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𧬘時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0 · 한자 1,441자 · 낭독 5.8분

「논형」 난시편 「𧬘時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世俗起土興功,歲月有所食,所食之地必有死者。假令太歲在子,歲食於酉,正月建寅,月食於巳,子、寅地興功,則酉、巳之家見食矣。見食之家,作起厭勝,以五行之物懸金木水火。假令歲月食西家,西家懸金,歲月食東家,東家懸炭。設祭祀以除其凶,或空亡徙以辟其殃。連相仿效,皆謂之然。如考實之,虛妄迷也。

세속에서 흙을 일으켜 공사를 함에 세월이 먹는 바가 있어 먹는 바의 땅에 반드시 죽는 이가 있다 한다. 가령 태세가 자에 있으면 해의 신이 유(酉) 쪽을 먹고 정월에 인을 세우면 달의 신이 사(巳) 쪽을 먹으니 자·인 땅에서 공사를 하면 유·사의 집이 먹힌다. 먹히는 집은 눌러 이김을 일으켜 오행의 물건으로 쇠·나무·물·불을 건다. 가령 해와 달의 신이 서쪽 집을 먹으면 서쪽 집은 쇠를 걸고 해와 달의 신이 동쪽 집을 먹으면 동쪽 집은 숯을 건다. 제사를 베풀어 그 흉함을 없애고 혹 헛되이 달아나 옮겨 그 재앙을 피한다. 잇달아 서로 본떠 다 그렇다 한다. 실상을 살피면 헛되고 망령된 미혹이다.

何以明之?夫天地之神,用心等也。人民無狀,加罪行罰,非有二心兩意,前後相反也。移徙不避歲月,歲月惡其不避己之衝位怒之也。今起功之家,亦動地體,無狀之過,與移徙等。起功之家,當為歲所食,何故反令巳、酉之地受其咎乎?

무엇으로 밝히는가. 무릇 하늘과 땅의 신은 마음 씀이 같다. 백성이 무상하면 죄를 더하고 벌을 행하니 두 마음 두 뜻이 있어 앞뒤가 서로 반대인 것이 아니다. 이사에 세월을 피하지 않으면 세월이 그 제 맞부딪치는 자리를 피하지 않음을 미워하여 노한다. 이제 공사하는 집도 땅의 몸을 움직이니 무상한 허물이 이사와 같다. 공사하는 집이 마땅히 세에게 먹혀야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도리어 사·유의 땅에게 그 허물을 받게 하는가.

豈歲月之神怪移徙而〔不〕咎起功哉!用心措意,何其不平也。鬼神罪過人,猶縣官謫罰民也。民犯刑罰多非一,小過宥罪,大惡犯辟,未有以無過受罪。無過而受罪,世謂之冤。今巳、酉之家,無過於月歲,子、(家)〔寅〕起宅,空為見食,此則歲冤無罪也。且夫太歲在子,子宅直符,午宅為破,不須興功起事。空居無為,猶被其害,今歲月所食,待子宅有為,巳、酉乃凶。

어찌 세월의 신이 이사를 괴이하게 여기고 공사는 허물하지 않겠는가! 마음을 쓰고 뜻을 둠이 어찌 그리 고르지 않은가. 귀신이 사람을 죄줌은 현관이 백성을 꾸짖어 벌함과 같다. 백성이 형벌을 범함이 많아 하나가 아닌데 작은 허물은 죄를 용서하고 큰 악은 형벌을 범하니 허물 없이 죄를 받는 이는 있지 않다. 허물 없이 죄를 받음을 세상이 원통하다 한다. 이제 사·유의 집이 세월에 허물이 없는데 자·인이 집을 지어 헛되이 먹힘을 당하니 이는 곧 세가 죄 없는 이를 원통하게 함이다. 또 무릇 태세가 자에 있으면 자 집은 직부요 오 집은 파가 되니 공사를 일으켜 일을 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헛되이 살며 함이 없어도 오히려 그 해를 입는데 이제 세월이 먹는 바는 자 집에 함이 있기를 기다려 사·유가 곧 흉하다.

太歲,歲月之神,用罰為害,動靜殊致,非天從歲月神意之道也。

태세는 세월의 신이라 벌을 써서 해를 함에 움직임과 고요함이 이르게 함이 다르니 하늘이 세월 신의 뜻을 따르는 도가 아니다.

審論歲月之神,歲則太歲也,在天邊際,立於子位。起室者在中國一州之內,假令揚州在東南,使如鄒衍之言,天下為一州,又在東南,歲食於酉,食西羌之地,東南之地安得凶禍。假令歲在人民之間,西宅為酉地,則起功之家,宅中亦有酉地,何以不近食其宅中之酉地,而反食佗家乎!且食之者審誰也?如審歲月,歲月天之從神,飲食與天同,天食不食人,故郊祭不以為牲。如非天神,亦不食人。天地之間,百神所食,聖人謂當與人等。推生事死,推人事鬼,故百神之祀皆用眾物,無用人者。物食人者,虎與狼也。歲月之神,豈虎狼之精哉?倉卒之世,谷食乏匱,人民飢餓,自相啖食。豈其啖食死者,其精為歲月之神哉?歲月有神,日亦有神,歲食月食,日何不食?積日為月,積月為時,積時為歲,千五百三十九歲為一統,四千六百一十七歲為一元,增積相倍之數,分余終竟之名耳,安得鬼神之怪、禍福之驗乎?如歲月終竟者宜有神,則四時有神,統元有神,月三日魄,八日弦,十五日望,與歲月終竟何異?歲月有神,魄與弦復有神也?一日之中,分為十二時,平旦寅,日出卯也。十二月建寅卯,則十二月時所加寅卯也。日加十二辰不食,月建十二辰獨食,豈日加無神,月建獨有哉?何故月建獨食,日加不食乎!如日加無神,用時決事非也。如加時有神,獨不食非也。

세월의 신을 살펴 논하면 세는 곧 태세니 하늘 가장자리에 있어 자 자리에 선다. 집 짓는 이는 중국 한 주 안에 있으니 가령 양주가 동남에 있고 추연의 말과 같이 천하를 한 주로 삼아도 또 동남에 있으니 세가 유를 먹으면 서강의 땅을 먹으니 동남 땅이 어찌 흉한 화를 얻겠는가. 가령 세가 백성 사이에 있어 서쪽 집이 유 땅이 되면 공사하는 집의 집 안에도 유 땅이 있는데 어찌 가까이 그 집 안의 유 땅을 먹지 않고 도리어 남의 집을 먹는가! 또 먹는 이는 살펴 누구인가. 살펴 세월이라면 세월은 하늘의 따르는 신이라 마시고 먹음이 하늘과 같으니 하늘이 먹음에 사람을 먹지 않으므로 교제에 사람을 희생으로 삼지 않는다. 하늘 신이 아니라도 또한 사람을 먹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온 신이 먹는 바는 성인이 마땅히 사람과 같다 하였다. 삶을 미루어 죽음을 섬기고 사람을 미루어 귀신을 섬기므로 온 신의 제사에 다 뭇 물건을 쓰고 사람을 쓰는 것이 없다. 물건으로 사람을 먹는 것은 범과 이리다. 세월의 신이 어찌 범과 이리의 정이겠는가. 창졸의 세상에 곡식이 모자라 백성이 주려 스스로 서로 먹는다. 어찌 그 죽은 이를 먹은 이의 정이 세월의 신이 되겠는가. 세월에 신이 있으면 날에도 신이 있으니 세가 먹고 월이 먹는데 일은 어찌 먹지 않는가. 날을 쌓아 달이 되고 달을 쌓아 철이 되고 철을 쌓아 해가 되고 천오백서른아홉 해가 한 통이 되고 사천육백열일곱 해가 한 원이 되니 쌓아 서로 곱하는 수요 나머지를 나누어 끝나는 이름일 뿐인데 어찌 귀신의 괴이함과 화복의 증험을 얻겠는가. 세월이 끝나는 것에 마땅히 신이 있다면 사철에 신이 있고 통과 원에 신이 있으며 달 사흘의 백과 여드레의 현과 보름의 망이 세월의 끝남과 무엇이 다른가. 세월에 신이 있으면 백과 현에도 다시 신이 있는가. 하루 가운데를 열두 때로 나누어 새벽은 인이요 해 뜸은 묘다. 열두 달이 인묘를 세우면 열두 달의 때에 더한 것이 인묘다. 날이 열두 진을 더함에 먹지 않고 달이 열두 진을 세움에 홀로 먹으니 어찌 날의 더함에는 신이 없고 달의 세움에만 홀로 있겠는가. 무슨 까닭으로 달의 세움만 홀로 먹고 날의 더함은 먹지 않는가! 날의 더함에 신이 없으면 때를 써서 일을 결정함이 그르다. 더한 때에 신이 있으면 홀로 먹지 않음이 그르다.

神之口腹,與人等也。人飢則食,飽則止,不為起功乃一食也。歲月之神,起功乃食,一歲之中,興功者希,歲月之神飢乎?倉卒之世,人民亡,室宅荒廢,興功者絕,歲月之神餓乎?且田與宅俱人所治,興功用力,勞佚鈞等。宅掘土而立木,田鑿溝而起堤,堤與木俱立,掘與鑿俱為。起宅,歲月食;治田,獨不食。豈起宅時歲月飢,治田時飽乎?

신의 입과 배는 사람과 같다. 사람이 주리면 먹고 배부르면 그치지 공사를 함에야 곧 한 번 먹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신이 공사를 해야 곧 먹으면 한 해 가운데 공사하는 이가 드무니 세월의 신이 주리는가. 창졸의 세상에 백성이 없어지고 집이 황폐하여 공사하는 이가 끊기면 세월의 신이 굶는가. 또 밭과 집은 다 사람이 다스리는 곳이라 공사를 하고 힘을 씀에 수고롭고 편안함이 고르게 같다. 집은 흙을 파고 나무를 세우고 밭은 도랑을 파고 둑을 일으키니 둑과 나무가 다 서고 파고 뚫음을 다 한다. 집을 지으면 세월이 먹고 밭을 다스리면 홀로 먹지 않는다. 어찌 집 지을 때 세월이 주리고 밭 다스릴 때 배부른가.

何事鈞作同,飲食不等也?

무슨 일이 고르게 지어 같은데 마시고 먹음이 같지 않은가.

說歲月食之家,必銓功之小大,立遠近之步數。假令起三尺之功,食一步之內,起十丈之役,食一里之外,功有小大,禍有近遠。蒙恬為秦筑長城,極天下之半,則其為禍宜以萬數。案長城之造,秦民不多死。周公作雒,興功至大,當時歲月宜多食。聖人知其審食,宜徙所食地置於吉祥之位。如不知避,人民多凶。經傳之文,賢聖宜有刺譏。今聞筑雒之民四方和會,功成事畢,不聞多死。說歲月之家,殆虛非實也。且歲月審食,猶人口腹之飢必食也。且為巳、酉地有厭勝之故,畏一金刃,懼一死炭,同閉口不敢食哉!

세월이 먹는다고 설명하는 집은 반드시 공사의 크고 작음을 저울질하여 멀고 가까움의 걸음 수를 세운다. 가령 석 자의 공사를 일으키면 한 걸음 안을 먹고 열 길의 부역을 일으키면 일 리 밖을 먹으니 공사에 크고 작음이 있고 화에 가깝고 멂이 있다.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 장성을 쌓아 천하의 반에 이르렀으니 그 화 됨이 마땅히 만으로 헤아려야 한다. 살피건대 장성의 지음에 진나라 백성이 많이 죽지 않았다. 주공이 낙읍을 지음에 공사가 지극히 크니 당시 세월이 마땅히 많이 먹어야 했다. 성인이 그 살펴 먹음을 알면 마땅히 먹는 바 땅을 옮겨 길하고 상서로운 자리에 두어야 한다. 피할 줄 몰랐다면 백성이 많이 흉하였을 것이다. 경전의 글에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마땅히 나무람이 있어야 한다. 이제 낙읍 쌓은 백성이 사방에서 화합하여 모여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마쳐졌다 들리고 많이 죽었다 듣지 못한다. 세월을 설명하는 집은 거의 헛되어 실상이 아니다. 또 세월이 살펴 먹는다면 사람의 입과 배가 주리면 반드시 먹음과 같다. 또 사·유 땅에 눌러 이기는 까닭이 있다고 쇠 칼날 하나를 두려워하고 죽은 숯 하나를 두려워하여 함께 입을 닫고 감히 먹지 않겠는가!

如實畏懼,宜如其數。五行相勝,物氣鈞適。如(秦)〔泰〕山失火,沃以一杯之水,河決千里,塞以一掊之土,能勝之乎?非失五行之道,小大多少不能相當也。

실로 두려워한다면 마땅히 그 수와 같아야 한다. 오행이 서로 이김에 물건의 기운이 고르게 맞아야 한다. 태산에 불이 났는데 한 잔의 물을 붓고 하수가 천 리를 터졌는데 한 움큼의 흙으로 막으면 이길 수 있는가. 오행의 도를 잃음이 아니라 크고 작음과 많고 적음이 서로 맞지 않아서다.

天地之性,人物之力,少不勝多,小不厭大。使三軍持木杖,匹夫持一刃,伸力角氣,匹夫必死。金性勝木,然而木勝金負者,木多而金寡也。積金如山,燃一炭火以燔爍之,金必不消,非失五行之道,金多火少,少多小大不鈞也。五尺童子與孟賁爭,童子不勝,非童子怯,力少之故也。狼眾食人,人眾食狼。敵力角氣,能以小勝大者希;爭強量功,能以寡勝眾者鮮。天道人物,不能以小勝大者,少不能服多。以一刃之金,一炭之火,厭除凶咎,卻歲之殃,如何也!

하늘과 땅의 성품과 사람과 물건의 힘은 적음이 많음을 이기지 못하고 작음이 큼을 누르지 못한다. 삼군이 나무 지팡이를 잡고 필부가 한 칼날을 잡아 힘을 펴고 기운을 겨루면 필부가 반드시 죽는다. 쇠의 성품이 나무를 이기나 나무가 이기고 쇠가 짐은 나무가 많고 쇠가 적어서다. 쇠를 산처럼 쌓고 숯불 하나를 태워 녹이면 쇠가 반드시 녹지 않으니 오행의 도를 잃음이 아니라 쇠가 많고 불이 적어 적고 많음과 작고 큼이 고르지 않아서다. 다섯 자 아이가 맹분과 다투면 아이가 이기지 못하니 아이가 겁 많아서가 아니라 힘이 적은 까닭이다. 이리가 많으면 사람을 먹고 사람이 많으면 이리를 먹는다. 힘을 맞대고 기운을 겨룸에 작음으로 큼을 이길 수 있는 이는 드물고 강함을 다투고 공을 헤아림에 적음으로 많음을 이길 수 있는 이는 드물다. 하늘의 도와 사람과 물건이 작음으로 큼을 이길 수 없으니 적음이 많음을 굴복시킬 수 없다. 한 칼날의 쇠와 한 숯의 불로 흉한 허물을 눌러 없애고 세의 재앙을 물리침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