祀義篇
世信祭祀,以為祭祀者必有福,不祭祀者必有禍。是以病作卜祟,祟得修祀,祀畢意解,意解病已;執意以為祭祀之助,勉奉不絕。謂死人有知,鬼神飲食,猶相賓客,賓客悅喜,報主人恩矣。其修祭祀,是也;信其(事)〔享〕之,非也。實者,祭祀之意,主人自盡恩勤而已,鬼神未必欲享之也。何以明之?今所祭者報功,則緣生人為恩義耳,何歆享之有?今所祭死人,死人無知,不能飲食。何以審其不能歆享飲食也?夫天者體也,與地同。天有列宿,地有宅舍。宅舍附地之體,列宿著天之形。形體具則有口,乃能食。使天地有口能食,祭食宜食盡;如無口,則無體,無體則氣也,若雲霧耳,亦無能食。
세상이 제사를 믿어 제사하는 이는 반드시 복이 있고 제사하지 않는 이는 반드시 화가 있다 여긴다. 이 때문에 병이 나면 빌미를 점치고 빌미를 얻으면 제사를 닦고 제사가 끝나면 뜻이 풀리고 뜻이 풀리면 병이 낫는다. 뜻을 잡아 제사의 도움이라 여겨 힘써 받들어 끊지 않는다. 죽은 사람에게 앎이 있어 귀신이 마시고 먹음이 서로 손님 대접함과 같아 손님이 기뻐하면 주인의 은혜를 갚는다 이른다. 그 제사를 닦음은 옳으나 그가 흠향한다 믿음은 그르다. 실상은 제사의 뜻이 주인이 스스로 은혜와 정성을 다할 뿐 귀신이 반드시 흠향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이제 제사하는 바가 공에 갚음이면 산 사람으로 인하여 은혜와 의를 삼을 뿐이니 무슨 흠향이 있겠는가. 이제 제사하는 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앎이 없어 마시고 먹을 수 없다. 무엇으로 그 마시고 먹음을 흠향할 수 없음을 살피는가. 무릇 하늘은 몸이니 땅과 같다. 하늘에 별자리가 있고 땅에 집이 있다. 집은 땅의 몸에 붙고 별자리는 하늘의 꼴에 붙는다. 몸이 갖추어지면 입이 있어 곧 먹을 수 있다. 하늘과 땅에 입이 있어 먹을 수 있다면 제사 음식이 마땅히 다 먹혀야 하고 입이 없으면 몸이 없고 몸이 없으면 기운이니 구름과 안개 같을 뿐이라 또한 먹을 수 없다.
如天地之精神,若人之有精神矣。以人之精神,何宜飲食?中人之體七八尺,身大四五圍,食斗食,斗羹,乃能飽足,多者三四斗。天地之廣大,以萬里數。圜丘之上,一繭栗牛,粢飴大羹不過數斛。以此食天地,天地安能飽?天地用心,猶人用意也。人食不飽足,則怨主人,不報以德矣。必謂天地審能飽食,則夫古之效者負天地。山,猶人之有骨節也;水,猶人之有血脈也。故人食腸滿,則骨節與血脈因以盛矣。今祭天地,則山川隨天地而飽。今別祭山川,以為異神,是人食已,更食骨節與血脈也。
하늘과 땅의 정신은 사람에게 정신이 있음과 같다. 사람의 정신으로 어찌 마땅히 마시고 먹겠는가. 보통 사람의 몸은 일고여덟 자요 몸 크기 너덧 아름인데 말 밥과 말 국을 먹어야 곧 배부를 수 있고 많은 이는 서너 말이다. 하늘과 땅의 넓고 큼은 만 리로 헤아린다. 원구 위에 뿔이 누에고치나 밤톨만 한 어린 소 한 마리와 기장과 엿과 큰 국이 몇 섬을 넘지 않는다. 이것으로 하늘과 땅을 먹이면 하늘과 땅이 어찌 배부를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이 마음을 씀은 사람이 뜻을 씀과 같다. 사람이 먹어 배부르지 않으면 주인을 원망하고 덕으로 갚지 않는다. 반드시 하늘과 땅이 살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하면 옛날의 본받은 이가 하늘과 땅을 저버린 것이다. 산은 사람에게 뼈마디가 있음과 같고 물은 사람에게 혈맥이 있음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이 먹어 창자가 차면 뼈마디와 혈맥이 인하여 성해진다. 이제 하늘과 땅을 제사하면 산천이 하늘과 땅을 따라 배부르다. 이제 따로 산천을 제사하여 다른 신이라 여김은 사람이 먹기를 마치고 다시 뼈마디와 혈맥을 먹이는 것이다.
社稷報生谷物之功。萬民生於天地,猶毫毛生於體也。祭天地,則社稷設其中矣;人君重之,故復別祭。必以為有神,是人之膚肉當復食也。五祀初本在地。門戶用木與土,土木生於地,井灶(室)中溜皆屬於地。祭地,五祀設其中矣;人君重之,故復別祭。必以為有神,是〔人〕食己,當復食形體也。
사직은 곡식과 물건을 낳은 공에 갚음이다. 만민이 하늘과 땅에서 남은 터럭이 몸에서 남과 같다. 하늘과 땅을 제사하면 사직이 그 가운데 베풀어진다. 임금이 무겁게 여기므로 다시 따로 제사한다. 반드시 신이 있다 여기면 이는 사람의 살갗과 살을 마땅히 다시 먹이는 것이다. 오사는 처음에 본디 땅에 있었다. 문과 지게는 나무와 흙을 쓰니 흙과 나무는 땅에서 나고 우물과 부뚜막과 방 가운데 낙수는 다 땅에 붙는다. 땅을 제사하면 오사가 그 가운데 베풀어진다. 임금이 무겁게 여기므로 다시 따로 제사한다. 반드시 신이 있다 여기면 이는 사람이 제 몸을 먹이고 마땅히 다시 몸을 먹이는 것이다.
風伯、雨師、雷公,是群神也。風猶人之有吹煦也,雨猶人之有精液也,雷猶人之有腹鳴也,三者附於天地,祭天地,三者在矣;人君重之,故別祭。必以為有神,則人吹煦、精液、腹鳴當復食也。日月猶人之有目,星辰猶人之有髪,三光附天,祭天,三光在矣;人君重之,故復別祭。必以為有神,則人之食已,復食目與髪也。
풍백·우사·뇌공은 뭇 신이다. 바람은 사람에게 불고 뿜음이 있음과 같고 비는 사람에게 몸의 진액이 있음과 같고 우레는 사람에게 배 울림이 있음과 같으니 셋은 하늘과 땅에 붙어 하늘과 땅을 제사하면 셋이 있다. 임금이 무겁게 여기므로 따로 제사한다. 반드시 신이 있다 여기면 사람의 불고 뿜음과 정액과 배 울림을 마땅히 다시 먹이는 것이다. 해와 달은 사람에게 눈이 있음과 같고 별은 사람에게 머리털이 있음과 같으니 세 빛이 하늘에 붙어 하늘을 제사하면 세 빛이 있다. 임금이 무겁게 여기므로 다시 따로 제사한다. 반드시 신이 있다 여기면 사람이 먹기를 마치고 다시 눈과 머리털을 먹이는 것이다.
宗廟,己之先也。生存之時,謹敬供養,死不敢不信,故修祭祀,緣先事死,示不忘先。五帝、三王,郊宗黃帝、帝嚳之屬,報功堅力,不敢忘德,未必有鬼神審能歆享之也。
종묘는 제 선조다. 살아 있을 때 삼가고 공경하여 봉양하니 죽어도 감히 믿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제사를 닦아 선조로 인하여 죽은 이를 섬겨 선조를 잊지 않음을 보인다. 오제·삼왕이 황제·제곡의 무리를 교제하고 종으로 모심은 공에 갚고 힘을 굳게 하여 감히 덕을 잊지 않음이지 반드시 귀신이 살펴 흠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夫不能歆享,則不能神;不能神,則不能為福,亦不能為禍。禍福之起,由於喜怒,喜怒之發,由於腹腸。有腹腸者輒能飲食,不能飲食則無腹腸,無腹腸則無用喜怒,無用喜怒則無用為禍福矣。
무릇 흠향할 수 없으면 신령할 수 없고 신령할 수 없으면 복을 할 수 없고 또한 화도 할 수 없다. 화복의 일어남은 기쁨과 노함으로 말미암고 기쁨과 노함의 발함은 배와 창자로 말미암는다. 배와 창자가 있는 것은 문득 마시고 먹을 수 있고 마시고 먹을 수 없으면 배와 창자가 없고 배와 창자가 없으면 기쁨과 노함이 쓸데없고 기쁨과 노함이 쓸데없으면 화복을 함이 쓸데없다.
或曰:「歆氣,不能食也。」
어떤 이는 말한다. 「기운을 흠향하니 먹을 수 없다.」
夫歆之與飲食,一實也。用口食之,用口歆之。無腹腸則無口,無口無用食,則亦無用歆矣。何以驗其不能歆也?以人祭祀有過,不能即時犯也。夫歆不用口則用鼻矣。口鼻能歆之,則目能見之,目能見之,則手能擊之。今手不能擊,則知口鼻不能歆之也。
무릇 흠향과 마시고 먹음은 한 실상이다. 입으로 먹고 입으로 흠향한다. 배와 창자가 없으면 입이 없고 입이 없어 먹음이 쓸데없으면 또한 흠향도 쓸데없다. 무엇으로 그 흠향할 수 없음을 증험하는가. 사람이 제사에 허물이 있어도 즉시 범할 수 없음으로 한다. 무릇 흠향에 입을 쓰지 않으면 코를 쓴다. 입과 코가 흠향할 수 있으면 눈이 볼 수 있고 눈이 볼 수 있으면 손이 칠 수 있다. 이제 손이 칠 수 없으니 입과 코가 흠향할 수 없음을 안다.
或難曰:「宋公鮑之身有疾。祝曰夜姑掌,將事於歷者,歷鬼杖楫而與之言曰:『何而粢盛之不膏也?何而犧之不肥碩也?何而桂璧之不中度量也?而罪歟?其鮑之罪歟?』夜姑順色而對曰:『鮑身尚幼,在襁褓,不預知焉。審是掌之〔罪也〕。』歷鬼舉楫而掊之,斃於壇下。」此非能言用手之驗乎?
어떤 이가 힐난한다. 「송공 포의 몸에 병이 있었다. 축 야고가 맡아 장차 여귀에게 일하려 하는데 여귀가 노를 짚고 그와 말하였다. 『어찌 네 제물이 기름지지 않은가? 어찌 네 희생이 살지고 크지 않은가? 어찌 네 규벽이 도량에 맞지 않는가? 네 죄인가? 포의 죄인가?』 야고가 낯빛을 순히 하여 대답하였다. 『포는 몸이 아직 어려 강보에 있어 미리 알지 못합니다. 살피건대 이는 맡은 이의 죄입니다.』 여귀가 노를 들어 치니 단 아래 죽었다.」 이는 말할 수 있고 손을 쓴 증험이 아닌가.
曰:夫夜姑之死,未必歷鬼擊之也,時命當死也。妖象歷鬼,象鬼之形,則象鬼之言,象鬼之言,則象鬼而擊矣。何以明之?夫鬼者神也,身則先知。先知則宜自見粢盛之不膏,圭璧之失度,犧牲之㮡小,則因以責讓夜姑以楫擊之而已,無為先問。先問,不知之效也;不知,不神之驗也。不知不神,則不能見體出言以楫擊人也。夜姑,義臣也,引罪自予己,故鬼擊之。如無義而歸之鮑身,則厲鬼將復以楫掊鮑之神矣。且祭祀不備,神怒見體以殺掌。祀如禮備神喜,肯見體以食賜主祭乎?人有喜怒,鬼亦有喜怒。人不為怒者身存,不為喜者身亡。厲鬼之怒,見體而罰。宋國之祀,必時中禮,夫神何不見體以賞之乎?夫怒喜不與人同,則其賞罰不與人等。賞罰不與人等,則其掊夜姑不可信也。
답한다. 무릇 야고의 죽음은 반드시 여귀가 친 것이 아니라 때와 명이 마땅히 죽은 것이다. 요사가 여귀를 본떠 귀신의 꼴을 본뜨면 귀신의 말을 본뜨고 귀신의 말을 본뜨면 귀신을 본떠 친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무릇 귀신은 신이니 몸이 곧 먼저 안다. 먼저 알면 마땅히 스스로 제물이 기름지지 않고 규벽이 도량을 잃고 희생이 작음을 보고 곧 인하여 야고를 책하여 노로 칠 뿐이지 먼저 물을 것이 없다. 먼저 물음은 알지 못함의 효험이요 알지 못함은 신령하지 않음의 증험이다. 알지 못하고 신령하지 않으면 몸을 보이고 말을 내어 노로 사람을 칠 수 없다. 야고는 의로운 신하라 죄를 끌어 스스로 제게 주었으므로 귀신이 쳤다. 의가 없어 포의 몸에 돌렸다면 여귀가 장차 다시 노로 포의 신을 쳤을 것이다. 또 제사가 갖추어지지 않으니 신이 노하여 몸을 보여 맡은 이를 죽였다. 제사가 예같이 갖추어져 신이 기쁘면 기꺼이 몸을 보여 먹을 것을 제사 주인에게 주겠는가. 사람에게 기쁨과 노함이 있고 귀신에게도 기쁨과 노함이 있다. 사람이 노함이 되지 않는 이는 몸이 남고 기쁨이 되지 않는 이는 몸이 없어진다. 여귀의 노함은 몸을 보여 벌하였다. 송나라의 제사가 반드시 때로 예에 맞았을 터인데 무릇 신이 어찌 몸을 보여 상 주지 않았는가. 무릇 노하고 기쁨이 사람과 같지 않으면 그 상벌이 사람과 같지 않다. 상벌이 사람과 같지 않으면 그 야고를 침을 믿을 수 없다.
且夫歆者內氣也,言者出氣也。能歆則能言,猶能吸則能呼矣。如鬼神能歆,則宜言於祭祀之上。今不能言,知不能歆,一也。凡能歆者,口鼻通也。使鼻鼽不通,口鉗不開,則不能歆矣。人之死也,口鼻腐朽,安能復歆?二也。《禮》曰:「人死也斯惡之矣。」
또 무릇 흠향은 기운을 들임이요 말함은 기운을 냄이다. 흠향할 수 있으면 말할 수 있으니 들이쉴 수 있으면 내쉴 수 있음과 같다. 귀신이 흠향할 수 있으면 마땅히 제사 위에서 말해야 한다. 이제 말할 수 없으니 흠향할 수 없음을 앎이 하나다. 무릇 흠향할 수 있는 이는 입과 코가 통한다. 코가 막혀 통하지 않고 입이 다물려 열리지 않게 하면 흠향할 수 없다. 사람이 죽으면 입과 코가 썩는데 어찌 다시 흠향할 수 있는가, 둘이다. 「예」에 이르기를 「사람이 죽으면 이에 미워한다」 하였다.
與人異類,故惡之也。為尸不動,朽敗滅亡,其身不與人同,則知不與生人通矣。身不同,知不通,其飲食不與人鈞矣。胡、越異類,飲食殊味。死之與生,非直胡之與越也。由此言之,死人不歆,三也。當人之臥也,置食物其旁,不能知也。覺乃知之,知乃能食之。夫死,長臥不覺者也,安能知食?不能歆之,四也。
사람과 무리가 다르므로 미워한다. 주검이 되어 움직이지 않고 썩어 없어져 그 몸이 사람과 같지 않으면 산 사람과 통하지 않음을 안다. 몸이 같지 않고 앎이 통하지 않으면 그 마시고 먹음이 사람과 고르지 않다. 호·월은 다른 무리라 마시고 먹음이 맛이 다르다. 죽음과 삶은 다만 호와 월뿐이 아니다. 이로써 말하면 죽은 사람이 흠향하지 않음이 셋이다. 사람이 누웠을 때 먹을 것을 그 곁에 두어도 알 수 없다. 깨어야 곧 알고 알아야 곧 먹을 수 있다. 무릇 죽음은 길게 누워 깨지 않음이니 어찌 먹을 것을 알 수 있는가. 흠향할 수 없음이 넷이다.
或難曰:「祭則鬼享之,何謂也?」曰:言其修具謹潔,粢牲肥香,人臨見之,意飲食之。推己意以況鬼神,鬼神有知,必享此祭,故曰鬼享之(祀)。
어떤 이가 힐난한다. 「제사하면 귀신이 흠향한다 함은 무엇을 이르는가?」 답한다. 그 갖춤을 닦음이 삼가고 깨끗하며 제물과 희생이 살지고 향기로워 사람이 임하여 보고 마음으로 마시고 먹음을 말한다. 제 뜻을 미루어 귀신을 견주어 귀신에게 앎이 있으면 반드시 이 제사를 흠향하리라 하므로 귀신이 흠향한다 한다.
難曰:「《易》曰:『東鄰殺牛,不如西鄰之祭。』夫言東鄰不若西鄰,言東鄰牲大福少、西鄰祭少福多也。今言鬼不享,何以知其福有多少也?」
힐난한다. 「「역」에 이르기를 『동쪽 이웃이 소를 잡음이 서쪽 이웃의 제사만 못하다』 하였다. 무릇 동쪽 이웃이 서쪽 이웃만 못하다 말함은 동쪽 이웃은 희생이 크나 복이 적고 서쪽 이웃은 제사가 적으나 복이 많음을 말한다. 이제 귀신이 흠향하지 않는다 말하면 무엇으로 그 복에 많고 적음이 있음을 아는가?」
曰:此亦謂修具謹潔與不謹潔也。
답한다. 이 또한 갖춤을 닦음이 삼가고 깨끗함과 삼가고 깨끗하지 않음을 이른다.
紂殺牛祭,不致其禮。文王祭,竭盡其敬。夫禮不至則人非之,禮敬盡則人是之。是之則舉事多助,非之則言行見畔。見畔若祭,(不)見〔不〕享之禍;多助若祭,見歆之福:非鬼為祭祀之故有喜怒也。何以明之?苟鬼神,不當須人而食。須人而食,是不能神也。信鬼神,歆祭祀,祭祀為禍福,謂鬼神居處何如狀哉?自有儲邪,將以人食為飢飽也?如自有儲,儲必與人異,不當食人之物。如無儲,則人朝夕祭乃可耳。壹祭壹否,則神壹飢壹飽。壹飢壹飽,則神壹怒壹喜矣。且病人見鬼,及臥夢與死人相見,如人之形,故其祭祀如人之食。緣有飲食則宜有衣服,故復以繒制衣,以象生儀。其祭如生人之食,人欲食之,冀鬼饗之。其制衣也,廣樅不過一尺若五六寸。以所見長大之神貫一尺之衣,其肯喜而加福於人乎?以所見之鬼為審死人乎?則其制衣,宜若生人之服。
주가 소를 잡아 제사하되 그 예를 이르게 하지 않았다. 문왕이 제사함에 그 공경을 다하였다. 무릇 예가 이르지 않으면 사람이 그르다 하고 예와 공경이 다하면 사람이 옳다 한다. 옳다 하면 일을 듦에 도움이 많고 그르다 하면 말과 행실이 배반당한다. 배반당함이 제사 같으면 흠향하지 않는 화를 보고 도움이 많음이 제사 같으면 흠향하는 복을 보니 귀신이 제사의 까닭으로 기쁨과 노함이 있음이 아니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진실로 귀신이라면 마땅히 사람을 기다려 먹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기다려 먹으면 이는 신령할 수 없음이다. 귀신을 믿고 제사를 흠향하고 제사가 화복이 된다 하면 귀신의 거처가 어떤 모양이라 하는가. 절로 갈무리한 것이 있는가, 장차 사람의 먹을 것으로 주리고 배부름을 삼는가. 절로 갈무리한 것이 있으면 갈무리한 것이 반드시 사람과 달라 마땅히 사람의 물건을 먹지 않아야 한다. 갈무리한 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침저녁 제사해야 곧 옳을 뿐이다. 한 번 제사하고 한 번 않으면 신이 한 번 주리고 한 번 배부르다. 한 번 주리고 한 번 배부르면 신이 한 번 노하고 한 번 기쁠 것이다. 또 병든 사람이 귀신을 봄과 누워 꿈에 죽은 사람과 서로 봄이 사람의 꼴 같으므로 그 제사가 사람의 먹을 것 같다. 마시고 먹음이 있음으로 인하여 마땅히 옷이 있어야 하므로 다시 비단으로 옷을 지어 살아 있는 의식을 본뜬다. 그 제사가 산 사람의 먹을 것 같아 사람이 먹기 바라고 귀신이 흠향하기 바란다. 그 옷을 지음에 너비와 길이가 한 자 혹은 대여섯 치를 넘지 않는다. 본 바 길고 큰 신에게 한 자의 옷을 꿰면 기꺼이 기뻐하여 사람에게 복을 더하겠는가. 본 귀신을 살펴 죽은 사람이라 하면 그 옷 지음이 마땅히 산 사람의 옷 같아야 한다.
如以所制之衣審鬼衣之乎?則所見之鬼宜如偶人之狀。夫如是也,世所見鬼非死人之神,或所衣之神非所見之鬼也。鬼神未定,厚禮事之,安得福佑而堅信之乎?
지은 옷을 살펴 귀신이 입는다 하면 본 귀신이 마땅히 나무 인형의 모양 같아야 한다. 무릇 이러하면 세상이 보는 귀신은 죽은 사람의 신이 아니거나 혹 옷 입히는 신은 보는 귀신이 아니다. 귀신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두터운 예로 섬기니 어찌 복과 도움을 얻어 굳게 믿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