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卜筮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22 · 한자 2,228자 · 낭독 8.9분

「논형」 복서편 「卜筮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俗信卜筮,謂卜者問天,筮者問地,蓍神龜靈,兆數報應,故舍人議而就卜筮,違可否而信吉凶。其意謂天地審告報,蓍龜真神也。如實論之,卜筮不問天地,蓍龜未必神靈。有神靈,問天地,俗儒所言也。

풍속이 점을 믿어 이르기를 거북점은 하늘에 묻고 시초점은 땅에 물으니 시초는 신령하고 거북은 영험하여 조짐과 수가 갚아 응하므로 사람의 의논을 버리고 점에 나아가고 옳고 그름을 어기고 길흉을 믿는다 한다. 그 뜻은 하늘과 땅이 살펴 알려 갚고 시초와 거북이 참으로 신령하다 이름이다. 실상으로 논하면 점은 하늘과 땅에 묻지 않고 시초와 거북은 반드시 신령하지 않다. 신령함이 있어 하늘과 땅에 묻는다 함은 속된 유자가 말하는 바다.

何以明之?子路問孔子曰:「豬肩羊膊可以得兆,葦?可以得數,何必以蓍龜?」孔子曰:「不然!蓋取其名也。夫蓍之為言耆也,龜之為言舊也,明狐疑之事當問耆舊也。」

무엇으로 밝히는가.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돼지 어깨와 양 다리로 조짐을 얻을 수 있고 갈대와 부들로 수를 얻을 수 있는데 하필 시초와 거북으로 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아마 그 이름을 취한 것이다. 무릇 시초(蓍)라는 말은 늙음(耆)이요, 거북(龜)이라는 말은 오램(舊)이니 망설이는 일은 마땅히 늙고 오랜 이에게 물어야 함을 밝힘이다.」

由此言之,蓍不神,龜不靈,蓋取其名,未必有實也。無其實則知其無神靈,無神靈則知不問天地也。且天地口耳何在,而得問之?天與人同道。欲知天,以人事。相問,不自對見其人,親問其意,意不可知。欲問天,天高,耳與人相遠。如天無耳,非形體也。非形體則氣也,氣若雲霧,何能告人?蓍以問地,地有形體,與人無異。問人,不近耳則人不聞,人不聞則口不告人。夫言問天,則天為氣,不能為兆;問地,則地耳遠,不聞人言。信謂天地告報人者,何據見哉?

이로써 말하면 시초는 신령하지 않고 거북은 영험하지 않으니 아마 그 이름을 취한 것이지 반드시 실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실상이 없으면 그 신령함이 없음을 알고 신령함이 없으면 하늘과 땅에 묻지 않음을 안다. 또 하늘과 땅의 입과 귀가 어디 있어 물을 수 있는가. 하늘과 사람은 도를 같이한다. 하늘을 알려 하면 사람의 일로 한다. 서로 물음에 스스로 그 사람을 마주 보고 몸소 그 뜻을 묻지 않으면 뜻을 알 수 없다. 하늘에 물으려 하나 하늘은 높아 귀가 사람과 서로 멀다. 하늘에 귀가 없다면 몸이 아니다. 몸이 아니면 기운이니 기운이 구름과 안개 같은데 어찌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가. 시초로 땅에 묻는데 땅은 몸이 있어 사람과 다름이 없다. 사람에게 물음에 귀에 가까이 하지 않으면 사람이 듣지 못하고 사람이 듣지 못하면 입이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 무릇 하늘에 묻는다 말하면 하늘은 기운이라 조짐이 될 수 없고 땅에 묻는다 하면 땅은 귀가 멀어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한다. 참으로 하늘과 땅이 사람에게 알려 갚는다 하면 무슨 근거로 보는가.

人在天地之間,猶虮虱之著人身也。如虮虱欲知人意,鳴人耳傍,人猶人聞。何則?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있음은 서캐와 이가 사람 몸에 붙음과 같다. 서캐와 이가 사람의 뜻을 알려 하여 사람 귀 곁에서 울어도 사람이 오히려 듣지 못한다. 어째서인가.

小大不均,音語不通也。今以微小之人,問巨大天地,安能通其聲音?天地安能知其旨意?或曰:「人懷天地之氣。天地之氣,在形體之中,神明是矣。人將卜筮,告令蓍龜,則神以耳聞口言,若己思念,神明從胸腹之中聞知其旨。故鑽龜揲蓍,兆見數著。」

작고 큼이 고르지 않아 소리와 말이 통하지 않아서다. 이제 미세하고 작은 사람으로 거대한 하늘과 땅에 물으니 어찌 그 소리를 통할 수 있으며 하늘과 땅이 어찌 그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말한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품는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몸속에 있으니 신명이 그것이다. 사람이 장차 점치려 하여 시초와 거북에 알리면 신이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함이 제가 생각함과 같아 신명이 가슴과 배 속에서 그 뜻을 들어 안다. 그러므로 거북을 뚫고 시초를 세면 조짐이 보이고 수가 드러난다.」

夫人用神思慮,思慮不決,故問蓍龜,蓍龜兆數,與意相應,則是神可謂明告之矣。時或意以為可,兆數不吉;或兆數則吉,意以為凶。夫思慮者己之神也,為兆數者亦己之神也。一身之神,在胸中為思慮,在胸外為兆數,猶人入戶而坐,出門而行也。行坐不異意,出入不易情。如神明為兆數,不宜與思慮異。天地有體,故能搖動。搖動,有生之類也;生,則與人同矣。問生人者須以生人,乃能相報。如使死人問生人,則必不能相答。今天地生而蓍龜死,以死問生,安能得報?枯龜之骨,死蓍之莖,問生之天地,世人謂之天地報應,誤矣。

무릇 사람이 신을 써서 생각하고 생각이 결정되지 않으므로 시초와 거북에 물으니 시초와 거북의 조짐과 수가 뜻과 서로 응하면 이는 신이 밝게 알렸다 할 만하다. 때로 혹 뜻은 옳다 여기는데 조짐과 수가 길하지 않고 혹 조짐과 수는 길한데 뜻이 흉하다 여긴다. 무릇 생각하는 것은 제 신이요 조짐과 수가 되는 것도 제 신이다. 한 몸의 신이 가슴속에 있으면 생각이 되고 가슴 밖에 있으면 조짐과 수가 되니 사람이 문에 들어 앉고 문을 나가 다님과 같다. 다니고 앉음에 뜻이 다르지 않고 나가고 듦에 정이 바뀌지 않는다. 신명이 조짐과 수가 된다면 마땅히 생각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 하늘과 땅에 몸이 있으므로 흔들려 움직일 수 있다. 흔들려 움직임은 삶이 있는 무리요 살면 사람과 같다. 산 사람에게 묻는 이는 모름지기 산 사람으로 해야 곧 서로 갚을 수 있다. 죽은 사람으로 산 사람에게 묻게 하면 반드시 서로 답할 수 없다. 이제 하늘과 땅은 살고 시초와 거북은 죽었으니 죽음으로 삶에 물어 어찌 갚음을 얻겠는가. 마른 거북의 뼈와 죽은 시초의 줄기로 산 하늘과 땅에 묻고 세상 사람이 하늘과 땅의 갚아 응함이라 하니 그르다.

如蓍龜為若版牘,兆數為若書字,象類人君出教令乎,則天地口耳何在,而有教令?孔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百物生焉。」

시초와 거북이 판과 서찰 같고 조짐과 수가 글씨 같아 임금이 교령을 냄과 비슷하다 하면 하늘과 땅의 입과 귀가 어디 있어 교령이 있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는가. 사철이 행해지고 온 물건이 난다.」

天不言,則亦不聽人之言。天道稱自然無為,今人問天地,天地報應,是自然之有為以應人也。案《易》之文,觀揲蓍之法,二分以象天地,四揲以象四時,歸奇於以象閏月。以象類相法,以立卦數耳,豈云天地(合)〔告〕報人哉?

하늘이 말하지 않으면 또한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하늘의 도는 절로 그러하고 함이 없다 일컫는데 이제 사람이 하늘과 땅에 묻고 하늘과 땅이 갚아 응한다 하면 이는 절로 그러함이 함이 있어 사람에게 응함이다. 「역」의 글을 살펴 시초 세는 법을 보면 둘로 나누어 하늘과 땅을 본뜨고 넷으로 세어 사철을 본뜨고 나머지를 손가락 사이에 돌려 윤달을 본뜬다. 모양의 무리로 서로 본받아 괘의 수를 세울 뿐이니 어찌 하늘과 땅이 사람에게 알려 갚는다 하겠는가.

人道,相問則對,不問不應。無求,空扣人之門;無問,虛辨人之前:則主人笑而不應,或怒而不對。試使卜筮之人空鑽龜而卜,虛揲蓍而筮,戲弄天地,亦得兆數,天地妄應乎?又試使人罵天而卜,驅地而筮,無道至甚,亦得兆數。苟謂兆數天地之神,何不滅其火,灼其手,振其指,而亂其數,使之身體疾痛,血氣湊踊,而猶為之見兆出數,何天地之不憚勞,用心不惡也?由此言之,卜卜筮不問天地,兆數非天地之報,明矣。

사람의 도는 서로 물으면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응하지 않는다. 구함 없이 헛되이 남의 문을 두드리고 물음 없이 헛되이 남 앞에서 따지면 주인이 웃으며 응하지 않거나 혹 노하여 대답하지 않는다. 시험 삼아 점치는 사람에게 헛되이 거북을 뚫어 점치고 헛되이 시초를 세어 점치게 하여 하늘과 땅을 희롱하여도 또한 조짐과 수를 얻으니 하늘과 땅이 망령되이 응하는가. 또 시험 삼아 사람에게 하늘을 꾸짖으며 점치고 땅을 매질하며 점치게 하여 도 없음이 지극히 심하여도 또한 조짐과 수를 얻는다. 진실로 조짐과 수를 하늘과 땅의 신이라 하면 어찌 그 불을 끄고 그 손을 지지고 그 손가락을 떨어 그 수를 어지럽혀 그 몸이 아프고 혈기가 뛰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해 조짐을 보이고 수를 내니 어찌 하늘과 땅이 수고를 꺼리지 않고 마음 씀이 미워하지 않는가. 이로써 말하면 점은 하늘과 땅에 묻지 않고 조짐과 수는 하늘과 땅의 갚음이 아님이 분명하다.

然則卜筮亦必有吉凶。論者或謂隨人善惡之行也,猶瑞應應(一作隨。)善而至,災異隨惡而到。治之善惡,善惡所致也,疑非天地故應之也。吉人鑽龜,輒從善兆;凶人揲蓍,輒得逆數。何以明之?紂,至惡之君也。當時災異繁多,七十卜而皆凶,故祖伊曰:「格人元龜,罔敢知吉。」

그러니 점에 또한 반드시 길흉이 있다. 논하는 이가 혹 사람의 착하고 악한 행실을 따른다 하니 상서로운 응함이 착함에 응하여 이르고 재이가 악함을 따라 이름과 같다 한다. 다스림의 착하고 악함은 착하고 악함이 이르게 한 것이지 아마 하늘과 땅이 일부러 응한 것이 아니다. 길한 사람이 거북을 뚫으면 문득 좋은 조짐을 따르고 흉한 사람이 시초를 세면 문득 거스른 수를 얻는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주는 지극히 악한 임금이다. 당시 재이가 번거롭게 많아 일흔 번 점쳐 다 흉하였으므로 조이가 말하였다. 「지극한 사람과 큰 거북이 감히 길함을 알지 못한다.」

賢者不舉,大龜不兆,災變亟至。周武受命,高祖龍興,天人并佑,奇怪既多,丰、沛子弟,卜之又吉。故吉人之體,所致無不良;凶人之起,所招無不丑。衛石駘卒,無適子,有庶子六人,卜所以為后者,曰:「沐浴佩玉則兆。」五人皆沐浴佩玉。石祁子曰:「焉有執親之喪而沐浴佩玉!」

어진 이가 들려지지 않고 큰 거북이 조짐하지 않으며 재변이 자주 이르렀다. 주 무왕이 명을 받고 고조가 용처럼 일어남에 하늘과 사람이 아울러 도와 기이하고 괴이함이 이미 많고 풍·패의 자제가 점침에 또 길하였다. 그러므로 길한 사람의 몸은 이르게 하는 바가 좋지 않음이 없고 흉한 사람의 일어남은 부르는 바가 추하지 않음이 없다. 위 석태가 죽어 적자가 없고 서자 여섯이 있어 뒤가 될 이를 점치니 말하였다. 「목욕하고 옥을 차면 조짐이 있다.」 다섯 사람이 다 목욕하고 옥을 찼다. 석기자가 말하였다. 「어찌 어버이의 상을 잡고 목욕하고 옥을 차는 이가 있는가!」

不沐浴佩玉,石祁子兆。衛人卜,以龜為有知也。龜非有知,石祁子自知也。祁子行善政,有嘉言,言嘉政善,故有明瑞。使時不卜,謀之於眾,亦猶稱善。何則?人心神意同吉凶也。

목욕하지 않고 옥을 차지 않았는데 석기자가 조짐이 있었다. 위나라 사람이 점침은 거북에 앎이 있다 여겨서다. 거북에 앎이 있음이 아니라 석기자가 스스로 안 것이다. 기자가 착한 정사를 행하고 아름다운 말이 있어 말이 아름답고 정사가 착하므로 밝은 상서가 있었다. 그때 점치지 않고 뭇사람에게 꾀하였어도 또한 오히려 착하다 일컬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사람 마음과 신의 뜻이 길흉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此言若然,然非卜筮之實也。

이 말이 그렇다 하여도 점의 실상은 아니다.

夫鑽龜揲蓍,自有兆數,兆數之見,自有吉凶,而吉凶之人,適與相逢。吉人與善兆合,凶人與惡數遇,猶吉人行道逢吉事,顧睨見祥物,非吉事祥物為吉人瑞應也。凶人遭遇凶惡,於道亦如之。夫見善惡非天應答,適與善惡相逢遇也。鑽龜揲蓍有吉凶之兆者,逢吉遭凶之類也。何以明之?周武王不豫,周公卜三龜,公曰:「乃逢是吉。」

무릇 거북을 뚫고 시초를 셈에 절로 조짐과 수가 있고 조짐과 수의 보임에 절로 길흉이 있어 길흉의 사람이 마침 더불어 서로 만난다. 길한 사람이 좋은 조짐과 합하고 흉한 사람이 나쁜 수와 만남은 길한 사람이 길을 가다 길한 일을 만나고 돌아보아 상서로운 물건을 봄과 같으니 길한 일과 상서로운 물건이 길한 사람을 위한 상서로운 응함이 아니다. 흉한 사람이 흉악함을 만남도 길에서 또한 이와 같다. 무릇 착하고 악함을 봄은 하늘의 응답이 아니라 마침 착하고 악함과 서로 만남이다. 거북을 뚫고 시초를 셈에 길흉의 조짐이 있음은 길함을 만나고 흉함을 당하는 무리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주 무왕이 편찮으니 주공이 세 거북으로 점치고 공이 말하였다. 「곧 이 길함을 만났다.」

魯卿庄叔生子穆叔,以《周易》筮之,遇《明夷》之《謙》。夫卜曰逢,筮曰遇,實遭遇所得,非善惡所致也。善則逢吉,惡則遇凶,天道自然,非為人也。推此以論,人君治有吉凶之應,亦猶此也。君德遭賢,時適當平,嘉物奇瑞偶至。不肖之君,亦反此焉。

노나라 경 장숙이 아들 목숙을 낳고 「주역」으로 점치니 「명이」가 「겸」으로 감을 만났다. 무릇 거북점에 봉이라 하고 시초점에 우라 하니 실로 만나 얻은 바지 착하고 악함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착하면 길함을 만나고 악하면 흉함을 만남은 하늘의 도가 절로 그러함이지 사람을 위함이 아니다. 이를 미루어 논하면 임금의 다스림에 길흉의 응함이 있음도 또한 이와 같다. 임금의 덕이 어짊을 만나고 때가 마침 평안함에 당하면 아름다운 물건과 기이한 상서가 우연히 이른다. 못난 임금은 또한 이와 반대다.

世人言卜筮者多,得實誠者寡。論者或謂蓍龜可以參事,不可純用。夫鑽龜揲蓍,兆數輒見,見無常占,占者生意。吉兆而占謂之凶,凶數而占謂之吉,吉凶不效,則謂卜筮不可信。周武王伐紂,卜筮之逆,占曰:「大凶。」

세상 사람이 점을 말하는 이가 많으나 실다운 정성을 얻은 이는 적다. 논하는 이가 혹 시초와 거북은 일에 참고할 수 있으나 순전히 쓸 수 없다 한다. 무릇 거북을 뚫고 시초를 셈에 조짐과 수가 문득 보이나 보임에 늘 그러한 점이 없어 점치는 이가 뜻을 낸다. 길한 조짐인데 점쳐 흉하다 하고 흉한 수인데 점쳐 길하다 하여 길흉이 증험되지 않으면 점을 믿을 수 없다 한다. 주 무왕이 주를 침에 점이 거슬러 점쳐 말하였다. 「크게 흉하다.」

太公推蓍蹈龜而曰:「枯骨死草,何知而凶!」

태공이 시초를 밀치고 거북을 밟으며 말하였다. 「마른 뼈와 죽은 풀이 무엇을 알아 흉하다 하는가!」

夫卜筮兆數,非吉凶誤也,占之不審吉凶,吉凶變亂,變亂,故太公黜之。夫蓍筮龜卜,猶聖王治世;卜筮兆數,猶王治瑞應。瑞應無常,兆數詭異。詭異則占者惑,無常則議者疑。疑則謂(平)〔世〕未治,惑則謂(吉)〔占〕不良。何以明之?夫吉兆數,吉人可遭也;治遇符瑞,聖德之驗也。周王伐紂,遇烏魚之瑞,其卜曷為逢不吉之兆?使武王不當起,出不宜逢瑞;使武王命當興,卜不宜得凶。由此言之,武王之卜,不得凶占,謂之凶者,失其實也。魯將伐越,筮之,得鼎折足,子貢占之以為凶。何則?鼎而折足,行用足,故謂之凶。孔子占之以為吉,曰:「越人水居,行用舟不用足,故謂之吉。」

무릇 점의 조짐과 수는 길흉이 그릇된 것이 아니라 점침이 길흉을 살피지 못하여 길흉이 변하여 어지러운 것이니 변하여 어지러우므로 태공이 물리쳤다. 무릇 시초점과 거북점은 성왕이 세상을 다스림과 같고 점의 조짐과 수는 왕의 다스림에 상서로운 응함과 같다. 상서로운 응함이 늘 그러함이 없고 조짐과 수가 괴이하고 다르다. 괴이하고 다르면 점치는 이가 홀리고 늘 그러함이 없으면 의논하는 이가 의심한다. 의심하면 세상이 아직 다스려지지 않았다 하고 홀리면 점이 좋지 않다 한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무릇 길한 조짐과 수는 길한 사람이 만날 수 있고 다스림에 부서를 만남은 성스러운 덕의 증험이다. 주(周) 무왕이 주(紂)를 침에 까마귀와 물고기의 상서를 만났는데 그 점이 어찌 길하지 않은 조짐을 만났는가. 무왕이 마땅히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면 나감에 마땅히 상서를 만나지 않아야 하고 무왕의 명이 마땅히 일어나야 했다면 점에 마땅히 흉함을 얻지 않아야 한다. 이로써 말하면 무왕의 점은 흉한 점을 얻지 않았고 흉하다 한 것은 그 실상을 잃은 것이다. 노나라가 장차 월나라를 치려 하여 점치니 솥의 발이 부러짐을 얻어 자공이 점쳐 흉하다 여겼다. 어째서인가. 솥이 발이 부러지면 다님에 발을 쓰므로 흉하다 한 것이다. 공자가 점쳐 길하다 여겨 말하였다. 「월나라 사람은 물에 살아 다님에 배를 쓰고 발을 쓰지 않으므로 길하다 한다.」

魯伐越,果克之。夫子貢占鼎折足以為凶,猶周之占卜者謂之逆矣。逆中必有吉,猶折鼎足之占宜以伐越矣。周多子貢直占之知,寡若孔子詭論之材,故睹非常之兆,不能審也。世因武王卜無非而得凶,故謂卜筮不可純用,略以助政,示有鬼神,明己不得專。

노나라가 월나라를 치니 과연 이겼다. 무릇 자공이 솥의 발 부러짐을 점쳐 흉하다 여김은 주나라의 점치는 이가 거스른다 함과 같다. 거스름 가운데 반드시 길함이 있음은 솥의 발 부러짐의 점이 마땅히 월나라 침에 맞음과 같다. 주나라에 자공의 곧게 점치는 앎은 많고 공자의 뒤집어 논하는 재주 같은 이는 적었으므로 예사롭지 않은 조짐을 보고 살필 수 없었다. 세상이 무왕의 점에 그름이 없는데 흉함을 얻음으로 인하여 점을 순전히 쓸 수 없고 대략 정사를 돕는 것이라 귀신이 있음을 보이고 제가 홀로 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라 한다.

著書記者,采掇行事,若韓非《飾邪》之篇,明已效之驗,毀卜訾筮,非世信用。夫卜筮非不可用,卜筮之人占之誤也。《洪范》稽疑,卜筮之變,必問天子卿士,或時審是。夫不能審占,兆數不驗,則謂卜筮不可信用。晉文公與楚子戰,夢與成王搏,成王在上而其腦,占曰「凶」。

책을 짓고 기록하는 이가 행한 일을 채택하여 한비의 「식사(飾邪)」 편 같은 것은 이미 효험된 증험을 밝혀 거북점을 헐고 시초점을 헐뜯어 세상이 믿어 씀을 그르다 하였다. 무릇 점은 쓸 수 없음이 아니라 점치는 사람이 점침이 그릇된 것이다. 「홍범」의 계의는 점의 변고에 반드시 천자와 경사에게 물으니 혹 때로 살펴 옳다. 무릇 점을 살필 수 없어 조짐과 수가 증험되지 않으면 점을 믿어 쓸 수 없다 한다. 진 문공이 초자와 싸울 때 꿈에 성왕과 맞붙어 성왕이 위에 있어 그 골을 빨았는데 점쳐 「흉하다」 하였다.

咎犯曰:「吉!君得天,楚伏其罪。君之腦者,柔之也。」

구범이 말하였다. 「길합니다! 임금이 하늘을 얻고 초나라가 그 죄에 엎드립니다. 임금의 골을 빪은 부드럽게 함입니다.」

以戰果勝,如咎犯占。夫占夢與占龜同。晉占夢者不見象指,猶周占龜者不見兆者為也。象無不然,兆無不審。人之知暗,論之失實也。傳或言武王伐紂,卜之而龜,占者曰「凶」。太公曰:「龜,以祭則凶,以戰則勝。」武王從之,卒克紂焉。審若此傳,亦復孔子論卦,咎犯占夢之類也。蓋兆數無不然,而吉凶失實者,占不巧工也。

싸워 과연 이겼으니 구범의 점과 같았다. 무릇 꿈 점과 거북 점은 같다. 진나라 꿈 점치는 이가 모양의 가리킴을 보지 못함은 주나라 거북 점치는 이가 조짐이 함을 보지 못함과 같다. 모양은 그렇지 않음이 없고 조짐은 살펴지지 않음이 없다. 사람의 앎이 어두워 논함이 실상을 잃은 것이다. 전에 혹 무왕이 주를 침에 점치니 거북이 탔는데 점치는 이가 「흉하다」 하였다 한다. 태공이 말하였다. 「거북이 탐은 제사에 쓰면 흉하고 싸움에 쓰면 이깁니다.」 무왕이 따라 마침내 주를 이겼다. 살펴 이 전함과 같다면 또한 다시 공자가 괘를 논하고 구범이 꿈을 점친 무리다. 아마 조짐과 수는 그렇지 않음이 없으나 길흉이 실상을 잃음은 점침이 교묘한 장인이 아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