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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諱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9 · 한자 2,781자 · 낭독 11.1분

「논형」 사휘편 「四諱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俗有大諱四。一曰諱西益宅。西益宅謂之不祥,不祥必有死亡,相懼以此,故世莫敢西益宅,防禁所從來者遠矣。傳曰:魯哀公欲西益宅,史爭以為不祥。哀公作色而怒,左右數諫而弗聽,以問其傅宰質睢曰:「吾欲西益宅,史以為不祥,何如?」宰質睢曰:「天下有三不祥,西益宅不與焉。」哀公大說。有頃,復問曰:「何謂三不祥?」對曰:「不行禮義,一不祥也。嗜欲無止,二不祥也。不聽規諫,三不祥也。」哀公繆然深惟,慨然自反,遂不益宅。

풍속에 큰 꺼림이 넷 있다. 하나는 서쪽으로 집을 늘림을 꺼림이다. 서쪽으로 집을 늘림을 상서롭지 않다 하니 상서롭지 않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하여 이것으로 서로 두려워하므로 세상이 감히 서쪽으로 집을 늘리지 않으니 막고 금함이 온 바가 멀다. 전에 이르기를 노 애공이 서쪽으로 집을 늘리려 하니 사관이 다투어 상서롭지 않다 하였다. 애공이 낯빛을 바꾸어 노하니 좌우가 여러 번 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그 스승 재질휴에게 물었다. 「내가 서쪽으로 집을 늘리려 하는데 사관이 상서롭지 않다 하니 어떠한가?」 재질휴가 말하였다. 「천하에 세 상서롭지 않음이 있는데 서쪽으로 집을 늘림은 거기 들지 않습니다.」 애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잠시 뒤 다시 물었다. 「무엇을 세 상서롭지 않음이라 하는가?」 대답하였다. 「예의를 행하지 않음이 첫째 상서롭지 않음입니다. 즐기고 바람이 그침 없음이 둘째 상서롭지 않음입니다. 규간을 듣지 않음이 셋째 상서롭지 않음입니다.」 애공이 잠잠히 깊이 생각하고 개연히 스스로 돌이켜 마침내 집을 늘리지 않았다.

令史與宰質睢止其益宅,徒為煩擾,則西益宅祥與不祥未可知也。令史、質睢以為西益宅審不祥,則史與質睢與今俗人等也。夫宅之四面皆地也,三面不謂之凶,益西面獨謂不祥,何哉?西益宅何傷於地體,何害於宅神?西益不祥,損之能善乎?西益不祥,東益能吉乎?夫不祥必有祥者,猶不吉必有吉矣。宅有形體,神有吉凶,動德致福,犯刑起禍。今言西益宅謂之不祥,何益而祥者?且惡人西益宅者,誰也?如地惡之,益東家之西,損西家之東,何傷於地?如以宅神不欲西益,神猶人也,人這處宅欲得廣大,何故惡之?而以宅神惡煩擾,則四(而)〔面〕益宅,皆當不祥。諸工技之家,說吉凶之占,皆有事狀。宅家言治宅犯凶神,移徙言忌歲月,祭祀言觸血忌,喪葬言犯剛柔,皆有鬼神凶惡之禁,人不忌避,有病死之禍。至於西益宅何害而謂之不祥?不祥之禍,何以為敗?

사관과 재질휴가 그 집 늘림을 그치게 하여 한갓 번거로움이 되었다면 서쪽으로 집을 늘림이 상서롭고 상서롭지 않음은 알 수 없다. 사관과 질휴가 서쪽으로 집을 늘림이 살펴 상서롭지 않다 여겼다면 사관과 질휴는 지금 속인과 같다. 무릇 집의 사면이 다 땅인데 세 면은 흉하다 하지 않고 서면을 늘림만 홀로 상서롭지 않다 함은 어째서인가. 서쪽으로 집을 늘림이 땅의 몸에 무엇을 상하고 집 신에 무엇을 해치는가. 서쪽으로 늘림이 상서롭지 않으면 덜면 좋을 수 있는가. 서쪽으로 늘림이 상서롭지 않으면 동쪽으로 늘림은 길할 수 있는가. 무릇 상서롭지 않음이 있으면 반드시 상서로움이 있으니 길하지 않음이 있으면 반드시 길함이 있음과 같다. 집에 몸이 있고 신에 길흉이 있어 덕을 움직이면 복을 이르게 하고 형을 범하면 화를 일으킨다. 이제 서쪽으로 집을 늘림을 상서롭지 않다 하니 어느 쪽으로 늘리면 상서로운가. 또 사람이 서쪽으로 집을 늘림을 미워하는 이는 누구인가. 땅이 미워한다면 동쪽 집의 서쪽을 늘림은 서쪽 집의 동쪽을 덞이니 땅에 무엇을 상하는가. 집 신이 서쪽으로 늘리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신은 사람과 같으니 사람이 집에 처함에 넓고 큼을 얻기 바라는데 무슨 까닭으로 미워하는가. 집 신이 번거로움을 미워한다면 사면으로 집을 늘림이 다 마땅히 상서롭지 않아야 한다. 여러 공인과 기술의 집이 길흉의 점을 설명함에 다 일의 모양이 있다. 집을 보는 집은 집을 다스림에 흉한 신을 범한다 말하고 이사는 세월을 꺼린다 말하고 제사는 혈기일(血忌日)을 범한다 말하고 상장은 강유를 범한다 말하니 다 귀신의 흉악한 금함이 있어 사람이 꺼려 피하지 않으면 병들어 죽는 화가 있다. 서쪽으로 집을 늘림에 이르러서는 무엇을 해쳐 상서롭지 않다 하는가. 상서롭지 않음의 화는 무엇으로 패함이 되는가.

實說其義,不祥者義理之禁,非吉凶之忌也。夫西方,長老之地,尊者之位也。尊長在西,卑幼在東。尊長,主也;卑幼,助也。主少而助多,尊無二上,卑有百下也。西益主益,主不增助,二上不百下也,於義不善,故謂不祥。不祥者,不宜也,於義不宜,未有凶也。何以明之?夫墓,死人所藏;田,人所飲食;宅,人所居處。三者於人,吉凶宜等。西益宅不祥,西益墓與田,不言不祥。夫墓,死人所居,因忽不慎。田,非人所處,不設尊卑。宅者長幼所共,加慎致意者,何可不之諱?義詳於宅,略於墓與田也。

실상으로 그 뜻을 설명하면 상서롭지 않음은 의리의 금함이지 길흉의 꺼림이 아니다. 무릇 서방은 어른의 땅이요 높은 이의 자리다. 높고 어른은 서쪽에 있고 낮고 어린 이는 동쪽에 있다. 높고 어른은 주인이요 낮고 어린 이는 돕는 이다. 주인은 적고 돕는 이는 많으니 높음에 두 위가 없고 낮음에 백 아래가 있다. 서쪽으로 늘림은 주인을 늘림이니 주인은 돕는 이를 늘리지 않으니 두 위요 백 아래가 아니라 의에 착하지 않으므로 상서롭지 않다 한다. 상서롭지 않음은 마땅하지 않음이니 의에 마땅하지 않을 뿐 흉함이 있지 않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무릇 무덤은 죽은 사람이 감추어진 곳이요 밭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곳이요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셋은 사람에게 길흉이 마땅히 같다. 서쪽으로 집을 늘림은 상서롭지 않은데 서쪽으로 무덤과 밭을 늘림은 상서롭지 않다 말하지 않는다. 무릇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 인하여 소홀히 하여 삼가지 않는다. 밭은 사람이 처하는 곳이 아니라 높고 낮음을 베풀지 않는다. 집은 어른과 어린 이가 함께하는 곳이라 삼가고 뜻을 더하는 이가 어찌 꺼리지 않겠는가. 뜻이 집에 자세하고 무덤과 밭에 간략한 것이다.

二曰諱被刑為徒,不上丘墓。但知不可,不能知其不可之意。問其禁之者,不能知其諱,受禁行者亦不要其忌。連相放效,至或於被刑,父母死,不送葬;若至墓側,不敢臨葬。甚失至於不行吊傷、見佗之人柩。

둘은 형벌을 입어 죄수 된 이가 무덤에 오르지 않음을 꺼림이다. 다만 옳지 않음만 알고 그 옳지 않은 뜻을 알지 못한다. 그 금하는 이에게 물어도 그 꺼림을 알지 못하고 금함을 받아 행하는 이도 그 꺼림을 요구하지 않는다. 잇달아 서로 본떠 혹 형벌을 입음에 이르러 부모가 죽어도 장사를 보내지 않고 무덤 곁에 이르러도 감히 장사에 임하지 않는다. 심하게 잃음이 조상하고 상함을 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관을 보지 않음에 이른다.

夫徒,(善)〔睾〕人也,被刑謂之徒。丘墓之上,二親也,死亡謂之先。宅與墓何別,親與先何異?如以徒被刑,先人責之,則不宜入宅與親相見。如徒不得與死人相見,則親死在堂,不得哭柩。如以徒不得升丘墓,則徒不得上山陵,世俗禁之,執據何義?實說其意,徒不上丘墓有二義,義理之諱,非凶惡之忌也。徒用心以為先祖全而生之,子孫亦當全而歸之。故曾子有疾,召門弟子曰:「開予足,開予手,而今而後,吾知免夫,小子。」

무릇 죄수는 죄 있는 사람이니 형벌을 입은 이를 죄수라 한다. 무덤 위는 두 어버이니 죽은 이를 선조라 한다. 집과 무덤이 무엇이 다르고 어버이와 선조가 무엇이 다른가. 죄수가 형벌을 입어 선인이 책한다면 마땅히 집에 들어 어버이와 서로 보지 말아야 한다. 죄수가 죽은 사람과 서로 볼 수 없다면 어버이가 죽어 당에 있어도 관에 곡할 수 없다. 죄수가 무덤에 오를 수 없다면 죄수가 산릉에 오를 수 없으니 세속이 금함에 잡은 근거가 무슨 뜻인가. 실상으로 그 뜻을 설명하면 죄수가 무덤에 오르지 않음에 두 뜻이 있으니 의리의 꺼림이지 흉악의 꺼림이 아니다. 죄수가 마음을 씀에 선조가 온전히 낳아 주었으니 자손도 마땅히 온전히 돌아가야 한다 여긴다. 그러므로 증자가 병들어 문하 제자를 불러 말하였다. 「내 발을 열어 보고 내 손을 열어 보라. 이제부터 뒤로 나는 면함을 알겠다, 얘들아.」

曾子重慎,臨絕效全,喜免毀傷之禍也。孔子曰:「身體髪膚,受之父母,弗敢毀傷。」

증자가 무겁게 삼가 끊어짐에 임하여 온전함을 보여 헐고 상하는 화를 면함을 기뻐한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몸과 머리털과 살갗은 부모에게 받았으니 감히 헐고 상하지 않는다.」

孝者怕入刑辟,刻畫身體,毀傷髪膚,少德泊行,不戒慎之所致也。愧負刑辱,深自刻責,故不升墓祀於先。古禮廟祭,今俗墓祀,故不升墓。慚負先人,一義也。墓者,鬼神所在,祭祀之處。祭祀之禮,齊戒潔清,重之至也。今已被刑,刑殘之人,不宜與祭,供侍先人,卑謙謹敬,退主自賤之意也。緣先祖之意,見子孫被刑,惻怛慘傷,恐其臨祀,不忍歆享,故不上墓,二義也。昔太伯見王季有聖子文王,知太王意欲立之,入吳采葯,斷髪文身,以隨吳俗。太王薨,太伯還,王季辟主,太伯再讓,王季不聽,三讓,曰:「吾之吳越,吳越之俗,斷髪文身,吾刑餘之人,不可為宗廟社稷之主。」王季知不可,權而受之。

효도하는 이는 형벌에 들어 몸을 새기고 머리털과 살갗을 헐고 상함을 두려워하니 덕이 적고 행실이 얇아 경계하고 삼가지 않은 것이 이르게 한 것이다. 형벌의 욕을 진 것을 부끄러워하여 깊이 스스로 책하므로 무덤에 올라 선조에게 제사하지 않는다. 옛 예는 사당에서 제사하고 지금 풍속은 무덤에서 제사하므로 무덤에 오르지 않는다. 선인에게 부끄러워 짐이 첫째 뜻이다. 무덤은 귀신이 있는 곳이요 제사하는 곳이다. 제사의 예는 재계하고 깨끗이 하니 무겁게 여김의 지극함이다. 이제 이미 형벌을 입어 형벌로 잔결된 사람은 마땅히 제사에 참여하여 선인을 받들어 모시지 못하니 낮추고 겸손하고 삼가고 공경하여 물러나 스스로 천하게 여기는 뜻이다. 선조의 뜻을 따르면 자손이 형벌 입음을 보고 슬퍼하고 참담하여 그가 제사에 임함에 차마 흠향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므로 무덤에 오르지 않음이 둘째 뜻이다. 옛날에 태백이 왕계에게 성스러운 아들 문왕이 있음을 보고 태왕의 뜻이 세우려 함을 알고 오나라에 들어 약을 캐며 머리를 자르고 몸에 문신하여 오나라 풍속을 따랐다. 태왕이 죽자 태백이 돌아오니 왕계가 주인 자리를 피하매 태백이 두 번 사양하고 왕계가 듣지 않으니 세 번 사양하며 말하였다. 「내가 오월에 가니 오월의 풍속은 머리를 자르고 몸에 문신한다. 나는 형벌 남은 사람이라 종묘와 사직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왕계가 옳지 않음을 알고 권도로 받았다.

夫徒不上丘墓,太伯不為主之義也。是謂祭祀不可,非謂柩當葬,身不送也。

무릇 죄수가 무덤에 오르지 않음은 태백이 주인이 되지 않은 뜻이다. 이는 제사가 옳지 않음을 이름이지 관이 마땅히 장사될 때 몸이 보내지 않음을 이름이 아니다.

葬死人,先祖痛;見刑人,先祖哀。權可哀之身,送可痛之尸,使先祖有知,痛尸哀形,何愧之有!如使無知,丘墓田野也,何慚之有?慚愧先者,謂身體刑殘,與人異也。古者用刑,形毀不全,乃不可耳。方今象刑,象刑重者,髡鉗之法也。若完城旦以下,施刑,彩衣繫躬,冠帶與俗人殊,何為不可?世俗信而謂之皆凶,其失至於不吊鄉党尸,不升佗人之丘,惑也。

죽은 사람을 장사함에 선조가 아파하고 형벌 입은 사람을 보면 선조가 슬퍼한다. 권도로 슬퍼할 만한 몸으로 아파할 만한 주검을 보내면 선조에게 앎이 있게 하여도 주검을 아파하고 꼴을 슬퍼하니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앎이 없게 하면 무덤은 밭과 들이니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선조에게 부끄러워함은 몸이 형벌로 잔결되어 사람과 다름을 이른다. 옛날에 형벌을 씀에 꼴이 헐려 온전하지 않으면 곧 옳지 않을 뿐이다. 지금은 상형이니 상형의 무거운 것은 머리 깎고 목에 쇠 씌우는 법이다. 완성단 이하 같은 것은 형벌을 베풂에 채색 옷을 몸에 매고 관과 띠가 속인과 다르니 어찌 옳지 않은가. 세속이 믿어 다 흉하다 하여 그 잃음이 고을의 주검에 조상하지 않고 남의 무덤에 오르지 않음에 이르니 홀림이다.

三曰諱婦人乳子,以為不吉。將舉吉事,入山林,遠行度川澤者,皆不與之交通。乳子之家,亦忌惡之。丘墓廬道畔,逾月乃入,惡之甚也。暫卒見若為不吉,極原其事,何以為惡?夫婦人之乳子也,子含元氣而出。元氣,天地之精微也,何凶而惡之?人,物也,子亦物也。子生與萬物之生何以異?諱人之生謂之惡,萬物之生又惡之乎?生與胞俱也,如以胞為不吉,人之有胞,猶木實之有(扶)〔〕也,包(里)〔裹〕兒身,因與俱出,若鳥卵之有殼,何妨謂之惡?如惡以為不吉,則諸生物有(扶)〔〕殼者,宜皆惡之。萬物廣多,難以驗事。人生何以異於六畜,皆含血氣懷子,子生與人無異,獨惡人而不憎畜,豈以人體大氣血盛乎?則夫牛馬體大於人,凡可惡之事,無與鈞等,獨有一物,不見比類,乃可疑也。今六畜與人無異,其乳皆同一狀。六畜與人無異,諱人不諱六畜,不曉其故也。世能別人之產與六畜之乳,吾將聽其諱;如不能別,則吾謂世俗所諱妄矣。

셋은 부인이 아이 낳음을 꺼려 길하지 않다 여김이다. 장차 길한 일을 들고 산림에 들고 멀리 가서 냇물과 못을 건너는 이가 다 그와 사귀어 통하지 않는다. 아이 낳은 집도 또한 꺼려 미워한다. 무덤과 여막과 길가에 달을 넘겨야 곧 드니 미워함이 심하다. 잠시 갑자기 봄이 길하지 않다 하는데 끝까지 그 일을 미루어 무엇으로 악하다 하는가. 무릇 부인이 아이 낳음에 아이가 원기를 머금고 나온다. 원기는 하늘과 땅의 정미인데 무엇이 흉하여 미워하는가. 사람은 물건이요 아이도 물건이다. 아이가 남이 만물의 남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의 남을 꺼려 악하다 하면 만물의 남도 미워하는가. 남은 태와 함께하니 태를 길하지 않다 하면 사람에게 태가 있음은 나무 열매에 껍질이 있음과 같아 아이 몸을 싸서 인하여 함께 나오니 새알에 껍데기가 있음과 같은데 무엇이 방해되어 악하다 하는가. 미워하여 길하지 않다 하면 여러 산 물건에 껍질과 껍데기 있는 것은 마땅히 다 미워해야 한다. 만물이 넓고 많아 일로 증험하기 어렵다. 사람의 남이 무엇으로 집짐승과 다른가. 다 혈기를 머금고 새끼를 배어 새끼가 남이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데 홀로 사람을 미워하고 짐승을 미워하지 않으니 어찌 사람의 몸이 크고 기혈이 성해서인가. 그러면 무릇 소와 말은 몸이 사람보다 큰데 무릇 미워할 만한 일에 더불어 고르게 같음이 없고 홀로 한 물건이 있어 견줄 무리가 보이지 않으면 곧 의심할 만하다. 이제 집짐승이 사람과 다를 것이 없어 그 낳음이 다 같은 한 모양이다. 집짐승이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데 사람을 꺼리고 집짐승을 꺼리지 않으니 그 까닭을 깨닫지 못한다. 세상이 사람의 낳음과 집짐승의 낳음을 가릴 수 있으면 내가 장차 그 꺼림을 듣겠고 가릴 수 없으면 나는 세속이 꺼리는 바가 망령되다 하겠다.

且凡人所惡,莫有腐臭。腐臭之氣,敗傷人心。故鼻聞臭,口食腐,心損口惡,霍亂嘔吐。夫更衣之室,可謂臭矣;鮑魚之肉,可謂腐矣。然而有甘之更衣之室,不以為忌;肴食腐魚之肉,不以為諱。意不存以為惡,故不計其可與不也。凡可憎惡者,若濺墨漆,附著人身。今目見鼻聞,一過則已,忽亡輒去,何故惡之?出見負豕於塗,腐澌於溝,不以為凶者,辱自在彼人,不著己之身也。今婦人乳子自在其身,齋戒之人,何故忌之?

또 무릇 사람이 미워하는 바에 썩고 냄새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썩고 냄새나는 기운은 사람 마음을 패하고 상한다. 그러므로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썩은 것을 먹으면 마음이 손상되고 입이 미워하여 곽란하고 토한다. 무릇 뒷간은 냄새난다 할 만하고 절인 물고기의 살은 썩었다 할 만하다. 그러나 뒷간에 거리낌 없이 가면서 꺼리지 않고 썩은 물고기의 살을 안주로 먹어 꺼리지 않는다. 뜻에 두어 악하다 하지 않으므로 그 옳고 옳지 않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무릇 미워할 만한 것은 먹과 옻을 튀김 같아 사람 몸에 붙는다. 이제 눈으로 보고 코로 맡음이 한 번 지나면 그만이라 문득 없어져 곧 떠나는데 무슨 까닭으로 미워하는가. 나가서 길에 돼지 진 것을 보고 도랑에 썩어 문드러진 것을 보아도 흉하다 하지 않음은 욕이 절로 저 사람에게 있고 제 몸에 붙지 않아서다. 이제 부인이 아이 낳음은 절로 그 몸에 있는데 재계하는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꺼리는가.

江北乳子不出房室,知其無惡也。至於犬乳,置之宅外,此復惑也。江北諱犬不諱人,江南諱人不諱犬,謠俗防惡,各不同也。夫人與犬何以異,房室宅外何以殊,或惡或不惡,或諱或不諱,世俗防禁,竟無經也。月之晦也,日月合宿,紀為一月,猶八日,〔日〕月中分謂之弦;十五日,日月相望謂之望;三十日,日月合宿謂之晦。晦與弦望一實也,非月晦日月光氣與月朔異也。何故逾月謂之吉乎?如實凶,逾月未可謂吉;如實吉,雖未逾月猶為可也。實說,諱忌產子乳犬者,欲使人常自潔清,不欲使人被污辱也。夫自潔清則意精,意精則行清,行清而貞廉之節立矣。

강북에서 아이 낳음에 방에서 나가지 않으니 그 악함이 없음을 안다. 개가 새끼 낳음에 이르러 집 밖에 두니 이는 다시 홀림이다. 강북은 개를 꺼리고 사람을 꺼리지 않고 강남은 사람을 꺼리고 개를 꺼리지 않으니 노래와 풍속이 악을 막음이 저마다 같지 않다. 무릇 사람과 개가 무엇이 다르고 방과 집 밖이 무엇이 다른가. 혹 미워하고 혹 미워하지 않으며 혹 꺼리고 혹 꺼리지 않으니 세속의 막고 금함이 끝내 법이 없다. 달의 그믐은 해와 달이 자리를 합하니 한 달로 기록하니 여드레에 해와 달이 가운데를 나눔을 현이라 하고 보름에 해와 달이 서로 바라봄을 망이라 하고 그믐에 해와 달이 자리를 합함을 그믐이라 함과 같다. 그믐과 현·망은 한 실상이니 달 그믐의 해와 달의 빛 기운이 달 초하루와 다른 것이 아니다. 무슨 까닭으로 달을 넘기면 길하다 하는가. 실로 흉하면 달을 넘겨도 길하다 할 수 없고 실로 길하면 비록 달을 넘기지 않아도 오히려 옳다. 실상을 설명하면 아이 낳음과 개 새끼 낳음을 꺼림은 사람에게 늘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사람이 더러움을 입지 않게 하려 함이다. 무릇 스스로 깨끗하면 뜻이 정하고 뜻이 정하면 행실이 맑고 행실이 맑으면 곧고 청렴한 절개가 선다.

四曰諱舉正月、五月子。以為正月、五月子殺父與母,不得已舉之,父母禍死,則信而謂之真矣。

넷은 정월과 오월의 아이 기름을 꺼림이다. 정월과 오월의 아이는 아비와 어미를 죽인다 여겨 마지못해 기르다가 부모가 화로 죽으면 곧 믿어 참이라 한다.

夫正月、五月子何故殺父與母?人之含氣在腹腸之內,其生十月而產,共一元氣也。正與二月何殊,五與六月何異,而謂之凶也?世傳此言久,拘數之人,莫敢犯之。弘識大材,實核事理,深睹吉凶之分者,然後見之。昔齊相田嬰賤妄有子,名之曰文。文以五月生,嬰告其母勿舉也,其母竊舉生之。及長,其母因兄弟而見其子文於嬰,嬰怒曰:「吾令女去此子,而敢生之,何也?」文頓首,因曰:「君所以不舉五月子者何故?」嬰曰:「五月子者長至戶,將不利其父母。」文曰:「人生受命於天乎,將受命於戶邪?」嬰嘿然。文曰:「必受命於天,君何憂焉。如受命於戶,即高其戶,誰能至者?」嬰善其言,曰:「子休矣!」

무릇 정월과 오월의 아이가 무슨 까닭으로 아비와 어미를 죽이는가. 사람이 기운을 머금어 배와 창자 안에 있어 그 남이 열 달에 낳으니 함께 한 원기다. 정월과 이월이 무엇이 다르고 오월과 유월이 무엇이 다른데 흉하다 하는가. 세상에 이 말이 전해짐이 오래라 수에 얽매인 사람이 감히 범하지 않는다. 넓은 앎과 큰 재주로 실로 일의 이치를 살펴 깊이 길흉의 나뉨을 본 이라야 그 뒤에 본다. 옛날 제나라 재상 전영이 천한 첩에게 아들이 있어 문이라 이름하였다. 문이 오월에 나니 영이 그 어미에게 기르지 말라 알렸는데 그 어미가 몰래 길러 살렸다. 자람에 미쳐 그 어미가 형제로 인하여 그 아들 문을 영에게 보이니 영이 노하여 말하였다. 「내가 너에게 이 아이를 버리라 하였는데 감히 살렸으니 어째서인가?」 문이 머리를 조아리고 인하여 말하였다. 「임금께서 오월의 아이를 기르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영이 말하였다. 「오월의 아이는 자라 문에 이르면 장차 그 부모에게 이롭지 않다.」 문이 말하였다. 「사람의 삶이 하늘에서 명을 받습니까, 장차 문에서 명을 받습니까?」 영이 잠잠하였다. 문이 말하였다. 「반드시 하늘에서 명을 받으면 임금께서 무엇을 근심하십니까. 문에서 명을 받으면 곧 그 문을 높이면 누가 이를 수 있겠습니까?」 영이 그 말을 착하게 여겨 말하였다. 「그대는 그만두라!」

其後使文主家,待賓客,賓客日進,名聞諸侯。文長過戶,而嬰不死。以田文之說言之,以田嬰不死效之,世俗所諱,虛妄之言也。夫田嬰俗父,而田文雅子也。嬰信忌不實義,文信命不辟諱。雅俗異材,舉措殊操,故嬰名暗而不明,文聲馳而不滅。

그 뒤 문에게 집을 주관하고 빈객을 대접하게 하니 빈객이 날로 나아와 이름이 제후에게 들렸다. 문(文)이 자라 키가 문지방을 넘었으나 영이 죽지 않았다. 전문의 설로 말하고 전영이 죽지 않음으로 증험하면 세속이 꺼리는 바는 헛되고 망령된 말이다. 무릇 전영은 속된 아비요 전문은 우아한 아들이다. 영은 꺼림을 믿고 의를 실답게 하지 않았고 문은 명을 믿고 꺼림을 피하지 않았다. 우아하고 속됨이 재주가 다르고 거동이 지조가 달랐으므로 영의 이름은 어두워 밝지 않고 문의 소리는 달려 없어지지 않는다.

實說,世俗諱之亦有緣也。夫正月歲始,五月盛陽,子以生,精熾熱烈,厭勝父母,父母不堪,將受其患,傳相放效,莫謂不然。有空諱之言,無實凶之效,世俗惑之,誤非之甚也。

실상을 설명하면 세속이 꺼림에 또한 연유가 있다. 무릇 정월은 해의 시작이요 오월은 성한 양이니 아이가 이로써 나면 정이 치열하고 뜨겁고 매워 부모를 눌러 이겨 부모가 감당하지 못하여 장차 그 환난을 받는다 하여 전하여 서로 본떠 그렇지 않다 하는 이가 없다. 헛된 꺼림의 말이 있고 실다운 흉함의 효험이 없는데 세속이 홀리니 그르침이 심하다.

夫忌諱非一,必托之神怪,若設以死亡,然後世人信用。畏避忌諱之語,四方不同,略舉通語,令世觀覽。若夫曲俗微小之諱,眾多非一,咸勸人為善,使人重慎,無鬼神之害,凶丑之禍。世諱作豆醬惡聞雷,一人不食,欲使人急作,不欲積家逾至春也。

무릇 꺼림이 하나가 아니니 반드시 신령한 괴이함에 의탁하고 죽음으로 베푼 것 같은 뒤에야 세상 사람이 믿어 쓴다. 두려워 피하는 꺼림의 말이 사방이 같지 않으니 대략 통하는 말을 들어 세상이 보게 한다. 저 굽은 풍속의 미세하고 작은 꺼림은 많아 하나가 아니나 다 사람에게 착함을 권하고 사람에게 무겁게 삼가게 하니 귀신의 해와 흉하고 추한 화가 없다. 세상이 콩 장을 담금에 우레 소리 듣기를 꺼리고 한 사람이 먹지 않음은 사람에게 급히 담그게 하여 집에 쌓아 봄을 넘기지 않게 하려 함이다.

諱厲刀井上,恐刀墮井中也;或說以為刑之字,井與刀也,厲刀井上,井刀相見,恐被刑也。毋承屋檐而坐,恐瓦墮擊人首也。毋反懸冠,為似死人服,或說惡其反而承塵溜也。毋偃寢,為其象尸也。毋以箸相受,為其不固也。毋相代掃,為修冢之人冀人來代己也。諸言毋者,教人重慎,勉人為善。禮曰:「毋摶飯,毋流。」

우물 위에서 칼 갈기를 꺼림은 칼이 우물 속에 떨어질까 두려워서다. 혹은 설명하기를 형이라는 글자는 우물과 칼이니 우물 위에서 칼을 갈면 우물과 칼이 서로 보여 형벌 입을까 두려워서라 한다. 처마를 받고 앉지 말라 함은 기와가 떨어져 사람 머리를 칠까 두려워서다. 관을 뒤집어 걸지 말라 함은 죽은 사람의 옷과 비슷해서니 혹은 그 뒤집혀 먼지와 낙수를 받음을 미워해서라 한다. 반듯이 누워 자지 말라 함은 그것이 주검을 본떠서다. 젓가락으로 서로 주고받지 말라 함은 그것이 굳지 않아서다. 서로 대신하여 쓸지 말라 함은 무덤을 닦는 사람이 남이 와서 저를 대신하기 바라서다. 여러 말라 말함은 사람에게 무겁게 삼가기를 가르치고 사람에게 착함을 힘쓰게 함이다. 예에 이르기를 「밥을 뭉치지 말고 흘리지 말라」 하였다.

禮義之禁,未必吉凶之言也。

예의의 금함이지 반드시 길흉의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