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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賢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26 · 한자 5,782자 · 낭독 23.1분

「논형」 정현편 「定賢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聖人難知,賢者比於聖人為易知。世人且不能知賢,安能知聖乎?世人雖言知賢,此言妄也。知賢何用?知之如何?

성인은 알기 어렵고 어진 이는 성인에 견주어 알기 쉽다. 세상 사람이 또 어진 이를 알 수 없는데 어찌 성인을 알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이 비록 어진 이를 안다 말하나 이 말은 망령되다. 어진 이를 앎에 무엇을 쓰는가. 앎이 어떠한가.

以仕宦得高官身富貴為賢乎?則富貴者天命也。命富貴不為賢,命貧賤不為不肖。必以富貴效賢不肖,是則仕宦以才不以命也。

벼슬하여 높은 벼슬을 얻고 몸이 부귀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부귀는 천명이다. 명이 부귀하다고 어짊이 되지 않고 명이 빈천하다고 못남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부귀로 어질고 못남을 증험하면 이는 벼슬이 재주로 하고 명으로 하지 않음이다.

以事君調合寡過為賢乎?夫順阿之臣,佞幸之徒是也。準主而說,適時而行,無廷逆之郄,則無斥退之患。或骨體嫺麗,面色稱媚,上不憎而善生,恩澤洋溢過度,未可謂賢。

임금을 섬겨 고르게 맞아 허물이 적음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순종하고 아첨하는 신하와 아첨하여 총애받는 무리가 그것이다. 임금에 맞추어 기쁘게 하고 때에 맞추어 행하여 조정에서 거스르는 틈이 없으면 물리치고 내치는 환난이 없다. 혹 뼈와 몸이 아름답고 얼굴빛이 어여뻐 위가 미워하지 않고 착함이 나서 은혜가 넘쳐 도를 지나쳐도 어질다 할 수 없다.

以朝庭選舉皆歸善為賢乎?則夫著見而人所知者舉多,幽隱人所不識者薦少,虞舜是也。堯求,則諮於鯀、共工,則岳已不得。由此言之,選舉多少,未可以知實。或德高而舉之少,或才下而薦之多。明君求善察惡於多少之間,時得善惡之實矣。且廣交多徒,求索眾心者,人愛而稱之;清直不容鄉黨,志潔不交非徒,失眾心者,人憎而毀之。故名多生於知謝,毀多失於眾意。齊威王以毀封即墨大夫,以譽烹阿大夫。即墨有功而無譽,阿無效而有名也。子貢問曰:「鄉人皆好之,何如?」孔子曰:「未可也。」「鄉人皆惡之,何如?」曰:「未可也,不若鄉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夫如是,稱譽多而小大皆言善者,非賢也。善人稱之,惡人毀之,毀譽者半,乃可有賢。

조정의 선거가 다 착함에 돌아감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드러나 보여 사람이 아는 이는 천거가 많고 그윽이 숨어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는 천거가 적으니 우순이 그것이다. 요가 구함에 곤·공공에게 자문하니 사악(四岳)이 이미 얻을 수 없었다. 이로써 말하면 선거의 많고 적음으로 실상을 알 수 없다. 혹 덕이 높아도 천거가 적고 혹 재주가 낮아도 천거가 많다. 밝은 임금은 착함을 구하고 악을 살핌을 많고 적음 사이에서 하여 때로 착하고 악함의 실상을 얻는다. 또 널리 사귀고 무리가 많아 뭇 마음을 구하는 이는 사람이 사랑하여 일컫고 맑고 곧아 향당에 용납되지 않고 뜻이 깨끗하여 그른 무리와 사귀지 않아 뭇 마음을 잃는 이는 사람이 미워하여 헐뜯는다. 그러므로 이름은 흔히 앎과 사례에서 나고 헐뜯음은 흔히 뭇사람의 뜻에서 잃는다. 제 위왕이 헐뜯음으로 즉묵 대부를 봉하고 기림으로 아(阿) 고을 대부를 삶았다. 즉묵은 공이 있으나 기림이 없었고 아(阿) 고을은 효험이 없으나 이름이 있었다. 자공이 물었다. 「향인이 다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아직 옳지 않다.」 「향인이 다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말하였다. 「아직 옳지 않다. 향인의 착한 이가 좋아하고 그 착하지 않은 이가 미워함만 못하다.」 무릇 이러하면 일컬어 기림이 많아 크고 작은 이가 다 착하다 말하는 이는 어진 이가 아니다. 착한 사람이 일컫고 악한 사람이 헐뜯어 헐뜯고 기림이 반이면 곧 어짊이 있을 수 있다.

以善人所稱,惡人所毀,可以知賢乎?夫如是,孔子之言可以知賢,不知譽此人者賢也?毀此人者惡也?或時稱者,惡而毀者善也?人眩惑無別也。

착한 사람이 일컫는 바와 악한 사람이 헐뜯는 바로 어진 이를 알 수 있는가. 무릇 이러하면 공자의 말로 어진 이를 알 수 있으나 이 사람을 기리는 이가 어진 이인지, 이 사람을 헐뜯는 이가 악한지 알지 못한다. 혹 때로 일컫는 이가 악하고 헐뜯는 이가 착하다. 사람이 아찔하고 홀려 가림이 없다.

以人眾所歸附、賓客雲合者為賢乎?則夫人眾所附歸者,或亦廣交多徒之人也,眾愛而稱之,則蟻附而歸之矣。或尊貴而為利,或好士下客,折節俟賢。信陵、孟嘗、平原、春申,食客數千,稱為賢君。大將軍衛青及霍去病門無一客,稱為名將。故賓客之會,在好下之君。利害之賢,或不好士,不能為輕重,則眾不歸而士不附也。

뭇사람이 돌아와 붙고 빈객이 구름처럼 모임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뭇사람이 붙어 돌아오는 이는 혹 또한 널리 사귀고 무리가 많은 사람이니 뭇사람이 사랑하여 일컬으면 개미처럼 붙어 돌아온다. 혹 존귀하여 이익이 되고 혹 선비를 좋아하고 손님에게 낮추어 절개를 꺾어 어진 이를 기다린다. 신릉·맹상·평원·춘신은 식객이 수천이라 어진 군이라 일컬어졌다. 대장군 위청과 곽거병은 문에 한 손님도 없었으나 이름난 장수라 일컬어졌다. 그러므로 빈객의 모임은 아랫사람을 좋아하는 군에게 있다. 이해의 어진 이는 혹 선비를 좋아하지 않고 가볍고 무거움을 할 수 없으면 뭇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선비가 붙지 않는다.

以居位治人,得民心歌詠之為賢乎?則夫得民心者,與彼得士意者,無以異也。為虛恩拊循其民,民之欲得,即喜樂矣。何以效之?齊田成子、越王勾踐是也。成子欲專齊政,以大斗貸、小鬥收而民悅。句踐欲雪會稽之恥,拊循其民,吊死問病而民喜。二者皆自有所欲為於他,而偽誘屬其民,誠心不加,而民亦說。孟嘗君夜出秦關,雞未鳴而關不,下坐賤客,鼓臂為雞鳴,而雞皆和之,關即啟,而孟嘗得出。〔夫〕雞可以姦聲感,則人亦可以偽恩動也。人可以偽恩動,則天亦可巧詐應也。動致天氣,宜以精神,而人用陽燧取火於天,消煉五石,五月盛夏鑄以為器,乃能得火。今又但取刀劍銅鉤之屬,切磨以嚮日,亦得火焉。夫陽燧、刀、劍、鉤能取火於日,恆非賢聖亦能動氣於天。若董仲舒信土龍之能致雲雨,蓋亦有以也。夫如是,應天之治,尚未可謂賢,況徒得人心,即謂之賢,如何?

자리에 있어 사람을 다스려 민심을 얻어 노래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민심을 얻는 이는 저 선비의 뜻을 얻는 이와 다를 것이 없다. 헛된 은혜로 그 백성을 어루만지면 백성이 얻기 바라는 바라 곧 기뻐한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제 전성자·월왕 구천이 그것이다. 성자가 제나라 정사를 오로지하려 하여 큰 말로 빌려주고 작은 말로 거두니 백성이 기뻐하였다. 구천이 회계의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여 그 백성을 어루만져 죽은 이를 조상하고 병든 이를 물으니 백성이 기뻐하였다. 둘은 다 절로 다른 데 하려는 바가 있어 거짓으로 꾀어 그 백성을 붙이니 정성이 더해지지 않았으나 백성이 또한 기뻐하였다. 맹상군이 밤에 진나라 관문을 나감에 닭이 아직 울지 않아 관문이 열리지 않으니 아랫자리의 천한 손님이 팔을 치며 닭 울음을 하니 닭이 다 화답하여 관문이 곧 열려 맹상이 나갈 수 있었다. 무릇 닭이 간사한 소리에 느껴질 수 있으면 사람도 거짓 은혜에 움직여질 수 있다. 사람이 거짓 은혜에 움직여질 수 있으면 하늘도 교묘한 속임에 응할 수 있다. 움직여 하늘 기운을 이르게 함은 마땅히 정신으로 해야 하나 사람이 양수를 써서 하늘에서 불을 취함에 다섯 돌을 녹여 오월 한여름에 부어 그릇을 만들어야 곧 불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또 다만 칼과 검과 구리 갈고리 따위를 취하여 갈아 해를 향하여도 또한 불을 얻는다. 무릇 양수·칼·검·갈고리가 해에서 불을 취할 수 있으니 늘 어질고 성스럽지 않아도 또한 하늘에서 기운을 움직일 수 있다. 동중서가 흙 용이 구름과 비를 이르게 할 수 있다 믿음 같은 것도 아마 또한 까닭이 있다. 무릇 이러하면 하늘에 응하는 다스림도 오히려 어질다 할 수 없는데 하물며 한갓 사람 마음을 얻어 곧 어질다 함이 어떠한가.

以居職有成功見效為賢乎?夫居職何以為功效?以人民附之,則人民可以偽恩說也。陰陽和、百姓安者,時也。時和,不肖遭其安;不和,雖聖逢其危。如以陰陽和而效賢不肖,則堯以洪水得黜,湯以大旱為殿下矣。如功效謂事也,身為之者,功著可見。以道為計者,效沒不章。鼓無當於五音,五音非鼓不和。師無當於五服,五服非師不親。水無當於五采,五采非水不章。道為功本,功為道效,據功謂之賢,是則道人之不肖也。高祖得天下,賞群臣之功,蕭何為賞首。何則?高祖論功,比獵者之縱狗也。狗身獲禽,功歸於人。群臣手戰,其猶狗也;蕭何持重,其猶人也。必據成功謂之賢,是則蕭何無功。功賞不可以效賢,一也。

직책에 있어 공을 이루고 효험을 보임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직책에 있어 무엇으로 공효를 삼는가. 백성이 붙음으로 하면 백성은 거짓 은혜로 기쁘게 할 수 있다. 음양이 화하고 백성이 편안함은 때다. 때가 화하면 못난 이도 그 편안함을 만나고 화하지 않으면 비록 성인이라도 그 위태함을 만난다. 음양이 화함으로 어질고 못남을 증험하면 요는 홍수로 내쳐지고 탕은 큰 가뭄으로 꼴찌가 될 것이다. 공효를 일이라 한다면 몸으로 하는 이는 공이 드러나 볼 수 있다. 도로 꾀하는 이는 효험이 잠겨 드러나지 않는다. 북은 다섯 음에 해당하지 않으나 다섯 음은 북이 아니면 화하지 않는다. 스승은 다섯 복에 해당하지 않으나 다섯 복은 스승이 아니면 친하지 않는다. 물은 다섯 채색에 해당하지 않으나 다섯 채색은 물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다. 도는 공의 근본이 되고 공은 도의 효험이 되니 공에 근거하여 어질다 하면 이는 도의 사람이 못남이 된다. 고조가 천하를 얻어 뭇 신하의 공을 상 줌에 소하가 상의 으뜸이었다. 어째서인가. 고조가 공을 논함에 사냥하는 이가 개를 놓음에 견주었다. 개가 몸소 짐승을 잡아도 공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뭇 신하가 손으로 싸움은 그 개와 같고 소하가 무거움을 잡음은 그 사람과 같다. 반드시 이루어진 공에 근거하여 어질다 하면 이는 소하가 공이 없음이다. 공과 상으로 어짊을 증험할 수 없음이 하나다.

夫聖賢之治世也有術,得其術則功成,失其術則事廢。譬猶醫之治病也,有方,篤劇猶治;無方,才微不愈。夫方猶術,病猶亂,醫猶吏,藥猶教也。方施而藥行,術設而教從,教從而亂止,藥行而病癒。治病之醫,未必惠於不為醫者。然而治國之吏,未必賢於不能治國者,偶得其方,遭曉其術也。治國須術以立功,亦有時當自亂,雖用術,功終不立者;亦有時當自安,雖無術,功猶成者。故夫治國之人,或得時而功成,或失時而無效。術人能因時以立功,不能逆時以致安。良醫能治未當死之人命,如命窮壽盡,方用無驗矣。故時當亂也,堯、舜用術,不能立功;命當死矣,扁鵲行方,不能愈病。射禦巧技,百工之人,皆以法術,然後功成事立,效驗可見。觀治國,百工之類也;功立,猶事成也。謂有功者賢,是謂百工皆賢人也。趙人吾丘壽王,武帝時待詔,上使從董仲舒受《春秋》,高才,通明於事後為東郡都尉。上以壽王之賢,不置太守。時軍發,民騷動,歲惡,盜賊不息。上賜壽王書曰:「子在朕前時,輻湊並至,以為天下少雙,海內寡二,至連十餘城之勢,任四千石之重,而盜賊浮船行功取於庫兵,甚不稱在前時,何也?」壽王謝言難禁。復召為光祿大夫,常居左右,論事說議,無不是者,才高智深,通明多見。然其為東郡尉,歲惡,盜賊不息,人民騷動,不能禁止。不知壽王不得治東郡之術邪?亡將東郡適當複亂,而壽王之治偶逢其時也?夫以壽王之賢,治東郡不能立功,必以功觀賢,則壽王棄而不選也。恐必世多如壽王之類,而論者以無功不察其賢。燕有谷,氣寒不生五穀。鄒衍吹律致氣,既寒更為溫,燕以種黍,黍生豐熟,到今名之曰「黍谷」。夫和陰陽,當以道德至誠。然而鄒衍吹律,寒更為溫,黍谷育生。推此以況諸有成功之類,有若鄒衍吹律之法。故得其術也,不肖無不能;失其數也,賢聖有不治。此功不可以效賢,二也。

무릇 성현이 세상을 다스림에 술이 있으니 그 술을 얻으면 공이 이루어지고 그 술을 잃으면 일이 폐한다. 비유하면 의원이 병을 다스림에 방이 있으면 심하고 극하여도 오히려 다스리고 방이 없으면 재주가 작아 낫지 않음과 같다. 무릇 방은 술과 같고 병은 어지러움과 같고 의원은 아전과 같고 약은 가르침과 같다. 방이 베풀어지면 약이 행해지고 술이 베풀어지면 가르침이 따르고 가르침이 따르면 어지러움이 그치고 약이 행해지면 병이 낫는다. 병을 다스리는 의원이 반드시 의원 아닌 이보다 슬기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나라를 다스리는 아전이 반드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이보다 어진 것은 아니니 우연히 그 방을 얻고 그 술을 깨달음을 만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림에 술을 기다려 공을 세우나 또한 때로 마땅히 절로 어지러워 비록 술을 써도 공이 끝내 서지 않음이 있고 또한 때로 마땅히 절로 편안하여 비록 술이 없어도 공이 오히려 이루어짐이 있다. 그러므로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혹 때를 얻어 공이 이루어지고 혹 때를 잃어 효험이 없다. 술의 사람이 때에 인하여 공을 세울 수 있으나 때를 거슬러 편안함을 이르게 할 수 없다. 좋은 의원이 아직 마땅히 죽지 않을 사람의 명을 다스릴 수 있으나 명이 궁하고 수명이 다하면 방을 써도 증험이 없다. 그러므로 때가 마땅히 어지러우면 요·순이 술을 써도 공을 세울 수 없고 명이 마땅히 죽으면 편작이 방을 행하여도 병을 낫게 할 수 없다. 활쏘기와 수레 몰기의 교묘한 기술과 백공의 사람이 다 법과 술로 한 뒤에야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서서 효험을 볼 수 있다. 나라 다스림을 보면 백공의 무리요 공이 섬은 일이 이루어짐과 같다. 공 있는 이를 어질다 하면 이는 백공이 다 어진 사람이라 함이다. 조나라 사람 오구수왕이 무제 때 대조하니 임금이 동중서를 따라 「춘추」를 받게 하였는데 재주가 높아 일에 밝게 통하여 뒤에 동군 도위가 되었다. 임금이 수왕이 어질다 하여 태수를 두지 않았다. 때에 군사가 나가 백성이 소동하고 해가 흉하여 도적이 그치지 않았다. 임금이 수왕에게 글을 내려 말하였다. 「그대가 짐 앞에 있을 때 바퀴살처럼 모여 아울러 이르러 천하에 짝이 적고 해내에 둘이 드물다 여겼는데 열 남짓 성을 잇는 세에 이르러 사천 석의 무거움을 맡았는데 도적이 배를 띄우고 다니며 공격하여 곳간 병기를 취하니 앞에 있을 때와 매우 걸맞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수왕이 사죄하여 금하기 어렵다 말하였다. 다시 불러 광록대부로 삼아 늘 좌우에 있으며 일을 논하고 의논을 설명함에 옳지 않은 것이 없어 재주가 높고 앎이 깊으며 밝게 통하고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 동군 위가 되어 해가 흉하고 도적이 그치지 않고 백성이 소동함을 금하여 그치게 할 수 없었다. 수왕이 동군을 다스리는 술을 얻지 못하였는지, 아니면 동군이 마침 마땅히 다시 어지러울 때라 수왕의 다스림이 우연히 그 때를 만났는지 알지 못하겠다. 무릇 수왕의 어짊으로 동군을 다스려 공을 세울 수 없었으니 반드시 공으로 어짊을 보면 수왕은 버려지고 뽑히지 않을 것이다. 아마 반드시 세상에 수왕 같은 무리가 많은데 논하는 이가 공이 없다 하여 그 어짊을 살피지 않을 것이다. 연나라에 골짜기가 있어 기운이 추워 오곡이 나지 않았다. 추연이 율을 불어 기운을 이르게 하니 이미 추운 것이 다시 따뜻해져 연나라가 기장을 심으니 기장이 나서 넉넉히 익어 지금까지 이름을 「기장 골짜기」라 한다. 무릇 음양을 화하게 함은 마땅히 도덕과 지극한 정성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추연이 율을 불어 추운 것이 다시 따뜻해져 기장이 그 골짜기에서 나서 자랐다. 이를 미루어 여러 공을 이룬 무리를 견주면 추연이 율을 분 법 같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 술을 얻으면 못난 이도 능하지 않음이 없고 그 수를 잃으면 어질고 성스러운 이도 다스리지 못함이 있다. 이 공으로 어짊을 증험할 수 없음이 둘이다.

人之舉事,或意至而功不成,事不立而勢貫山。荊軻、醫夏無且是矣。荊軻入秦之計,本欲劫秦王生致於燕,邂逅不偶,為秦所擒。當荊軻之逐秦王,秦王環柱而走,醫夏無且以藥囊提荊軻。既而天下名軻為烈士,秦王賜無且金二百鎰。夫為秦所擒,生致之功不立,藥囊提刺客,〔無〕益於救主,然猶稱賞者,意至勢盛也。天下之士不以荊軻功不成,不稱其義,秦王不以無且無見效,不賞其志。志善不效成功,義至不謀就事。義有餘,效不足,志巨大,而功細小,智者賞之,愚者罰之。必謀功不察志,論陽效不存陰計,是則豫讓拔劍斬襄子之衣,不足識也;伍子胥鞭笞平王屍,不足載也;張良椎始皇誤中副車,不足記也。三者道地不便,計畫不得,有其勢而無其功,懷其計而不得為其事,是功不可以效賢,三也。

사람이 일을 듦에 혹 뜻이 이르러도 공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서지 않아도 세가 산을 꿴다. 형가·의원 하무저가 그것이다. 형가가 진나라에 든 꾀는 본디 진왕을 겁박하여 산 채로 연나라에 이르게 하려 함이었는데 우연히 짝하지 못하여 진나라에 사로잡혔다. 형가가 진왕을 쫓을 때 진왕이 기둥을 돌며 달아나니 의원 하무저가 약주머니로 형가를 쳤다. 이윽고 천하가 가를 열사라 이름하고 진왕이 무저에게 금 이백 일을 내렸다. 무릇 진나라에 사로잡혀 산 채로 이르게 하는 공이 서지 않았고 약주머니로 자객을 침이 임금을 구함에 이익이 없었으나 오히려 일컬어 상 줌은 뜻이 이르고 세가 성해서다. 천하의 선비는 형가가 공을 이루지 못하였어도 그 의를 일컬었고, 진왕은 무저가 효험을 못 보였어도 그 뜻에 상 주었다. 뜻이 착하면 이루어진 공을 증험하지 않고 의가 이르면 일을 이룸을 꾀하지 않는다. 의가 남음이 있고 효험이 넉넉하지 않으며 뜻이 크고 공이 작음을 슬기로운 이는 상 주고 어리석은 이는 벌한다. 반드시 공을 꾀하고 뜻을 살피지 않으며 양의 효험을 논하고 음의 꾀를 두지 않으면 이는 예양이 칼을 빼어 양자의 옷을 벰이 알기에 넉넉하지 않고 오자서가 평왕의 주검을 매질함이 싣기에 넉넉하지 않고 장량이 시황을 철퇴로 치다 잘못 딸린 수레를 맞힘이 기록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셋은 길과 땅이 편하지 않고 꾀함이 얻지 못하여 그 세가 있으나 그 공이 없고 그 꾀를 품었으나 그 일을 할 수 없었으니 이 공으로 어짊을 증험할 수 없음이 셋이다.

以孝於父、弟於為兄賢乎?則夫孝弟之人,有父兄者也,父兄不慈,孝弟乃章。舜有瞽瞍,參有曾皙,孝立名成,眾人稱之。如無父兄,父兄慈良,無章顯之效,孝弟之名,無所見矣。忠於君者,亦與此同。龍逢、比干忠著夏、殷,桀、紂惡也。稷、契、皋陶忠暗唐、虞,堯、舜賢也。故螢火之明,掩於日月之光;忠臣之聲,蔽於賢君之名。死君之難,出命捐身,與此同。臣遭其時死其難,故立其義而獲其名。大賢之涉世也,翔而有集,色斯而舉;亂君之患,不累其身;危國之禍,不及其家,安得逢其禍而死其患乎?齊詹問於晏子曰:「忠臣之事其君也,若何?」對曰:「有難不死,出亡不送。」詹曰:「列地而予之,疏爵而貴之,君有難不死,出亡不送,可謂忠乎?」對曰:「言而見用,臣奚死焉?諫而見從,終身不亡,臣奚送焉?若言不見用,有難而死,是妄死也;諫而不見從,出亡而送,是詐偽也。故忠臣者能盡善於君,不能與陷於難。」案晏子之對,以求賢於世,死君之難、立忠節者,不應科矣。是故大賢寡可名之節,小賢多可稱之行,可得箠者小,而可得量者少也。惡至大,箠弗能;數至多,升斛弗能。有小少易名之行,又發於衰亂易見之世,故節行顯而名聲聞也。浮於海者迷於東西,大也。行於溝,咸識舟楫之跡,小也。小而易見,衰亂亦易察。故世不危亂,奇行不見;主不悖惑,忠節不立。鴻卓之義,發於顛沛之朝;清高之行,顯於衰亂之世。

아비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효도하고 공손한 사람은 아비와 형이 있는 이니 아비와 형이 자애롭지 않아야 효도와 공손이 곧 드러난다. 순에게 고수가 있고 증삼에게 증석이 있어 효도가 서고 이름이 이루어져 뭇사람이 일컫는다. 아비와 형이 없거나 아비와 형이 자애롭고 어질면 드러날 효험이 없어 효도와 공손의 이름이 보일 바가 없다. 임금에게 충성함도 또한 이와 같다. 용봉·비간의 충성이 하·은에 드러남은 걸·주가 악해서다. 직·설·고요의 충성이 당·우에 어두움은 요·순이 어질어서다. 그러므로 반딧불의 밝음은 해와 달의 빛에 가리고 충신의 소리는 어진 임금의 이름에 덮인다. 임금의 어려움에 죽어 명을 내어 몸을 버림도 이와 같다. 신하가 그 때를 만나 그 어려움에 죽으므로 그 의를 세우고 그 이름을 얻는다. 큰 어진 이가 세상을 건넘에 날다가 모이고 빛을 보고 드니 어지러운 임금의 환난이 그 몸을 누르지 않고 위태한 나라의 화가 그 집에 미치지 않는데 어찌 그 화를 만나 그 환난에 죽겠는가. 제 첨이 안자에게 물었다. 「충신이 그 임금을 섬김이 어떠한가?」 대답하였다. 「어려움이 있어도 죽지 않고 나가 망함에 보내지 않는다.」 첨이 말하였다. 「땅을 벌여 주고 작위를 트여 귀하게 하는데 임금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죽지 않고 나가 망함에 보내지 않으면 충성이라 할 수 있는가?」 대답하였다. 「말하여 쓰이면 신하가 어찌 죽겠는가. 간하여 따르면 종신토록 망하지 않으니 신하가 어찌 보내겠는가. 말이 쓰이지 않는데 어려움이 있어 죽으면 이는 망령된 죽음이요 간하여 따르지 않는데 나가 망함에 보내면 이는 거짓이다. 그러므로 충신은 임금에게 착함을 다할 수 있으나 더불어 어려움에 빠질 수 없다.」 살피건대 안자의 대답으로 세상에 어진 이를 구하면 임금의 어려움에 죽고 충절을 세우는 이는 과목에 응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큰 어진 이는 이름할 만한 절개가 적고 작은 어진 이는 일컬을 만한 행실이 많으니 채찍질할 수 있는 것은 작고 잴 수 있는 것은 적다. 악이 지극히 크면 채찍이 할 수 없고 수가 지극히 많으면 되와 섬이 할 수 없다. 작고 적어 이름하기 쉬운 행실이 있고 또 쇠하고 어지러워 보기 쉬운 세상에 발하므로 절개와 행실이 드러나고 명성이 들린다. 바다에 뜬 이는 동서에 미혹하니 커서다. 도랑에 다니면 다 배의 자취를 아니 작아서다. 작으면 보기 쉽고 쇠하고 어지러워도 살피기 쉽다. 그러므로 세상이 위태하고 어지럽지 않으면 기이한 행실이 보이지 않고 임금이 어그러지고 홀리지 않으면 충절이 서지 않는다. 크고 뛰어난 의는 엎어지는 조정에 발하고 맑고 높은 행실은 쇠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드러난다.

以全身免害,不被刑戳,若南容懼白圭者為賢乎?則夫免於害者幸,而命祿吉也,非才智所能禁,推行所能卻也。神蛇能斷而復屬,不能使人弗斷。聖賢能困而復通,不能使人弗害。南容能自免於刑戳,公冶以非罪在縲絏,伯玉可懷於無道之國,文王拘羑里,孔子厄陳、蔡,非行所致之難,掩己而至,則有不得自免之患,累己而滯矣。夫不能自免於患者,猶不能延命於世也。命窮,賢不能自續;時厄,聖不能自免。

몸을 온전히 하고 해를 면하여 형벌과 죽임을 입지 않음이 남용이 백규를 두려워함 같은 것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해를 면하는 이는 다행이요 명과 녹이 길함이지 재주와 슬기가 금할 수 있고 행실을 미루어 물리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신령한 뱀은 끊겨도 다시 이을 수 있으나 사람이 끊지 않게 할 수 없다. 성현은 곤하여도 다시 통할 수 있으나 사람이 해치지 않게 할 수 없다. 남용은 스스로 형벌과 죽임을 면할 수 있었으나 공야는 죄 아닌 것으로 감옥에 있었고 백옥은 도 없는 나라에서 품을 수 있었으나 문왕은 유리에 갇히고 공자는 진·채에서 액을 당하였으니 행실이 이르게 한 어려움이 아니라 저를 덮어 이르면 스스로 면할 수 없는 환난이 있어 저를 얽어 막힌다. 무릇 스스로 환난을 면할 수 없음은 세상에 명을 늘릴 수 없음과 같다. 명이 궁하면 어진 이도 스스로 이을 수 없고 때가 액이면 성인도 스스로 면할 수 없다.

以委國去位,棄富貴,就貧賤為賢乎?則夫委國者,有所迫也。若伯夷之徒,昆弟相讓以國,恥有分爭之名;及大王甫重戰其民,亶皆委國去位者,道不行而志不得也。如道行志得,亦不去位。故委國去位,皆有以也,謂之為賢,無以者,可謂不肖乎?且有國位者,故得委而去之,無國位者何委?夫割財用及讓下受分,有此同實。無財何割?口飢何讓?倉廩實,民知禮節,衣食足知榮辱。讓生於有餘,爭生於不足。人或割財助用,袁將軍再與兄子分家財,以為恩義。崑山之下,以玉為石;彭蠡之濱,以魚食犬豕。使推讓之人,財若崑山之玉、彭蠡之魚,家財再分,不足為也。韓信寄食於南昌亭長,何財之割?顏淵簞食瓢飲,何財之讓?管仲分財取多,無廉讓之節,貧乏不足,志義廢也。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나 부귀를 버리고 빈천에 나아감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나라를 버리는 이는 몰린 바가 있어서다. 백이의 무리 같은 이는 형제가 서로 나라를 사양하여 나누어 다투는 이름 있음을 부끄러워하였고 태왕 단보가 그 백성과 싸움을 무겁게 여김에 미쳐 단보가 다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난 것은 도가 행해지지 않고 뜻이 얻어지지 않아서다. 도가 행해지고 뜻이 얻어졌다면 또한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남에 다 까닭이 있으니 어질다 하면 까닭 없는 이는 못났다 할 수 있는가. 또 나라와 자리가 있는 이라야 버리고 떠날 수 있으니 나라와 자리가 없는 이는 무엇을 버리는가. 무릇 재물과 쓰임을 나누어 줌과 아랫사람에게 사양하여 몫을 받음은 이 같은 실상이 있다. 재물이 없으면 무엇을 나누며 입이 주리면 무엇을 사양하겠는가. 창고가 차면 백성이 예절을 알고 옷과 먹을 것이 넉넉하면 영화와 욕됨을 안다. 사양은 남음이 있음에서 나고 다툼은 모자람에서 난다. 사람이 혹 재물을 나누어 쓰임을 도우니 원 장군이 두 번 형의 아들과 집 재물을 나누어 은혜와 의로 삼았다. 곤산 아래는 옥을 돌로 삼고 팽려 가는 물고기로 개와 돼지를 먹인다. 미루어 사양하는 사람에게 재물이 곤산의 옥과 팽려의 물고기 같다면 집 재물을 두 번 나눔이 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한신이 남창 정장에게 밥을 붙였는데 무슨 재물을 나누었겠는가. 안연이 한 대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이었는데 무슨 재물을 사양하였겠는가. 관중이 재물을 나눔에 많이 취하여 청렴하고 사양하는 절개가 없음은 가난하고 모자라 뜻과 의가 폐하여서다.

以避世離俗,清身潔行為賢乎?是則委國去位之類也。富貴人情所貪,高官大位人之所欲去之而隱,生不遭遇,志氣不得也。長沮、桀溺避世隱居,伯夷、於陵去貴取賤,非其志也。

세상을 피하고 풍속을 떠나 몸을 맑게 하고 행실을 깨끗이 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이는 나라를 버리고 자리를 떠나는 무리다. 부귀는 사람의 정이 탐하는 바요 높은 벼슬과 큰 자리는 사람이 바라는 바인데 떠나 숨음은 살아 만남을 만나지 못하여 뜻과 기운이 얻어지지 않아서다. 장저·걸닉이 세상을 피하여 숨어 살고 백이·오릉이 귀함을 버리고 천함을 취함은 그 뜻이 아니다.

〔以〕恬無欲,志不在於仕,苟欲全身養性為賢乎?是則老聃之徒也。道人與賢〔者〕殊科者,憂世濟民於難。是以孔子棲棲,墨子遑遑。不進與孔、墨合務,而還與黃、老同操,非賢也。

담담하여 바람이 없고 뜻이 벼슬에 있지 않아 구차히 몸을 온전히 하고 성품을 기르려 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이는 노담의 무리다. 도인이 어진 이와 과목이 다름은 세상을 근심하고 백성을 어려움에서 건짐이다. 이 때문에 공자가 허둥지둥하고 묵자가 황망하였다. 나아가 공·묵과 일을 합하지 않고 도리어 황·노와 지조를 같이함은 어짊이 아니다.

以舉義千里,師將朋友無廢禮為賢乎?則夫家富財饒,筋力勁強者能堪之。匱乏無以舉禮,贏弱不能奔遠,不能任也。是故百金之家,境外無絕交;千乘之國,同盟無廢贈,財多故也。使穀食如水火,雖貪吝之人,越境而佈施矣。故財少則正禮不能舉一,有餘則妄施能於千,家貧無斗筲之儲者,難責以交施矣。舉簷千里之人,材筴越疆之士,手足胼胝,面目驪黑,無傷感不任之疾,筋力皮革必有與人異者矣。推此以況為君要證之吏,身被疾痛而口無一辭者,亦肌肉骨節堅強之故也。堅強則能隱事而立義,軟弱則誣時而毀節。豫讓自賊,妻不能識;貫高被箠,身無完肉。實體有不與人同者,則其節行有不與人鈞者矣。

천 리에 의를 들어 스승과 장수와 벗에게 예를 폐함이 없음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집이 부유하고 재물이 넉넉하며 근력이 굳세고 강한 이가 감당할 수 있다. 모자라면 예를 들 길이 없고 여위고 약하면 멀리 달릴 수 없어 감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백금의 집은 지경 밖에 끊긴 사귐이 없고 천승의 나라는 동맹에 폐한 선물이 없으니 재물이 많은 까닭이다. 곡식이 물과 불 같게 하면 비록 탐하고 인색한 사람도 지경을 넘어 베풀 것이다. 그러므로 재물이 적으면 바른 예도 하나를 들 수 없고 남음이 있으면 망령된 베풂도 천에 능하니 집이 가난하여 한 말의 갈무리가 없는 이는 사귐과 베풂으로 책하기 어렵다. 천 리에 짐을 지는 사람과 재물을 지고 지경을 넘는 선비는 손발이 못이 박히고 얼굴이 검어도 상하고 느끼고 감당하지 못하는 병이 없으니 근력과 살갗이 반드시 남과 다른 것이 있다. 이를 미루어 임금을 위해 증인이 되는 아전으로 몸이 아픔을 입어도 입에 한마디 없는 이를 견주면 또한 살과 뼈마디가 굳세고 강한 까닭이다. 굳세고 강하면 일을 숨기고 의를 세울 수 있고 부드럽고 약하면 때를 속이고 절개를 헐 수 있다. 예양이 스스로 해쳐 아내가 알아보지 못하였고 관고가 매를 맞아 몸에 온전한 살이 없었다. 실로 몸에 남과 같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 절개와 행실에 남과 고르지 않은 것이 있다.

以經明帶徒聚眾為賢乎?則夫經明,儒者是也。儒者,學之所為也。儒者學,學,儒矣。傳先師之業,習口說以教,無胸中之造,思定然否之論。郵人之過書、門者之傳教也,封完書不遺,教審令不誤者,則為善矣。〔儒〕者傳學,不妄一言,先師古語,到今具存,雖帶徒百人以上,位博士、文學,郵人、門者之類也。

경에 밝아 제자를 거느리고 무리를 모음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경에 밝음은 유자가 그것이다. 유자는 배움이 하는 바다. 유자가 배우니 배우면 유자다. 선사의 업을 전하고 입으로 설명함을 익혀 가르치니 가슴속의 지음과 생각하여 그렇고 아님을 정하는 논이 없다. 우편 사람이 글을 전하고 문지기가 가르침을 전함에 봉한 것을 온전히 하여 글을 빠뜨리지 않고 가르침을 살펴 명령을 그르치지 않으면 착함이 된다. 유자가 배움을 전함에 한 마디도 망령되이 하지 않아 선사의 옛말이 지금에 이르도록 갖추어 있으니 비록 제자 백 사람 이상을 거느리고 자리가 박사·문학이라도 우편 사람과 문지기의 무리다.

以通覽古今,秘隱傳記無所不記為賢乎?是則〔儒〕者之次也。才高好事,勤學不捨,若專成之苗裔,有世祖遺文,得成其篇業,觀覽諷誦。若典官文書,若太史公及劉子政之徒,有主領書記之職,則有博覽通達之名矣。

고금을 두루 보고 비밀히 숨은 전기를 기록하지 않음이 없음으로 어질다 하는가. 이는 유자의 버금이다. 재주가 높고 일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배워 버리지 않으니 오로지 이룬 이의 후예 같아 세조의 남긴 글이 있어 그 편의 업을 이루어 보고 외울 수 있다. 관청 문서를 맡음 같은 것과 태사공과 유자정의 무리 같은 이는 서기를 맡아 거느리는 직책이 있으니 널리 보고 통달한 이름이 있다.

以權詐卓譎,能將兵禦眾為賢乎?是韓信之徒也。戰國獲其功,稱為名將;世平能無所施,還入禍門矣。高鳥死,良弓藏;狡兔得,良犬烹。權詐之臣,高鳥之弓,狡兔之犬也。安平身無宜,則弓藏而犬烹。安平之主,非棄臣而賤士,世所用助上者,非其宜也。向令韓信用權變之才,為若叔孫通之事,安得謀反誅死之禍哉?有功強之權,無守平之智,曉將兵之計,不見已定之義,居平安之時,為反逆之謀,此其所以功滅國絕,不得名為賢也。

권모와 속임이 뛰어나고 괴이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무리를 막을 수 있음으로 어질다 하는가. 이는 한신의 무리다. 전국에 그 공을 얻어 이름난 장수라 일컬어졌으나 세상이 평안하여 베풀 데가 없으면 도리어 화의 문에 든다. 높은 새가 죽으면 좋은 활이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얻으면 좋은 개가 삶긴다. 권모와 속임의 신하는 높은 새의 활이요 교활한 토끼의 개다. 편안하고 평안하여 몸에 마땅함이 없으면 활이 감추어지고 개가 삶긴다. 편안하고 평안한 임금이 신하를 버리고 선비를 천하게 여김이 아니라 세상이 쓰는 바로 위를 돕는 이가 그 마땅함이 아니어서다. 한신이 권변의 재주를 써서 숙손통의 일 같은 것을 하였다면 어찌 모반하여 베어 죽는 화를 얻었겠는가. 공을 강하게 하는 권도가 있고 평안을 지키는 슬기가 없으며 군사 거느리는 꾀를 깨닫고 이미 정해진 의를 보지 못하여 평안한 때에 있으면서 반역의 꾀를 하니 이것이 그 공이 없어지고 나라가 끊겨 어질다 이름할 수 없는 까닭이다.

〔以〕辯於口,言甘辭巧為賢乎?則夫子貢之徒是也。子貢之辯勝顏淵,孔子序置於下。實才不能高,口辯機利,人決能稱之。夫自文帝尚多虎圈嗇夫,少上林尉,張釋之稱周勃、張相如,文帝乃悟。夫辯於口,虎圈嗇夫之徒也,難以觀賢。

입에 변론이 있어 말이 달고 말이 교묘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자공의 무리가 그것이다. 자공의 변론이 안연을 이겼으나 공자가 차례 지어 아래에 두었다. 실다운 재주가 높을 수 없고 입의 변론이 기민하고 날카로우면 사람이 결단하여 일컬을 수 있다. 무릇 문제로부터 오히려 범 우리 지키는 아전을 낫게 여기고 상림 위를 못하게 여겼는데 장석지가 주발·장상여를 일컬으니 문제가 곧 깨달았다. 무릇 입에 변론 있음은 호권 색부의 무리니 어짊을 보기 어렵다.

以敏於筆,文墨〔雨〕集為賢乎?夫筆之與口,一實也。口出以為言,筆書以為文。口辯,才未必高;然則筆敏,知未必多也。且筆用何為敏?以敏於官曹事。事之難者莫過於獄,獄疑則有請讞。蓋世優者,莫過張湯,張湯文深,在漢之朝,不稱為賢。太史公《序累》以湯為酷,酷非賢者之行。魯林中哭婦,虎食其夫,又食其子,不能去者,山政不苛,吏不暴也。夫酷,苛暴之黨也,難以為賢。

붓에 민첩하여 문묵이 비처럼 모임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붓과 입은 한 실상이다. 입에서 나와 말이 되고 붓으로 써서 글이 된다. 입이 변론하여도 재주가 반드시 높지 않으니 그러면 붓이 민첩하여도 앎이 반드시 많지 않다. 또 붓을 씀에 무엇으로 민첩한가. 관청의 일에 민첩함으로다. 일의 어려운 것은 옥사보다 지나는 것이 없으니 옥사가 의심스러우면 다시 살피기를 청함이 있다. 아마 세상의 넉넉한 이로 장탕을 넘는 이가 없는데 장탕은 글이 깊어 한나라 조정에 있어 어질다 일컬어지지 않았다. 태사공이 「서루」에 장탕을 혹독하다 하였으니 혹독함은 어진 이의 행실이 아니다. 노나라 숲속에 곡하는 부인이 범이 그 남편을 먹고 또 그 아들을 먹었는데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산의 정사가 가혹하지 않고 아전이 사납지 않아서였다. 무릇 혹독함은 가혹하고 사나움의 무리니 어질다 하기 어렵다.

以敏於賦頌,為弘麗之文為賢乎?則夫司馬長卿、揚子雲是也。文麗而務巨,言眇而趨深,然而不能處定是非,辯然否之實。雖文如錦鏽,深如河、漢,民不覺知是非之分,無益於彌為崇實之化。

부와 송에 민첩하여 크고 고운 글을 함으로 어질다 하는가. 무릇 사마장경·양자운이 그것이다. 글이 곱고 큼을 힘쓰며 말이 미묘하여 깊음으로 달리나 옳고 그름을 정하고 그렇고 아님의 실상을 가릴 수 없다. 비록 글이 비단 같고 깊음이 하수·한수 같아도 백성이 옳고 그름의 나뉨을 깨달아 알지 못하니 더욱 실상을 높이는 교화에 이익이 없다.

以清節自守,不降志辱身為賢乎?是則避世離俗,長沮、桀溺之類也。雖不離俗,節與離世者鈞,清其身而不輔其主,守其節而不勞其民。大賢之在世也,時行則行,時止則止,銓可否之宜,以製清濁之行。子貢讓而止善,子路受而觀德。夫讓,廉也;受則貪也。貪有益,廉有損,推行之節,不得常清眇也。伯夷無可,孔子謂之非,操違於聖,難以為賢矣。

맑은 절개로 스스로 지켜 뜻을 낮추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음으로 어질다 하는가. 이는 세상을 피하고 풍속을 떠나는 장저·걸닉의 무리다. 비록 풍속을 떠나지 않아도 절개가 세상을 떠난 이와 고르니 그 몸을 맑게 하고 그 임금을 돕지 않으며 그 절개를 지키고 그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다. 큰 어진 이가 세상에 있어 때가 행할 만하면 행하고 때가 그칠 만하면 그쳐 옳고 옳지 않음의 마땅함을 저울질하여 맑고 흐린 행실을 만든다. 자공이 사양하여 착함을 그치게 하였고 자로가 받아 덕을 보였다. 무릇 사양은 청렴이요 받음은 탐함이다. 탐함에 이익이 있고 청렴에 손해가 있으니 행실을 미루는 절개는 늘 맑고 미묘할 수 없다. 백이는 옳다 함이 없어 공자가 그르다 하였으니 지조가 성인에 어긋나면 어질다 하기 어렵다.

或問於孔子曰:「顏淵何人也?」曰:「仁人也,丘不如也。」「子貢何人也?」曰:「辯人也,丘弗如也。」「子路何人也?」曰:「勇人也,丘弗如也。」客曰:「三子者皆賢於夫子,而為夫子服役,何也?」孔子曰:「丘能仁且忍,辯且詘,勇且怯。以三子之能,易丘之道,弗為也。」孔子知所設施之矣。有高才潔行,無知明以設施之,則與愚而無操者同一實也。夫如是,皆有非也。無一非者,可以為賢乎?是則鄉原之人也。孟子曰:「非之無舉也,刺之,無刺也。同於流俗,合於污世,居之似忠信,行之似廉潔,眾皆說之,自以為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故孔子曰:『鄉原,德之賊也。』似之而非者,孔子惡之。夫如是,何以知實賢?知賢竟何用?世人之檢,苟見才高能茂,有成功見效,則謂之賢。若此甚易,知賢何難!《書》曰:「知人則哲,惟帝難之。」據才高卓異者,則謂之賢耳,何難之有?然而難之,獨有難者之故也。

어떤 이가 공자에게 물었다. 「안연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하였다. 「어진 사람이니 구가 못하다.」 「자공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하였다. 「변론하는 사람이니 구가 못하다.」 「자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하였다. 「용맹한 사람이니 구가 못하다.」 손님이 말하였다. 「세 사람이 다 부자보다 어진데 부자를 위해 일하니 어째서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구는 어질고 또 참을 수 있고 변론하고 또 굽힐 수 있고 용맹하고 또 겁낼 수 있다. 세 사람의 능함으로 구의 도를 바꾸는 것은 하지 않는다.」 공자가 베풀어 쓸 바를 안 것이다. 높은 재주와 깨끗한 행실이 있어도 앎과 밝음으로 베풀어 쓰지 못하면 어리석고 지조 없는 이와 같은 한 실상이다. 무릇 이러하면 다 그름이 있다. 하나도 그름이 없는 이를 어질다 할 수 있는가. 이는 곧 향원의 사람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르다 하려 해도 들 것이 없고 찌르려 해도 찌를 것이 없다. 유속과 같이하고 더러운 세상에 맞아 처함이 충신 같고 행함이 청렴결백 같아 뭇사람이 다 기뻐하고 스스로 옳다 여기나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 수 없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였다. 「향원은 덕의 도적이다.」 비슷하면서 아닌 이를 공자가 미워하였다. 무릇 이러하면 무엇으로 실다운 어진 이를 아는가. 어진 이를 앎이 끝내 무슨 쓰임인가. 세상 사람의 살핌은 구차히 재주가 높고 능함이 무성하며 이루어진 공과 보이는 효험이 있음을 보면 곧 어질다 한다. 이 같으면 매우 쉬우니 어진 이를 앎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서」에 이르기를 「사람을 알면 밝음이니 임금도 어렵게 여긴다」 하였다. 재주가 높고 뛰어나게 다른 이에 근거하여 곧 어질다 하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어렵게 여김은 홀로 어려운 것의 까닭이 있어서다.

夫虞舜不易知人,而世人自謂能知賢,誤也。然則賢者竟不可知乎?曰:易知也。而稱難者,不見所以知之則難,聖人不易知也;及見所以知之,中才而察之。譬猶工匠之作器也,曉之則無難,不曉則無易。賢者易知於作器。世無別,故真賢集於俗士之間。俗士以辯惠之能,據官爵之尊,望顯盛之寵,遂專為賢之名。賢者還在閭巷之間,貧賤終老,被無驗之謗。若此,何時可知乎?然而必欲知之,觀善心也。夫賢者,才能未必高也而心明,智力未必多而舉是。何以觀心?必以言。有善心,則有善言。以言而察行,有善言則有善行矣。言行無非,治家親戚有倫,治國則尊卑有序。無善心者,白黑不分,善惡同倫,政治錯亂,法度失平。故心善,無不善也;心不善,無能善。心善則能辯然否。然否之義定,心善之效明,雖貧賤困窮,功不成而效不立,猶為賢矣。故治不謀功,要所用者是;行不責效,期所為者正。正是審明,則言不須繁,事不須多。故曰:「言不務多,務審所謂。行不務遠,務審所由。」言得道理之心,口雖訥不辯,辯在胸臆之內矣。故人欲心辯,不欲口辯。心辯則言醜而不違,口辨則辭好而無成。

무릇 우순이 사람 알기를 쉽게 여기지 않았는데 세상 사람이 스스로 어진 이를 알 수 있다 함은 그르다. 그러면 어진 이는 끝내 알 수 없는가. 답한다. 알기 쉽다. 그런데 어렵다 일컬음은 아는 까닭을 보지 못하면 어려우니 성인도 알기 쉽지 않고 아는 까닭을 봄에 미쳐서는 중간 재주도 살핀다. 비유하면 공장이 그릇을 만듦에 깨달으면 어려움이 없고 깨닫지 못하면 쉬움이 없음과 같다. 어진 이는 그릇 만듦보다 알기 쉽다. 세상이 가림이 없으므로 참 어진 이가 속된 선비 사이에 모인다. 속된 선비가 변론과 슬기의 능함으로 벼슬과 작위의 높음에 근거하고 드러나고 성한 총애를 바라 마침내 어짊의 이름을 오로지한다. 어진 이는 도리어 골목 사이에 있어 빈천하게 늙어 마치며 증험 없는 헐뜯음을 입는다. 이 같으면 어느 때에 알 수 있는가. 그러나 반드시 알려 하면 착한 마음을 본다. 무릇 어진 이는 재주와 능함이 반드시 높지 않아도 마음이 밝고 슬기와 힘이 반드시 많지 않아도 옳음을 든다. 무엇으로 마음을 보는가. 반드시 말로 한다. 착한 마음이 있으면 착한 말이 있다. 말로 행실을 살피니 착한 말이 있으면 착한 행실이 있다. 말과 행실에 그름이 없어 집을 다스림에 친척이 차례가 있고 나라를 다스림에 높고 낮음이 차례가 있다. 착한 마음이 없는 이는 흰 것과 검은 것이 나뉘지 않고 착하고 악함이 같은 무리라 정치가 어긋나고 어지럽고 법도가 고름을 잃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착하면 착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착할 수 없다. 마음이 착하면 그렇고 아님을 가릴 수 있다. 그렇고 아님의 뜻이 정해지면 마음이 착함의 효험이 밝으니 비록 빈천하고 곤궁하여 공이 이루어지지 않고 효험이 서지 않아도 오히려 어질다. 그러므로 다스림에 공을 꾀하지 않고 쓰는 바가 옳기를 요구하고 행실에 효험을 책하지 않고 하는 바가 바르기를 기약한다. 바르고 옳음이 살펴 밝으면 말이 번거로울 것이 없고 일이 많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말은 많음을 힘쓰지 않고 이르는 바를 살피기 힘쓴다. 행실은 멂을 힘쓰지 않고 말미암는 바를 살피기 힘쓴다」 하였다. 말이 도리의 마음을 얻으면 입이 비록 어눌하여 변론하지 못하여도 변론이 가슴속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이 변론하기 바라고 입이 변론하기 바라지 않는다. 마음이 변론하면 말이 추하여도 어긋나지 않고 입이 변론하면 말이 좋아도 이룸이 없다.

孔子稱少正卯之惡曰:「言非而博,順非而澤。」內非而外以才能飭之,眾不能見則以為賢。夫內非外飭是,世以為賢,則夫內是外無以自表者,眾亦以為不肖矣。是非亂而不治,聖人獨知之。人言行多若少正卯之類,賢者獨識之。世有是非錯繆之言,亦有審誤紛亂之事,決錯繆之言,定紛亂之事,唯賢聖之人為能任之。聖心明而不暗,賢心理而不亂。用明察非,非無不見;用理銓疑,疑無不定。與世殊指,雖言正是,終不曉見。何則?沉溺俗言之日久,不能自還以從實也。是故正是之言為眾所非,離俗之禮為世所譏。管子曰;「君子言堂滿堂,言室滿室。」怪此之言,何以得滿?如正是之言出,堂之人皆有正是之知,然後乃滿。如非正是,人之乖刺異,安得為滿?夫歌曲妙者,和者則寡;言得實者,然者則鮮。和歌與聽言,同一實也。曲妙人不能盡和,言是人不能皆信。魯文公逆祀,去者三人;定公順祀,畔者五人。貫於俗者,則謂禮為非。曉禮者寡,則知是者希。君子言之,堂室安能滿?夫人不謂之滿,世則不得見口談之實語,筆墨之餘跡,陳在簡筴之上,乃可得知。故孔子不王,作《春秋》以明意。案《春秋》虛文業,以知孔子能王之德。孔子,聖人也。有若孔子之業者,雖非孔子之才,斯亦賢者之實驗也。夫賢與同軌而殊名,賢可得定,則聖可得論也。問:「周道不弊,孔子不作《春秋》。《春秋》之作,起周道弊也。如周道不弊,孔子不作者,未必無孔子之才,無所起也。夫如是,孔子之作《春秋》,未可以觀聖;有若孔子之業者,未可知賢也。曰:周道弊,孔子起而作之,文義褒貶是非,得道理之實,無非僻之誤,以故見孔子之賢,實也。夫無言,則察之以文;無文,則察之以言。設孔子不作,猶有遺言,言必有起,猶文之必有為也。觀文之是非,不顧作之所起,世間為文者眾矣,是非不分,然否不定,桓君山論之,可謂得實矣。論文以察實,則君山漢之賢人也。陳平未仕,割肉閭里,分均若一,能為丞相之驗也。夫割肉與割文,同一實也。如君山得執漢平,用心與為論不殊指矣。孔子不王,素王之業在於《春秋》。然則桓君山〔不相〕,素丞相之跡,存於《新論》者也。

공자가 소정묘의 악을 일컬어 말하였다. 「말이 그르면서 넓고 그름을 따르면서 윤택하다.」 안이 그른데 밖을 재주와 능함으로 꾸며 뭇사람이 볼 수 없으면 어질다 여긴다. 무릇 안이 그르고 밖의 꾸밈이 옳으면 세상이 어질다 여기니 무릇 안이 옳고 밖에 스스로 드러낼 것이 없는 이는 뭇사람이 또한 못났다 여긴다. 옳고 그름이 어지러워 다스려지지 않음을 성인만 홀로 안다. 사람의 말과 행실이 흔히 소정묘의 무리 같음을 어진 이만 홀로 안다. 세상에 옳고 그름이 어긋난 말이 있고 또한 살핌이 그르치고 어지러운 일이 있으니 어긋난 말을 결단하고 어지러운 일을 정함은 오직 어질고 성스러운 사람이 맡을 수 있다. 성스러운 마음은 밝아 어둡지 않고 어진 마음은 다스려져 어지럽지 않다. 밝음으로 그름을 살피면 그름이 보이지 않음이 없고 다스림으로 의심을 저울질하면 의심이 정해지지 않음이 없다. 세상과 가리킴이 다르면 비록 말이 바르고 옳아도 끝내 깨달아 보지 못한다. 어째서인가. 속된 말에 빠진 날이 오래라 스스로 돌이켜 실상을 따를 수 없어서다. 이 때문에 바르고 옳은 말이 뭇사람에게 그르다 하여지고 풍속을 떠난 예가 세상에 나무라진다. 관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말하면 당에 당이 가득하고 방에 방이 가득하다.」 이 말이 괴이하니 무엇으로 가득함을 얻는가. 바르고 옳은 말이 나오면 당의 사람이 다 바르고 옳은 앎이 있은 뒤에야 곧 가득하다. 바르고 옳음이 아니면 사람의 어긋남이 다르니 어찌 가득함이 되겠는가. 무릇 노래 가락이 묘하면 화답하는 이가 적고 말이 실상을 얻으면 그렇다 하는 이가 드물다. 노래에 화답함과 말을 들음은 같은 한 실상이다. 가락이 묘하면 사람이 다 화답할 수 없고 말이 옳으면 사람이 다 믿을 수 없다. 노 문공이 거꾸로 제사하니 떠난 이가 세 사람이요 정공이 순히 제사하니 배반한 이가 다섯 사람이었다. 풍속에 익은 이는 예를 그르다 한다. 예를 깨닫는 이가 적으면 옳음을 아는 이가 드물다. 군자가 말하여도 당과 방이 어찌 가득할 수 있겠는가. 무릇 사람이 가득하다 하지 않으면 세상은 입으로 말하는 실다운 말을 볼 수 없고 붓과 먹의 남은 자취가 대와 책 위에 벌여 있어야 곧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가 왕 노릇 하지 못하여 「춘추」를 지어 뜻을 밝혔다. 「춘추」의 헛된 글의 업을 살펴 공자가 왕 노릇 할 수 있는 덕을 안다. 공자는 성인이다. 공자의 업 같은 것이 있는 이는 비록 공자의 재주가 아니라도 이 또한 어진 이의 실다운 증험이다. 무릇 어진 이는 성인과 같은 길에 이름이 다르니 어진 이를 정할 수 있으면 성인을 논할 수 있다. 묻는다. 「주나라 도가 폐하지 않았다면 공자가 「춘추」를 짓지 않았다. 「춘추」의 지음은 주나라 도가 폐함에서 일어났다. 주나라 도가 폐하지 않아 공자가 짓지 않았다면 반드시 공자의 재주가 없음이 아니라 일어날 바가 없어서다. 무릇 이러하면 공자가 「춘추」를 지음으로 성인을 볼 수 없고 공자의 업 같은 것이 있는 이로 어진 이를 알 수 없다.」 답한다. 주나라 도가 폐하니 공자가 일어나 지어 글과 뜻의 기리고 깎음과 옳고 그름이 도리의 실상을 얻어 그르고 치우친 그르침이 없으므로 공자의 어짊을 봄이 실상이다. 무릇 말이 없으면 글로 살피고 글이 없으면 말로 살핀다. 공자가 짓지 않았어도 오히려 남은 말이 있으니 말에 반드시 일어남이 있음은 글에 반드시 함이 있음과 같다. 글의 옳고 그름을 보고 지음의 일어난 바를 돌아보지 않으니 세간에 글 하는 이가 많으나 옳고 그름이 나뉘지 않고 그렇고 아님이 정해지지 않는데 환군산이 논하였으니 실상을 얻었다 할 만하다. 글을 논하여 실상을 살피면 군산은 한나라의 어진 사람이다. 진평이 아직 벼슬하지 않아 마을에서 고기를 나눔에 나눔이 고르기 한결같았으니 승상이 될 수 있는 증험이다. 무릇 고기를 나눔과 글을 나눔은 같은 한 실상이다. 군산이 한나라의 저울을 잡음을 얻었다면 마음 씀이 논을 함과 가리킴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자가 왕 노릇 하지 못하여 소왕의 업이 「춘추」에 있다. 그러면 환군산이 재상 되지 못하여 소승상의 자취가 「신론」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