難歲篇
俗人險心,好信禁忌,知者亦疑,莫能實定。是以儒雅服從,工伎得勝。吉凶之書,伐經典之義;工伎之說,凌儒雅之論。今略實論,令(親)〔觀〕覽,總核是非,使世一悟。
속인은 마음이 험하여 금기 믿기를 좋아하고 아는 이도 의심하여 실답게 정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이 때문에 유아가 복종하고 공인과 기술이 이긴다. 길흉의 책이 경전의 뜻을 치고 공인과 기술의 설이 유아의 논을 능멸한다. 이제 대략 실답게 논하여 보게 하고 옳고 그름을 모두 살펴 세상이 한 번 깨닫게 한다.
《移徙法》曰:「徙抵太歲凶,負太歲亦凶。」
「이사법」에 이르기를 「옮김에 태세에 부딪치면 흉하고 태세를 등져도 흉하다」 하였다.
抵太歲名曰歲下,負太歲名曰歲破,故皆凶也。假令太歲在甲子,天下之人皆不得南北徙,起宅嫁娶亦皆避之;其移東西,若徙四維,相之如者皆吉。何者?不與太歲相觸,亦不抵太歲之衝也。實問:避太歲者何意也?令太歲惡人徙乎?則徙者皆有禍。令太歲不禁人徙,惡人抵觸之乎?則道上之人南北行者皆有殃。太歲之意,猶長吏之心也。長吏在塗,人行觸車馬,干其吏從,長吏怒之,豈獨抱器載物、去宅徙居觸犯之者而乃責之哉!昔文帝出,過霸陵橋,有一人行逢車駕,逃於橋下,以為文帝之車已過,疾走而出,驚乘輿馬。文帝怒,以屬廷尉張釋之,釋之當論。使太歲之神行若文帝出乎,則人犯之者,必有如橋下走出之人矣。方今行道路者,暴溺仆死,何以知非觸遇太歲之出也?為移徙者又不能處,不能處,則犯與不犯未可知,未可知,則其行與不行未可審也。
태세에 부딪침을 세하라 이름하고 태세를 등짐을 세파라 이름하므로 다 흉하다. 가령 태세가 갑자에 있으면 천하 사람이 다 남북으로 옮길 수 없고 집을 짓고 시집가고 장가듦도 다 피하며 그 동서로 옮기거나 네 모퉁이로 옮겨 서로 마주한 것은 다 길하다 한다. 어째서인가. 태세와 서로 부딪치지 않고 또한 태세의 맞부딪침에 닿지 않아서다. 실로 묻는다. 태세를 피함은 무슨 뜻인가. 태세가 사람이 옮김을 미워하게 하면 옮기는 이는 다 화가 있어야 한다. 태세가 사람이 옮김을 금하지 않고 사람이 저에 부딪침을 미워하게 하면 길 위의 사람으로 남북으로 다니는 이는 다 재앙이 있어야 한다. 태세의 뜻은 어른 아전의 마음과 같다. 어른 아전이 길에 있는데 사람이 다니다 수레와 말에 부딪쳐 그 아전의 따르는 이를 범하면 어른 아전이 노하니 어찌 홀로 그릇을 안고 물건을 싣고 집을 떠나 옮겨 사는 이로 부딪쳐 범한 이만 책하겠는가! 옛날 문제가 나가 패릉교를 지나는데 한 사람이 다니다가 수레를 만나 다리 아래로 달아났다가 문제의 수레가 이미 지났다 여겨 빨리 달려 나와 임금 수레의 말을 놀라게 하였다. 문제가 노하여 정위 장석지에게 맡기니 석지가 마땅히 논하였다. 태세의 신이 다님이 문제의 나감 같다면 사람이 범한 이는 반드시 다리 아래서 달려 나온 사람 같음이 있을 것이다. 지금 길을 다니는 이가 갑자기 빠져 엎어져 죽음이 태세의 나옴에 부딪쳐 만난 것이 아님을 어찌 아는가. 이사를 위하는 이가 또 처리할 수 없고 처리할 수 없으면 범함과 범하지 않음을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면 그 다님과 다니지 않음을 살필 수 없다.
且太歲之神審行乎,則宜有曲折,不宜直南北也。長吏出舍,行有曲折。如天神直道不曲折乎,則從東西四維徙者,猶干之也。若長吏之南北行,人從東如西,四維相之如,猶抵觸之。如不正南北,南北之徙又何犯。如太歲不動行乎,則宜有宮室營堡,不與人相見,人安得而觸之?如太歲無體,與長吏異,若煙雲虹霓直經天地,極子午南北陳乎,則東西徙若四維徙者亦干之,譬若今時人行,觸繁霧蜮氣,無從橫負鄉皆中傷焉。如審如氣,人當見之,雖不移徙,亦皆中傷。
또 태세의 신이 살펴 다닌다면 마땅히 굽이가 있어야지 곧게 남북만 해서는 안 된다. 어른 아전이 집을 나서면 다님에 굽이가 있다. 하늘 신이 곧은 길로 굽이 없다면 동서와 네 모퉁이로 옮기는 이도 오히려 범한다. 어른 아전이 남북으로 다님에 사람이 동에서 서로 가고 네 모퉁이로 서로 마주하면 오히려 부딪치는 것과 같다. 바로 남북이 아니면 남북의 옮김이 또 무엇을 범하는가. 태세가 움직여 다니지 않는다면 마땅히 궁실과 진영이 있어 사람과 서로 보지 않는데 사람이 어찌 부딪칠 수 있겠는가. 태세가 몸이 없어 어른 아전과 달라 연기와 구름과 무지개가 바로 하늘과 땅을 지나 자오를 다하여 남북으로 벌인 것 같다면 동서로 옮기거나 네 모퉁이로 옮기는 이도 또한 범하니 비유하면 지금 사람이 다니다 짙은 안개와 물여우 기운에 부딪치면 가로세로와 등지고 향함 없이 다 맞아 상함과 같다. 살펴 기운 같다면 사람이 마땅히 보아야 하니 비록 옮기지 않아도 또한 다 맞아 상한다.
且太歲,天別神也,與青龍無異。龍之體不過數千丈。如令神者宜長大,饒之數萬丈,令體掩北方,當言太歲在北方,不當言在子。其東有丑,其西有亥,明不專掩北方,極東西之廣,明矣。令正言在子位觸土之中,直子午者,不得南北徙耳。東邊直丑巳之地,西邊直亥未之民,何為不得南北徙?丑與亥地之民,使太歲左右通得南北徙及東西徙,(可)則丑在子東,亥在子西,丑亥之民東西徙,觸歲之位;巳未之民東西徙,忌歲所破。
또 태세는 하늘의 다른 신이라 청룡과 다름이 없다. 용의 몸은 수천 길에 지나지 않는다. 신이 마땅히 길고 크게 하여 수만 길을 넉넉히 주어 몸이 북방을 가리게 하면 마땅히 태세가 북방에 있다 말해야지 자에 있다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동에 축이 있고 그 서에 해가 있으니 오로지 북방을 가리지 않고 동서의 넓음을 다함이 분명하다. 바로 자 자리에 있어 땅의 가운데에 닿는다 말하면 자오에 바로 닿는 이는 남북으로 옮길 수 없을 뿐이다. 동쪽 가로 축과 사에 닿는 땅과 서쪽 가로 해와 미에 닿는 백성이 어찌 남북으로 옮길 수 없는가. 축과 해 땅의 백성으로 태세의 좌우가 통하여 남북으로 옮기고 동서로 옮길 수 있게 하면 축은 자의 동에 있고 해는 자의 서에 있어 축·해의 백성이 동서로 옮기면 세의 자리에 부딪치고 사·미의 백성이 동서로 옮기면 세가 깨뜨리는 바를 꺼린다.
儒者論天下九州,以為東西南北盡地廣長。九州之內五千里,竟三河土中。周公卜宅,《經》曰:「王來紹上帝,自服於土中。」
유자가 천하 구주를 논함에 동서남북으로 땅의 넓고 긺을 다한다 여긴다. 구주 안 오천 리에 삼하가 땅의 가운데를 다한다. 주공이 집터를 점침에 「경」에 이르기를 「왕이 와서 상제를 이어 땅의 가운데에서 스스로 다스린다」 하였다.
雒則土之中也。鄒衍論之,以為九州之內五千里,竟合為一州,在東(東)〔南〕位,名曰赤縣州。自有九州者九焉,九九八十一,凡八十一州。此言殆虛。地形難審,假令有之,亦一難也。使天下九州如儒者之議,直雒邑以南,對三河以北,豫州、荊州、冀州之部有太歲耳。雍、梁之間,青、兗、徐、揚之地,安得有太歲?使如鄒衍之論,則天下九州在東南位,不直子午,安得有太歲?如太歲不在天地極,分散在民間,則一家之宅,輒有太歲,雖不南北徙,猶抵觸之。假令從東里徙西里,西里有太歲,從東宅徙西宅,西宅有太歲,或在人之東西,或在人之南北,猶行途上,東西南北皆逢觸人。
낙은 곧 땅의 가운데다. 추연이 논하여 구주 안 오천 리가 끝내 합하여 한 주가 되어 동남 자리에 있으니 이름을 적현주라 한다 여겼다. 절로 구주 있는 것이 아홉이니 구구 팔십일이라 무릇 팔십일 주다. 이 말은 거의 헛되다. 땅의 꼴은 살피기 어려우니 가령 있어도 또한 한 어려움이다. 천하 구주가 유자의 의논 같다면 바로 낙읍 남쪽과 삼하 북쪽을 마주한 예주·형주·기주의 부에 태세가 있을 뿐이다. 옹·양 사이와 청·연·서·양의 땅에 어찌 태세가 있겠는가. 추연의 논 같다면 천하 구주가 동남 자리에 있어 자오에 바로 닿지 않으니 어찌 태세가 있겠는가. 태세가 하늘과 땅의 끝에 있지 않고 민간에 흩어져 있다면 한 집의 집에 문득 태세가 있어 비록 남북으로 옮기지 않아도 오히려 부딪친다. 가령 동쪽 마을에서 서쪽 마을로 옮기면 서쪽 마을에 태세가 있고 동쪽 집에서 서쪽 집으로 옮기면 서쪽 집에 태세가 있어 혹 사람의 동서에 있고 혹 사람의 남북에 있어 길 위를 다님에 동서남북에 다 사람을 만나 부딪침과 같다.
太歲位數千萬億,天下之民,徙者皆凶,為移徙者何以審之?如審立於天地之際,猶王者之位在土中也。東方之民,張弓西射,人不謂之射王者,以不能至王者之都,自止射其處也。今徙豈能北至太歲位哉!自止徙百步之內,何為謂之傷太歲乎!且移徙之家禁南北徙者,以為歲在子位,子者破午,南北徙者抵觸其衝,故謂之凶。夫破者須有以椎破之也,如審有所用,則不徙之民皆被破害;如無所用,何能破之!
태세의 자리가 수천만억이면 천하 백성으로 옮기는 이가 다 흉하니 이사를 위하는 이가 무엇으로 살피는가. 살펴 하늘과 땅의 즈음에 선다면 왕자의 자리가 땅의 가운데에 있음과 같다. 동방의 백성이 활을 당겨 서쪽으로 쏘아도 사람이 왕자를 쏜다 하지 않음은 왕자의 도읍에 이를 수 없고 절로 그 있는 데서 쏘고 그쳐서다. 이제 옮김에 어찌 북으로 태세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겠는가! 절로 백 걸음 안에 옮기고 그치는데 어찌 태세를 상한다 하는가! 또 이사의 집이 남북으로 옮김을 금함은 세가 자 자리에 있어 자는 오를 깨뜨리니 남북으로 옮기는 이가 그 맞부딪침에 닿으므로 흉하다 한다. 무릇 깨뜨림은 반드시 철퇴로 깨뜨림이 있어야 하니 살펴 쓰는 바가 있으면 옮기지 않는 백성이 다 깨뜨리는 해를 입고 쓰는 바가 없으면 어찌 깨뜨릴 수 있는가!
夫雷,天氣也,盛夏擊折,折木破山,時暴殺人。使太歲所破若迅雷也,則聲音宜疾,死者宜暴。如不若雷,亦無能破。如謂衝抵為破,衝抵安能相破?東西相與為衝,而南北相與為抵。如必以衝抵為凶,則東西常凶而南北常惡也。如以太歲神其衝獨凶,神莫過於天地,天地相與為衝,則天地之間無生人也。或上十二神登明、從魁之輩,工伎家謂之皆天神也。
무릇 우레는 하늘 기운이니 한여름에 쳐서 꺾어 나무를 꺾고 산을 깨뜨리며 때로 갑자기 사람을 죽인다. 태세가 깨뜨리는 바가 빠른 우레 같다면 소리가 마땅히 빠르고 죽는 이가 마땅히 갑작스러워야 한다. 우레만 못하면 또한 깨뜨릴 수 없다. 맞부딪침과 닿음을 깨뜨림이라 하면 맞부딪침과 닿음이 어찌 서로 깨뜨릴 수 있는가. 동서가 서로 맞부딪침이 되고 남북이 서로 닿음이 된다. 반드시 맞부딪침과 닿음을 흉하다 하면 동서가 늘 흉하고 남북이 늘 악하다. 태세가 신령하여 그 맞부딪침만 홀로 흉하다 하면 신령함이 하늘과 땅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하늘과 땅이 서로 맞부딪침이 되면 하늘과 땅 사이에 산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혹 위의 열두 신 등명·종괴의 무리를 공인과 기술의 집이 다 하늘 신이라 한다.
常立子丑之位,俱有衝抵之氣,神雖不若太歲,宜有微敗。移徙者雖避太歲之凶,猶觸十二神之害。為移徙時者何以不禁?
늘 자축의 자리에 서서 다 맞부딪치고 닿는 기운이 있으니 신이 비록 태세만 못하여도 마땅히 작은 패함이 있어야 한다. 이사하는 이가 비록 태세의 흉함을 피하여도 오히려 열두 신의 해에 부딪친다. 이사의 때를 위하는 이가 어찌 금하지 않는가.
冬氣寒,水也,水位在北方。夏氣熱,火也,火位在南方。案秋冬寒,春夏熱者,天下普然,非獨南北之方水火衝也。今太歲位在子耳,天下皆為太歲,非獨子午衝也。審以所立者為主,則午可為大夏,子可為大冬。冬夏南北徙者,可復凶乎?立春,艮王震相,巽胎離沒,坤死兌囚,乾廢坎休。王之衝死,相之衝囚,王相衝位,有死囚之氣。乾坤六子,天下正道,伏羲、文王象以治世,文為經所載,道為聖所信,明審於太歲矣。人或以立春東北徙,抵艮之下,不被凶害。太歲立於子,彼東北徙,坤卦近於午,猶艮以坤,徙觸子位,何故獨凶?正月建於寅,破於申,從寅申徙,相之如者無有凶害。太歲不指午,而空曰歲破,午實無凶禍,而虛禁南北,豈不妄哉!
겨울 기운이 추움은 물이니 물의 자리는 북방에 있다. 여름 기운이 더움은 불이니 불의 자리는 남방에 있다. 살피건대 가을과 겨울이 춥고 봄과 여름이 더움은 천하가 두루 그러하니 홀로 남북의 방향에 물과 불이 맞부딪침이 아니다. 이제 태세의 자리가 자에 있을 뿐인데 천하가 다 태세가 되니 홀로 자오가 맞부딪침이 아니다. 살펴 선 곳을 주로 삼으면 오는 큰 여름이 될 수 있고 자는 큰 겨울이 될 수 있다. 겨울과 여름에 남북으로 옮기는 이가 다시 흉할 수 있는가. 입춘에 간이 왕이요 진이 상이요 손이 태(胎)요 이가 몰이요 곤이 사요 태(兌)가 수요 건이 폐요 감이 휴다. 왕의 맞부딪침은 사요 상의 맞부딪침은 수니 왕과 상이 맞부딪치는 자리에 사와 수의 기운이 있다. 건곤의 여섯 자식은 천하의 바른 도라 복희·문왕이 본떠 세상을 다스렸으니 글은 경이 실은 바요 도는 성인이 믿는 바라 태세보다 밝게 살펴진다. 사람이 혹 입춘에 동북으로 옮겨 간의 아래에 닿아도 흉한 해를 입지 않는다. 태세가 자에 서고 저가 동북으로 옮기면 곤괘가 오에 가까우니 간이 곤으로써 옮겨 자 자리에 부딪침과 같은데 무슨 까닭으로 홀로 흉한가. 정월에 인을 세우고 신을 깨뜨리니 인신에서 옮겨 서로 마주하는 이에게 흉한 해가 없다. 태세가 오를 가리키지 않는데 헛되이 세파라 말하고 오가 실로 흉한 화가 없는데 헛되이 남북을 금하니 어찌 망령되지 않은가!
十二月為一歲,四時節竟,陰陽氣終,竟復為一歲,日月積聚之名耳,何故有神而謂之立於子位乎?積分為日,累日為月,連月為時,紀時為歲。歲則日月時之類也。歲而有神,日月時亦復有神乎?千五百三十九〔歲〕為一統,四千六百一十七歲為一元。歲猶統元也。歲有神,統元復有神乎?論之以為無。假令有之,何故害人?神莫過於天地,天地不害人。人謂百神,百神不害人。太歲之氣,天地之氣也,何憎於人,觸而為害?且文曰:「甲子不徙。」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 사철의 절기가 끝나고 음양의 기운이 마치면 끝내 다시 한 해가 되니 해와 달이 쌓여 모인 이름일 뿐인데 무슨 까닭으로 신이 있어 자 자리에 선다 하는가. 분을 쌓아 날이 되고 날을 쌓아 달이 되고 달을 이어 철이 되고 철을 기록하여 해가 된다. 해는 곧 날과 달과 철의 무리다. 해에 신이 있으면 날과 달과 철에도 다시 신이 있는가. 천오백서른아홉 해가 한 통이 되고 사천육백열일곱 해가 한 원이 된다. 해는 통과 원과 같다. 해에 신이 있으면 통과 원에도 다시 신이 있는가. 논하면 없다. 가령 있어도 무슨 까닭으로 사람을 해치는가. 신령함이 하늘과 땅보다 나은 것이 없는데 하늘과 땅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사람이 온 신이라 하는데 온 신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태세의 기운은 하늘과 땅의 기운인데 무엇을 사람에게 미워하여 부딪치면 해가 되는가. 또 글에 이르기를 「갑자에 옮기지 않는다」 하였다.
言甲與子殊位,太歲立子不居甲,為移徙者運之,而復居甲,為之而復居甲,為移徙時者,亦宜復禁東西徙。甲與子鈞,其凶宜同。不禁甲而獨忌子,為移徙時者,竟妄不可用也。人居不能不移徙,移徙不能不觸歲,(不)觸歲不能不得時死。工伎之人,見今人之死,則歸禍於往時之徙。俗心險危,死者不絕,故太歲之言,傳世不滅。
갑과 자는 자리가 다르니 태세가 자에 서고 갑에 있지 않은데 이사를 위하는 이가 운행하여 다시 갑에 있게 하니 그렇게 하여 다시 갑에 있으면 이사의 때를 위하는 이가 또한 마땅히 다시 동서로 옮김을 금해야 한다. 갑과 자가 고르면 그 흉함이 마땅히 같아야 한다. 갑을 금하지 않고 홀로 자를 꺼리니 이사의 때를 위하는 이는 끝내 망령되어 쓸 수 없다. 사람이 살면서 옮기지 않을 수 없고 옮김에 세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고 세에 부딪침에 때로 죽음을 얻지 않을 수 없다. 공인과 기술의 사람이 지금 사람의 죽음을 보면 화를 지난날의 옮김에 돌린다. 속된 마음이 험하고 위태하여 죽는 이가 끊이지 않으므로 태세의 말이 세상에 전해져 없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