案書篇
儒家之宗,孔子也。墨家之祖,墨翟也。且案儒道傳而墨法廢者,儒之道義可為,而墨之法議難從也。何以驗之?墨家薄葬、右鬼,道乖相反違其實,宜以難從也。乖違如何?使鬼非死人之精也,右之未可知。今墨家謂鬼審〔死〕人之精也,厚其精而薄其屍,此於其神厚而於其體薄也。薄厚不相勝,華實不相副,則怒而降禍,雖有其鬼,終以死恨。人情慾厚惡薄,神心猶然。用墨子之法,事鬼求福,福罕至而禍常來也。以一況百,而墨家為法,皆若此類也。廢而不傳,蓋有以也。
유가의 종은 공자다. 묵가의 조상은 묵적이다. 또 살피건대 유가의 도가 전해지고 묵가의 법이 폐한 것은 유가의 도의는 할 만하고 묵가의 법과 의논은 따르기 어려워서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묵가는 간소하게 장사하고 귀신을 높이니 도가 어긋나 서로 반대되어 그 실상을 어기니 마땅히 따르기 어렵다. 어긋남이 어떠한가. 귀신이 죽은 사람의 정이 아니라면 높임은 알 수 없다. 이제 묵가가 귀신이 참으로 죽은 사람의 정이라 하면서 그 넋은 후하게 받들고 그 주검은 박하게 대하니 이는 그 신에게 두텁고 그 몸에 얇음이다. 얇고 두터움이 서로 이기지 않고 꽃과 열매가 서로 맞지 않으면 노하여 화를 내리니 비록 그 귀신이 있어도 끝내 죽음의 한으로 한다. 사람의 정은 두터움을 바라고 얇음을 미워하니 신의 마음도 오히려 그러하다. 묵자의 법을 써서 귀신을 섬겨 복을 구하면 복이 드물게 이르고 화가 늘 온다. 하나로 백을 견주면 묵가가 법을 함이 다 이 무리 같다. 폐하여 전해지지 않음이 아마 까닭이 있다.
《春秋左氏傳》者,蓋出孔子壁中。孝武皇帝時,魯共王壞孔子教授堂以為宮,得佚《春秋》三十篇,《左氏傳》也。公羊高、穀梁、胡母氏皆傳《春秋》,各門異戶,獨《左氏傳》為近得實。何以驗之?《禮記》造於孔子之堂,太史公。漢之通人也,左氏之言與二書合,公羊高、穀梁寘、胡母氏不相合。又諸家去孔子遠,遠不如近,聞不如見。劉子政玩弄《左氏》,僮僕妻子皆呻吟之。光武皇帝之時,陳元、范淑上書連屬,條事是非,《左氏》遂立。范叔尋因罪罷。元、叔天下極才,講論是非,有餘力矣。陳元言訥,范叔章詘,左氏得實,明矣。言多怪,頗與孔子「不語怪力」相違返也。《呂氏春秋》亦如此焉。《國語》,《左氏》之外傳也,左氏傳經,辭語尚略,故複選錄《國語》之辭以實。然則《左氏》《國語》,世儒之實書也。
「춘추좌씨전」은 아마 공자 벽 속에서 나왔다. 효무황제 때 노 공왕이 공자의 가르치던 당을 헐어 궁으로 삼다가 잃어버린 「춘추」 삼십 편을 얻으니 「좌씨전」이다. 공양고·곡량·호모씨가 다 「춘추」를 전하여 저마다 문이 다르고 지게가 다르나 홀로 「좌씨전」이 실상을 얻음에 가깝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예기」는 공자의 당에서 지어졌고 태사공은 한나라의 통한 사람인데 좌씨의 말이 두 책과 합하고 공양고·곡량치·호모씨는 서로 합하지 않는다. 또 여러 집은 공자에서 멀어 멂이 가까움만 못하고 들음이 봄만 못하다. 유자정이 「좌씨」를 즐겨 종과 아내와 자식이 다 읊조렸다. 광무황제 때 진원·범숙이 글을 올려 잇달아 조목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니 「좌씨」가 마침내 섰다. 범숙이 이윽고 죄로 인하여 파면되었다. 원·숙은 천하의 지극한 재주라 옳고 그름을 강론함에 남은 힘이 있었다. 진원은 말이 어눌하고 범숙은 글이 굽혔으나 좌씨가 실상을 얻음이 분명하다. 말에 괴이함이 많아 자못 공자의 「괴이함과 힘을 말하지 않음」과 서로 어긋난다. 「여씨춘추」도 이와 같다. 「국어」는 「좌씨」의 외전이니 좌씨가 경을 전함에 말이 오히려 간략하므로 다시 「국어」의 말을 골라 기록하여 채웠다. 그러니 「좌씨」·「국어」는 세유의 실다운 책이다.
公孫龍著堅白之論,析言剖辭,務折曲之言,無道理之較,無益於治。齊有三鄒衍之書,瀇洋無涯,其文少驗,多驚耳之言。案大才之人,率多侈縱,無實是之驗;華虛誇誕,無審察之實。商鞅相秦,作耕戰之術;管仲相齊,造輕重之篇。富民豐國,強主弱敵,公賞罰,與鄒衍之書並言。
공손룡이 견백의 논을 지어 말을 쪼개고 말을 가르며 굽은 말을 꺾기 힘써 도리의 견줌이 없어 다스림에 이익이 없다. 제나라에 세 추연의 책이 있어 넓고 넓어 끝이 없으나 그 글이 증험이 적고 귀를 놀라게 하는 말이 많다. 살피건대 큰 재주의 사람은 대개 흔히 사치하고 방종하여 실로 옳은 증험이 없고 화려하고 헛되고 과장되고 허탄하여 살펴 살피는 실상이 없다. 상앙이 진나라를 도와 밭 갈고 싸우는 술을 지었고 관중이 제나라를 도와 경중의 편을 지었다.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나라를 넉넉히 하며 임금을 강하게 하고 적을 약하게 하고 상벌을 공정히 함이 추연의 책과 아울러 말해진다.
而太史公兩紀,世人疑惑,不知所從。案張儀與蘇秦同時,蘇秦之死,儀固知之。儀知〔秦〕審,宜從儀言以定其實,而說不明,兩傳其文。東海張商亦作列傳,豈蘇秦商之所為邪?何文相違甚也?《三代世表》言五帝、三王皆黃帝子孫,自黃帝轉相生,不更稟氣於天。作《殷本紀》,言契母簡狄浴於川,遇玄鳥墜卵,吞之,遂生契焉。及《周本紀》言后稷之母姜嫄野出,見大人跡,履之,則妊身,生后稷焉。夫觀《世表》,則契與后稷,黃帝之子孫也;讀《殷》、《周本紀》,則玄鳥、大人之精氣也。二者不可兩傳,而太史公兼紀不別。案帝王之妃,不宜野出、浴於川水。今言浴於川,吞玄鳥之卵;出於野,履大人之跡:違尊貴之節,誤是非之言也。
그런데 태사공이 둘 다 기록하니 세상 사람이 의심하고 홀려 따를 바를 알지 못한다. 살피건대 장의는 소진과 같은 때라 소진의 죽음을 장의가 본디 알았다. 장의가 소진의 일을 분명히 알았으니 마땅히 장의의 말을 따라 그 실상을 정해야 하는데 설이 밝지 않아 그 글을 둘 다 전하였다. 동해 장상도 열전을 지었으니 어찌 소진이 상이 한 바이겠는가. 어찌 글이 서로 어긋남이 심한가. 「삼대세표」에 오제·삼왕이 다 황제의 자손이라 황제로부터 돌아 서로 낳아 다시 하늘에서 기운을 받지 않았다 말하였다. 「은본기」를 지음에 설의 어미 간적이 냇물에서 목욕하다가 제비가 알을 떨어뜨림을 만나 삼켜 마침내 설을 낳았다 말하였다. 「주본기」에 미쳐 후직의 어미 강원이 들에 나가 큰 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밟으니 곧 몸을 배어 후직을 낳았다 말하였다. 무릇 「세표」를 보면 설과 후직은 황제의 자손이요 「은」·「주본기」를 읽으면 제비와 큰 사람의 정기다. 둘은 둘 다 전할 수 없는데 태사공이 아울러 기록하여 가리지 않았다. 살피건대 제왕의 비는 들에 나가고 냇물에서 목욕함이 마땅하지 않다. 이제 냇물에서 목욕하다 제비의 알을 삼켰다 하고 들에 나가 큰 사람의 발자국을 밟았다 하니 존귀한 절개를 어기고 옳고 그름의 말을 그르친 것이다.
《新語》,陸賈所造,蓋董仲舒相被服焉,皆言君臣政治得失,言可採行,事美足觀。鴻知所言,參貳經傳,雖古聖之言,不能過增。陸賈之言,未見遺闕,而仲舒之言雩祭可以應天,土龍可以致雨,頗難曉也。夫致旱者以雩祭,不夏郊之祀,豈晉候之過邪?以政失道,陰陽不和也。晉廢夏郊之祀,晉侯寢疾,用鄭子產之言,祀夏郊而疾愈。如審雩不修,龍不治,與晉同禍,為之再也。以政致旱,宜復以政。政虧而復修雩治龍,其何益哉!《春秋公羊氏》之說,亢陽之節,足以復政。陰陽相渾,旱湛相報,天道然也,何乃修雩設龍乎?雩祀神喜哉?或雨至,亢陽不改,旱禍不除,變復之義,安所施哉!且夫寒溫與旱湛同,俱政所致,其咎在人。獨為亢旱求福,不為寒溫求佑,未曉其故。如當複報寒溫,宜為雩、龍之事。鴻材巨識,第兩疑焉!
「신어」는 육가가 지은 것이니 아마 동중서가 서로 입어 따랐으니 다 임금과 신하의 정치의 얻고 잃음을 말하여 말이 채택하여 행할 만하고 일이 아름다워 볼 만하다. 큰 앎이 말한 바는 경전에 참여하니 비록 옛 성인의 말이라도 넘어 더할 수 없다. 육가의 말은 빠뜨림이 보이지 않으나 중서의 말에 기우제가 하늘에 응할 수 있고 흙 용이 비를 이르게 할 수 있다 함은 자못 깨닫기 어렵다. 무릇 가뭄을 이르게 함이 기우제로 하고 하나라 교제의 제사를 하지 않아서라 하니 어찌 진후의 허물이겠는가. 정사가 도를 잃어 음양이 화하지 않아서다. 진나라가 하나라 교제의 제사를 폐하니 진후가 병들어 누웠다가 정 자산의 말을 써서 하나라 교제를 지내 병이 나았다. 참으로 기우제를 닦지 않고 용을 다스리지 않으면 진나라와 같은 화라 함은 함이 두 번이다. 정사로 가뭄을 이르게 하였으면 마땅히 다시 정사로 해야 한다. 정사가 이지러졌는데 다시 기우제를 닦고 용을 다스림이 무슨 이익이겠는가! 「춘추공양씨」의 설에 항양의 절기는 정사를 회복하기에 넉넉하다 한다. 음양이 서로 섞이고 가뭄과 잠김이 서로 갚음은 하늘의 도가 그러한데 어찌 곧 기우제를 닦고 용을 베푸는가. 기우제에 신이 기뻐하겠는가. 혹 비가 이르러도 항양이 고쳐지지 않으면 가뭄의 화가 없어지지 않으니 변고를 회복하는 뜻이 어디 베풀어지겠는가! 또 무릇 추위와 더위는 가뭄과 잠김과 같아 다 정사가 이르게 한 것이라 그 허물이 사람에게 있다. 홀로 심한 가뭄에 복을 구하고 추위와 더위에 도움을 구하지 않으니 그 까닭을 깨닫지 못하겠다. 마땅히 다시 추위와 더위에 갚는다면 마땅히 기우제와 용의 일을 해야 한다. 큰 재주와 큰 앎이 다만 둘 다 의심스럽다!
董仲舒著書,不稱子者,意殆自謂過諸子也。漢作書者多,司馬子長、揚子雲,河、漢也,其餘涇、渭也。然而子長少臆中之說,子雲無世俗之論。仲舒說道術奇矣,北方三家尚矣。讖書雲「董仲舒亂我書」,蓋孔子言也。讀之者或為亂我書者,煩亂孔子之書也,或以為亂者,理也,理孔子之書也。共一「亂」字,理之與亂,相去甚遠。然而讀者用心不同,不省本實,故說誤也。夫言「煩亂孔子之書,才高之語也。其言理孔子之書,亦知奇之言也。出入聖人之門,亂理孔子之書,子長、子雲無此言焉。世俗用心不實,省事失情,二語不定,轉側不安。案仲舒之書不違儒家,不〔反〕孔子,其言「煩亂孔子之書者」,非也。孔子之書不亂,其言理孔子之書者,亦非也。孔子曰「師摯之始,《關雎》之亂,洋洋乎盈耳哉!」亂者,〔終〕孔子言也。孔子生週,始其本;仲舒在漢終其末。班叔皮續太史公書,蓋其義也。賦頌篇下其有「亂曰」章,蓋其類也。孔子終論,定於仲舒之言,其修雩始龍,必將有義,未可怪也。
동중서가 책을 지음에 자라 일컫지 않음은 뜻이 거의 스스로 제자를 넘는다 여겨서다. 한나라에 책 지은 이가 많으나 사마자장·양자운은 하수·한수요 그 나머지는 경수·위수다. 그러나 자장은 억측하여 맞히는 설이 적고 자운은 세속의 논이 없다. 중서가 도술을 설명함이 기이하고 북방 세 집이 숭상되었다. 참서에 「동중서가 내 글을 어지럽힌다」 함은 아마 공자의 말이다. 읽는 이가 혹 내 글을 어지럽힌다는 것은 공자의 글을 번거롭게 어지럽힘이라 하고 혹 어지럽힘은 다스림이니 공자의 글을 다스림이라 한다. 함께 한 「난」 자인데 다스림과 어지러움이 서로 떨어짐이 매우 멀다. 그러나 읽는 이가 마음 씀이 같지 않아 근본 실상을 살피지 않으므로 설이 그르친다. 무릇 「공자의 글을 번거롭게 어지럽힌다」 말함은 재주가 높은 말이다. 그 「공자의 글을 다스린다」 말함도 앎이 기이한 말이다. 성인의 문에 드나들며 공자의 글을 어지럽히고 다스림은 자장·자운에게 이 말이 없다. 세속이 마음 씀이 실답지 않아 일을 살핌에 정을 잃어 두 말이 정해지지 않아 뒤척여 편안하지 않다. 살피건대 중서의 책은 유가를 어기지 않고 공자를 거스르지 않으니 그 「공자의 글을 번거롭게 어지럽힌다」 말함은 그르다. 공자의 글은 어지럽지 않으니 그 「공자의 글을 다스린다」 말함도 그르다. 공자가 말하기를 「사지의 시작과 「관저」의 마침이 넘실넘실 귀에 가득하도다!」 하였다. 난은 마침이니 공자의 말이다. 공자가 주나라에 나서 그 근본을 시작하고 중서가 한나라에 있어 그 끝을 마쳤다. 반숙피가 태사공의 책을 이음이 아마 그 뜻이다. 부와 송의 편 아래에 「난왈」 장이 있음이 아마 그 무리다. 공자의 마친 논이 중서의 말에 정해지니 그 기우제를 닦고 용을 베풂에 반드시 장차 뜻이 있을 것이라 괴이하게 여길 수 없다.
顏淵曰:「舜何人也?予何人也?」五帝、三王,顏淵獨慕舜者,知己步騶有同也。知德所慕,默識所追,同一實也。仲舒之言道德政治,可嘉美也。質定世事,論說世疑,桓君山莫上也。故仲舒之文可及,而君山之論難追也。驥與眾馬絕跡,或蹈驥哉?有馬於此,足行千里,終不名驥者,與驥毛色異也。有人於此,文偶仲舒,論次君山,終不同於二子者,姓名殊也。故馬效千里,不必驥;人期賢知,不必孔、墨。何以驗之?君山之論難追也。兩刃相割,利鈍乃知;二論相訂,是非乃見。是故韓非之《四難》,桓寬之《鹽鐵》,君山《新論》類也。世人或疑,言非是偽,論者實之,故難為也。卿決疑訟,獄定嫌罪,是非不決,曲直不立,世人必謂卿獄之吏才不任職。至於論,不務全疑,兩傳並紀,不宜明處,孰與剖破渾沌,解決亂絲,言無不可知,文無不可曉哉?案孔子作《春秋》,採毫毛之善,貶纖介之惡。可褒,則義以明其行善;可貶,則明其惡以譏其操。《新論》之義,與《春秋》會一也。
안연이 말하였다.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오제·삼왕에 안연이 홀로 순을 사모함은 제 걸음이 같음이 있음을 알아서다. 덕이 사모하는 바를 알고 잠잠히 좇는 바를 앎은 같은 한 실상이다. 중서의 말은 도덕과 정치라 아름답다 할 만하다. 세상일을 바탕으로 정하고 세상의 의심을 논하여 설명함은 환군산이 위가 없다. 그러므로 중서의 글은 미칠 수 있으나 군산의 논은 좇기 어렵다. 천리마가 뭇 말과 자취를 끊으니 혹 천리마를 밟겠는가. 여기 말이 있어 발이 천 리를 다녀도 끝내 천리마라 이름하지 않음은 천리마와 털빛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이 있어 글이 중서와 짝하고 논이 군산에 버금가도 끝내 두 사람과 같지 않음은 성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이 천 리를 증험하여도 반드시 천리마가 아니요 사람이 어질고 슬기롭기를 기약하여도 반드시 공·묵이 아니다. 무엇으로 증험하는가. 군산의 논은 좇기 어렵다. 두 칼날이 서로 베면 날카롭고 무딤이 곧 알려지고 두 논이 서로 바로잡으면 옳고 그름이 곧 보인다. 이 때문에 한비의 「사난」과 환관의 「염철」은 군산의 「신론」 무리다. 세상 사람이 혹 의심하여 말이 그르고 거짓인데 논하는 이가 실답게 하므로 하기 어렵다. 경이 의심스러운 송사를 결단하고 옥사에 혐의의 죄를 정함에 옳고 그름이 결정되지 않고 굽고 곧음이 서지 않으면 세상 사람이 반드시 경과 옥사의 아전이 재주가 직책을 감당하지 못한다 한다. 논에 이르러 의심을 온전히 하기 힘쓰지 않고 둘 다 전하고 아울러 기록하여 밝게 처리하지 않음이 혼돈을 쪼개 깨뜨리고 어지러운 실을 풀어 결단하여 말에 알 수 없음이 없고 글에 깨달을 수 없음이 없음과 어느 것이 나은가. 살피건대 공자가 「춘추」를 지음에 터럭만 한 착함을 채택하고 실오라기만 한 악을 깎았다. 기릴 만하면 뜻으로 그 행실의 착함을 밝히고 깎을 만하면 그 악을 밝혀 그 지조를 나무랐다. 「신론」의 뜻은 「춘추」와 하나로 모인다.
夫俗好珍古不貴今,謂今之文不如古書。夫古今一也,才有高下,言有是非,不論善惡而徒貴古,是謂古人賢今人也。案東番鄒伯奇、臨淮袁太伯、袁文術、會稽吳君高、周長生之輩,位雖不至公卿,誠能知之囊橐,文雅之英雄也。觀伯奇之《元思》,太伯之《易〔章〕句》,文術之《咸銘》,君高之《越紐錄》,長生之《洞歷》,劉子政、揚子雲不能過也。〔蓋〕才有淺深,無有古今;文有偽真,無有故新。廣陵陳子回、顏方,今尚書郎班固,蘭台令楊終、傅毅之徒,雖無篇章,賦頌記奏,文辭斐炳,賦象屈原、賈生,奏象唐林、谷永,並比以觀好,其美一也。當今未顯,使在百世之後,則子政、子雲之黨也。韓非著書,李斯採以言事;揚子雲作《太玄》,侯鋪子隨而宣之。非斯同門,雲、鋪共朝,睹奇見益,不為古今變心易意;實事貪善,不遠為術並肩以跡相輕,好奇無已,故奇名無窮。揚子雲反《離騷》之經,非能盡反,一篇文往往見非,反而奪之。《六略》之錄,萬三千篇,雖不盡見,指趣可知,略借不合義者,案而論之。
무릇 풍속이 옛것을 진귀하게 여기고 지금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좋아하여 지금의 글이 옛 책만 못하다 한다. 무릇 고금은 하나니 재주에 높고 낮음이 있고 말에 옳고 그름이 있는데 착하고 악함을 논하지 않고 한갓 옛것을 귀하게 여김은 옛사람이 지금 사람보다 어질다 함이다. 살피건대 동번 추백기·임회 원태백·원문술·회계 오군고·주장생의 무리는 자리가 비록 공경에 이르지 않았으나 참으로 앎의 자루와 부대요 문아의 영웅이다. 백기의 「원사」와 태백의 「역장구」와 문술의 「함명」과 군고의 「월뉴록」과 장생의 「동력」을 보면 유자정·양자운이 넘을 수 없다. 아마 재주에 얕고 깊음이 있고 고금이 없으며 글에 거짓과 참이 있고 옛것과 새것이 없다. 광릉 진자회·안방과 지금 상서랑 반고와 난대령 양종·부의의 무리는 비록 편장이 없어도 부와 송과 기와 주가 문사가 빛나 부는 굴원·가생을 본뜨고 주는 당림·곡영을 본떠 아울러 견주어 좋음을 보면 그 아름다움이 하나다. 지금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백세 뒤에 있게 하면 자정·자운의 무리다. 한비가 책을 지으니 이사가 채택하여 일을 말하였고 양자운이 「태현」을 지으니 후포자가 따라 폈다. 한비와 이사는 같은 문이요 양자운과 후포자는 조정을 함께하였는데 기이함을 보고 이익을 보아 고금으로 마음을 바꾸고 뜻을 바꾸지 않았고 실다운 일로 착함을 탐하여 멀리 술을 하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취로 서로 가벼이 여기지 않고 기이함을 좋아하여 그침이 없으므로 기이한 이름이 무궁하다. 양자운이 「이소」의 경을 뒤집었으나 다 뒤집을 수 없어 한 편의 글에 이따금 그름을 보아 뒤집어 빼앗았다. 「육략」의 기록은 만삼천 편이니 비록 다 보지 못하여도 가리키는 취지를 알 수 있으니 대략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빌려 살펴 논한다.