薄葬篇
聖賢之業,皆以薄葬省用為務。然而世尚厚葬,有奢泰之失者,儒家論不明,墨家議之非故也。墨家之議右鬼,以為人死輒為神鬼而有知,能形而害人,故引杜伯之類以為效驗。儒家不從,以為死人無知,不能為鬼,然而賻祭備物者,示不負死以觀生也。陸賈依儒家而說,故其立語不肯明處。劉子政舉薄葬之奏,務欲省用,不能極論。是以世俗內持狐疑之議,外聞杜伯之類;又見病且終者,墓中死人來與相見,故遂信是,謂死如生。閔死獨葬,魂狐無副,丘墓閉藏,谷物乏匱,故作偶人以侍尸柩,多藏食物,以歆精魂。積浸流至,或破家盡業以充死棺,殺人以殉葬,以快生意。非知其內無益,而奢侈之心外相慕也;以為死人有知,與生人無以異。孔子非之而亦無以定實。然而陸賈之論兩無所處。劉子政奏,亦不能明儒家無知之驗,墨家有知之故。事莫明於有效,論莫定於有証。空言虛語,雖得道心,人猶不信。是以世俗輕愚信禍福者,畏死不懼義,重死不顧生,竭財以事神,空家以送終。辯士文人有效驗,若墨家之以杜伯為據,則死無知之實可明,薄葬省財之教可立也。今墨家非儒,儒家非墨,各有所持,故乖不合,業難齊同,故二家爭論。世無祭祀復生之人,故死生之義未有所定。實者死人暗昧與人殊途,其實荒忽難得深知。有知無知之情不可定,為鬼之實不可是。通人知士,雖博覽古今,窺涉百家,條入葉貫,不能審知。唯聖心賢意,方比物類,為能實之。夫論不留精澄意,苟以外效立事是非,信聞見於外,不詮訂於內,是用耳目論,不以心意議也。夫以耳目論,則以虛象為言;虛象效,則以實事為非,是故是非者不徒耳目,必開心意。墨議不以心而原物,苟信聞見,則雖效驗章明,猶為失實。失實之議難以教,雖得愚民之欲,不合知者之心,喪物索用,無益於世。此蓋墨術所以不傳也。
성현의 업은 다 얇게 장사하고 쓰임을 덜기를 힘씀으로 삼는다. 그러나 세상이 두터운 장사를 숭상하여 사치하고 지나친 잃음이 있음은 유가의 논이 밝지 않고 묵가의 의논이 그른 까닭이다. 묵가의 의논은 귀신을 높여 사람이 죽으면 문득 신과 귀신이 되어 앎이 있어 꼴을 이루어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여기므로 두백의 무리를 끌어 효험으로 삼는다. 유가는 따르지 않아 죽은 사람은 앎이 없어 귀신이 될 수 없다 여기나 부의와 제사에 물건을 갖춤은 죽은 이를 저버리지 않음을 보여 산 이에게 보이는 것이다. 육가가 유가에 의지하여 설명하였으므로 그 말을 세움에 밝게 처하려 하지 않았다. 유자정이 얇게 장사하자는 상주를 들어 쓰임을 덜기 힘썼으나 끝까지 논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세속이 안으로 망설이는 의논을 가지고 밖으로 두백의 무리를 들으며 또 병들어 장차 끝날 이가 무덤 속 죽은 사람이 와서 서로 봄을 보므로 마침내 이를 믿어 죽음이 삶과 같다 한다. 죽은 이가 홀로 장사됨을 불쌍히 여겨 혼이 외로워 짝이 없고 무덤이 닫혀 감추어져 곡식과 물건이 모자라므로 나무 인형을 만들어 널을 모시게 하고 먹을 것을 많이 감추어 정혼을 흠향하게 한다. 쌓이고 젖어 흘러 이르러 혹 집을 깨뜨리고 업을 다하여 죽은 이의 관을 채우고 사람을 죽여 순장하여 산 이의 뜻을 시원하게 한다. 그 안에 이익 없음을 알지 못함이 아니라 사치하는 마음이 밖으로 서로 사모함이니 죽은 사람에게 앎이 있어 산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여겨서다. 공자가 이를 그르다 하였으나 또한 실상을 정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육가의 논은 둘 다 처한 바가 없다. 유자정의 상주도 유가의 앎 없음의 증험과 묵가의 앎 있음의 까닭을 밝힐 수 없었다. 일은 효험 있음보다 밝은 것이 없고 논은 증거 있음보다 정해지는 것이 없다. 빈말과 헛된 말은 비록 도의 마음을 얻어도 사람이 오히려 믿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속의 가볍고 어리석어 화복을 믿는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을 무겁게 여기고 삶을 돌아보지 않아 재물을 다하여 신을 섬기고 집을 비워 죽은 이를 보낸다. 변사와 문인에게 효험이 있어 묵가가 두백을 근거로 삼음과 같이 하면 죽어 앎이 없음의 실상을 밝힐 수 있고 얇게 장사하고 재물을 더는 가르침을 세울 수 있다. 지금 묵가는 유가를 그르다 하고 유가는 묵가를 그르다 하여 저마다 가진 바가 있으므로 어긋나 합하지 않고 업이 가지런히 같기 어려우므로 두 집이 다툰다. 세상에 제사로 다시 산 사람이 없으므로 죽고 삶의 뜻이 아직 정한 바가 없다. 실상은 죽은 사람이 어둡고 아득하여 사람과 길이 다르니 그 실이 아득하여 깊이 알기 어렵다. 앎이 있고 없음의 정을 정할 수 없고 귀신 됨의 실상을 옳다 할 수 없다. 통한 사람과 아는 선비가 비록 고금을 널리 보고 백가를 엿보고 건너 가지로 들고 잎으로 꿰어도 살펴 알 수 없다. 오직 성스러운 마음과 어진 뜻이 바야흐로 물건의 무리를 견주어 실답게 할 수 있다. 무릇 논에 정밀함을 머물게 하고 뜻을 맑게 하지 않고 구차히 밖의 효험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세워 듣고 봄을 밖에서 믿고 안에서 따져 바로잡지 않으면 이는 귀와 눈으로 논함이지 마음과 뜻으로 의논함이 아니다. 무릇 귀와 눈으로 논하면 헛된 모양으로 말을 삼고 헛된 모양이 증험되면 실다운 일을 그르다 하니 이 때문에 옳고 그름은 한갓 귀와 눈이 아니라 반드시 마음과 뜻을 열어야 한다. 묵가의 의논은 마음으로 물건을 미루지 않고 구차히 듣고 봄을 믿으니 비록 효험이 뚜렷이 밝아도 오히려 실상을 잃음이 된다. 실상을 잃은 의논은 가르치기 어려우니 비록 어리석은 백성의 바람을 얻어도 아는 이의 마음에 맞지 않고 물건을 잃고 쓰임을 다하여 세상에 이익이 없다. 이것이 아마 묵가의 술이 전해지지 않는 까닭이다.
魯人將以斂,孔子聞之,徑庭麗級而諫。夫徑庭麗級,非禮也,孔子為救患也。患之所由,常由有所貪。
노나라 사람이 장차 옥으로 염하려 하니 공자가 듣고 뜰을 가로질러 층계를 밟고 간하였다. 무릇 뜰을 가로지르고 층계를 밟음은 예가 아닌데 공자가 환난을 구하려 한 것이다. 환난이 말미암는 바는 늘 탐하는 바가 있음으로 말미암는다.
,寶物也,魯人用斂,奸人之,欲心生矣。奸人欲生,不畏罪法,不畏罪法,則丘墓(抽)〔〕矣。孔子睹微見著,故徑庭麗級,以救患直諫。夫不明死人無知之義,而著丘墓必(抽)〔〕之諫,雖盡比干之執,人人必不聽。何則?諸侯財多不憂貪,威強不懼(抽)〔〕。死人之議,狐疑未定,孝子之計,從其重者。如明死人無知,厚葬無益,論定議立,較著可聞,則
옥은 보배로운 물건이니 노나라 사람이 써서 염하면 간사한 사람이 옥을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간사한 사람이 바람이 생기면 죄와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와 법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무덤이 파헤쳐진다. 공자가 작은 것을 보고 드러남을 보았으므로 뜰을 가로질러 층계를 밟고 환난을 구하려 바로 간하였다. 무릇 죽은 사람이 앎이 없음의 뜻을 밝히지 않고 무덤이 반드시 파헤쳐진다는 간함을 드러내면 비록 비간의 굳셈을 다하여도 사람마다 반드시 듣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제후는 재물이 많아 탐함을 근심하지 않고 위엄이 강하여 파헤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의 의논은 망설여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효자의 꾀는 그 무거운 쪽을 따른다. 죽은 사람이 앎이 없어 두터운 장사가 이익 없음을 밝혀 논이 정해지고 의논이 서서 뚜렷이 들릴 만하면
之禮不行,徑庭之諫不發矣。今不明其說而強其諫,此蓋孔子所以不能立其教。孔子非不明死生之實,其意不分別者,亦陸賈之語指也。夫言死無知,則臣子倍其君父。故曰:「喪祭禮廢則臣子恩泊,臣子恩泊則倍死亡先,倍死亡先則不孝獄多。」
옥의 예가 행해지지 않고 뜰을 가로지르는 간함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 설을 밝히지 않고 그 간함을 억지로 하니 이것이 아마 공자가 그 가르침을 세울 수 없었던 까닭이다. 공자가 죽고 삶의 실상을 밝히지 못함이 아니라 그 뜻이 분별하지 않음은 또한 육가의 말의 가리킴이다. 무릇 죽어 앎이 없다 말하면 신하와 자식이 그 임금과 아비를 저버린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상례와 제례가 폐하면 신하와 자식의 은혜가 얇아지고 신하와 자식의 은혜가 얇아지면 죽은 이와 선조를 저버리고 죽은 이와 선조를 저버리면 불효의 옥사가 많아진다」 하였다.
聖人懼開不孝之源,故不明死無知之實。異道不相連,事生厚,化自生,雖事死泊,何損於化?使死者有知,倍之非也。如無所知,倍之何損?明其無知,未必有倍死之害。不明無知,成事已有賊生之費。
성인이 불효의 근원을 열까 두려워하였으므로 죽어 앎이 없음의 실상을 밝히지 않았다. 다른 길은 서로 잇지 않으니 산 이를 섬김이 두터우면 교화가 절로 나니 비록 죽은 이를 섬김이 얇아도 교화에 무엇이 덜리겠는가. 죽은 이에게 앎이 있게 하면 저버림이 그르다. 아는 바가 없으면 저버린들 무엇이 덜리는가. 그 앎이 없음을 밝혀도 반드시 죽은 이를 저버리는 해가 있지 않다. 앎이 없음을 밝히지 않으면 이루어진 일에 이미 산 이를 해치는 비용이 있다.
孝子之養親病也,未死之時,求卜迎醫,冀禍消、葯有益也。
효자가 어버이의 병을 봉양함에 아직 죽지 않았을 때 점을 구하고 의원을 맞아 화가 사라지고 약이 이익 있기 바란다.
既死之後,雖審如巫咸,良如扁鵲,終不復生。何則?知死氣絕,終無補益。治死無益,厚葬何差乎!倍死恐傷化,絕卜拒醫,獨不傷義乎!親之生也,坐之高堂之上,其死也,葬之黃泉之下。黃泉之下非人所居,然而葬之不疑者,以死絕異處,不可同也。如當亦如生存,恐人倍之,宜葬於宅,與生同也。不明無知,為人倍其親,獨明葬黃泉,不為離其先乎?親在獄中,罪疑未定,孝子馳走以救其難。如罪定法立,終無門戶,雖曾子、子騫,坐泣而已。何則?計動無益,空為煩也。今死親之魂,定無所知,與拘親之罪決不可救何以異?不明無知,恐人倍其先,獨明罪定,不為忽其親乎!聖人立義,有益於化,雖小弗除;無補於政,雖大弗與。今厚死人,何益於恩?倍之弗事,何損於義?
이미 죽은 뒤에는 비록 살핌이 무함 같고 좋기가 편작 같아도 끝내 다시 살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죽어 기운이 끊어지면 끝내 보탬이 없음을 알아서다. 죽은 이를 다스림이 이익 없는데 두터운 장사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죽은 이를 저버림이 교화를 상할까 두려워하면서 점을 끊고 의원을 물리침은 홀로 의를 상하지 않는가! 어버이가 살아서는 높은 당 위에 앉게 하고 그 죽음에 황천 아래 장사한다. 황천 아래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데 장사하며 의심하지 않음은 죽음이 끊겨 다른 곳이라 같을 수 없어서다. 마땅히 또한 살아 있음과 같아 사람이 저버릴까 두려워하면 마땅히 집에 장사하여 삶과 같게 해야 한다. 앎이 없음을 밝히지 않아 사람이 그 어버이를 저버리게 하면서 홀로 황천에 장사함을 밝힘은 그 선조를 떠나게 함이 되지 않는가. 어버이가 옥중에 있어 죄가 의심스러워 아직 정해지지 않으면 효자가 달려 그 어려움을 구한다. 죄가 정해지고 법이 서서 끝내 문호가 없으면 비록 증자·자건이라도 앉아 울 뿐이다. 어째서인가. 꾀하여 움직여도 이익이 없어 헛되이 번거로움이 되어서다. 이제 죽은 어버이의 혼이 정하여 아는 바가 없음은 갇힌 어버이의 죄가 결정되어 구할 수 없음과 무엇이 다른가. 앎이 없음을 밝히지 않아 사람이 그 선조를 저버릴까 두려워하면서 홀로 죄가 정해짐을 밝힘은 그 어버이를 소홀히 함이 되지 않는가! 성인이 의를 세움에 교화에 이익이 있으면 비록 작아도 없애지 않고 정사에 보탬이 없으면 비록 커도 주지 않는다. 이제 죽은 사람을 두터이 함이 은혜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 저버리고 섬기지 않음이 의에 무엇이 덜리는가.
孔子又謂:為明器不成,示意有明,俑則偶人,象類生人。故魯用偶人葬,孔子嘆,睹用人殉之兆也,故嘆以痛之。即如生當備物,不示如生,意悉其教,用偶人葬,恐後用生殉,用明器,獨不為后用善器葬乎!絕用人之源,不防喪物之路,重人不愛用,痛人不憂國,傳議之所失也。救漏防者悉塞其穴,則水泄絕。穴不悉塞,水有所漏,漏則水為患害。論死不悉,則奢禮不絕。不絕則喪物索用,用索物喪,民貧耗(之)〔乏〕,至危亡之道也。
공자가 또 이르기를 무덤에 넣는 그릇을 만듦에 이루지 않음은 뜻에 밝음이 있음을 보이나 용은 곧 나무 인형이라 산 사람을 본뜬다 하였다. 그러므로 노나라가 나무 인형을 써서 장사하니 공자가 탄식함은 사람을 순장하는 조짐을 보아서니 그러므로 탄식하여 아파한 것이다. 곧 삶과 같이 마땅히 물건을 갖추어야 하나 삶과 같음을 보이지 않으면 뜻이 그 가르침을 다함이라 나무 인형을 써서 장사함에 뒤에 산 사람을 순장할까 두려워하고 명기를 씀에 홀로 뒤에 좋은 그릇을 써서 장사함이 되지 않는가! 사람을 쓰는 근원을 끊고 물건을 잃는 길을 막지 않으며 사람을 무겁게 여기고 쓰임을 아끼지 않으며 사람을 아파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음은 전하는 의논이 잃은 바다. 새는 것을 구하는 이가 그 구멍을 다 막으면 물이 새기를 끊는다. 구멍을 다 막지 않으면 물이 새는 데가 있고 새면 물이 환난과 해가 된다. 죽음을 논함이 다하지 않으면 사치한 예가 끊이지 않는다. 끊이지 않으면 물건을 잃고 쓰임을 다하며 쓰임을 다하고 물건을 잃어 백성이 가난하고 축나 모자라니 위태롭고 망하는 길에 이른다.
蘇秦為燕使,齊國之民高大丘冢,多藏財物,蘇秦身弗以勸勉之,財盡民(貪)〔貧〕,國空兵弱,燕軍卒至,無以自衛,國破城亡,主出民散。今不明死之無知,使民自竭以厚葬親,與蘇秦奸計同一敗。墨家之議自違其術,其薄葬而又右鬼,右鬼引效以杜伯為驗。杜伯死人,如謂杜伯為鬼,則夫死者審有知;如有知而薄葬之,是怒死人也。〔人〕情欲厚而惡薄,以薄受死者之責,雖右鬼,其何益哉?如以鬼非死人,則其信杜伯非也;如以鬼是死人,則其薄葬非也。術用乖錯,首尾相違,故以為非。非與是不明,皆不可行。夫如是,世欲之人,可一詳覽。詳覽如斯,可一薄葬矣。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사신 되니 제나라 백성이 높고 큰 무덤을 하여 재물을 많이 감추었는데 소진이 몸소 이로써 권하니 재물이 다하고 백성이 가난하며 나라가 비고 군사가 약하여 연나라 군이 갑자기 이르니 스스로 지킬 길이 없어 나라가 깨지고 성이 망하고 임금이 나가고 백성이 흩어졌다. 이제 죽음에 앎이 없음을 밝히지 않아 백성이 스스로 다하여 어버이를 두터이 장사하게 함은 소진의 간사한 꾀와 같은 한 패함이다. 묵가의 의논은 스스로 그 술을 어기니 얇게 장사하면서 또 귀신을 높이고 귀신을 높임에 효험을 끌어 두백을 증험으로 삼는다. 두백은 죽은 사람이니 두백이 귀신이 된다 하면 무릇 죽은 이는 살펴 앎이 있는 것이요 앎이 있는데 얇게 장사하면 이는 죽은 사람을 노하게 함이다. 사람의 정은 두터움을 바라고 얇음을 미워하니 얇음으로 죽은 이의 책망을 받으면 비록 귀신을 높여도 무슨 이익이겠는가. 귀신이 죽은 사람이 아니라 하면 그 두백을 믿음이 그르고 귀신이 죽은 사람이라 하면 그 얇게 장사함이 그르다. 술과 쓰임이 어긋나 머리와 꼬리가 서로 어기므로 그르다 여긴다. 그름과 옳음이 밝지 않으면 다 행할 수 없다. 무릇 이러하면 세상 사람이 한 번 자세히 볼 만하다. 자세히 봄이 이 같으면 한 번 얇게 장사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