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說篇
儒者說《五經》,多失其實。前儒不見本末,空生虛說。後儒信前師之言,隨舊述故,滑習辭語。苟名一師之學,趨為師教授,及時蚤仕,汲汲竟進,不暇留精用心,考實根核。故虛說傳而不絕,實事沒而不見,《五經》並失其實。《尚書》、《春秋》事較易,略正題目粗粗之說,以照篇中微妙之文。
유자가 「오경」을 설명함에 흔히 그 실상을 잃는다. 앞 유자가 근본과 끝을 보지 못하여 헛되이 빈 설을 낳았다. 뒷 유자가 앞 스승의 말을 믿어 옛것을 따르고 지난 것을 기술하여 말을 매끄럽게 익혔다. 구차히 한 스승의 배움을 이름하여 스승 되어 가르침에 달리고 때에 미쳐 일찍 벼슬하여 급급히 다투어 나아가 정밀함을 머물게 하고 마음을 써서 뿌리와 실상을 살필 겨를이 없다. 그러므로 헛된 설이 전해져 끊이지 않고 실다운 일이 잠겨 보이지 않아 「오경」이 아울러 그 실상을 잃는다. 「상서」·「춘추」는 일이 비교적 쉬우니 대략 제목의 거친 설을 바로잡아 편 가운데 미묘한 글을 비춘다.
說《尚書》者,或以為本百兩篇,後遭秦燔《詩》、《書》,遺在者二十九篇。夫言秦燔《詩》、《書》,是也;言本百兩篇者,妄也。蓋《尚書》本百篇,孔子以授也。遭秦用李斯之議,燔燒《五經》,濟南伏生抱百篇藏於山中。孝景皇帝時,始存《尚書》。伏生已出山中,景帝遣晁錯往從受《尚書》二十餘篇。伏生老死,《書》殘不竟,晁錯傳於倪寬。至孝宣皇帝之時,河內女子發老屋,得逸《易》、《禮》、《尚書》各一篇,奏之。宣帝下示博士,然後《易》、《禮》、《尚書》各益一篇,而《尚書》二十九篇始定矣。至孝〔武〕帝時,魯共王壞孔子教授堂以為殿,得百篇《尚書》於牆壁中。武帝使使者取視,莫能讀者,遂秘於中,外不得見。至孝成皇帝時,徵為古文《尚書》學。東海張霸案百篇之序,空造百兩之篇,獻之成帝。帝出秘百篇以校之,皆不相應,於是下霸於吏。吏白霸罪當至死,成帝高其才而不誅,亦惜其文而不滅。故百兩之篇,傳在世間者,傳見之人則謂《尚書》本有百兩篇矣。或言秦燔詩書者,燔《詩經》之書也,其經不燔焉。夫《詩經》獨燔其詩。《書》,《五經》之總名也。傳曰:「男子不讀經,則有博戲之心。」子路使子羔為費宰,孔子曰「賊夫人之子。」子路曰:「有民人焉,有社稷焉,何必讀書,然後為學。」《五經》總名為書。傳者不知秦燔書所起,故不審燔書之實。秦始皇三十四年,置酒咸陽宮,博士七十人前為壽。僕射周青臣進頌秦始皇。齊人淳于越進諫,以為始皇不封子弟,卒有田常、六卿之難,無以救也,譏青臣之頌,謂之為諛。秦始皇下其議丞相府,丞相斯以為越言不可用,因此謂諸生之言惑亂黔首,乃令史官盡燒《五經》,有敢藏諸〔詩〕書百家語者刑,唯博士官乃得有之。《五經》皆燔,非獨諸〔詩〕家之書也。傳者信之,見言詩書則獨謂《〔詩〕經》之書矣。
「상서」를 설명하는 이가 혹 본디 백두 편인데 뒤에 진나라가 「시」·「서」를 태움을 만나 남은 것이 스물아홉 편이라 여긴다. 무릇 진나라가 「시」·「서」를 태웠다 말함은 옳으나 본디 백두 편이라 말함은 망령되다. 아마 「상서」는 본디 백 편이니 공자가 준 것이다. 진나라가 이사의 의논을 써서 「오경」을 태움을 만나 제남 복생이 백 편을 안고 산속에 감추었다. 효경황제 때에 비로소 「상서」를 보존하였다. 복생이 이미 산속에서 나오니 경제가 조조를 보내 가서 「상서」 스물 남짓 편을 받게 하였다. 복생이 늙어 죽어 「서」가 잔결되어 마치지 못하였고 조조가 예관에게 전하였다. 효선황제 때에 이르러 하내 여자가 옛집을 헐다가 잃어버린 「역」·「예」·「상서」 각 한 편을 얻어 아뢰었다. 선제가 박사에게 내려 보인 뒤에야 「역」·「예」·「상서」가 각 한 편을 더하여 「상서」 스물아홉 편이 비로소 정해졌다. 효무제 때에 이르러 노 공왕이 공자의 가르치던 당을 헐어 전각을 만들다가 백 편 「상서」를 담과 벽 속에서 얻었다. 무제가 사자를 시켜 취하여 보게 하니 읽을 수 있는 이가 없어 마침내 궁중에 비장하여 밖에서 볼 수 없었다. 효성황제 때에 이르러 불러 고문 「상서」 학을 만들었다. 동해 장패가 백 편의 서문을 살펴 헛되이 백두 편을 만들어 성제에게 바쳤다. 임금이 비장한 백 편을 내어 견주니 다 서로 응하지 않아 이에 패를 아전에게 내렸다. 아전이 패의 죄가 마땅히 죽음에 이른다 아뢰었으나 성제가 그 재주를 높이 여겨 베지 않고 또한 그 글을 아껴 없애지 않았다. 그러므로 백두 편이 세간에 전해져 전해 본 사람은 곧 「상서」가 본디 백두 편이 있었다 여긴다. 혹 진나라가 시서를 태웠다 말함은 「시경」의 책을 태운 것이지 그 경은 태우지 않았다 한다. 무릇 「시경」만 홀로 그 시를 태웠다 한다. 「서」는 「오경」의 총 이름이다. 전에 이르기를 「남자가 경을 읽지 않으면 노름하는 마음이 있다」 하였다. 자로가 자고를 비 읍재로 삼게 하니 공자가 「남의 아들을 해친다」 하였다. 자로가 말하였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니 하필 책을 읽은 뒤에야 배움이 됩니까.」 「오경」의 총 이름이 서다. 전하는 이가 진나라가 책을 태운 일어남을 알지 못하므로 책 태운 실상을 살피지 못한다. 진 시황 삼십사년에 함양궁에 술자리를 베푸니 박사 일흔 사람이 앞에서 축수하였다. 복야 주청신이 나아가 진 시황을 노래하였다. 제나라 사람 순우월이 나아가 간하여 시황이 자제를 봉하지 않으면 갑자기 전상·육경의 난이 있어도 구할 길이 없다 여기고 청신의 노래를 나무라 아첨이라 하였다. 진 시황이 그 의논을 승상부에 내리니 승상 이사가 순우월의 말이 쓸 수 없다 여기고 이로 인하여 제생의 말이 백성을 홀리고 어지럽힌다 하여 곧 사관에게 명하여 「오경」을 다 태우게 하고 감히 시서와 백가의 말을 감추는 이가 있으면 형벌하고 오직 박사관만 가질 수 있게 하였다. 「오경」이 다 태워졌으니 홀로 「시」 집의 책만이 아니다. 전하는 이가 이를 믿어 시서를 말함을 보면 홀로 「시경」의 책이라 한다.
傳者或知《尚書》為秦所燔,而謂二十九,篇其遺脫不燒者也。審若此言,《尚書》二十九篇,火之餘也。七十一篇為炭灰,二十九篇獨遺邪?夫伏生年老,晁錯從之學時,適得二十餘篇。伏生死矣,故二十九篇獨見,七十一篇遺脫。遺脫者七十一篇,反謂二十九篇遺脫矣。
전하는 이가 혹 「상서」가 진나라에게 태워졌음을 알면서 스물아홉 편은 그 빠져 타지 않은 것이라 한다. 살펴 이 말 같다면 「상서」 스물아홉 편은 불의 남은 것이다. 일흔한 편이 숯과 재가 되고 스물아홉 편만 홀로 남았는가. 무릇 복생이 나이 늙어 조조가 따라 배울 때 마침 스물 남짓 편을 얻었다. 복생이 죽었으므로 스물아홉 편만 홀로 보이고 일흔한 편이 빠졌다. 빠진 것이 일흔한 편인데 도리어 스물아홉 편이 빠졌다 한다.
或說《尚書》二十九篇者,法曰鬥〔四〕七宿也。四七二十八篇,其一曰鬥矣,故二十九。夫《尚書》滅絕於秦,其見在者二十九篇,安得法乎?宣帝之時,得佚《尚書》及《易》、《禮》各一篇,《禮》、《易》篇數亦始足,焉得有法?案百篇之序,闕遺者七十一篇,獨為二十九篇立法,如何?或說曰:「孔子更選二十九篇,二十九篇獨有法也。」蓋俗儒之說也,未必傳記之明也。二十九篇殘而不足,有傳之者,因不足之數,立取法之說,失聖人之意,違古今之實。夫經之有篇也,猶有章句〔也〕。有章句,猶有文字也。文字有意以立句,句有數以連章,章有體以成篇,篇則章句之大者也。謂篇有所法,是謂章句復有所法也。《詩經》舊時亦數千篇,孔子刪去複重,正而存三百篇,猶二十九篇也。謂二十九篇有法,是謂三百五篇復有法也。
혹 「상서」 스물아홉 편은 북두와 스물여덟 별자리를 본뜬 것이라 설명한다. 사칠 스물여덟 편에 그 하나는 북두이므로 스물아홉이라 한다. 무릇 「상서」가 진나라에서 없어져 그 남아 있는 것이 스물아홉 편인데 어찌 본뜸을 얻겠는가. 선제 때에 잃어버린 「상서」와 「역」·「예」 각 한 편을 얻어 「예」·「역」의 편수도 비로소 넉넉하였으니 어찌 본뜸이 있겠는가. 백 편의 서문을 살피면 빠진 것이 일흔한 편인데 홀로 스물아홉 편을 위해 본뜸을 세움이 어떠한가. 혹 설명한다. 「공자가 다시 스물아홉 편을 골랐으니 스물아홉 편만 홀로 본뜸이 있다.」 아마 속된 유자의 설이지 반드시 전기의 밝음은 아니다. 스물아홉 편이 잔결되어 넉넉하지 않은데 전하는 이가 있어 넉넉하지 않은 수로 인하여 본뜸을 취한 설을 세우니 성인의 뜻을 잃고 고금의 실상을 어긴다. 무릇 경에 편이 있음은 장구가 있음과 같다. 장구가 있음은 문자가 있음과 같다. 문자에 뜻이 있어 구를 세우고 구에 수가 있어 장을 잇고 장에 몸이 있어 편을 이루니 편은 장구의 큰 것이다. 편에 본뜬 바가 있다 하면 이는 장구에도 다시 본뜬 바가 있다 함이다. 「시경」은 옛날에 또한 수천 편이었는데 공자가 겹친 것을 깎아 없애고 바로잡아 삼백 편을 남겼으니 스물아홉 편과 같다. 스물아홉 편에 본뜸이 있다 하면 이는 삼백다섯 편에도 다시 본뜸이 있다 함이다.
或說《春秋》十二月也。《春秋》十二公,猶《尚書》之百篇。百篇無所法,十二公安得法?說《春秋》者曰:「二百四十二年,人道浹,王道備,善善惡惡,撥亂世,反諸正,莫近於《春秋》。」若此者,人道、王道適具足也。三軍六師萬二千人,足以陵敵伐寇,橫行天下,令行禁止,未必有所法也。孔子作《春秋》,紀魯十二公,猶三軍之有六師也;士眾萬二千,猶年有二百四十二也。六師萬二千人,足以成軍;十二公二百四十二年,足以立義。說事者好神道恢義,不肖以遭禍。是故經傳篇數,皆有所法。考實根本,論其文義,與彼賢者作書詩,無以異也。故聖人所經,賢者作書,義窮理竟,文辭備足,則為篇矣。其立篇也,種類相從,科條相附。殊種異類,論說不同,更別為篇。意異則文殊,事改則篇更。據事意作,安得法像之義乎?
혹 「춘추」가 열두 달이라 설명한다. 「춘추」 열두 공은 「상서」의 백 편과 같다. 백 편에 본뜬 바가 없는데 열두 공이 어찌 본뜸을 얻겠는가. 「춘추」를 설명하는 이가 말한다. 「이백사십이 년에 사람의 도가 두루 하고 왕의 도가 갖추어져 착함을 착하다 하고 악을 악하다 하여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바름으로 돌리니 「춘추」보다 가까운 것이 없다.」 이 같으면 사람의 도와 왕의 도가 마침 갖추어져 넉넉한 것이다. 삼군 육사 만이천 사람이 적을 능멸하고 도적을 쳐 천하를 횡행하고 명령이 행해지고 금함이 그치기에 넉넉하나 반드시 본뜬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자가 「춘추」를 지어 노나라 열두 공을 기록함은 삼군에 육사가 있음과 같다. 사졸 만이천은 해에 이백사십이가 있음과 같다. 육사 만이천 사람이 군을 이루기에 넉넉하고 열두 공 이백사십이 년이 뜻을 세우기에 넉넉하다. 일을 설명하는 이가 신령한 도와 넓은 뜻을 좋아하여 못나서 화를 만난다. 이 때문에 경전의 편수가 다 본뜬 바가 있다 한다. 실상과 뿌리를 살펴 그 글과 뜻을 논하면 저 어진 이가 책과 시를 지음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이 경을 하고 어진 이가 책을 지음에 뜻이 궁하고 이치가 다하며 문사가 갖추어 넉넉하면 편이 된다. 그 편을 세움에 종류가 서로 따르고 조목이 서로 붙는다. 다른 종류와 다른 무리로 논설이 같지 않으면 다시 따로 편이 된다. 뜻이 다르면 글이 다르고 일이 바뀌면 편이 바뀐다. 일과 뜻에 근거하여 지으니 어찌 본뜸의 뜻을 얻겠는가.
或說《春秋》二百四十二年者,上壽九十,中壽八十,下壽七十。孔子據中壽三世而作,三八二十四,故二百四十年也。又說為赤制之中數也。又說二百四十二年,人道浹,王道備。夫據三世,則浹備之說非;言浹備之說為是,則據三世之論誤。二者相伐,而立其義,聖人之意何定哉?凡紀事言年月日者,詳悉重之也。《洪範》五紀,歲、月、日、星。紀事之文,非法像之言也。紀十二公享國之年,凡有二百四十二,凡此以立三世之說矣。實孔子紀十二公者,以為十二公事,適足以見王義邪?據三世,三世之數,適得十二公而足也?如據十二公,則二百四十二年不為三世見也。如據三世,取三八之數,二百四十年而已,何必取二?說者又曰:「欲合隱公之元也,不敢二年。隱公元年,不載於經。」夫《春秋》自據三世之數而作,何用隱公元年之事為始?須隱公元年之事為始,是竟以備足為義,據三世之說不復用矣。說隱公享國五十年,將盡紀元年以來邪?中斷以備三八之數也?如盡紀元年以來,三八之數則中斷;如中斷以備三世之數,則隱公之元不合,何如?且年與月日,小大異耳,其所紀載,同一實也。二百四十二年謂之據三世,二百四十二年中之日月必有數矣。年據三世,月日多少何據哉?夫《春秋》之有年也,猶《尚書》之有章。章以首義,年以紀事。謂《春秋》之年有據,是謂《尚書》之章亦有據也。
혹 「춘추」 이백사십이 년은 상수가 아흔이요 중수가 여든이요 하수가 일흔이니 공자가 중수 삼세에 근거하여 지어 삼팔 이십사이므로 이백사십 년이라 설명한다. 또 적제 제도의 중수라 설명한다. 또 이백사십이 년에 사람의 도가 두루 하고 왕의 도가 갖추어졌다 설명한다. 무릇 삼세에 근거하면 두루 갖추어졌다는 설이 그르고 두루 갖추어졌다는 설을 옳다 하면 삼세에 근거한 논이 그르다. 둘이 서로 쳐서 그 뜻을 세우니 성인의 뜻이 어찌 정해지겠는가. 무릇 일을 기록함에 해와 달과 날을 말함은 자세히 갖추어 무겁게 여김이다. 「홍범」 오기는 해·달·날·별이다. 일을 기록하는 글이지 본뜬 말이 아니다. 열두 공이 나라를 누린 해를 기록함에 무릇 이백사십이가 있으니 무릇 이로써 삼세의 설을 세웠다. 실로 공자가 열두 공을 기록함은 열두 공의 일이 마침 왕의 뜻을 보이기에 넉넉하다 여겨서인가. 삼세에 근거하여 삼세의 수가 마침 열두 공을 얻어 넉넉해서인가. 열두 공에 근거하면 이백사십이 년이 삼세를 위해 보인 것이 아니다. 삼세에 근거하여 삼팔의 수를 취하면 이백사십 년일 뿐인데 하필 이를 취하는가. 설명하는 이가 또 말한다. 「은공의 원년을 합하려 하여 감히 이 년으로 하지 않았다. 은공 원년은 경에 실리지 않았다.」 무릇 「춘추」가 절로 삼세의 수에 근거하여 지었다면 무엇 때문에 은공 원년의 일로 시작하였는가. 은공 원년의 일로 시작하기를 기다림은 끝내 갖추어 넉넉함으로 뜻을 삼음이니 삼세에 근거한 설은 다시 쓰이지 않는다. 은공이 나라를 누림이 오십 년이라 설명하는데 장차 원년 이래를 다 기록하려 함인가. 중간에 끊어 삼팔의 수를 갖춤인가. 원년 이래를 다 기록하면 삼팔의 수가 중간에 끊기고 중간에 끊어 삼세의 수를 갖추면 은공의 원년이 맞지 않으니 어떠한가. 또 해와 달과 날은 크고 작음이 다를 뿐 그 기록하는 바는 같은 한 실상이다. 이백사십이 년을 삼세에 근거한다 하면 이백사십이 년 가운데 날과 달에 반드시 수가 있을 것이다. 해가 삼세에 근거하면 달과 날의 많고 적음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무릇 「춘추」에 해가 있음은 「상서」에 장이 있음과 같다. 장은 뜻을 머리 삼고 해는 일을 기록한다. 「춘추」의 해에 근거가 있다 하면 이는 「상서」의 장에도 근거가 있다 함이다.
說《易》者皆謂伏羲作八卦,文王演為六十四。夫聖王起,河出圖,洛出書。伏羲王,《河圖》從河水中出,《易》卦是也。禹之時,得《洛書》,書從洛水中出,《洪範》九章是也。故伏義以卦治天下,禹案《洪範》以治洪水。古者烈山氏之王得河圖,夏後因之曰《連山》;〔歸藏〕氏之王得河圖,殷人因之曰《歸藏》;伏羲氏之王得河圖,周人曰《周易》。其經卦皆六十四,文王、周公因彖十八章究六爻。世之傳說《易》者,言伏羲作八卦;不實其本,則謂伏羲真作八卦也。伏羲得八卦,非作之;文王得成六十四,非演之也。演作之言,生於俗傳。苟信一文,使夫真是幾滅不存。既不知《易》之為河圖,又不知存於俗何家《易》也,或時《連山》、《歸藏》,或時《周易》。案禮夏、殷、周三家相損益之製,較著不同。如以周家在後,論今為《周易》,則禮亦宜為周禮。六典不與今禮相應,今禮未必為周,則亦疑今《易》未必為周也。案左丘明之傳,引周家以卦,與今《易》相應,殆《周易》也。
「역」을 설명하는 이는 다 복희가 팔괘를 짓고 문왕이 늘려 예순넷으로 하였다 한다. 무릇 성왕이 일어나면 하수에서 그림이 나오고 낙수에서 글이 나온다. 복희가 왕 노릇 함에 「하도」가 하수 속에서 나왔으니 「역」의 괘가 그것이다. 우 때에 「낙서」를 얻으니 글이 낙수 속에서 나왔으니 「홍범」 아홉 장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복희가 괘로 천하를 다스리고 우가 「홍범」을 살펴 홍수를 다스렸다. 옛날 열산씨의 왕이 하도를 얻어 하후가 이를 따라 「연산」이라 하고 귀장씨의 왕이 하도를 얻어 은나라 사람이 이를 따라 「귀장」이라 하고 복희씨의 왕이 하도를 얻어 주나라 사람이 「주역」이라 하였다. 그 경괘가 다 예순넷이니 문왕·주공이 단 열여덟 장으로 인하여 육효를 궁구하였다. 세상에서 「역」을 전하여 설명하는 이가 복희가 팔괘를 지었다 말하니 그 근본을 실답게 하지 않으면 복희가 참으로 팔괘를 지었다 한다. 복희는 팔괘를 얻었지 지은 것이 아니요 문왕은 이루어진 예순넷을 얻었지 늘린 것이 아니다. 늘리고 지었다는 말은 속된 전함에서 났다. 구차히 한 글을 믿어 무릇 참으로 옳은 것이 거의 없어져 남지 않게 한다. 이미 「역」이 하도임을 알지 못하고 또 속간에 남은 것이 어느 집 「역」인지 알지 못하니 혹 때로 「연산」·「귀장」이요 혹 때로 「주역」이다. 살피건대 예에 하·은·주 세 집이 서로 덜고 더한 제도가 뚜렷이 같지 않다. 주나라 집안이 뒤에 있음으로 지금 것을 논하여 「주역」이라 하면 예도 마땅히 주례라 해야 한다. 육전이 지금 예와 서로 응하지 않으니 지금 예가 반드시 주나라 것이 아니면 또한 지금 「역」이 반드시 주나라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살피건대 좌구명의 전이 주나라 집안이 괘로 함을 끌어 지금 「역」과 서로 응하니 거의 「주역」이다.
說《禮》者,皆知禮也,禮〔為〕何家禮也?孔子曰:「殷因於夏禮,所損益可知也。周因於殷禮,所損益可知也。」由此言之,夏、殷、周各自有禮。方今周禮邪?夏、殷也?謂之周禮,《周禮》六典。案今《禮經》不見六典,或時殷禮未絕,而六典之禮不傳,世因謂此為周禮也?案周官之法不與今禮相應,然則《周禮》六典是也。其不傳,猶古文《尚書》、《春秋》,《左氏》不興矣。
「예」를 설명하는 이는 다 예를 알지만 예가 어느 집 예인가. 공자가 말하였다. 「은나라가 하나라 예를 따랐으니 덜고 더한 바를 알 수 있다. 주나라가 은나라 예를 따랐으니 덜고 더한 바를 알 수 있다.」 이로써 말하면 하·은·주가 저마다 예가 있다. 지금은 주나라 예인가, 하·은인가. 주례라 하면 「주례」는 육전이다. 살피건대 지금 「예경」에 육전이 보이지 않으니 혹 때로 은나라 예가 아직 끊이지 않았고 육전의 예가 전해지지 않아 세상이 인하여 이를 주례라 하는가. 살피건대 주관의 법이 지금 예와 서로 응하지 않으니 그러면 「주례」 육전이 그것이다. 그 전해지지 않음은 고문 「상서」·「춘추」·「좌씨」가 일어나지 않음과 같다.
說《論》者,皆知說文解語而已,不知《論語》本幾何篇,但周以八寸為尺,不知《論語》所獨一尺之意。夫《論語》者,弟子共紀孔子之言行,敕記之時甚多,數十百篇,以八寸為尺,紀之約省,懷持之便也。以其遺非經,傳文紀識恐忘,故以但八寸尺,不二尺四寸也。漢興失亡,至武帝發取孔子壁中古文,得二十一篇,齊、魯二,河間九篇:三十篇。至昭帝女讀二十一篇。宣帝下太常博士,時尚稱書難曉,名之曰傳,後更隸寫以傳誦。初孔子孫孔安國以教魯人扶卿,官至荊州刺史,始曰《論語》。今時稱《論語》二十篇,又失齊、魯、河間九篇。本三十篇,分佈亡失,或二十一篇。目或多或少,文贊或是或誤。說《論語》者,但知以剝解之問,以纖微之難,不知存問本根篇數章目。溫故知新,可以為師;今不知古,稱師如何?
「논」을 설명하는 이는 다 글을 설명하고 말을 풀 줄만 알고 「논어」가 본디 몇 편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주나라가 여덟 치를 자로 삼음만 알고 「논어」가 홀로 한 자로 한 뜻을 알지 못한다. 무릇 「논어」는 제자가 함께 공자의 말과 행실을 기록하여 삼가 기록할 때 매우 많아 수십 수백 편인데 여덟 치를 자로 삼아 기록을 간략히 하여 품고 지니기 편하게 하였다. 그 남긴 것이 경이 아니라 전하는 글로 기록하여 잊을까 두려워하므로 다만 여덟 치 자로 하고 두 자 네 치로 하지 않았다. 한나라가 일어나 잃어버렸다가 무제에 이르러 공자 벽 속의 고문을 열어 취하여 스물한 편을 얻고 제·노 둘과 하간 아홉 편으로 서른 편이었다. 소제에 이르러 스물한 편을 읽었다. 선제가 태상 박사에게 내렸는데 당시 오히려 글이 깨닫기 어렵다 일컬어 이름을 전이라 하고 뒤에 다시 예서로 써서 전하여 외웠다. 처음에 공자의 후손 공안국이 노나라 사람 부경을 가르쳤는데, 부경은 벼슬이 형주 자사에 이르렀고 비로소 「논어」라 하였다. 지금 「논어」 스무 편이라 일컬으니 또 제·노·하간 아홉 편을 잃었다. 본디 서른 편인데 흩어져 잃어 혹 스물한 편이다. 편목이 혹 많고 혹 적으며 글과 찬이 혹 옳고 혹 그르다. 「논어」를 설명하는 이가 다만 벗겨 푸는 물음과 가늘고 미세한 힐난만 알고 본디 뿌리와 편수와 장목을 살펴 물을 줄 모른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는데 지금 옛것을 알지 못하며 스승이라 일컬음이 어떠한가.
孟子曰:「王者之跡熄而《詩》亡,《詩》亡然後《春秋》作。晉之《乘》,楚之《杌》,魯之《春秋》,一也。」若孟子之言,《春秋》者,魯史記之名,《乘》、《檮杌》同。孔子因舊故之名,以號《春秋》之經,未必有奇說異意,深美之據也。今俗儒說之:「春者歲之始,秋者其終也。《春秋》之經,可以奉始養終,故號為《春秋》。」《春秋》之經,何以異《尚書》?《尚書》者,以為上古帝王之書,或以為上所為下所書,授事相實而為名,不依違作意以見奇。說《尚書》者得經之實,說《春秋》者失聖之意矣。《春秋左氏傳》:「桓公十有七年冬十月朔,日有食之。不書日,官失之也。」謂官失之言,蓋其實也。史官記事,若今時縣官之書矣,其年月尚大難失,日者微小易忘也。蓋紀以善惡為實,不以日月為意。若夫公羊、穀梁之傳,日月不具,輒為意使。失平常之事,有怪異之說,徑直之文,有曲折之義,非孔子之心。夫春秋實言〔冬〕夏,不言者,亦與不書日月,同一實也。
맹자가 말하였다. 「왕자의 자취가 꺼지고 「시」가 없어졌으니 「시」가 없어진 뒤에 「춘추」가 지어졌다. 진나라의 「승」과 초나라의 「도올」과 노나라의 「춘추」는 하나다.」 맹자의 말 같다면 「춘추」는 노나라 사기의 이름이니 「승」·「도올」과 같다. 공자가 옛 이름으로 인하여 「춘추」의 경이라 이름하였으니 반드시 기이한 설과 다른 뜻과 깊고 아름다운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속된 유자가 설명한다. 「봄은 해의 시작이요 가을은 그 끝이다. 「춘추」의 경은 시작을 받들고 끝을 기를 수 있으므로 「춘추」라 이름한다.」 「춘추」의 경이 무엇으로 「상서」와 다른가. 「상서」는 상고 제왕의 글이라 하거나 혹 위가 하고 아래가 쓴 것이라 하니 일을 주고받아 서로 실답게 하여 이름을 삼았지 의지하고 어겨 뜻을 지어 기이함을 보이지 않았다. 「상서」를 설명하는 이는 경의 실상을 얻었고 「춘추」를 설명하는 이는 성인의 뜻을 잃었다. 「춘추좌씨전」에 「환공 십칠년 겨울 시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날을 쓰지 않음은 관이 잃은 것이다」 하였다. 관이 잃었다 이른 말이 아마 그 실상이다. 사관이 일을 기록함은 지금의 현관 문서와 같으니 그 해와 달은 오히려 커서 잃기 어렵고 날은 작아 잊기 쉽다. 아마 기록은 착하고 악함을 실상으로 삼지 날과 달로 뜻을 삼지 않는다. 저 공양·곡량의 전은 날과 달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문득 뜻을 부린다. 평상의 일을 잃고 괴이한 설이 있고 곧은 글에 굽은 뜻이 있으니 공자의 마음이 아니다. 무릇 춘추가 실로 겨울과 여름을 말하지 않음도 또한 날과 달을 쓰지 않음과 같은 한 실상이다.
唐、虞、夏、殷、周者,土地之名。堯以唐侯嗣位,舜從虞地得達,禹由夏而起,湯因殷而興,武王階周而伐,皆本所興昌之地,重本不忘始,故以為號,若人之有姓矣。說《尚書》謂之有天下之代號,唐、虞、夏、殷、周者,功德之名,盛隆之意也。故唐之為言蕩蕩也,虞者樂也,夏者大也,殷者中也,周者至也。堯則蕩蕩民無能名;舜則天下虞樂;禹承二帝之業,使道尚蕩蕩,民無能名;殷則道得中;周武則功德無不至。其立義美也,其褒五家大矣,然而違其正實,失其初意。唐、虞、夏、殷、周,猶秦之為秦,漢之為漢。秦起於秦,漢興於漢中,故曰猶秦、漢;猶王莽從新都侯起,故曰亡新。使秦、漢在經傳之上,說者將復為秦、漢作道德之說矣。
당·우·하·은·주는 토지의 이름이다. 요가 당후로 자리를 잇고 순이 우 땅에서 통달함을 얻고 우가 하에서 일어나고 탕이 은으로 일어나고 무왕이 주(周)를 발판 삼아 쳤으니 다 본디 일어나 창성한 땅이라 근본을 무겁게 여기고 시작을 잊지 않으므로 호로 삼음이 사람에게 성이 있음과 같다. 「상서」를 설명하는 이가 천하를 둔 대의 호라 하여 당·우·하·은·주는 공덕의 이름이요 성하고 융성한 뜻이라 한다. 그러므로 당의 말 됨은 넓고 넓음이요 우는 즐거움이요 하는 큼이요 은은 가운데요 주는 지극함이라 한다. 요는 넓고 넓어 백성이 이름할 수 없고 순은 천하가 즐거워하고 우는 두 제왕의 업을 이어 도가 오히려 넓고 넓어 백성이 이름할 수 없게 하고 은은 도가 가운데를 얻고 주 무왕은 공덕이 이르지 않음이 없다 한다. 그 뜻을 세움이 아름답고 그 다섯 집을 기림이 크나 그 바른 실상을 어기고 그 처음 뜻을 잃었다. 당·우·하·은·주는 진나라가 진이 되고 한나라가 한이 됨과 같다. 진나라는 진에서 일어나고 한나라는 한중에서 일어났으므로 진·한과 같다 하니 왕망이 신도후에서 일어났으므로 망한 신이라 함과 같다. 진·한이 경전 위에 있게 하면 설명하는 이가 장차 다시 진·한을 위해 도덕의 설을 지을 것이다.
堯老求禪,四岳舉舜。堯曰:「我其試哉!」說《尚書》曰:「試者,用也;我其用之為天子也。」文為天子也。文又曰:「女於時,觀厥刑於二女。」觀者,觀爾虞舜於天下,不謂堯自觀之也。若此者,高大堯、舜,以為聖人相見已審,不須觀試,精耀相照,曠然相信。又曰:「四門穆穆,入於大麓,烈風雷雨不迷。」言大麓,三公之位也。居一公之位,大總錄二公之事,眾多並吉,若疾風大雨。夫聖人才高,未必相知也。聖成事,舜難知佞,使皋陶陳知人之法。佞難知,聖亦難別。堯之才,猶舜之知也。舜知佞,堯知聖。堯聞舜賢,四岳舉之,心知其奇而未必知其能,故言「我其試〔哉〕!」試之於職,妻以二女,觀其夫婦之法,職治修而不廢,夫道正而不僻。復令人庶之野,而觀其聖,逢烈風疾雨,終不迷惑。堯乃知其聖,授以天下。夫文言「觀」「試」,觀試其才也。說家以為譬喻增飾,使事失正是,誠而不存;曲折失意,使偽說傳而不絕。造說之傳,失之久矣。後生精者,苟欲明經,不原實,而原之者亦校古隨舊,重是之文,以為說證。經之傳不可從,《五經》皆多失實之說。《尚書》、《春秋》,行事成文,較著可見,故頗獨論。
요가 늙어 선양할 이를 구하니 사악이 순을 천거하였다. 요가 말하였다. 「내가 시험하겠다!」 「상서」를 설명하여 말한다. 「시험은 씀이니 내가 그를 써서 천자로 삼겠다는 것이다.」 글이 천자가 됨이다. 글에 또 말하였다. 「이때에 딸을 시집보내 그 법을 두 딸에게서 보리라.」 봄은 너 우순을 천하에 보임이지 요가 스스로 봄을 이르지 않는다 한다. 이 같은 것은 요·순을 높고 크게 하여 성인이 서로 봄에 이미 살펴져 보고 시험할 것이 없이 정밀한 빛이 서로 비추어 훤히 서로 믿는다 여긴다. 또 말하였다. 「사문이 화목하고 큰 숲에 들어 사나운 바람과 우레와 비에 미혹하지 않았다.」 큰 숲은 삼공의 자리라 말한다. 한 공의 자리에 있어 크게 두 공의 일을 총괄하여 많은 일이 아울러 길함이 빠른 바람과 큰비 같다 한다. 무릇 성인은 재주가 높으나 반드시 서로 아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이루어진 일에 순이 아첨하는 이를 알기 어려워 고요에게 사람 아는 법을 펴게 하였다. 아첨하는 이를 알기 어렵고 성인도 가리기 어렵다. 요의 재주는 순의 앎과 같다. 순은 아첨하는 이를 알고 요는 성인을 안다. 요가 순의 어짊을 듣고 사악이 천거하니 마음에 그 기이함을 알았으나 반드시 그 능함을 안 것은 아니므로 「내가 시험하겠다!」 말하였다. 직책에 시험하고 두 딸을 아내로 주어 그 부부의 법을 보니 직책의 다스림이 닦여 폐하지 않고 부부의 도가 바르고 치우치지 않았다. 다시 뭇사람의 들에 가게 하여 그 성스러움을 보니 사나운 바람과 빠른 비를 만나도 끝내 미혹하지 않았다. 요가 곧 그 성스러움을 알아 천하를 주었다. 무릇 글에 「본다(觀)」·「시험한다(試)」라 말함은 그 재주를 보고 시험함이다. 설명하는 집이 비유하고 더하여 꾸며 일이 바르고 옳음을 잃게 하여 정성이 남지 않고 굽어 뜻을 잃어 거짓 설이 전해져 끊이지 않게 한다. 설을 만든 전함이 잃음이 오래다. 뒤에 난 정밀한 이가 구차히 경을 밝히려 하나 실상을 미루지 않고 미루는 이도 또한 옛것을 살피고 옛것을 따라 옳은 글을 거듭하여 설의 증거로 삼는다. 경의 전을 따를 수 없고 「오경」에 다 실상을 잃은 설이 많다. 「상서」·「춘추」는 행한 일이 글을 이루어 뚜렷이 볼 수 있으므로 자못 홀로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