室,察其不謂若鳥獸矣。夫物有形則能食,能食則便利。便利有驗,則形體有實矣。

그러므로 사람이 병들어 장차 죽는 이가 곧 본다. 하늘과 땅이 물건을 낳음에 사람이 있고 새와 짐승 같은 것이 있다. 그 흉한 물건을 낳음에 미쳐도 또한 사람 같고 새와 짐승을 본뜬 것이 있다. 그러므로 흉한 화의 집에 혹 나는 주검을 보고 혹 달리는 흉한 것을 보고 혹 사람 꼴을 보니 셋은 다 귀신이다. 혹 귀라 하고 혹 흉이라 하고 혹 매라 하고 혹 리라 하니 다 살아 실로 있는 것이지 헛되이 없는 모양이 비슷한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이루어진 일에 세속에서 집안사람이 장차 흉하면 흐르는 빛이 그 방에 모임을 보고 혹 그 꼴이 새 모양 같음을 보며 때로 당과 방에 흘러 들어 살피면 새와 짐승 같다 하지 않는다. 무릇 물건에 꼴이 있으면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있으면 똥오줌을 눈다. 똥오줌에 증험이 있으면 몸에 실상이 있다.

《左氏春秋》曰:「投之四裔,以御魑魅。」《山海經》曰:「北方有鬼國。」

「좌씨춘추」에 이르기를 「사방 끝에 던져 이매를 막았다」 하였다. 「산해경」에 이르기를 「북방에 귀국이 있다」 하였다.

說螭者謂之龍物也,而魅與龍相連,魅則龍之類矣。又言:國,人物之党也。《山海經》又曰:滄海之中,有度朔之山。上有大桃木,其屈蟠三千里,其枝間東北曰鬼門,萬鬼所出入也。上有二神人,一曰神荼,一曰郁壘,主閱領萬鬼。惡害之鬼,執以葦索而以食虎。於是黃帝乃作禮以時驅之,立大桃人,門戶畫神荼、郁壘與虎,懸葦索以御凶魅。

리를 설명하는 이는 용의 물건이라 하는데 매가 용과 서로 이어지니 매는 용의 무리다. 또 말한다. 나라는 사람과 물건의 무리다. 「산해경」에 또 이르기를 창해 가운데 도삭의 산이 있다. 위에 큰 복숭아나무가 있어 그 굽고 서림이 삼천 리요 그 가지 사이 동북을 귀문이라 하니 온 귀신이 드나드는 곳이다. 위에 두 신인이 있어 하나는 신도라 하고 하나는 울루라 하니 온 귀신을 살펴 거느림을 주관한다. 악하고 해로운 귀신은 갈대 새끼로 잡아 범에게 먹인다. 이에 황제가 곧 예를 지어 때로 쫓으니 큰 복숭아 사람을 세우고 문에 신도·울루와 범을 그리고 갈대 새끼를 걸어 흉한 매를 막는다 하였다.

有形,故執以食虎。案可食之物無空虛者,其物也性與人殊,時見時匿,與龍不常見,無以異也。

꼴이 있으므로 잡아 범에게 먹인다. 살피건대 먹을 만한 물건에 헛되고 빈 것이 없으니 그 물건은 성품이 사람과 달라 때로 보이고 때로 숨으니 용이 늘 보이지 않음과 다를 것이 없다.

一曰:人且吉凶,妖祥先見。人之且死見百怪。鬼在百怪之中,故妖怪之動,象人之形,或象人之聲為應。故其妖動不離人形。天地之間,妖怪非一,言有妖,聲有妖,文有妖,或妖氣象人之形,或人含氣為妖。〔妖氣〕象人之形,諸所見鬼是也。人含氣為妖,巫之類是也。是以實巫之辭,無所因據,其吉凶自從口出,若童之搖矣。童謠口自言,巫辭意自出。口自言,意自出,則其為人,與聲氣自立,音聲自發,同一實也。

하나는 이른다. 사람이 장차 길흉이 있으면 요사와 상서가 먼저 보인다. 사람이 장차 죽으면 온 괴이함을 본다. 귀신이 온 괴이함 가운데 있으므로 요사한 괴이함의 움직임이 사람의 꼴을 본뜨고 혹 사람의 소리를 본떠 응한다. 그러므로 그 요사한 움직임이 사람 꼴을 떠나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이에 요사한 괴이함이 하나가 아니니 말에 요사가 있고 소리에 요사가 있고 글에 요사가 있으며 혹 요사한 기운이 사람의 꼴을 본뜨고 혹 사람이 기운을 머금어 요사가 된다. 요사한 기운이 사람의 꼴을 본뜸은 여러 본 귀신이 그것이다. 사람이 기운을 머금어 요사가 됨은 무당의 무리가 그것이다. 이 때문에 실로 무당의 말은 인하여 근거할 바가 없고 그 길흉이 절로 입에서 나오니 아이의 노래 같다. 동요는 입이 절로 말하고 무당의 말은 뜻이 절로 나온다. 입이 절로 말하고 뜻이 절로 나오면 그 사람 됨이 소리와 기운이 절로 서고 음성이 절로 남과 같은 한 실상이다.

世稱紂之時,夜郊鬼哭;及倉頡作書,鬼夜哭。氣能象人聲而哭,則亦能象人形而見,則人以為鬼矣。鬼之見也,人之妖也。天地之間,禍福之至,皆有兆象,有漸不卒然,有象不猥來。天地之道,入將亡,凶亦出;國將亡,妖亦見。猶人且吉,吉祥至;國且昌,昌瑞至矣。故夫瑞應妖祥,其實一也。而世獨謂鬼者不在妖祥之中,謂鬼猶神而能害人,不通妖祥之道,不睹物氣之變也。國將亡,妖見,其亡非妖也。人將死,鬼來,其死非鬼也。亡國者兵也,殺人者病也。何以明之?

세상은 주 때에 밤에 교외에서 귀신이 곡하였고 창힐이 글자를 지음에 미쳐 귀신이 밤에 곡하였다 일컫는다. 기운이 사람 소리를 본떠 곡할 수 있으면 또한 사람 꼴을 본떠 보일 수 있으니 사람이 귀신이라 여긴다. 귀신의 보임은 사람의 요사다. 하늘과 땅 사이에 화복의 이름에 다 조짐과 모양이 있어 점차가 있어 갑작스럽지 않고 모양이 있어 함부로 오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도에 사람이 장차 망하면 흉함도 나오고 나라가 장차 망하면 요사도 보인다. 사람이 장차 길하면 길한 상서가 이르고 나라가 장차 창성하면 창성한 상서가 이름과 같다. 그러므로 무릇 상서로운 응함과 요사와 상서는 그 실은 하나다. 그런데 세상이 홀로 귀신은 요사와 상서 가운데 있지 않다 하고 귀신은 오히려 신령하여 사람을 해칠 수 있다 하니 요사와 상서의 도에 통하지 않고 물건과 기운의 변함을 보지 못한 것이다. 나라가 장차 망하면 요사가 보이나 그 망함은 요사가 아니다. 사람이 장차 죽으면 귀신이 오나 그 죽음은 귀신이 아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군사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병이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齊襄公將為賊所殺,游於姑棼,遂田於貝丘,見大豕。從者曰:「公子彭生也。」公怒曰:「彭生敢見!」引弓射之,豕人立而啼。公懼,墜於車,傷足喪履,而為賊殺之。夫殺襄公者賊也。先見大豕於路,則襄公且死之妖也。人謂之彭生者,有似彭生之狀也。世人皆知殺襄公者非豕,而獨謂鬼能殺人,一惑也。

제 양공이 장차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려 할 때 고분에서 노닐다가 마침내 패구에서 사냥하는데 큰 돼지를 보았다. 따르는 이가 말하였다. 「공자 팽생입니다.」 공이 노하여 말하였다. 「팽생이 감히 보이는가!」 활을 당겨 쏘니 돼지가 사람처럼 서서 울었다. 공이 두려워하여 수레에서 떨어져 발을 상하고 신을 잃고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무릇 양공을 죽인 것은 도적이다. 먼저 길에서 큰 돼지를 봄은 양공이 장차 죽을 요사다. 사람이 팽생이라 함은 팽생의 모양과 비슷함이 있어서다. 세상 사람이 다 양공을 죽인 것이 돼지가 아님을 알면서 홀로 귀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하니 한 홀림이다.

天地之氣為妖者,太陽之氣也。妖與毒同,氣中傷人者謂之毒,氣變化者謂之妖。世謂童謠,熒惑使之,彼言有所見也。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요사가 되는 것은 태양의 기운이다. 요사는 독과 같으니 기운이 사람을 맞혀 상하는 것을 독이라 하고 기운이 변화하는 것을 요사라 한다. 세상이 동요는 형혹이 시킨다 하니 저 말이 본 바가 있다.

熒惑火星,火有毒熒。故當熒惑守宿,國有禍敗。火氣恍惚,故妖象存亡。龍,陽物也,故時變化。鬼,陽氣也,時藏時見。陽氣赤,故世人盡見。鬼,其色純朱。蜚凶,陽也。陽,火也。故蜚凶之類為火光,火熱焦物,故止集樹木,枝葉枯死。《鴻范》五行二曰火,五事二曰言。言火同氣,故童謠詩歌為妖言。言出文成,故世有文書之怪。世謂童子為陽,故妖言出於小童。童巫含陽,故大雩之祭,舞童暴巫,雩祭之禮,倍陰合陽。故猶日食陰勝,攻社之陰也。日食陰勝,故攻陰之類;天旱陽勝,故愁陽之党。巫為陽党,故魯僖遭旱,議欲焚巫。巫含陽氣,以故陽地之民多為巫。巫党於鬼,故巫者為鬼巫。鬼巫比於童謠,故巫之審者能處吉凶。吉凶能處,吉凶之徒也,故申生之妖見於巫。巫含陽,能見為妖也。申生為妖,則知杜伯、庄子義厲鬼之徒皆妖也。

형혹은 화성이니 불에 독한 빛이 있다. 그러므로 형혹이 별자리를 지킬 때 나라에 화와 패함이 있다. 불 기운은 황홀하므로 요사가 있고 없음을 본뜬다. 용은 양의 물건이므로 때로 변화한다. 귀신은 양의 기운이라 때로 감추고 때로 보인다. 양의 기운은 붉으므로 세상 사람이 다 보는 귀신은 그 빛이 순전히 붉다. 나는 흉한 것은 양이다. 양은 불이다. 그러므로 나는 흉한 것의 무리가 불빛이 되고 불의 열이 물건을 태우므로 나무에 머물러 모이면 가지와 잎이 말라 죽는다. 「홍범」 오행에 둘째를 불이라 하고 오사에 둘째를 말이라 한다. 말과 불이 기운이 같으므로 동요와 시가가 요사한 말이 된다. 말이 나와 글이 이루어지므로 세상에 문서의 괴이함이 있다. 세상이 아이를 양이라 하므로 요사한 말이 어린아이에게서 나온다. 아이와 무당은 양을 머금으므로 큰 기우제에 아이를 춤추게 하고 무당을 볕에 쬐니 기우제의 예는 음을 등지고 양을 합한다. 그러므로 일식에 음이 이기면 사의 음을 침과 같다. 일식은 음이 이기므로 음의 무리를 치고 하늘이 가물면 양이 이기므로 양의 무리를 근심하게 한다. 무당은 양의 무리이므로 노 희공이 가뭄을 만나 무당을 태우려 의논하였다. 무당은 양의 기운을 머금으므로 그 까닭에 양의 땅 백성이 흔히 무당이 된다. 무당은 귀신의 무리이므로 무당은 귀신 무당이 된다. 귀신 무당은 동요에 견주므로 무당의 살펴진 이는 길흉을 처리할 수 있다. 길흉을 처리할 수 있으면 길흉의 무리이므로 신생의 요사가 무당에게 보였다. 무당은 양을 머금으므로 보여 요사가 될 수 있다. 신생이 요사가 되면 두백·장자의 여귀의 무리가 다 요사임을 안다.

杜伯之厲為妖,則其弓矢投措皆妖毒也。妖象人之形,其毒象人之兵。鬼毒同色,故杜伯弓矢皆朱彤也。毒象人之兵,則其中人,人輒死也。中人微者即為腓,病者不即時死。何則?腓者,毒氣所加也。妖或施其毒,不見其體;或見其形,不施其毒;或出其聲,不成其言;或明其言,不知其音。若夫申生,見其體,成其言者也;杜伯之屬,見其體,施其毒者也;詩妖童謠石言之屬,明其言者也;濮水琴聲、紂郊鬼哭,出其聲者也。

두백의 여귀가 요사가 되면 그 활과 화살을 던지고 놓음이 다 요사한 독이다. 요사는 사람의 꼴을 본뜨고 그 독은 사람의 병기를 본뜬다. 귀신과 독은 빛이 같으므로 두백의 활과 화살이 다 붉었다. 독이 사람의 병기를 본뜨면 그 사람을 맞힘에 사람이 문득 죽는다. 사람을 맞힘이 작은 것은 곧 저림(腓)이 되니 병든 이가 곧 죽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비는 독한 기운이 더한 것이다. 요사는 혹 그 독을 베풀되 그 몸을 보이지 않고 혹 그 꼴을 보이되 그 독을 베풀지 않고 혹 그 소리를 내되 그 말을 이루지 않고 혹 그 말을 밝히되 그 음을 알지 못한다. 저 신생 같은 이는 그 몸을 보이고 그 말을 이룬 것이요 두백의 무리는 그 몸을 보이고 그 독을 베푼 것이요 시요와 동요와 돌 말의 무리는 그 말을 밝힌 것이요 복수의 거문고 소리와 주의 교외 귀신 곡은 그 소리를 낸 것이다.

妖之見出也,或且凶而豫見,或凶至而因出。因出,則妖與毒俱行。豫見,妖出不能毒。申生之見,豫見之妖也。杜伯、庄子義厲鬼至,因出之妖也。周宣王、燕簡公、宋夜姑時當死,故妖見毒因擊。晉惠公身當獲,命未死,故妖直見毒不射。然則杜伯、庄子義厲鬼之見,周宣王、燕簡、夜姑且死之妖也。申生之出,晉惠公且見獲之妖也。伯有之夢,駟帶、公孫段且卒之妖也。老父結草,魏顆且勝之祥,亦或時杜回見獲之妖也。蒼犬噬呂后,呂后且死,妖象犬形也。武安且卒,妖象竇嬰、灌夫之面也。故凡世間所謂妖祥、所謂鬼神者,皆太陽之氣為之也。太陽之氣,天氣也。天能生人之體,故能象人之容。夫人所以生者,陰陽氣也。陰氣主為骨肉,陽氣主為精神。人之生也,陰陽氣具,故骨肉堅、精氣盛。精氣為知,骨肉為強,故精神言談,形體固守。骨肉精神,合錯相持,故能常見而不滅亡也。太陽之氣,盛而無陰,故徒能為象不能為形,無骨肉有精氣,故一見恍惚,輒復滅亡也。

요사가 보여 나옴은 혹 장차 흉하려 하여 미리 보이고 혹 흉이 이르러 인하여 나온다. 인하여 나오면 요사와 독이 함께 다닌다. 미리 보이면 요사가 나와도 독하지 못한다. 신생의 보임은 미리 보인 요사다. 두백·장자의 여귀의 이름은 인하여 나온 요사다. 주 선왕·연 간공·송 야고는 때에 마땅히 죽으므로 요사가 보이고 독이 인하여 쳤다. 진 혜공은 몸이 마땅히 사로잡히나 명이 아직 죽지 않으므로 요사가 다만 보이고 독이 쏘지 않았다. 그러면 두백·장자의 여귀의 보임은 주 선왕·연 간공·야고가 장차 죽을 요사다. 신생의 나옴은 진 혜공이 장차 사로잡힐 요사다. 백유의 꿈은 사대·공손단이 장차 죽을 요사다. 늙은 아비가 풀을 맺음은 위과가 장차 이길 상서요 또한 혹 때로 두회가 사로잡힐 요사다. 푸른 개가 여후를 묾은 여후가 장차 죽음에 요사가 개 꼴을 본뜬 것이다. 무안이 장차 죽음에 요사가 두영·관부의 얼굴을 본뜬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세상에서 이른바 요사와 상서와 이른바 귀신은 다 태양의 기운이 한 것이다. 태양의 기운은 하늘 기운이다. 하늘이 사람의 몸을 낳을 수 있으므로 사람의 얼굴을 본뜰 수 있다. 무릇 사람이 사는 까닭은 음양의 기운이다. 음의 기운은 뼈와 살 됨을 주관하고 양의 기운은 정신 됨을 주관한다. 사람이 남에 음양의 기운이 갖추어지므로 뼈와 살이 굳고 정기가 성하다. 정기는 앎이 되고 뼈와 살은 강함이 되므로 정신이 말하고 몸이 굳게 지킨다. 뼈와 살과 정신이 합하고 섞여 서로 지탱하므로 늘 보이고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 태양의 기운은 성하고 음이 없으므로 한갓 모양이 될 수 있고 꼴이 될 수 없으며 뼈와 살이 없고 정기가 있으므로 한 번 보여 황홀하고 문득 다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