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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解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0 · 한자 2,387자 · 낭독 9.5분

「논형」 서해편 「書解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或曰:「士之論高,何必以文?」

어떤 이는 말한다. 「선비의 논이 높음에 하필 글로 하는가?」

答曰:夫人有文質乃成。物有華而不實,有實而不華者。《易》曰:「聖人之情見乎辭。」出口為言,集札為文,文辭施設,實情敷烈。夫文德,世服也。空書為文,實行為德,著之於衣為服。故曰:德彌盛者文彌縟,德彌彰者人彌明。大人德擴其文炳。小人德熾其文斑。官尊而文繁,德高而文積。華而晥者,大夫之簀,曾子寢疾,命元起易。由此言之,衣服以品賢,賢以文為差。愚傑不別,須文以立折。非唯於人,物亦咸然。龍鱗有文,於蛇為神;鳳羽五色,於鳥為君;虎猛,毛蚡蚖;龜知,背負文:四者體不質,於物為聖賢。且夫山無林,則為土山,地無毛,則為瀉土;人無文,則為僕人。土山無麋鹿,瀉土無五穀,人無文德,不為聖賢。上天多文而後土多理。二氣協和,聖賢稟受,法像本類,故多文彩。瑞應符命,莫非文者。晉唐叔虞、魯成季友、惠公夫人號曰仲子,生而怪奇,文在其手。張良當貴,出與神會,老父授書,卒封留侯。河神,故出圖,洛靈,故出書。竹帛所記怪奇之物,不出潢洿。物以文為表,人以文為基。棘子成欲彌文,子貢譏之。謂文不足奇者,子成之徒也。

답한다. 무릇 사람은 문과 질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물건에 꽃이 있으나 열매가 없는 것이 있고 열매가 있으나 꽃이 없는 것이 있다. 「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정이 말에 보인다」 하였다. 입에서 나오면 말이 되고 찰을 모으면 글이 되니 문사가 베풀어지면 실다운 정이 펴져 드러난다. 무릇 문덕은 세상의 옷이다. 헛되이 쓰면 문이 되고 실로 행하면 덕이 되고 옷에 드러내면 입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덕이 성할수록 문이 번거롭고 덕이 드러날수록 사람이 밝다 한다. 대인은 덕이 넓어 그 문이 빛나고 소인은 덕이 치열하여 그 문이 얼룩진다. 벼슬이 높으면 문이 번거롭고 덕이 높으면 문이 쌓인다. 화려하고 매끈한 것은 대부의 삿자리니 증자가 병들어 누워 원에게 명하여 일으켜 바꾸었다. 이로써 말하면 옷으로 어진 이를 품평하고 어진 이는 문으로 차등한다. 어리석고 뛰어남이 가려지지 않으니 문을 기다려 꺾음을 세운다. 사람에게만 아니라 물건도 다 그러하다. 용의 비늘에 무늬가 있어 뱀보다 신령하고 봉황의 깃이 다섯 빛이라 새의 임금이 되고 범은 사나워 털이 얼룩지고 거북은 알아 등에 무늬를 진다. 넷은 몸이 질박하지 않아 물건에서 성현이 된다. 또 무릇 산에 숲이 없으면 흙산이 되고 땅에 털이 없으면 소금기 땅이 되고 사람에게 문이 없으면 종이 된다. 흙산에 고라니와 사슴이 없고 소금기 땅에 오곡이 없고 사람에게 문덕이 없으면 성현이 되지 않는다. 위 하늘은 문이 많고 후토는 결이 많다. 두 기운이 화합하여 성현이 받아 근본 무리를 본받으므로 문채가 많다. 상서로운 응함과 부명이 문 아닌 것이 없다. 진 당숙우·노 성계우·혜공 부인 중자라 부르는 이는 나면서 괴이하고 기이하여 글이 그 손에 있었다. 장량이 마땅히 귀함에 나가 신과 만나 늙은 아비가 글을 주어 마침내 유후에 봉해졌다. 하수의 신이므로 그림을 내고 낙수의 영이므로 글을 냈다. 대와 비단이 기록한 괴이하고 기이한 물건은 웅덩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물건은 문으로 겉을 삼고 사람은 문으로 터를 삼는다. 극자성이 문을 없애려 하니 자공이 나무랐다. 문이 기이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하는 이는 자성의 무리다.

著作者為文儒,說經者為世儒。二儒在世,未知何者為優。或曰:「文儒不若世儒。世儒說聖人之經,解賢者之傳,義理廣博,無不實見,故在官常位,位最尊者為博士,門徒聚眾,招會千里,身雖死亡,學傳於後。文儒為華淫之說,於世無補,故無常官,弟子門徒不見一人,身死之後,莫有紹傳,此其所以不如世儒者也。」

저작하는 이는 문유가 되고 경을 설명하는 이는 세유가 된다. 두 유자가 세상에 있어 어느 것이 넉넉한지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문유는 세유만 못하다. 세유는 성인의 경을 설명하고 어진 이의 전을 풀어 뜻과 이치가 넓어 실로 보지 않음이 없으므로 벼슬에 늘 자리가 있어 자리가 가장 높은 이는 박사가 되고 문도가 무리를 모아 천 리에서 불러 모이며 몸이 비록 죽어도 배움이 뒤에 전해진다. 문유는 화려하고 음란한 설을 하여 세상에 보탬이 없으므로 늘 그러한 벼슬이 없고 제자와 문도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으며 몸이 죽은 뒤에 이어 전하는 이가 없으니 이것이 세유만 못한 까닭이다.」

答曰:不然。夫世儒說聖情,□□□□,共起並驗,俱追聖人。事殊而務同,言異而義鈞。何以謂之文儒之說無補於世?世儒業易為,故世人學之多;非事可析第,故宮廷設其位。文儒之業,卓絕不循,人寡其書,業雖不講,門雖無人,書文奇偉,世人亦傳。彼虛說,此實篇。折累二者,孰者為賢?案古俊又著作辭說,自用其業,自明於世。世儒當時雖尊,不遭文儒之書,其跡不傳。周公制禮樂,名垂而不滅。孔子作《春秋》,聞傳而不絕。周公、孔子,難以論言。漢世文章之徒,陸賈、司馬遷、劉子政、揚子雲,其材能若奇,其稱不由人。世傳《詩》家魯申公,《書》家千乘歐陽、公孫,不遭太史公,世人不聞。夫以業自顯,孰與須人乃顯?夫能紀百人,孰與廑能顯其名?

답한다. 그렇지 않다. 무릇 세유가 성인의 정을 설명함은 함께 일어나 아울러 증험하여 다 성인을 좇는다. 일이 다르나 힘씀이 같고 말이 다르나 뜻이 고르다. 무엇으로 문유의 설이 세상에 보탬이 없다 하는가. 세유의 업은 하기 쉬우므로 세상 사람이 배움이 많고 일이 나누어 차례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궁정이 그 자리를 베푼다. 문유의 업은 뛰어나 좇지 않아 사람이 그 글을 적게 하니 업이 비록 강론되지 않고 문에 비록 사람이 없어도 글이 기이하고 위대하여 세상 사람이 또한 전한다. 저것은 헛된 설이요 이것은 실다운 편이다. 둘을 저울질하면 어느 것이 어진가. 살피건대 옛 준걸이 또한 사설을 지어 스스로 그 업을 써서 스스로 세상에 밝혔다. 세유는 당시에 비록 높으나 문유의 글을 만나지 못하면 그 자취가 전해지지 않는다. 주공이 예악을 제정하여 이름이 드리워져 없어지지 않는다. 공자가 「춘추」를 지어 들리고 전해져 끊이지 않는다. 주공·공자는 논하여 말하기 어렵다. 한나라 세상의 문장의 무리 육가·사마천·유자정·양자운은 그 재주와 능함이 기이한 듯하여 그 일컬음이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았다. 세상에 전하는 「시」 집 노나라 신공과 「서」 집 천승 구양·공손은 태사공을 만나지 못하였다면 세상 사람이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무릇 업으로 스스로 드러남이 사람을 기다려 드러남과 어느 것이 나은가. 무릇 백 사람을 기록할 수 있음이 겨우 그 이름을 드러낼 수 있음과 어느 것이 나은가.

或曰:「著作者,思慮間也,未必材知出異人也。居不幽,思不至。使著作之人,總眾事之凡,典國境之職,汲汲忙忙,〔何〕暇著作?試使庸人積閒暇之思,亦能成篇八十數。文王日昃不暇食,周公一沐三握發,何暇優游為麗美之文於筆札?孔子作《春秋》,不用於周也。司馬長卿不預公卿之事,故能作子虛之賦。揚子雲存中郎之官,故能成《太玄經》,就《法言》。使孔子得王,《春秋》不作。〔籍〕長卿、子雲為相,賦玄不工。」

어떤 이는 말한다. 「저작하는 이는 생각이 한가하니 반드시 재주와 앎이 남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거처가 그윽하지 않으면 생각이 이르지 않는다. 저작하는 사람에게 뭇일의 무릇을 총괄하고 나라 지경의 직책을 맡게 하면 급급하고 바쁜데 어느 겨를에 저작하겠는가. 시험 삼아 용렬한 사람에게 한가한 생각을 쌓게 하면 또한 편 여든 수를 이룰 수 있다. 문왕은 해가 기울도록 먹을 겨를이 없었고 주공은 한 번 머리 감음에 세 번 머리를 쥐었으니 어느 겨를에 한가로이 곱고 아름다운 글을 붓과 찰에 하였겠는가. 공자가 「춘추」를 지음은 주나라에 쓰이지 않아서다. 사마장경이 공경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자허의 부를 지을 수 있었다. 양자운이 중랑의 벼슬에 있었으므로 「태현경」을 이루고 「법언」을 지을 수 있었다. 공자가 왕 노릇 함을 얻었다면 「춘추」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장경·자운이 재상이 되었다면 부와 현이 공교하지 않았을 것이다.」

答曰:文王日昃不暇食,此謂演《易》而益卦。周公一沐三握發,為周改法而製。周道不弊,孔子不作,休思慮間也!周法闊疏,不可因也。夫稟天地之文,發於胸臆,豈為間作不暇日哉?感偽起妄,源流氣。管仲相桓公,致於九合。商鞅相孝公,為秦開帝業。然而二子之書,篇章數十。長卿、子雲,二子之倫也。俱感,故才並;才同,故業鈞。皆士而各著,不以思慮間也。問事彌多而見彌博,官彌劇而識彌泥。居不幽則思不至,思不至則筆不利。嚚頑之人,有幽室之思,雖無憂,不能著一字。蓋人材有能,無有不暇。有無材而不能思,無有知而不能著。有鴻材欲作而無起,細知以問而能記。蓋奇有無所因,無有不能言,兩有無所睹,無不暇造作。

답한다. 문왕이 해가 기울도록 먹을 겨를이 없음은 「역」을 늘려 괘를 더함을 이른다. 주공이 한 번 머리 감음에 세 번 머리를 쥠은 주나라를 위해 법을 고쳐 제정함이다. 주나라 도가 폐하지 않았다면 공자가 짓지 않았으리라 함은 생각이 한가하기를 쉼이다! 주나라 법이 넓고 성기어 따를 수 없었다. 무릇 하늘과 땅의 문을 받아 가슴속에서 발하니 어찌 한가하여 짓고 겨를 없는 날에 짓지 않겠는가. 거짓에 느껴 망령됨을 일으킴은 근원과 흐름의 기운이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아홉 번 모음에 이르렀다. 상앙이 효공을 도와 진나라를 위해 제업을 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책은 편장이 수십이다. 장경·자운은 두 사람의 무리다. 함께 느꼈으므로 재주가 나란하고 재주가 같으므로 업이 고르다. 다 선비면서 저마다 지었으니 생각이 한가하여서가 아니다. 일을 물음이 많을수록 봄이 넓고 벼슬이 번거로울수록 앎이 막힌다. 거처가 그윽하지 않으면 생각이 이르지 않고 생각이 이르지 않으면 붓이 날카롭지 않다. 어리석고 완악한 사람이 그윽한 방의 생각이 있어 비록 근심이 없어도 한 글자도 지을 수 없다. 아마 사람 재주에 능함이 있으면 겨를 없음이 없다. 재주 없어 생각할 수 없음이 있고 앎이 있어 짓지 못함은 없다. 큰 재주가 지으려 하나 일어남이 없음이 있고 가는 앎으로 물어 기록할 수 있음이 있다. 아마 기이함은 인할 바 없음이 있으나 말할 수 없음은 없고 둘이 있으면 볼 바가 없어도 지을 겨를이 없음은 없다.

或曰:「凡作者精思已極,居位不能領職。蓋人思有所倚著,則精有所盡索。著作之人,書言通奇,其材已極,其知已罷。案古作書者,多位布散盤解,輔傾寧危,非著作之人所能為也。夫有所逼,有所泥,則有所自,篇章數百。呂不韋作《春秋》舉家徙蜀;淮南王作道書,禍至滅族;韓非著治術,身下秦獄。身且不全,安能輔國?夫有長於彼,安能不短於此?深於作文,安能不淺於政治?」

어떤 이는 말한다. 「무릇 짓는 이는 정밀한 생각이 이미 지극하여 자리에 있어도 직책을 거느릴 수 없다. 아마 사람의 생각이 기대는 바가 있으면 정이 다하여 찾는 바가 있다. 저작하는 사람은 글과 말이 기이함에 통하여 그 재주가 이미 지극하고 그 앎이 이미 다하였다. 살피건대 옛날 책 지은 이는 흔히 자리가 흩어지고 풀려 기울어짐을 돕고 위태함을 편안히 함은 저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무릇 몰린 바가 있고 막힌 바가 있으면 절로 하는 바가 있어 편장이 수백이다. 여불위가 「춘추」를 짓고 온 집이 촉으로 옮겨졌고 회남왕이 도가의 책을 지어 화가 이르러 겨레가 멸하였고 한비가 다스리는 술을 지어 몸이 진나라 옥에 내려졌다. 몸도 온전하지 못한데 어찌 나라를 도울 수 있겠는가. 무릇 저기에 긴 것이 있으면 어찌 여기에 짧지 않을 수 있는가. 글 지음에 깊으면 어찌 정치에 얕지 않을 수 있는가.」

答曰:人有所優,固有所劣;人有所工,固有所拙。非劣也,志意不為也,非拙也,精誠不加也。誌有所存,顧不見泰山;思有所至,有身不暇徇也。稱干將之利,刺則不能擊,擊則不能刺,非刃不利,不能一旦二也。蛢彈雀則失鷃,射鵲則失雁,方員畫不俱成,左右視不並見,人材有兩為,不能成一。使乾將寡刺而更擊,舍鵲而射雁,則下射無失矣。人委其篇章,專為〔政〕治,則子產、子賤之跡不足侔也。古作書者,多立功不用也。管仲、晏嬰,功書並作;商鞅、虞卿,篇治俱為。高祖既得天下,馬上之計未敗,陸賈造《新語》,高祖粗納採。呂氏橫逆,劉氏將傾,非陸賈之策,帝室不寧。蓋材知無不能,在所遭遇,遇亂則知立功,有起則以其材著書者也。出口為言,著文為篇。古以言為功者多,以文為敗者希。呂不韋、淮南王以他為過,不以書有非,使客作書,不身自為;如不作書,猶蒙此章章之禍。人古今違屬,未必皆著作材知極也。鄒陽舉疏,免罪於梁。徐樂上書,身拜郎中。材能以其文為功於人,何嫌不能營衛其身?韓蚤信公子非,國不傾危。及非之死,李斯如奇,非以著作材極,不能複有為也。春物之傷,或死之也,殘物不傷,秋亦不長。假令非不死,秦未可知。故才人能令其行可尊,不能使人必法己;能令其言可行,不能使人必採取之矣。

답한다. 사람에게 넉넉한 바가 있으면 본디 못한 바가 있고 사람에게 공교한 바가 있으면 본디 서툰 바가 있다. 못함이 아니라 뜻이 하지 않음이요 서툶이 아니라 정성이 더해지지 않음이다. 뜻이 있는 바가 있으면 돌아보아도 태산을 보지 못하고 생각이 이르는 바가 있으면 몸이 있어도 돌볼 겨를이 없다. 간장의 날카로움을 일컬음에 찌르면 칠 수 없고 치면 찌를 수 없으니 칼날이 날카롭지 않음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둘을 할 수 없어서다. 참새를 쏘면 메추라기를 잃고 까치를 쏘면 기러기를 잃으며 네모와 둥긂을 그림에 함께 이루지 못하고 좌우로 봄에 아울러 보지 못하니 사람 재주에 둘을 함이 있으면 하나를 이룰 수 없다. 간장에게 찌름을 적게 하고 다시 치게 하고 까치를 버리고 기러기를 쏘게 하면 아래로 쏨에 잃음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그 편장을 버리고 오로지 정치를 하면 자산·자천의 자취도 짝하기에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옛날 책 지은 이는 흔히 공을 세우고 쓰이지 않았다. 관중·안영은 공과 책이 아울러 지어졌고 상앙·우경은 편과 다스림이 함께 되었다. 고조가 이미 천하를 얻어 말 위의 꾀가 아직 패하지 않았는데 육가가 「신어」를 지으니 고조가 대략 받아들였다. 여씨가 횡포하고 거슬러 유씨가 장차 기울려 함에 육가의 꾀가 아니었다면 제실이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재주와 앎에 능하지 않음이 없으니 만나는 바에 있어 어지러움을 만나면 앎이 공을 세우고 일어남이 있으면 그 재주로 책을 짓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면 말이 되고 글을 지으면 편이 된다. 옛날에 말로 공을 삼은 이는 많고 글로 패한 이는 드물다. 여불위·회남왕은 다른 것으로 허물이 되었지 책에 그름이 있어서가 아니니 손님을 시켜 책을 짓게 하고 몸소 스스로 하지 않았다. 책을 짓지 않았어도 오히려 이 뚜렷한 화를 입었을 것이다. 사람이 고금에 어긋나고 속하니 반드시 다 저작하는 재주와 앎이 지극한 것은 아니다. 추양이 소를 올려 양나라에서 죄를 면하였다. 서악이 글을 올려 몸이 낭중에 제수되었다. 재주와 능함이 그 글로 사람에게 공을 삼았는데 어찌 그 몸을 지킬 수 없음을 혐의하겠는가. 한(韓)나라가 일찍 공자 한비를 믿었다면 나라가 기울고 위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비가 죽음에 미쳐 이사가 기이하게 여긴 것 같으니 비가 저작하는 재주가 지극하여 다시 함이 있을 수 없어서가 아니다. 봄 물건의 상함은 혹 죽게 하고 남은 물건이 상하지 않아도 가을에 또한 자라지 않는다. 가령 비가 죽지 않았어도 진나라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재주 있는 사람이 그 행실을 높일 만하게 할 수 있으나 사람이 반드시 저를 본받게 할 수 없고 그 말을 행할 만하게 할 수 있으나 사람이 반드시 채택하게 할 수 없다.

或曰:「古今作書者非一,各穿鑿失經之實傳,違聖人質,故謂之蕞殘,比之玉屑。故曰:「蕞殘滿車,不成為道;玉屑滿篋,不成為寶。」前人近聖,猶為蕞殘,況遠聖從後復重為者乎?其作必為妄,其言必不明,安可採用而施行?」

어떤 이는 말한다. 「고금에 책 지은 이가 하나가 아니나 저마다 뚫고 파서 경의 실다운 전함을 잃고 성인의 바탕을 어기므로 자잘한 잔조각이라 하고 옥가루에 견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자잘한 잔조각이 수레에 가득하여도 도를 이루지 못하고 옥가루가 상자에 가득하여도 보배를 이루지 못한다』 하였다. 앞사람은 성인에 가까워도 오히려 자잘한 잔조각이 되는데 하물며 성인에서 멀어 뒤를 따라 다시 거듭 하는 이랴. 그 지음이 반드시 망령되고 그 말이 반드시 밝지 않으니 어찌 채택하여 시행할 수 있겠는가?」

答曰:聖人作其經,賢者造其傳,述作者之意,採聖人之志,故經須傳也。俱賢所為,何以獨謂經傳是,他書記非?彼見經傳,傳經之文,經須而解,故謂之是。他書與書相違,更造端緒,故謂之非。若此者,韙是於《五經》。使言非《五經》,雖是不見聽。使《五經》從孔門出,到今常令人不缺滅,謂之純壹,信之可也。今《五經》遭亡秦之奢侈,觸李斯之橫議,燔燒禁防,伏生之休,抱經深藏。漢興,收《五經》,經書缺滅而不明,篇章棄散而不具。晁錯之輩,各以私意分拆文字,師徒相因相授,不知何者為是。亡秦無道,敗亂之也。秦雖無道,不燔諸子。諸子尺書,文篇具在,可觀讀以正說,可採掇以示後人。後人復作,猶前人之造也。夫俱鴻而知,皆傳記所稱,文義與經相薄。何以獨謂文書失經之實?由此言之,經缺而不完,書無佚本,經有遺篇。折累二者,孰與蕞殘?《易》據事象,《詩》採民以為篇,《樂》須〔民〕歡,《禮》待民平。四經有據,篇章乃成。《尚書》、《春秋》,採掇史記。史記興無異,以民事一意,《六經》之作皆有據。由此言之,書亦為本,經亦為末,末失事實,本得道質。折累二者,孰為玉屑?知屋漏者在宇下,知政失者在草野,知經誤者在諸子。諸子尺書,文明實是。說章句者,終不求解扣明,師師相傳,初為章句者,非通覽之人也。

답한다. 성인이 그 경을 짓고 어진 이가 그 전을 지어 짓는 이의 뜻을 기술하고 성인의 뜻을 채택하므로 경은 전을 기다린다. 다 어진 이가 한 것인데 무엇으로 홀로 경전은 옳고 다른 서기는 그르다 하는가. 저들은 경전이 경을 전하는 글이라 경이 기다려 풀리므로 옳다 함을 본다. 다른 책은 책과 서로 어긋나 다시 실마리를 지으므로 그르다 한다. 이 같은 것은 「오경」에 옳음을 둔다. 말이 「오경」이 아니면 비록 옳아도 들리지 않는다. 「오경」이 공자 문하에서 나와 지금에 이르도록 늘 사람이 빠뜨리고 없애지 않게 하여 순일하다 하면 믿음이 옳다. 이제 「오경」이 망한 진나라의 사치를 만나고 이사의 횡포한 의논에 부딪쳐 태우고 금하니 복생의 아름다움이 경을 안고 깊이 감추었다. 한나라가 일어나 「오경」을 거둠에 경서가 빠지고 없어져 밝지 않고 편장이 버려지고 흩어져 갖추어지지 않았다. 조조의 무리가 저마다 사사로운 뜻으로 문자를 나누어 쪼개고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인하여 서로 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한다. 망한 진나라가 도가 없어 패하고 어지럽힌 것이다. 진나라가 비록 도가 없어도 제자를 태우지 않았다. 제자의 한 자 글이 문장이 갖추어 있어 보고 읽어 설을 바로잡을 수 있고 채택하여 뒷사람에게 보일 수 있다. 뒷사람이 다시 지음은 앞사람이 지음과 같다. 무릇 다 크고 알아 다 전기가 일컫는 바로 문의가 경과 서로 가깝다. 무엇으로 홀로 문서가 경의 실상을 잃었다 하는가. 이로써 말하면 경은 이지러져 온전하지 않으니, 책에는 빠진 본이 없으나 경에는 없어진 편이 있다. 둘을 저울질하면 어느 것이 자잘한 잔조각인가. 「역」은 일의 모양에 근거하고 「시」는 백성에서 채택하여 편을 삼고 「악」은 백성의 기쁨을 기다리고 「예」는 백성의 평안을 기다린다. 네 경에 근거가 있어 편장이 곧 이루어진다. 「상서」·「춘추」는 사기에서 채택하였다. 사기가 일어남에 다름이 없어 백성의 일로 한 뜻이니 「육경」의 지음이 다 근거가 있다. 이로써 말하면 책도 근본이 되고 경도 끝이 되니 끝은 일의 실상을 잃고 근본은 도의 바탕을 얻는다. 둘을 저울질하면 어느 것이 옥가루인가. 지붕이 새는 줄 아는 이는 처마 아래 있고 정사의 잃음을 아는 이는 초야에 있고 경의 그르침을 아는 이는 제자에 있다. 제자의 한 자 글은 문이 밝고 실로 옳다. 장구를 설명하는 이는 끝내 풀어 밝히기를 구하지 않고 스승과 스승이 서로 전하니 처음 장구를 만든 이는 두루 본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