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譏日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6 · 한자 2,070자 · 낭독 8.3분

「논형」 기일편 「譏日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世俗既信歲時,而又信日。舉事若病死災患,大則謂之犯觸歲月,小則謂之不避日禁。歲月之傳既用,日禁之書亦行。世俗之人,委心信之,辯論之士,亦不能定。是以世人舉事,不考於心而合於日,不參於義而致於時。時日之書,眾多非一,略舉較著,明其是非,使信天時之人,將一疑而倍之。夫禍福隨盛衰而至,代謝而然。舉事曰凶,人畏凶有效;曰吉,人冀吉有驗。禍福自至,則述前之吉凶以相戒懼:此日禁所以累世不疑,惑者所以連年不悟也。

세속이 이미 해와 철을 믿고 또 날을 믿는다. 일을 들어 병들어 죽거나 재앙과 환난이 있으면 크면 세월을 범하여 부딪쳤다 하고 작으면 날의 금함을 피하지 않았다 한다. 세월의 전함이 이미 쓰이고 날 금함의 책도 행해진다. 세속 사람이 마음을 맡겨 믿고 변론하는 선비도 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세상 사람이 일을 듦에 마음에 살피지 않고 날에 맞추고 의에 참여하지 않고 때에 이르게 한다. 때와 날의 책이 많아 하나가 아니니 대략 뚜렷한 것을 들어 그 옳고 그름을 밝혀 하늘의 때를 믿는 사람이 장차 한 번 의심하여 저버리게 하려 한다. 무릇 화복은 성하고 쇠함을 따라 이르고 번갈아 바뀌어 그러하다. 일을 듦에 흉하다 말하면 사람이 흉함에 효험 있음을 두려워하고 길하다 말하면 사람이 길함에 증험 있기를 바란다. 화복이 절로 이르면 앞의 길흉을 기술하여 서로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이것이 날 금함이 대를 이어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요 홀린 이가 해를 이어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다.

《葬歷》曰:「葬避九空地及日之剛柔、月之奇耦。日吉無害,剛柔相得,奇耦相應,乃為吉良。不合此歷,轉為凶惡。」

「장력」에 이르기를 「장사는 구공의 땅과 날의 강유와 달의 홀짝을 피한다. 날이 길하여 해가 없고 강유가 서로 맞고 홀짝이 서로 응하면 곧 길하고 좋다. 이 역에 맞지 않으면 도리어 흉악하다」 하였다.

夫葬,藏棺也;斂,藏尸也。初死藏尸於棺,少久藏棺於墓。墓與棺何別?斂與葬何異?斂於棺不避凶,葬於墓獨求吉。如以墓為重,夫墓,土也,棺,木也,五行之性,木土鈞也。治木以贏尸,穿土以埋棺,治與穿同事,尸與棺一實也。如以穿土賊地之體,鑿溝耕園,亦宜擇日。世人能異其事,吾將聽其禁;不能異其事,吾不從其諱。日之不害,又求日之剛柔;剛柔既合,又索月之奇耦。夫日之剛柔,月之奇耦,合於《葬歷》,驗之於吉,無不相得。何以明之?春秋之時,天子、諸侯、卿、大夫死以千百數,案其葬日,未必合於歷。

무릇 장사는 관을 감춤이요 염은 주검을 감춤이다. 갓 죽어 주검을 관에 감추고 조금 오래 관을 무덤에 감춘다. 무덤과 관이 무엇이 다르고 염과 장사가 무엇이 다른가. 관에 염함에 흉함을 피하지 않고 무덤에 장사함에 홀로 길함을 구한다. 무덤을 무겁다 여긴다면 무릇 무덤은 흙이요 관은 나무니 오행의 성품에 나무와 흙이 고르다. 나무를 다스려 주검을 담고 흙을 뚫어 관을 묻으니 다스림과 뚫음이 같은 일이요 주검과 관이 한 실상이다. 흙을 뚫음이 땅의 몸을 해친다 하면 도랑을 파고 동산을 갊에도 마땅히 날을 가려야 한다. 세상 사람이 그 일을 다르게 할 수 있으면 나는 장차 그 금함을 듣겠고 그 일을 다르게 할 수 없으면 나는 그 꺼림을 따르지 않겠다. 날이 해롭지 않고 또 날의 강유를 구하고 강유가 이미 맞고 또 달의 홀짝을 찾는다. 무릇 날의 강유와 달의 홀짝이 「장력」에 맞아 길함에 증험하면 서로 맞지 않음이 없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춘추 때에 천자·제후·경·대부의 죽음이 천백으로 헤아리는데 그 장사한 날을 살피면 반드시 역에 맞지 않았다.

又曰:「雨不克葬,庚寅日中乃葬。」

또 이르기를 「비가 와서 장사할 수 없어 경인일 한낮에 곧 장사하였다」 하였다.

假令魯小君以剛日死,至葬日己丑,剛柔等矣。剛柔合,善日也。不克葬者,避雨也。如善日,不當以雨之故,廢而不用也。何則?雨不便事耳。不用剛柔,重凶不吉,欲便事而犯凶,非魯人之意,臣子重慎之義也。今廢剛柔,待庚寅日中,以為吉也。《禮》:「天子七月而葬,諸侯五月,卿、大夫、士三月。」

가령 노 소군이 강일에 죽어 장사 날 기축에 이르면 강유가 같다. 강유가 맞으니 좋은 날이다. 장사할 수 없음은 비를 피함이다. 좋은 날이면 마땅히 비의 까닭으로 폐하여 쓰지 않아서는 안 된다. 어째서인가. 비는 일에 불편할 뿐이다. 강유를 쓰지 않으면 흉함이 무거워 길하지 않으니 일을 편하게 하려 하여 흉함을 범함은 노나라 사람의 뜻이 아니요 신하가 무겁게 삼가는 뜻이 아니다. 이제 강유를 폐하고 경인일 한낮을 기다려 길하다 여겼다. 「예」에 「천자는 일곱 달에 장사하고 제후는 다섯 달, 경·대부·사는 석 달」이라 하였다.

假令天子正月崩,七月葬;二月崩,八月葬。諸侯、卿、大夫、士皆然。如驗之《葬歷》,則天子、諸侯葬月常奇常耦也。衰世好信禁,不肖君好求福。春秋之時,可謂衰矣;隱、哀之間,不肖甚矣。然而葬埋之日,不見所諱,無忌之故也。周文之世,法度備具,孔子意密,《春秋》義纖,如廢吉得凶,妄舉觸禍,宜有微文小義貶譏之辭。今不見其義,無《葬歷》法也。

가령 천자가 정월에 죽으면 칠월에 장사하고 이월에 죽으면 팔월에 장사한다. 제후·경·대부·사가 다 그러하다. 「장력」에 증험하면 천자·제후의 장사 달이 늘 홀수이거나 늘 짝수일 것이다. 쇠한 세상은 금함을 믿기 좋아하고 못난 임금은 복 구하기 좋아한다. 춘추 때는 쇠하였다 할 만하고 은공·애공 사이는 못남이 심하였다. 그러나 장사하고 묻는 날에 꺼리는 바가 보이지 않으니 꺼림이 없는 까닭이다. 주나라 문의 세상에 법도가 갖추어지고 공자의 뜻이 빽빽하고 「춘추」의 뜻이 가늘어 길함을 폐하고 흉함을 얻어 망령되이 들어 화에 부딪쳤으면 마땅히 미세한 글과 작은 뜻으로 깎고 나무라는 말이 있어야 한다. 이제 그 뜻이 보이지 않으니 「장력」의 법이 없었던 것이다.

祭祀之歷,亦有吉凶。假令血忌月殺之日固凶,以殺牲設祭,必有患禍。夫祭者,供食鬼也;鬼者,死人之精也。若非死人之精,人未嘗見鬼之飲食也。推生事死,推人事鬼,見生人有飲食,死為鬼,當能復飲食,感物思親,故祭祀也。及他神百鬼之祠,雖非死人,其事之禮亦與死人同,蓋以不見其形,但以生人之禮准況之也。生人飲食無日,鬼神何故有日?如鬼神審有知,與人無異,則祭不宜擇日。如無知也,不能飲食,雖擇日避忌,其何補益?實者,百祀無鬼,死人無知。百祀報功,示不忘德。死如事生,示不背亡。祭之無福,不祭無禍。祭與不祭,尚無禍福,況日之吉凶,何能損益?

제사의 역에도 길흉이 있다. 가령 혈기(血忌)와 월살의 날이 본디 흉하여 희생을 죽여 제사를 베풀면 반드시 환난과 화가 있다 한다. 무릇 제사는 귀신에게 먹을 것을 바침이요 귀신은 죽은 사람의 정이다. 죽은 사람의 정이 아니면 사람이 일찍이 귀신이 마시고 먹음을 보지 못하였다. 삶을 미루어 죽음을 섬기고 사람을 미루어 귀신을 섬기니 산 사람이 마시고 먹음이 있음을 보고 죽어 귀신이 되면 마땅히 다시 마시고 먹을 수 있다 하여 물건에 느끼고 어버이를 생각하므로 제사한다. 다른 신과 온 귀신의 사당에 이르러서는 비록 죽은 사람이 아니나 그 섬기는 예도 죽은 사람과 같으니 아마 그 꼴을 보지 못하여 다만 산 사람의 예로 헤아려 견준 것이다. 산 사람이 마시고 먹음에 날이 없는데 귀신은 무슨 까닭으로 날이 있는가. 귀신에게 살펴 앎이 있어 사람과 다름이 없으면 제사에 마땅히 날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앎이 없어 마시고 먹을 수 없으면 비록 날을 가려 꺼림을 피한들 무슨 보탬이 있는가. 실상은 온 제사에 귀신이 없고 죽은 사람은 앎이 없다. 온 제사는 공에 갚아 덕을 잊지 않음을 보인다. 죽음을 삶 섬기듯 함은 죽은 이를 등지지 않음을 보인다. 제사하여도 복이 없고 제사하지 않아도 화가 없다. 제사하고 제사하지 않음에 오히려 화복이 없는데 하물며 날의 길흉이 어찌 덜고 더할 수 있겠는가.

如以殺牲見血,避血忌月殺,則生人食六畜亦宜辟之。海內屠肆,六畜死者日數千頭,不擇吉凶,早死者未必屠工也。天下死罪,各月斷囚亦數千人,其刑於市,不擇吉日,受禍者未必獄吏也。肉盡殺牲,獄具斷囚。囚斷牲殺,創血之實,何以異於祭祀之牲?獨為祭祀設歷,不為屠工、獄吏立見,世俗用意不實類也。祭非其鬼,又信非其諱,持二非往求一福,不能得也。

희생을 죽여 피를 보임으로 혈기(血忌)와 월살을 피한다면 산 사람이 집짐승을 먹음에도 마땅히 피해야 한다. 해내의 푸줏간에 집짐승의 죽는 것이 날마다 수천 머리인데 길흉을 가리지 않으나 일찍 죽는 이가 반드시 백정은 아니다. 천하의 사형 죄를 달마다 처단하니 그 죄수도 수천 사람인데 그 저자에서 형벌함에 길한 날을 가리지 않으나 화를 받는 이가 반드시 옥리는 아니다. 고기가 다하면 희생을 죽이고 옥사가 갖추어지면 죄수를 처단한다. 죄수를 처단하고 희생을 죽임이 상처와 피의 실상이 제사의 희생과 무엇이 다른가. 홀로 제사를 위해 역을 베풀고 백정과 옥리를 위해 견줌을 세우지 않으니 세속이 뜻을 씀에 무리를 실답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 귀신이 아닌 것에 제사하고 또 그 꺼림이 아닌 것을 믿어 두 그름을 가지고 가서 한 복을 구하니 얻을 수 없다.

《沐書》曰:「子日沐,令人愛之。卯日沐,令人白頭。」

「목서」에 이르기를 「자일에 머리 감으면 사람이 사랑하게 한다. 묘일에 머리 감으면 사람이 머리가 세게 한다」 하였다.

夫人之所愛憎,在容貌之好丑;頭髪白黑,在年歲之稚老。使丑如嫫母,以子日沐,能得愛乎?使十五女子以卯日沐,能白髪乎?且沐者去首垢也,洗去足垢,盥去手垢,浴去身垢,皆去一形之垢,其實等也。洗盥浴不擇日,而沐獨有日。如以首為最尊,(尊)則浴亦治面,面亦首也。如以髪為最尊,則櫛亦宜擇日。櫛用木,沐用水,水與木,俱五行也。用木不避忌,用水獨擇日。如以水尊於木,則諸用水者宜皆擇日。

무릇 사람이 사랑하고 미워하는 바는 얼굴의 곱고 추함에 있고 머리털의 희고 검음은 나이의 어리고 늙음에 있다. 추하기 모모 같은 이가 자일에 머리 감으면 사랑을 얻을 수 있는가. 열다섯 여자가 묘일에 머리 감으면 머리가 셀 수 있는가. 또 머리 감음은 머리의 때를 없앰이니 씻어 발의 때를 없애고 손 씻어 손의 때를 없애고 목욕하여 몸의 때를 없앰이 다 한 몸의 때를 없앰이라 그 실은 같다. 씻고 손 씻고 목욕함에 날을 가리지 않는데 머리 감음만 홀로 날이 있다. 머리를 가장 높다 여긴다면 목욕도 얼굴을 다스리니 얼굴도 머리다. 머리털을 가장 높다 여긴다면 빗질도 마땅히 날을 가려야 한다. 빗질은 나무를 쓰고 머리 감음은 물을 쓰니 물과 나무는 다 오행이다. 나무를 씀에 꺼림을 피하지 않고 물을 씀에 홀로 날을 가린다. 물이 나무보다 높다 여긴다면 여러 물 쓰는 이는 마땅히 다 날을 가려야 한다.

且水不若火尊,如必以尊卑,則用火者宜皆擇日。且使子沐人愛之,卯沐其首白者,誰也?夫子之性,水也;卯,木也。水不可受,木色不白。子之禽鼠,卯之獸兔也。鼠不可愛,兔毛不白。以子日沐,誰使可愛?卯日沐,誰使凝白者?夫如是,沐之日無吉凶,為沐立日歷者,不可用也。

또 물은 불의 높음만 못하니 반드시 높고 낮음으로 한다면 불 쓰는 이는 마땅히 다 날을 가려야 한다. 또 자일에 머리 감으면 사람이 사랑하게 하고 묘일에 머리 감으면 그 머리가 세게 하는 이는 누구인가. 무릇 자의 성품은 물이요 묘는 나무다. 물은 받을 수 없고 나무 빛은 희지 않다. 자의 짐승은 쥐요 묘의 짐승은 토끼다. 쥐는 사랑할 수 없고 토끼 털은 희지 않다. 자일에 머리 감음에 누가 사랑스럽게 하는가. 묘일에 머리 감음에 누가 엉겨 희게 하는가. 무릇 이러하면 머리 감는 날에 길흉이 없으니 머리 감음을 위해 날 역을 세운 이는 쓸 수 없다.

裁衣有書,書有吉凶,凶日制衣則有禍,吉日則有福。夫衣與食俱輔人體,食輔其內,衣衛其外。飲食不擇日,制衣避忌日,豈以衣為於其身重哉?人道所重,莫如食急,故八政一曰食,二曰貨。衣服、貨也。如以加之於形為尊重,在身之物莫大於冠,造冠無禁,裁衣有忌,是於尊者略,卑者詳也。且夫沐去頭垢,冠為首飾;浴除身垢,衣衛體寒。沐有忌,冠無諱;浴無吉凶,衣有利害。俱為一體,共為一身,或善或惡,所諱不均,欲人淺知,不能實也。且衣服不如車馬。

옷 마름에 책이 있어 책에 길흉이 있으니 흉한 날에 옷을 지으면 화가 있고 길한 날이면 복이 있다 한다. 무릇 옷과 먹을 것은 다 사람 몸을 돕는데 먹을 것은 그 안을 돕고 옷은 그 밖을 지킨다. 마시고 먹음에 날을 가리지 않고 옷 지음에 꺼리는 날을 피하니 어찌 옷을 그 몸에 무겁다 여겨서인가. 사람의 도에 무거운 바로 먹을 것만큼 급한 것이 없으므로 팔정에 첫째를 먹을 것이라 하고 둘째를 재화라 한다. 옷은 재화다. 꼴에 더함으로 높고 무겁다 여긴다면 몸에 있는 물건에 관보다 큰 것이 없는데 관을 만듦에 금함이 없고 옷 마름에 꺼림이 있으니 이는 높은 것에 간략하고 낮은 것에 자세함이다. 또 무릇 머리 감음은 머리 때를 없애고 관은 머리 꾸밈이 되며 목욕은 몸의 때를 없애고 옷은 몸의 추위를 지킨다. 머리 감음에 꺼림이 있고 관에 꺼림이 없으며 목욕에 길흉이 없고 옷에 이해가 있다. 다 한 몸이 되고 함께 한 몸이 되는데 혹 좋고 혹 나쁘며 꺼리는 바가 고르지 않으니 사람의 얕은 앎을 바라 실답게 할 수 없다. 또 옷은 수레와 말만 못하다.

九錫之禮,一曰車馬,二曰衣服。作車不求良辰,裁衣獨求吉日,俗人所重,失輕重之實也。

구석(九錫)의 예에 첫째는 수레와 말이요 둘째는 옷이다. 수레를 만듦에 좋은 때를 구하지 않고 옷 마름에 홀로 길한 날을 구하니 속인이 무겁게 여기는 바가 가볍고 무거움의 실상을 잃은 것이다.

工伎之書,起宅蓋屋必擇日。夫屋覆人形,宅居人體,何害於歲月而必擇之?如以障蔽人身者神惡之,則夫裝車、治船、著蓋、施帽,亦當擇日。如以動地穿土神惡之,則夫鑿溝耕園亦宜擇日。夫動土擾地神,地神能原人無有惡意,但欲居身自安,則神之聖心,必不忿怒。不忿怒,雖不擇日,猶無禍也。如土地之神不能原人之意,苟惡人動擾之,則雖擇日何益哉?王法禁殺傷人,殺傷人皆伏其罪,雖擇日犯法,終不免罪;如不禁也,雖妄殺傷,終不入法。縣官之法,猶鬼神之制也。穿鑿之過,猶殺傷之罪也。人殺傷不在擇日,繕治室宅何故有忌?

공인과 기술의 책에 집을 짓고 지붕을 덮음에 반드시 날을 가린다. 무릇 지붕은 사람 꼴을 덮고 집은 사람 몸을 살게 하는데 세월에 무엇을 해쳐 반드시 가리는가. 사람 몸을 가리고 덮는 것을 신이 미워한다면 무릇 수레를 꾸미고 배를 다스리고 덮개를 하고 모자를 씀에도 마땅히 날을 가려야 한다. 땅을 움직이고 흙을 뚫음을 신이 미워한다면 무릇 도랑을 파고 동산을 갊에도 마땅히 날을 가려야 한다. 무릇 흙을 움직여 땅 신을 어지럽혀도 땅 신이 사람에게 악한 뜻이 없고 다만 몸을 두어 스스로 편안하려 함을 헤아릴 수 있으면 신의 성스러운 마음이 반드시 성내지 않을 것이다. 성내지 않으면 비록 날을 가리지 않아도 오히려 화가 없다. 토지의 신이 사람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구차히 사람이 움직여 어지럽힘을 미워하면 비록 날을 가린들 무슨 이익이겠는가. 왕법이 사람을 죽이고 상함을 금하니 사람을 죽이고 상하면 다 그 죄에 엎드려 비록 날을 가려 법을 범하여도 끝내 죄를 면하지 못한다. 금하지 않으면 비록 망령되이 죽이고 상하여도 끝내 법에 들지 않는다. 현관의 법은 귀신의 제도와 같다. 뚫는 허물은 죽이고 상하는 죄와 같다. 사람이 죽이고 상함이 날 가림에 있지 않은데 집을 고치고 다스림에 무슨 까닭으로 꺼림이 있는가.

又學書諱丙日,云倉頡以丙日死也。禮不以子卯舉樂,殷、夏以子卯日亡也。如以丙日書,子卯日舉樂,未必有禍,重先王之亡日,淒愴感動,不忍以舉事也。忌日之法,蓋丙與子卯之類也,殆有所諱,未必有凶禍也。堪輿歷,歷上諸神非一,聖人不言,諸子不傳,殆無其實。天道難知,假令有之,諸神用事之日也,忌之何福?不諱何禍?王者以甲子之日舉事,民亦用之,王者聞之,不刑法也。夫王者不怒民不與己相避,夫神何為獨當責之?

또 글 배움에 병일을 꺼리니 창힐이 병일에 죽었다 한다. 예에 자묘일에 음악을 들지 않음은 은·하가 자묘일에 망해서다. 병일에 글 쓰고 자묘일에 음악을 들어도 반드시 화가 있지 않으나 선왕의 망한 날을 무겁게 여겨 처창하게 느껴 움직여 차마 일을 들지 않는 것이다. 꺼리는 날의 법은 아마 병과 자묘의 무리라 거의 꺼리는 바가 있으나 반드시 흉한 화가 있지 않다. 감여의 역은 역 위의 여러 신이 하나가 아닌데 성인이 말하지 않고 제자가 전하지 않으니 거의 그 실상이 없다. 하늘의 도는 알기 어려우니 가령 있어도 여러 신이 일을 맡는 날이니 꺼린들 무슨 복이고 꺼리지 않은들 무슨 화인가. 임금이 갑자일에 일을 하면 백성도 그 날을 쓰는데, 임금이 그것을 듣고도 벌하지 않는다. 무릇 임금이 백성이 저와 서로 피하지 않음을 노하지 않는데 무릇 신이 무엇 때문에 홀로 마땅히 책하겠는가.

王法舉事以人事之可否,不問日之吉凶。孔子曰:「卜其宅兆而安厝之。」《春秋》祭祀不言卜日。《禮》曰:「內事以柔日,外事以剛日。」剛柔以慎內外,不論吉凶以為禍福。

왕법이 일을 듦에 사람 일의 옳고 옳지 않음으로 하고 날의 길흉을 묻지 않는다. 공자가 말하였다. 「그 묘 자리를 점쳐 편안히 모신다.」 「춘추」에 제사에 날을 점친다 말하지 않았다. 「예」에 이르기를 「안의 일은 유일로 하고 밖의 일은 강일로 한다」 하였다. 강유로 안과 밖을 삼가지 길흉을 논하여 화복으로 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