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知篇
儒者論聖人,以為前知千歲,後知萬事,有獨見之明,獨聽之聰,事來則名,不學自知,不問自曉。故稱聖則神矣,若蓍龜之知吉凶,蓍草稱神,龜稱靈矣。賢者才下不能及,智劣不能料,故謂之賢。夫名異則實殊,質同則稱鈞。以聖名論之,知聖人卓絕,與賢殊也。
유자가 성인을 논함에 앞으로 천 년을 알고 뒤로 만 일을 알며 홀로 보는 밝음과 홀로 듣는 총명이 있어 일이 오면 이름하고 배우지 않아도 절로 알고 묻지 않아도 절로 깨닫는다 여긴다. 그러므로 성이라 일컬으면 신령하니 시초와 거북이 길흉을 앎 같아 시초는 신령하다 일컫고 거북은 영험하다 일컫는다. 어진 이는 재주가 낮아 미칠 수 없고 앎이 못하여 헤아릴 수 없으므로 현이라 한다. 무릇 이름이 다르면 실이 다르고 바탕이 같으면 일컬음이 고르다. 성이라는 이름으로 논하면 성인이 뛰어나 어진 이와 다름을 안다.
孔子將死,遺讖書曰:「不知何一男子,自謂秦始皇,上我之堂,踞我之床,顛倒我衣裳,至沙丘而亡。」其後秦王兼吞天下,號始皇,巡狩至魯,觀孔子宅,乃至沙丘,道病而崩。又曰:「董仲舒亂我書。」其後江都相董仲舒,論思《春秋》,造著傳記。又書曰:「亡秦者胡也。」其後二世胡亥竟亡天下。用三者論之,聖人後知萬世之效也。孔子生不知其父,若母匿之,吹律自知殷宋大夫子氏之世也。不案圖書,不聞人言,吹律精思,自知其世,聖人前知千歲之驗也。
공자가 장차 죽으며 참서를 남겨 말하였다. 「어떤 한 사내가 스스로 진 시황이라 하며 내 당에 올라 내 평상에 걸터앉고 내 옷을 뒤집다가 사구에 이르러 죽을지 모르겠다.」 그 뒤 진왕이 천하를 아울러 삼켜 시황이라 부르고 순수하다 노나라에 이르러 공자의 집을 보고 곧 사구에 이르러 길에서 병들어 죽었다. 또 말하였다. 「동중서가 내 글을 어지럽힌다.」 그 뒤 강도 재상 동중서가 「춘추」를 논하고 생각하여 전기를 지었다. 또 글에 말하였다. 「진나라를 망하게 할 이는 호다.」 그 뒤 이세 호해가 마침내 천하를 망하게 하였다. 셋을 써서 논하면 성인이 뒤로 만세를 앎의 효험이다. 공자가 나서 그 아비를 알지 못하였는데 어미가 숨긴 것 같으니 율관을 불어 스스로 은나라 송나라 대부 자씨 집안임을 알았다. 도서를 살피지 않고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율관을 불어 정밀히 생각하여 스스로 그 집안을 알았으니 성인이 앞으로 천 년을 앎의 증험이다.
曰:此皆虛也。案神怪之言,皆在讖記,所表皆效圖書。「亡秦者胡」,《河圖》之文也。孔子條暢增益以表神怪,或後人詐記以明效驗。高皇帝封吳王,送之,拊其背曰:「漢後五十年,東南有反者,豈汝邪?」
답한다. 이는 다 헛되다. 살피건대 신령하고 괴이한 말은 다 참기에 있어 드러낸 바가 다 도서를 본떴다. 「진나라를 망하게 할 이는 호다」는 「하도」의 글이다. 공자가 조리 있게 펴고 더하여 신령하고 괴이함을 드러냈거나 혹 뒷사람이 속여 기록하여 효험을 밝혔다. 고황제가 오왕을 봉하고 보내며 그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한나라 뒤 오십 년에 동남에 반란하는 이가 있으리니 어찌 너인가?」
到景帝時,濞與七國通謀反漢。建此言者,或時觀氣見象,處其有反,不知主名。高祖見濞之勇,則謂之是。原此以論,孔子見始皇、仲舒,或時但言「將有觀我之宅」、「亂我之書」者,後人見始皇入其宅,仲舒讀其書,則增益其辭,著其主名。如孔子神而空見始皇、仲舒,則其自為殷後子氏之世,亦當默而知之,無為吹律以自定也。孔子不吹律,不能立其姓,及其見始皇,睹仲舒,亦復以吹律之類矣。案始皇本事,始皇不至魯,安得上孔子之堂,踞孔子之床,顛倒孔子之衣裳乎?始皇三十七年十月癸丑出游,至云夢,望祀虞舜於九嶷。浮江下,觀藉柯,度梅渚,過丹陽。至錢唐,臨浙江,濤惡,乃西百二十里,從陝中度,上會稽,祭大禹,立石刊頌,望於南海。還過,從江乘,旁海上,北至琅邪。自琅邪北至旁、成山,因至之罘,遂并海西,至平原津而病,崩於沙丘平台。既不至魯,讖記何見而云始皇至魯?至魯未可知,其言孔子曰「不知何一男子」之言,亦未可用。「不知何一男子」之言不可用,則言「董仲舒亂我書」亦復不可信也。行事,文記譎常人言耳,非天地之書,則皆緣前因古,有所據狀。如無聞見,則無所狀。凡聖人見禍福也,亦揆端推類,原始見終,從閭巷論朝堂,由昭昭察冥冥。讖書秘文,遠見未然,空虛暗昧,豫睹未有,達聞暫見,卓譎怪神,若非庸口所能言。
경제 때에 이르러 비가 칠국과 통하여 한나라에 반란을 꾀하였다. 이 말을 세운 이는 혹 때로 기운을 보고 모양을 보아 그 반란 있음을 처리하였으나 주인 이름을 알지 못하였다. 고조가 비의 용맹을 보고 곧 그 사람이라 한 것이다. 이를 미루어 논하면 공자가 시황·중서를 봄은 혹 때로 다만 「장차 내 집을 볼 이가 있다」 「내 글을 어지럽힐 이가 있다」 말하였는데 뒷사람이 시황이 그 집에 들고 중서가 그 글을 읽음을 보고 곧 그 말을 더하여 그 주인 이름을 드러낸 것이다. 공자가 신령하여 헛되이 시황·중서를 보았다면 그 스스로 은나라 후예 자씨의 집안 됨도 마땅히 잠잠히 알아야지 율관을 불어 스스로 정할 것이 없다. 공자가 율관을 불지 않고는 그 성을 세울 수 없었으니 그 시황을 보고 중서를 봄에 미쳐서도 또한 다시 율을 부는 무리다. 살피건대 시황의 본디 일에 시황이 노나라에 이르지 않았는데 어찌 공자의 당에 오르고 공자의 평상에 걸터앉고 공자의 옷을 뒤집었겠는가. 시황 삼십칠년 시월 계축에 나가 노닐어 운몽에 이르러 구의에서 우순을 망제하였다. 강에 떠서 내려가 자가를 보고 매저를 건너 단양을 지났다. 전당에 이르러 절강에 임하니 물결이 사나워 곧 서로 백이십 리를 가 협중에서 건너 회계에 올라 대우를 제사하고 돌을 세워 노래를 새기고 남해를 망제하였다. 돌아오며 강승을 지나 바다를 끼고 북으로 낭야에 이르렀다. 낭야에서 북으로 방·성산에 이르고 인하여 지부에 이르러 마침내 바다를 아울러 서쪽으로 평원진에 이르러 병들고 사구 평대에서 죽었다. 이미 노나라에 이르지 않았는데 참기는 무엇을 보고 시황이 노나라에 이르렀다 하는가. 노나라에 이름을 알 수 없으니 그 공자가 「어떤 한 사내인지 모르겠다」 말한 말도 또한 쓸 수 없다. 「어떤 한 사내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쓸 수 없으면 「동중서가 내 글을 어지럽힌다」 말함도 또한 다시 믿을 수 없다. 행한 일과 글의 기록이 예사 사람의 말과 다를 뿐이지 하늘과 땅의 글이 아니면 다 앞에 인하고 옛것에 근거하여 근거한 모양이 있다. 듣고 봄이 없으면 모양 지을 바가 없다. 무릇 성인이 화복을 봄도 또한 끝을 헤아려 무리를 미루고 시작을 미루어 끝을 보며 골목에서 조정을 논하고 밝음으로 어두움을 살핀다. 참서의 비밀 글은 멀리 아직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헛되고 어두운데 아직 있지 않은 것을 미리 보고 통달하게 듣고 잠깐 보아 뛰어나고 괴이하고 신령하니 예사 입이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닌 듯하다.
放象事類以見禍,推原往驗以處來事,〔賢〕者亦能,非獨聖也。周公治魯,太公知其後世當有削弱之患,太公治齊,周公睹其後世當有劫弒之禍:見法術之極,睹禍亂之前矣。紂作象箸而箕子譏,魯以偶人葬而孔子嘆,緣象箸見龍干之患,偶人睹殉葬之禍也。太公、周公俱見未然,箕子、孔子并睹未有,所由見方來者,賢聖同也。魯侯老,太子弱,次室之女倚柱而嘯,由老弱之徵,見敗亂之兆也。婦人之知,尚能推類以見方來,況聖人君子,才高智明者乎!秦始皇十年,(嚴)〔庄〕襄王母夏太后(夢)〔薨〕,孝文王后曰華陽后,與文王葬壽陵;夏太后〔子〕(嚴)〔庄〕襄王葬於(范陵)〔芷陽〕,故夏太后別葬杜陵,曰:「東望吾子,西望吾夫,後百年,旁當有萬家邑。」
일의 무리를 본떠 화를 보고 지난 증험을 미루어 올 일을 처리함은 어진 이도 할 수 있으니 홀로 성인만이 아니다. 주공이 노나라를 다스림에 태공이 그 후세에 마땅히 깎이고 약해질 환난이 있음을 알았고 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림에 주공이 그 후세에 마땅히 겁탈하고 죽이는 화가 있음을 보았으니 법술의 지극함을 보고 화란의 앞을 본 것이다. 주가 상아 젓가락을 만드니 기자가 나무랐고 노나라가 나무 인형으로 장사하니 공자가 탄식하였으니 상아 젓가락으로 인하여 용간의 환난을 보고 나무 인형으로 순장의 화를 본 것이다. 태공·주공이 함께 아직 그렇지 않은 것을 보았고 기자·공자가 아울러 아직 있지 않은 것을 보았으니 말미암아 바야흐로 올 것을 봄은 어진 이와 성인이 같다. 노후가 늙고 태자가 어리니 차실의 여자가 기둥에 기대어 휘파람 불었으니 늙고 어린 징험으로 패하고 어지러울 조짐을 본 것이다. 부인의 앎도 오히려 무리를 미루어 바야흐로 올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성인과 군자로 재주가 높고 앎이 밝은 이랴! 진 시황 십년에 장양왕의 어미 하태후가 죽었는데 효문왕의 후는 화양후라 하니 문왕과 수릉에 장사되었고 하태후의 아들 장양왕은 지양에 장사되었으므로 하태후를 따로 두릉에 장사하며 말하였다. 「동으로 내 아들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내 남편을 바라보니 백 년 뒤에 곁에 마땅히 만 집의 읍이 있을 것이다.」
其後皆如其言。必以推類見方來為聖,次室、夏太后聖也。秦昭王十年,樗里子卒,葬於渭南章台之東,曰:「後百年,當有天子宮挾我墓。」
그 뒤 다 그 말과 같았다. 반드시 무리를 미루어 바야흐로 올 것을 봄으로 성인이라 하면 차실과 하태후가 성인이다. 진 소왕 십년에 저리자가 죽어 위남 장대 동쪽에 장사되며 말하였다. 「백 년 뒤에 마땅히 천자의 궁이 내 무덤을 낄 것이다.」
至漢興,長樂宮在其東,未央宮在其西,武庫正值其墓,竟如其言。先知之效,見方來之驗也。如以此效聖,樗里子聖人也。如非聖人,先知見方來不足以明聖,然則樗里子見天子宮挾其墓也,亦猶辛有知伊川之當戎。昔辛有過伊川,見被髪而祭者,曰:「不及百年,此其戎乎!」
한나라가 일어남에 이르러 장락궁이 그 동에 있고 미앙궁이 그 서에 있고 무고가 바로 그 무덤에 닿아 마침내 그 말과 같았다. 먼저 앎의 효험이요 바야흐로 올 것을 봄의 증험이다. 이로써 성인을 증험하면 저리자는 성인이다. 성인이 아니면 먼저 알고 바야흐로 올 것을 봄이 성인을 밝히기에 넉넉하지 않으니 그러면 저리자가 천자의 궁이 그 무덤을 낌을 봄도 또한 신유가 이천이 마땅히 융이 될 것을 앎과 같다. 옛날 신유가 이천을 지나다 머리를 풀고 제사하는 이를 보고 말하였다. 「백 년이 안 되어 이는 아마 융이 될 것이다!」
其後百年,晉遷陸渾之戎於伊川焉,竟如〔其言〕。辛有之知當戎,見被髪之兆也。樗里子之見天子〔宮〕挾其墓,亦見博平之(墓)〔基〕也。韓信葬其母,亦行營高敞地,令其旁可置萬家,其後竟有萬家處其墓旁。故樗里子之見博平(王)〔土〕有宮台之兆,猶韓信之睹高敞萬家之台也。先知之見,方來之事,無達視洞聽之聰明,皆案兆察跡,推原事類。春秋之時,卿大夫相與會遇,見動作之變,聽言談之詭,善則明吉祥之福,惡則處凶妖之禍。明福處禍,遠圖未然,無神怪之知,皆由兆類。以今論之,故夫可知之事者,思慮所能見也;不可知之事,不學不問不能知也。不學自知,不問自曉,古今行事,未之有也。夫可知之事,惟精思之,雖大無難;不可知之事,歷心學問,雖小無易。故智能之士,不學不成,不問不知。
그 뒤 백 년에 진나라가 육혼의 융을 이천에 옮기니 마침내 그 말과 같았다. 신유가 마땅히 융이 될 것을 앎은 머리 푼 조짐을 본 것이다. 저리자가 천자의 궁이 그 무덤을 낌을 봄도 또한 넓고 평평한 터를 본 것이다. 한신이 그 어미를 장사함에 또한 높고 트인 땅을 두루 다니며 그 곁에 만 집을 둘 수 있게 하니 그 뒤 마침내 만 집이 그 무덤 곁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저리자가 넓고 평평한 땅에 궁대의 조짐이 있음을 봄은 한신이 높고 트여 만 집의 대를 봄과 같다. 먼저 아는 봄과 바야흐로 올 일은 통달하게 보고 꿰뚫어 듣는 총명이 없이 다 조짐을 살피고 자취를 살펴 일의 무리를 미루어 원인한다. 춘추 때에 경대부가 서로 만나 움직임의 변함을 보고 말의 어긋남을 들어 착하면 길한 상서의 복을 밝히고 악하면 흉한 요사의 화를 처리하였다. 복을 밝히고 화를 처리하여 멀리 아직 그렇지 않은 것을 꾀함에 신령하고 괴이한 앎이 없이 다 조짐의 무리로 말미암았다. 지금으로 논하면 그러므로 무릇 알 수 있는 일은 생각이 볼 수 있는 바요 알 수 없는 일은 배우지 않고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배우지 않고 절로 알고 묻지 않고 절로 깨달음은 고금의 행한 일에 있지 않았다. 무릇 알 수 있는 일은 오직 정밀히 생각하면 비록 커도 어려움이 없고 알 수 없는 일은 마음을 다해 배우고 물어도 비록 작아도 쉬움이 없다. 그러므로 슬기롭고 능한 선비도 배우지 않으면 이루지 못하고 묻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難曰:夫項托年七歲教孔子,案七歲未入小學而教孔子,性自知也。孔子曰:「生而知之,上也。學而知之,其次也。」
힐난한다. 무릇 항탁이 나이 일곱에 공자를 가르쳤으니 살피건대 일곱 살은 아직 소학에 들지 않았는데 공자를 가르쳤으니 성품이 절로 안 것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나면서 아는 이가 위요 배워서 아는 이가 그다음이다.」
夫言生而知之,不言學問,謂若項托之類也。王莽之時,勃海尹方年二十一,無所師友,性智開敏,明達六藝。魏都牧淳於倉奏:「方不學,得文能讀誦,論義引《五經》文,文說議事厭合人之心。」
무릇 나면서 안다 말하고 배우고 물음을 말하지 않음은 항탁의 무리 같은 이를 이른다. 왕망 때 발해 윤방이 나이 스물하나에 스승과 벗으로 삼은 바 없이 성품이 슬기롭고 열려 민첩하여 육예에 밝게 통달하였다. 위도목 순우창이 아뢰었다. 「방이 배우지 않고 글을 얻어 읽고 욀 수 있고 뜻을 논함에 「오경」의 글을 끌어 글과 설이 일을 의논함에 사람의 마음에 흡족히 맞습니다.」
帝征方,使射蜚蟲,策射無(非)〔弗〕知者,天下謂之聖人。夫無所師友,明達六藝,本不學書,得文能讀,此聖人也。不學自能,無師自達,非神如何?
임금이 방을 불러 나는 벌레를 맞히게 하니 대책과 맞힘에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 천하가 성인이라 하였다. 무릇 스승과 벗으로 삼은 바 없이 육예에 밝게 통달하고 본디 글을 배우지 않고 글을 얻어 읽을 수 있으니 이는 성인이다. 배우지 않아도 절로 능하고 스승 없이 절로 통달하니 신령이 아니고 무엇인가.
曰:歲無師友,亦已有所問受矣;不學書,已弄筆墨矣。兒始生產,耳目始開,雖有聖性,安能有知?項托七歲,其三四歲時,而受納人言矣。尹方年二十一,其十四五時,多聞見矣。性敏才茂,獨思無所據,不睹兆象,不見類驗,卻念百世之後,有馬生牛,牛生驢,桃生李,李生梅,聖人能知之乎?臣弒君,子軾父,仁如顏淵,孝如曾參,勇如賁、育,辯如賜、予,聖人能見之乎?孔子曰:「其或繼周者,雖百世可知也。」
답한다. 비록 스승과 벗이 없어도 또한 이미 묻고 받은 바가 있고 글을 배우지 않아도 이미 붓과 먹을 놀렸다. 아이가 비로소 남에 귀와 눈이 비로소 열리니 비록 성스러운 성품이 있어도 어찌 앎이 있겠는가. 항탁이 일곱 살이면 그 서너 살 때 사람의 말을 받아들였다. 윤방이 나이 스물하나면 그 열너덧 살 때 듣고 본 것이 많았다. 성품이 민첩하고 재주가 무성하여도 홀로 생각함에 근거할 바가 없고 조짐과 모양을 보지 않고 무리의 증험을 보지 않으면 백세 뒤를 돌이켜 생각하여 말이 소를 낳고 소가 나귀를 낳고 복숭아가 오얏을 낳고 오얏이 매화를 낳는 것이 있음을 성인이 알 수 있는가.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죽이며 어짊이 안연 같고 효도가 증삼 같고 용맹이 맹분·하육 같고 변론이 자공과 자아 같은 이를 성인이 볼 수 있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혹 주나라를 잇는 이는 비록 백세라도 알 수 있다.」
又曰:「後生可畏,焉知來者之不如今也?」
또 말하였다. 「뒤에 난 이가 두려우니 어찌 올 이가 지금만 못함을 알겠는가?」
論損益,言「可知」,稱後生,言「焉知」。後生難處,損益易明也。此尚為遠,非所聽察也。使一人立於牆東,令之出聲,使聖人聽之牆西,能知其黑白、短長、鄉里、姓字所自從出乎?溝有流〔澌〕,澤有枯骨,髪首陋亡,肌肉腐絕,使〔聖〕人詢之,能知其農商、老少、若所犯而坐死乎?
덜고 더함을 논함에 「알 수 있다」 말하고 뒤에 난 이를 일컬음에 「어찌 알겠는가」 말하였다. 뒤에 난 이는 처리하기 어렵고 덜고 더함은 밝히기 쉽다. 이는 오히려 먼 것이라 듣고 살필 바가 아니다. 한 사람을 담 동쪽에 세워 소리를 내게 하고 성인에게 담 서쪽에서 듣게 하면 그 검고 흼과 짧고 긺과 고을과 성과 자와 나온 데를 알 수 있는가. 도랑에 흐르는 주검이 있고 못에 마른 뼈가 있어 머리털과 머리가 헐어 없어지고 살이 썩어 끊어졌는데 성인에게 묻게 하면 그 농사꾼과 장사꾼과 늙고 젊음과 범한 바로 죽임당함을 알 수 있는가.
非聖人無知,其知無以知也。知無以知,非問不能知也。不能知,則賢聖所共病也。
성인이 앎이 없음이 아니라 그 앎에 알 길이 없어서다. 앎에 알 길이 없으면 묻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음은 어진 이와 성인이 함께 병으로 여기는 바다.
難曰:詹何坐,弟子侍,有牛鳴於門外。弟子曰:「是黑牛也而白蹄。」詹何曰:「然。是黑牛也而白其蹄。」使人視之,果黑牛而以布裹其蹄。詹何賢者也,尚能聽聲而知其色。以聖人之智,反不能知乎?
힐난한다. 첨하가 앉고 제자가 모시는데 소가 문 밖에서 울었다. 제자가 말하였다. 「이는 검은 소인데 흰 발굽입니다.」 첨하가 말하였다. 「그렇다. 이는 검은 소인데 그 발굽이 희다.」 사람을 시켜 보게 하니 과연 검은 소인데 베로 그 발굽을 쌌다. 첨하는 어진 이인데 오히려 소리를 듣고 그 빛을 알 수 있었다. 성인의 슬기로 도리어 알 수 없는가.
曰:能知黑牛白其蹄,能知此牛誰之牛乎?白其蹄者以何事乎?夫術數直見一端,不能盡其實。雖審一事,曲辯問之,輒不能盡知。何則?不目見口問,不能盡知也。
답한다. 검은 소에 그 발굽이 흼을 알 수 있으나 이 소가 누구의 소인지 알 수 있는가. 그 발굽을 희게 함은 무슨 일 때문인가. 무릇 술수는 다만 한 끝을 볼 뿐 그 실상을 다할 수 없다. 비록 한 일을 살펴도 곡진히 따져 물으면 문득 다 알 수 없다. 어째서인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묻지 않으면 다 알 수 없어서다.
魯僖公二十九年,介葛盧來朝,舍於昌衍之上,聞牛鳴,曰:「是牛生三犧,皆已用矣。」或問:「何以知之?」曰:「其音云。」人問牛主,竟如其言。此復用術數,非知所能見也。廣漢楊翁仲〔能〕聽鳥獸之音,乘蹇馬之野,田間有放眇馬〔者〕,相去〔數里〕,鳴聲相聞。翁仲謂其御曰:「彼放馬(知此馬而)目眇。」其御曰:「何以知之?」曰:「罵此轅中馬蹇,此馬亦罵之眇。」其御不信,往視之,名竟眇焉。翁仲之知馬聲,猶詹何、介葛盧之聽牛鳴也。據術任數,相合其意,不達視聽,遙見流目以察之也。夫聽聲有術,則察色有數矣。推用術數,若先聞見,眾人不知,則謂神聖。若孔子之見獸,名之曰,太史公之見張良似婦人之形矣。案孔子未嘗見,至輒能名之,太史公與張良異世,而目見其形。使眾人聞此言,則謂神而先知。然而孔子名,聞《昭人之歌》;太史公之見張良,觀宣室之畫也。
노 희공 이십구년에 개갈로가 와서 조회하고 창연 위에 묵는데 소 울음을 듣고 말하였다. 「이 소는 세 희생을 낳았는데 다 이미 쓰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으로 아는가?」 말하였다. 「그 소리가 말한다.」 사람이 소 주인에게 물으니 마침내 그 말과 같았다. 이것도 다시 술수를 씀이지 앎이 볼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광한 양옹중이 새와 짐승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절뚝거리는 말을 타고 들에 가는데 밭 사이에 놓아 먹이는 애꾸 말이 있어 서로 몇 리 떨어져 우는 소리가 서로 들렸다. 옹중이 그 마부에게 말하였다. 「저 놓아 먹이는 말은 눈이 애꾸다.」 그 마부가 말하였다. 「무엇으로 아십니까?」 말하였다. 「이 끌채 속 말을 절뚝거린다 꾸짖고 이 말도 저를 애꾸라 꾸짖는다.」 그 마부가 믿지 않고 가서 보니 말이 끝내 애꾸였다. 옹중이 말 소리를 앎은 첨하·개갈로가 소 울음을 들음과 같다. 술에 근거하고 수에 맡겨 그 뜻과 서로 맞으니 통달하게 보고 듣지 않고 멀리 보고 눈을 흘려 살핀 것이다. 무릇 소리를 들음에 술이 있으면 빛을 살핌에 수가 있다. 술수를 미루어 씀이 먼저 듣고 본 것 같은데 뭇사람이 알지 못하면 신령하고 성스럽다 한다. 공자가 짐승을 보고 이름하여 성이라 하고 태사공이 장량을 보고 부인의 꼴 같다 한 것 같다. 살피건대 공자가 일찍이 성을 보지 못하였는데 이르자 문득 이름할 수 있었고 태사공은 장량과 세상이 다른데 눈으로 그 꼴을 보았다. 뭇사람에게 이 말을 듣게 하면 신령하여 먼저 안다 할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성을 이름함은 「소인의 노래」를 들어서요 태사공이 장량을 봄은 선실의 그림을 보아서다.
陰見默識,用思深秘。眾人闊略,寡所意識,見賢聖之名物,則謂之神。推此以論,詹何見黑牛白蹄,猶此類也。彼不以術數,則先時聞見於外矣。方今占射事之工,據正術數,術數不中,集以人事,人事於術數而用之者,與神無異。詹何之徒,方今占射事者之類也。如以詹何之徒,性能知之,不用術數,是則巢居者先知風,穴處者先知雨,智明早成,項托、尹方其是也。
몰래 보고 잠잠히 기억하여 생각을 씀이 깊고 비밀스럽다. 뭇사람은 소홀하고 간략하여 뜻하여 기억하는 바가 적어 어진 이와 성인이 물건을 이름함을 보면 신령하다 한다. 이를 미루어 논하면 첨하가 검은 소 흰 발굽을 봄도 이 무리와 같다. 저가 술수로 하지 않았다면 먼저 때에 밖에서 듣고 본 것이다. 지금 일을 점쳐 맞히는 공인은 바른 술수에 근거하여 술수가 맞지 않으면 사람의 일로 모으니 사람의 일을 술수에 더하여 쓰는 이는 신과 다름이 없다. 첨하의 무리는 지금 일을 점쳐 맞히는 이의 무리다. 첨하의 무리가 성품으로 알 수 있어 술수를 쓰지 않는다 하면 이는 곧 둥지에 사는 이가 먼저 바람을 알고 굴에 처하는 이가 먼저 비를 아는 것이니 앎이 밝고 일찍 이루어짐은 항탁·윤방이 아마 그것이다.
難曰:黃帝生而神靈,弱而能言。帝嚳生而自言其名。未有聞見於外,生輒能言,稱其名,非神靈之效,生知之驗乎?
힐난한다. 황제가 나면서 신령하여 어려서 말할 수 있었다. 제곡이 나면서 스스로 그 이름을 말하였다. 밖에서 듣고 봄이 있지 않은데 나서 문득 말할 수 있고 그 이름을 일컬음이 신령의 효험이요 나면서 앎의 증험이 아닌가.
曰:黃帝生而言,然而母懷之二十月生,計其月數,亦已二歲在母身中矣。帝嚳能自言其名,然不能言他人之名,雖有一能,未能遍通。所謂神而生知者,豈謂生而能言其名乎?乃謂不受而能知之,未得能見之也。黃帝、帝嚳雖有神靈之驗,亦皆早成之才也。人才早成,亦有晚就,雖未就師,家問室學。人見其幼成早就,稱之過度。云項托七歲,是必十歲,云教孔子,是必孔子問之。云黃帝、帝嚳生而能言,是亦數月。云尹方年二十一,是亦且三十。云無所師友,有不學書,是亦游學家習。世俗褒稱過實,毀敗愈惡。世俗傳顏淵年十八歲升太山,望見吳昌門外有繫白馬。定考實,顏淵年三十,不升太山,不望吳昌門。項托之稱,尹方之譽,顏淵之類也。
답한다. 황제가 나면서 말하였으나 그 어미가 밴 지 스무 달에 낳으니 그 달수를 헤아리면 또한 이미 두 해를 어미 몸속에 있은 것이다. 제곡이 스스로 그 이름을 말할 수 있었으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으니 비록 한 능함이 있으나 두루 통할 수 없었다. 이른바 신령하여 나면서 안다 함이 어찌 나면서 그 이름을 말할 수 있음을 이르겠는가. 곧 받지 않고 알 수 있음을 이르니 아직 볼 수 있는 이를 얻지 못하였다. 황제·제곡이 비록 신령한 증험이 있어도 또한 다 일찍 이루어진 재주다. 사람의 재주가 일찍 이루어짐이 있고 또한 늦게 이루어짐이 있으니 비록 아직 스승에게 나아가지 않아도 집에서 묻고 방에서 배운다. 사람이 그 어려서 이루어지고 일찍 이루어짐을 보고 일컬음이 도를 지난다. 항탁이 일곱 살이라 하나 이는 반드시 열 살이요 공자를 가르쳤다 하나 이는 반드시 공자가 물은 것이다. 황제·제곡이 나면서 말할 수 있었다 하나 이 또한 몇 달이다. 윤방이 나이 스물하나라 하나 이 또한 서른이 되어 간다. 스승과 벗으로 삼은 바 없고 글을 배우지 않았다 하나 이 또한 노닐며 배우고 집에서 익혔다. 세속이 기려 일컬음이 실상을 지나고 헐어 패함이 더욱 악하다. 세속에 안연이 나이 열여덟에 태산에 올라 오나라 도성의 성문인 창문(昌門) 밖에 흰 말이 매인 것을 바라보았다 전한다. 정하여 실상을 살피면 안연이 나이 서른에 태산에 오르지 않았고 오나라 창문 성문을 바라보지 않았다. 항탁의 일컬음과 윤방의 기림은 안연의 무리다.
人才有高下,知物由學,學之乃知,不問不識。子貢曰:「夫子焉不學,而亦何常師之有?」孔子曰:「吾十有五而志乎學。」五帝、三王,皆有所師。曰:是欲為人法也。曰:精思亦可為人法。(何)必以學者,事難空知,賢聖之才能立也。所謂神者,不學而知。所謂聖者,須學以聖。以聖人學,知其非聖。天地之間,含血之類,無性知者。
사람의 재주에 높고 낮음이 있어 물건을 앎이 배움으로 말미암으니 배워야 곧 알고 묻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선생께서 어찌 배우지 않으셨겠으며 또한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으셨겠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 오제·삼왕이 다 스승으로 삼은 바가 있다. 말한다. 이는 사람의 법이 되려 함이다. 말한다. 정밀한 생각도 사람의 법이 될 수 있다. 하필 배움으로 하는가는 일이 헛되이 알기 어려워 어진 이와 성인의 재주가 설 수 있어서다. 이른바 신이란 배우지 않고 아는 이다. 이른바 성이란 배움을 기다려 성스러운 이다. 성인이 배움으로 그 신이 아님을 안다. 하늘과 땅 사이에 피를 머금은 무리에 성품으로 아는 것이 없다.
知往,鵲知來,稟天之性,自然者也。如以聖人為若乎?則夫之類,鳥獸也。僮謠不學而知,可謂神而先知矣。如以聖人為若僮謠乎?則夫僮謠者,妖也。世間聖神,以為巫與?
저산은 지난 일을 알고 까치는 올 일을 아니 하늘의 성품을 받아 절로 그러한 것이다. 성인이 저산 같다 하면 무릇 저산의 무리는 새와 짐승이다. 동요는 배우지 않고 아니 신령하여 먼저 안다 할 만하다. 성인이 동요 같다 하면 무릇 동요는 요사다. 세간의 성스러운 신을 무당이라 여기는가.
鬼神用巫之口告人。如以聖人為若巫乎?則夫為巫者亦妖也。與妖同氣,則與聖異類矣。巫與聖異,則聖不能神矣。不能神,則賢之党也。同党,則所知者無以異也。及其有異,以入道也。聖人疾,賢者遲;賢者才多,聖人智多。所知同業,多少異量;所道一途,步騶相過。
귀신이 무당의 입을 써서 사람에게 알린다. 성인이 무당 같다 하면 무릇 무당 된 이도 요사다. 요사와 기운이 같으면 성인과 무리가 다르다. 무당과 성인이 다르면 성인은 신령할 수 없다. 신령할 수 없으면 어진 이의 무리다. 같은 무리면 아는 바가 다를 것이 없다. 그 다름이 있음에 미쳐서는 도에 듦으로 한다. 성인은 빠르고 어진 이는 더디며 어진 이는 재주가 많고 성인은 앎이 많다. 아는 바가 업을 같이하나 많고 적음이 양이 다르고 가는 바가 한 길이나 걸음이 서로 지난다.
事有難知易曉,賢聖所共關思也。若夫文質之復,三教之重,正朔相緣,損益相因,賢聖所共知也。古之水火,今之水火也。今之聲色,後世之聲色也。鳥獸草木,人民好惡,以今而見古,以此而知來。千歲之前,萬世之後,無以異也。追觀上古,探察來世,文質之類,水火之輩,賢聖共之。見兆聞象,圖畫禍福,賢聖共之。見怪名物,無所疑惑,賢聖共之。事可知者,賢聖所共知也;不可知者,聖人亦不能知也。何以明之?使聖空坐先知雨也,性能一事知遠道,孔竅不普,未足以論也。所論先知性達者,盡知萬物之性,畢睹千道之要也。如知一不通二,達左不見右,偏駁不純,校不具,非所謂聖也。如必謂之聖,是明聖人無以奇也。詹何之徒聖,孔子之党亦稱聖,是聖無以異於賢,賢無以乏於聖也。賢聖皆能,何以稱聖奇於賢乎?如俱任用術數,賢何以不及聖?
일에 알기 어렵고 깨닫기 쉬움이 있음은 어진 이와 성인이 함께 생각을 관계하는 바다. 저 문과 질의 되풀이와 삼교의 거듭과 정삭이 서로 인함과 덜고 더함이 서로 인함은 어진 이와 성인이 함께 아는 바다. 옛 물과 불은 지금의 물과 불이다. 지금의 소리와 빛은 후세의 소리와 빛이다.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와 백성의 좋아하고 미워함은 지금으로 옛것을 보고 이것으로 올 것을 안다. 천 년 앞과 만세 뒤가 다를 것이 없다. 상고를 좇아 보고 올 세상을 더듬어 살피는 문과 질의 무리와 물과 불의 무리는 어진 이와 성인이 함께한다. 조짐을 보고 모양을 들어 화복을 그림은 어진 이와 성인이 함께한다. 괴이함을 보고 물건을 이름함에 의심하는 바가 없음은 어진 이와 성인이 함께한다. 일에 알 수 있는 것은 어진 이와 성인이 함께 아는 바요 알 수 없는 것은 성인도 알 수 없다. 무엇으로 밝히는가. 성인에게 헛되이 앉아 먼저 비를 알게 하면 성품으로 한 일에 능하여 먼 길을 아나 구멍이 두루 하지 않으니 논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논하는 바 먼저 알고 성품이 통달함은 만물의 성품을 다 알고 천 도의 요긴함을 다 봄이다. 하나를 알고 둘에 통하지 않고 왼쪽에 통달하고 오른쪽을 보지 못하여 치우치고 섞여 순수하지 않고 살펴 갖추지 않으면 이른바 성인이 아니다. 반드시 성인이라 하면 이는 성인이 기이할 것이 없음을 밝힘이다. 첨하의 무리가 성인이면 공자의 무리도 성인이라 일컬으니 이는 성인이 어진 이와 다를 것이 없고 어진 이가 성인에게 모자랄 것이 없음이다. 어진 이와 성인이 다 능한데 무엇으로 성인이 어진 이보다 기이하다 일컫는가. 함께 술수를 맡아 쓴다면 어진 이가 무엇으로 성인에 미치지 못하는가.
實者,聖賢不能(知)性〔知〕,須任耳目以定情實。其任耳目也,可知之事,思之輒決;不可知之事,待問乃解。天下之事,世間之物,可思而〔知〕,愚夫能開精;不可思而知,上聖不能省。孔子曰:「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
실상은 성인과 어진 이가 성품으로 알 수 없어 모름지기 귀와 눈에 맡겨 정과 실을 정한다. 그 귀와 눈에 맡김에 알 수 있는 일은 생각하면 문득 결정하고 알 수 없는 일은 묻기를 기다려야 곧 풀린다. 천하의 일과 세간의 물건은 생각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정밀함을 열 수 있고 생각하여 알 수 없는 것은 상성도 살필 수 없다.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종일 먹지 않고 밤새 자지 않고 생각하였으나 이익이 없어 배움만 못하였다.」
天下事有不可知,猶結有不可解也。(見)〔兒〕說善解結,結無有不可解。結有不可解,(見)〔兒〕說不能解也。
천하 일에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은 매듭에 풀 수 없는 것이 있음과 같다. 예설이 매듭을 잘 풀어 매듭에 풀 수 없는 것이 없었다. 매듭에 풀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예설도 풀 수 없다.
非(見)〔兒〕說不能解也,結有不可解。及其解之,用不能也。聖人知事,事無不可知。事有不可知,聖人不能知,非聖人不能知,事有不可知。及其知之,用不知也。故夫難知之事,學問所能及也;不可知之事,問之學之,不能曉也。
예설이 풀 수 없음이 아니라 매듭에 풀 수 없는 것이 있음이다. 그 풂에 미쳐서는 능하지 않음을 쓴다. 성인이 일을 앎에 일에 알 수 없는 것이 없다. 일에 알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성인이 알 수 없으니 성인이 알 수 없음이 아니라 일에 알 수 없는 것이 있음이다. 그 앎에 미쳐서는 알지 못함을 쓴다. 그러므로 무릇 알기 어려운 일은 배우고 물음이 미칠 수 있는 바요 알 수 없는 일은 묻고 배워도 깨달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